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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마을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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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책 스크랩 시인의 초상, 잠잠이 프레드릭과 저주받은 베짱이
미미 추천 0 조회 172 11.06.23 12:5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꼬마때 '마니또'한테 받은 선물중에 "잠잠이"란 책이 이었다.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무지하게 짧은 그림책이었는데, 그때야 여드름이 숭숭나고 세상고민 혼자 다 하면서 '난쏘공'이니 '야즈버드'니 하고 다닐때라, 누군지도 모르는 마니또한테서 받은 그딴 그림책이 눈에 들어올리가 없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름도 얼굴도 생각이 나질 않는 마니또한테서 받은 잠잠이를 생각할 때가 많다. 특히 오늘처럼 하늘이 오락가락하면서 비가 내릴락 말락하는 뒤숭숭한 날이면 더욱 그렇다. 이미배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가에 사악 깔리면서, 그런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잠잠이를 생각한다. 음 이러니까 유행가를 무시할 수 없나 보다.

 

아무튼 갑자기 잠잠이가 보고 싶어 책장을 뒤져보니, 어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음 분도출판사의 잠잠이는 절판된지 오랜가 보다. 그 대신 "프레드릭"이란 타이틀로 시공주니어란 출판사에서 복간이 된 모양이다. 잠잠이의 본명이 프레드릭이었단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 "프레드릭"  레오 리오니 지음, 최순희 역, 시공주니어, 1999 >

 

 

이 그림책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잠잠이 아니 프레드릭이란 들쥐가 있었는데, 얘는 넘들이 일 할때 잠잠하게 웅크리고 앉아서 생각만 하는 아이다. 당연히 다른 들쥐들이 뭐하냐고 묻기도 하고, 핀잔을 주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이 아이는 춥고 힘든 겨울날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추운 겨울날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추운 겨울날을 위해 '색깔'을 모으고, 또 추운 겨울날을 위해 '이야기'를 모으는 중이란다.

 

그러다 겨울이 되고, 5마리 들쥐가 돌담 틈새의 구멍안으로 들어가 겨울나기를 시작하는데, 처음 얼마간은 좋았지만 시간이 흘러 먹을 것도 떨어지고, 춥고, 하늘은 온통 잿빛이고, 좌우간 모두가 힘겨워 할때 이 잠잠이 프레드릭이란 아이가 커다란 돌위로 올라가, 겨울이 오기까지 혼자 웅크리고 앉아서 모아왔던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잠잠이 프레드릭이 '보여주는' 이야길 듣고 있던 들쥐들이 감동에 겨워 박수를 치며, (이 대목이 압권인데) "넌 시인이구나"라고 하자, 이 아이의 볼이 빨개지면서 "나도 알아"라고 대답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더 많은 그림과 이야기를 하시는 분은 "그림책박물관"으로)

 

옛날엔 유치하기 짝이 없었던 이 이야기가 요즘들어 왜 머리속에 뱅뱅도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들쥐 잠잠이 프레드릭의 이야기를 생각하다가, 문득 '베짱이'의 기구한 운명이 떠오른다. 이솝 우화 속에 나오는 그 베짱이 말이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이솝은 기원전 6세기 경에 살았던 노예신분의 이야기꾼이었다고 하니, 이솝이 한마디 한것 때문에 베짱이는 수천년의 세월 동안, 세상 도처에서 어리숙한 놈으로 비판받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참으로 불쌍하고 저주스런 운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혹설에 의하면, 본디 이솝이 이 이야기를 전할때는 '개미와 매미'였단다. 그러던 것이 알프스산맥을 넘으면서 매미가 그다지 흔치 않은 곤충이었는지 은근슬쩍 베짱이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편 영어권에서 'grasshopper'로 불리는 것이 왜 하필이면 메뚜기도 아니고 여치도 아니고 베짱이가 되었을까? 어감이 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처음 번역했던 사람이 베짱이를 무지 싫어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좌우간 우리한테 베짱이는 어리숙하고 게을러 빠진 사람을 지칭할때나 아니면 인과응보나 사필귀정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측은해져서, 곤충대백과사전을 펴놓고 베짱이의 어원을 살펴보니 울음소리가 베틀소리와 비슷해서, 그러니까 '지리지리' '지리지리'하고 울다가 '칙'하고 한번 끝는 음을 넣는게 마치 베를 짤때 나는 소리와 닮아있어서 '뵈'에다가 작은 생물을 일컫는 '장이'를 더해 '뵈장이'가 되었다가, 훗날 경음화과정을 거쳐 베짱이로 부르게 됐단다. 이 놈은 보통 늦여름에 기어나와 한 서너달 지리지리 울다가 11월 찬바람이 불면 사라져버린다는데, 옛날 사람들은 베짱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여름도 얼마 안남았다고 좋아했다고 한다.

 

이런 베짱이의 습성에 대해 알고나니, 음 늦여름부터 가을 한철 울다가는 베짱이가 뭐가 아쉽다고 일하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솝이 살아생전 정말로 이야기속의 비유로 '개미와 매미'를 예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매미라고 해도 그렇다. 길어야 1년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개미라는 놈도 여왕개미야 로얄제리 비슷한 걸 먹는지 길게는 5년도 산다고 하지만, 보통 일개미나 병정개미는 1년 정도고, 수개미의 평균수명은 반년이라는데, 얘네들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여름철 그 고생을 하며 노동을 해야하는지 납득이 안간다. 혹시 여왕개미의 착취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좀더 과격하게 생각하면 이솝은 다른 의미로 비유를 들었건만,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부르조아계급의 의도적인 각색/윤색으로 인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왜곡된 형태로 와전된 것이 아닐까, 일테면 원본이 사라진 자리에 레프리카가 원본행새를 하는 그런거 말이다. 실제로 개미와 베짱이의 엔딩이 해피하게 끝나는 건 디즈니(실리 심포니 시리즈)의 각색이라고 하니, 음 어디서부터 왜곡되었는지 늦었지만 희랍어 공부를 시작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잠잠이 프레드릭이 아주 작은 공간/사회지만 결국 남은 구성원들로부터 이해와 존경을 받는데 반해, 우리 베짱이는 여름 한철 노래 좀 했다고 '본시오 빌라도' 보다도 더 긴 세월을 욕들어 먹고 산다, 현재진행형으로 말이다. 너무도 선명하게 대비되는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우리 사회속에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과연 우리 시대 시인의 모습은 어느 쪽의 이미지로 남아있을까, 시인이란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개념인가 싶기도 하고, 애당초 불변의 진리같은 건 없을테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시인들이 그들의 역할을 잃어버리고 한 쪽 귀퉁이로 내몰리고 있는 듯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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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1.06.23 14:49

    첫댓글 잠잠이(분도출판사)=프레드릭(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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