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의 구읍 하계리에 도착하니 정지용의 시 '향수'가 제일 먼저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 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생가는 작았지만 아담했어요.
집 앞을 흐르는 실개천....
그 옛날 정지용은 어린 시절 그 실개천에서 물장구도 치고, 물고기도 잡았겠죠.
그런 낭만은 사라졌지만...그래도 실개천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집 앞에 놓인 물레방아.........
마악 피어나는 연꽃 한 송이....
지나가는 이 하나 없는 한적한 이 곳....
정지용 시인이 어린 시절 지냈던 집 툇마루에 앉았습니다.
반짝거리는 나무결이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우물과 굴뚝...
정지용은 1902년 음력 5월 15일,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글을 쓴 것은 휘문고보에 다닐 때부터였어요.
1922년, 그러니까 20세 때 <풍랑몽>을 쓰면서 본격적인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정지용은 모두 140여 편의 시를 남겼어요.
그는 자신의 경험세계를 시화하려 노력했지요.
어린 시절의 공간을 시로 녹여내 널리 알려진 '향수'를 비롯하여 고향 관련 작품을 많이 발표하였어요.
카톨릭 교도로서 신앙을 소재로 한 시도 꽤 많습니다.
6.25 이후의 행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정지용은
1990년 비로소 해금되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어요.
낮은 담장도 인상적이고,
오롯이 모여 핀 저 꽃들도 인상적이에요.
유달리 봉숭아꽃이 많네요.
시인은 갔지만 그의 시는 남아 있습니다.
시인은 갔지만 그의 생가는 남아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이렇게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것...
작가로서는 가장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먹구름은 이제 모두 물러났습니다.
새파란 하늘이 싱긋 웃고 있네요.
첫댓글 생은 다해서 떠나셧지만 잊혀지지않는 멋진 사람으로 살고픈게 바람아닐까요..깔끔하게 정돈되어있네요...소박하고 아담하고...^^
문학인들의 생가가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어요. 어효선 선생님의 댁은 얼마 전 팔렸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지요.
아담해서 더 정이 가는 곳이군요.
꼭 한번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