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낭여행(따리 3)
8월 3일 (금) 맑음, 계속 (따리 2)
버스(6위안/인)를 타고 20여 분 정도 새로 건설한 대로를 달려 희주 고성 입구에 내렸다. 희주 고성을 가는 방법은 따리 고성 서문 쪽에서 버스를 타고 새로 난 대로로 가다가 내려서 걸어가거나 말마차 혹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방법과 따리 고성의 동문 쪽에서 구도로로 가다가 내리면 바로 희주 고성 마을을 접하게 된다. 리장(여강)에서 올 때는 따리 고성에 오기 전에 내려야 한다. 우린 말 마차(4위안/대)를 타고 희주 고성으로 갔다.
희주(喜洲:시저우) 고성은 따리 고성 북쪽에 위치한 바이족 마을로 바이족(백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많은 목조 가옥은 살아있는 문화재 그 자체란다. 시장 풍경 또한 놓치기 아쉬운 풍경이라고 소개(중국 100배 즐기기)되어 있어 갔지만 입장료가 70위안이라 입장하지 않고 시장 풍경을 보기 위해 시장으로 곧장 갔다. 고성 입구에는 낡은 나룻배들이 떠 있다. 바이족 가옥들과 공공건물들은 벽을 백회로 바른 것이 특징이다. 시장에서 전통적인 이발소, 골동품상을 구경했다. 주인은 골동품이 진품이라고 설명하지만 우린 믿을 수 없는 물건이다. 식당거리에서 피자 비슷한 숯불에 구운 빵과 국수(23위안)를 먹고 바이족의 생활상을 엿보기 위해 주택가로 들어갔다. 여기도 현대화의 바람이 불어 목재가 철재로 바뀐 곳도 있고, 옛날 건물을 보수하여 Hotel로 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오래된 집을 관람하는데 1인당 3위안을 받는다는 집이 있어 돈을 내고 들어가 보니 한 집에 8가구가 살고 있었다. ㅁ자형의 가옥으로 과거에는 대단한 상류층 주택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낡아가고 있다. 주인의 보살핌이 부족한 지붕의 기와나 담장, 헛간, 벽, 문 등이 보수되지 않은 모습이다. 거주민의 세탁물이 걸려있는 정원은 정겨운 모습이고 뒤뜰에는 우물도 있다. 재래식 화장실은 우리나라 재래식과 비슷했는데 많은 가구가 공동으로 사용을 해서 그런지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집 안에는 오래된 집기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민가 관람을 끝내고 얼하이 호수로 가기 위해 마을 뒤편으로 가다가 너무 멀어 포기하고 마을 공공기관들을 둘러보고 시장으로 와 말마차를 1인당 1위안 합이 4위안에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그런데 이 말 마차 주인이 4위안이 아닌 10위안을 내란다. 손가락 하나를 펴고 이(1)위안이라 했는데 내려서는 손가락 하나를 펴고 스(10)위안이란다. 한참 실랑이를 하는데 영어를 하는 젊은이들이 와서 중재를 한다. 마차 주인은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래서 스(10)는 손가락을 교차(중국에선 손으로 수를 나타내는 방법이 있다.)하는 것 아니냐며 따지니까 그제서 마차꾼이 말이 없다. 우린 4위안, 마차주인은 6위안을 주장해 중재하는 젊은이들의 뜻에 따라 5위안을 주었다. 기분은 나빴지만 언어소통의 문제라고 넘겨버리고 버스(6위안/인)를 타고 따리 고성 북문 근처에 내려 고성으로 걸어갔다.
따리 안내도
따리 고성 안내도
희주 고성 가는 길(여기서 내린다.)
오토바이차나 말마차가 대기하고 있다.
희주 고진 입구(입장료를 내는 거리)
거리 풍경
중학교
이발소
골동품점
시장 거리에서 마작을 하는 여인들
시장 식당가
마을 거리
관람료를 받는 집 대문
마당 정원
헛간?
과거의 영화는 어디가고
살림살이들
우물
여유가 있는 집-발을 많이 친다.
주민 문화 센터?
호첩천 가는 길
북문 근처 도로변에는 대리석을 가공하는 집들이 많아 먼지가 많고, 아름다운 대리석 상품을 진열하고 파는 공장 직영점도 있다. 북문으로 들어서서 광견병 주사를 맞기 위해 제 60 중심의원을 찾았다. 처음 간 곳은 취급을 하지 않는지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알아들었는지 제 2의원으로 안내해준다. 내과에서 주사 이야기를 하는데 의사가 영어를 하는 사람을 부른다. 그 사람의 통역으로 주사를 맞기까지 20여분 이상 걸린다. 간호사들이 몰려들어 무슨 일인지 구경한다. 역시 베트남에서 말한 대로 베트남과 같은 주사약은 없고 비슷한 약으로 주사(53.5위안)를 맞고 보험처리를 위한 서류를 받은 후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가지고 간 포스트잇 메모지를 통역을 한 아가씨와 간호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돌아 나오다가 친절한 안내를 해준 간호사한테는 4색 볼펜을 하나 주었다. 베트남에서 주고 남은 포스트잇 메모지와 볼펜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바이족 전통 건물 형태의 교회를 둘러보고 따리 명물 녹두묵 국수(5위안/그릇)를 먹어본다. 녹두묵을 채 썰고 국수, 야채, 땅콩가루 그리고 10여 가지 양념을 얹어 섞어먹는 음식인데 길거리 음식치고는 맛이 있다. 부흥로를 걸어오다가 복숭아도 사고 중국은행에서 5,000위안을 인출하고 따리 문화궁과 오화문을 지나 카페거리를 통과하다가 치즈구이를 사 간식으로 먹고 박애로에서 마사지(50위안/시간)를 받았다. 10일도 안 된 여행이지만 그동안 많이 걸었고, 오늘도 종일 걸어서 뭉쳤던 다리가 마사지로 풀어진 것 같다.
저녁(국수, 만두, 빵, 맥주-23위안)을 먹고 숙소에 와서 주인장 제임스(한국계 미국인)와 그의 친구들과 잠시 이야기를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내일 아침에 축구(한국: 영국)를 한다고 서로 잘못 알아서 의견이 분분하다가 인터넷을 검색하고 모레임을 알았다. 축구 중계를 하면 알려주겠으니 대형 TV로 보자는 친절함이 있었지만 리장에서 보아야 하므로 잠을 청한다.
따리 고성 북문
기독교 교회
양인 거리
오화루
남북 거리는 항(巷)으로 표시
동서 거리는 로(路)로 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