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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자료국명 : 방글라데시 공화국 지리 및 기후방글라데시는 벵갈만의 만곡부에 위치하며 인도에 둘러 쌓여 있고 남동쪽은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매우 평평한 평지로 갠지스-브라마푸트라-자무나(Ganges-Brahmaputra-Jamuna) 삼각주가 어울려 있다. 방글라데시의 경계선과 해양은 퇴적암 상승, 수류, 물줄기, 홍수지역, 실트 등의 애매한 지역이다. 90%이상이 충적토 평지로 해발 10m 이하이며 동북부와 남동부는 240-600m의 높지 않은 구릉이 존재한다.
대략 방글라데시의 2/3이 비옥한 경작지며 10% 정도가 삼림지역이다. 벵갈 호랑이, 표범, 아시안 코끼리(대부분 비하르에서 이주함), 소수의 흑곰, 다수의 원숭이, 아시아 남부 원숭이, 기본(아열대 지역의 꼬리 없는 원숭이), 수달, 몽구스가 서식하고 있다. 파충류는 바다 거북이, 진흙 거북이, 강 거북이, 비단뱀, 악어가 서식하며 다종의 독사가 살고 있다. 600종 이상의 조류도 분포하는데 찌르과의 새들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가장 환상적인 건 물총새다.
방글라데시의 기후는 아열대와 열대기후로 겨울은 낮 최저 평균기온이 21도, 여름은최고 평균기온이 35도다. 세 계절로 구분되는데 우기는 5월에서 10월초, 겨울은 10월 중순부터 2월말, 여름(방글라데시인은 적은 우기로 부름)은 3월 중순부터 5월 중순이다. 또한 싸이클론 계절은 5월-6월과 10월-11월이다. 방글라데시의 계절은 기온이 건조하고 신선한 겨울이 가장 좋은 시기이다. 4월은 습하고 너무 더워 피하는 게 좋다. 역사중세의 유럽 지리학자는 갠지스강 입구에 낙원이 위치한다고 했는데 이는 지나친 기대였다. 16세기까지 벵갈은 아대륙에서 가장 비옥한 곳이었다. 초기의 역사는 인도 제국의 등장과 내분, 힌두교와 불교의 종교적 분쟁이 일어났고 12세기에 북부 인도는 이슬람세력이 들어선다.
튀르크의 모하메드 박티아르(Mohammed Bakhtir)는 20명을 이끌고 대담하고 현명한 전술로 1199년에 벵갈을 점령했다. 모굴(Moghul) 부왕시대는 예술과 문화가 꽃을 핀 시기로 육상 무역이 확대되고 벵갈이 해상무역지로 등장하게 됐다. 모굴의 사망은 유럽제국의 영향력이 미치게 된다. 포르투갈이 15세기초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현지인의 반발로 인해 1633년 철수했다.
동인도회사는 1690년 캘커타에 무역항을 건설했다. 모굴의 권한의 약화는 태수가 지배하는 지역 왕조의 독립을 야기했다. 겸손한 동인도회사의 상인인 로버트 클리브는 충동적인 태수의 공격을 받아 지배력을 상실했으나 1년 후인 1857년에 발생한 인도 폭동 이후 영국 정부는 동인도회사를 재 설치했다.
영국은 벵갈에 전대미문의 광범위한 사회 구조를 조직적으로 설치해 캘커타는 아대륙에서 상업, 교육, 문화의 중요한 위치가 된다. 많은 방글라데시 역사학자들은 영국의 독재적인 농업정책에 대해 비난을 하고 있으며 반봉전제도인 자만다르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부유한 지역경제가 미약해지고 사회구성이 피해를 입게됐다. 영국의 존재는 소수인 힌두교인에게 이득이 됐으나 무슬림에게는 대재앙이었다.
힌두교인은 영국에 협조적이었고 영어 교육과 영국 교육기관에 입학을 했으나 무슬림은 협조에 반대해 반란을 일으키거나 생산품에 대한 이윤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정책을 만들었다. 2차대전후 유럽의 식민지정책이 붕괴되면서 인도의 독립도 예상되어졌다. 인도는 1947년 독립을 얻었으나 갈등이 심화됐고 특히 벵갈은 자치정부를 위한 종교적인 내전이 발생했다.
영국은 힌두교인과 무슬림간의 어떤 타협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아대륙을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벵갈과 펀잡은 인도의 반대쪽에 위치한 혼란스러운 지역이었다. 벵갈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 무슬림 지향의 동부에서 곡물과 섬유가 생산되고 힌두교 지향의 서부인 캘커타에서 상품이 제조되고 수출되어졌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의 동 벵갈(East Bengal)은 정식적으로 동 파키스탄(East Pakistan)이 된다. 두 지역간의 동일성 부족은 벵갈인의 국가주의를 야기시킨다. 파키스탄의 '우르드와 단지 우르드'라는 정책으로 한 우르드어의 국어 채용정책은 벵갈어를 사용하는 벵갈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자극시켜 벵갈어를 쓰는 자치 국가에 대해 갈망하게 된다.
1971년 선거에서 파키스탄 대통령의 희망과 반대로 아와미 리그(Awami League)가 선거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고 결국 국회 개회가 연기됐다. 반란과 폭동이 일어났고 결국 동 파키스탄은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으며 파키스탄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다. 전쟁은 짧은 시간동안 많은 피해자를 내고 대부분의 지역을 파키스탄이 점령하게 됐는데 파키스타은 네이팜을 사용했으며 시민들에 대한 학살과 강간을 자행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경 충돌이 발생했고 훈련된 인도인 방글라데시 게릴라가 국경을 넘었다. 파키스탄 공군은 인도 군대에 대해 선제 공격을 감행해 양국간의 전쟁으로 확산됐다. 인도군은 국경은 넘어 파키스탄 군을 공격했고 북부와 동부는 게릴라에 의해 점령됐다. 11일만에 전쟁은 끊나고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139번째 국가가 됐다. 아와미 리그의 창설자인 세이크 무집(Sheikh Mujib)은 1972년 1월에 방글라데시 최초의 수상이 됐으나 1975년 혼동의 시기에 암살 당했다.
파괴되고 다수의 인명피해를 낸 방글라데시는 1973-74년에 기근을 겪었으며 계엄령과 군사 쿠테타, 정치적인 암살이 이어졌다. 1979년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지아 대통령은 서구와 산유국 이슬람 국가와 좋은 관계를 성립하며 방글라데시에 일시적인 민주주의를 선보였다. 1981년 지아 대통령의 암살로 군사정부가 재등장했고 곧 선거를 실시할 거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1991년까지 방글라데시의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군사 독재자인 에르샤드(Ershad) 장군은 방글라데시 국민당과 아와미 리그에 대한 전례 없는 대중의 지지로 인해 사임하고 베굼 카레드 지아(Begum Khaled Zia)가 수상에 부임한다. 경제는 4.5%의 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방글라데시의 걸프전과 미국이 주도한 하이티 공습, 보스니아 전 파병으로 서구와 관계가 두터워졌다. 지아 정부는 많은 사람을 석방했으나 1974년 군사정부에 의해 특별법으로 제정된 판결 없이 120일간 감금할 수 있는 조항은 아직 폐지되지 않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부정 재선거, 군대와 경찰의 반체제인사에 대한 억압이 증가하고 있어 불만이 높다.
야당은 총파업과 내각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1996년 2월에 실시된 선거는 야당의 보이콧으로 투표율을 5%에 그쳤으며 끊임없는 반정부 시위는 지아 정부를 심각하게 위협했다. 야당과 반정부 단체는 선거에 대한 캠페인이 이어져 3월 30일 지아 수상은 하야를 발표했으며 무하마드 하비부르 라만(Muhammad Habibur Rahnam)가 중립정부의 수상이 됐다. 공식적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6월에 실시돼 아와미 리그의 세이크 하시나 와제드(Sheikh Hasina Wazed)가 이끄는 연합정부가 성립됐다. 1988년 중반에는 방글라데시 64개 지역중 50개 지역이 엄청난 폭우로 인해 홍수피해를 입었으며 755명의 인명피해와 백 만명 가까운 이재민을 낳다. 경제GDP : US$151 billion 문화벵갈 지역은 고대 애니미즘, 불교, 힌두교, 무슬림에 뿌리를 둔 다양한 민속 보호구역을 가지고 있다. 직물, 도자기, 테라코타 조각은 초기 예술양식으로 각광을 받았고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r Tagore)와 나스룰 이스람(Nasrul Islam) 같은 위대한 문학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슬람 여성의 억압을 비난한 글로 인해 회교주의자들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는 최근의 작가인 타스리마 마스린(Taslima Nasreen)는 이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민속극장은 일반적인 것으로 추수기나 식사시간에 공연이 열린다. 민속무용도 다양하지만 전통무용은 종교적인 지도자를 위한 인도의 모델을 많이 따르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무슬림과 힌두교가 상대적인 조화를 이루며 생활하고 있는데 다수를 차지하는 무슬림은 종교적인 지도자는 비숍과 현인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방글라데시의 힌두교는 인도에 비해 매우 빈약하지만, 종교행사는 힌두교 신자 이외에 출입이 금지된 인도의 사원처럼 엄격하지 않다. 힌두교 신자들은 비신자들이 종교행사를 관찰하고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불교신자는 극소수로 고대의 방글라데시의 불교에 대한 자긍심은 현재 이슬람이 주도하는 지적인 생활로 인해 힌두교와 불교 문화의 확장은 어렵다. 방글라데시의 전형적인 음식은 소고기(또는 양고기, 닭고기, 생선,계란)며 채소는 겨자 오일과 매운 향료로 요리되며 노란 물기 있는 콩(달)과 쌀이다. 술은 구하기 어려워 최고급 호텔이나 고급레스토랑에서 세배 이상의 가격을 내고 마실 수 있다. 축제 및 행사무슬림 축제는 음력에 의해 행해진다. 연초에 열리는 라마단은 양력으로 2월/3월이며 축제기간은 한 달이다. 라마단 14일 전인 만월은 신성한 밤인 샤브 에 바랏(Shad-e-Barat)으로 빈민들에게 구호품과 음식이 제공된다. 힌두 축제는 다양한 달력에 의해 실시되는데 대부분 매년 같은 비슷한 시기에 열린다. 색의 축제인 홀리(Holi) 축제는 봄 축제로 3월 첫째주에 열린다. 10월에 열리는 두가 푸자(Durga Puja)는 10개의 손으로 10개의 무기를 들고 있는 사자형상을 한 신을 위한 축제로 모든 힌두 사원에서 열린다. 여행자 정보비자 : 방글라데시 비자는 발급일로부터 6개월 유효하며 한달 또는 3개월 체류에 적당하다. 경비 및 환전통화 : 타카(Taka) 일반 경비 :
돈을 많이 쓰는 여행도 가능하지만 방글라데시의 고급호텔과 식당은 많지가 않다. 미화 현금과 여행자 수표를 선호하며 다카와 치타공을 제외한 지역에서 파운드화의 환전은 어렵다. 신용카드는 다카와 치타공의 호텔,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에 사용이 가능하고 실제적으로 지금은 어디서나 통용된다. 아멕스 카드로는 현금서비스도 가능하다.
팁 또는 박시쉬는 작은 마을을 제외하고 환전 시 매번 지급해야 한다. 방글라데시의 식당에서는 팁은 절대로 주는 적이 없으나 외국인이 자주 가는 다카의 레스토랑에서는 5%의 팁을 주는 게 좋다. 모든 거래는 흥정이 필요한데 원래 가격에서 50%정도 할인해 물건을 사면된다. 흥정 시에 돈을 조금 더 내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여행 시기방글라데시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시기는 기온이 건조하고 신선한 겨울로 10월에서 2월이다. 습하고 매우 더워 여행하기 불편한 4월은 피하도록 한다. 주요 여행지방글라데시의 수도인 다카는 부리강가(Buriganga)강의 북쪽 강변에 자리하며 대략 방글라데시의 중앙에 위치한다. 동남아에서 다카로 도착한다면 상업시설의 미비함에 충격을 받을 것이고, 델리나 카투만두에서 온다면 공기가 깨끗함을 느낄 것이다. 캘커타에서 왔다면 깨끗함과 정돈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방글라데시의 시골에서 왔다면 마치 바빌론처럼 느껴질 것이다.
밝은 조명과 다양한 종류의 좋은 식당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도시의 가장 오래된 지역은 북쪽의 강안을 따라 강변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은 모굴 시대의 무역의 중심지였다. 반드시 봐야하는 구 시가는 두 개의 주요 수상교통 터미널사이에 있는데 사다가트(Sadargaht)와 바담 톨레(Badam Tole)는 부리강가 강의 매혹적인 수상 생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항상 사람들과 여러 종류의 배들로 복잡하다.
강변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궁전인 마산 만질(Ahsan Manzil)은 밝은 핑크색으로 칠해져 있다.다카의 가장 큰 볼거리는 1987년부터 건설 중인 구 시가에 있는 랄바그 성(Lahbagh Fort)이며 이 지역에는 후사인 달란(Hussain Dalan)을 포함한 매력적인 회교 사원이 있다. 현대 도시(Modern City)로 알려진 유럽인 지역 안의 구 시가 북쪽에는 있는 국립 박물관은 방글라데시의 과거 힌두교, 불교, 모굴의 전시품과 민속 예술품과 수공예품이 수집되어 있다.
대부분의 저렴한 숙소와 식당은 센트랄 다카의 현대 도시(Modern City)에 있는데 은행, 여행사, 항공사가 위치한 상업지역으로 모티지힐(Motijheel) 상업 지역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카는 세계 릭샤의 수도로 불릴 정도로 300,000개 이상의 컬러풀한 릭샤가 운영되고 있다. 릭샤 타기는 런던에서 빨간 2층 버스를 타는 것처럼 기본적인 일이다.
방글라데시의 두 번째 큰 도시로 카나푸리(Karnapuri) 강의 강변에 위치하며 도시의 발전을 위한 수상 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다가트(Sadarghat)가 흥미 있는 곳이다. 인접한 곳은 구 포르투갈의 고립영토인 파테르가타(Paterghat)로 대부분 기독교를 믿는다. 치타공에서 가장 인상적인건물은 샤히 자마에마스지드(Shahi Jama-e-Masjid)와 콰담 무박(Qadam Mubarak) 사원이다.민족학 박물관은 방글라데시 소수민족의 생활상을 전시한 흥미 있는 곳으로 가볼 만하다.
북서부의 영국 도시(British City)에 있는 페어리 힐(Fairy Hill)은 시원한 바람과 전망을 볼 수 있다.다카와치타공은 하루에 3-4회 비행기가 운행되며 기차로는 7시간이 소요된다. 다카-치타공 고속도로는 방글라데시에서 잘 정비된 도로로 몇 개의 버스가 운행되는데 기차와 거의 비슷한 시간이 소요되지만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다. 치타공은 다카의 남동쪽으로 264km 거리다.
미얀마 국경과 인접한 곳에 있는 방글라데시의 유일한 해변 리조트로 미얀마에서 학대로 인해 피난와 정착한 로힌갸(Rohingya) 난민지역이다. 버마 불교의 영향이 남아있고 기분 좋은 서비스와 상어가 없는 긴 해변이 여행자들을 매료시킨다. 옷을 입고 수영하더라도 특히 여자의 경우 현지인들과 방글라데시 휴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게 된다. 방글라데시 여자들도 소수이긴 하지만 수영을 하는데 대부분 샬와를 입은 채로 흘러다닌다.
히마체리 비치(Himacheri Beach)와 이나니 비치(Inani Beach)같은 콕스 바자의 남쪽의 해변은 더 한적해 북적거리는 해변이 아닌 자기만의 해변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밤에 수영하는 곳은 안전하지 못하다. 치타공에서 콕스 바자까지의 도로사정은 매우 나쁘고 아직 완성이 안된 상태이다. 다카에서 치타공까지의 도로 이동은 20분 걸리는 비행기로 대체가 가능하며 다른 대안으로 다카에서 콕스 바자까지 370km의 거리를 버스로 직행하는 방법도 있다.
전체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로 발굴된 7-12세기 불교신자들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으로 매우 유명하고 중요한 유적이다. 50개 이상의 불교 유적이 산재해 있는데 살반 비하라(Salban Vihara), 코틸라 무라(Kotila Mura), 차파트라 무라(Charpatra Mura) 세 곳이 가장 중요한 곳이다.
사반 비하라는 유적의 중간에 170sq m의 크기 수도원이 사원을 방향으로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인접한 박물관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테라코타 액자, 동으로 마든 조각상, 동으로 만든 관, 동전, 보석, 불교신자 비문에 장식된 봉탑용 스투파가 전시되어 있다.
코틸라 무라에는 '세 개의 불교의 보석'으로 불리는 부처, 다르마, 산가를 나타내는 거대한 세 개의 스투파가 있다. 차파트라 무가에는 4개의 왕실 구리 동판 법령이 있는데 3개는 찬드라 왕조의 지도자를 위한 것이고 한 개는 힌두 왕이 된 스리 비라다라 데바(Sri Viradhara Deva)를 위한 것이다. 주요 유적 중에는 군사시설 내에 위치한 곳이 있어 허가증 없이 출입이 불가능하다. 유적은 다카에서 약 남동쪽으로 70km 거리다.
파하푸르(Paharpur)에 있는 소마푸리 비하라는 8세기에 건설된 곳으로 히말라야 남부에서 가장 컸던 불교 수도원이었다. 11 헥타 크기로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고고학적 장소이다. 전체적인 조감은 안뜰에 수도승의 암자 있고 큰 사각형의 벽으로 둘러 쌓여져 있어 사원 복합시설을 쉽게 확인해낼 수 있다. 중앙에 있는 20m 높이의 스투파는 주변지역을 향하고 있다.
수도원의 움푹 들어간 벽은 잘 보존된 테라코타 외벽 조각으로 아름답게 꾸며져있고 작은 박물관은 발굴 당시의 종교적인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동은 다카에서 버스나 기차로 보그라(Bogra)로 간 다음 자이푸르핫(Jaipurhat)까지 다른 버스를 타야한다.
자이푸르핫에서는 릭샤를 타고 사거리까지 가서 템포를 타고 파하푸르까지 가거나, 사거리에서 걷거나 또 다른 릭샤를 타야하며 자이푸르핫 기차역에서 잠말푸르까지 기차를 탄 다음 파하푸르까지 릭샤를 타는 방법이 있다. 라지샤히(Rajshahi)에서도 파하푸르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보그라-파하푸르 노선보다 어려우며 마지막 5km의 보도여행이 포함된다. 파하푸르는 다카에서 250km 거리다.
순다반스 국립공원(Sundarbans National Park) 순다반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해안의 망글로브 지역으로 80km에 걸쳐 방글라데시 내륙지역에서 해안으로 이어진다. 삼림은 단순히 망글로브로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한때 갠제틱 평지를 덮고 있던 정글의 일부가 마직막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수다반스는 38,500sq km로 1/3이 물에 의해 커버되어져 있다.
1966년부터 수반다스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정해졌으며 현재 400마리의 로얄 벵갈 호랑이와 약 30,000마리의 점박이 사슴이 살고 있다. 국립공원은 또한 떠돌이 어부들이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원시시대의 파괴되지 않은 환경을 보기 위해서는 쿨나(Khulna)에 있는 산림청 사무실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며, 허가증을 소지했으면 몽라(Mongla) 또는 당마리(Dhangmari)에서 배를 빌려 히론 포인트(Hiron Point)까지 올 수 있다. 히론 포인트부터는 가이드를 동행하고 국립공원을 방문해야 한다.
푸티아에는 방글라데시에서 힌두 건축물 중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 가장 많다. 가장 놀라운 곳은 고빈다 사원(Govinda Temple)으로 1823년에서 1895년 사이에 푸티아 지역의 마하라자의 왕비 중 한 명에 의해 세워졌다. 커다란 사각형의 건물로 축소된 장식용 탑이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복잡한 디자인의 테라코타로 표현된 힌두교 서사시의 장면들은 붉은 동양의 카펫으로 꾸며져 있다.
시바 사원은 북 인도에서 일반적인 다섯 층으로 된 뾰족탑이 있는 힌두양식의 사원으로 세 개의 점점 가늘어지는 계단이 네 개의 뾰족탑 아래에 놓여져 있다. 테라코타로된 석조 조각술과 조각 작품들은 불행히도 해방 전쟁동안 없어졌다. 푸티아에 있는 16세기의 자간나뜨(Jagannath) 사원은 산장 모양의 사원으로 각 면이 불과 5m이며 서쪽의 정면은 기학적인 디자인의 테라코타 천장널을 볼 수 있고, 10m 높이의 탑이 한 개 있다. 푸티아는 라지샤히의 동쪽에서 23km, 나토레(Natore)의 서쪽에서 16km 거리다. 두 도시에서 버스로 이동이 가능하며 고속도로에서 1km 떨어져 푸티나가 위치한다.
방글라데시 남단에서 남서로 10km 떨어진 작은 산호섬으로 해변의 가장자리에 야자수가 있고 해양 동물이 풍부한 열대의 섬이다. 태양아래 누워 있는 것 보다 활동적인 것은 없으며 매우 깨끗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모기조차 당신의 즐기는 고요함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섬 주변은 하루면 걸어서 둘러 볼 수 있는 8sq km의 크기이며 수위가 높을 때는 섬의 5sq km가 물에 잠긴다. 섬에 사는 5,500명의 주민은 어업에 종사하며 10월에서 4월 사이에는 인접 지역에서 잡은 어획물을 가지고 와 섬에 일시적인 도매시장이 형성된다.
텍나르(Teknar)에서 매일 출발하는 페리가 있으며 세시간이 소요된다. 성 마틴 섬에 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먼저 항공이나 버스를 이용해 콕스 바자로 간 다음 버스를 타고 미얀마에 둘러쌓인 텍나르로 간다. 텍나르에서는 성 마틴 섬까지 매일 배가 운행된다. 다카에서 성 마틴 섬까지 총거리는 510km다.
치타공 힐 지대(Chittagong Hill Tracts) 방글라데시에서 지형적으로 문화적으로 특이한 치타공 힐 지대는 가파른 정글 언덕과 비교적 적은 인구밀도의 불교를 믿는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치타공의 동쪽에서 60km 떨어진 곳으로 한때 방문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던 이상적인 곳이었다. 이 지역은 깊은 정글지대, 대나무, 기어다니는 동물, 관목으로 둘러쌓인 언덕, 계곡, 절벽과 카나푸리(Kanarpuli), 페니(Feni), 샨구(Shangu), 마타무후르(Matamuhur)강에 의해 형성된 4개의 주요 계곡지형이 있다.
불행히도 다카에서 정부 허가서를 받는데 10-14일이 소요되며 치타공 힐 지대는 산티 바히니(Shanti Bahini, 평화군) 소수민족을 진압하기 위한 군사작전으로 인해 위험하다. 원주민인 소수민족과 이주해온 일반인들간의 문화적인 충돌이 발생하고 있고 자신들의 땅을 뺏기고 침범 당한 소수민족들은 자신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1980년대 게릴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란가마티(Rangamati)는 차크마(Chakma)족에 소속된 신록의 농촌지대로 캅타이(Kaptai) 호수는 방문이 가능하다. 호수는 얇은 열대지대와 상록수림 지대로 전혀 방글라데시 같은 분위기가 안 난다. 호수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호수주변에 위치한 초가지붕 어촌마을은 방문자들을 특별하게 만들 것이다.
란가마티에서 어촌마을로 출발하는 배가 있다. 어디서나 수영이 가능하므로 수영복을 준비해라. 치타공 힐 지대의 중간지역인 란가마티까지 기차, 버스, 항공노선이 다카와 치타공에서 운행된다. 다카에서 란가마티까지의 거리는 314km다. 방글라데시로 가는 길다카 국제공항은 아시아의 주요 공항은 아니지만 국제선이 많이 운행된다. 많은 여행자들이 다카 공항을 아대륙에 가기 위한 유럽에서 출발한 싼 항공의 중간경유지로 사용하고 있다. 방콕과 캘커타가 방글라데시를 연결하는 주요 공항이며 국제선 공항세는 US$7.50이다.인도에서 육로를 통한 여행은 모호한 상황이다.
주요 통과지점은 캘커타 루트인 베노폴-하리디스푸르(Benopol-Haridispur), 다질링 루트인 치리하리-할디바리(Chilihari-Haldibari), 실롱 루트인 타마빌-다우키(Tamabil-Dawki) 국경이다. 관리인들이 육로국경 어디든지 통과할 수 없다고 말하더라도 히리-바루갓(Hili-Balurghat)과 고다가리-랄고라(Godagari-Lalgola) 국경을 통과한 소수의여행자가 있다. 미얀마와의 횡단루트는 1950년대부터 폐쇄됐으며 만약 미래에 국경이 열린다고 해도 정글에 막혀 이동이 매우 힘들 것이다. 국내 교통편방글라데시의 국내 이동요금은 매우 싸다. 교통편을 이용하는 방법은 일찍 도착해 좌석을 확보하고 여행 중에는 상대방과 밀고 당기면서 힘겨운 여행을 해야한다. 방글라데시 항공기인 비만(Biamn)은 다카에서 출발하는 치타공과 콕스 바자를 포함한 10개의 국내선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항공요금은 싼 편이지만 1등실 기차요금에 비해 세배가 비싸다. 국내선 공항세는 US$1.20이다.
방글라데시는 통행이 가능한 도로가 여러 곳으로 이어지지만 버스로 인해 복잡하다. 방글라데시의 버스 운전사는 세계에서 가장 부주의한 운전사들로 매일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숫자의 사고가 발생한다. 기차는 주요 지역으로 운해되고 1등석은 버스에 비해 편하다. 다카에서 방글라데시 서부의 도시로 가는 기차 노선은 철교가 없어 페리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하며 순환 노선과 동부와 서부의 다른 측량법으로 인해 복잡한 여행이 될 것이다.
현지 교통편은 느리긴 하지만 수상교통이잘 발달되어 있고 사용자도 많다. 방글라데시의 현지 교통편은 강을 따라 알프스로 내려가는 멋진곳도 없고 스키나 하이킹을 할 산도 없다. 유명한 '로켓' 외륜선은 다카에서 쿨나까지 일주일에 네번 운행되지만 쿨나까지는 매혹적인 다양한 페리를 탈 수 있다. 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대도시에선 비싸지만 운전사를 고용해 차를 빌릴 수 있다. 도시에서는 릭샤와 오토릭샤를 어디서건 찾을 수 있는데 요금은 매우 싸지만 타기 전에 요금을 결정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