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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어느 골프 전문지기자로부터 "근골격계 클리닉에서 보는 환자분들의 통증이 골프와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작심을 하고 외래에서 환자분들마다 문진을 해보니 남성 환자분들 중에는 절반 이상, 여성 환자분들 중에는 1/4 정도에서 골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답을 했습니다. 물론 골프를 치는 도중 부상을 입은 경우도 있지만 그 보다는 "골프는 가끔 치는데 언제부터인지 허리나 어깨, 팔목 등이 아프기 시작하였고 이 때문에 골프 칠 때 불편하다." 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골프는 상대방과 볼을 다투며 몸 싸움을 하는 경기도 아니고 강한 스매싱을 받기 위해 쏜살같이 뛰어 다니는 것도 아니라 가만히 정지되어 있는 조그만 공을 칠 뿐인데, 또 상대 선수들이 같이 달려들기는커녕 뒤로 멀찍이 물러서서 숨 죽이고 기다리기만하는데 왜 근골격계 통증이 그토록 많이 발생하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골프가 근골격계 통증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 <골프를 치는 연령>, <골프 동작의 특성>, <반복적 충격>을 꼽습니다.
연령의 요인은 누구나 쉽게 짐작하듯이 골프를 시작하고 연습하는 연령이 (프로가 아닌 이상) 많은 경우 40-50대이고 최소한 30은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열심히 쳐서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 것은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충분히 갖게되는 40대-60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근골격계의 여러 구조물들 - 근육, 힘줄, 인대, 연골, 뼈 등-은 30세부터 퇴행이 시작되며 40대가 되면 퇴행의 증상이 표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골프를 왕성하게 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근골격계의 퇴행이 꽤 진행되어 이미 여기저기 통증이 시작된 분들입니다. 벽돌을 씹어먹어도 잘 소화 해내는 나이가 아니라 최고급 한우를 먹어도 소화불량이 생길 수 있는 연령에 있다는 것이 골프 손상을 촉발하는 중요한 배경임에는 의심에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골프 때문에 손상을 입어서 통증이 발생한 것인지 골프를 하면서 통증을 발견한 것인지 구분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골프 동작의 특성에 의한 손상의 요인도 당연히 고려해야 합니다. 골프를 칠때는 허리를 약간 구부린 상태에서 허리에 회전운동이 진행되는 것이 기본 동작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허리에는 디스크(척추 추간판)라는 물렁뼈가 허리의 움직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디스크는 바깥쪽은 섬유륜이라는 딱딱한 껍질로 되어 있고 안쪽에는 수핵이라는 말랑말랑한 젤 성분의 물질이 있어 마치 잼이 들어 있는 도너츠 같은 모양으로 허리의 운동을 가능하게 하고 운동 중 발생되는 충격을 흡수하게 됩니다. 디스크의 수핵은 허리를 약간 구부리게 되면 뒤쪽 즉,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쪽으로 이동하는 힘을 받게 되고 허리를 회전하게 되면 섬유륜이 수핵을 고정하는 능력이 반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말하자면 골프 스윙은 수핵이 뒤쪽 섬유륜을 찢거나 뚫을 확률을 높게 하고 이때문에 디스크 탈출증도 생기고 디스크 내장증도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허리의 회전운동은 디스크뿐만 아니라 허리뒤에 있는 후방관절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는데 허리 근육이 처리하지 못할 정도의 강한 회전을 가하게 되면 후방관절에 손상을 입게 되고 한 동안 허리가 뻐근한 통증이 지속하게 됩니다.
또 다른 골프 동작의 문제는 테니스나 야구보다 훨씬 긴 클럽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긴 클럽의 끝에서 클럽 헤드가 공과 부딪혀서 발생되는 강한 반발력은 손, 손목, 팔목, 어깨로 그대로 전달이 되는데 지렛데의 원리에 의해 클럽이 길면 길수록 더 강한 힘이 관절에 가해져서 더 큰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팔목에 가해지는 힘은 골프 엘보나 테니스 엘보의 증상으로 나타나고 어깨에 가해지는 충격력은 회전근개(힘줄) 손상이나 어깨 관절 연골이나 인대의 손상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반복성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우리 몸의 손상 혹은 모든 기계적인 손상은 한 번의 강한 힘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약한 힘이라도 수없이 반복되는 충격에 의해 서서히 손상이 가중되다가 어느 순간에 찢어지면서 문제가 된다. 평생을 라운딩해도 똑 같은 조건에서 샷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는 하지만 약간의 지형지물의 차이, 클럽의 차이는 있으나 골프 스윙에 사용되는 근골격계의 움직임은 거의 유사한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무수한 반복의 연속이 되어 설사 한 두번의 샷으로 받는 충격은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짧은 시간에 200타, 300타 연습을 하게 되면 찢어지는 힘줄이나 손상되는 인대나 연골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느날 좌측 팔목(엘보)가 엉망으로 망가져 진료실을 찾은 50대 여성 골퍼한데 "도대체 어떻게 이토록 심한 손상되었냐?"고 물었더니 "워낙 승부욕이 강하여 한 번 라운딩할 때 좋은 스코어가 안나오면 그날 저녁 2-3시간씩 연습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골프와 부상의 관계가 이러하다면 <나이들어서 허리나 팔에 무리가 되는 동작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 즉, <골프>는 해서는 안되는 일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근육, 힘줄, 인대, 연골이 약해져서 손상을 받기 쉬운 것이므로 이들을 제대로 강화시키는 운동을 하면 됩니다. 70세가 넘어도 적절한 강화운동을 하면 근력과 힘줄의 강도가 증가된다는 연구결과는 수두룩합니다. 골프와 관계되는 허리, 어깨, 팔목 등을 특별히 강화시키는 방법들이 있으므로 이러한 운동을 중심으로 근력 강화 운동을 꾸준히 한다면 나이로 인한 부상은 많이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기 언급한 골프 동작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정확하고 정상적인 스윙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피로에 빠진 상태에서 혹은 오버스윙에서 손상이 된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정상적인 스윙에서는 근육, 힘줄, 인대, 연골 등이 생체역학적으로 조화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으나 피로하거나 과도한 욕심으로 스윙 메커니즘에 문제가 되는 순간 역학적으로 가장 약한 부분에 손상이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며칠동안 매일 36홀 라운딩을 계속한다거나 심한 과욕을 부리는 플레이는 부상 발생의 확률을 매우 높이게 되므로 이를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료실에서 보면 허리 디스크로 오래 고생하다가 치료를 받은 직후 "이제 골프 시작해도 됩니까?"라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하셔도 좋지만 허리 주변 근력 강화를 충분히 하고나서 시작하시고 내기(골프)는 당분간 하지 마십시오."라고 농담반 진담반 대답을 하는 속 뜻이 바로 그러합니다.
반복적 충격에 의한 문제는 반복적인 충격에 의해 생체조직이 서서히 손상되어 나가는 것인데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가", 즉, <반복되는 동작의 인터발>입니다. 우리 몸의 조직은 일정한 양의 충격을 주면 손상을 받아 약해졌다가 충분한 시간을 주면 치유가 일어나며 더 강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장미란 선수가 보통사람은 그 아래 깔리기만 해도 뼈가 부러지고 관절이 꺽일 정도의 역기를 아무런 손상없이 들 수 있는 것은 극도로 단련된 근육이 관절을 보호하고 수없는 반복 연습과 이에 따른 휴식과정에서 강화된 힘줄, 인대, 연골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반복 동작의 인터발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반복 동작의 인터발이 매우 짧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연습장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특히, 플레이가 잘 안되고 나서 승부욕을 삭이면서 하는 연습때는 더욱 짧은 인터발로 많은 공을 치게 되므로 이때 일어나는 부상이 실제 라운딩때 일어나는 부상보다 더 흔하고 더 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나이가 들어서 가장 널리 즐길 수 있는 운동인 골프는 나이 그 자체, 골프 동작, 반복적 충격 등의 문제로 근골격계 손상을 유발하게 되는데 흔한 손상을 보이는 부위에 대한 적극적인 강화 운동과 정상적인 스윙 메카니즘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반복적 충격의 인터발을 최대화하는 방법으로 그 손상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위의 세가지 방법을 철저히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고 또 철저히 수행하여도 골프 손상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여 여러 가지 부상을 입을 수 있는데 이럴때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져서 병을 키우지 말고 조기에 전문가로부터 적절한 진료와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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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자료 잘 보았읍니다. 안양우취회 카페에서 허락 없이 퍼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