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종의 타종횟수와 의미 / 범종은 어떤 이유에서 몇 번을 치나요?
① 28의 의미
범종은 조·석예불 전에 울리는 것으로 법고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의례용 악기이다. 그런데 범종과 관련해서 절마다 치는 횟수가 조금씩 다르게 살펴진다.
범종의 타종회수는 크게 3가지가 유행하고 있다. 첫째는 새벽에 28번, 저녁에 36번 치는 경우. 둘째는 새벽에 28번, 저녁에 33번 치는 경우. 마지막 셋째는 새벽에 33번, 저녁에 28번 치는 경우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다. 특히 28번은 새벽과 저녁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28번의 의미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가 살펴진다. 그 하나는 하늘의 별자리인 28수宿라는 것이다. 28수는 우리가 흔히 좌청룡·우백호·남주작·북현무라고 부르는 4신四神으로 총 161개의 별로 이루어진 28개의 별자리를 나타낸다. 고구려 고분벽화로 유명한 사신도도 사실은 상상의 동물에 대한 묘사가 아닌 천문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별을 상징하는 범종의 타종이 바로 28추의 타종횟수인 것이다.
둘은 『주역』의 <하도>와 5행에 근거한 해석이다. 28과 관련해서 백파긍선의 『작법귀감作法龜鑑』에는 “3·8목거동三八木居東 3·8이십사三八二十四 이겸4유개벽고而兼四維開闢故”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는 <하도河圖>의 동방東方 3·8은 5행五行으로는 목木이며, 목은 동東이므로 24가 되고, 여기에 4유4방四維四方의 개벽開闢의 의미를 더하여 총 28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24에 4방을 더한다는 억지로 28에 짜 맞춘 색채가 강하다. 그러므로 처음의 설이 보다 타당성이 높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두 번째 경우를 배제하면, 28과 관련해서 남은 문제는 이를 새벽으로 보아야 하느냐, 저녁으로 보아야 하느냐라고 하겠다.
28수는 붓다의 가르침이 우주의 전 공간에 전해지라는 의미이다. 28이 별자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저녁의 타종횟수가 아니겠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찰에서는 새벽예불이 3시부터 이루어지지고, 저녁예불은 6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별은 새벽에 있게 된다. 즉, 이치적으로는 저녁이 옳으나 현상적으로는 새벽에 별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이 파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성문을 열고 닫을 때도 종을 쳐서 알렸는데, 이때 28추는 저녁의 종 횟수였다. 그러므로 28번은 저녁에 해당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하겠다.
② 36과 33의 의미
28번을 제외하고 타종과 관련해서 남는 숫자는 36번과 33번이다. 이 중 36번은 『주역』의 <하도>와 5행에 근거하는 것이다. 36번의 횟수와 관련하여 백파긍선의 『작법귀감』은 “4·9금거서四九金居西”라는 설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하도>의 서방西方 4·9는 5행으로는 금金이며, 금은 서西이므로 36이 된다는 의미이다. 백파긍선은 한결같이 <하도>와 5행의 설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조선조 유교문화의 재해석을 거친 불교의 면모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백파긍선의 설은 28과 같은 측면에서 이미 타당성을 상실한다. 그러므로 36과 같은 경우도 신뢰할 수 없다. 또한 36은 33에 비해서 보편성이 약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33과 관련된 이해에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이다
33과 관련된 이해는 두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6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6도란 지옥+아귀+축생+인간+아수라+천(신)인데, 이중 천은 다시금 28종류로 나뉘어진다. 그러므로 전5도와 28천을 더하면 총 33이 된다. 이는 28수가 수평적으로 퍼지는 붓다의 가르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이와 호응하는 수직적인 붓다의 가르침이 전개되는 것을 상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이 설은 28천의 개수가 전승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둘은 33이 제석천이 주신으로 있는 도리천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붓다를 모시는 법식은 도리천의 제석천의 정전正殿인 묘승전妙勝殿이라는 점에서 이는 정합성이 높다. 또한 불국사의 범종각은 수미범종각須彌梵鐘閣으로 불리는데, 이는 그것이 수미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3은 도리천의 붓다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럴 경우 새벽의 범종은 도리천의 붓다라는 존엄성을 나타내고, 저녁의 범종은 그러한 붓다의 가르침이 모든 우주로 퍼져나가는 것을 상진한다고 하겠다. 또한 과거 성문을 열 때도 33번의 종을 울렸다. 이는 불교적인 전통이 유교적 가치에 수용된 것이다.
③ 보신각과 재야의 종
보신각이라는 명칭은 동쪽의 흥인지문과 남쪽의 숭례문, 그리고 서쪽의 돈의문과 북쪽의 숙정(知)문의 구조를 완성하기 위해서 1895년에 고종에 의해 명명된 것이다. 서울에 종각은 성문의 개폐와 관련되므로 천도직후부터 존재했었다. 그러나 보신각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고종에 와이다. 보신각을 통해서 동방-인仁·남방-예禮·서방-의義·북방-지知(智)·중앙-신信이라는 5상五常이 완전히 갖추어지게 된다.
보신각에 걸었던 종은 지금은 탑골공원으로 불리는 세조의 원각사에 있었던 종이다. 인사동의 명칭 또한 한성부 중부의 관인방寬仁坊과 원각사를 가리키는 대사동大寺洞 중 ‘인仁’과 ‘사寺’가 붙어서 형성된 것이다.
원각사의 종을 보신각에 두고 계속 치다가 재야의 종 타종과 관련하여 보물 제2호인 원각사종(정식명칭은 ‘옛 보신각 동종’임)을 보호해야한다는 명분과, 사찰의 종을 친다는 기독교계의 반발로 인하여 1986년 새로운 종을 만들게 되었다. 이 종은 겉모양은 한국종(학명으로 사용한 것임)과 유사하지만 문양 등에서 불교적인 색깔을 제거한 현대적인 창안품이다. 이는 기독교계의 반발이 있었으므로 새로운 종의 주조에는 불교적인 이미지를 빼버린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으 그 종치는 횟수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12월 31일 자정에 재야의 종을 울린다. 그런데 그 종의 타종횟수는 계속해서 33번이다. 즉, 우리의 새로운 한해는 언제나 붓다를 도리천에 모시는 법식으로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