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산가(遊山歌) >
조선시대 유명한 가사중 대표적인 12가사 가운데서 백구사를 첫손으로 꼽는다고 할 때, 조선 후기에 불리워진 경기12잡가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유산가를 우두머리에 놓을 수 있다. 유산가는 조선 후기 사계축집단에서 불리워 지던 것을 박춘경이 재구성하여 전하는 것이다. 유산가는 구조(舊調)인 유산가와 지금에 부르는 시용(時用)의 유산가 두종류가 있었다고 하는데, 예전 유산가는 사설만 길뿐 현행의 것보다는 곡조도 역시 매우 싱거웠다고 전해진다.
유산가는 누구나 '화란춘성...'이 허두인 줄 알지만, 실상 구조의 사설은 그 위에도 말이 많고 화란춘성은 뒤에 붙었었다. 그랬던 것을 박춘경이 고쳐서 새로운 유산가의 곡조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에 전하여지고 있다. 좋은 절기에 경승을 찾는다는 산놀이 내용의 이 유산가는 한가하고 우아한 것이 그 특징이며, 명랑한 서울 조에서도 높이 뛰어나게 평가받는 곡이다. 밭쟁이인 박춘경에게 얼마만한 문학적인 식견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머리가 잘린 지금의 유산가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보다 아담하게 짜여져 잘 통일되어 있는 것은 지극히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유산가는 삼춘가절을 당하여 도처에서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금수강산 무궁한 경개를 중국 명승지에 견주어 가면서 절찬한 내용으로 엮어져 있다. 음악 형식은 12가사의 예와 마찬가지로 되풀이되는 마루가 많을 뿐 아니라 4분의 6박자의 도드리 장단에 의한 점이라든지, 목 쓰는 법 등 가사의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전반이 7마루, 후반이 7마루, 도합 14마루로 구성되며, 81각, 즉 81장단으로 되어있다.
< 제비가 >
'만첩산중 늙은 범..'으로 시작하는 제비가는 긴잡가의 원형을 약간 벗어난 듯 하면서도 다른 12잡가에서는 맛볼 수 없는 비약적인 가락과 멋진 시김새에 의해 불리워 지는 경기 12잡가의 대표곡으로서 도드리 6박이 12장단 빠른 도드리 6박이 64장단으로 되어있다. 이전까지의 연구에서는 이곡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또 곡중(曲中) 제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제비가를 단순히 소재만을 나열한 조잡한 곡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제비가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구성에 있어서의 치밀함과 제비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곡중 전반부는 곡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즉 서산에 해가 지고, 맑은 밤하늘에 휘영청 달이 떠 있는데, 산속의 동물들은 제각기 자기의 보금자리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이 평화로운 모습을 창자는 1각 6박의 도드리 장단으로 표현하고 있다. 곡의 중반부에는 곡중 주인공의 속마음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를 창자는 세마치 장단의 조금 빠른 리듬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선 제비가에서 제비는 곡중 주인공의 '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는데, 곡중 주인공이 그 제비인 자기 임을 만나러 가고 싶은 표현을 중국 고사(복희씨 맺은 그물)를 인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곡중 주인공이 여자라면, 그 임은 바로 낭군이 될 것이고, 만약 주인공이 남자라면 그 임은 임금이 될 것인데, 이는 곡의 중-후반부로 가면서 밝혀지고 있다.
즉 제비가 반공중에서 구름을 헤치면서 재빨리 달아나 버리고, 버드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꾀꼬리가 노래를 부르며 제비를 찾아오게 하는 장면에서 곡중 주인공의 임은 자기를 떠나가 버렸고, 그 임은 다른 이에게 가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어느 낭군이 날 찾아오리'라는 표현과 자신의 감정의 이입체인 두견새가 야삼경(夜三更) 슬프게 우는 장면을 통해 여인의 한(限)을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는 곡의 후반부로 가면서 자신의 처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산속의 온갖 새들조차 자기 짝과 함께 다니며 노래하고 있지만, 자신은 그 새들을 벗하며 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면서 이곡은 끝을 맺는다.
< 소춘향가(小春香歌) >
소춘향가는 판소리 춘향가와 구별하고, 춘향가의 한 토막을 노래로 부른다는 뜻에서 명명된 곡으로, 남도(南道)목이 아닌 경기창법(京畿唱法)으로 소리한다는 것이 흥미있는 곡이다. 춘향의 이야기를 가져온 소리로는 소춘향가 이외에도 집장가(執杖歌), 십장가(十杖歌), 형장가(刑杖歌)등이 있다.
소춘향가는 가사가 짧은 반면에 곡조가 매우 어렵고, 또한 말 부침새도 꽤 힘들다. 곡태를 보아도 춘향이 이도령에게 제 집을 가르쳐주는 전반은 누르는 목과 우물물처럼 깊이 뜨는 목이 많고, 이도령의 응수(應酬)인 듯한 후반은 속목을 많이 쓰고 있어서 부르기가 까다롭다. 장단은 유산가나 적벽가와 마찬가지로 도드리 6박자로서 1각 6박 63장단이다.
< 집장가(執杖歌) >
집장가는 춘향전 중에서 이도령이 한양으로 올라간 뒤에 신관 사또가 무고히 춘햐이를 매질하려고 할 때부터 매를 맞고 비참한 광경까지를 4절로 나눠 엮어서 노래한 것이다. 1절과 2절은 집장군노와 나졸들이 형구를 차려 놓고 춘향을 매질하려는 장면을 엮었고, 3절은 매를 때리는 장면이며, 4절은 매를 맞고 처참한 광경을 엮어서 노래한 것이다.
집장가는 다른 경기창과 달리 속청이 많고 목을 조으는 데가 많아 듣는 이는 흥미를 느끼는 반면에 부르는 이는 힘이 드는 노래로, 장단은 빠른 도드리 장단이다.
< 십장가(十杖歌) >
십장가는 춘향전 중에서 십장가를 빼다가 경기 창법에 맞추어 부른 소리로, 형틀에 오그리고 앉아서 매를 견디는 '집장가'의 계속이며, "형장, 태장, 삼모진 도리매..."하는 형장가에 연결되고 있는 곡이다. 춘향이가 수청 대령을 거역하자 신관 사또는 조롱관장이니, 거역관장이니 하는 죄목을 씌워서 형틀에 매고 집장사령의 모진 매로 그의 회절을 유도하고 있고 있으며, 매 한 대에 노래 하나씩, 하나는 하나에 둘은 둘에 꼭 숫자를 머리에 붙여 춘향의 이부불경(二夫不更)하는 절개를 그린 노래이다.
곡조는 11마루가 모두 첫마루와 똑같이 반복되는 같은 조이며 장단은 1각 6박자 96장단이며 도드리 6박자로 맞추어 부른다.
< 형장가(刑杖歌) >
형장가는 춘향이 매를 맞고 느꺼워 우는 자탄가(自歎歌)이다. 처음은 구경꾼의 동정으로 봉을 뜯지만 그 뒤는 발악하는 춘향의 서러운 푸념이 계속되는 곡으로, 집장가의 호기에 비하면 시름 겨운 울음이라 형장가는 목을 화려하게 구사하지 않는 수수함을 견지 해야 한다.
이 곡은 처음 4절은 도드리 6박의 장단으로 부르다가 그 다음부터는 조금 빨라지면서 세마치 장단으로 넘어가며, 이러한 장단의 변화에 맞춰 소리의 음정도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 적벽가(赤壁歌) >
적벽가는 경기 12좌창 중에서 유산가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대표곡으로, '삼국지(三國志)'를 소설화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한 대목을 소재로 삼아 부른 곡이다.
이 곡은, 방통의 연환계와 공명의 화공계, 황개의 고육계가 사용된 적벽대전에서, 구은(舊恩)을 잊지 않은 관우가 대패한 조조를 살려보내는 그 장면을 이 곡에서 묘사하고 있으며, 관운장의 후덕과 의리를 예찬하고 있다.
적벽가는 곡이 아기자기하게 짜여져 있어 특출한 목을 쓰는 곳은 없지만, 관운장의 성품처럼 씩씩하고 무게가 있는 소리로 전후 12절 120각, 즉 120장단으로 되어 있다.
< 선유가(船遊歌) >
선유가는 산놀이를 주제로 한 유산가와는 대조적으로 물놀이를 소재로 삼아 부른 곡이다. 후렴에서 "배를 타고 놀러가세"라는 구절이 있어서 선유가라는 이름을 붙인 것같은 이곡은 그러나 실제로는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선유가는 "회양도 봉봉 돌아를 오소"의 후렴 부분에서 독특한 목을 구사하여 고음과 아울러 아루성을 쓰는 것이 특징이며, 곡의 연주형태는 "가세 가세 자네 가세"의 전주곡부터 시작하여 6절의 원마루와 후렴으로 되어 있으며 후렴 또한 한번은 "동삼월 계삼월--"이 되어 엇바뀌어 부르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고, 장단은 역시 도드리 6박자이다.
< 출인가(出引歌) >
출인가는 같은 '선유가'이면서도 조(調)가 다르고, 춘향이 떠나는(出) 이도령을 붙잡고(引) 전별을 아낀다는 내용을 소재로 부른 곡이라서 출인가라 명명된 곡이다.
이 출인가는 대개 "풋고추..."로 시작되는 1절, "곤히 든 잠..."으로 시작되는 2절, "오늘 놀고 내일 놀고..."로 시작되는 3절, 이렇게 3절로 되어 있으며, 장단은 6박 도드리 장단으로 되어있고, 후렴구 "놀고가세--"만 4으로 치는 것이 특색이다.
< 평양가(平壤歌) >
평양가는 곡목만이 평양가로 되어 있을뿐, 평양의 전통적인 것을 노래한 것도 아니고 대동강이나 능라도의 풍광을 미화해서 노래한 것도 아니며, 단지 평양에 있는 월선이라는 기생집에 놀러가 자는 방탕아의 콧내래이다.
이 평양가는 그 사설이나 선율면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노래로, 말이 짧은 사설에 믿믿한 말의 표현과 담담한 꺾임, 그리고 특이한 표현이나 장단의 변화도 없이 단조롭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소리이다.
이 곡은 1절에서 3절까지는 1절마다 도드리 6박자 1각씩 9장단이고, 4절부터는 같은 박 같은 장단으로 매절마다 8장단씩이 되며 10절 "떨어진다..."에서만 곡이 다르다.
< 방물가(房物歌) >
여자의 소용인 패물이며 잡화를 주워 섬겨도 실은 남녀의 사랑이 주제인 곡이 바로 방물가이다. 이 곡은 정든 임과 이별할 제 못 데리고 가는 안타까움과 따라가고자하는 심정을 묘사하여 엮은 남녀간의 사랑을 그린 곡으로 장단은 도드리 6박이다.
< 달거리 >
달거리란 1년 열 두달을 차근차근 나누어 그 달의 특징이나 정경을 사설로 표출하는 월령체형식의 가요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고려 속요의 동동, 조선 시대 가사인 농가월령가등에서도 볼 수 있는 매우 전통적인 형식이다.
그런데 이 경기 12잡가의 달거리는 제목이 달거리이지만 달의 정경을 묘사한 것은 정월과 2월, 3월의 세 개달 밖에 없고, 곡의 대부분은 남녀간의 적나라한 본정(本情)을 나타내었다. 마구 풍기는 거센 숨결, 숨길 줄도 어디에 빗댁 줄도 모르는 표현이 듣는 이를 찡그리게 할 수도 있지만, 육담조의 재미있는 사설과 변화 있는 장단은 달거리를 좋아하게 만드는 한 요소이다.
달거리는 처음엔 가볍고도 흐느청거리는 세마치조이다가 "적수단신 이내 몸이--"부터 긴 잡가의 원 장단인 6박 도드리 장단으로 넘어가며, 다시 ?P에 매화 타령부터 굿거리 장단으로 변화하여 끝을 맺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해설을 해 주시니 잡가에 더 흥미가 갑니다^^
이해하기 가 쉽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