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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넘은 구룡령 옛길
인심 좋은 민박집의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고단했던 몸을 지지며 단잠을 자고나니 어제의 피로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산골의 맑은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 더없이 개운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집 앞을 흐르는 열목어가 산다는 명개리 청정 계곡의 힘찬 물소리가 몸과 마음을 더욱 청량하게 한다. 오대산 깊은 산속의 아침이 주는 기분 좋은 선물이다. 8시에 아침 식사. 어제 저녁에 된장백반을 주문해 놓았었는데 막상 차려내온 음식상을 보니 이건 백반 정도가 아니라 성대한 한정식이다. 순박한 산골 인심이다. 오늘 하루도 기분 좋은 출발이다.
8시 50분에 ‘오대산민박’집을 출발, 둘째 날의 구룡령 옛길 걷기에 나선다. 기온이 쑥 내려가 길옆 풀섶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공기는 청랭하고 아침 햇살에 단풍진 산색이 눈이 시리도록 맑고 곱다. 길옆으로 잎이 다 떨어져버린 커다란 나무들이 작고 빨간 열매만 잔뜩 매달고 파란 하늘에 높이 솟아 눈길을 끈다. 나중에 고갯길 주막 주인에게 들어 알게 되었지만 마가목이란다. 오늘날처럼 녹차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산골 절에서 스님들이 이 나무의 특이한 향이 나는 줄기를 잘게 썰어 차를 달여 마시곤 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신경통 요통 위장병 기침 가래 중풍 고혈압 등 만병통치의 귀한 약재로서, 예로부터 풀 중에서는 산삼이 제일이지만 나무 중에서는 마가목을 으뜸으로 여겼다고 한다. 2차선 도로를 따라 한 시간 가까이 걸어 내려가니 홍천과 양양을 잇는 56번국도와 만나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이 국립공원 지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높이 솟아 있고, 여시서부터 양양 44km, 속초 66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우리의 갈 길을 일러준다. 해발 고도 660m다. 스틱을 꺼내 들고 복장도 다시 여민 다음 10시10분에 구룡령을 향하여 56번국도 아스파트길을 출발한다.
구룡령 정상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간혹 한두 대 차량이 지나치기는 하지만 넓고 깊은 오대산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도로는 한산하고 조용하다. 눈길이 닿는 곳 어디에나 바야흐로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맑고 그 아래 펼쳐진 산야의 부드러운 능선에는 단풍진 나무들이 찬란한 햇빛을 받아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을 벌이고 있다. 산꼭대기 위에 나지막하게 그림 같이 걸려 있는 하얀 낮달이 계속 우리와 보조를 맞추며 길동무가 되어주니 어릴 적의 시골 고향 생각도 나고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햇볕이 강렬하니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포장된 아스팔트길을 걷는다는 것이 자칫 단조롭고 따분할 것도 같지만 산길의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새롭고 다른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에 따분하기는커녕 연신 감탄을 쏟아내기에 바쁘다. 산모퉁이 길가 주막에서 잠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다시 또 길을 나선다.
드디어 해발 1,031m 구룡령 정상 휴게소에 다다르니 시간은 11시20분이다. 약 두 시간 가까이 아스팔트길을 걸은 셈이다. 백두대간 구룡령을 알리는 커다란 바위 표지석이 높이 솟아 있다. 기념촬영을 하고 숨을 돌리며 백두대간길에 올라선 감회에 젖는다. 구룡령은 북으로는 설악산과 남으로는 오대산에 이어지는, 강원도의 영동(양양군)과 영서(홍천군)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구룡령이란 일만 골짜기와 일천 봉우리가 일백이십여리 구정양장 고갯길을 이룬 곳으로 마치 용이 서린 듯한 기상을 보이는 곳이란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곳 백두대간은 우리 한민족의 생명의 원천이며 삶의 바탕을 이루는 중심축이니 한 사람의 이름 없는 산꾼이지만 오늘 이 자리에 오른 것이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좀 더 오래 머무르고 싶지만 갈 길이 바쁘니 어쩌랴.
휴게소에서 도로를 건너 울창한 숲속에 숨어 있는 등산로 입구를 찾아 들어가니 가파른 계단길이 나온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능선에 올라서니 여기서부터 구룡령 옛길 정상까지는 비록 짧은 거리이기는 하지만 백두대간길이다. 진고개까지(22km) 12시간, 고개가 하도 높아 나는 새도 하룻밤 쉬어가야 한다는 조침령(21km)까지 10시간이 걸린다는 산길이정표가 이 길이 백두대간길임을 말없이 일러주고 있다. 길은 과연 백두대간답게 울창한 숲길이다. 지금은 나무들이 옷을 벗은 탓에 오른쪽으로 양양 가는 56번도로와 그 도로를 끼고 있는 오대산의 우람한 산줄기가 다 바라보이지만, 여름철에 숲이 우거지면 먼 곳은 전혀 조망할 수 없을 정도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도중에 낙엽 쌓인 양지바른 곳에 둘러앉아 이 회장이 배낭에 무겁게 지고 온 커피를 곁들여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비록 잠시라지만 우리는 지금 백두대간 위에서 오대산의 가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산꾼으로서 어찌 행복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드디어 구룡령 옛길 정상(1,089m)이다. 시간은 11시 40분. 마침내 고갯마루에 올라선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에서 백두대간길을 벗어나 옛길 정상에서부터 갈천리까지 2.8km가 ‘구룡령 옛길’이다. 이 길은 양양과 홍천을 연결하는 옛길로 산세가 험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보다 상대적으로 산세가 평탄하여 양양, 고성 지방 사람들이 한양을 갈 때 주로 이 길을 이용하였다고 하며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상품 교역로였다고 하니 이 길을 따라 등짐장수들은 홍천의 농산물과 양양의 해산물을 짊어지고 다녔으며 각 지방의 소문과 사연도 함께 전하였을 터. 그러므로 이 길은 옛 민초들의 지난한 삶이 담겨 있는 애환의 길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양양과 고성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갈 때도, 그 명칭에서 유래하듯 아홉 마리 용의 영험함을 빌어 과거 급제를 기원하며 넘나들던 길이라 하니 옛 사람들은 바로 이 길에 그들의 땀과 희망을 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은 문화재청이 명승 제 29호로 지정한 문화재길로도 유명하다. 이 길을 포함하여 문경새재길, 문경토끼비리길, 죽령옛길 등 네 곳이 우리나라 4대 명승길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잠시 땀을 들이고 옛길 걷기에 나선다.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제법 급한 내리막길이다. 1,089m 높은 고갯마루에서 갈천리 계곡까지 멀지 않은 거리에 비하여 고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당연히 경사도가 급할 수밖에 없다.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칠 만한 좁은 산길은 계속 굽이굽이 갈지자로 지그지그 구비를 돌아 내려간다. 울창한 숲속이라 떨어져 쌓인 낙엽들이 길 위에 마치 부드러운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그 위를 걷는 발걸음이 푹신푹신하고 포근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길에는 서너 곳의 ‘반쟁이’가 있다. 반쟁이란 한자어 반정(半程)에서 비롯된 이 지방 사투리로 아흔아홉 구비 먼 길의 반(半)이라는 뜻이다. 횟돌반쟁이를 지난다. 횟돌은 자연석으로 양양지역 장례 풍속에서 하관시 횟가루로 땅을 다질 때 갈아서 썼다. 이는 양양지방의 독특한 매장문화로서 이렇게 하면 나무뿌리 등이 목관을 파고들지 못한단다. 행인들이 쉬어가던 이곳에서 횟돌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횟돌반쟁이’라고 부른다. 길이 고불고불 구비를 돌아갈 때마다 걷는 방위가 달라지고 이따금씩 태양을 등지게 되면 걷는 방향 앞으로 길게 나의 그림자가 길 위에 또 하나의 나를 만든다. 아름다운 명승길을 나와 그림자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요즘이야 보통사람들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전국의 좋다는 길을 찾아 맘대로 걸을 수가 있지만, 옛날에는 생업을 위한 장사길이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한가로이 단순히 즐기기 위한 길을 나서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하며 명승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이 진정 축복받은 사람임이 틀림없다는 감사한 생각에 잠시 경건한 마음의 옷깃을 여민다.
조금 더 내려가니 묘반쟁이다. 묘반쟁이에 얽힌 전설은 이러하다. 조선시대 양양과 홍천의 수령이 각자 출발하여 도중에 서로 만나는 지점을 군의 경계로 하자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한 청년이 수령을 업고 빠르게 달려 지금의 홍천군 내면 명개리에서 서로 만나자 그곳을 군 경계로 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너무 지친 그 청년은 돌아오다가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는데, 그 공적을 기려 이곳에 묘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묘반쟁이의 유래다. 그때의 그 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옛길 위에 묘 한 기가 남아 있어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낮의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단풍의 색깔이 더없이 곱고 아름답다. 티 없이 맑고 파란 하늘이 배경을 이루니 울긋불긋한 오색 단풍이 더욱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로 다가온다. 깊고 깊은 산속, 절정에 달한 단풍이 자아내는 기막힌 아름다움에 가슴 밑바닥 저 깊은 곳으로부터 기쁨인지 슬픔인지 까닭을 알 수 없는 진한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자칫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이 나이에 무슨 센티멘탈이며, 무슨 주착이란 말인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친구들에게 행여 이런 마음을 들킬세라 얼른 감정을 추스른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니 이것이 나만의 감동은 아닌 것도 같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풍광에 너나없이 감탄을 표현하던 두 친구도 차츰 말문을 닫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름다운 명승길이 굽이를 돌 때마다 끝도 없이 새롭게 펼쳐지는 장관에 친구들도 이제는 침묵으로 응대하고 있다. 그렇다. 그들도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장관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해낼 수 있으며, 도대체 감탄의 말 한 마디로 이 장관에 어찌 가볍게 응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문득 우리가 자주 애용하던 우스개 ‘지부지처’(스스로 부어서 스스로 마시라)란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 이 명승길, 이 아름다운 장관은 자답자락(自踏自樂, 스스로 걸어보고 스스로 즐길 수밖에 없다)만이 유일한 정답이 아닐까 하며 즉석 사자성어를 지어 본다. 천호식품 사장은 자사의 산수유 제품 광고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여 공전의 대히트를 쳤다. “산수유, 참 좋은데, 남자한테 참 좋은데...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표현할 방법이 없네.” 만일 그가 이 명승길을 걸었더라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구룡령길, 참 좋은데, 길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참 좋은데... 직접 말로 할 수도 없고,,,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고.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질 때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지만 과연 사진에 담긴 화면이 지금의 이 감격과 느낌을 반의반이라도 제대로 나타내 줄 수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계속 선두를 지키고 있는 전 단장도 이미 침묵 속에 빠져 버린 지 오래다. 저만치서 혼자 묵묵히 발걸음만 옮기고 있다.
솔반쟁이가 나타난다. 양양의 금강송은 예로부터 우수한 목재로 알려져 있고 경복궁 복원에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울창한 삼림은 양양의 자랑거리이며 송이를 비롯하여 풍부한 산림자원의 보고이다. 과연 하늘 높이 솟은 몇 그루 소나무는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300~400년의 수령은 족히 되어 보이는 거수(巨樹)로서 신령스러운 기운마저 감돈다. 주변에도 그 특유의 붉은 기둥을 자랑하며 쭉쭉 하늘 높이 뻗어 올라간 금강송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더 아래로는 성인 두세 명이 팔을 잇대야 겨우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굵은 소나무들이 언제 벌채되었는지 밑둥치만 남아 파란 이끼에 덮여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그 아래로는 일제 강점기의 철강소와 케이블카 유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이곳이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등 다난했던 우리나라 근현대의 내력을 일러주는 역사의 현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다시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다. 점심때를 넘겼으니 배낭에 남아 있는 간식을 먹어야 할 필요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 아름다운 산길을 훌쩍 내려가 버리기가 싫은 것이 더 큰 이유다. 산길을 다 내려와 갈천리 계곡을 건너니 오늘의 종점 갈천리 산골체험학교 앞이다. 시간은 2시10분이다. 이로써 약 5시간반에 걸친 구룡령 옛길 걷기를 전부 마무리한다. 산촌체험학교를 배경으로 하산을 인증하는 기념사진을 찍고 장비를 정리한 다음 차편을 살펴보니 마침 운 좋게도 2시40분에 떠나는 양양행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다음 버스는 두 시간여를 더 기다려야 한다니 이렇게 고맙고 다행할 수가 없다. 어제부터 모든 일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보살핌이라도 있는 것처럼 계속 잘 풀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양양 버스터미널에서 서울행 급행버스표를 끊고 나니 약 두어 시간의 여유가 있다. 전 단장의 즉석 제안으로 가까운 낙산 해변으로 택시를 몰았다. 탁 트인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니 산길에서 쌓였던 피로가 거짓말처럼 씻은 듯 사라진다. ‘금강산횟집’에서 생선매운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모래사장도 거닐며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서 사진도 찍으며 이틀간의 즐거웠던 일정을 끝낸다. 뜻밖의 해변 산책. 이 역시 어제 길을 떠날 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의외의 행복이다. 참으로 멋진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로써 전 단장의 제9차 국토종단걷기는 우리 세 친구가 함께 걸은 우정의 길로 마무리하고, 이제 마지막 코스인 제10차 전남 해남 강진 영암길만 남겨놓게 되었다. 그 길은 가족과 함께 걸을 것이라 하였으니 전 단장의 “내 인생의 스패셜 프로젝트”는 틀림없이 멋진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이다. 60대 후반에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도전을 하고, 끈질긴 투혼으로 기어코 그 멀고도 힘든 국토종단을 이제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있는 자랑스러운 친구에게 축하와 격려의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두 남자친구를 위해 먹거리를 잔뜩 담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 고생한 이 회장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친구들과 함께 걸은 즐겁고 행복한 오대산의 이틀, 특히 오늘 걸은 명승길, 구룡령 옛길의 아름다운 추억은 오래 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2011. 10. 28.
지교림
첫댓글 친우들과 구룡령 옛길을 걷고 바닷가에서 생선매운탕으로 멋진 마무리를한 아름다운 추억을 축하합니다. 코스가 특이하여 한번가보고싶은 곳이군요~~
묘반쟁이... 전설이 대로라면 세상은 항상 이름없는 어떤 이에 의해 이루어지는것이 아닐까요 ..억지 부려봅니다. 전설이니까... 그런데 저라면 버스 바로 만나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피곤한다리 쭉 뻗고 산골농가 기웃거리며 농주와 산골두부 한모 얻어 먹을 궁리할 시간 쯤은 ㅎㅎㅎ 즐거운 고생 하셨습니다... 가는 가을 아름답게 눈에 잘 담아오셨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