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순례여행(14) - 1월 3일: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기도했습니다. "좋은 교회에서 예배드리게 해주세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모든 교회가 다 좋은 교회이다." 내가 말하는 좋은 교회는 좀 규모가 있는 교회를 말했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너도 작은 교회를 섬겨보았으면서 여전히 큰 교회를 타령하고 있구나." 주님의 지적은 진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과대화의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큰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 마치 큰 교인인 된 것처럼 으스대는 교인들을 종종 만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를 좀 안되었다는 투로 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경향은 대체적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큰 것을 지향하지 않으셨지요. 가장 귀한 것은 소자에게 물 한 컵 대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어린아이를 내 이름으로 영접하면 천국에서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지요.
첫 주 예배는 장향읍에서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일인데 너무 일찍 여행길을 떠나는 것이 못내 주님께 죄송했습니다. 왜냐하면 주일은 그렇게 장거리를 여행하는 것이 안식일의 노동을 제한하는 주님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늦장을 부리다가 결국 늦게 출발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바로 찜질방 앞에 있는 교회에서 운명적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절약해서 여행비용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 교회에서 거금(?)도 헌금을 했습니다.
홍덕교회, 필자가 속한 통합측 장로교회였습니다. 예배가 은혜로웠습니다. 찬송도 뜨거웠고 목사님의 말씀도 은혜가 넘쳤습니다. 신명기 30장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파랑새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사람이 행복의 파랑새을 찾아 여행을 떠났는데 결국 돌아와 보니까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집안에 있는 새인 멧새가 파랑새였다는 것입니다. 멧새가 파랑새인 것을 알고서 가까이 하려니까 그 새는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 파랑새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는 말씀이 감화가 되었습니다. 예배 후에 통성명을 하는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인연을 언급하다보니까 필자가 장신대 79기인데 이분은 장신대 90기였습니다. 그런데 연배는 필자하고 비슷했습니다. 개척한 지 십년이 되었답니다. 교회건축을 잘 했습니다. 사모님처럼 보이는 분이 예배 후에 식사를 하고 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새해 첫 주라 공동의회 후에 식사를 한다고 했어요. 적당하게 머물 장소가 없어서 나그네는 이 교회구성원도 아닌데 공동의회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요지는 건축비 탕감을 위해서 목사님의 목회활동비(1년에 120만원), 자녀교육비(약 오백만원 정도), 도서구입비 및 신문구독료 등을 모두 없애고 목회사례비(1년 1440만원/ 1개월에 120만원)만을 지급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님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 한 분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목사님의 생각은 의외로 분명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두 따님이 충남대와 전북대를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국립대라서 학비는 싼 편이지만 그래도 어떻게 저렇게 할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집사님의 주장은 학생은 공부할 때가 있는데 학생들의 희생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공동의회입니다.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잘 결정되었습니다. 비록 학비는 장로님도 있고 권사님도 여러 명이 있으니까 이 분들이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다짐은 더욱 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길손에게 주님은 좋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했네요.
예배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목사님과 찍고서 아쉬운 작별을 하면서 장항으로 향했습니다. 점심까지 먹고서 출발하다보니까 일정이 빠듯해서 장항읍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21번 국도를 타고서 금강하구둑을 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충청도를 떠나서 전라도로 갑니다. 금강하구둑 너무나 아름다운 곳입니다. 원래 하구둑은 말썽이 많은 공사였습니다. 환경단체에서 반대를 많이 했던 공사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큰 강에는 하구둑이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하구둑은 배들이 다니려면 다닐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바닷물의 유입을 일정부분 통제하고 민물을 가두어놓는 역할을 합니다. 이 물은 공업용수, 농업용수, 식수로 개발하고 강 연안을 개발합니다.
철새도래기념관이 있었지만 나그네의 시간이 빠듯해서 가지를 못했습니다. 감동이 옵니다.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갑니다. 우리나라 고질적인 지방색이 얼마나 우리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지방색이라는 것은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깊숙이 뿌리를 내려서 서로 간에 적대감을 드러낼 때가 많아요. 그렇지요. 이 적대감을 끊어야 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금강하구둑을 건너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민족적인 지역적인 적대감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갈 때에 멀리 돌아가지 않고 사마리아를 통과하셨지요.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감에 대해서 도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하는 결혼에 실패했던 한 사마리아여인(요한복음 4장)과 대화를 전개하시면서 이 여인을 예배의 자리로 메시아를 증거하는 자리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예수의 사랑으로 지방색을 멸절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교회 내에서도 지방색이 강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참으로 반성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구둑을 건너가면서 철새들이 노니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서 몇 번씩이나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조류 전문가가 아니어서 철새들의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한 무리는 청둥오리 같고요, 다른 무리는 흰 왜과리 같습니다. 군산시 경계에 들어서서 충청도를 바라보고 전북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금강물줄기를 바라봅니다. 그렇습니다. 길도 뚫려있고요, 강도 뚫려 있습니다. 막힌 길은 뚫어야합니다. 우리가 벽을 쌓아서 자꾸만 조각을 내서는 안 됩니다. 연결되어야 합니다. 막힌 것이 뚫려야 합니다. 그래서 소통이 참 중요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식유무, 지역차이 등 모든 것의 막힌 담을 뚫읍시다.
지금부터 약 35년 전 1975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이 때 처음으로 익산을 거쳐서 전주에 왔습니다. 내가 속한 겨자씨동지회의 여름수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수련회가 전주한일여자신학교(지금 한일장신대학교의 전신)에서 있었습니다. 그 때 함께 활동했던 친구가 현재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교수인 조희연박사입니다. 이 친구와는 군대 갔다 와서는 봉천동 달동네 삭월세방에서 함께 지냈으니 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지요. 희연이가 수양회를 하면서 비가 오니까 오지 않도록 기도하자고 해서 비가 그쳤는데 지금 이 친구는 한국사회의 진보진영계통에서 이론적인 체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학자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지요. 비가 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데 기도해서 되겠느냐고 했던 사람은 목사가 되었고 신학교 교수가 되어 신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하자고 했던 친구는 기독교신앙에서 많이 떠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의 변화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과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구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친구가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옵소서!"
여행 중에 처음으로 배낭여행객을 만났어요. 금강하구둑 한 가운데서 만났지요. 참으로 반가웠어요. 이번 여행길에 많은 배낭 여행객을 만날 것을 기대했는데 만나지 못했어요. 겨울철에 배낭여행이라니 약간 엉뚱한 사람들의 할 짓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같은 여행길을 떠난 또 다른 길손의 기념사진을 한 장 찍어두었습니다. 이 형제에게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했습니다.
금강하구둑을 건너 군산에 들어서서 하구둑 아래쪽으로 군산중심가를 향했습니다. 바닷가를 끼고 걷는 이 행복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근처에 이 지역 출신의 소설가 채만식의 기념관이 있어서 잠시 들렸습니다. 주변에는 낚시질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열심히 길을 걸으면서 혹은 뛰면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걷기와 뛰기의 맛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한창 군산화력발전소의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군산해서 목회하는 필자의 신일고등학교 선배님인 이재영목사님을 반갑게 만났습니다. 이 분의 섬기는 교회가 주원교회입니다. 주님의 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오늘 군산에서 하룻밤이 저물어갑니다. 저녁식사가 너무 많이 있었어요. 하루 종일 걸었으니까 음식이 맛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 동안 목회여정을 이야기하면서 서로가 신일고등학교 동문목사가 되어서 군산에서 만났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만남인가요. 그래서 우리 인생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만남,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 만남은 잘 간직하는 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배우자의 만남도 귀합니다. 자녀들과의 만남도 귀하고요. 부모님과의 만남은 얼마나 귀한지요. 친구와의 만남도 참으로 소중합니다. 이 나그네가 길가다가 만난 모든 사람들도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귀한 만남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만나주셨기에 우리가 죄악에서 벗어나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어요. 앞으로 나의 모든 만남을 축복해주세요. 내가 만나는 그 사람들에게 당신의 축복이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만남을 통해서 당신의 축복을 열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