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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독서클럽 가치책볼래 원문보기 글쓴이: 천상의피조물
■혁명의 시대 내용정리
제1부 결과
제14장 예술
제15장 과학
Ⅰ. 들어가는 말
혁명의 시대의 겉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1789-1848년의 시기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사실을 유일하게 들려다 볼 수 있는 방법은 그 시대의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남겨진 유산들을 통해서 일 것이다. 그 유산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이 바로 예술이요 과학적인 부산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홉스봄이 바라본 이중혁명의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예술과 과학이 번창한 시대였다고 보았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면서 태풍처럼 밀려들어오는 격동과 혼란의 시대가 그러한 창작의 열정을 수면위로 이끌어 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스혁명은 예술에 영감을 불어넣었고 산업혁명은 과학적인 원리가 실생활의 변화를 촉구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이중혁명이라는 독특한 구조는 다양한 민중의 목소리와 그것의 기반으로 다양한 민족운동에 영감을 주었다.
사회전체가 변화에 휩싸여 있었던 이유로 인하여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의 실체가 불분명했던 시대에 예술과 과학은 극좌일 수도 극우일 수도 있는 극단적인 모순 속에서 때로는 민중의 의식을 대변하기도 했고 때론 민중을 처절한 삶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감이라는 삐뚤어진 탐닉을 부추기는 욕망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민중들의 예술이 세련되거나 과거의 전승으로부터 앞서가지는 못했지만 후대의 사람들에게 대중문화예술의 장을 열어주는 초석이 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산업혁명은 과학에 대한 수요를 점차적으로 높여주게 되었고 새로운 과학이 출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예술이 특정한 나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사회적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고 빠르게 전파되어 21세기의 정보의 혁명이 공유되고 촉진될 수 있게 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이중혁명의 시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예술인들을 대거 양성하고 배출해 주었던 시대였었고 폭발적인 대중예술세계의 태동과 과학혁명의 시대를 예측해주었다.
본장에서는 우선 ‘혁명의 시대’의 폭발적인 예술적 인재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사회적인 배경과 혁명시대의 대표적인 키워드인 낭만주의와 중세주의 긴장관계와 그 중세주의와 낭만주의가 혁명의 시대에 끼진 영향력에 대하여 요약하고, 민중예술로서 혁명의 시대의 전조를 알리는 혼란과 격동 그리고 새로운 질서 속에서의 피어난 희망의 꽃과 망상의 이중적인 구조에 대하여, 그리고 혁명시대의 영웅주의, 일반 민중들의 문화로서의 예술들의 주제로 최대한 짧게 내용을 요약하고, 제15장 과학에서는 다섯까지 주제를 가지고 대략적인 내용을 요약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이중혁명은 과학의 혁명이다. 두 번째는 이중혁명의 대단한 성과들, 세 번째는 사회과학분야의 등장으로 인한 언어학의 발달과정에 대하여서, 네 번째는 자연과학분야 역사서적과 함께 성장하다. 다섯 번째는, 그 밖의 과학과 기타사항에 대하여 요약을 하고, 결론에서 이 책을 읽고 느낀 점과 마음에 와 닿았던 한 줄의 밑줄, 그리고 한 줄의 서평에 대하여 각각 적고 마칠 예정이다.
Ⅱ. 문제제기/ “에릭 홉스봅”의 혁명의 시대는 그의 삶을 투영하는 자서전이었나?
에릭 홉스봅의 혁명의 시대는 마치 에릭 홉스봅의 삶을 반영이라도 하듯 아주 묘하게 닮아있다. 그의 출생과 삶과 철학과 사상적인 정립과 서술방식에서도 독창적이다 못해 혼란스럽고 이중적인 구조와 묘한 상관관계를 어김없이 표출하고 있다.
Ⅲ. 내용전개
제14장 예술
1. 혁명의 시대의 폭발적인 예술적 인재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
예술에서 새로움을 갈망했던 시민과 부르주아계층에서 폭발적인 예술적 인재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서 현상은 첫째는, 예술적 업적이 여러 국민들 사이에 놀랍도록 널리 분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명백한 현상은 특정한 예술과 장르가 유달리 발달했다는 점이다. 음악이라든가 문학의 세계는 오늘 날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친 모차르트와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쇼팽, 등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고, 오페라라는 장르는 그 어느 장르보다도 널리, 그리고 성공적으로 성황을 누렸다. 무엇보다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실상 하층계급이나 노동계급에서 주로 업무를 맡아왔던 엔지니어들이 건축과 기술부분에서 업적을 이룬 성과이다.
폭발적인 예술적 인재들을 대거 배출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중혁명의 충격이 그 시대상황에 많은 영향력을 주었던 것이 확실하다. 프랑스 혁명은 한 실례로서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불어넣었고 산업혁명은 기존의 방식을 전환하는데 자극적인 창조적 변혁의 양식을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음악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계몽주의에 입각한 집단인 프리메이슨 그룹을 위한 선전용 오페라(1790년의 마적)를 만들었고,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의 계승자로서의 나폴레옹에게 교향곡 “황제”를 바쳤으며 디킨스는 그 시대가 안고 있는 사회적 병페를 공격하기 위해 소설을 썼고, 도스토에프스키는 혁명 활동을 한 탓에 1849년 사형선고를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러 예술 가운데서도 겉보기에는 가장 비정치적인 음악마저도 정치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면 그 시대에 일어난 이중적인 혁명이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창작의 열정을 쏟아부어주었는지를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사회적 사건과 예술을 연결시키는 유대관계는 민족의식이나 민족해방운동 또는 통일운동이 발전되어가고 있는 나라에서 특히나 많은 기여를 한다. 오늘날 사회주의 국가들의 예술을 비단 예로 들지 않더라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궁정예술이기보다는 오히려 민중의 예술로서 전례 없는 성황을 누렸다. 그러나 그것은 성장해가는 중류계급 사이에서 가장 널리 보급되었으며 빈민층이나 무식층에 까지는 확산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2. 혁명시대의 대표적인 키워드 “낭만주의”
자유로운 공상의 세계를 동경하며 정서적으로 감성과 개성을 중요시 했던 예술적인 사조 낭만주의는 혁명의 시대가 낳은 사회적 분열의 극단을 잘 반영하고 있다. 낭만주의는 온갖 종류의 원천 즉 중세, 원시 혹은 이국 취향, 그리고 프랑스 혁명 등을 근거로 발전해갔다. 낭만주의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하여서는 그들 자신조차도 정체성이 묘한 가운데 합리성을 배려하려고 노력했지만 전적으로 결함을 낳았고 그 시대의 사회의 도덕적 상태나 세대들의 요구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낭만주의 예술의 본질은 예술적 대상이 자유롭고 구체적이라는 것과 그 본질 자체가 정신적인 이념을 더 중점적으로 두고 외면적인 눈보다도 오히려 내면의 눈에 현시되는 것을 그 존재가치로 여겼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대의 낭만주의는 그 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하지 못했고 양극을 달리는 이중적인 구조를 띄게 되었다.
1830-1848년에 걸친 혁명의 시대는 아마도 유럽에서 낭만주의가 가장 성황을 이룬 시대였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낭만주의는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의 몇몇 창조적 예술을 지배했으면 좁은 의미에서 낭만주의는 자기의식적이고 전투적인 한 예술의 경향을 보여주었다. 가장 두드려지는 경향은 19세기 중류계급사회의 표준적 태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는 반부르주아 운동적인 측면에도 영향을 주었다.
낭만주의 시대의 가장 특징적인 결과물로서는 전통과 이성, 도덕 혹은 그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에 다소 반항적인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그 시대가 안고 있는 사회에서는 그들은 대체로 이해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가난했고, 또한 그들의 대부분은 혁명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괄목한 사실 한 가지는 이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젊은 여성들의 활동이 처음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3. 혁명시대의 대표적인 키워드 “중세주의”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가장 효과적이고도 강력한 비판은 낭만주의가 아니라 고전주의를 표방하는 중세주의 일 것이다. 유독 그 시대의 사회주의자들에게서는 낭만주의적인 요소는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리어 전적으로 18세기의 합리주의의 그것과 학문 중에서도 가장 부르주아적인 학문인 경제학의 출현일 것이다.
적어도 독일적인, 즉 제1차적으로 낭만주의적인 전통 속에서 훈련된 젊은 마르크스가 프랑스의 사회주의적 비판과 영국 경제학을 전적으로 비낭만주의적인 이론을 결합함으로써 비로소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혁명의 시대의 대표적인 키워드인 낭만주의는 철저한 현실과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것을 해결 해 줄 수 있는 새로운 키워드는 중세주의 그것이다. 독일은 그 시대에서 중세적인 꿈을 거의 독점적으로 소유한 나라였다. 중세숭상주의는 다른 무엇보다도 독일 낭만주의가 극복하지 못했던 현실에 대하여 주된 구성요소가 되어주었다, 더 나아가 고딕양식의 부활과 같이 보다 더 일반적인 형태로 나타난 중세숭상주의란 어디서나 보수주의 특히 종교적 반부르주아를 나타내는 휘장이었다.
특히 프랑스에서 중세주의가 강조한 것은 봉건적인 위계질서나 카톨릭적 질서가 아니라, 영원한 민족, 고통 받으며 몸부림치고 용솟음치는 창조적인 민족, 즉 언제나 스스로의 주체성과 사명을 거듭거듭 주장하는 프랑스 국민에게 관심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4. 혼란과 격동, 그리고 새로운 질서 속에서 피어난 혁명의 이중구조
혼란과 격동의 시대에서 피어난 혁명의 꽃은 민족예술로써의 혁명의 시대를 알리는 점에서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민중이란, 다시 말하면 백성이란 혁명적 개념의 가장 주된 이슈가 될 수 있다. 특히 그들의 국민적 주체성을 발견하려고 하거나 재 주장하려는 억압된 여러 민족들, 그 중에서도 특히 토착적인 중류계급 또는 귀족계급이 없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민족예술의 발달 과정에서 놓칠 수없는 큰 장르 중에 하나는 구전문학이나 민요, 설화, 동화를 재해석하는 작업일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저자는 민요집을 간행한다는 것은 크나큰 정치적 중요성을 가진 사건이며 그것은 곧 하나의 첫 독립선언문과 같은 것이라고 까지 말한다.
유럽의 거의 모든 예술인들과 지식인들은 1789년을 환호로 맞이했다.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들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눈에 보이는 세월을 뛰어넘어 타오르는 혁명의 위대한 해방의 불꽃과 동시에 혁명의 과격성과 부패의 잿더미는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부정적인 부분보다 희망적인 부분에 더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시대에는 주로 문학과 저널리즘이 하나로 용합되었는데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으로써는 이 시대에 형성되어 일세를 풍미했던 특유의 미학이론들이 예술과 사회적 참여를 독려했고 공동체의식을 고취시켰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생시몽주의자들과 40대의 재기 넘치는 혁명적 러시아 지식인들은 한층 더 발전시켜서 후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이름 아래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한 표준이 되도록 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대개의 경우 보수주의자나 딜레탕트들에 의하여 공식화 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이 부르짖었던 인류를 위한, 국민을 위한, 또는 포롤레타리아를 위한 예술 따위와 힘을 겨룰 만한 상황은 되지 못했지만 예술이 전과 다름없이 사회에 참여하거나 사회현상에 열중하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
5. 혁명시대의 대표적인 키워드 “영웅주의“
귀족적인 생활과 예술의 기본적 스타일은 비록 새로이 귀족 신분을 취득한 신흥부자들의 침입으로 상당히 통속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19세기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결국 영국이 승리하여 패권을 잡았기 때문에 영국 귀족이 국제적인 귀족문화의 전형이 되면서 극단적인 영웅주의는 낭만주의자들의 자유롭고 속박을 거부하며 다소 공상적인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점과 맞물려 영웅주의적인 동경에 빠지게 했다. 어쩌면 오늘날의 시대에도 영웅의 탄생을 기대하며 그들을 통해서 대리만족이라는 환상 속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보통 부르주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퓨리터니즘, 복음, 카톨릭의 경건주의가 영국과 미국의 위그노의 프랑스에서 절제, 검약, 쾌적한 스파르타 정신, 비길 데 없는 자기만족을 북돋워주었다. 사실상 중류계급의 생활은 ‘비낭만주의적’이었으며 그들의 생활 유형을 지배하는 것은 아직도 거의 18세기풍의 고전주의에 입각한 중세중의자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낭만주의와 영웅주의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망각의 환상이 되어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꾸기도 하고, 때론 절망적이고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원천이 되어주기도 한다.
6. 일반 민중들의 문화로서의 예술들
민중예술이야말로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중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부터 민중예술은 빈민들과 소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형식으로 식자층의 영향권 밖에서 활발하게 존속되어왔다. 1798년 당시의 관습으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민요집이 발간된다거나 하는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왔던 민중예술이 이중혁명의 시대를 접어들면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것은 사실이다. 서양의 음악의 장르이기도 한 발라드는 중세 유럽의 정형시의 하나.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을 지닌 짧은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데. 대중음악에서, 감상적 곡조에 사랑을 주제로 한 서정적인 노래가 민요로써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왔다. 이중혁명의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특별히 이주자의 향수는 이주한 도시에서 옛 의복이나 노래를 그대로 지키게 했고, 그것을 한층 더 매력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계기기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토지를 빼앗기고 쫓겨난 고통을 잠시나마 달래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중혁명의 폭풍과 사회적인 변동은 전통적인 옛 생활방식을 크게 바꿔 놓으면서 대도시에서 전에는 없었던 정말로 새로운 형태의 도시적 오락으로써 선술집 또는 드링크 하우스의 부산물들이 생성된 것이다. 이러한 술집들은 점점 더 현세적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큰 원천이 되어주었고. 뮤직홀, 댄스홀도 선술집이 번성을 누리면서 생겨난 것이었다. 민중예술의 다양한 형태는 이전사회부터 존속되어 온 것이지만, 민중들의 교외극장, 이탈리아, 여러 도시들의 사투리를 사용하는 방언극장, 궁중 오페라와 구별되는 민중 오페라, 예술희극, 떠돌아다니는 흉내 쇼, 권투 또는 경마대회, 민주화된 에스파냐 투우사의 등장은 18세기에 와서 새롭게 생겨난 것들이다.
이러한 민중예술은 점차적으로 발전해서 지식인들에게 자극을 주었고 시민의 권리와 의결권이 촉진되어서 선거법이 개정되는 등 시민혁명의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훗날에 대서양을 넘어서 민중용 인쇄로 상용화되면서 시민들의 의한 민주주의 방식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제15장 과학
1. 이중혁명은 과학의 혁명이다.
과학적인 혁명도 이중혁명을 그 나름대로 부추기고 반영하는데 역사적인 배경이 되어주었다. 그 까닭은 부분적이지만 이중혁명이 과학에 대하여 그 시대가 안고 있는 특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과학으로 하여금 새로운 문제에 직면케 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이중혁명의 존재 그 자체가 사상의 새로운 양식을 제시해주었다는 의미에서 이중혁명과 과학혁명은 서로가 서로에게 긴밀한 상관관계를 가지며 이중혁명이 과학의 혁명이요, 과학의 혁명이 바로 이중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학의 발달과 진보는 단순히 직선적인 전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단계마다 종전부터 잠재적 또는 현재적으로 존재했던 문제들의 해결에 의하여 그 전 단계와 구별되며, 그리고 그 새로운 단계가 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진보를 이루었다.
이중혁명이 왜 과학적 혁명이 되는 것이냐 하면 프랑스혁명은 과학자들을 끌어내어 그들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기 시작하면서 촉발되었다고 말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기하학자이며 엔지니어인 카프로를 자코뱅의 전쟁부서 책임자 자리에 앉혔고,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군수생산의 책임 있는 자리를 맡겼던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근대의 역사상 혹은 그 고금의 역사상 정식 과학자가 정부에 일에 혁명에 일에 참가한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어쩌면 과학 쪽보다는 정부쪽을 위해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근대에 앞서나갈 수 있는 혁명의 성과를 가져다 준 것이 과학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과학교육과 기술교육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학교교육이 최초로 설립되게 이른다. 1794년에 고등사범학교가 그랬고, 또 숨이 다 끊어져가던 왕립 아카데미를 부활시켰고 국립박물관 안에 자연과학 이외의 분야에 대한 순수한 연구센터를 처음으로 창설했다. 또한 괄목할 만한 성과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프랑스가 과학 분야에서 세계에 우뚝 설 수 있었던 주요 토대가 되어주었다는 점이다. 그 영향력으로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프랑스 종합기술학교를 본뜬 학교를 세우기 시작했고, 프랑스 혁명의 충격은 프로이센(독일)이 새로운 형태의 베를린 대학을 창설하게끔 했다 프로이센 부흥의 일부로서 창설된 베를린대학은 그후 독일의 모든 대학에 모범이 되었으며 이윽고 이들 독일의 대학은 전 세계에 걸쳐 고등교육기관의 전형이 되었다. 그러므로 혁명의 시대는 과학자나 학자들의 수효를 크게 등대시켰고, 과학의 소산도 크게 불어났다. 과학의 세계가 지리적 확대를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역과 탐험의 진행과정 자체가 과학연구를 위해 세계의 새로운 영역들에 대한 문호를 열어주었고, 과학에 관한 사상에 자극을 주었다는 점이다.
2. 이중혁명의 대단한 성과들
18세기부터 과학의 성과라고 하는 것은 고작 뉴턴이 세운 테두리 안에서 머물러 있었다. 이중혁명과 같이 맞물리면서 새롭게 개척된 분야는 전기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자기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물리학은 역학적인 인력과 척력의 관점이 아니라 장의 관점에 머물었는데 새로운 이론적 종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열역학의 법칙, 즉 열과 에너지 사이의 관계를 발견한 일이다. 천문학과 물리학은 근대적 과학으로 전환시킨 혁명으로써는 이미 17세기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화학을 혁명은 이중혁명이 가속화되기 직전에 한창 진행 중이었다. 화학은 어느 과학 분야보다도 산업상의 실용적 요구, 특히 섬유산업의 표백법 및 염색법과 밀접하게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다. 다른 나라들의 화학발전에 자극을 주고 특히 화학 연구기관을 설립하도록 자극을 준 것은 프랑스였다. 화학의 발달과 그 혁명은 일종의 혁명적인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현상을 무기적인 과학으로 분석,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중혁명의 시대의 이루어진 대단한 성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수학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수학은 18세시 전후로부터 벌써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고 있었고 산수와 평면기하학을 지배했던 그리스인의 세계나. 해석학을 지배했던 17세기적 세계를 뛰어 넘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3. 사회과학분야와 언어학의 발달과정
사회과학분야 만큼 일반대중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일찍이 없었다. 그 까닭은 그것이 그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사회과학분야는 변천하는 과정 속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종합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탄생시켰고, 나아가 정치경제학이라는 체계적인 연역적 이론을 확립한 일이다. 또한 낭만주의와 밀접하게 하게 결합하여 역사적 진화를 거듭하였다. 사회과학분야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으로 수학, 정치경제, 자연과학에 까지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종합적인 체계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고 역사적 서술방법을 만나면서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역사적 서술방법은 법률과 신학에 영향을 주면서 세계적인 석학들은 언어학분야의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의 언어학의 발달을 등장시키게 되었다.
4. 자연과학분야 역사학적 문제와 함께 성장하다.
자연과학분야란 역사를 빼고서는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구의 연구자체만 보더라도 광업을 통하여 오랜 역사 속에서 생성되고 단단해지며 소멸되고 소생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의 생태계와 지질학의 표본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토지와 물의 분포라든가, 산맥,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지층 따위를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전해내려는 역사적인 사실을 무시하고서는 연구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단정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생물과 지질학과의 역사적 문제는 지구의 진화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하는 문제와 결부되어있었고 알이나 종자 또는 포자로부터 개개의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나느냐 하는 것을 설명하는 일, 그리고 종의 진화를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것들에 대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증거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
영국의 간척기사 윌리엄 스미스는 지층의 역사적 추이는 그 특유의 화석으로 연대를 측정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는 것을 1790년대에 발견했다. 그리하여 지질학과 생물학은 산업혁명의 지구 바닥에까지 미치는 활동을 통하여 그 빛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과 연구결과가 각종 서적을 통하여 후대에 전수되었고, 프랑스 혁명의 10년 동안에 다양한 이론 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의 진화와 지질적인 배경에 관한 연구가 좋은 발판이 되어줄 수 있었다.
5. 그 밖의 과학과 기타사항
이중혁명이 일어난 시대에 집중적으로 다양한 과학과 예술 그 밖의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다 줄 수 있었던 배경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제도와 획기적인 과학적인 발달은 기존의 농업중심의 사회를 공업중심으로 사회로 변화시켰고, 증기기관의 발달로 인하여 원거리 무역이 근거리무역으로 탈바꿈될 수 있었고, 광업, 요업, 야금업, 섬유공업, 가스등과 화학제품을 만드는 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학적인발전이 대담한 지식의 발달에 열성을 끼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시대적인 상황은 투쟁적이고 과학을 지지하며 반교권주의적이었던 좌파와 반과학적이었던 우파 사이의 투쟁은 그 후로도 줄곤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았던 사고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와 같은 대동란과 변화에 정신적으로 자극받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급격한 사회적 변화의 심원한 혁명들,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제도들이 급진적이고 합리적인 새로운 기축에 의해 조직적으로 교체되었고 그러한 배경에서 파생되고 중첩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이중적인 구조는 근대 사회주의와 같은 이론을 만나면서 물리학, 화학, 천문학 같은 과학으로 심화되고 영국, 프랑스의 부르주아 자유주의와 더불어 성취한 거대한 업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며, 명백이 이중혁명은 인간생활의 모든 측면을 변화시켰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Ⅳ. 한줄서평/ “ 인간이 달에까지 가는 세상에 어째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中에서 -
Ⅴ. 나오는 말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홉스봄는 혁명의 시대를 집필하는 내내 역사적인 중요사건들을 연대순으로 쫓는 그런 상투적인 것이 아니었다.” 고 말한다. 그러나 상투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에 대한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주제의 개연성까지 파괴했다는 점을 두고 상투적이지 않았다고 표현한다면 그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드려야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쉬운 말을 복잡하게 나열하고 앞에 있어야 하는 사실로 뒤로 보내고 뒤의 사실을 앞으로 보내고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사실적인 것을 추상적으로 복잡하게 나열한 것을 상투적이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가 재미없지는 않았다. 단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은 그림이나 추상적인 디지털아트의 세계가 아니라 역사책이다. 피카소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처럼 기하학적 구성의 몸을 가지고 있고 대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조각을 나눈 뒤 한 화면에 종합하여 배열하는 기법하며. 공간적 배경은 푸른색과 흰색의 기하학적 윤곽만을 표현하여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가 하면. 신체의 조각들을 섞어 조합한 새로운 형태의 몸, 그리고 왼쪽 눈은 정면을 보지만 오른쪽 눈은 4분의 3 각도로 옆을 쳐다본다거나 하는 추상적인 기법은 예술이나 과학적인 분석학에서 만 가능한 일은 아닌가. 독자들을 배려하고 명쾌하게 전개했더라면 조금은 홉스봅이 존경스러워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거의 책은 이중적인 혁명만큼이나. 저자의 생각과 견해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예술라는 단락과 과학이라는 단락을 정했으면 그 단락의 주제에 충실해야 되고 그 주제에 개연성이 있어야 된다. 그런데 그런 것의 기본적인 규칙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하나의 주제를 정했고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사실...그 주제가 가지는 양극화 현상과 장단점, 모순, 억지스러운 주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주제를 선택하고 채택했을 때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주장하고 펼치고 싶은 내용을 위하여 때론 반대적인 개념은 한쪽으로 밀어놓고 긍정적인 면 위주로 전개해 나가며, 나중에 역설적인 상황의 모순에 부딪칠 때는 또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전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유로운 문체와 절제의 차이점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의 책은 산문체와 논문체를 뒤범벅이 되어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일기장과 같은 글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첫댓글 덕분에 어려운 책 한권 잘 읽고갑니다.
식물들하고 함께 읽으셨나 봐요^0^
ㅋㅋ
@개뻥이 너무 어려워서 던져버리고 싶은 책이였지만...식물과 같이 읽으니...그나마...다행이였지요...어찌 아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