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林)씨는 크게 나주 임씨와 평택 임씨로 나눌 수 있다. 나주, 회진 임씨를 제외한 대부분의 임씨는 평택 임씨에서 분관되었다. 임(林)이라는 발음은 두음법칙이 적용된 발음으로, 원래 발음은 림(林)이기 때문에 영문 표기는 "Lim"으로 표기한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237,145가구 762,767명으로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0위이다.
나주 임씨(羅州 林氏)는 전라남도나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의 대장군 임비(林庇)이다. 임비는 1281년(충렬왕 7년) 왕과 함께 원나라에 다녀온 공으로 시종보좌공신 2등에 책록되고 대장군, 충청도 도지휘사 판재사사에 이르렀다. 임비의 9세손 임탁이 해남 현무를 지내다가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회진으로 돌아가 살면서 본관을 회진으로 하였으나, 회진현이 나주에 속해짐에 따라 본관을 나주로 바꾸었다. 한국의 임씨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27명이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총 73,556가구 236,877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택 임씨(平澤 林氏)는 경기도평택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 임팔급(林八及)은 당나라 사람으로 840~900년경에 신라에 와서 이부상서를 역임하고 팽성(현재의 경기도평택시)에 살았다고 주장하나 고증할 수 없다. 선계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고려 말에 세자전객령을 지낸 임세춘(林世春)을 중시조(1세)로 하고 있다. 나주임씨, 회진임씨를 제외한 대부분의 임씨는 평택 임씨에서 분관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20명이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총 65,015가구 210,089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진 임씨(恩津 林氏)는 충청남도논산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임자미(林自美)로서 고려 숙종 대의 인물이다. 본래 평택 임씨였으나 시진군(市津君)(현재의 충청남도논산시)에 봉해져 이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기세조는 고려시대 조청랑(朝請郞), 태상박사(太常博士)를 지낸 임성근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장흥(長興)·곡성(谷城)·과천(果川)·아선(牙善)·회덕(懷德)·진주(晉州)·함풍(咸豊)등이 전해지며 그 가운데 풍천 임씨와 장흥 임씨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53,637가구에 172,726명으로 한국 성씨 인구 순위 44위이다. 림(林)씨와 달리 본래 발음이 임(任)이기 때문에 영문 표기는 "Im"으로 한다.
장흥 임씨(長興 任氏)씨는 전라남도장흥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 임호(任灝)는 중국 소흥부 출신으로 중국에서 이부상서를 지내고 국난이 일어나자 망명하여 정안(장흥) 천관산 아래에서 살았다. 그의 아들 임의(任懿)는 숙종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임의의 아들 임원후(任元厚)는 고려 인종의 왕비인 공예왕후의 아버지로 고려 의종 때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정안(장흥) 부원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장흥으로 하였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8명이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7,652가구 총 24,523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풍천 임씨(豊川 任氏)는 황해도송화군풍천면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임온(任溫)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임도(任徒)‧임천유(任天裕)의 비석과 지석에는 임주의 세계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고 경주 불국사에 소장된 『경상도선생안(慶尙道先生案)』에도 그 선조가 중국에서 왔다는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화사상의 영향으로 후대에 중국인을 사칭한 것으로 보인다. 6세손 임주(任澍)는 고려충렬왕 때 경상도안찰사(慶尙道按察使), 조봉대부(朝奉大夫), 감문위대장군(監門衛大將軍)을 지내며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풍천 임씨는 임주의 아들대에서 충숙왕 때 삼사판사 임자송(子松)과 민부전서 임자순(子順)의 두 갈래로 크게 나뉜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155명으로 인구 대비 최고의 과거 급제율을 보였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30,974가구 총 99,986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