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파게와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예루살렘에 대해 ‘모든 거룩한 장소들의 요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지순례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임에 틀림없습니다. 예루살렘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성(省)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그곳의 산과 계곡으로 나누어진 지형을 이해하고 전체를 그려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세 개의 산이 있습니다. 시온산, 올리브 산, 모리악 산입니다. 계곡으로는 키드론 계곡, 게헨나 계곡이라고도 불리는 힌놈 계곡, 티로포에온 계곡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산은 시온산이고 중요한 계곡은 키드론 계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인 들에게 시온산은 예루살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원래 다윗의 도성을 가리키는 명칭인 시온은 지금의 모리악 산까지 포함하는 명칭이었지만 언젠가부터 성벽 안에 있는 지역과 따로 지금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최후의 만찬 기념 성당, 그리고 마리아 영면 기념 성당이 있는 성벽 동쪽 맞은편을 시온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온산은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유대교,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중요한 성지로 “거룩한 시온”(하기아 시온)이라고 불렸습니다.
모리악 산은 유대인들에게는 대성전이 있었던 곳이고, 지금은 회교도의 성전이 있는 곳으로 그들에게는 메카와 메디아에 이어 세 번째로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올리브 산과 키드론, 힌놈 계곡 등에 대해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맞아 예루살렘에 대한 아주 개략적인 윤곽과 더불어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식’ 복음에도 나오고, 오늘 그곳에서 실제 행렬이 시작되는 벳파게 성당과 오늘 복음의 중요한 부분인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에 대해서만 나누고자 합니다.
벳파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저희는 비가 쏟아지는 중에 벳파게 성당을 순례 하였습니다. 원래 먼저 주님의 기도문 성당에 갔다가 점심 시간 후 아직 문이 열려 있지 않아 벳파게를 들렸습니다. 벳파게 기념 성당은 ‘주님의 기도 성당’과 ‘주님 승천 경당’이 있는 엩투르에서 베다니아 쪽으로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위치에 있지만 비가 오기 때문에 버스로 갔습니다.
복음사가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벳파게에서 새끼 나귀를 타시고 군중들의 환호성을 받으시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마르 11,1-11; 마태 21,1-11; 루가 19,28-40; 요한 12,12-19)
벳파게는 올리브 산에서 동쪽 베다니아로 내려가는 길에 위치하며 ‘벳’은 집, ‘파게’는 무화과나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잎은 무성하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는데, 바로 이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르11, 12-14)
1876년에 예수님의 메시아적 예루살렘 입성과 나자로의 부활이 그려진 십자군 시대의 사각형 돌기둥이 발견되었습니다. 고고학 발굴 작업 결과 이곳에는 이미 4세기경에 기념 성전이 있었던 곳으로 밝혀졌고, 1172년도의 순례기에 의하면 벳파게 기념 성전 안에 예수님께서 새끼나귀를 타실 때 발을 딛었던 돌을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이 돌기둥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에서는 이 땅을 구입하여 1883년도에 기념 성전을 지었고, 1954년도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보수하였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해마다 성지 주일에 예루살렘 성곽 안에 있는 성 안나 성당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행렬이 시작됩니다. 이 성지 행렬은 십자군 시대 말에 중단되었다가 16-17세기에 프란치스칸들에 의해서 재개되었고, 1933년부터는 예루살렘 총대주교의 집전으로 성대하게 거행되고 있습니다.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베드로의 회개 기념성당은 시온산에서 남동쪽 키드론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붙잡힌 후에 끌려가 하룻밤을 보내시고 가야파 대사제에 집에 끌려와서 첫 번째 신문을 받은 곳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듣는 것처럼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 베드로가 통곡한 곳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계통 성모승천 수도회에서 이곳을 발굴하여 맷돌, 토굴, 앞마당, 비잔틴 시대 교회 흔적 등 여러 유물이 발견되어 이곳이 가야파의 집이었다고 확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희 순례 일행이 시온산에서 가장 먼저 순례한 곳이 바로 베드로 회개 기념성당(Church of St. Peter in Gallicantu)이었습니다. 우선 성당 꼭대기에 있는 베드로의 회개를 상징하는 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설명하지 않아도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인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닭울음 성당이라고도 부르는 베드로 회개 기념성당은 예수님을 심문했던 대사제인 카야파의 집터로 확인된 곳에 베드로의 배반과 회개를 기념하여 지은 성당입니다.
가이드는 먼저 전체적인 예루살렘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공인 된 후 그리스도교 기념성전이 있었던 비잔틴 시대의 예루살렘 모형도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여 전체적인 예루살렘에 대한 설명을 다시 했습니다. 지금은 회교도들의 성전이 된 실로암 연못 위에 있었던 성당, 골고타와 예수님 무덤 위에 지었던 예수님무덤성당(부활성당),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에 예루살렘 성지에 세운 기념 성당 터 등을 볼 수 있었고,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중요 건물들과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움직이신 거리와 장소에 대해서 다시 전체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가니까 인상적인 이콘이 두 개 서 있었습니다. 성당 안 중앙 제대 벽에는 모자이크로 최고 의회에서 예수님이 심문 받으시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성당에서 잠시 복음 듣고 묵상하고 지하 감옥으로 내려갔습니다. 감옥으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고난 받는 야훼의 종, 예수님의 조각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손을 묶인 채 고통스런 표정을 한 예수님의 시선은 위로 향하고 고통의 극치를 하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대와 신자 석 사이에 둥근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이곳으로 예수님을 밧줄에 묶어 지하 물 저장소였던 구덩이로 내려 보냈다고 합니다. 성당 앞에 있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저희 일행 앞에서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지하에서 모여 있는 것이 구멍으로 보였습니다. 지하로 조금 내려가자 예수님 시대의 주거지역인 동굴과 물 저장 시설, 감옥 등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카야파에게 재판을 받으러 가기 전에 바로 그 지하 동굴 감옥에 예수님이 갇혀 계셨다고 합니다. 조금 그때의 상황을 실감하기 위해 잠시 전등을 껐더니 완전히 암흑 자체였습니다. 감옥에는 죄인들을 묶어 놓았던 돌기둥이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기둥에 묶인 채 암흑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지하에서 나오니 비가 오는 중에도 빛의 세계로 나온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맞은편이 키드론 계곡과 올리브 산입니다. 조금 아래에 ‘하켈드마’, ‘피밭’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 보였습니다. 그곳은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받은 돈으로 산 밭 터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은 유다가 그곳에서 거꾸로 떨어져 배가 터지고 내장이 모조리 쏟아져 죽었다고 전하지요 (사도. 1, 18-19)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외벽에는 예수님을 줄에 묶어 감옥으로 내려 보내는 그림이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습니다. 성당 밖 계단 옆으로 베드로와 대사제의 집 하녀의 모습을 새긴 조각상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그때의 상황을 그리어 보게 됩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더욱 힘주어 장담하였지요.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결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마르 14, 30-31)
베드로와 하녀의 조각상 뒤편으로 예루살렘과 키드론 계곡으로 이어지는 로마시대의 돌계단이 남아있었습니다. 가이드는 예수님께서 최후만찬 후에 바로 이 돌계단으로 내려가셨을 것이고 붙잡혀 오실 때도 바로 이 계단으로 오셨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 후에 시온산에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이 길을 통해 겟세마니로 가시면서 모두 포도주 한 잔 걸쳤을 테니 노래를 부르면서 갔을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유명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보면, 술에 취하지 않고 우리는 사랑에 취했다고 노래 부르는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그 핵심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 안에 위치했던 이 돌계단은 올리브 동산과 예루살렘을 잇는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고 하며 계단 옆으로는 당시의 주거지터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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