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 14
도깨비 명운
댄스학원 앞에서 수업 간 그를 기다리면서
잠시 잠이 들었다
복지관 공터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에 일어나니
온몸이 땀범벅이다
한여름에 유리창 숨구멍만 내놓고 잠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모과나무와 측백나무 숲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고 교회 담장에
능소화꽃이 흐드리지게 피었다
소화라는 여인이 처음 사랑을 나눈
임금을 못 잊어 담장에서 기다리다
죽었다는데 죽은 자리에 핀 꽃이 능소화라는
전설을 가진 꽃이다
여느 꽃의 전설이 다 그렇듯 슬픈 사연이다
나가보자
소화라는 여인의 마음을 읽어보자
능소화는 꽃송이에 독이 있어 벌이 날아들지
않는다는데 실제 가까이서 관찰해보니
많은 벌꿀이 꽃송이 속으로 들어가
화분을 묻히고 꿀을 빤다
그녀는 아무런 조건 없이 날 사랑하는 걸까
소화라는 여인처럼 일편단심 기다릴까
옛 전설과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의 시대다
바랄걸. 바래야지
공원 벤치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진 여인이 보인다
어떤 책을 읽는 걸까
가까이 다가가 나도 작가라고 내 책 읽어봤느냐고
묻고 싶은데 철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하늘이 온통 먹구름이다
한바탕 장대 같은 빗방울을 기대하는
찌뿌둥한 날씨인데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다
차량 도어 빠끔히 열어놓고 의자에 앉아
비바람이 몰고 올 장맛비를 기대한다
삶 역시 갠 날과 흐린 날고
찌뿌둥한 날이 있다
일사천리로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린 인생이라 삶이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
측백나무 열매가 쥐똥처럼 생겼다
아니 쥐똥이라기보다
쥐방울이라고 하는 편이 듣기 좋고
보기 좋은 것이다
인생에 단 한 번 사랑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린 두 번의 사랑 중이다
지금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좋은데
훗날에도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영원히 사랑할 수 있나 새겨봐야 할 것이다
사랑하기는 쉽다
만나기도 코드만 맞는다면 어렵지 않다
급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이 도령과 성춘향처럼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드디어 장맛비가 쏟아진다
이 비 그치기 전 글을 쓰는 것을 멈추겠지만
더워진 대지를 시원하게 식힐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빗방울 소리가 참 좋다
여름밤 어머니께서 부채질해주면
무릎을 베게 삼아 잠을 잘 때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마루로 피하고
추녀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요란스럽다
단 몇 분간 비가 내리더니 소강상태다
우리 사랑만큼 띄엄띄엄 내리는
한여름 낮 소나기가 아니었음을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