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025.5.31.(토)
1) 손자와 하루를 보냈다. 10.30분. 새로 개업한 집 근처의 ‘사운즈커피 시지점’ 브런치가 좋다기에 아들 부부에게 맛보라 하고, 아내와 난 손자를 보기로 했다. 두 놈은 들어오자마자 옆방으로 들어간다. 바둑판을 펴고 첫째 **와 난 알까기 시합을 준비했다. 알이 좀 굵은 흑 돌은 손자가, 나는 백 돌을 잡았다. 각각 셋째 줄에 10개씩 전장에서 진(陣)을 짜듯, 열을 맞추어 놓고 가위, 바위, 보로 선(先) 공격을 정했다. 몇 번 해 봤기에 제법 알을 잘 튕긴다. 하지만 손가락 놀림이 아직 어둔하기에 내 공격을 잘 피하지 못한다. 내가 일부러 실수해 낙방을 몇 번 하니 손자가 이겼다. 역시 경기는 이기면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다시 두 판을 더 해 2승 1패로 손자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겼다.
다음에는 오목 게임이다. 오목도 전보다 제법 보는 눈이 발전했다. 설명보다는 실전을 통해 재미를 붙이니 실력이 는다. 둘째 **이도 심심한지 한쪽에 혼자 바둑알을 놓고 중얼거린다. 셋이 함께할 수 없기에 살짝 아쉽다. 아이라 집중력이 오래 가지 않아 또 심심해한다. 다시 홀짝 게임을 하기로 했다. 각각 흑백 알 10개씩을 가지고 시작했다. 게임 개념을 잘 모르기에 계속 설명하면서 시작했다. 어차피 홀짝 게임은 확률이 반반이라 누가 이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바둑알을 두 손에 둥글게 잡고 소리를 내며 흔들다가 오른손에 쥔 바둑알로 홀짝을 묻는다. 연속으로 네 번이나 손자가 이겼다. 기분이 날아갈 듯한 모양이다. 기뻐서 까르르 웃으며 넘어가는 모습이 천사같다. 나도 연신 웃으면서 게임을 한다. 새로운 게임을 알게 되어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손자와 노닥거리는 것이 이렇게 기쁜 것을 보니 역시 손주 바보 할아버지이다.
점심을 먹고 가까운 ‘생각을 담는 정원’으로 차를 몰았다. 둘째 **이는 킥보드도 챙기고 첫째 **는 줄넘기를 챙겼다. 이곳은 손자들에게는 처음 온 곳이다. 정원에는 온갖 노란 장미와 붉은 장미, 금계국이 한껏 늦은 봄날을 뻐기고 있다. 아담한 연못에는 황금 잉어 세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이리저리 헤엄을 친다. 좁은 길에도 둘째는 킥보드를 타려고 한다. 열대 식물이 가득한 정원 안에서도 킥보드를 놓지 않는다. 흙이 많은 길이라 잘 굴러가지 않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기차게 밀고 다닌다. 아이의 즐거움을 내가 어찌 일일이 알 수 있으랴? 보고 열심히 따라다니기만 해도 즐겁다. 한쪽에 위치한 아담한 쉼터로 자리를 옮겼다. 아내가 챙겨온 간식을 풀었다. 사과, 참외, 떡, 물을 준비해 왔다. 바닥이 마루라서 킥보드를 타기가 편하다. 마침, 다른 사람은 없어 눈치도 보지 않고 놀아 더 좋았다. 첫째 **는 줄넘기 맹연습 중이다. 지금까지 기록은 21번이 최고란다. 여러 번 시도 끝에 오늘은 23번을 돌파했다. 자랑스럽다. 자기 친구의 최고 기록은 56번이란다. 열심히 연습해서 한 달 뒤에는 자기도 50번을 돌파하고 싶단다.
오른쪽 작은 공터에 반려견 놀이터가 있다. 휴일이라 반려견 대여섯 마리가 주인과 함께 뛰어다니고 있다. 개를 키우지 않는 우리는 반려견 구경도 좋다. 울타리 밖에서 손주들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근데 갑자기 한 마리가 근처로 와서 왕왕거린다. 깜짝 놀라 두 손을 잡고 뒤로 물러났다.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지? 다시 쉼터로 돌아와서 간식을 먹고 쉬었다.
집에 가려고 하니 더 놀자고 한다. 월드컵 경기장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장이 만원이다. 어렵게 한쪽 길에 주차하고 월드컵 공연장 공터로 갔다. 휴일 기분이 물씬 난다. 아이들과 나들이온 사람이 많지만, 워낙 넓기에 그래도 편안하다. 쉴 그늘도 많고 바람도 솔솔 불어 손자들이 좋아한다. 깔끔하게 포장된 곳이라, 킥보드를 타기가 정말 좋다. 곳곳에서 킥보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보인다. 역시 넓은 곳이 안전하고 놀기는 안성맞춤이다. 어떤 아이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타기에 조금 위험하기도 하다. 손주 바보가 분주하지만 보람 있고 즐거운 날이다. 손주가 없는 사람은 정말 심심하지 않을까. 내가 피곤해도 함께 놀아주면 피곤함도 모르고 정신없이 같이 다닌다.
내 어머니, 할머니도 나를 키울 때 이런 마음이었으리라. 내리사랑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인가 보다. 나는 어릴 때 호기심이 많았다. 이것저것 보고 싶고 배우고 싶었다. 그 습관을 손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다. 성격은 타고나지만, 습관은 자기가 만들어가면 될 것이다. 좋은 습관이 최고의 자산이 된다. 많이 보여주고 경험을 시켜 스스로 체득하도록 할 예정이다. 집에 도착하니 3시가 넘었다. 둘째 **이는 낮잠도 자야 하는데…. 저녁 시간에 힘이 들지 싶다. 잠시 휴식하다가 나는 탁구장으로 갔다. 매일 가는 곳이라 하루라도 가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다. 습관이자 중독이다. 그래도 고맙고 즐겁다. 즐거운 운동에 대한 중독은…. 몸은 고희를 넘었지만, 마음은 아직 지천명이다. 과유불급만 잘 지키면 좋지 않을까. 시시콜콜히 복기할 수 있는 오늘 하루가 고맙다. 정말 보잘것없지만,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나만의 일상 기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