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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매일 기획특집
이재창 시인, 남도문학 현장을 가다 (18) - 문학평론가 신덕룡
한국문단에 생명시 담론 이끌어낸 현장비평가
선비의 청정한 기품, 암반처럼 굳센 삶의 뿌리 다져
김지하論’은 비평의 진솔한 탐색 정신 여실히 드러내
‘에코토피아’를 지표로 삼아 생명문학의 개념 정립
2003. 07.23(수) 14:10
문학평론가 신덕룡(48,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문학적 화두는 환경과 인간이다. 그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기한 생명시의 논제는 한국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내면서 논의의 불길을 당기기도 했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이름 석자를 지키며 그 정명주의(正名主義)로 일관해 온 옛 선비의 청정한 기품이 느껴진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암반처럼 굳센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산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얼핏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고, 처음부터 얼굴에 사람좋은 웃음을 담고 있었다. 가끔 그의 주위 사람들은 그를 이병주의 소설 ‘행복어사전’에 주인공으로 신덕룡을 대입해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침윤해 있는 적도 없다. 애써 아옹다옹 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자기 몫의 소임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는, 편안하고 확실한 인물이다. 논리보다는 인품이 앞서는 인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기호지방 출신으로서 일찍이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묘사한 경중미인(鏡中美人)의 깔끔한 자기 관리가 돋보인다. 사람들을 대할 때는 늘 훈풍의 부드러움이 함께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에 있어 인간과 문학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의 사람됨이 문학의 영역을 넉넉하게 하고, 그의 사유하는 정신은 자신의 문학을 선하고 아름다운 자리로 이끈다. 더불어 문학으로부터 힘입은 정신적 금도(襟度)와 내면적 충일함은, 그를 더욱 미더운 품성의 주인으로 밀어올린다. 요컨대 그는 천생의 문학인이요, 일생을 두고 문학적 사유 속에 살 사람이다.
“비평행위란 말 그대로 문학작품의 가치를 규명, 평가하고 보다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리라. 전자가 작품 분석을 통해 예술적 성과를 밝혀내는 것이라면, 후자는 새로운 비판적 대안을 제시라는 일이다”
그가 말한 전자와 후자는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꿰미로 연결돼 있으며, 작가와 작품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바로 그 애정이 작품의 내포적 진정성을 추적하고 탐색하는 힘이며, 그러기에 그의 비평은 예리한 분석이나 표현의 묘미를 앞세우기보다는 진중하고 차분하며 깊은 사유의 움직임을 뒤따라가는 형국을 이룬다.
그는 시론과 소설론에 두루 걸쳐 많은 작품을 면대하고 있으며, 89년 김달진 문학상 평론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된 ‘눈부신, 새살처럼 돋아오는 아픔-김지하론’은 그의 비평이 포괄하고 있는 진솔한 탐색의 정신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문학은 인간학이라는 진부한 명제를 떠올린다. 이것은 문학이 우리 삶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내용들은 상처받은 영혼을 위무하기도 하고 새로운 삶을 향한 활력으로 작용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작가와 독자 서로가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그 흔적의 아름다움을 나누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인간중심의 삶이 더없는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소외되고, 관계는 더욱 악화되면서 나눔과 베품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 문학사에서 환경과 문학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성장과 개발독재의 온갖 부작용과 싸우면서 문학사를 일궈왔다.
그러나 풍요를 즐기고 있었던 삶이 빚잔치에 지나지 않았고, 이제 그 빛의 무게에 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사정은 환경에 관심을 쏟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불리한 상황이다. 환경운동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경기가 좋을 때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사실을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이후 우리 삶이 친화경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폐품의 재활용 즉, 폐지를 이용해 재생용지를 만들고, 고철을 모아 새로운 재료로 활용하고, 절약하는 생활을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가 환경문학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인 뛰어들게된 동기는 헬레나 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읽으면서 우리 삶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는 티베트고원 산간 오지의 마을 라다크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는 빈곤하지만 정신적으로로는 풍요롭게 살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들은 가축의 분뇨마저 비료와 연료로 활용하는 자연의 이법에 따르고 있었다. 그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가지 생각을 했다.
그 하나는 이러한 삶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불과 30년전만 하더라도 우리도 농촌에서 이러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마을 곳곳에 있었던 퇴비더미와 대문 옆에 쌓였던 두엄더미들 그리고 거기에 뿌렸던 가축의 분뇨 모두가 재활용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놀라운 발견이니, 이 사람을 닮아야 한다느니 하는 것은 아니러니였다.
또 하나는 서구인의 눈으로 보는 환경에 대한 의식의 문제였다. 그들은 마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듯 호들갑스러웠고, 이들을 닮지 않고 현재와 같은 문명이 계속되는 한 지구가 곧 멸망하리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러나 물질문명의 편리함에 맛을 들였고, 그것에 진력이 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과연 라다크에서와 같은 생활을 진정으로 꿈꾸고 있을까? 지금까지 고학기술 발달을 주도했고 그 부산물인 산업쓰레기를 후진국에 팔아먹는 나라의 사람들이 과연 헬레나 호지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 것인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빈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환경운동의 역사가 서구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형태나 세계관의 전환문제는 동양의 그것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세계관의 전환이란 다름아닌 동양적인 세계관의 어느 한 부분과 맞물려 있다는 것, 특히 잃어버린 삶의 가치들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제기한 생태주의 문학 연구는 국내에서 앞선 행보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생명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서 생태적 지향을 분명히 했다. 그가 제기하기 이전의 생명문제는 김욱동, 이남호도 언급하긴 했지만, 녹색문학론 속에 뭉뚱그려져 있었을 뿐, 독립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논제였다.
그는 ‘환경 위기와 생태적 상상력’ ‘초록생명의 길’ ‘생명시학의 전제’ 등 일련의 저서를 통해 ‘생명‘을 생태주의 문학의 핵심논제로 부각시켜 놓았다.
그는 ‘생명시의 논의의 흐름과 갈래‘에서 그가 상정한 생태위기에 대한 시적 대응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우리나라 생명시의 논의는 정치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성장이데올로기에 의해 환경문제나 생태계 파괴를 경제성장의 당연한 부산물로 여기던 1970~80년대의 억압적 국가권력에서 벗어나게 됨에 따라, 문학에서도 계급적 시각을 극복하고 당면한 생태 위기 현실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둘째, 생명문학에 대한 논의는 1990년을 계기로 해서 1990년대의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잡느냐에 따라 시적 상상력의 내용과 시적 대응의 태도가 달라진다.
셋째, 생태시 분류에서도 시적 소재, 시인의 미래에 대한 전망, 시적 대응 등에 따라 그 분류가 다르게 나타난다.
넷째, 목적성을 띤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서 과거 정치지향의 시에서 경시되었던 미학적 형상과 대상에 대해 좀더 진지한 접근을 하며 시인의 도덕적 윤리적 차원의 실천 역시 중요하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다섯째,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다루는 시에 대한 명칭문제를 제기 한다. 생태환경시, 공해시, 생태시, 환경시, 환경생태시, 생명시, 녹색시 등 다양한 명칭이 존재하며, 그 하위 갈래도 생태적 문명비판시, 정신주의 시, 생태적 서정시, 민중적 생태지향시, 전통적 생태지향시, 모더니즘적 생태지향시 등 다양하다.
이에 대해 신덕룡은, 적어도 상위 범주의 명칭은 동일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환경위기와 생태적 상상력‘에서 생명시 차원을 뛰어 넘어 생명문학의 개념을 정립해 놓기도 했다.
그는 문학공부 도중 많은 변신을 꽤하기도 했다. 석사시절과 문학평론가로 등단하기 전까지는 주로 문학작품의 ‘신화성’과 ‘시간성’에 주목해온 이른바 ‘신화문학론자’였다. 그러던 것이 박사학위 논문 전후에는 첨예한 이데올로기 시대의 소산인 민족문학론, 노동소설 등에 관심을 두고 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연구가’로 변신해 있기도 했다. 그후 그는 조명희, 심훈, 김동리를 연구한 굵직한 논문을 발표하는 학자로, ‘폭력의 시대와 80년대 소설’‘토지의 삶과 역사’‘고재종론’‘송수권론’ 등의 평론으로 한국문학의 현실을 진단하고 독려하는 현장비평가로 활동해 왔다.
그후 그는 김지하론을 쓰면서 생명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만난다. ‘에코토피아’를 지표로 삼고, 환경오염과 자연의 생명성을 문제삼고 있는 평론과 시들을 모아 ‘초록생명의 길’을 엮으면서 본격적인 문학의 생명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학작품을 통해 신화를 탐색했고 역사를 탐색했고 현실적 삶을 탐색했으며,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삶이면서 근원인, 그 모든 존재의 생명성을 ‘우주적 시간’속에 탐색하고 있는 셈이다.
김용직 신동욱 최동호교수 만나면서 문학평론 몰입
1985년 ‘현대문학‘에 평론‘당신들의 천국의 시간론적 해석’ 추천받아 등단
문학평론가 신덕룡씨는 1956년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다문리 741에서 출생했다. 용문(龍門)이란 지명이 풍기듯 범상치 않는 내음이라든지, 용문사나 거기의 은행나무 등속이 거느리고 있는 유다른 분위기는, 그의 인품이 지닌 내포적인 힘과 어떤 상관성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의 이름 덕룡(德龍)에도 그가 드러내 말하지 않는 숨은 비밀이 하나쯤 있음직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을 거기서 보낸 후 그는 중학교 입학을 위해 상경, 용산중학교에 입학, 국어를 당당했던 이계진 선생을 만나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배재고등학교 졸업후 75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면서 조병화 시인, 소설가 황순원 선생을 만났고, 동기생인 수필가 이정원, 문학평론가 김종회, 시인 하재봉, 소설가 이연철 유재주, 아동문학사 김용희들을 만났고, 한두해 선후배로 소설가 고원정 박덕규 김형경 이혜경, 시인 안재찬 이문재 등과 어울려 문학수업을 했다.
76년엔 친구인 소설가 이연철과 함께 다방을 빌려 2인 우정시전을 열었는데, 이때 후배인 안재찬 시인이 “형의 시에서 김수영 냄새가 난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시쓰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후 신동욱교수의 강의를 듣고 문학의 길이 문학평론을 포함해 여러갈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김용직 교수의 ‘한국문학의 비평적 성찰’이란 평론집을 읽고 문학평론에 매료되면서 결국 시쓰기를 포기했다.
78년경 문학평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외국 원서를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구해 읽었다.
그는 문학평론의 기초를 당시 경희대 국문과에 재직중이던, 지금은 고려대로 옮겨간 최동호 교수로부터 배웠다. 창작분야의 시인과 작가는 풍성했지만 이론과 비평의 경우는 불모지에 가까웠던 경희대에서 김종회 등과 평론가 1세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도 비평문학을 공부하는 분위기는 이들의 ‘현대문학연구회’라는 학내의 학술모임과 더불어 맥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김태곤 교수의 지도로 신화비평을 공부했고, 79년 가을학기 리포트로 낸 논문 ‘시에 나타난 시간과 의미’로 현대문학 81년 3월호에 평론부문 초회 추천을 받으면서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85년 현대문학에 평론 ‘당신들의 천국의 시간론적 해석’이 2회 추천되면서 정식으로 평론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학원 초기에는 고전문학을 전공할 의향을 갖기도 했으나 현대문학 비평쪽으로 뱡향을 틀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 저서 ‘진보적 리얼리즘 소설연구’는 성실하게 잘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던 박사학위 논문이며, ‘문학의 이해’와 ‘농민의 땅’ 및 ‘폭풍’등 공저와 편저를 갖고 있다. 1993년에 발간된 첫 평론집 ‘문학과 비평의 언어’는 신덕룡의 초기의 평론활동에 대한 중간결산이며 그 관심의 범주와 비평적 지향점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박사학위 과정땐 신진공고 야간부 교사로 있기도 했다. 그후 경희대, 서울여대를 출강하면서 조태일 시인을 만나게 되며, 88년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90년 3월 광주대학교 조교수로 발령 받고 이사하면서 광주와의 인연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는 광주대 문예창작과를 조태일 이은봉 배봉기 교수 등과 함께 전국에 있는 문예창작과 중에에 으뜸가는 학교로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쏟는다.
96년 강경호 고재종 이은본 등과 계간 ‘시와사람’을 창간하면서 평론의 방향을 시쪽으로 정하고 시론위주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98년엔 시와사람 여름호 기획특집으로 게재한 김지하론 ‘눈부신, 새살처럼 돋아오는 아픔’으로 제9회(평론 1회) 김달진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평론은 원래 외부 필자가 쓰기로 돼 있었는데 섭외가 제대로 안돼 편집위원인 그가 대타로 쓰게 돼 더욱 의미가 있기도 하다. 더구나 이를 계기로 한국문단의 시부문에서 환경과 생태, 생명 문제를 보다 심도있게 접근하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지난해 발간한 ‘생명시학의 전제’는 2003년도 문예진흥원이 선정한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학평론집으로 ‘진보적 리얼리즘 소설연구’(1989), ‘문학과 비평의 언어’(1993), ‘문학과 진실의 아름다움’(1998), ‘환경위기와 생태학적 상상력’(1999), ‘생명시학의 전제’(2002) 등이 있으며, 공저나 편저로 ‘문학의 이해’‘농민의 땅’‘폭풍’‘초록생명의 길’‘우리시대의 시인 읽기’‘초록생명의 길 2’ 등을 펴냈다.
그러나 최근 그에 있어 또다른 행보가 주목할만한 사건이 있다. 그게 바로 대학시절 포기했던 시창작과 시인으로서의 등단이다. 지난해 12월 ‘시와시학‘을 통해 그가 어릴적 바라던 시인의 길을 결국 이루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 지역에 몇 안되는 문학평론가의 역할이 지대 하지만 시인으로서의 또다른 겸업을 선언한 그에게 빛나는 상상력과 감칠맛 나는 언어의 마술사 같은 시를 기대해 본다.
글 ; 이재창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