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04년 2월15일08시
만날곳:국립묘지 현충원 앞
행선지: 강화 마리산 (시산제)
참석자:19명(권중배,김상희,김인상,김재윤,김형철,김호경,남영우,신상기,이강호,
이대용,이정우,이종구,이종기,이종원,장인주,장절준,최해관,한경록 ,윤신한)
화창한 아침이다. 이번 주 초까지만 해도 제법 겨울같은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지금은 많이풀렸다. 오늘은 강화도로 가기로 한 날이다. 모처럼 자동차로 멀리 이동하는 산행이라 행여 집합장소를 두고 혼선이 있을까 저어하여 해관이 몇 번이나 현장을 답사한 끝에 동작동 전철역 현충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도 차를 가지고 가기로 되어 있어 좀 일찍 나섰다.
그곳에 도착하니 약속시간 (08:00)까지는 십여분이 남았는데, 종원이 혼자 나와있다. 늘 만나던 산 입구나 버스종점이 아닌 도심 한 복판에서 모이는 것이 조금은 생소하다. 좀 있다 흰 자동차가 멈추더니 해관이가 문을 열고 내린다.. 해관이는 16명이 온다고 했다면서 자동차가 부족할 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러는 사이 15명이 모였고, 몇 분 더 기다리는 동안 지하철 출구에서 4명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모두 19명으로 작년2월부터 산행기를 쓰기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다. 특히 영우와 종기가 오랜만에 참석하여 모두 반가와 했다.
08:10 일행은 4대의 차에 나뉘어 타고 사당동으로 올라가다가 입체교차로가 끝나는 곳에서 차를 돌려 올림픽도로로 들어섰다. 최근에 완공된 초지대교를 가기로 했는데, 나는 뚝방길을 따라가다가 초지대교로 가는 표지판이 보이지 않아 그대로 강화대교를 건넜다. 산 밑 주차장에 도착( 09:30)하니 모두 다 도착해 있다. 아침이라 도로가 별로 붐비지 않았는데도 1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강화도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09:35 일행은 산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등산로는 시멘트로 포장이 잘 되어있고 길가엔 축대가 쌓여있어 유원지 입구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이른 시간인데 등산로에 사람들이 제법 많다. 우리처럼 시산제를 올리려고 가는 지도 모른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두껍게 층을 이룬 얼음으로 덮여 있다. 그늘진 사면에는 흰 눈이 그대로 있다. 강화도엔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오는 편이다.
마리산. 강화도에서는 모두 이 이름으로 부르는데 육지에서는 흔히 마니산으로 부른다. 마리산의 마리는 머리,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로 곧 성스러운 산이라는 뜻이다. 언제부터 마니산으로 불렀는지는 모르나, 충북 영동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산이 있어 강화도 마니산으로 구분하기도 하는 것 같다. 지금도 국가의 중요한 행사때는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성화의 불씨를 얻는 것을 보면 이곳은 우리의 머리산, 즉 마리산임이 분명하다.
시멘트길이 끝나고 산길이 시작된다. 산길이래야 아직은 서울의 남산 어느 모퉁이 같다. 10:10 처음으로 쉬었다. 강화도는 기(氣)가 센 곳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쉬는 곳에는 전국 제1의 생기처(生氣處)라는 작은 설명판이 하나 붙어있다. 한 옆에는 조선초에 태종이 이곳에 들렸다가 남겼다는 한시를 판자에 적어 세워 놓았다.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 그 위에 덕지덕지 개칠을 했는데 임금의 시라고 하기에는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이다.
조금씩 바다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0:20 제1의 생기처라고 쓰인 다른 표지판을 지나쳤다.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면서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푸근하던 산 아래와는 달리, 바람이 제법 차갑다. 맞은 편에서 걸어 내려오는 잿빛 승복을 입은 나이가 지긋한 비구니의 코가 빨갛다. 해는 이제 높이 솟았다.
10:30 길가에 솟아있는 바위에서 쉰다. 동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강화들판. 경지정리가 잘 된 논두렁은 자를 대고 그은 듯 반듯반듯하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나무들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바닷물이 해수욕장처럼 맑다. 그 너머로는 석모도를 비롯한 부속섬이 겹겹이 둘러서 있다. 남쪽은 정상에 가려 아직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줄기만 남은 억새를 누이며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바람이 상쾌하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이제부터는 참성단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 옆에 군데군데 서 있는 안내판에는 2004년부터 참성단의 보존을 위하여 영구적으로 출입을 완전히 통제한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멀리서라도 그 모습을 선명히 볼 수 있도록 해 놓으면 좋겠다. 계단 위에는 전에 내린 눈이 얼어붙은 채로 흙에 살짝 덮여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크게 다치기 십상이다. 십 여분을 그렇게 올라간 후에 참성단 앞에 도착했다 (11:00). 입구쪽에는 인상/상기가 이미 도착하여 쉬고 있다.
아까 중간에서 쉴 때 보이지 않던 남쪽 바다가 환히 눈에 들어온다. 해는 중천에 떠 있고 바닷물이 그 햇빛을 받아 조각조각 깨어져 미루나무 잎사귀들마냥 떨면서 반짝인다. 강화도의 부속섬은 아니지만 가까이에 있는 섬들이 마치 강화도를 옹위하듯 둘러서 있다. 섬 위의 산등성이들이 서로 높이를 겨루는 모습이 마치 다도해를 내려다 보는 기분이다. 오늘 바다는 매우 잔잔하다. 그러나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엔 바람이 세고 또 차다.
뒤이어 나머지 일행도 다 도착했다. 이미 참성단 앞은 우리보다 앞에 온 사람들로 꽉 차 있어 우리가 자리를 펼 틈이 안 보인다. 해관이 건너편을 내려다 보다가 백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널직한 곳을 찾아내어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참성단이 있는 곳(468미터)보다는 약간 낮은 봉우리이지만 사방이 시원하게 트여 시산제를 올릴 만한 장소로 이런 곳도 드물다. 저 아래로는 섬의 주위를 따라 일주도로가 그림처럼 돌아가고 있고 그 길옆으로 군데군데 논인지 새우 양식장인지 네모나게 둘러막은 곳들이 보인다. 옆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인상이 혼잣말처럼 한 마디 한다. “…강화도처럼 사방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이 또 있겠는가?”
자리를 펴니 바람이 세어 비닐자리가 펄펄 날린다. 돌을 주워와 네 귀를 눌러놓고 젯상을 준비한다. 팥고물 시루떡과 돼지 머릿고기는 우리가 앉는 알루미늄 의자의 등받이를 뒤로 넘겨 그 위에 얹어놓고 과일의 위아래를 반듯하게 도려내어 접시에 담아 조율시이 (남쪽에서는 조율이시로 하기도 한다), 홍동백서의 순서에 맞춰 배설하고 포도 준비했다. 컵에 흙을 담아 향을 꽂고 나니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집사를 맡은 호경의 말에 따라 해관이 몸을 낮추어 무릎을 꿇고 향에 불을 붙인다. 잔에 술을 조금 부어 잔을 씻은 다음 집사가 이를 받아 제자리에 놓자 해관이 두번 절한다. 뒤이어 모든 회원들이 두번 절하여 참신의 예를 올린다. 해관이 다시 잔을 내리라 하여 술을 따라 향불 위에서 서너번 돌린 다음 집사에게 넘겨주고 호경이 이를 받아 두 손으로 공손히 자리에 놓으니 해관이 두 번 절하고 자리에 앉아 모두 무릎을 꿇으라고 좌우에 이른다. 오늘 축문을 읽기로 한 대용이 제사를 지낼 때는 모자(갓)를 쓰는 거라면서 모자를 쓴 채 축문을 집어 든다. 대용이 목청을 가다듬고 읽기 시작한다. 축문은 상기가 지었다.
오늘, 저희 商山會 회원 일동은 이곳 摩尼山정상에 다시 올라 ……
이 땅의 모든 산하를 지켜주시는 神靈님께 고하나이다………………(중략)
그리고 83회에 걸친 산행동안의 무사고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늘 이 제사를 올리는 뜻을 고하고 아울러 올해도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도록 보살펴 주실 것을 기원하였다.
神靈님께 바라오니, 배낭을 멘 우리의 어깨가 굳건하도록 힘을 주시고…
수통의 물이 마르지 않도록 채워 주시고……길을 잃고 헤메지 않게 ……하소서.
이 대목에 이르러 대용의 음성은 한층 높아졌고 일동은 숙연히 고개를 숙이고 듣는다.
부시럭 부시럭 (페이지 넘기는 소리)
또한 바라오니……….세계 방방곡곡에서….웅지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하여주시고…믿음과 사랑으로 충만한 인생길을 걷게 하여 주소서.
이때는 그 심하던 바람도 잠시 멎는 듯 하였다.
오늘 준비한 이술 한잔 받으시고, 이 한해동안 우리의 산행길을 굽어살펴 주소서.
단기 사천삼백삼십칠년 정월 스무닷새 <상산회 회원 일동>
축문이 끝나자 모두 일어나고 해관이 다시 재배한다. 이어서 개별적으로 잔을 올리는 순서가 있었다. 그 틈에 끼여 나도 한 잔을 올렸다. 처음에는 그냥 잔만 올렸는데, 나중에는 돈을 놓고 절을 했다. 참석자가 많다 보니 돼지머릿고기 위에는 만원짜리가 수북하게 쌓였다. 그러는 동안 종원이는 제단 뒤에서 사진찍기에 바쁘다. 조금 후 건전지의 수명이 다 되어 사진을 더 찍을 수 없게 되었는데도 종원이는 계속 그 자리에서 서서 남은 사람들의 절을 다 받고 나서야 자리를 옮겼다.
모두 다시 재배하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났다. 대용은 자리에 앉은 채로 축문을 적은 종이를 불사른다. 제사가 끝났으니 모두들 음복을 하고 차려놓았던 음식을 내려놓고 식사를 했다. 오늘은 떡을 먹을 때 목이 메이지 않도록 하라고 해관이가 가져온 동치미가 일품이었다. 돼지머릿고기는 경록이 준비했다 (경록은 새우젓을 깜빡 잊고 있다가 간식이 거의 끝날 무렵에 내 놓는 바람에 모두 한바탕 웃기도 했다). 늘 그렇지만 산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갑자기 추위를 느끼는데 누군가가 보온병에 넣어 가지고 온 뜨거운 수정과가 또한 찬사를 받았다.
11:50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은 원래부터 참성단을 목적지로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등산은 하지 않고 바로 단군길로 들어서서 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 5분동안은 능선길이라서 강화도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뒤이어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올라올 때의 계단길과는 달리 계단은 없었지만 경사가 몹시 급한 곳이 많았다. 거기에다 아침에 군데군데 얼어있던 등산로는 오후가 되면서 녹기 시작하여 여기저기 질퍽거렸다. 그러나 아이젠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려오다 보니 올라오던 사람들 중에는 힘이 부쳐 포기하는 사람도 간혹 눈에 띄었다.
13:10 마리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바로 차에 타고 서울로 나와 신사동에 있는 마산아구탕집에 배낭을 내려 놓았다. 그곳에서 서영준이 합세하여 오늘은 참석자가 20명이 되었다. 아구탕으로 점심을 들어가며 인상/형철이가 사량도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설명을 했다. 4월달에 1박2일 (또는 2박3일) 일정으로 충무로 내려가 등산을 하고 인근의 사량도/매물도를 돌고 올라온다는 계획이다. 참석자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부탁도 있었다. 1시간 만에 점심은 끝이 났는데 너무 이른 탓인지 몇몇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뒷풀이를 하러 갔다. 아직은 겨울이지만 해가 많이 길어졌다. (끝) 윤 신한 글.
<필자후기>
작년 2월부터 산행기를 적기 시작했으니 꼭 1년이 되었다. 원래 솜씨도 별로 없는 사람이 두서없이 적어본 것이라서 읽는 상산회원들에게 과연 얼마나 감흥을 주었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1년이 넘도록 연재(?)하다 보니 단조로움도 적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몇몇 다른 회원들도 등산일지를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마침 일년도 되었고 하니 다음 달부터는 다른 회원이 새로운 맛과 멋을 담아 쓴 산행기를 읽을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우리 상산모임의 공식적인 산행기를 썼다는 데 보람을 느끼며 그 동안 읽어준 회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