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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40년 평생동행을 위한
상규와 기인이의 3000리길 자전거방랑기
140814목.1일차. 서울에서 양평까지
친구의 장인상에 갔다가 오후1시가 되어서야 중랑천과 한강의 합수부에서 상규를 만난다. 부슬부슬 계속 비가 내리지
만 두 영혼의 자유를 위해 떠나는 자전거방랑길의 시작을 막지는 못한다. 뚝섬유원지에서 라면을 먹고 빗속을 뚫고 자
전거는 달린다. 기분 내키는 대로 쉬며 달리며 비를 즐긴다. 짐받이가 빠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대수가 아니다.
오가는 대화는 주로 동기들의 우정40년사다. 비는 그치지 않고 줄기차게 오지만 우리도 줄기차게 자전거 바퀴를 돌린
다. 날이 어두워지고 양평에 도착한다. 감자탕에 소맥을 하면서 서로 몰랐던 세상 이야기 동기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야
영을 포기하고 여관에 들기로 한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근처엔 없다. 포기하고 역을 찾아가는 중 우연히 24시찜질
방을 찾았지만 난생 처음 보는 아주 간편 시스템이다. 샤워기 2개 있는 비좁은 샤워장에 잠자는 방이 남녀 두 개. 그래
도 가격은 7000원이다. 그냥 만족하고 잠을 청한다. 나름 이유가 있고 매력이 있다. 옆 젊은 친구들은 이번 일요일을 목
표로 부산행이다. 우리는 다음주 일요일인데, 확실히 젊음이 좋다. 시간 절약, 경비 절약, 젊음 절약. 아! 옛날이여! 상규
야 우리도 내일은 멋지게 달려보자!
140815금.2일차. 양평에서 충주댐까지
모두가 한강하구둑에서 낙동강하구둑까지 간다고 한다. 18세에서 75세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앞지
른다. 상규와 나는 쉬고 싶을 때 쉬면서 갈 때까지 간다. 아주 훌륭한 정자에서 자연보호자원봉사자를 만나고 갓 제대한
젊은이 둘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두 시간을 보내고 헤어진다. 오가는 자전거족들이 보통 3박4일로 주파하겠다고 들 한
다.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우리의 일정은 하늘에 맡긴다. 자연을 즐기는 것이 목적이다. 마지막 충주댐 오르는 길
에 짐받이 나사가 풀려 응급조치를 하고, 길고 긴 언덕길을 아주 진한 땀을 흘려가며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어렵사리 오
른다. 화장실을 전세 내어 온 몸을 닦고 빨래하는 사이 매점 문은 닫히고 자판기 음료수에 빵 하나를 나누어 먹고 에너
지바 하나와 커피 한 잔으로 저녁을 대신하기는 했지만, 충주댐에서의 야영은 밤 늦게까지 충주댐 건너에서 들려오는
팔순잔치집 고유민요 같은 노래 등등이 들려오는 소리에 분위기가 아주 좋다. 덕분에 잠 못 자고 휴대폰 카페문을 열고
열심히 오른손 검지를 두드려 댄다.
140816토.3일차. 충주댐에서 문경까지
충주호선녀의 새벽입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안개가 되어 주변의 산자락을 휘어 감는 난생 처음 느끼는 묘한 분위기의
신비로움을 연출한다. 간밤에 잘 잤든 못 잤든 간에 기상을 해야 하고 문경을 향해 상주를 향해 출발한다. 엊저녁 고생
고생하며 올랐던 길을 잠깐 사이에 내려오면서 번갈아 가며 짧은 오류를 범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강을 낀 대자
연이 선사하는 이른 아침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아름다운 경관에 도취되어 강을 따라 달리고 달린다. 수안보에서의 온
천물 족욕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보답인양 그저 고맙기만 하다. 이어지는 소조령 오르막길에서 진을 빼지만 내리막
길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않고 달리는 기분이란 세상에 비교 대상이 없는 듯 하다. 이화령을 오르는 5.4Km 구간은 단
한 차례의 내리막도 없이 꾸준히 경사각 10°를 유지한다. 우리의 마음도 변함 없이 가고 쉬고를 반복하며 오른다. 참으
로 많은 젊은이들이 쉬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지나쳐 오른다. 그들 모두에게 찬사를 보내며 우리는 우리 방식대
로 오른다. 쉬고 싶은 만큼 쉬고 갈 때까지 간다. 이화령에는 많은 자전거족들로 북적거린다. 국가에서 내준 숙제도 아
닌데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첩을 사서 스스로 만든 숙제 아닌 숙제를 하느라 몇 박 며칠에 걸쳐 여기저기서 도장 찍느라
바쁘다. 도토리묵밥을 맛 있게 잘 먹고 문경을 향해 신나게 비탈길을 내려 가는 중 드디어 사건이 발생 했다. 마침 길 건
너에 있는 쉼터에서 상규 자전거 뒷바퀴를 분리해고 구멍 난 곳을 땜질한다. 평생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아주 익숙히 처
리하고 얼마 후 폐역인 문경불정역에 도착한다. 관리인의 허락을 득한 후 밤비에 대비한 기가 막힌 자리에 두 동의 집을
짓고 화장실에서 세면과 빨래를 하고 나서 막걸리에 라면으로 그리고 잡다한 이바구로 하루를 마감한다.
140817일.4일차. 문경에서 안동댐까지
야간 비에 대비하여 엄청 좋은 자리를 찾아 야영을 했건만 비는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새재자전거길 지킴이가 찾아와 안내를 자청 했지만 상규자전거 뒷바퀴에 바람이 빠져 길안내 설명만 듣고 헤어진다. 또 펑크가 난 것으로 판단을 하고 바퀴를 분리하고 해체했지만 단순히 바람만 빠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킴이의 조언대로 길을 찾아 낙동강종주길을 찾아 가는 중 삼강주막 입구의 초라한 음식점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외모는 초라해도 된장찌개 맛은 지금껏 맛본 중에 최고다. 아주머니라기 보다는 누님의 음식이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지경이다. 배가 호강을 했으니 자전거는 절로 나가고 산천경개 순간순간이 눈이 부시고 아플 정도로 아름답다. 친구도 좋고 나도 좋으니 오후에 예상되는 폭우예보는 우습게만 느껴진다. 세월아 네월아 하며 쉬는 듯이 가고 가는 듯이 쉰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을 이제서야 마주하고 헤어지다니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낙동강의 흐름을 역행하여 달리는 자전거는 힘들겠지만 우리의 기분은 최고조를 넘는다. 우리가 갖은 것이라곤 시간과 자유뿐이다. 그 둘을 이용하여 달리는 길은 야생화로 단장하고 환한 미소로 응원을 보낸다. 정말 우리나라 대한민국인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길을 달린다는 것이 행복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어느 길가 훌륭한 정자에서 비록 라면을 끓여 먹었지만 행복감만큼은 누구보다도 부럽지 않다. 많은 급경사의 고갯길을 넘었지만 나름 즐거움이다. 안동댐에 도착하니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그리고 비가 오기 시작한다. 대단한 건축물인 안동물문화관 아래 야영지를 점 찍어주고 우선 막걸리로 서로가 무사고로 수고했음을 축하한다. 대구에서 온 두 젊음에게 두 마디 조언을 해주었더니 삼각김밥 둘과 언양김밥 하나 그리고 에너지바가 날라온다. 깔끔한 화장실에서 세면과 빨래를 마치고 또 다시 60년간 있었던 서로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임을 확인한다. 친구는 잔다. 임시 친구인 막걸리를 곁에 두고 엄청 쏟아지는 빗소리를 감상하며 안동댐 아래서 내 인생의 하루를 마무리 한다. 비야 내일은 만나지 말자! |
140818월.5일차. 안동댐에서 상주보까지
늦게 자고 엄청 쏟아지는 빗소리에 일찍 기상한다. 간밤에 추가로 홀로 마신 막걸리 덕에 잘 잔것 같다. 여전히 쏟아지
는 비를 뚫고 잠시 산책도 해본다. 나 보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난 상규와 오늘 할 일을 의논하는 중 대전에서 온 고3 셋
이 도착한다. 빗 속에 저전거를 타고 385Km의 낙동강자전거길을 3박4일 일정으로 달려 보겠다는 그들에게 최대한의
안전을 당부하고 아낌 없는 찬사를 보내며, 그들의 요청으로 텐트설치법을 실 상황으로 가르친다. 그리고 우리도 달려
보자고 상규가 제안하고 바로 응낙한다. 안동간고등어로 아침식사를 하고 12시경 출발과 동시에 자전거바퀴에서 바람
이 또 빠진 것을 발견한다. 바람을 넣고 출발하지만 얼마 안 가 또 다시 바람이 빠지고 바람을 넣고 세 번째 바람이 빠진
다. 주방가구공장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며 뒷바퀴를 분리한다. 무려 두 곳이나 동시에 구멍이 났다. 자가수리를 마치고
언덕을 넘고 또 넘는다. 비가 그치는 듯 하다가 억수로 쏟아진다. 풍천면 도양삼거리 슈퍼에 들러 비를 피하며 캔맥주
삶은 달걀 캔참치 컵라면 등으로 점심을 대신하는 동안에도 비는 억수로 쏟아진다. 그럼에도 시간에 쫓기는듯한 사람들
이 비를 뚫고 달려간다.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려 버스를 기다리던 여중생 둘이 이것저것 캐물으며 상당한 관심을 보인
다. 비는 간간이지만 계속 쏟아진다. 땀으로 젖느니 비로 젖는 편이 낫다며 진행을 한다. 온 몸이 젖고 바람을 맞으니 한
기가 느껴진다. 1000냥짜리 비옷을 입는다. 비는 제 멋대로 양을 조절한다. 도라지가 피어있는 야생화가 만발한 끝없이
이어진 뚝방자전거길에는 오로지 우리 둘 뿐이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길 찾기도 어려워지고 길을 밝히는 랜턴불도
희미하다. 그럼에도 상규의 길을 찾는 능력은 귀신처럼 탁월하고 우수했다. 국토종주길과 낙동강길이 만나는 상주상풍
교의 인증센타를 놓치고 절대 멈출 수 없는 진행을 계속한다. 상주보 자전거박물관 앞에서 좌길이 아닌 우길을 택하면
서 생각지 못한 엄청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자전거길로는 역행하는 것이었다. 목적지인 상주보와는 점점 멀어져간
다. 결국 GPS를 이용하여 상주보를 찾아가는 중 9시반경 시골 구멍가게를 발견하고 찾아 든다. 안에서 주인 포함 세 아
주머니가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가 우리를 보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며 총각들 어서 오라며 즐거운 농을 건다. 우리도
기꺼이 아가씨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응수한다. 비가 쏟아지는 시골 구석 구멍가게 희미한 등불 아래서 막
걸리를 받고 맥주를 건네고 하며 잠시 한 때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만든다. 우리보다 세 살 아래의 아주머니가 상주
보 근처 전망 좋고 멋들어진 정자로 어두운 밤길 안내를 자청한다. 정자 안에 텐트를 설치하고 공용화장실에서 샤워하
고 빨래를 한다. 짐 정리를 마치고 깊은 잠에 빠진다.
140819화.6일차. 상주보에서 칠곡보까지
날씨가 화창한 정도는 아니지만 비는 그쳤고 기분 좋은 날씨다. 상규가 자고 있는 동안 어둠 속에서 놓쳐버린 상주 상풍
교의 인증을 위해 왕복 22Km 자전거길을 달린다. 수첩에 인증을 하고 상주보로 돌아 오는 길에 어제 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까다로운 오류를 범했는지 깨닫게 된다. 가방에 휴대한 물건을 모두 꺼내어 일광욕을 시킨다. 온통 흙투성이인 자
전거도 화장실 앞으로 끌고가 깨끗이 세척한다. 13:30이 되어서야 출발한다. 상주보 인증센타에서 서울예대3년생 셋을
만난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부산까지 간단다. 생기 발랄한 여대생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낙단보를 지나 구미보
전방 약7Km 지점에서 휴식 중 피할 수 밖에 없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다. 바람까지 가세하여 화장실 안으로 피신한다.
잠시 후 비가 그치고 구미보에서 다시 만난 미녀삼총사는 비를 피할 곳이 없어 그대로 폭우를 다 뒤집어 썼단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다시 만날 기약 없이 헤어진다. 구미보 건너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35Km 거리의 칠곡보를 향한다.
잘 가다가 이번엔 앞 바퀴가 펑크 난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땜질은 곤란하고 거의 2Km 간격으로 10여차례 바람
을 넣어가며 시설이 낙후된 칠곡보야영장에 도착한다. 허름하고 좁은 정자에 겨우 텐트를 설치하고 세면만 대충한 후
잠을 청한다.
140820수. 7일차. 칠곡보에서 달성보까지
11시에 출발하여 왜관 시내로 들어간다. 콩나물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간다. 진정한 장인으로서 4
0년째 운영을 하고 있는 주인이 믿음직스럽다. 몇 가지 수리를 한 후 많은 자전거족들이 다치고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신경 써서 조심해서 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떠난다. 그런데 또 얼마 가지 않아 자전거 뒷바
퀴가 4번째 펑크가 난다. 이번엔 상규 혼자서 튜브자체를 교체한다. 이젠 일상이 되어 먹고 나면 화장실을 가듯이 주행
중 펑크수리나 튜브교체는 주행 중에 있는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된다. 우리가 갖은 것은 시간뿐이다. 서두를 일도 없고
되는 대로 앉아서 휴식 겸 수리를 하면 된다. 외국 관광객 안내를 마친 김무열로부터 전화가 온다. 경주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우리 위치에서 92Km거리의 경주를 가기에는 무리다. 결국 무열이가 승용차를 몰고 현풍으로 오기로 한다. 아
무도 생각지 못한 객지에서 20:30에 무열이를 만난다. 모텔에 짐을 내려놓고 식사 중 늦은 시각에 미녀삼총사로부터 긴
박한 목소리로 전화가 온다. 현풍을 지나 함안보까지 가는 중 전방에 자전거도로가 침수되었다는 정보를 얻었는데 어떻
게 해야 하나 하고 묻는다. 무조건 뒤로 Back을 하고 대책을 세우라고 알려준다. 계속 걱정하는 중 다시 전화가 온다. 차
도로 우회를 하여 창녕함안보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낭보를 전한다. 우리는 다시 소맥 후 노래방으로 이동하여 무려 세
시간 동안 열심히 노래 공부를 한다. 모텔방으로 가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 소주 맥주를 산다. 세상 이야기 친구들 이야
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멀리서 찾아와 아낌없이 진한 격려를 해준 우정이 그 동안의 피로와 비에 젖은 방랑자의 여
독을 말끔히 씻어주고, 다시 한 번 40년의 우정으로 평생을 동행할 수 있는 동기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빨래를 마치
고 무엇보다 소중한 잠을 청한다. 몇 시인지 모르겠다.
140821목.8일차. 달성보에서 창녕함안보까지
사우나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한다. 펑크 수리를 마치고 멀리 부산에서 일부러 찾아준 무열이와 헤어진다. 그리고 우리
의 자전거 여행은 계속된다. 무료숙식제공 무심사라는 이정표가 계속 나타난다. 우회로가 있는 갈림길에서 아무런 고민
없이 당연하다는 듯 무심사를 지나치는 전통자전거길을 택한다. 어느 정도 진행하다 보니 길은 엉망이고 비탈도 심하
다. 이미 깊이 들어간 상황에서 후회하며 후퇴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남들은 다들 우회하는데 우리는 곧이 곧 대로 원래
의 길을 택한 것이다. 무심사에서 무료숙식을 미끼로 홍보를 하려는 목적으로 자전거길을 유치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판단으론 이 건 자전거길이 아니라 등산길이다.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 넘을 수 없는 길이다. 그나마도 비
포장에 길은 빗물에 깊이 패이고 경사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상규의 라이딩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완전 묘기
대행진이다. 겨우 한 숨을 돌리고 합천창녕보에 도달했지만 고객유치를 위해 길거리 판촉에 나선 어느 모텔 주인의 이
야기가 우리의 기를 죽인다. 경치는 아름답지만 박진고개를 넘어가는 길은 지금 넘어온 높이의 세배이고 경사도 14%
(이화령 10%)인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지치고 늦은 시각에 지나친 무리는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둘 만의 긴급회의와 합의에 의해 자동차 도로로 우회하기로 한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79번
국도를 무려 20여Km나 달린다. 자전거 앞뒤로 모든 비상등을 설치하고 쌩쌩 달리는 차량들과 함께 달린다. 도중 한 떼
의 무리가 타이어를 수리하고 있다. 우리가 어제 지나온 강정고령보와 달성보 사이가 침수되어 통행이 제한되고 그 사
이에 그 곳을 지나치다 펑크가 나서 무려 5시간 동안 자전거를 끌고 수리점에 갔다는 젊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수리
공구를 준비해오길 잘 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어렵사리 21:30경 함안보에 도착하니 주변 관리인이 찾아와 야영
할 곳 등을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유일하게 이 곳 건물은 건물 내부의 화장실을 24시간 개방하고 있다. 덕분에 몸
과 빨래감등을 여유 있게 정리하고 휴대폰 충전을 한다. 오랜만에 보는 밤하늘의 별들이 총총하다.
140822금.9일차. 창녕함안보에서 낙동하구둑까지
07:30 낙동강하구둑(을숙도)을 향해 힘차게 출발한다. 몸과 마음이 한 없이 편안하고 행복하다. 지난 60년을 살아오면
서 이런 행복감은 처음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에 상규는 계속 노래를 부른다. 낙동강변 넓은 초지 위의 넓은
자전거길을 나란히 달리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들판의 야생화들이 미소 짓는 속을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속도로
달리며 낭만의 극치를 맛본다. 침수지역을 만나고 우회하고 또 침수지역을 만나 우회하고를 세 번 반복하는 중에 자전
거로 전국을 유랑하는 노부부를 만난다. 그 분들의 안내로 네 번째 침수지역을 실수 없이 안전하고 편하게 우회를 하여
부산에 들어선다. 그런데 부산을 통과하는 자전거길은 위험할 정도로 불편하고 조심스럽다. 어느 순간 낯 익은 얼굴들
이 계속 스쳐 지나간다. 서울예대 미녀삼총사다. 아쉬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더니 버스시간에 쫓기고 우리를 알아보지
못해 죄송하단다. 낙동강하구둑을 건너 을숙도에 도착하니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스스로 자랑스럽고 감격스러운 중에
미리 약속된 김경우를 만난다. 그가 준비해 온 캔맥주로 목을 축이고 자전거는 통째로 묶어놓은 뒤 다시 하구둑을 건너
음식점으로 향한다. 낙남정맥 시작점인 지리산 영신봉에서 만났던 동년배의 부산대동고등학교 수학선생님으로부터 연
락이 온다. 사상에서 제자가 운영하는 남경이라는 음식점을 예약해 놓았으니 거기서 만나자는 것이다. 제자인 남경주인
은 이미 나에 대한 기본 정보를 입수한 상황에서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알공선생이 오기 전에 김경우와 먼저 소주에 한
우를 구우며 그 동안의 이야기 꽃을 피운다. 경우는 우리에게 후원금을 주며 해운대에서의 선약으로 먼저 가고 바로 알
공선생이 나타난다. 7개월만의 재회임에도 자주 만나는 오래된 친구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술잔이 오간다. 적당히 그리
고 많이 취한 상태에서 노래방으로 향한다. 피곤함에 지쳐 한 시간만의 노래로 끝을 내고 상규와 둘이 오늘의 집을 지으
러 택시를 타고 을숙도로 향한다. 화장실 옆 적당한 자리에 텐트를 치고 서울에서 낙동강하구둑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왔음에 감사하며 잠이 든다. 내일은 섬진강변에서 풍찬노숙을 즐길 것을 꿈꾼다.
140823토.10일차. 부산에서 진주경유 경주까지
어제 온 길을 다시 거슬러 11:50 사상터미날에서 진주행 버스를 탄다. 오래 전부터 산청군 내대리에 거처를 마련한 경
상대 마취과 교수인 정영균이 마중을 나온다. 6년을 한 울타리에서 지지고 볶았음에도 서로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고
졸업 후 40년만에 만났음에도 기꺼이 반겨주는 친구가 무한정 고맙기만 하다. 학교 옆 임시 숙소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삼천포 해안가로 가는 중 허훈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수학여행 답사팀이 경주로 가니 그 곳으로 오라는 것이다. 전
어철에만 장사한다는 어부집에서 소맥에 전어회를 맛있게 먹으며 두 영재의 알 수 없는 대화 속에 내가 할 말이라고는
산 그리고 자연뿐이다. 셋의 합의에 의해 경주로 가겠노라고 허회장에게 전화를 건다. 조만간 해안따라 두발로 걸어 지
나갈 횟집 앞 길을 떠나 경주로 향한다. 주말이라 길이 많이 막혀 3시간을 넘게 달려 보문단지에 있는 호텔에서 허훈회
장과 강한철 서인석 조병석을 만난다. 내게는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지만 모두에게 정영균은 새롭고 낯선 사람이었음에
도 우리는 어제도 그제도 만났던 친구처럼 화기애애하다. 경주까지 초청을 해준 허회장에게 감사를 표하고 답사팀과 우
리는 각자의 방으로 향한다. 내일 아침 답사팀은 일찍 출발하는 관계로 미리 안녕을 고한다.
140824일.11일차. 경주에서 산청까지
경주를 떠나 산청으로 향한다. 쉴새 없는 정교수의 강의 아닌 강의가 끝이 없다. 한 강좌 끝에는 항상 이상한 슬픈 이야
기로 끝을 맺는다. 정교수 일명 내대거사는 숨도 안 쉬는 모양이다. 질문할 시간도 없다. 무조건 들어야만 한다. 산청강
변식당에서 기억에도 없는 메기찜을 탐욕스럽게 먹는다. 또 다시 쏟아지는 비를 뚫고 산청 내대리 정영균의 숙소로 향
한다. 운무에 휩싸인 주변 경관이 지리산 자락의 운치를 대변한다. 태곳적부터 자리잡은 자연의 순수함을 이용하여 물
길과 이끼 낀 바위가 조화를 이뤄 아담하고 탐스러운 곳에 마련된 잘 정돈된 앙증맞고 깔끔한 어느 오성급 호텔과도 비
교할 수 없는 마냥 머물고 싶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푼다. 인근 주막을 찾아 닭백숙에 동동주로 비 내리는 지리산 자락
에서 묘한 느낌의 인생의 참 맛을 느낀다. 별채로 돌아와 계속되는 음주 속에 내대거사의 강의는 밤 깊은 줄 모르고 끝
이 없다. 시험 없는 강의를 얼렁뚱땅 마치고 잠을 청한다.
140825월.12일차. 산청에서 목포까지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덕분에 아침 풍경이 신비스럽기는 하지만 집을 떠난 이 후 단 한 차례의 양보도 없이 하늘은 우
리에게 원하지 않는 비를 계속 보낸다. 선지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정교수 사무실로 향한다. 폭우로 인한 섬진강,
영산강자전거길의 침수를 예상하고 제주도로 먼저 갈 것을 상규가 제안하고 바로 합의 한다. 그런데 제주 가는 길을 찾
기가 만만치가 않다. 상규가 부산에서의 사천에서의 완도에서의 하늘길과 바닷길등 이 곳 저 곳을 오랫동안 수소문한
끝에 내일 오전 9시 목포에서 제주행 배편을 마련한다. 진주에서 오후5:30 광주행버스를 타기로 하고 그 사이 이별 맥
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상규는 예비 튜브에 구멍 난 곳을 수리한다. 상규의 중고자전거 타이어와 튜브는 상처투성
이로 쉴새 없이 치료를 받는다. 광주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목포로 향한다. 해안따라 두발로 여행하며 이용한 터미
널을 두 달 만에 다시 찾게 된다. 인근 찜질방을 찾아 하루를 마감한다. 우리가 부산을 떠나 목포까지 이동 중에 부산과
산청 진주는 물난리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다. 행운이 깃든 갈가브러더즈(갈 때까지 가보자! 형제)는 잘도 피해
다닌다.
140826화.13일차. 목포에서 협재해수욕장까지
9시 배를 타기 위해 일찍 서두른다. 뒷브레이크를 자가수리하고 시내길을 달리고 달려 여객터미널에 도착. 급히 컵라면
으로 요기를 하고 승선을 한다. 43년 전인 1971년 여름 고1때 친구들과 한라산을 가기 위해 500톤급 도라지호를 탄 기
억이 뚜렷하다. 상규가 야구시합을 시청하는 사이 우선 객실에서 토끼잠을 청한 후 제2의 세월호 사건에 대비하여 구명
보트인 LIFERAFT 하선방법을 세심하게 숙지한다. 그리고 구명조끼도 착용해 본다. 하늘은 흐린 듯 하면서 강한 햇빛을
아낌없이 보낸다. 무열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온다. 두 달 전 딸을 위해 제주시에 정착한 이형진의 원룸에서 28일에 만나
기로 약속을 한다. 오랜만에 보고픈 딸 나현과 통화를 하며 그 간의 상황을 대충 전한다. 오후 2시경 제주항에 도착하지
만 복잡한 배의 구조로 자전거를 찾는데 한참을 헤맨다. 성게국으로 식사를 하고 4시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제주일주 자
전거여행이 시작된다. 우선 용두암을 찾았지만 자전거인증센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어 포기하고 협재해수욕장으
로 질주를 한다. 자전거만을 위한 길이라고는 찾기 어렵고 위험스런 라이딩을 해야만 한다. 23년만에 다시 찾은 제주의
경치는 예나 지금이나 훌륭하고 아름답지만 자전거족을 위한 배려는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다. 협재해변을 찾아가는 길
이 생각보다 멀다. 야간 라이딩 중 경상대 여학생 둘을 만난다. 헬멧도 없고 전조등도 없는 철부지 둘을 앞 뒤로 보호하
며 오후 8시경 도착한다. 그들은 예약된 게스트하우스로 가고 우리는 예약이 필요 없는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화장실,
편의점 모두가 가깝고 전망 좋은 곳에 하루살이 집을 짓는다. 빨래하고 라면에 막걸리를 마시며 제주를 즐긴다. 여행을
즐긴다. 밤바다를 즐긴다.
140827수. 14일차. 협재해변에서 성산까지
내일 일정을 위해 서둘러 08시에 협재해변을 떠난다. 여전히 자전거길이 불만이다. 제주도 당국은 자전거길에 전혀 관
심을 보이지 않은 듯 하다. 도대체 해안따라 자전거도로가 별도로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지도를 보고 GPS를 확인해도 자
꾸만 헷갈린다. 그럴 수 밖에. 제주를 일주하면서 진행방향 중심으로 동서남북이 수시로 바뀐다. 길도 UP-Down이 매우
심하고 지나가는 차량들은 자전거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고 서울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계속된 빵빵 소리
가 우리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한다. 겁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우리도 도로점용을 할 권리가 있어 당당하게 페달
을 밟는다. 화순해변을 지나며 고1때 한라산 등반 후 친구들과 며칠간 머물렀던 추억을 되새긴다. 오늘의 목표점은 성산
인데 12시경 경유하기로 한 서귀포도착이 오후 3시가 되고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비는 억세게 뿌리다가 그치는듯하
면서 또 다시 지속된다. 잠시 비를 피할 겸 강정에서 자장면을 맛있게 먹는다. 계속 해안따라 길을 찾았지만 놓치는 경
우가 많다. 어둠 속에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잠시 피해있는 사이 우리처럼 성산까지 가는 혼자 온 세종대생을 만난다.
아직도 30Km가 넘게 남았고 우리는 어딘가에서 숙박을 하려 계획했지만 세종대생을 혼자 보내기가 걱정되어 동행이
되어주기로 한다. 헬멧도 없고 빌린 자전거도 부실한 듯 몹시 힘들어 한다. 학생을 중간에 세우고 무려 3시간동안 야간
에 폭우를 헤치며 페달을 밟고 달린다. 선두에서 어둠과 폭우를 무시한 채 질주본능을 느끼며 거침없이 환상적으로 달
리는 상규의 모습은 인간 승리이고 차라리 묘기대행진이다. 나는 캄캄한 바닥을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학생 자
전거의 빨간 불빛만을 열심히 따를 뿐이다. 대단한 용기와 도전 정신을 가진 세종대생은 미리 예약된 게스트하우스로
가고 우리는 60년대 동네목욕탕 같은 전국 최고가인 9000원짜리 찜질방으로 스며든다. 다만, 편히 빨래 할 수 있고, 뜨
끈뜨끈한 방 하나를 빨래 건조방으로 해놓은 것은 마음에 든다. 캔맥주에 라면을 시켜먹고 상규는 잠을 청한다. 12시경
오늘 일을 메모하는 중 강원도가 고향이고 딸과 부산에서 왔다는 식당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걸며 묻지도 않은 자기 소
개가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진다. 옆에선 전라도에서 건너와 여관을 운영한다는 형님뻘 아저씨가 캔맥주를 권하며 대화
방에 끼려 한다. 모두 다 좋은데 나는 바쁘고 졸리다. 그들의 관심을 적당히 자르고 일기를 마무리한 후에 1:30경 잠을
청한다.
140828목.15일차. 성산에서 제주까지
상당수의 관광객이 빠져나간 8시경 잠에서 깬다. 밖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우린 또 다시 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잘
마른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지만 바로 젖는다. 비를 맞으며 운무에 휩싸인 애매모호한 분위기의 섭지코지를 한 바퀴 돈
다. 마치 우리가 중국으로 여행 온 듯 온통 중국인들이다. 성산에서 월정리해변까지 이어지는 길은 그 동안의 불편했던
제주길을 보상이라도 하듯 비록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4대강자전거길보다 더 환상적이다. 비를 맞으며 바다를 끼고 달
리는 기분을 상규와 나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해안따라 두발로 걷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기분 아름다운 풍경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꼭 아내의 손을 잡고 걸어봐야 할 길이다. 상규도 동시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 월정해변엔 꽤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그 이후로는 도로사정이 여의치 않고 비는 더욱 세차진다. 잘 생긴 정자에 자리잡고 건조국거리와
햇반으로 우리만의 특별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다. 비록 막걸리 한 잔에 얼렁뚱땅 비빔밥이지만 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
보며 먹는 맛이란 그 어떤 음식과도 비교가 안 된다. 썰물 때를 맞춰 해산물을 캐러 바다로 나가려는 아낙네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아듣지도 못한 채 마지막 길을 떠난다. 인도 겸 자전거도로로 만들어 놓은 길로는 너무 위험해 도저
히 지나갈 수가 없어 일반 차도를 택한다. 비는 여전히 양보를 모른다.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상규의 비탈길 오름은 거
침이 없다. 오후 6시 거의 다 되어 당분간 서울에 간 이형진의 원룸에 도착한다. 광연이의 조언대로 동남시장에서 은갈
치회와 전어회 소맥등을 준비하고 원룸에서 무열이를 기다린다. 주인 없는 집에 업무상 온 친구와 여행 온 친구가 모여
술 한 잔 나누는 것에 매우 이색적이고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여행 중 두 번씩이나 도움을 준 무열이가 고맙다.
140829금.16일차. 제주에서 목포까지
오후 5시 배를 기다리며 형진룸에서 대기한다. 이 것 저 것 가방 정리를 하며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고 콧물 없이는 말
할 수 없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과거와 현재의 사랑이야기를 끊임없이 주고 받는 사이에도 하늘은 무심한 듯 비만 보낸
다. 제주시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본 후 다시 형진룸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깨끗이 정리를 마치고 오후 5시 목
포행 배를 타러 더욱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제주국제연안여객선항으로 간다. 신비감이 감도는 비 내리는 선상에 둘이
앉아 점 점 멀어져 가는 제주를 바라보며 지난 16일간의 자전거방랑을 안주 삼아 소맥을 마신다. 여러 친구들에게 사진
을 보내며 우리의 현 위치와 자전거방랑이 아직도 진행형임을 알린다. 11시경 목포에 입항하고 며칠 전 묵었던 찜질방
으로 다시 향한다.
140830토.17일차. 영산강하구둑에서 담양까지
토요일이다. 날씨가 모처럼 맑다. 어렵사리 영산강하구둑을 찾아간다. 출발에 앞서 커피를 마시며 영산강하구의 평화스
러운 경치를 만끽한다. 자전거도로가 훌륭하게 조성되어 있다. 가을을 노래하며 좌우로 도열한 코스모스가 매우 인상적
이다. 또 자전거 튜브가 바람났다고 아우성이다. 결국 찜질방에서 7시에 출발했지만 자전거길에서 시작된 시각은 9시경
이다. 그림같이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 홀리듯이 페달을 밟는다. 결국 길을 놓치고 생각지 못했던 고개를 숙여가
는 누런 벼들을 만나게 된다. 다시 자전거길을 찾고 나서 담양에서 대나무숯가마찜질방을 운영하는 정경수에게 우리가
7시경 도착할 것을 알린다. 야생마 같은 야우라(야간 우중 라이딩)도사의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그러면서 거침없는 질주
본능이 우리를 순식간에 담양댐까지 데려다 놓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또 다시 길을 잃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광주시
내를 관통한다. 광주무등경기장 앞 도로는 완전 주차장이다. 거대한 주차장 내에 신호등이 있는 것 같다. 자전거길로 접
어들었을 때는 이미 하루 해가 할 일을 마치는 시간이다. 게다가 오늘의 제2 펑크로 튜브를 교체한다. 어둠이 깔리며 선
녀의 눈썹처럼 아름다운 초승달이 걱정스런 빛으로 부드럽게 내려다 본다. 정경수에게 조금 늦을 것을 통보하고 영광
에 있는 황대권에게는 9월1일에 찾아갈 것을 약속한다. 머리와 자전거 뒤꽁무니에 불을 밝히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질주한다. 마치 움직이지 않는 어두운 그림을 응시하는 듯 착각을 하며 똑 같은 불빛에 의지한 채 계속 빨려 든다. 좌도
우도 보이지 않고 블랙홀로 빠져드는 느낌 속에 단 한차례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상규는 야우라
도사답게 귀신처럼 달린다. 오후 9시20분이 되어서야 공포의 질주는 끝나고 35주년 행사 이후 5년만에 반가운 경수를
만나게 된다. 6년전 아내와 왔을 때와는 별반 변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시절의 수상함에 많은 영향을 입은 듯 경수가 힘
들어 한다.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소맥으로 오랜만의 만남을 축하하고 여러 친구들의 소식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