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이봐,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 다 듣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요점만 말해, 요점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저희 공원들은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는 근로조건에는 단 한 가지도 맞지 않는 악조건 속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며 매일같이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근로시간 문제인데, 저희들은 아침 8시부터 밤 10시나 11시까지 하루 평균 14시간씩, 1주일에 98시간 이상을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근로기준법에는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저희들은 한 달에 겨우 두 번, 그것도 유급이 아니라…….」
「이봐, 요점만 말하라니까!」
「……더 이상 어떻게 요점을…….」
전태일은 근로감독관이 자신들의 편이 아닌 것을 재차 느끼며 당혹감에 빠지고 있었다. 근로감독관은 각 공장에서 나라가 정한 근로기준법을 잘 지키고 있는가 감독하고, 위반 사실이 있을 때는 고발조치를 하여 그것을 시정하도록 하기 위해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나라에서 월급을 주는 사람이므로 당연히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어왔었다.
전태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근로감독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인 공장 얘기를 듣고도 놀라거나 동정하는 빛은 전혀 없이 무작정 간단하게 말하라고 몰아댔다. 일거리가 너무 많이 그런 것일까? 몸에 밴 공무원 행투 때문일까? 근로기준법은 분명히 나라가 만들었고, 근로감독관은 그 법이 잘 지켜지도록 감독하는 사람 아닌가? 그러면 틀림없이 우리 공원들 편이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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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모두가 사람답게 일하고, 다같이 사람다운 대우를 받아야 한다. 사람은 누가나 평등하다…….
이 변함없는 생각이 노동청으로 발길을 이끌어갔다. 그러나 노동청의 불친절과 냉대도 시청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조금은 나았다고 할 수 있었다. 노동청에서는 ‘실태조사’라는 것을 한 번 나오기는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실태조사라는 것이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났다. 근로조건을 개선하라는 노동청의 지시는 한마디도 없는 채 평화시장 일대에 ‘위험분자 전태일’이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그 소문은 바로 집단따돌림으로 연결되어 더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 일을 겪고 나서 전태일은 근로감독관들이 기업주들과 결탁하여 서로서로 봐주면서 잇속을 챙기는 기묘한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사회 상층부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부정부패와 비리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목격한 계기였다.
나라에서 만든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기업주들을 감시·감독해야 할 근로감독관들이 오히려 기업주들과 결탁하여 근로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는 경찰이 도둑놈의 돈을 먹고 도둑놈을 놓아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그 배신행위도 말문이 막히는 것이었지만 전태일이 더 낙망한 것은 바보회의 해체였다. 그들의 벽이 두껍고 높을수록 바보회는 더 강해지고 커져야 했다. 그러나 그동안 별다른 동질감이나 결속력을 보이지 못한 채 힘이 붙지 않았던 바보회는 그 사건을 계기로 해체의 위기를 맞고 말았다.
「여러분, 우리는 두 가지 면에서 바보입니다. 첫째 우리는 근로기준법에 의해서 당당하게 인간으로 대접받으며 일할 권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기계 취급을 당해 인간 이하의 학대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 한마디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모임은 바보들의 모임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저는 이 모임을 준비하면서 나이 든 선배 재단사들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건 가당찮은 일이다. 노동운동 한다고 설치고 나서는 놈은 바보’라고 했습니다. 예, 좋습니다. 우리가 다 흩어져 있을 때는 아무 힘도 없는 바보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열이 뭉치면 열 개의 힘이 되고, 백이 뭉치면 백 개의 힘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 바보들이 철통같이 뭉칩시다. 그래서 바보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 이 세상에 당당하게 보여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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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친목회는 지체 없이 첫 사업을 시작했다.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는 데 필요한 자료를 구체적이고 충분하게 확보하기 위한 설문지 배포였다. 설문지는 작년에 쓰다 남은 것이 잘 보관되어 있었고, 작년 같은 실패를 거듭하지 않으려고 업주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비밀작전을 짰다. 그 작전은 성공해서 며칠 만에 126매의 설문지를 회수하게 되었다. 그들은 설문조사를 분석하고 통계를 내는 한편으로, 수백 개에 이르는 작업장들의 위치·구조·시설 등의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진정서에 무게를 더하기 위하여 보다 많은 노동자들의 서명을 받으려고 애쓴 결과 삼동회 회원 외에도 90여 명의 서명을 받는 데 성공했다.
삼동친목회는 마침내 1970년 10월 6일 노동청장 앞으로 ‘평화시장 피복제품 상종업원 근로개선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나왔다, 나왔다, 기사 나왔다!」
‘골방서 하루 14시간 노동’이라는 기사 제목을 확인한 그들은 환호성을 터뜨리며 서로 얼싸안았다. 10월 7일자 경향신문은 평화시장 피복공장들의 실태를 사회면 톱기사로 다루고 있었다. 신문기사의 효과는 당일로 금방 나타났다. 각 업주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만든 평화시장주식회사에서 노동청에 진정서를 낸 대표자들을 찾아나선 것이다.
다음날 전태일과 다른 두 간부는 평화시장주식회사 사무실을 먼저 찾아갔다. 그건 공원으로서 최초의 일이었다. 사장과 공원의 사이란 군대의 장군과 졸병 사이나 마찬가지라서 평소에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형편이 달라져 있었다. 신문보도로 용기를 얻은 재단사들은 기업주들의 대표기관에 찾아가서 따질 것을 따지고 나선 것이다.
「진정 내용은 잘 알겠소. 그러나……, 지금 실정으로 요구조건을 전부 다 들어주기는 어려우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우선 환풍기 설치와 조명 시설을 바꾸도록 해보겠소.」
한편, 느닷없는 신문보도에 놀란 노동청에서는 더 보도되는 것을 막으려고 실태조사를 한다느니, 근로기준법 위반업체를 고발하겠다느니 하며 수선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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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하늘은 우는 듯 아침부터 잿빛 구름으로 흐렸다. 평화시장 일대에는 지난 10월 24일 데모 때보다 더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시장 경비원들은 전보다 더 불어난데다 경찰 병력까지 요소요소에 삼엄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마침내 오후 1시, 종업원들을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업주들은 공장을 지키고 있었고, 경비원과 형사들은 국민은행 안으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막아 노동자들의 집결을 차단시키려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물이 어디든지 스미고 솟듯 금방 500여 명으로 물결을 이루었다.
삼동회 회원들은 형사들의 눈초리를 피해 3층 복도 구석에서 아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회원 몇 사람은 벌써 경비원들에게 끌려가 감금 상태였다.
「됐다, 내려가자!」
1시 30분경 전태일이 옷 속에 감추었던 플래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붉은 글씨로 쓴 종이 플래카드를 들고 그들을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2층 복도에서 형사 두 사람이 쫓아왔다. 몸집 건장한 형사들은 성난 짐승 같았다. 그 완력 앞에서 종이 플래카드는 곧 찢어졌고, 회원 서너 명까지 심하게 구타를 당하며 끌려갔다.
국민은행 앞에서는 500여 명의 남녀 노동자들이 경찰과 경비원들의 거친 몽둥이질 앞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있었다. 전태일은 10분쯤 지나 회원들 옆에 나타났다. 그는 가장 친한 친구 김개남을 끌어당겨 급히 옆골목으로 갔다.
「너 성냥 있지? 불 좀 켜봐.」
전태일의 말에 김개남은 무심코 성냥을 켰다. 다음 순간 전태일이 다가서는가 싶더니 옷에 불이 확 붙었다.
「아니, 태일아!」
김개남은 눈이 뒤집혀 소리쳤다. 순식간에 온몸이 불길에 휩싸인 전태일은 큰길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불길 속에서 전태일이 외쳐댔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향해 뛰는 불길이 외쳤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아!」
전태일은 불길과 싸우며 무슨 구호를 또 외쳤다. 그러나 입에서는 말 대신 허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또 외쳤다. 역시 허연 연기만 한 줄기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는 불길과 함께 쓰러졌다.
1970년 11월 13일 23세의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온몸에 불을 질러 자살하였습니다. 전태일의 분신사건은 경제성장을 강력한 무기로 내세우며 선전하던 박정희 정권의 내면에 숨겨져 드러나지 않던 노동문제를 양지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철저히 기업과 재벌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쳤습니다. 쿠데타 직후 부정축재 처벌을 위해 기업인들을 체포하고 벌금을 부과하였지만, 벌금은 현금 대신 공장을 지어 주식으로 납부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노동조합연맹을 강제 해체하고 노동단체재건 조직위원회라는 어용단체를 조직하여 노동탄압을 전개하였습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재벌들에게는 정부 발주 사업을 주거나 이율이 싼 차관을 주는 등의 특혜를 베풀면서 정치자금을 헌납받았습니다. 1960년대에 40여 개의 기업이 거의 모든 산업을 독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1970대 들어 외국 차관과 사채를 무리하게 끌어다 쓴 기업들이 대거 부실기업이 되자 박정희 정권은 사채를 사실상 갚지 않아도 되는 ‘8.3 긴급경제조치’를 발표하여 또다시 재벌들 손을 들어줍니다.
"고운 손으로는 살 수 없다. 전체 국민의 1% 내외의 특권 지배층의 손을 보았는가? 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다."
박정희의 저서인 ‘국가와 혁명과 나’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박정희의 행보는 위 내용과는 정반대로 특권 지배층의 손인 고운 손을 보호하는 쪽으로 나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