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면 누구나 토익의 달인’
“유학이요? 지금은 포기했죠. 생각했던 것보다 돈벌이가 괜찮던데요.”(웃음)
미국유학 준비 중 용돈벌이로 시작한 영어강의가 평생직업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는 김대균씨(41)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타 토익강사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1992년 연세어학당과 신림동 고시촌에서 토플과 어휘 강의를 맡았다.
“유학 가기 전에 영어공부도 하면서 과외도 하자는 게 제 계획이었죠. 사실 처음에는 고생만하고 돈도 못 벌었습니다. 그러다 토익을 알게 된 겁니다.”
대학교수를 꿈꿨던 김씨는 이렇게 해서 우연히 토익강의를 시작,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현재 YBM e4u 어학원과 YBM시사닷컴, EBS-TV에서 토익강의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YBM e4u 어학원의 매월 개강일마다 김대균씨의 ‘토익 답이 보인다’ 강의 수강신청을 위해 모여든 학생들로 학원 주변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은 이미 오래된 풍경이다. “딱딱한 시사주간지 <타임>연구 같은 강의만 하다 좀 쉬운 강의를 해보자고 토익에 관심을 갖게 된 게 이렇게 인생을 바꿔놓을 줄 몰랐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에 진학하면 영문학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김씨는 영어시험이라는 영어시험은 거의 만점을 받을 정도로 영어에는 일가견이 있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고려대 영문과에 진학해서도 ‘<타임>연구 동아리’ 회장을 지냈고 영문과 대학원까지 마쳤다.
김씨는 이렇게 영어에 관해서라면 엘리트코스의 정석을 밟았다고 자신하지만 토익강사가 된 데 대해서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기억을 되짚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YBM e4u 어학원만 하더라도 원래는 92년에 독해강좌를 하기로 하고 입사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원장님이 강의를 한번 들어보시더니 그만 나오라고 하시더군요. 강의가 너무 어렵다나요.”
그러다 96년에 다시 기회를 잡은 김씨는 이번에는 토익강의를 들고 면접에 임했다. 그는 “92년에 바로 강의를 시작했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없었을 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토익 강의를 시작한 이후에도 이 같은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은 적이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이미 스타강사로 떠오르기 시작한 그를 시기하는 세력도 많았다. 그가 강의한 내용이 실제 토익시험에 높은 적중률로 반영되자 토익문제지를 사전에 유출해낸 게 분명하다고 토익위원회에 신고한 이들이 있었던 것. 그는 이 일로 2년간 토익 응시자격 정지라는 불이익을 당했다. 하지만 이 일로 그는 또 다른 기회를 잡았다.
“토익강사가 토익시험을 못 보면 트렌드를 좇을 수 없으니 강의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 다른 나라의 영어교재도 살펴볼 겸해서 일본 방문길에 올랐습니다. 거기서 우연히 일본 토익시험을 치르면서 위기를 극복했죠.”
토익시험은 79년 일본 통산성(MITI)에서 직장인의 일반적인 영어 구사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 ETS에 요청해 개발한 테스트다. 따라서 일본에서 토익시험을 치르는 것은 토익의 종주국에서 시험을 치르는 셈이 된다. 그는 일본에서 토익 만점을 받았다. 결국 이 일은 그에게 ‘일본토익 만점강사’라는 또 다른 타이틀을 안겨주는 계기가 됐다.
그는 당시 일본 영어교재를 살펴보면서 우리나라 교재의 우수성을 실감하기도 했다. 아예 일본 유명 출판사에 자신이 쓴 <토익 답이 보인다>를 한권 주고 왔다. 이 책은 일어로 번역돼 현지에서 10만부 가량 팔렸다. 그는 “인세를 받으니 일본 관광비용은 충당하고도 남더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는 자신도 유학의 꿈을 키웠던 적이 있지만 이 일을 계기로 국내에도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좀 심하게 말하면 한국은 ‘영어 병’에 걸린 나라입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의 훌륭한 어학교재도 한국에 이미 많이 들어와 있는 상태죠.”
그는 지금까지 토익시험만 70회 이상 치렀다. 만점도 여러 번 맞다 보니 ‘의지만 있으면 한국에서 공부해도 해외에서 공부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고.
그가 강의를 위해 하는 노력은 토익시험 응시만이 아니다. 새벽 4시30분에 시작하는 빡빡한 일과 속에도 수강생과 돈독한 관계를 맺는 데 힘쓴다. 강의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다. 최근에는 20~30대 젊은이들이 즐겨한다는 ‘미니홈피’도 열었다.
그는 오전 6시55분에 첫 강의를 시작해 오후에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뒤 오후 9시까지 강의에 매달린다. 집에 돌아와 밤 12시에 잠이 들기 전까지는 집필활동을 한다. 토요일에는 인터넷 동영상 강의 촬영과 라디오 강의 녹음을 한다. 일주일 중 쉬는 날은 일요일 하루다.
아무리 바빠도 끼니는 거르지 않는다는 김씨는 “노동자는 밥을 꼭 챙겨 먹어야 한다”고 농담을 건넸다. “정신적으로도 힘들지만 강인한 체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직업이니까요. 밥도 보약도 잘 챙겨 먹습니다.”
그는 똑같은 내용의 강의를 하루에 8번씩 한다. 같은 말을 매 시간 새로 하는 말처럼 하려니 정신적으로도 피곤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덕분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크게 못느낀다. 지난해 그가 낸 세금이 약 2억원이다. 따라서 그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1박2일의 여유만 생겨도 해외여행에 나선다. 세계일주가 그의 평생 꿈이기도 하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이미 30회도 넘게 다녀왔다. 직업병인지 해외에만 나가면 꼬박꼬박 사 들고 들어온 영어교재만도 상당하다.
물론 토익을 두고 제대로 된 영어실력을 평가할 수 없는 테스트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많다. 토익 전문강사로서 이에 대한 고민은 없을까.
“문법지식을 묻는 시험일뿐 회화능력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토익위원회에서 말하기시험(SEPT)도 개발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지금 우리나라는 영어교육의 과도기”라면서 “수강생만 봐도 과거에 비해 요즘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매우 좋아졌음을 알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 입장에서는 회화 위주의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도 당장 취업난이 심각하니까 토익 위주로 공부하게 되는 겁니다.”
그는 토익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토익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회화도 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토익의 예문이 생활에서 필요한 지문에서 발췌되는 것인 만큼 예문의 어휘를 잘 활용하면 그게 바로 영어회화 실력을 키우는 지름길”이라고 힘줘 말했다.
세계여행 이외에 그의 또 다른 꿈은 영어강사의 일과 생활을 그린 소설을 쓰는 일이다. 그는 다른 강사들의 비방 속에 오히려 홍보효과가 발생해 유명해진 자신의 사례나 학원강사가 학원을 자주 옮기면 결국 경쟁력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영어강사라는 직업의 독특한 특징을 설명했다. 따라서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는 영어강사의 정년을 45세로 보고 있다. 학원강사를 그만둔 뒤에는 자선사업을 하겠다는 것도 그의 목표다.
또 하나의 꿈은 영어와 관련된 책을 내는 것이다.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을 쓴 김씨는 “토익 책 대신 영어와 관련해 누구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고전이 될 만한 책을 한권 남기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김소연 기자 selfzone@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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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64년생. 91년 고려대 영문과 졸업(교내 동아리 타임연구 회장 역임). 95년 동 대학원 졸업. 92년 연세어학당, 서강대에서 토익, 토플, Vocabulary, Reading 강의. 95년 서울경제신문, TIME지 칼럼 번역 총괄담당. 96년 YBM시사어학학원 토익강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