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음메 들논 다 쓸것다
여덟.
북서쪽 어디선가 서서히 바람이 일더니 시커먼 구름 한 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앞바다를 삼키고 앞들을 삼키고 집 위를 뒤 덮더니 햇살이 언제 있었나 싶게 하늘이 온통 먹장구름으로 덮이고 있었다.
“어메. 비오겄다.”
옆집 선구 엄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투두둑- 투둑- 굵은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고 콩 볶는 소리가 옆집 양철 지붕에서 들려왔다. 땅바닥의 마른 흙이 어메야 소리를 내며 튀고 있었다. 제대로 비가 올 모양이었다. 먼 섬 너머로 번개가 번쩍거리며 하늘을 가르고 연이어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절골 논에 잠 가봐야 쓰겄다.”
아부지는 반타작 난 삽을 걸머메고 비료 푸대로 만든 비옷을 뒤집어쓰고 나섰다.
“비 들친데 풍채 좀 쳐라. 밭에 거름 덮고 와야 쓴께. 진작 이 비가 왔어야 허는디 쎄빠질 놈의 비가 모가 다 타서 죽어 가는 지금에서 온다냐.”
엄니도 마람을 머리에 이고 사립문을 밀고 바쁜 걸음으로 나갔다.
처마에서 주루룩 죽죽 소리를 내며 마당에 떨어지는 점점 빠르기로 변하더니 좍-좍 쏟아 붇고 있었다. 잠시랄 것도 없이 집 옆 도랑물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안 있어 산에서 작은 돌멩이들이 도랑을 구르며 바다로 난 길을 향해 달려 갈 것 같은 기세의 비였다.
목말랐던 대지와 돌담의 호박잎, 마당가의 항아리도 소리지르며 울부짖고 있엇다. 풍채를 대강 기둥에 묶어놓고 우비도 없이 소 코삐를 챙겨들고 소를 찾으러 나섰다. 이런 비에 우비는 거추장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빗방울이 얼굴을 빗겨 때리는 통에 머리를 들고 앞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산길로 접어드는 계단을 오르며 내려다본 들 논은 30분이 채 되기 전에 거의 물에 잠겨 들고 있는 모양 이었다. 뒤뜰을 가기도 전에 밭 두덩을 넘는 빗물이
길가로 스며들며 넘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가 오면 소들은 칙칙한 산에서 나와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 마련이지만 워낙 갑자기 쏟아져 내려 찾을 수 있을지가 걱정 이었다. 몇몇 소는 홀로 집을 찾아 내려오고 있었고 아직 중학교가 파할 시간이 일러 소를 몰러 올라가는 녀석들도 없었다. 늧은 오후 시간이라면 그늘에 느긋이 앉아 녀석들이 소를 몰아 올 때까지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키며 집에서 가져온 밀가루를 가지고 호떡을 굽거나 보리를 볶아 먹거나 두 패를 나누어 기마전 닭싸움을 시키며 노닥거릴 것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두들 비설겆이를 하고 있거나 논밭으로 달리고 있을 시간 이었다.
“이 비를 맞고 어디를 가냐.”
절골에 논을 몇 마지기 가지고 있는 삼식이 아부지가 반바지 차림으로 괭이를 메고 뒤쳐져 가며 물었다.
“야, 소찾으러 가요.”
“비 이렇게 오면 소가 비문 알아서 집 찾아 가것냐. 그란데 뭐 하라고 찾으러 다녀야.“
바삐 걷는 걸음에 숨이 가뿐지 쉰 소리를 내며 타박을 한다.
“아니어라우. 지난번에도 비가 옹께 큰 나무 아래서 비 피해 있음스로 안 내려와서 찾는다고 산을 헤집고 다녔당께라.”
“그려. 남의 소는 다들 안 내려 오드냐. 그 소가 느그 아부지답게 우직해서 안 그라냐.”
“논둑이 괜쟎을랑가 모르것소이.”
대답대신 화제를 돌리며 논 쪽으로 눈길을 주며 인사를 대신했다. 밑이 거의 닳은 고무신이 빗물에 홀짝 홀짝 소리를 내며 발에서 빠져 나오며 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절골을 지나 둔무골에 올라서서 휘돌아보았지만 우울한 기운이 골짜기를 덮고 있어 어느 방향에 소 떼가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비에 눈을 뜨기조차 쉽지 않아 언덕 위 바위 밑에 몸을 들이밀며 두 손을 가리게 삼아 여기저기 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빗소리 때문에 소목에 달려 땡-그랑 거리는 핑게(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앉아 푹 젖어드는 산을 바라봤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어머니 젖무덤처럼 유연한 곡선을 가진 이 산들을 사랑했다. 언제부터인가 산이 마냥 좋았다. 떨지락 돌로 키 높이 쌓고 잎이 제법 큰 나무 가지를 잘라 지붕을 덮고 그 안에 누워 잠이 들거나 홀로 성주처럼 좌정하고 앉아 산 아래를 굽어보며 새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며 이놈의 소가 빨리 제 걸음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농사를 고만 고만한 논밭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사는 살림에 소는 큰 재산이었다. 한해가 멀다하고 송아지를 낳아 팔면 목돈을 쥐게 해주는 소였고 바쁜 농사철 논과 밭을 갈아 사람 열 몫을 하는 게 소였다. 아버지는 유난히 소를 애지중지 하였다. 송아지라도 낳을라치면 외양간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여물을 챙겨 손수 송아지를 받아 마치 자식처럼 돌보는 것이었다. 소를 뜯기러 나갔다가 잃어버리고 그냥 오는 날은 날벼락이 떨어지고
모든 가족이 그 밤에 산속을 헤매며 찾아 나서길 여러 번이었다. 한번은 사흘 만에 찾은 적이 있었는데 산속에서 송아지를 낳은 소가 새끼를 돌보며
그 주변을 맴돌며 집으로 내려오지 않은 것이었다. 사람 못지않게 새끼를 사랑하는 어미 소의 모정을 그때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힘센 소라도 어린송아지를 달고 다니는 어미 소 에게는 감히 덤비지 못했다. 죽자 살자 새끼를 돌보는 그 힘 때문에 당해 낼 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일 년 두어 차례 마을을 도는 소장수가 와서 송아지를 팔 때 어미 소는 종일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보는 사람도 가슴이 미어질 정도의 아픔과 슬픈 이별 이었다. 소는 한 식구였다.
한 시간 여가 지났지만 빗줄기는 가늘어지지 않았다. 산골짜기를 흘러가는 물소리가 고갯마루까지 들려 왔다. ‘찾아 나서야 할랑갑다’
치올렸던 바짓가랑이를 내리며 일어섰다. 조금씩 체온에 말라던 옷에서는
모락거리며 김이 오르고 있었다.비가 두 시간째 빗금을 그으며 내리 꽂히고 있었다. ‘큰 물지겄다’
금새 가슴속까지 젖어 드는 것을 느끼며 세찬 빗줄기를 속을 헤집고 냇가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갔다. 큰 잎사귀를 때리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리며 묘한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작은 개울이었던 도랑물은 어느새 대 여섯 배의 폭을 가진 작은 강줄기가 되어 있었다. 황소라도 건널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소리를 내며 내닫는 기세에 감히 가까이 갈수 없었다. 가끔 큰 바위가 물속에서 구르는 소리가 우르릉 하며 들려왔다. 아직도 몇 시간이고 퍼 부울 것 같은 하늘의 먹장구름을 올려다보며 발길을 돌렸다. 아무래도 비가 좀 개이면 찾아 나설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고개로 올라 왔지만 아무도
소를 몰러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하기사 이 비를 맞으며 소몰이를 나오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워-워”
소가 근처에 있으면 목소리를 듣고 반갑게 나오길 바라며 소리를 질렀지만 빗소리에 묻혀 지척에도 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발걸음을 돌려 내려오는 길에 눈을 비비며 산 중턱에 조막논들을 보니 벼는 거의 잠겨있고 논둑은 온통 폭포가 되어 있었다. 논두렁 여기저기는 우비도 없이 맨손으로 논둑을 헤집으며 보를 넓혀 물을 빼느라 줄달음을 치는 이들이 보였다.
어디선가 논둑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곳 가까이 이르러 들 논을 바라보며 망연히 섰다. 들 논은 온통 흙빛으로 덮여 저수지가 되어 있었다. 저쯤 되면 도랑근처에 있는 논 할 것 없이 들 논은 허리 높이로 돌과 모래와 자갈이 쌓여 일 년 농사가 끝장 일 것이다. 아니 여름 한철 자갈과 모래 돌을 걷어 내느라 뼈골이 빠질게 분명해 보였다. 바닷가 방풍림 한 켠에 뚫린 작은 배수로는 지금쯤 막혀 있을게 분명했다.
바닷물이 만조인지 두길 넘는 방풍림 둑의 허리까지 물이 높이 차 올라 있었다. 하늘을 보며 농사를 짓는 촌 노들의 가슴에도 하늘이 뚫려 퍼부어 대는 빗물처럼 피눈물이 쏟아질 것이었다. 봄부터 비 한 방울 오지 않아 둠벙을 의지하며 한 줄 한 줄 모를 심고 밤을 낮 삼아 물을 댔는데 그렇게 지켜낸 벼를 쓸어 가 버리는 것이었다. 논에 심겨진 벼는 그냥 벼일 수 었었다. 농군들의 자식이고 눈물이고 삶의 숨질이었다. 그 숨질이 막히면 그네들은 살 수가 없다는 것을 하늘이 몰라주면 아무도 알아 줄 리 없는 마지막 보류였다. 들 논을 내려다보며 저들 속에 망연자실 서서 땅속에 한숨을 박고 서있는 아부지를 생각했다.
몹시 추운 겨울처럼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울 수도 없어서 막막한 가슴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없이 내리는 비를 뿌리는 하늘을 응시 하고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