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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구간 호미지맥 종주기 (원고개~성황재) 도상거리/ 25.2km (누적거리/ 59.6km)
□ 산행일시/ 2011년 11월 12일 토요일 갬(오전 구름)
□ 참가인원/ 나 홀로
□ 산행진행상황
도착시간 지 명 고 도(m) 특 기 사 항 비 고 06시 30분 원고개 7번 국도/ 동해남부선 철도/ 4차포장도로/ 버스정류장/ 식당 경주 여관에서 숙박 07시 22분 x317 317 정상표지판/ 원고개에서 괘릉마을을 지나 산자락으로 올라섬 05분 휴식 08시 22분 삼태지맥분기점 465 분기점 표지판/ 토함산목장/ 석굴암 주차장까지 도로로 진행 09시 25분 석굴암 주차장 드넓은 주차장/ 정자/ 석굴암통일대종 정자/ 매표소/ 간이매점 10분 휴식 09시 55분 성화채화봉 석굴암주차장에서 성화채화봉을 거쳐 토암산까지 양호한 등로 05분 휴식 10시 06분 토함산 745 정상표지석 2 / 삼각점(불국사24-1989복구)/ 구급약품함 15분 휴식 10시 28분 추령갈림길 이정목/ 토함산 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서 우로 진행 11시 22분 추령 310 백년다원 찻집/ 4번 국도/ 추령재 표지판/ 추원 버스정류장 05분 휴식 11시 48분 x398.4 398.4 정상표지판/ 삼각점/ 큰 바위/ 점심식사/ 무릅보호대 착용 25분 휴식 13시 38분 x494.2 494.2 정상표지판/ 삼각점(불국사496-1995재설)/ 묘 1기/ 토함산 조망 05분 휴식 14시 03분 수랫재 우측 기림사와 좌측 모착골을 연결하는 고개/ 고개 테크 공사중 14시 42분 함월산 584 정상표지판 2 / 볼품없는 평범한 봉우리/ 잠시 과일을 먹고 출발 05분 휴식 15시 46분 x591.4 591.4 정상표지판/ 삼각점(불국사435-1995재설)/ 오늘 구간의 최고봉 10분 휴식 16시 50분 x482 482 헬기장/ 토함산에서 지나온 산줄기와 성황재, 만리성이 조망됨 10분 휴식 17시 10분 성황재 14번국도/ 성황재휴게소/ 오천읍 문덕온천사우나에서 숙박
(산행시간/ 10시간 40분) (누적 산행시간/ 27시간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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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소요경비
버스+지하철(집~화정터미널)/ 2,200원, 고속버스(화정터미널~경주시외버스터미널)/ 22,600원, 저녁식사/ 3,800원
여관/ 25,000원, 아침식사/ 2,500원, 저녁식사/ 7,000원, 사우나(오천읍 문덕온천하와이사우나)/ 7,000원,
(합계경비/ 70,100원) (누적 합계경비/ 203,550원)
□ 산행지도 호미지맥 3구간(원고개~성황재) 도상거리/ 25.2km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산행사진 지난달 28일 호미지맥 두 번째 산행을 이곳 원고개에서 끝내고 지난주에 다시 세번째 산행을 하려고 계획하였는데 직장에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하여 지난주에 산자락을 밟지 못하고 어제 오후에 일산 화정터미널에서 포항행 고속버스로 경주로 내려와서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여관에서 어제 저녁을 머물고 아침 일찍 일어나 24시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06시에 출발하는 모화행 600번 버스로 아직은 어둠이 깃들어있는 원고개에 도착하여 잠시 산행준비를 마치고 추령을 거쳐 성황재를 목표로 산행을 출발하였다. 괘릉(掛陵) 7번국도와 동해남부선철로가 호미지맥의 마루금을 넘어가는 원고개의 괘릉리는 신라 38대왕인 원성왕릉으로 추정되는 괘릉이 있어서 생긴 마을 이름이다. 괘릉은 경북 경주시 외동읍(外東邑)에 있는 798년경의 릉으로 정식 릉호는 아니고 별칭이며 신라 38대왕인 원성왕의 릉이라 추정하고 있으며 괘릉이라고 부르는것은 무덤을 팔때 구덩이에 물이고여 널을 걸고(掛), 그 위에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었기 때문에 괘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괘릉은 현존하는 신라 왕릉 가운데 가장 화려한 무덤이며,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완벽한 능묘 제도를 대표하는 릉으로 통일신라시대를 전후하여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풍수지리설이 바야흐로 그때부터 능묘 입지의 주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우리나라 풍수 분묘의 기원이 되고있는 곳이라 할 수 있는데 조선후기부터 수장한 임금이라면 문무왕릉이라고 하여 이곳에 문무왕릉이라고 표지석을 세웠으나 1967년에 대왕암이 문무왕을 장사지낸 곳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1973년에 원성왕릉으로 수정되었다고 전해지고있다. 괘릉(掛陵) - 펌 사진- 원고개에서부터 시멘트임도를 따라 괘릉마을회관을 지나서 감산사 입구로 가는 도중 감산사 입구 근처의 한 아담하고 예쁜 집 안에서 저 황구가 아침부터 목청을 돋우며 짖어댄다. 감산사지(甘山寺址) 경북 경주시 내동면 신계리에 있던 신라때의 절터인 감산사는 신라의 중아찬, 김지성이 감산에 있는 장전(莊전)을 희사하여 부모의 명복과 성덕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하여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 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1915년경에 이 절터에서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81호)과 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82호)이 발굴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여기에는 3층석탑 1기와 연꽃무늬가 돌려있는 석등(石燈), 대석(臺石)이 남아있을 뿐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서는 이곳에 감산사지 표지석이 있었는데 철거를 하였는지 보이지 않는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괘릉마을을 지나서 한동안 올라온 임도를 버리고 "산불조심" 현수막옆의 산자락으로 올라서고... 원고개에서 시멘트길을 한동안 올라와 산자락으로 접어들어 첫 번째 올라선 317봉우리 마루금이 선명히 돋 보이는 낙옆이 보이는 능선길을 걷고... 잠시후 모습을 보이는 남쪽으로 산맥이 이어지는 삼태지맥 분기봉이 모습을 보인다. 삼태지맥 분기점 삼태지맥 분기점 아래에 토함산 한우목장의 한우들이 물가옆에서 한가롭게 노닐고있는 평화로운 모습이 보인다. 토함산목장 끝자락에 토종닭과 산토끼등의 음식을 파는 토함산 솔밭가든 광고판이 보이고 여기서부터 945번 지방도로의 2차선 아스팔트포장도로를 따라 지루하게 석굴암주차장까지 이어진다. 토속 도자기등을 취급한다는 토함정사 입구를 지나고... 지루한 아스팔트길을 걸으며 잠시 셀카 한장 찰칵... 여기서부터 경주국립공원 지역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보이고... 이곳에서 좌측 방향은 경주시, 불국사 방향이고 직진 방향이 석굴암쪽으로 이어지는 호미지맥의 산줄기이다. 지루한 아스팔트 포장길 삼태지맥 분기점에서부터 석굴암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945번 지방도로는 주차장까지 호미지맥의 마루금 아니면 9부능선상으로 계속이어지고 있어 도로를 따라 진행하였다. 동산령 528봉 아래에 토함산칡 등을 판매하는 트럭 간이매점이 모습을 보이고... 건너편의 528봉에서 내려오는 토함산 약수터의 "참물래기생수"가 있어서 한 모금 마셔보니 시원하고 맛이 그만이다... 한 여름에 이곳을 지나면서는 물 보충하기에 최적일것으로 보인다. 석굴암주차장 매표소 안내판이 보이고... 석굴암 주차장 넓은지역의 주차장이 조성되어있고 토함산쪽으로 "석굴암통일대종"이 설치되어있는 커다란 정자가 보이고 석굴암 석불 입구에는 "세계유산 석굴암석굴" 표지석이 보이고 석굴암석굴에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와 그 좌측에 토함산공원지킴터가 자리잡고 있어서 잠시 둘러보고 좌측의 토함산공원지킴터를 지나서 토함산으로 향하였다. 석굴암 석굴(石窟庵 石窟)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10년(서기751년)에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하여 혜공왕10년(서기774년)에 완성하였다.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고 하며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서기742년~765년) 동안 신라의 불교 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수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에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등 총40구의 불상을 조각하였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고,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래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驅)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 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이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심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 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없다. 특히 주실 안에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 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지는 듯이 보인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의 걸작품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있다. 현재 석굴암 석불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 석굴은 1995년 12월에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토함산공원지킴터 공원지킴터의 근무자와 잠시 담소를 나누고 토함산을 향하여 발길을 돌렸다. 석굴암 주차장에서 토함산으로 올라가는 등로는 양호하게 잘 다듬어져있다. 바위 중간지점에 인위적으로 구멍을 여러개 뚫어놓은것 같은데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성화채화봉 토함산으로 이어지는 양호한 등로 추령갈림길 토함산 정상 오르기 전 300m지점에 설치되어있는 이 이정목에서 토함산을 올라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300m를 내려와서 토함산 우측 사면으로 진행하여 추령으로 향하여야 한다. 토함산(吐含山) 이 토암산 일대의 총 면적138.2km2 지역이 1968년 12월에 경주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있다.
해발고도 745m의 토함산은 산 자체로 조명되기 보다는 오히려 산기슭의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인해 도 알려진 산이다.
석굴암 일대는 옛부터 해맞이 명소로 각광을 받아 해마다 연초가 되면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인파로 혼잡을 이루는 곳이지만
정작 평상시에 산행을 목적으로 이곳 토함산을 찾는 이는 그리 많지않은 편이다.
송창식의 노랫말에도 있듯이 신라천년 모진 풍파를 지켜보며 세월의 영광과 아픔을 가슴속에 품고있는 산이다.
옛 서라벌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악(東嶽)이라했고 호국불교의 진산으로 신성시되어왔다.
토함산 주변에는 신라 천년 역사를 담은 유물, 유적들이 풍부하여 문화유적 답사를 겸한 산행에 적격이다.
산경표에는 낙동정맥이 남진하여 영남알프스를 일구기 직전 백운산에서 동북쪽으로 곁가지를 틀어서
치술령, 토함산, 추령, 만리성재를 지나 호랑이 꼬리로 알려진 호미곶에 이르기까지 형산강의 남쪽 수계를 관장하고있다.
약간의 억새밭이 펼쳐지는 산정에 서면 사방팔방으로 거칠것이 없는 조망을 선사하고 가까이로 감포 앞 바다를 볼수있는 곳이다.
토함(吐含)이란 이름은 신라 탈해왕의 이름에 연유됐다는 설도 있지만 해(太陽)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토함산 북동쪽 건너편의 함월산(含月山)에 상대되는 산으로 함월산이 달을 머금은 음산(陰山)인 반면
토함산은 모든 양기의 근원인 해를 토해내며 온 세상을 밝게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것이 아닐런지...
그러한 연유로 인하여 옛 부터 이곳 토함산 일대에서의 해맞이가 대한팔경중 하나로 꼽혔으리라 생각된다.
이곳 토함산 지구는 면적이 가장 넓으며 신라문화를 대표하는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石窟庵)이 있다.
불국사는 서기 540년(법흥왕 27년)에 창건하였으며, 다시 서기 751년(경덕왕 10년)에 김대성이 중건하였다.
한국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건축미와 문화재가 많은 최고의 사찰로 경내에는 대웅전과 목탑의 기법으로 세운
화려하고 정교한 석탑인 높이10.4m의 국보 20호인 다보탑(多寶塔)과 높이 3.2m의 국보21호의 3층석탑이있다.
토함산 동쪽에 위치한 국보24호인 석굴암석굴(石窟庵石窟)은 한국불교 조각의 정수로서 이곳에서의 일출 모습은 장관이다.
토함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할 산줄기의 모습
우측 아래로 희미하게 푸른 통신탑이 보이는 추령에서 좌중앙 저 멀리 함월산으로 이어지는 호미지맥의 산줄기
추령갈림길 이정목에서 토함산 우측 사면으로 진행하여 오다보면
아래와 같이 포수우물180m, 추령재2.6km를 표시하는 이정목을 만나는데 여기서 주의해야한다.
얼핏보면 좌측의 능선을 마루금으로 판단하기 쉬운데 이곳에서 추령재쪽으로 진행해야한다.
다시한번 바라본 가야할 추령에서 함월산으로 이어지는 호미지맥의 산줄기 모습
이정목이 추령1.5km, 토함산1.5km를 가리키며 토함산과 추령의 중간지점임을 알려주고있는 478봉우리
잠시 뒤돌아 본 방금 지나온 토함산의 모습
추령 내려서기 1km 전방 지점에 설치되어있는 이정목
마루금은 양호하게 이어지고...
토함산 정상에서 자세히 관찰해 보면 모습이 보이는 추령 직전에 모습을 보이는 이동통신중계탑
백년다원 찻집옆으로 4번국도 구도로의 추령으로 내려서고...
추령(秋嶺)
해발고도 310m의 마루금을 4번국도가 넘어가는 고개로 현재는 신도로 터널이 아래로 뚫려 있어서 차량의 통행이 거의없는 편이다.
정상에 큰 바위 하나가 떡 버티고있는 398.4봉우리
추령에서 성황재까지가 고도차가 심하고 591.4봉까지 계속 올라가는 산행길이라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랜만에 잘 사용하지않는 무릅보호대를 착용하고 오름길에 대비하여 각오를 단단히하고 출발하였다.
멧돼지들의 트레이닝장을 지나고...
정상에 묘 1기가 떡 버티고있는 494.2 봉우리에는 정상표지판과 4등 삼각점이 설치되어있다.
가야할 549봉과 함월산의 모습
공사중에있는 수랫재의 모습
마루금 우측 아래의 기림사와 좌측의 모창골간을 연결하는 고개가 넘어가는 수랫재에는
공사인부 2명이서 공사를 하고 있어서 잠시 담소를 하며 문의를 해 보니 알려주는 말이 이 고개가 수랫재이며
일주일 후면 나무테크와 이정목등이 설치가 완료되어서 산행길이 편리할것이라고 알려준다.
함월산
지극히 평범한 모습의 함월산 정상에 앉아서 물을 먹고있으려니 50대 중반의 한 산객이 아들과 함께 올라온다.
반갑게 서로 인사를 하고 있으려니 두 부자가 김밥을 꺼내 먹으면서 젋은 아들이 내게로 다가와 깁밥 한 알을 권하며
이 김밥이 경주에서 제일 유명한 집에서 사온 김밥으로 맛이 좋을것이라고 자랑을 하여 김밥 한 알을 맛있게 먹고 출발하였다.
한 동안 애를 먹이다가 살며시 모습을 보여주는 오늘 구간의 최고봉 591.4봉우리에는 정상표지판과 삼각점이 설치되어있다.
산사태 지역
오늘구간을 산행하며 여러곳에서 이런 심각한 모습을 보았는데 아마 이 지방의 지질문제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는것 같다.
나무가지 사이로 잠시 뒤 돌아본 방금 지나온 591.4 봉우리의 모습
482 봉우리
오랜만에 조금 긴거리를 더군다나 추령에서부터 591.4봉까지 계속 올라가는 힘든 구간이라
조금은 지치고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이 봉우리에서 마지막 남은 찰떡파이 두개를 먹고 10분을 휴식한 후 성황재로 향하였다.
잘 정돈이 되어있는 깨끗한 모습의 헬기장을 지나고...
마루금이 이렇게 움푹 함몰되어 계곡같이 되어 버렸으니...
담배를 피우지 맙시다... 잔디를 살립시다... 옳소이다...
마지막 성황재까지 양호하게 이어지는 마루금
오늘 산행길이 원고개 조금 지나서부터 이곳 성황재 직전까지의 구간이
경주국립공원지역을 남에서 북으로 종단을 한 구간이었는데...
무원마을이 지금까지 백두대간에서 호미지맥에 이르기까지 산행을 하여왔지만...
이 호미지맥같이 마루금에 잡목이나 잡풀이 거의없는 양호하게 이어지는 산줄기도 드물게 본다.
성황재
14번국도가 마루금을 넘어가면서 포항시 오천읍과 경주시 양북면을 연결하는 고개인 성황재에서
지난달 27일, 28일 양일간에 이어서 세 번째 호미지맥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무원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