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년까지 외과 의사의 조수로 일하다가 독학으로 의사자격을 땄으나, 1년 뒤 병원 근무를 그만두고 시 쓰는 일에 전념하였다.
1817년 그의 첫 시집 <존 키츠 시집>(Poems by John Keats)을 출간. 1818년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다가 패니 브론(Fanny Brawne)을 알게 되어 다음해 약혼을 한다. 23세가 되는 같은 해 그는 4권 4천 줄에 이르는 그리스 신화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우화 서사시 <엔디미온>(Endymion)을 간행했지만, 잡지에서 혹평을 받았다. 낙심한 키츠는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로 여행을 떠나나 여행 중 결핵 증상을 보여 여행을 단축하고 귀가했다.
이탈리아에서 요양을 하면서, 로마의 스페인 광장 근처에 머물렀다.
<로마 스페인광장 계단에 있는 키츠-셸리의 박물관. 로마에서 쌓여간 두 시인의 우정을 상징해 보인다.>
남동생마저 병에 걸려 죽고, 사고무친의 그에게도 몇몇 친구가 있었다.
키츠는 계속해서 중세 취향을 살린 <성 아그네스 축일의 전날 밤>, 민요풍의 <나이팅게일에게>(Ode to a Nightingale), <하이페리온의 몰락> (The Fall of Hyperion) 등을 썼고, 1819년 <성 아그네스의 저녁>(The Eve of St. Agnes), <가을에> (To Autumn), <무정한 미인>(La Belle Dame Sans Merci), <그리스 항아리에 대한 송시>(Ode on a Grecian Urn), <라미아>(Lamia) 등 대표적인 그의 송시(訟詩)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건강 악화로 패니 브론과의 결혼을 포기해야 했다. 실의에 빠진 그는 친구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1821년 25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고, 로마의 묘지에 안치된다.
묘비에는 유언에 따라, "물에다 그 이름을 쓰는 자, 여기 잠들다"(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라고 새겨져 있다.
키츠의 이 자작 비명(碑銘)은 셰익스피어의 <헨리 8세>에 나오는 “사람들의 악행들은 청동에 새겨져 남지만, 그들의 선행들을/ 우리는 물로 쓴다”(Men’s evil manners live in brass; their virtues/ We write in water)는 구절에 빗댄 것이다.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비명을 미리 써두었을 심정을 생각해보라. 또한 '물위에 써온 그 이름'처럼 빛을 보지 못하고 세상에서 금새 잊혀질 자신의 시들에 무한한 비애를 느꼈던 그의 생전 심정을 짐작해보라. 참으로 한 젊은 시인의 절망스런 고독을 느끼게 된다.
다행히 그의 비석엔 친구 셸리의 <아도네이스: 존 키츠의 죽음에 대한 비가>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어 영원히 잠든 그를 어루만진다. “그는 이제 그가 한때 아름답게 만들었던/ 아름다움의 한 부분이다.”(He is a portion of the loveliness/ Which once he made lovely.)
셀리는 <아도네이스>에서 키츠를 위한 애가를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하늘이 푸르고 들이 푸른 한 저녁은 밤을 부르고 밤은 다음 날을 재촉하나니 비애는 달이 바뀌어도 떠나지 않고 해가 지날수록 더해지는 슬픔 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