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곽씨十二정려각
(玄風郭氏十二旌閭閣)
<동구시니어 문화유산해설단 심화학습장에셔 2011.9.26>
소재지 :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지리1348-2번지 대구문화재자료 제29호
<문화재청 자료>
"현풍 곽씨 집안의 유교 도덕에 기본이 되는 삼강(三綱)을 지킨 정려비로, 선조 31년(1598)부터
영조 때(재위 1567∼1608)까지 포상된 12명을 한 곳에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을
잘 지키면 이를 국가에서 포상하며 기리도록 하였다.
한 마을의 한 성씨(곽씨)에서 12명의 포상자가 나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임진왜란 때 안음현감 곽준이 황석산성에서 두 아들과 같이 전사하게 되자 며느리와 출가한 딸이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기에 선조가 정려했다.
곽재훈의 아들 4형제가 임진왜란 때 병환 중에 있는 아버지를 왜적으로부터 보호하였기에
선조가 정려했다.
곽재기의 부인 광주 이씨는 임진왜란 때 왜병을 만나자 순결을 지키기 위해 물에 빠져 죽었기에
선조가 정려했고, 곽홍원의 부인 밀양 박씨는 강도가 들어와 남편을 해치려 하자 죽음으로써 남편을 보호하였기에 현종이 정려했다.
곽수영의 부인 안동권씨는 남편이 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자신이 대신 죽기를 기원했으나,
남편이 죽게 되자 먹지 않고 따라 죽게 되니 현종이 정려했다.
건물은 앞면 12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정려각 안에는 2개의 비석과 12개의 현판이 있다. 건물과 현판은 최근 것이나, 12정려각은
그 유례가 흔치 않은 것으로 중요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정려란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해 효자·충신·열녀 등이 살던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
옛 지명이 솔례촌이다. 일제 치하를 거치면서 지리로 바뀌었다.
입구에 '충효세업(충과 효를 대대로 실천해 왔으며 ), 청백가성(청렴과 결백은 가문의 영예로다)'이란 글귀와 같이 귀감이 되는 안내석.1750년에 영조가 맹사성의 고택[맹씨행단(杏檀):아산시 배방면 증리]에 내린사액현판의 내용을 인용한 것인데, 세조때 ‘청백리(淸白吏)로 선정된 곽안방’이 솔례로 낙향하여 세거지가 되었고 그의 현손이 곽준(정려각 좌측 첫려에 나오는)이다.
정려각의 원경
門中 면우선생의 숭모비와 소헌선생의 행적비,
정려각 전경:
12정려각에는 려(閭)마다 현판이 걸려 있다.
일문3강(一門三綱):한가문에서 충·효·열 삼강(三綱)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윤리도덕의 최고 가치로 순사(殉死)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선조는 일문삼강(一門三綱)이라 하며 정문을 지어 표창할 것을 명했다.
三綱(삼강)은 君爲臣綱(군위신강), 父爲子綱(부위자강), 夫爲婦綱(부위부강)이다.
四효자각('곽재우'의 4촌 동생 곽재훈의 아들 4형제),
양효자각(곽수의 아들 의창,유창)
단청을 새로해 화사하다.
단청의 기본색에는 양록, 뇌록, 장단, 양청, 주홍, 황(석황石黃), 석간주, 먹, 황토, 지당
(분粉의 일종)이
있다. 이를 정색(正色) 또는 원색(原色)이라고 한다. 조색(造色)에는 육색, 삼청, 하엽, 다자,
미색(가칠용) 등이 있다.
정려각 뒷 모습
처마의 선이 아름답다.
석가래의 화문단청: 단청 조건중 공백을 두면 안된다.
포산곽씨 삼강행실서(三綱行實敍)
곽씨정려각
十二정려각 중건기
아랫사진의 중앙그림과 비교
미적감각을 살리기 위해 중간 그림을 모든 정려각에 교번으로 그렸다
정려각 중앙에 위치한 향로
12정려각에는 려(閭)마다 현판이 걸려 있다.
배치된 편액과 하사된 정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음사진은 정려각 우측으로부터 좌측으로 배치된 순서대로 촬영.
1.곽준(郭준)현판
1.곽준 려(閭)
충신 존재공(存齋公). 공은 곽재우장군의 재종숙이다.
公의 사호는 忠烈公이며 학문과 행실이 돈독하여 명망이 높으셨다. 정유재란때
안음현관으로서 황석산성을 지키시다 장렬히 순국하셨다.
2.곽이후 현판
2.곽준의 둘째아들 곽이후(郭履厚) 려(閭)
이효자(二孝子) 충렬공의 큰아들 이상(履常)과 둘째아들 이후(履厚)는 황석산성 사수때 부친은
나라를 위해 죽으려 하시는데 자식은 부친을 위해서 죽는 것이 불가하리오하면서 부친을 호위하다가 전사하였다
3.유문호(곽준의 사위)처 포산곽씨 현판
3.유문호처 포산곽씨 려
열부 류문호의 처 郭씨 충렬공의 딸. 황석산성에서 친정의 변고를 듣고도 싸움터로 나갔다가 남편마저 전사하자 통곡하면서 부친이 전사해도 죽지 못하였음은 남편이 있기 때문이였는데 이제 남편마저 전사했으니 어찌 참아 살 수 있으리오하며 자결하였다. 일문삼강이란 충신,효자,열부가 직계가족 일문에서 나온것을 말한다. 즉 충신에는 곽준이고, 효자에는 아들 곽이상, 곽이후 형제이고, 열부에는 곽준의 자부요 곽이상의 처 거창신씨이다.
4.곽이상 처 거창신씨 현판
4.곽이상 처 거창신씨 려
열부 거창愼씨 충열공의 큰아들 이상의 妻. 황석산성 사수때 남편을 따라 자결하셨다.
5.곽이창,곽유창 현판
5.곽이창,곽유창 려
소계 곽수(蘇溪 郭수)의 두 아들 의창. 유창은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부모가 죽자 식음을 전폐하는 등. 효성이 마을 사람들을 감동하여 이 사실이 조정에까지 전하여저 형제 모두를 장원서의 별감으로 증직을 내리고 정려에 표하였다.
6.곽재기 처 광릉이씨 현판
6.곽재기 처 광릉이씨 려
곽재기의 처 광릉이씨는 왜병에게 붙들려 겁탈두려워 낙동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7.곽걸,곽호,곽청 현판
7.곽걸,곽호,곽청 려
곽재훈은 곽재우장군의 사촌동생이다.임란때 의병이되어 전쟁에 임해 비슬산 동굴에 아들넷과
숨어있다가 어릴때부터 천식이 도져 기침을 하다가 왜병에 들켜4형제가 차레로 나가 싸우다가
모두 전사 당했다. 왜병들도 효심에 감복되어 곽재훈은 살려주었다 한다
8.곽홍원 처 밀성박씨 현판
8.곽홍원 처 밀성박씨 려
곽홍원의 처 밀양박씨는 와병중인 남편에 강도가 해치려 하자 강도와 싸워 남편은 살고
본인은 죽었다.
9.곽내용 처 전의이씨 현판
9.곽내용 처 전의이씨 려
乃鎔의 부인 전의李씨는 결혼한지 반년만에 남편의 부음을 받고 분상할 때 따라 죽을 뜻을 엿보였다. 병상에 계신 친정부친이 내 역시 멀지 않아 죽을 것이니 내 생전에는 그런 뜻을 품지 말아라 하시니 겨우 연명할 정도의 식사를 하였다. 그후 넉달만에 부친이 별세하자 다시 음식을 거절하다가
자진(自盡:굶어죽음)하였다.
10. 곽수형 처 안동권씨 현판
10.곽수형 처 안동권씨 려
열부 안동권씨 통덕랑 수형의 부인 안동權씨는 시집온지 한해도 못되어 남편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자신이 대신 죽기를 기원하였으나 마침내 남편이 여의니, 장례를 지내고 음식을 전폐하다가 목매어 자결하였다.
11.곽선창,곽유창 효자비
효자처사 공비 소계(蘇溪)의 아들인 증별검이공 선창과 유창의 효자비
12.곽경성효자비
효자 처사공 文滿의 아들 경성(景星)은 평소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병세가 위독한 부친이 생선회를
먹고
싶다고 하자 엄동설한의 밤중에 호수로 나가 얼음을 깨고 큰 가물치를 잡아 회를 드렸는데
그 회를 드시고 부친은 병세를 회복하였다고 한다.
정려각의 뒷마당
정려각 돌담
비의 이수(螭首 머리부분) 경내에 비치:실비(失碑)된 비석의 이수인듯?
정려각에서 내려다 본 용흥지 연못
400년된 보로수(1982년 지정) 느티나무
삼강오륜이 옛구호에 지나지 않는 현실이지만 이런 문화재를 통해 면면이 이어져,
귀감이 될수 있는 산 교육장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