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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시조는 현대정형시가 아니다.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사설시조는 조선 중엽 숙종 때 나타나기 시작하여 영.정조 시대 이후 갑오개혁(1894년)에 이르기까지 약 150년간 양반들의 평시조에 갈음하여 서민층에서 불렀던 시가(詩歌)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수(字數)가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며 따라서 자수정형이 없고 내용면에서도 평시조처럼 관념적이거나 고상한 것이 아니라 주로 하층 서민생활을 묘사, 풍자한 것으로 재담, 음담(淫談), 욕설 등을 서슴없이 구사하고 민요와 대화 또는 사설을 곁들여 사용하는 혼합 예술이었다.
20C초 구 한말과 일제강점기 즉 민족의 수난, 변혁기를 거치면서 순수 문학으로 거듭난 현대시조는 평시조이며 고시조 류(古時調 流)의 사설시조가 전혀 필요 없게 되었다. 창(唱)이 없고 운문이면서 정형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시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반상(班常)의 신분제도가 없이 만민평등(萬民平等)이 된 민주 사회에서 사설시조보다 더 소재가 풍부하고 표현기법이 다양한 자유시가 사설시조의 자리를 차지하고 시문학의 주류를 형성한 것이다. 따라서 정형시도 아니고 자유시도 아니며 창을 곁들여야 제 맛이 나는 사설시조를 현대시조인양 눈가림하는 것은 순수 문학의 정형시인 시조시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평시조마저 정형을 벗어나 자유시화 하고 있는데 이것도 바로 잡지 못하면서 사설시조까지 늘어놓아 정형시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시조장르를 죽이는 자살행위이다. 정형시는 전체가 정형이어야 하며 부분정형은 ‘정형시’라 할 수 없으므로 사설시조는 정형시가 아님이 명백하다.
아직도 사설시조나 엇시조를 현대시조의 범위에 두는 것은 고시조의 시조개념에서 헤어나지 못한 결과이다.
혹자는 [단시조만 가지고는 변천하는 현대사에 있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다 수용하기에 너무 벅차다]고 하며 (한국시조예술연구회 발행<시조예술>2010년 겨울호 P103), [단시조와 사설시조는 같은 핏줄을 갖고 있는 가락의 노래](위 책 P104)이니 연시조를 쓰느니 사설시조라는 좋은 그릇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하며 “새로운 모색”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대다수 사설시조를 쓰는 시인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이 논리의 오류를 지적한다.
첫째, 단시조로는 표현이 너무 벅차다는 말은 단시조는 짧고 정형을 고수하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단시조보다 짧은 자유시도 많고, 정형을 지킨 단시조도 자유시보다 좋은 명작이 많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단시조 또는 연시조를 창작할 능력이 모자라서 하는 변명으로 들린다. 표현이 어렵고 벅차면 자유시를 써면 될 것 아닌가?
둘째, 사설시조는 평시조와 같은 핏줄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평시조는 700년을 이어온 사대부의 시가(詩歌)이지만, 사설시조는 생긴지 300년도 안되고 작품수도 미미하며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선시대 상민(常民)의 가요(歌謠)이다. 형식. 내용 및 배경이 전혀 다르다.
셋째, 연시조는 단시조의 연속으로 매 수 정형이 있지만, 사설시조는 정형이 없는 자유시이다. 좋은 그릇은 고사하고 그릇(정형) 자체가 없다. 연시조대신 사설시조를 쓰자는 것은 꿩 대신 닭을 쓰자는 것이며 시조를 내걸고 자유시를 파는 양두구육(羊頭狗肉)에 다름 아니다.
어렵게 쓴 작품이라야 귀하며 귀해야 가치가 있고 대접을 받는다. 시조장르가 있는 것은 시조가 정형시이기 때문이며 정형시는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시조시인은 자유시 흉내 내기는 물론 사설시조나 엇시조의 유혹을 뿌리치고 어려운 정격시조를 지키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이하 최근 6개월간의 시조현장을 살펴 본다.
1. [월간문학]의 작품들
(1) 2010.10월호
시조 10편중 정격시조는 [고산(孤山)의 숨소리.2](김숙선) 1편에 불과하다.
[생쥐](최승범), [화석(化石)](이윤수) 등은 비교적 정격이나 1음보씩 깨져 있고, [푸른묵언](한분순), [새 순(筍)](黃淳九), [다시 봄은 가고](김남환), [순이생각.2](유권재), [꿈꾸는 4대강](이지연), [바람꽃](김차순) 등은 모두 파형시조이다. [한글은 으뜸 글이다](이용호)는 다섯째 수에 종장이 없다.
고산(孤山)의 숨소리.2
김숙선
다섯 벗 한데 얼려 낙서제 노닐던 곳
꽃 피고 새 울음은 아직도 그대로라
바람 결 거문고 소리 들리는 듯 들리는 듯.
(둘째 수)
이 작품은 2수 연시조로 유일한 정격시조이나 樂書齋(낙서재)를 [낙서제]로 표기한 오류를 범하여 명시조의 반열에 들기는 어렵겠다.
(2) 2010.11월호
시조 10편 중 [콩밭 타령](이광녕) 1편만 정격시조이다.
[안동행(安東行)](김주석)은 여러 개의 파형음보가 있는 것도 문제지만 중복 단어를 남용하여 시어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 더 거슬린다. [안동으로 안동으로] [알면서도 알면서도] [설렌다...설렌다] [생각만으로 생각만으로] [길들을 향해...길들을 향해] [느리게 느리게만] [길오르막 길내리막] [봉화란다 영주란다] 등.
[우중에](김태자)는 종장 처리가 미숙하다. 수의 구별도 없이 붙여 놓았지만 첫째 수의 [만날 것 같은/ 그 누구// 빗속으로/ 온다면], 둘째 수의 [아득한 느낌/ 그 누구// 꿈인듯/ 마주하면], 셋째 수의 [발걸음 익숙한/ 그 누구// 우산같이/ 온다면] 등 모두 시조 종장이 아니다.
다음 작품은 어떤가?
노란 장미와 빨간 장미를 안고-새벽기도 1833
이영지
너/
너랑/ 헤어질 때/
하늘이/ 노랄 만큼/ 12434
눈 앞이/ 샛노랗다 못해서/ 돋아난/ 한여름의/ 3734
내 잎이/ 새파랄 만큼/
그립다는/ 내음새/ 3543
하늘이 노랗고 만 가슴이 빠알갛게 타오른 바람 냄새 가슴을 파묻고도
남아 든 안개꽃으로 아슴아슴 돋아나
얼굴을
파묻고도
남아돌 한여름의
새파란 그리움의
잎새야 새파라라
하늘이 더 푸으르라
바람 냄새
아
어쩜.
첫째 연은 억지로 시조형식을 취했다고 봐 주더라도 둘째 연은 도저히 시조라고 할 수 없겠다. 이것이 사설시조인지 엇시조인지 그리고 어떤 책에 있는 시조 정형인지 묻고 싶다.
형식에 뒤질세라 내용도 볼품이 없다. 부제의 1833은 작자만이 아는 숫자이고 장미의 냄새와 잎 그리고 하늘, 바람 등 모든 것에 대하여 시적화자는 혼자만 흥분하여 자기함몰에 빠져 있을 뿐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구문(構文)이 산만하고 행의 구성과 바꿈도 난장판이다. [푸으르라]는 [푸르러라]의 잘못이 아닌지?
(3) 2010.12월호
10편의 시조 중 [구름시편](황금산), [사육신(死六臣)](甘忠孝), [회청(回靑)](전선구), [혼불의 봄](이용식) 등 4편은 정격시조이다. [들돌(擧石)](최덕원)은 심한 파형.파격으로 시조가 아니다.
탑
권영하
들마루 다 걸어와
하늘길 여닫은 아버지
저 바람 다 감아 낸 말씀을 듣고 싶어요
저 햇살 분질러 놓던 알몸으로 서고 싶어요
저 산빛 둘러 놓던 새 소리를 보여 주세요
검버섯 피어난 얼굴
앞니 빠진 아버지.
이 작품을 엇시조 또는 사설시조라고 쓴 것인지 모르지만 평시조 중장에 평시조 한 편이 또 들어 있는 형상이다. 더 별나게 정형을 깨고 튈수록 명작이며 유명해지는 것인 줄 착각하고 있다. 반대로 작자의 이름에 먹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용 또한 빈약하다.
구름시편
황금산(본명: 황재연)
한 무리 양떼구름
하늘길을 가고 있다
아우성의 이 세상을
우회하며 지나치며...
저것 봐!
저 장엄한 행렬
성자들이 가고 있다.
모처럼 명시조를 발견한다.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지만 빈틈없는 운율이다. 의미상으로도 3장 6구가 뚜렷하며 각 구는 떼어 놓아도 홀로 선다.
양떼구름을 수많은 성자들이 성지를 향해 걸어가는 듯이 변용(變容)한 수작이다. 짧은 시조 한 편 안에서 세상의 온갖 아우성도 들린다.
(4) 2011.1월호
· 시조는 3편만 실렸는데 그나마 정격시조는 없고 [산문](조주환), [어느날의 스펙트럼](노중석), [벤자민 행간](송유나) 모두 파형시조이다.
산문
조주환
미친 불빛을/ 쫓다/ 굳어진/ 감각의 촉수/
겨우/ 눈을 뜨다/ 또 문득/ 넘어진 오후/
아득한/ 허공의 구름에/ 길을 묻고/ 있었다./
(3수중 셋째 수)
산문밖 세상을 못 잊고 방황하는 수도자의 심정을 그린 작품으로 내용은 좋지만 파형음보가 많다.
(5) 2011.2월호
8편 중 [몽돌로 거듭나도](김의식)는 4수의 긴 연시조이지만 정격을 유지하고 있다. [팽이](조종만), [월매(月梅)](산강) 등 2편은 파형음보가 없는 연시조이지만 수의 구별을 없애버린 변형시조이다.
겨울 소록도
정강혜
그 뉘도 귀한 사랑의
단 열매요 꽃송이 아니랴!
으슥한 방 한쪽
시 한 수 서러운 저 흔적
단종(斷種)의
피 토하는 절규
흙벽에 배어 흐른다.
(3수중 셋째 수)
파형이 심하고 자유시의 리듬을 타고 있다.
(6) 2011.3월호
11편의 시조 중 [소나무처럼](김향산)과 [내 고향 곡성](차경섭)만 정격시조이고 5편은 파형 또는 변형시조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음보가 깨져 있고 수의 구별이 없는 변형시조를 골라 본다.
내 가방 속에는
이우걸
나이프와/ 지폐와/ 쓰다 남긴/ 휴지 몇 장/
지친/ 일상이/ 남겨 둔/ 삶의 흔적/
언제나/ 숨가파했던/ 내 방황의/ 일기장들/
누가/ 그 속을/ 들여다보겠다/ 해도/
이제는/ 숨길 수도/ 숨길 필요도/ 없이/
잎 다 진/ 나목들처럼/ 알몸으로/ 맞아야 한다/
내 가방엔/ 그러나/ 식지 않은/ 열기가 있다/
여정이/ 끝날 때까지/ 지녀야 할/ 지도처럼/
끝없이/ 나를 깨우는/ 이름 모를/ 힘이 있다./
1연 9행의 자유시라고 함이 옳겠다. [숨가파했던]은 [숨가빠했던]이라야 맞다.
흔히 시에서는 사전대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착각이다. 시적표현의 자유는 예술적 언어를 구사하기 위한 자유이지, 국어를 잘 못 쓰도 되는 특권을 시인에게 부여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2. 계간지의 작품들
(1) [계절문학]<2010겨울호>
13편의 시조 중[침착(沈着)](이수정), [흔적](유상용), [나의 작업복](정장한), [동트는 강원](한동연), [이.포의 하늘 웃음](배상섭), [우리 민족 붉은악마 아니다](권희로) 등 6편의 정격시조가 눈에 띄어 외롭지는 않다.
한편 [민들레](이상용), [두껍다리 위에서](홍진기), [관음란(觀音蘭)](鄭渭鎭), [장대비](이가은) 등 4편은 수의 구별을 흩어 버린 자유시형을 취하고 있어 거슬린다.
이번 겨울호는 특별히 시선을 끄는 수작도 없고 파형이 아주 심한 작품도 없는 그저 평범하고 황량한 겨울 들판이다.
[계절문학]<2011봄호>
10편의 시조 중 [서천을 떠나며](정용복)와 [달맞이꽃](정행교) 2편만 정격시조이고 다른 8편은 한 두 음보이상 파형을 범하였다.
봄이 와도 시조의 들판에 활짝 핀 꽃이 없다. 현대 시법을 동원한 눈이 번쩍 뜨이는 작품은 안보이고 평범한 시상에 평범한 표현들로 차 있다.
(2) [현대 시조]<2010가을겨울합병호>
100편 내외의 게재된 작품 중에서 흠이 많은 돌출작품과 실속 있는 좋은 작품을 골라내어 비교해 본다.
달무리
이정원
십년을 하루처럼, 하루를 십년처럼 그 날이 어제런듯 가슴에 매달린다빙그레 웃는 네 얼굴 달무리에 환하다.
그날만 비꼈으면 아무 일도 없으련만 누구?탓도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보아도
그리움 형벌이 되어 이 밤 눈물 내리다.
우선 산문처럼 배행한 시조모습이 어색하고 띄어쓰기, 문장부호 잘못도 보인다. 남 다른 모습으로 눈길을 끄는 것이 유명해지는 첩경인가?
[어제런듯]은 현대어인 [어제인 듯]으로 표기해야 자연스럽다.
[누구?탓]은 [누구 탓]으로 표기해야 한다. 문장부호를 잘 못 쓰고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그날만 비꼈으면 아무 일도 없으련만] 그날에 무슨 일이 생겨 후회하는 장면인데 시적 논리가 결여되어 작자만이 알고 독자는 알 수 없는 작품이다.
오후
채명호
벼락치고
울던 하늘
웃음으로 돌아서고
옥수로 씻은 들판
농부도 그림인데
잠자리 낮은 날개는
가을을 실었더라
비 그치고 깨끗한 오후의 가을하늘,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과 일하는 농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잘 그려 내었다.
시적 화자는 벼락을 동반한 비가 오니 아직 여름인 줄 알았는데 금세 하늘이 개이고 낮게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날개를 보니 벌써 가을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초.중장에 벼락, 하늘, 옥수, 들판, 농부 등 우렁차고 큰 이미지들을 배치하고, 종장에서 가장 낮고 연약한 잠자리의 날개를 대비시켜 병치은유(竝置隱喩)의 기법으로 초가을의 오후를 묘사한 수작이다.
[현대 시조]<2011봄호>
[현대시조단]에 게재된 80편의 신작 중 33편이 정격시조이다. 최근 국내 시조문예지들 중 정격시조가 가장 많이 실린 책이 아닌가 싶다. 형식과 더불어 내용도 좋은 걸작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겨울 아침
이동림
겨울새 날개짓에
쨍하고 금 간 하늘
부서진 푸른 고요
서리로 내려앉은
마알간
햇살무늬가
시리도록 눈부셔
새파란 겨울 하늘을 한 마리 새가 날갯짓하여 적막을 깨고 있다. 햇살도 눈부신 겨울아침이다.
3. 중앙시조백일장의 작품들
(1) 2010.10월 (심사위원: 정수자·이종문)
<장원>
정전(停電) (정민석)
뇌우(雷雨)에 대궁 꺾인 꽃잎들이 떨고 있다// 번쩍, 가슴 때리고 사라지는 운율 너머//
서늘한 긴장을 쥐고 우렛소리 금이 간다.///
팽팽한 전압이 온몸 가득 터질 듯하다// 한 시절 내달리다 숨 고르는 활시위처럼//
누군가 튕기는 현이 칠흑 속에 번득인다.///
별 잃은 유리창에 꽃물 스민 섬광처럼// 얇게 꿰맨 푸른 상흔 어둠에 널어놓고//
볼 밝은 심지를 돋워 시 한 수를 뇌는 밤.///
<차상>
헌옷 수거함 (장현수)
우리 집 아파트 지하실 뒤꿈치에// 숨죽인 한 가구 우리 말고 더 있다//
한 뭉치 남루한 가족, 부둥켜 살고 있다.//
과거의 명성 따윈 중요치 않은 이 곳// 쭈그린 삶 일으켜줄 새 손길 기다리며//
퀴퀴한 습지 속에서 서로서로 안고 산다.//
<차하>
모닝커피 (이나영)
카푸치노 커피 속에 엄마 향기 들었다/// 부글대는 거품과// 소담스런 시럽이///
홀연히 엉기고 엉겨 싸하게 퍼지는///
오래된 찻잔에는 엄마 얼굴 담겼다///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쌉싸래하게///
풋풋한 봄나물처럼 물기 어린 그 눈빛///
언제나 정갈하게 챙겨주시는 엄마 보며/// 닮은꼴을 생각한다,// 한 쌍의 찻잔 같은///
따스한 체온을 데워 전해주는 넓은 품속///
* 필자의 종합평
3편의 당선작들은 모두 약간의 깨진 음보가 있지만 수.장의 구별은 뚜렷하다.
장원작은 3수 모두 추상적 표현으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작품을 심사위원들은 ‘팽팽한 긴장감과 펄펄 살아 뛰는 감각이 살아 있다’고 하며 ‘구체적인 상황을 감성적인 언어로 포착해내는 형상화능력’이 뛰어 나다고 했다. 과연 그런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이 작품 어느 부분에 [정서나 관념을 형상화]한 것이 있는지 알려 주면 후사(厚謝)하겠다.
차상작은 어렵게 사는 남루한 가족을 무의미한 내용으로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적인 표현 한 구절 없는 산문이다.
차하작은 시적 화자가 커피 한 잔을 대하고 엄마의 냄새, 모습 및 모정을 떠올린다. 특이한 시상과 표현은 없지만 장원작이나 차상작보다는 낫다.
(2) 2010.11월 (심사위원: 정수자·이종문)
<장원>
낙타 (최슬기)
황사가 사구를 쌓는 뜨거운 도시하늘// 길마다 낙타들의 발자국이 빼곡해도//
아버지, 오아시스는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모래처럼 서걱대는 사람들의 말소리// 목마름은 또 하나의 등짐이 되었고//
달빛은 환할 것 없는 뒷모습을 품고 있다///
<차상>
울림에 대하여 (장옥경)
저물녘, 어머니가 두들기던 다듬이 소리// 뒤란에 잠긴 우물 부시시 깨어나고//
풀잎에 웅크렸던 별, 후두둑 떨어진다///
둥글고 적막한 방, 가난한 순결 위에// 텅 비인 악보마다 쏟아지던 빗방울//
음표들 흔들거린다 느낌표로 곧추서서///
흩어진 마음결도 다잡으면 팽팽할까// 풀 먹인 네 귀퉁이 빳빳이 깃 세우면//
엉키고 꾸불꾸불한 길 반듯하게 펴진다///
가슴에 일렁이던 잔잔한 파문 하나// 창호지 단풍 문양 가늘게 떨려올 때//
다도해 번져나간다 돌비늘 촉 햇살 되어///
<차하>
유혹, 펄럭이다 (최미향)
꼬깃꼬깃 쌈짓돈 풀어// 처음 산 뾰족 구두//
노점상표 꽃남방으로// 봄날을 되살리고//
핸드백 번쩍거려도 신상 짝퉁 루이비똥///
할인쿠폰 하나 둘 모아// 다녀온 환갑여행//
떠나는 마지막 길도// 유혹하는 저 한마디//
[파격가, 장례비용 50% 할인] 생글거리는 현수막///
* 필자의 작품평
역시 3편 모두 깨진 음보가 있어 정격시조는 아니다.
장원작은 아버지의 삶을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에 비유하였으나 [사람들의 말소리] [목마름] [뒷모습] 등이 무의미하고 산만하게 나열되어 있다.
차상작은 저물녁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가 흩어진 마음결을 펴며 멀리 퍼져나가는 장면을 진술하고 있지만 우물, 별, 악보, 빗방울, 음표 등 많은 단어를 불필요하게 동원하여 초점을 흐려 놓았고 현대 생활과 동떨어진 소재를 붙들고 창작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드라이 클리닝과 전기다리미질도 귀찮은 세상에 창호지는 어디 있고 풀 먹여 다듬이질 하는 사람은 어디 있는가? 조선시대 시조인지 현대시조인지 헷갈린다.
차하작은 위와 반대로 지나치게 시류를 타고 있다. [할인쿠폰]이나 [루이비똥]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설사 정격시조라 하더라도 명시조가 되기는 틀렸다. [장례비용 50% 할인]은 10자음보이지만 종장 둘째 마디 자리에 버젓이 앉아 있다.
(3) 2011.1월 (심사위원: 오승철 강현덕)
<장원>
깨를 볶다가 문득 (김경숙)
새 달력의 일월은 생깨처럼 비릿하다// 자잘한 웃음소리//고소하게 깔리는 게//
밑불이// 어림해보는// 하루하루 기대치///
낯선 곳이 궁금할 땐 한 번씩 튀는 거다// 쉼 없이 휘저어야// 골고루 살이 차는//
참깨를// 볶는 순간도// 눈 맞춤이 필요한 법///
비린끼 걷힌 뒤 공손하게 담긴 것들// 버릴 것 하나 없이// 단 기름을 꽉 물었다//
뭉근한// 삼백예순다섯 날도// 나를 깨울 밑불일까///
<차상>
가리봉동을 아십니까? (이선호)
매캐한 황사 바람 헤쳐 나온 작은 멧새// 성긴 숱 깃털 모아 아린 상처 다독이며//
옥탑방 전등불 아래 촉 낮은 꿈 키운다.///
이방의 질긴 하루 휠체어로 밀어내고// 세 평짜리 대기실에 언 손 녹여 피우는 꽃//
밤마다 옌벤(延邊) 하늘이 굴렁쇠로 굴러온다.//
안으로 감겨오는 매듭 붉은 아픔들이// 딱딱한 각질 속에 새살 돋아 피가 돌고//
그 너른 세월 한 끝을 자박자박 밟고 간다.///
신새벽이 숨을 쉬듯 제 몸을 붙들어 세운// 가리봉동 끝자락의 오보록이 쌓인 봄눈//
삼월의 햇살에 불려 잔설 스릇 녹고 있다.///
<차하>
봄동 (김순국)
얼었다 녹았다가 몇 번을 치렀을까// 때 아닌 겨울장마에 몸살을 앓더니만//
오늘은 거친 손으로 아기별을 안았네///
한 생애 고비고비 눈물진물 씻던 곳에// 텃밭이랑 꽃대들이랑 신명나는 하루해 손길//
할머니 이랑이랑에 나비들이 밝힌다///
* 필자의 종합평
3편 모두 정격시조가 아니다.
장원작은 깨를 볶다가 문득 떠 오른 달력과 앞으로의 1년을 재어 보는 장면인데 깨를 볶는 밑불처럼 금년 365일도 나를 깨워 주는 밑불이 될까하고 있다. 이를 두고 심사위원 심사평은 [‘새 달력의 일월은 생깨처럼 비릿하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삶을 대하는 진중한 태도를 잘 느끼게 한다. ‘밑불’은 이 시에서 큰 역할을 하는데 첫째 수에서는 ‘깨’를 볶는 화자 자신이다. 그러다 셋째 수에서는 화자가 ‘깨’가 되고 일년이라는 시간들이 ‘깨’가 된 화자의 ‘밑불’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치밀한 구성이다.]고 엉뚱한 해석을 하며 극찬하고 있다. 셋째 수의 [나]는 ‘깨’가 아니고 이 시의 시적화자인 ‘나’인데 잘못 심사.평가하였다.
차상작은 연변에서 온 조선족 근로자가 몸이 상한 채 가리봉 옥탑방에서 꿈을 키우며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을 잘 그려내었으나 흔한 시상이다.
차하작은 3음보 파형을 범하였으나, 노지에서 겨울을 보낸 배추(봄동)와 산전수전 겪으며 살아 온 할머니를 병치시켜 삶의 어려움과 기쁨을 잘 그려내었다. [봄동]이라는 제목을 알기 쉽게 [겨울배추]라고 하면 첫째 수의 의미전달이 더 잘 될 것 같다.
(4) 2011.2월 (심사위원: 오승철·강현덕)
<장원>
소 (김수환)
시장에서 누런 소를 한 봉지 받아들었다// 검은 위가 찢어질 듯 위태롭게 출렁인다//
고단한 그의 무게는 봉지만큼 가벼워졌다// 어제는 그가 늘 빵빵하게 넣고 다녔던//
초원이 콘크리트에 쏟아졌을 것이다// 흥건히 바닥을 적시고 검은 장화에 짓밟혔으리//
젖어 있던 큰 눈과 저 홀로 굽은 뿔과// 귀에 꽂고 다니던 번호표도 버리고//
어디로 가시는 건가 구절양장 그 마음//
<차상>
보랏빛에 대하여 (윤송헌)
앙칼진 꽃샘바람이 2월을 움켜쥐자// 새눈 뜬 여린 잎이 몇 점씩 떨어진다//
떨어져 멍이 드는가 몸빛이 그늘이다// 밖으로는 서늘하게 그러나 들끓던 것//
야단법석 이주해 온 내 사랑의 눈보라여// 오던 길 잠시 멈추고 적설의 키를 재는,//
<차하>
눈 오는 날의 소묘 (이상)
평원을 삼킬 듯이 까맣게 몰려오는// 북극의 병사들은 폭풍을 일으키며//
북반구 동토의 땅을 유린하고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미완의 설원 위에//
수레의 발자국을 남기며 내달리던// 전차가 내지르는 함성 날 세운 바람소리//
무거운 폭설 탄에 위장한 병사들도// 쓰러져 나뒹굴고 새들도 떠나갔다//
이런 날 흔들리는 것 어디 마음뿐이랴// 빗금 쳐 날아오는 은빛의 화살촉들//
온몸에 방패 없이 가슴으로 막아 선다// 권태로 얼룩진 일상 깨뜨리는 은빛 화살//
* 필자의 작품평
3편 모두 자유시의 흉내를 내고 있다. 옳은 시조가 아니다.
장원작은 깨진 음보가 가장 많다. 시장에서 한우고기 한 봉지를 사들고 소의 도축과 영혼에 대한 동정을 진술하고 있으나 의미전달이 매끄럽지 못하다. 들머리의 [누런 소 한 봉지]가 시 전체의 의미전달을 방해하고 있다.
차상작은 꽃잎이 떨어져 변한 보라색은 겉으로는 차갑지만 안으로는 들끓던 것이라고 하며 사랑의 심상을 진술하고 있는데 이미지가 선명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또한 [빛]과 [색]을 혼동하고 있다. 멍이 들면 보라‘색’이지 보라‘빛’이 아니다.
차하작은 폭설로 내리는 눈을 공격해 오는 대군으로 비유하여 풀어 낸 작품으로, 동원된 시어에 비하여 연출효과는 크지 않다. 압축하여 짧은 시구로 큰 효과를 내도록 퇴고를 거듭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
(5) 2011.3월 (심사위원: 오승철·강현덕)
<장원>
와불 (인은주)
한잠을 자고난 후 연해진 몸의 빛깔// 꿈인 양 구도인 양 한 생이 잠잠한데//
아사삭 공양마저도 봄비처럼 푸르다///
햇빛을 먹고 자라 하늘로만 향하는지// 허물을 벗자마자 새로 나온 머리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섶을 찾아 오른다///
평생에 딱 한번만 오줌을 누는 누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깨끗하게 비우고//
누운 채 펼치는 설법 길고도 청명하다///
<차상>
불타는 책 (김재길)
콘센트만 뽑혀도 사라져 버리는 이데아 그 앞에 21세기마저 광신도가 되었다 고독한 호모사피엔스도 책을 던져버렸다.///
문자가 사라진 뒤 노래도 사라졌다 눈 먼 길을 더듬어 예언이 찾아올 때 그 누가 손을 내밀어 등불을 밝혀주리.///
누구든 그 안에 절대자가 있다 믿어 창조와 파괴를 반복하는 진화 속에 영혼은 블랙홀에 갇혀 두 눈을 잃어버렸다.///
세상의 모든 기도 0과 1로 찬송되고 디지털로 클릭하는 불멸의 페이지 그 뒤에 나무의 책이 스스로 불에 탄다.///
<차하>
장경각에서 각수(刻手)를 만나다 (유선철)
소맷자락 스치면서 한 번쯤 보았을까// 박제된 시간의 벽 슬그머니 허물고 온//
손마디 굵은 사내와// 눈인사를 나누었다///
속울음 쟁여놓고 파랗게 벼린 날끝// 한 자씩 경을 새긴 팔만의 목판에는//
먹물이 안으로 스며// 살빛 더욱 또렷한데///
마구리 감아쥐면 움찔하는 바람의 눈// 티끌도 앉지 못할 형형한 활자 위로//
들린다, 발자국 소리가// 달빛 타고 내려온///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셋째 수에서 정형이 흔들렸다. 누에를 와불로 변용한 시상이 좋으나 제목이 첫째 수와 거리가 멀고 끝수와 가까워 감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셋째 수 초장의 [누에]와 제목의 [와불]을 서로 바꾸어 놓으면 작품의 들머리를 부드럽게 할 뿐만 아니라 끝수에서 누에가 [와불]로 격상되어 [설법]과 어울리고 작품의 힘을 배가시키겠다. 중장을 [마지막 한 방울을 깨끗이 내 보내고]로 자수정형까지 노리면 걸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차상작은 깨진 음보가 여러 군데 보인다. 디지털문화에 밀려난 인쇄물 책의 신세를 한탄하고 경종을 울리는 내용인데 더 압축하고 정형을 지켜 작품수준을 높였으면 한다.
차하작은 시공을 초월하여 팔만대장경의 각수(刻手)를 만난 내용인데 시상이 좋다. 각수를 만나는 과정보다 그의 재능과 노고를 부각시키는 것이 더 좋겠다. 큰 흠은 끝수의 종장처리가 미숙하여 완결미가 없고 시 전체가 꼬리 잘린 도마뱀같이 된 것이다.
4. 맺는 말
오늘날 시선을 끄는 언론사들의 시조 과장(科場)은 신춘문예와 중앙시조백일장이다. 여기에는 평시조만 모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 엇시조나 사설시조는 반열에 들지 못한다.
기성시인들 중 일부는 평시조가 어려우니 고시조 개념으로 엇시조나 사설시조도 시조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음보와 자수가 자유로워 이름만 시조이지 현대정형시와는 거리가 멀고, 불리한 조건들만 가지고 있어 자유시와 경쟁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단시조가 짧아 표현이 어려우면 연시조로 쓰면 되고 시조가 정형을 지키기 어려우면 자유시를 쓰는 것이 바른 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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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류정정-지난 호(현대시조2011년 봄호)에서 인쇄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습니다.
(1) P57 묵란(墨蘭) => 묵란墨蘭
(2) P61 격랑(激浪) => 격랑激浪
열원(熱願) => 열원熱願
소지(燒紙) => 소지燒紙
(3) P69 5행과 6행 떨어진 것 => 붙임
(5행) 어느새 깊어진 향기 닫힌 문이 열린다
(6행) 눈꽃, 그 하얀 무게 차라리 눈이 부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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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조 2011년 여름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