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섭리랄까?바로 얼마 전만 해도 우리의 몸을 움츠리게 했던 꽃샘바람도 이내 사라지고, 남쪽에서 불어온 마파람으로 문화와 예술의 메카인 인사동에도 벚꽃 향기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그건 마치 작가와 화랑과 미술애호가의 데이트를 알리는 연인의 달콤한 시그널처럼 말이다. 그 만남의 광장은 ‘토포하우스’이다.
불의 여전사 윤한,필자인 나는 이미 그의 별칭으로 그렇게 불렀다. 이유는 그의 예술세계가 그 어휘에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열화와 같은 작품 제작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봤고, 작가 노트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 조형언어를 끌어내기 위해 천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또 오랫동안 한국판 플럭서스 ‘누리무리’ 그룹에서 같이 활동하며 작품을 지켜본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아무튼, 그는 늘 우리를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전시 때마다 일반 작가들은 감히 엄두를 못 내는 의미 있는 대형 설치물을 들고 나오니 하는 말이다. 이는 ‘사회 조각’이라는 확장된 예술 개념을 통해 사회의 치유와 변화를 꿈꾸었던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각설하고, 필자가 본 이번 윤한 개인전의 키워드는 ‘불(火)의 아장스망(agencement)’이라 부르고 싶다. ‘아장스망’이란 프랑스 예술철학자 ‘질 들뢰즈’가 만들어낸 사유적인 언어로서, '다중체(multiplicite)'라는 용어와도 같은 개념이다. 즉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것들이 연동하여 관계를 맺고 재배치, 재결합되어 서로 더욱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결연관계를 의미한다. 무릇 세상 속에 여러 개체가 본질의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의 관계를 공명, 상생, 소통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윤한이 야심차게 선보일 작품 ‘불의 뼈-시리즈’, 자신이 직접 불의 연소과정을 통해 나타난 다양한 현상을 기록한 이론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 그것에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는 않는 현실과 가상의 ‘시뮬라시옹’이 그만의 아우라로 내재하였다. 탄소덩어리, 불꽃, 연기, 열기, 숯, 재 등은 상호작용으로 이뤄낸 결정의 예술 ‘불의 뼈’였다. 이건 내 소견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근원을 소재로 일관되게 펼쳐갈 새 아우라에도 관심 있게 지켜보며 더 연구하겠다.
우주 만물에는 근원이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여러 요소 중에 물을 근원이라 했다. 그러나 그의 후학들은 또 다른 학문적 견해를 보이며 물, 불, 공기, 흙을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렇듯 인류문명은 꾸준히 반전을 딛고 이어진다. 윤한 작가는 그중에 불(火)을 작품의 소재로 선택하여 몸소 힘든 불장난(?)을 즐기며 오랫동안 묵묵히 자신만의 아우라를 찾아 나섰다. 이러한 과정은 진정한 藝術-家로의 시금석이 되리라 믿으며, 또 인류문명 변화에 한 톨의 밀알이 되리라 본다. 끝으로 작가에게 바란다. 새삼스럽게 예술의 길이 어렵다고 말하고 싶지 않으나, 늘 고진감래하길 소망하며 개인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