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한조각의 숲을 담아놓고 싶은 어떤 사람이 었다. 그 사람은 2층집보다 키가 더 단풍나무한 그루를 마당 한복판에 제일 먼저 심고 보리수, 라일락, 혜화나무 그리고 상추와 풋고추, 딸기까지 모든 크고 작은 식물들로 마당을 빼곡이 채웠다. 그곳은 영화감독 장선우 씨의 집이었다.
담장도 없고 대문도 보이지 않는 목재 건물이 정확히 도로면 끝까지 우뚝 나와서 있고, 그 왼편 한 끝에 그저 비워진 분위기로 입구임을 표현한 곳에는 문을 열 것도 없어 훌쩍 넘어서면 될 듯한 무릎 높이의 울타리가 있어 마당의 시작을 알린다.
길가에서 바라본 미니멀한 외관과 달리 안마당은 풍요로운 자연미로 물결치고 있었다. 이름을 알고 모르는 수많은 나무와 꽃들로 가득한, 숲속 같은 정원이다. 마당의 중앙에는 이 집을 지을 때 함께 심은 2층집 높이의 단풍나무가 거대한 조각품처럼 아름드리 팔을 벌리고 서 있다. 안 주인이 직접 선택한 나무.
남편이 불교에 심취해 있어 절집 나무인 보리수도 심었다고, 30평이 채되지 않는 땅의 쓰임이 이처럼 여유롭고 매력적일 수 있다니 무척 놀라웠다.
이 집은 대청마루 공법이라는 이한 방식으로 지어졌다. 철골구조물로 건물을 땅에서 띄워 오린, 그러니까 툇마루처럼 '떠 있는 집'이다. 방 두개의 거실과 부엌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규모지만 안방에서는 단풍나무가, 건넌방에선 라일락이. 또 부엌에서는 철쭉꽃 풍경이 통유리 창문마다 벽화처럼 걸려 있다.
<위 사진> 정원을 가꾸면 일반적으로 담장을 따라 가장자리에 나무들을 줄맞춰 심고 가운데는 비워두는 불문율이지만 이 집 마당은 전혀 새롭다. 마당 전체에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자유분하게 심어져 있고, 상추 곁에 철쭉이, 그 곁에 풋고추 또 보리수가 귀천의 차별 없이 등장하는 색다른 풍경이다. 그 마당에 안주인과 아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장 감독은 2층 창가에서 책을 읽는 중이었다.
미술을 전공한 아들 장승민 씨의 컬러풀한 작품이 마당을 장하고 있다. 스물다섯의 핸섬한 이 청년은 현재 영화음악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침실에서 바라본 단풍나무 풍경. 이밖에도 작은 방에는 라일락이, 주방에서는 철쭉이 커다란 창문마다 걸려 있다. 집안 곳곳의 예술적인 풍경들은 신도시 일산에 사는 그들에게 마치 깊은 산중인 듯, 풍요로운 감성을 키워준다.
도로쪽에서 바라본 입구. 중앙에 보이는 가로로 긴, 무릎 높이의 야트막한 울타리가 마당의 구획선 역할을 할 뿐 담장이나 대문 없이 바로 집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오른쪽에 나무로 된 현관문이 보이고, 왼편의 'ㄴ'자 나무판은 우편물을 놓는 곳이다. 일반인의 집보다 더 드러나 있는 이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기 위한 급급한 유명인들의 생활을 보는 괴리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당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2층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장선우 감독. 그런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아서 촬영을 마다하는 그를 결국 찍고 말았다. 자연미로 가득한 풍요로운 이미지의 정원에 비해 집은 방2개와 거실, 부엌이 있는 소박한 구조였는데, 오히려 그 단출한 살림이 일상을 자유롭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집안을 넓히고 가꾸기보다 마당을 더 소중히 가꾸는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출처-까사리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