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교실에서 21세기의 학생을 19세기의 선생님들이 가르친다"는 말을 퇴임직전에 들은 바 있습니다.
시대는 자꾸변화하고있습니다. 우리들이 재임할 때는 "우리애를 때려서라도 잘 가르쳐달라는 학부모가 있었다"면 지금은 학생편에서 체벌하는 장면을 동영상에 담아 고발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도 변해야 합니다. 카페에서 못내 미안하게 생각한 점은 '제가 뭐길래 선두주자로 가입을 했다는 점입니다. 반가운 김에 저지른 일이기에 회원님들의 용서와 이해를 구하고자하는 마음으로 다음 글을 올려보는 것입디다.
<나의 인생 발자취에서 발췌한 글발 >
겨울방학이 돌아올 무렵 학교마다 컴퓨터 수강대상자를 1명씩 의무적으로 보고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연구계 박전춘 선생이 나에게 대상자 문제 때문에 물어보러 왔다. 희망자가 없으니 교감선생님께서 가실 수 있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약간 불쾌하였지만 정 없으면 나라도 써 보고하라고 매듭 지어 보냈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정말 컴퓨터강습을 받으라고 내 이름이 지명되어 공문이 접수되었다.
내키지 안했으나 일단 수강장소에 가보기로 하였다. 교감이 두 명이어서 우세하더라도 둘이서 한다면 더 나을 것이기에 참여하였더니 한분 교감은 삼성 전자 측의 좋은 조건 수강에 임하게 되어 서울로 빠져버리고 교감은 나 혼자 떨어져 30명중 남자 7명이 숙달된 여선생님들 속에 그나마 교감은 나 혼자 우세를 하면서 겨우 마치었다. 더구나 그 땐 도스 Program이어서 DIR MD CD RD의 어려운 운용을 하다보면 한결같이 여선생님들이 위로해 주는 것이었다. “교감선생님은 잘하시는 거예요, 나는 처음에 이보다 훨씬 못했어요, 잘 하시는 편이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학교에 돌아와 복습을 해도 영영 안 되는 것이 컴퓨터 도스 Program이었다.
1달간의 강습을 마치고 교육방송 ‘컴퓨터는 내 친구’라는 Program을 녹화하여 시청하며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문의해가며 하나씩 터득해 나가게 되었다. 교장승진이 되어서도 계속 정진해 윈도우, 하나, 글, 엑셀, 인터넷......등을 숙련시키니 이젠 완숙을 기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처음엔 불쾌감이 있었지만 끈질긴 노력으로 컴퓨터 강사를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어 ‘인생 역정’을 집필하여 회고록으로 남기게 되었음은 나의 인생 최대의 뜻있는 업적이라 자긍심을 갖게도 하는 것이다. (고희기념 회고록에서......)
겸손함을 배우게 해 주신 교장 선생님께 !
십 수년이 지났는데도 교장선생님의 목소리는여전하셨습니다.목소리가 변하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어떤 정겨움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1993년 3월 1일!13년이 지난 오늘도 그 때 교무실에 들어서면서 처음뵈었던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별로 건강해 뵈지는 않았지만 껀정하게 크신 키에 깐깐해보이시던 교장(당시,교감)선생님, 당신의 속내를 전혀내비치지 않으셨던 교장선생님!부임하는 저에게 4학년을 맡기시면서도 못내 미안해하시던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해 4학년 동학년연구 수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제가 잘 할 수 있을지걱정도 되셨을 테지만, 그보다는 교장선생님의 천성적인선함 때문에 어려운 일 맡겨서 미안해하시던 모습이 더역력했었습니다.저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로 생각했었는데…저희반 아이들과 함께 과학과 수업 준비, 과학실 정비등을 할 때도 말씀은 안 하셨지만, 한번씩 돌아보시고지켜보시면서 당신이 도와 주실 일이 무엇인가 살펴보시고 도와주시려고 애쓰시던 모습도 선합니다.아무튼 그 해, 교육청 주최 자연탐사대회에서의 최우수,호남정유(지금의 GS정유)회사 주최 환경글짓기 대회 단체2등, 특별활동경연대회 중창 부문 최우수 등 크고 작은상들을 받아왔을 때 상을 받은 아이들이나, 지도했던저보다도 더 기뻐하시던 교장선생님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습니다.교장선생님의 기뻐해 주시던 그런 모습들이 저와아이들에게 그런 용기를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리고 그 다음해 제가 큰 수술을 받아 약 2주 정도학교를 나가지 못했을 때 저희반 수업을 하루도 빠지지않고 해 주셨던 일,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고마움’에대한 편지를 쓰게 해서 편지 한 묶음을 손수 들고 오셨던일들 잊지 않고 있습니다.그리고 지금처럼 컴퓨터를 능숙하게 하시게 된 것이 저때문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게 어찌 저 때문이었겠습니까?제가 백 번을 말씀드렸어도 교장선생님께서 그 때 연수를받지 않으셨다면 지금처럼 능숙하게 컴퓨터를 하실 수없었겠지요.교장선생님의 후임으로 오셨던 모 교감선생님께도“컴퓨터 연수는 받으셔야 한다‘는 똑같은 말씀을드렸지만 그 교감선생님은 들은 척도 안하셨습니다.그래서 두 번 다시 말씀드리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모든 일을 손수 하시고도 다른 사람의 공으로 돌리시는교장선생님에게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겸손함과 지혜를 새삼 배우게 합니다.그리고 방학 때나 일요일 일직을 하고 있을 때면 관사로불러 따뜻한 점심이라도 꼭 챙겨 먹이고 싶어 하셨던 교장선생님, 또한 선생님들의 일거리를 줄여주시기 위해웬만한 공문은 손수 작성해서 보내시는 등 속마음은내비치지 않으셨지만 정말 정이 깊으셨습니다.인생의 선배로 이런저런 좋은 말씀도 듣고, 많은 것들을배울 수 있었을 텐데, 직장 상사로만 생각하고 그때는 왜그렇게 어렵게만 대했었는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후회스럽기만 합니다.몇 년 전 정년 퇴임식을 하신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도찾아가 뵙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려 있었는데이렇게라도 제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뿐입니다.교장선생님, 칠순 기념으로 책을 내시게 되셨다는 말씀듣고 ‘역시 교장선생님이시다’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정말 축하드리며,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2005년 12월 12일
여수 시전초등학교 교사 박전춘 올림
첫댓글 평소 익히 도타운 우정을 같이 하면서 님의 인간된 멋과 맛을 가슴에 새겼었는데 박전춘선생님의 실팍진 글을 통해 또 다른면을 살필수 있어 퍽이나 감명 깊었다오. 깊은 존경의 뜻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