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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달은 응봉암장이 월욜만 쉬다가 갑작스레 일욜도 쉰다는데 있었습니다. 연이틀을 쉬게 되는데 아직 오른손 테니스엘보로 연짱 운동하긴 어렵고, 1시간 조퇴하고 가벼운 지맥 하나 하자고 우봉을 택했어요. 아~ 요즘 에어컨 바람만 쐬면 겉옷을 하나 더 걸치고 싶을 정도로 춥게 느껴져요. 난 따뜻한게 좋은데, 26도만 해도 될것 같은데... 에어컨때문에 야간에 사무실에서 졸지도 못해요. 날밤 꼬박 세우고도 시간반 자면 다신 잠이 안오는 것도 저에게 나타나는 신기한 현상입니다.
우쨌거나 의령에 도착해 출발지인 한우산까지 거금 18,000원을 주고 택시로 이동, 14:30분 우봉지맥을 출발합니다. 비박지가 옥녀봉 육각정에서 우봉산 산불감시초소로 바뀌는데, 글쎄 산불감시초소 창틀에 오빠c벌이 진을 치고 있네요. 좀 더 진행해 장군봉재삼거리에서 박하고, 옷과 토시, 손수건만 교체하고 새벽 04:45분 출발, 남강과 낙동강의 합수점인 기강나루를 10Km 이내로 남겨둔 곳에서 칡넝쿨에 막혀 양동고개로 내려서지 못하고 임도로 중탈 했습니다.
우봉을 가볍게 본건 아닙니다. 담궈 놓은 주식도 대박을 기원할겸 택한 지맥이고, 전지가위도 준비했지만 무성한 칡넝쿨에 산초,망개나무 가시가 뒤섞여 덤비는데 때마침 폭염경보라고 난리다 보니 헤쳐나가기 버거웠습니다. 졸업은 하지 못했어도 운동은 충분히 되었다고 보고 낮 1시경 햇볕이 쏟아지는 뜨거운 임도를 걸어 하산했습니다. 졸업은 낭중에 산악회를 따라가 가볍게 마무리 짓기로 합니다. 파집, 고집을 꺽으면 만사가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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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5. 7. 27.~28.(일,월), - 음력(윤6. 3~4.), 일출 05:31~일몰 19:36
●산행지: 우봉지맥 1구간(1박2일) 진행
●산행코스: 한우산 주차장-한우산-지맥분기점/도굴산(764.7m)-제2활공장-749.7m봉-561.8m봉-602.1m봉-매봉산(597m)-부자재(449.5m)- 594.9m봉-580.1m봉-신덕산(582.5m)-절티재/질미재고개-421.4m봉-379.7m봉-구오목재-우봉산(372.6m)-장군당재-357.8m봉-막실고개-329.1m봉-334.1m봉-307.1m봉-299.3m봉-숯골산(285m)-오방삼거리-299.3m봉-310.7m봉-옥녀봉(340.9m)-달재고개-257.7m봉-왕봉산(262.8m)-돌문재-250.6m봉-236.7m봉-250.4m봉-태부고개-232.1m봉-바람재-177.5m봉-294.3m봉-248.7m봉-255.4m봉-182.3m봉-167.1m봉-남재-벼랑바위-85.1m봉-기강나루/성산교(봉곡천,두곡천,남강) 합수점
●먹거리: 생수3리터, 다이제스트, 빵4개, 하리보, 사탕5, 막대꿀, 전립선약
●준비물: 은박매트, 스틱, 헤드랜턴, 바람막이, 반팔, 반바지, 챙모자, 썬글, 스패츠, 팔토시, 손수건, 면수건, 양말, 정제염, 충전지, 충전짹2, 휴지, 물티슈, 말방울, 띠지10
●거리: 약 35.7Km
●소요시간: 23.57h
●누구랑: 나홀로
●경비: 직행41,300원, 택시18,550원, 편의점 8,300, 직행35,200원
●날씨: 24~33, 쾌청, 무덥
●산행경과:
* 7. 27.(일) : 15.4km
- 14:06~14:19 : 한우정
- 14:13 : 한우산 출발
- 14:39 : 우봉지맥분기점
- 16:16 : 부자재
- 16:32 : 575m봉
- 17:02 : 신덕산(582m)
- 18:58 : 구오목고개
- 19:49~55 : 우봉산(372.6m)
- 20:57 : 장군당재삼거리
* 7. 28.(월) : 20.3km
- 04:45 : 장군당재삼거리 출발
- 05:32 : 막실재
- 06:36 : 다래농장
- 07:44 : 299.3m봉
- 08:28 : 310.7m봉
- 08:37~08:58 : 옥녀봉갈림길
- 08:48 : 옥녀봉(340.9m)
- 09:55 : 달재/
- 11:28 : 왕봉산(262.8m봉)
- 11:36 : 돌문재
- 11:59 : 250.6m봉
- 12:21 : 고성이씨 묘지 울타리
- 13:34 : 임도로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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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봉지맥(牛峰枝脈)이란?
진양기맥의 자굴산(897m)과 한우산(835.7m) 사이의 도굴산(764.7m)에서 동쪽으로 분기해서 매봉산(584.7m), 신덕산(582m), 구오목고개, 우봉산(牛峰山, 372.3m), 장군당재, 막실고개, 숫골산(285m), 긴등산(231,3m), 옥녀봉(341.9m), 달재, 왕봉산(262.8m), 돌문재, 산성재산(255.4m), 남재를 지나 남강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기강나루터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35.7km 되는 산줄기인데, 남강(南江)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 우봉지맥 개념도
♤ 우봉지맥을 지나는 동네
* 의령군
경남 중앙부에 있는 군으로 땅이 기름지고 거주 환경이 양호해 청동기시대부터 상당한 인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왔다. 1960년 이후 산업화의 물결로 인구의 전출이 심해 군 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행정구역은 의령읍, 가례면·칠곡면·대의면·화정면·용덕면·정곡면·지정면·낙서면·부림면·봉수면·궁류면·유곡면 등 1개읍 12개면 116개리가 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야의 영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가 6세기 중엽 부근의 가야국들을 병합할 때 신라의 영역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는 이곳에 장함현(獐含縣)을 두었다가, 삼국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의령현으로 개칭하고 함안군의 영현을 삼았다. 고려시대에는 1018년(현종 9)에 진주의 속현으로 합속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감무가 파견되고, 신번현(新繁縣)을 병합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에 현감이 파견되는 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의장군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 유명하다. 의령의 별호는 의춘(宜春)·의산(宜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군이 되어 진주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에 경남 의령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칠곡면·화양면·낙서면·상정면은 그대로, 풍덕면·덕곡면이 풍덕면으로, 이가례면·일가례면이 가례면으로, 대곡면·모의면이 대의면으로, 덕암면·용암면이 용덕면으로, 화곡면·일정동면이 정곡면으로, 이정동면·지산면이 지정면으로, 경산면·부산면·보림면이 부림면으로, 일류곡면과 합천군 궁소면이 궁류면으로, 가수면·봉산면이 봉수면으로, 정곡면·이류곡면·능인면이 유곡면으로 통합되었다. 1916년에 풍덕면이 의령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33년에는 화양면·상정면이 화정면으로 통합되었다. 1979년에 의령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서부에는 지리산의 지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이는 동쪽으로 갈수록 높이가 점차 낮아진다. 북쪽 경계에는 미타산(662m)·국사봉(668m) 등이 솟아 있으며, 그 줄기가 남쪽으로 이어져 서부에는 만지산(607m)·산성산(741m)·한우산(764m)·자굴산(897m)·벽화산(511m) 등이 솟아 있다. 낙동강이 동쪽 경계를 곡류하며, 남강이 남쪽 경계를 북류해 지정면 동쪽 경계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또한 군의 북동부를 흐르는 유곡천도 천락천·신반천 등을 합류해 낙동강에 흘러든다. 그밖에 소하천들이 군내 곳곳을 흘러 남강에 유입하며, 이들 소하천의 상류지역인 가례면·칠곡면 등지에는 산간분지가 발달했다. 경지는 이들 하천연안에 분포하며, 큰 평야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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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구간거리
한우산-0.9km-선암산갈림길(749.7m)-1.1km-592m봉-1.5km-응봉산(584.7m)-0.5km-매봉산(597m)-2.4km-530.4m봉-1.7km-415m봉-1.5km-질매재-1.3km-우봉산(372.3m)-0.5km-장군당재-1.5km-막실고개-2.2km-긴등산(333m)갈림길-2.6km-옥녀봉갈림길(309m)-1.1km-달재고개-1.2km-돌문재-1.1km-한이불재갈림길-2.6km-60번도로-1.3km-294.5m봉-3.5km-168.5m봉-0.7km-남재-1.2km-남강/낙동강합수점
* 구간거리
- 접속 : 의령 쇠목재 ~ 지맥분기점 0.7 km
- 우봉지맥 분기점 ~ 한우산 : 왕복 약 2km
- 지맥분기점/ 도굴산(764.7m) ~ 달재(20번도로) : 21.3km
-. 한우산 ~ 막실고개 14.3km
- 달재(20번도로) ~ 남강/낙동강합수점 : 14.5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우봉산 : 산불감시초소, 팔각정
- 구오목재 : 인가
- 옥녀봉: 정자(육각정)
- 정곡면 택시 : 055-572-4635
- 달재 : 도로 아래 계곡에 물
- 돌문재 : 쉼터
- 남재 : 인가
- 기강나루 : 육각정, 화장실
* 서울에서 우봉지맥 분기점 내려가는 길
- 동서울터미널 ~ 의령터미널: 09, 14:10, 16:30, 4.50h, 41,300원
- 서울역 ~ 마산역 KTX : 05:03~, 3h, 48,000원
- 마산시외버스터미널 ~ 의령버스터미널 : 0.50h, 3,800원
- 의령터미널 ~ 쇠목재 : 택시 10분, 17,000원
* 우봉지맥 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남지버스터미널 택시 이동 : 055-572-4635
- 남지 ~ 서울남부 : ~18:50, 3.30h, 33,500원
- 남지 ~ 대구서부터미널 시외버스 : 1h, 8,800원
- 의령버스터미널 ~ 동서울버스터미널 : ~15:30, 5h, 41,300원
- 합천버스터미널 ~ 서울남부터미널 : ~17시, 4.20h, 35,800원
- 함안가야 ~ 마산 : ~16:25, 17:20, 17:30, 0.30h, 2,600원
- 창녕버스터미널 ~ 서울남부터미널 : ~18:30, 3.50h, 33,400원
- 성산마을버스정류장 113-31버스 ~ 마산역 : 15:05, 1.10h, 2,000원
- 마산역 ~ 서울역 KTX : ~19:58, 21:08, 21:43, 3h, 45,300~53,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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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지맥은 의령의 별이다. 우봉지맥의 별은 망우당 곽재우장군과 호암 이병철선생임에도 소모적인 합수점 논란으로 지면을 할애하게 되어 유감이다. 진양기맥(晉陽岐脈)은 백두대간의 남덕유산(1,507m)에서 갈래를 쳐 남강과 황강의 수계를 가르면서 진주 진양호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인데, 한우산에서 진양호로 이어진 바람에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의 물줄기는 끝까지 가두지 못한다. 반면에, 한우산에서 동쪽으로 다시 분기한 우봉지맥(牛峰枝脈)은 남강의 우측 울타리를 이루면서 남강물을 끝까지 사수하여 남강과 낙동강이 합수하는 기강나루터까지 이어져 있어, 일부 산꾼들은 우봉지맥의 끝자락까지 이어진 산줄기를 통칭해서 남강기맥(南江岐脈)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 우봉지맥의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모두 남강으로 흘러들기에 기맥에도 산자분수령의원칙을 적용하여 강의 수계만을 따진다면 남덕유에서 온 산줄기는 이곳 한우산에서 우봉지맥으로 내려와 남강의 우측 울타리를 치며 기강나루에서 끝을 맺기에 남강기맥이라 해야할 것이나 산세나 길이, 가화강의 특성, 남강댐 등을 고려하여 진양호로 합수점을 정해 진양기맥으로 이름을 비정했다. 이 부분만을 본다면 진양기맥이 치지 못한 남강의 울타리를 우봉지맥이 이루었다고 말하고, 남강기맥과 우봉지맥으로 구분되었기에 기맥반열에서 지맥반열로 강등된 산줄기라 말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지만 박성태선생님은 산경표에서 정맥이 입해처로 향하는 산자분수령원칙에도 정치·사회·시대적 상황에 따라 합수점을 달리한 경우를 바로잡고자 하였으며, 여암 신경준선생이 산경표를 집대성하던 시대의 역량으로는 정맥의 하위개념까지 나눌 만큼 능력이 세분화 되지 못했다. 신 산경표가 산자분수령원칙에 따라 정작 정맥의 하구를 바로 잡은 점은 외면하며 산경표에서 나눌 능력이 되지 못한 기맥과 지맥에까지 지나치게 "산자분수령원칙"을 확장 적용해 남강기맥을 내세웠다. 다시말해 신 산경표가 산경표의 정맥이 원칙에 위반하여 합수점을 향하지 않은 오류를 바로잡은 점은 애써 외면하며 산경표에서 규정하지도 않은 하위 개념인 기맥과 지맥마저도 합수점을 향해야 한다는 근본없는 원칙을 임의로 정하고, 산자분수령원칙을 정맥의 하위개념까지 적용하여 이를 신 산경표의 오류라고 공격하는 기재로 사용한 것이다. 162개 지맥 중에 고작 합수점을 향하는 지맥은 소수에 불과한데 이것을 두고 원칙이라 말하는게 어불성설이고, 기맥과 지맥도 합수점에 이르러야 한다는 산자분수령원칙에 맞추려다보니 남강댐을 향하는 눈에 보이는 산줄기의 주맥을 버려두고 합수점을 향해 지맥을 구분하는 불합리가 생겨난 것이다. 우봉지맥에선 오히려 낙동강방어선인 6.25 박진지구전투를 살펴보는게 더 낫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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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산 정상은 패러글라이딩 제1활공장이기도 하구요. 전망대와 정상석이 있는 헬기장은 밤이면 별빛이 쏟아지고 일출과 일몰도 장관이라 박꾼들에게 백패킹의 성지로 불린답니다. 지리산과 황매산 그리고 진양기맥의 길을 바라보고 다시 분기점으로 돌아옵니다. 휴게소 팔각정 옆에는 푸드트럭이 의령의 명물 망개떡과 도깨비 빵을 팔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고요. 팔각정에서 도깨비조형물 앞을 지납니다. 한우도령과 철쭉낭자라던가 도깨비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두었어요.
♤ 한우산(寒雨山, 835.7m)/ 정상석, 팔각정, 전망테크
한우산은 경남 의령군 궁유면 벽계리의 남쪽에 있는 산으로 벽계계곡의 발원지이며 의령의 진산인 자굴산(自堀山, 897m)으로부터 이어진 맥이다. 『조선지지자료』(의령)의 대곡면(현재 대의면)에 '냉정산(冷井山)', 이유곡면(현재 궁류면임)에 한천(寒泉)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차가운 우물이 있는 시원한 산이라는 의미에서 한우산(寒雨山)의 옛 지명임을 추정할 수 있다. 지명은 산이 깊고 수목이 울창하여 시원한 정도가 겨울에 내리는 '차가운 비(寒雨)'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이에 여름에도 찬비가 내린다 하여 '찰비산'이라고 부르며 산 아래에 찰비계곡이 있다. 한우동 골짜기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구비쳐흘러 곳곳에 폭포를 만들고 이 폭포수는 또 곳곳에 소(沼)를 만들어 놓았으니 한우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길이가 3km에 이른다. 농소와 아소는 바위에 파인 웅덩이를 말하는 바 맑은 물에 비친 숲 그림자는 그대로 선경이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백정의 딸이 신분을 속이고 재 너머 이진사댁 도련님과 혼인을 했는데 시집가던 날 속인 일이 들통 나고 파혼으로 쫓겨 오게 되자 화가 난 백정은 딸과 가마를 물 속에 밀어 넣고 난 뒤 자기도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그 후 찰비골에는 소(沼)가 여러 곳에 생겨났다. 신부가 빠진 자리가 '각시소', 농(籠)과 가마(駕馬)를 던진 곳이 '농소'와 '가매소', 중신아비와 백정이 죽은 곳이 '장개소'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산세가 웅장하고 깊어 곳곳에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고 억새와 진달래, 철쭉군락이 철마다 아름다움을 달리하고 있다. 골짜기를 요새처럼 석벽이 둘러 있어 그 모양이 또한 성벽을 방불케 하는 지라 이름지어 한우산성이라 부르고, 삼국시대에 이곳에서 신라와 백제가 오랫동안 서로 뺏고 빼앗는 격전을 벌였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때 신라 애장왕의 부마 하나가 전사한 일도 있고, 부마가 전사하자 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군사들을 지휘하여 싸웠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또한 이곳 골짜기 이름에 왕다실골이 있으니 이 또한 그때의 싸움과 관련되는 이름으로 왕이 지휘하는 신라군이 자주 이 골짜기를 적에게 빼앗겼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근래에는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와 궁유면 벽계를 잇는 압도가 개설되어 산 정상까지 차량이 오를 수 있게 되었고 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산길이 나 있어 궁유면 입사마을과 연결되어 있다. 의령군 정곡면에서 유곡면으로 넘어가는 막실고개와도 연결되어 있어 산길 드라이브코스로도 알려져 있다. 산에 오르다 보면 넓은 풀밭이 있어 신나게 달릴 수도 있고 암벽이 늘어선 암봉지대가 있어 힘들게 오르기도 하여 지루하지 않게 산행할 수 있다. 산 정상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어 애호가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은 전형적인 산간마을이다. 벽계계곡에서 산굽이를 돌아 오르는 꼬부랑길은 1998년 도쿄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이광모 감독, 안성기·송옥숙 주연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 마지막 장면 촬영하여 명소로 알려지게 되었다.
동쪽으로 의령군 의령읍으로 나가는 가례면에서 서쪽으로 합천 삼가로 나가는 대의면 신전리로 넘나드는 고개가 쇠목재입니다. 기맥의 서쪽에 해당하는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의 경제생활 반경은 합천의 남쪽 삼가면에 대고 있습니다.
♤ 경남 의령군 대의면(大義面)
경남 의령군 대의면은 의령군 서부에 위치한 산간지대이며, 1시 3군 경계에 위치하며 미맥에서 복합영농으로 전환하여 칡, 한우 및 딸기 집산지로 성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곡과 모아로 나누어진 방리(지금의 읍면에 해당되는 행정구역)로서 대곡은 원래 한실로 모아는 모오골로 불러온 지역이었고 한자 표기를 하면서 한실은 대곡으로 모오는 모아로 적게 되었는데 모아란 말이 창(독음)이나 훈(뜻)으로도 좋지않다 해서 모의로 고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도 고종 43년(1906년 광무10년) 칙령제49호 지방구역 정리건에 따라서 대곡과 모의가 독립된 행정구역이었으나 그 뒤 일제강점기인 1913년(대정 2년) 총독부령 제111호, 도의 관할구역과 부군의 명칭 및 위치관할구역조정에 따라서 두 지역이 통합되고 명칭도 대곡의 대자와 모의의 의자를 따서 대의로 정하게 되었다. 그 뒤 1989년 1월 1일부로 합천군 삼가면 외토지역 일부(25가구)가 대의면 관할구역에 편입되었는데, 대의면은 북으로 합천, 서쪽으로는 산청, 그리고 남동으로는 진주지역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봉지맥상 응봉산/매봉산(593m) 풍력발전기가 가까이 보여요.
♤ 우봉지맥갈림봉/ 도굴산(764.7m)/ 삼면봉(대의면 신전리 → 궁류면 벽계리, 가례면 갑을리)
한우산(835.7m)에서 자굴산으로 향하는 쇠목재 사이 도굴산에서 동쪽으로 우봉지맥이 분기한다. 우봉지맥은 백두대간 남덕유산에서 갈라져 거창, 함양, 합천, 의령을 거쳐 진주 진양호로 입수하는 진양기맥이 한우산에서 쇠목재로 내려서는 도굴산에서 왼쪽으로 갈라져 의령군 가례면과, 용덕, 궁유, 유곡, 정곡, 부림을 거쳐서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정면 기강나루에서 끝을 맺는다. 가지가 부러진 소나무가 있는 곳에 있다던 정자 갑을정은 철거되어 사라졌다. 정맥에만 적용되는 산자분수령원칙을 기맥, 지맥에까지 끌어댄 진양기맥, 남강기맥, 우봉지맥의 이해점이다.
♤ 의령군 가례면 갑을마을
가례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이십 리쯤 되는 깊숙한 골안 막바지 마을이다. 옛 촌명은 쇠목 또는 쇠목촌으로, 이 마을 바로 뒤쪽에 있는 산고개가 소의 목덜미를 뜻하는 쇠목재인데 이 재 이름 때문에 촌명도 그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자굴산의 우람한 덩치가 소머리고 자굴산 들머리 내조마을은 여물통이 놓이는 자리가 되며, 동남으로 길게 뻗은 쇠잔등 즉, 몸통에 해당하는 산줄기가 가례면 갑을리를 둘러치고 있는 부자재의 좌우능선으로 큰 황소처럼 생겼고, 엉덩이 부분이 용덕의 신덕산(新德山)으로 보는 것이다. 쇠목재를 넘으면 대의면 모의골인데 옛날에는 사람들의 내왕이 잦았던 잿길이었다고 한다. 마을 오른쪽으로도 억센 산봉우리가 겹쳐진 청명산(청명산)이 길게 누워있다. 두 산맥사이에 너댓의 뜸이 형성되어 있는 이 골을 옛 문헌에는 갈골로 부르면서 갑을골이라고 하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에 비슷한 소리의 한자로써 甲乙로 고쳐 쓴 것으로 믿어진다. 마을뒤 목씨묏등이라는 버덩의 고총 묘갈명에 項村이라는 지명으로 쓰고 있는바 목(모가지)이나 쇠목이란 말을 한자로 바꾸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 의령군 궁류면(宮柳面)
의령군 북부 산간지로서 의령, 함안, 합천읍에서 각각 24km 지점에 있다. 봉황대, 벽계저수지, 찰비계곡 등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신라시대에는 토곡이 도읍지였으며, 평촌, 벽계, 운계리는 합천군 궁소면에 속해 있었고, 압곡리, 토곡리, 계현리, 다현리는 의령군 일류곡면이었으나 1914년 합천군 궁소면 일부와 의령군 일류곡면을 병합, 궁류면이라 불렸고, 현재에 이르렀다. '의령 우순경 총기난사사건'은 1982년 4월 26일, 경찰관 우범곤이 당시 근무하던 궁류지서의 무기고에서 총과 수류탄을 들고 나와 마을 주민을 향해 무차별 난사해 56명이 숨지고 34명이 부상을 입었던 비극을 말한다. 당시 우범곤은 동거인과 말다툼을 벌인 뒤 흥분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궁류면 운계, 압곡, 토곡, 평촌리 4개 마을이 피해를 입었다.
♤ 한우산 제2활공장(689m)
제2활공장에는 찰비계곡(벽계계곡)의 도로를 따라서 백학마을로 가는 길이 나있다. 제2활공장을 지나 오름길 계단으로 들어선다.
♤ 찰비(벽계) 계곡
찰비(벽계) 계곡은 의령군 궁류면 벽계리에 위치한 찰비 계곡은 이 마을 사람들은 벽계리에 있는 계곡이라 하여 벽계계곡이라고도 부른다. 찰비란 한우(寒雨)의 순 우리말 이름으로 한 여름에도 겨울비처럼 차가운 비가 내린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세에 명경 같이 맑은 물, 그 옛날 아름다운 신랑 신부의 혼례에 얽힌 전설을 간직한 각시소와 농소 그리고 아소, 누구나 시인이라면 저절로 시구가 줄줄 터져 나올 것 같은 비경에 잠시 젖노라면 저만치 흐르는 흰구름이 걸음을 멈춰 서고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더없이 정겹다. 찰비계곡에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격전을 벌였을 때 신라 애장왕의 부마가 이곳에서 전사하자 이를 비통하게 여긴 애장왕이 직접 전투에 나와 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749.7m봉/ 선암산(仙岩山, 528m)갈림봉/ 삼리봉(가례면 갑을리, 궁류면 벽계리 → 운계리)/ 제3활공장
맥길에서 왕복 350m 비켜서 있는 749.7m 삼각점봉을 다녀온다. 이곳은 옛날에 한우산 제3활공장이었는데 지금은 풍력발전기가 즐비하다. 지맥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지나 이곳에서 왼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삼각점봉으로 향한다. 삼각점이 있어야 할 749.7봉은 풍력발전기 설치로 인해 봉우리 거의 다 날라가버리고 삼각점은 온데간데 없다.
♤ 553m봉/ 면계/ 삼리봉(궁류면 운계리, 가례면 갑을리 → 양성리)
무인 풍력발전관리사무소를 가기 전에 만나는 봉우리로 지맥의 오른쪽이 가례면 갑을리에서 양성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561.8m봉
임도와 잔봉을 넘나들며 풍력발전기를 따른다.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 양성(陽城)삼거리(540m)/ 정삼재(정삼이재)
예전엔 삼거리였는데 지금은 풍력발전기로 올라가는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사거리가 되었다. 넓은 임도에는 자굴산·한우산 등산 안내도가 있고, 오른쪽에 풍력발전기를 관리하는 건물이 보인다. 이곳에서 오른쪽 임도로 내려가면 가례면 양성리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양성마을 조마실 뒷산 중턱에 삼걸너널을 지나 큰 산 넘어가 궁류면 입사마을인데 아주 가파르고 험한 고개인 이곳을 정수암재를 줄여 정삼재라고 부른다. 옛날 소지명이 정삼이라 그런 잿길 이름이 붙은 것 같다.
♤ 의령군 가례면 양성마을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양성마을은 옛날「갈골의 양지땀」이라 불렀다고 한다. 큰 산밑 남향받이 동네이니 지형과 좌향에 맞춘 지명이라 할 것이다. 협동으로 굼티말(굼턱말)과 조마실이 있는데 조마실은 조(曺)씨만이 사는 동네라 한때에는 조촌이니 조씨동이라 부르기도 했다가 줄여서 조마실(조마을)이 된 것이다. 이 세뜸을 합해서 양성으로 정했다는데 성(城)은 성벽 또는 잿길이란 뜻 때문에 마을 이름에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다. 마을 뒤로는 긴 세월 민초들의 애환이 묻어 있는 버재(부자재), 정삼재 등 아주 높고 험한 산고개 잿길이 있으니 이래저래 썩 어울리는 지명이다. 일제 때 가야광산이란 금채굴광산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경남도내에선 큰 규모의 금굴로서 양질의 황금이 많이 채굴되었다고 한다.
왼쪽 멀리 합천과 의령의 경계인 미타지맥의 국사봉이 바라보이네요.
♤ 국사봉(688m)
전국에 국사봉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대충잡아 23곳이 있다. 의령 국사봉은 합천 대야면 오산리와 의령군 봉수면 신현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진양기맥에서 분기한 미타분맥에 들어있다.
#23번 풍력발전기에서 매봉산을 들어서는 입구가 산초나무, 싸리나무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처음부터 계속 진행해야 하는가 싶더군요. 응봉산에는 사각형의 큰 이정표가 있던데 잡풀에 둘러싸여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 응봉산(鷹峰山, 602.1m)/ 4등삼각점(삼가 427/ )/ 면계(가례면 - 궁류면)
깨진 삼각점이 있다. 의령군 유곡면 상곡리와 가례면 갑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현지인들은 솔비산으로 부르는데 산봉우리가 송골매나 솔개의 대가리처럼 생겼다해서 붙여진 산이름이다.
♤ 매봉산(597m)/ 삼면봉(가례면 양성리, 궁류면 운계리 → 유곡면 상곡리)/ 폐헬기장
경남 의령군 궁류면 운계리·유곡면 상곡리·가례면 양성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매봉산에는 예전에 헬기장인 듯한 넓은 공터에는 상촌리와 마등산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북서쪽은 선암산(528m)·산성산(741m), 서쪽으로는 한우산(766m)과 연결된다. 『조선지형도』에는 응봉산(鷹峰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15분 거리에도 같은 뜻의 응봉산이 있으니 정리가 필요하다. 매봉산의 넓은 공터 안내판에는 응봉산이라 표기되어 있고 영진 1/50,000지도에는 597m봉으로 되어 있다.
매봉산에서 지맥의 왼쪽이 궁류면에서 유곡면으로 바뀌면서 한이불재까지 지맥과 오랫동안 함께 합니다.
♤ 의령군 유곡면(柳谷面)
의령군의 중심면으로 한우산 벽계에서 흘러내려 온 유곡천을 중심으로 두 골이 형성된 곳에 취락이 이루어지고 면이 되었다. 산골이 많은 유곡면은 유곡천을 따라 이루어진 마을이 하나의 면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농지가 부족하여 유곡천에 둑을 쌓아 농지를 확보한 곳이 많다. 골짝물을 이용한 농사가 잘되었으나 근래 벽계 저수지 완공으로 완벽한 수리 시설을 이용 미맥은 물론 양파 주산 단지로 농가 주 소득원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으며 조선조 시대 화곡리, 미요리, 정곡리로 삼분되었다가 조선시대 1895년(고종 32년) 화곡리 일부와 상곡, 오목, 신촌리를 능인면, 상촌, 마두리를 이유곡면, 정곡리를 정곡면으로 칭하다가 1913년 한일합방때는 능인면, 정곡면, 이유곡면을 병합하여 유곡면으로 호칭하고 현재에 이르렀다. 깨끗한 계곡, 유곡천변에 솟은 자암정, 우애정 등 경치가 매우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 의령군 유곡면 상촌리(上村里)
의령군 유곡면에 있는 상촌리는 응봉산자락과 마등산(427.6m)의 사이에 위치하여 대부분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촌천이 흐르고 남곡지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남산, 오촌, 장곡, 김촌, 최촌, 포촌 등이 있다. 남산은 장곡 서쪽에 있는 마을로 난곡이라고도 하였다. 오촌은 장곡 중앙에 있는 마을이다. 장곡은 오촌 동쪽에 있는 마을로 장군이 날만한 골짜기라 하여 장곡이라 한다. 김촌은 장곡 서족에 있는 마을로 김씨가 많이 산다 하여 짐촌, 김촌이라 하였고, 최촌은 장곡 서쪽에 있는 마을로 최씨가 많이 산다 하여 최촌이라 한다. 포촌은 장곡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 의령군 유곡면 구상곡마을/ 능인상촌(能仁上村)
『여지도서』(의령)에 "유곡리(柳谷里)는 예전에는 '미요리(未要里)'라고 불렀다. 관아에서 북쪽으로 30리이며, 사면이 산으로 가로막혀 있다."라는 기사가 있다. 능인상촌 발음대로 니인상촌, 니인웃말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유곡면이 능인, 미요, 정곡(정실)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지금의 신촌·오복·상촌 등 긴 골짝인 능인촌(면)이었던 것이다. 옛 지명인 능인은 상촌리와 상곡리 사이의 골짜기에 위치한 '능인산촌' 마을지명과 관련 있다. 능인은 '능인적묵(能仁寂默)' 즉 석가모니를 뜻하는 범어로서 '능히 인(仁)을 행하는 사람'으로 해석되고 있다.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훈련지가 있다.
♤ 부자재(449.5m)/ 성황당터/ 면계(가례면 - 유곡면)
준희선생님 산패가 이정표 기둥에 묶여 있다. 의령군 가례면 양성마을과 유곡면 상곡리를 넘는 고개로 성황당 흔적인 듯한 돌무더기가 보인다. 버재재 또는 부재재로 불리는데 남의 선산을 돌보아 주는 묘지기나 마름이 한 해 동안의 보수로 얻어서 부치어 먹는 논밭을 사래논, 사래밭이라고 한다. 옛날 이 골짝엔 사래논밭이 대부분이라서 어려운 민초들은 소작료를 바치러 곡식섬을 지고 이 고개를 자주 넘어 다녀야 했다. 재를 넘어오는 손님도 부잣집 일보는 마름과 지주들이 고갯길을 뻔질나게 넘어 다녀야만 소출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니 부잣고개로 이름 붙인 것이다. 버재(부자)를 넘으면 유곡이다. 옛날 유곡에 살던 남(南). 강(姜), 이(李)씨 등 큰 부자들 때문에 생긴 재이름이기도 하다.
♤ 575m봉
병풍바위를 바라보며 힘든 바윗길 오름으로 575m봉으로 올라선다. 제법 굵은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 594.9m봉
준희선생님 594.9m 산패가 나무에 매어 있다. 새로운 산패로 부뜰이운영자님부부께서 교체를 하셨을까 고도가 맞지 않는 오래된 고도표를 교체를 해두었다.
♤ 580.1m봉/ 면계/ 삼리봉(유곡면 상곡리, 가례면 양성리 → 개승리)
지맥의 오른쪽이 가례면 양성리에서 개승리(介承里)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개승리는 가례면 갑골(갑을 乫谷, 加乙谷)의 중간지점에 있는 마을인데 개승이란 지명도 유래 있는 고유지명은 아니고 행정구역 정비시기에 작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갈골의 중간 지점이고 아래위 큰 마을사이에 끼어 있는 지역이라 그랬다는 풀이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개승리에는 옛 지명으로는 가른편, 사불당, 중산골과 한길가 양편에 몇 집이 있는 질가땀 등이 있다. 옛날에는 가른편을 병정동(丙丁洞)이란 지명을 썼다는데 이는 맨 안골마을이 갑을(甲乙)이라 바깥쪽을 병정(丙丁)으로 아주 편하게 갑을병정으로 작명한 것 같다. 그리고 일부 문헌에는 세변촌(細邊村)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는데 한자로 적은 것을 앞 글자는 훈(뜻)을 따고 뒷글자는 음(독음)을 따서 부르자니 가는변이었는데 쉽고 편하게 또 된소리가 되어서 가른편, 가는편으로 불렀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또 다른 얘기로는 아득한 옛날 동네라고 부를 수 없이 산자락에 세민(細民)들 몇 집이 터전을 잡고 살았던 변토(邊土)였고 변방(邊方)이었기 때문에 그런 소지명을 썼다는 것이다. 사불당은 옛날에 암자가 있어서 그런 지명을 쓰게 되었다는데 지금은 절은 없고 자굴산중턱에 있는 백련암으로 가자면 이 동네를 거쳐가야 했던 옛길이 있었다.
정상석 뒷면에 "덕암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란 문구가 새겨져 있네요.
♤ 신덕산(神德山, 582m)/ 삼면봉(유곡면 상곡리, 가례면 개승리 → 용덕면 이목리)/ 정상석
여기서부터 우봉지맥 분기점에서부터 같이해 온 가례면과는 아쉬운 작별을 한다. 의령군 가례면 개승리, 용덕면 이목리, 유곡면 상곡리의 경계에 있는 신덕산은 662년 신라시대 문무왕 2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는 수도사(修道寺)가 위치하고 있는 근교산으로서 전설로는 절의 뒷산인 신덕산에 흡사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가 있어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는데 당시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백여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여 이 때문에 절 이름을 수도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한 신덕산 중턱에 어느날 석공이 절을 지을 기둥 받침으로 쓸 바위를 쪼개는 순간 바위 속에서 백학 세마리가 나와 멀리 날아가 한 마리는 양산 통도사 자리, 한 마리는 합천 해인사 자리에 한 마리는 신덕산 수도사 자리에 앉아 사찰이 창건되었다는 설화가 있는 산이다. 용덕면 이목마을 앞뒷산이 모두 신덕산(옛 문헌상 德山 또는 神德山)의 줄기이며 남동쪽만 빠끔히 열어 놓았을 뿐 두루 산이 에워싸고 있다. 산골 논이지만 군내서는 가장 값비싼 땅이라 이목 논 한마지기 팔면 의령 들논 두마지기를 살 정도였다고 한다. 일꾼들을 불러놓고 우리 진배미(긴배미) 논서마지기를 아침나절에 다 갈아 뒤비거나(뒤집다), 두룸(논두렁) 다 바르기만 하면 내 사위로 삼겠다는 내기를 걸었던 유명한 진논배기가 있다.
♤ 절티재(344m)/ 질티재/ 면계(용덕면 - 유곡면)
의령군 용덕면 이목리에서 유곡면 상곡리를 넘는 고개로 유서 깊은 고찰 수도사(修道寺)로 통하는 산고개 잿길이 절티재인데 절(寺)과 티에 재(峴)란 말이 겹쳐져 생긴 말이다. 이목(마을의 지명유래는 절티재 밑 번덕에 아주 큰 돌배나무가 있었고 그 곳이 원래 마을터였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생 돌배나무(산돌배나무)가 마을의 상징이 되었고 또한 촌명이된 것이다. 배나무 梨木에 마을(村)의 합성어인 셈이다. 마을 뒤로 높은 재가 있고 논밭길도 멀었을 뿐 아니라 화적떼가 자주 출몰해 괴롭혀 지금의 마을터로 이주했다고 하는데 고개먼당에 큰길이 있어서 절티재인데 그 재를 넘으면 능인상촌(지금의 유곡상촌)에 닿고 아랫등을 넘으면 갑을 양성으로 이어지는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로 변해있다.
♤ 421.4m봉/ 면계/ 삼리봉(유곡면 상곡리, 용덕면 이목리 → 용소리)
편백나무 조림지를 길게 따라 임도로 내려서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는 421.4m봉을 지난다. 지맥의 오른쪽이 용덕면 이목리에서 용소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급우틀로 잠시 진행하다 또 한번 급우틀로 진행한다.
♤ 379.7m봉/ 면계/ 삼리봉(용덕면 이목리, 유곡면 상곡리 → 오목리)
소나무 높이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지맥의 왼쪽이 유곡면 상곡리에서 오목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구오목고개(舊烏木峴)/ 질마재/ 작은골재/ 2차선도로
창고 용도인지 폐가를 지나 오른쪽 임도를 내려서면 2차선도로가 지나는 질마재이다. 정상에 선도단지 관리소 건물이 있다. 의령군 용덕면 이목리에서 유곡면 오목리로 넘어가는 2차선 포장도로에 고개 정상에는 이동통신탑이 고개를 지키고 있으며 벌목지를 오르며 왼쪽으로 구오목마을 보인다. 구오목은 오목리의 옛 마을로 지형이 오목하므로 오목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 의령군 유곡면 구오목 마을
의령군 유곡면에 있는 오목리(烏木里)는 남쪽으로 낮은 산지가 펼쳐져 있어 대부분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으로 상곡천이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구오목, 평촌이 있다. 구오목은 오목리의 옛 마을로 지형이 오목하므로 오목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평촌은 오목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신오목이라고도 하며 비교적 평탄한 곳에 있다 하여 평촌이라 한다.
♤ 373.5m봉/ 면계/ 삼리봉(용덕면 용소리, 유곡면 오목리 → 신촌리)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지맥의 왼쪽이 유곡면 오목리에서 신촌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으로 조망이 시원하다.
멀리 남쪽으로 함안읍의 뒤로 보이는 낙남정맥 능선 상에 여항산, 서북산을 찾아봅니다. 우봉산에서 가까운 중교리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회장이 태어난 곳으로 풍수지리적으로 재벌이 난다는 소문때문에 몰래 묘를 쓰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특별할것 없는 우봉산이 우봉지맥의 주산으로 이름을 얻은 이유를 알아보니 우봉지맥이 무명봉 지맥이라 이름으로 쓸만한 산을 고르기 힘들었다는 비화가 있군요. 한우산과 쇠목재에서 소의 잔등을 타고 신덕산을 걸쳐 왔으니 우봉산이 강력한 후보였겠단 공감이 갑니다.
♤ 우봉산(牛峰山, 372.3m)/ 삼면봉(유곡면 신촌리, 용덕면 용소리 → 정곡면 죽전리)/ 산불감시초소/ 3등삼각점(남지 312/ )
유인산불감시초소와 깨진 삼각점이 있다. 우봉산은 높이로는 야산에 불과하지만 지형상으로 인근 의령군, 창녕군, 합천군 일대의 이름난 산봉우리들이 앞다투어 얼굴을 내밀어 조망이 좋다. 정상에서 좌틀 해야하나 잡목이라 뚫을 수 없어 살짝 오른쪽으로 돌아서 진행한다. 경남 의령군 용덕면 용소리와 유곡면 신촌리, 정곡면 죽전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이곳 의령은 가야시대 이전에 남강의 문화권을 배경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한 왕국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지명 총람에 조사된 우두봉으로 한자로는 우두봉(牛頭峰)이지만 우리말로는 소머리 즉 우두머리를 표현하는 땅이름이다. 자굴산 너머 칠곡에는 가야 이전에도 우두머리가 통치하는 곳으로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던 곳이다. 가야시대 교통과 방어에 적합한 의령 지역으로 도읍지를 이전하였음을 알 수 있는 의령읍 북쪽의 우봉산 지명이다. 독자적인 세력권이 오랫동안 연결되어온 터전임을 밝히고 있으며, 즉 가야시대의 왕국이 형성될 수 있는 기반 세력이 칠곡에 있었음을 선돌 유적과 함께 땅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대부분 소, 서, 사 의 발음으로 우리말 ‘소’ 가 한자가 유입되면서 ‘우(牛)’자로 변하면서 우봉산이 된 것으로 보여지며 우리말 소머리 산을 한자로 우두머리 산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우봉산도 도읍지와 관련된 산 이름으로 밝혀지고 있다. 산 정상은 하늘과 통하는 길(소도)이라 하여 신성시 하였으며 특히 왕도의 동서남북 방향에 있는 산은 정기가 통하는 산으로 제사처를 정한 것이 여러 다른 왕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 의령군 정곡면(正谷面)
정곡면은 신라 신문왕 5년(서기658) 장함현 화곡리에 속하였으며, 현종 9년에 진주 속령으로 있다가 대한제국 고종 32년(1895년) 화곡(禾谷:화실)과 정동(正洞) 두 방리(坊里)였으며, 1906년(광무10년) 지방구역정리 때 일정동(一正洞), 이정동(二正洞)과 화곡(禾谷)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 뒤 지방행정구역조정(1914년 3월 1일 시행) 때 이정동은 지정면 관할로 편입되고 화곡과 일정동이 통합되어 정곡면이라 부르게 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곡면(正谷面)은 의령군 동부에 있는 군청에서 12km 떨어진 중간산지에 위치한 면으로 대체로 300m 이하의 산지를 이루며, 남강이 남쪽 면계를 곡류한다. 평야는 남강과 이곳으로 흘러드는 하천연안에 분포한다. 벼를 주 작목으로 재배하여 오다 1980년대 의령군 내 처음으로 수박시설하우스를 시작으로 현재는 수박·호박·양상추·단감·새송이버섯 등의 다양한 원예 재배가 활발하다. 일부 농가에서는 축산업도 행해지고 있다. 또한 중교리에는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4개의 기업체가 입주하여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정곡면 중교리에는 한국 경제발전이 상징적 인물인 호암 이병철선생 생가가 있다. 이병철의 조부가 지은 전통 한옥집으로 호암은 유년시절 때부터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의 시절을 이집에서 보냈다. 그는 집안의 우물과 오동나무를 좋아했다고 한다.
의령군에서 산불방지용으로 임도를 거미줄처럼 만들었는데 임도삼거리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여기서 비박했습니다.
♤ 장군당재 삼거리(270m)
의령군 유곡면 신촌리 장군당마을에서 정곡면 죽전리를 넘는 고개로 장군당 마을에는 영험이 있는 당산나무와 조산이 있고 그 밑에 "수구대장군(水口大將軍) 건륭46년(乾隆 46年) 4월 일 안국서(安國瑞)"라 새겨진 큰돌비가 서 있다는 기록이 있지만 우봉지맥에서 찾아볼 길은 없다. 풍수지리설에 있는 수구장문(水口藏門) 즉 골짜기 물이 멀리 돌아서 흘러가 저 밑 하류가 보이지 않게 된 땅의 형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 수구막이 또는 수구대장군이라는 글을 장승에 써서 세우거나 돌에 새겨 세우는 풍습에 결국 피재(避災)와 발복(發福)의 염원과 함께 허한 지기를 비보하는 민속신앙의 한 가지라 할 것이다.
♤ 의령군 유곡면 신촌리 장군당마을
삼성그룹의 호암 이병철회장 생가지에서 의령 9경 중 하나인 동굴 사찰 봉황대 일붕사에 가려면 막실재를 넘어야 하는데 그 고개를 넘어 처음 만나는 마을이 유곡면 신촌리이다. 옛날에는 매미끝이라는 마을로 불렸는데 막실재를 넘으면 유곡면과 궁류면 두개의 면이 있는데 이 면에서 의령 마산 방향으로 나가려면 제일 마지막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맨끝마을이 매미끝이라 불렸다. 신촌리는 큰 땀, 작은 땀, 그리고 장군당이라는 세개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장군당마을에는 임씨와 안씨성을 가진 7-8호의 가구가 있었으나 외지로 내몰리고 큰 땀, 작은 땀으로 내려오며 폐촌이 되었다가 근년에 환경을 찾아 다시 새로 집을 짓는 이주민이 생기게 되었다. 작은 땀에서 장군당까지는 약 1km로 해가 기울면 길이 어렵고 무서웠다. 장군당 마을 앞 당산나무에 돌무더기는 어느덧 쉼터로 변하고 농막도 만들어져 있다. 마을 입구에 수구대장군이라는 자연석으로 세운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뒷면에 〈乾隆 46年 4月 日 安國瑞〉로 새겨져 있다. 건륭 46년은 서기로 1781년이니 마을 역사가 참 오래 되었다. 구전으로는 장군당에 안씨성을 가진 힘센 장사가 계셨는데 이 수구대장군 비석을 칡넝쿨에 걸빵을 만들어 짊어지고 왔다고 한다.
♤ 357.8m봉/ 면계/ 삼리봉(유곡면 신촌리, 정곡면 죽전리 → 중교리)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정상 직전 335m에서 지맥의 오른쪽이 정곡면 죽전리 중교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中橋里)
유곡에서 정곡으로 이어지는 1011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정곡면 중교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우리나라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호암생가 뒷산 용미를 따라가면 유곡면 경계 막실재 좌우에는 마두(馬頭)란 동네 뒷산과 소뿔 같다하여 우봉산(牛峯山)이 있고 이 산은 두곡, 담안 마을까지 아우르며 정곡초등학교 앞까지 내려와 월현천에 머리를 잠그고 있는 잠용으로 호암생가는 용반산세에 용미혈에 위치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다리(中橋)는 순수 우리말로 표현하면 ‘가운데다리’다. 남자의 상징이면서도 인체에 가장 신묘한 부분이다. 양반고을 선비의 점잖은 표현으로 중교 또는 중다리라 했지만 ‘가운데다리’에 대한 이 지역 민속적 이야기는 많다.
막실재 도로를 건너 농장으로 진입하는 양회임도로 올라섭니다.
♤ 막실고개(182m)/ 1011번도로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유곡면 신촌리를 넘는 고개로 사람들 왕래가 빈번했던 길로 막실음달재라고 한다. 막실(막곡)로 돼 있는데 어느 세월 어떤 연유로 두곡(말실)이 된 것인지 아는 이가 없다. 다만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일제정리 때 어감상 좋지 않은 막(莫)자를 말 두(斗)자로 바꾸었다고 보는게 옳은 것 같다. 동남쪽만 열리고 두루 산인데다 서북쪽은 높은 산줄기가 가로 막은 채 길고도 험한 산고갯길인 막실재(물론 요즘은 두곡재라 부르기도 한다)가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옛 어른들은 제법 넓으면서 깊숙하고 초목만 울창한 골짜기인데다가 큰 재가 앞을 막고 있는 지형 즉 큰골이면서 막다른 골짜기라서 막실(막골)로 작명했던 것이며 굳이 한자로 적자니 막(莫)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유곡에서 정곡으로 이어지는 1011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정곡면 중교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우리나라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임도를 따르다 왼쪽으로 올라서는 봉우리로 계속 임도를 따르면 지나치는 봉우리입니다.
♤ 328.7m봉/ 4등삼각점봉(남지 439/ )/ 면계/ 삼리봉(정곡면 중교리, 유곡면 신촌리 → 마두리)
삼각점은 마모되어 판독이 되지 않으며 준희선생님 328.7m봉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지맥이 왼쪽이 유곡면 신촌리에서 마두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묘비는 읽었는데,, 숯골산을 생각하지 못하고 깜박 그냥 지나쳤습니다.
♤ 279m봉/ 숯골산갈림봉/ 알바 주의/ 면계/ 삼리봉(유곡면 마두리, 정곡면 중교리 → 석곡리)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고 봉우리 가운데에 가선대부 평산신공 묘비가 있다. 지맥은 좌틀로 90도 꺾는다. 지맥의 오른쪽이 정곡면 중교리에서 석곡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며, 오른쪽으론 왕복 약 1.5km 거리의 숯골산(291.2m)이 갈리는 봉우리다. 숯골산은 호암산으로도 불리며 백두대간에서 내려온 우봉지맥이 숯골산을 지나 이병철 생가 뒷산으로 흐르는 용맥인지라 특별히 다녀오기도 한다.
60전후, 약초 캐는 부부가 상주한지 4년 됐답니다. 시원한 삼다수 머그컵으로 두잔 얻어 마셨습니다.
♤ 유곡농장
임도로 내려서면 왼쪽에 가건물 형태의 울타리가 쳐진 유곡농장 농가가 나온다. 흑염소와 닭도 키운다. 방화수가 있길래 물어보니 염소에게 줄 물이란다. 유곡농장을 지나 다시 왼쪽 임도로 올라선다. 우봉지맥은 임도가 많아 임도파에게는 한없이 수월한 지맥이 되는 반면에 원맥을 고집하는 정통파에게는 험난한 칡넝쿨과 산초, 망개나무 가시잡목이 기다린다.
♤ 318.3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나무에 매어 있다.
♤ 334.1m봉/ 긴등산갈림봉/ 면계/ 삼리봉(유곡면 마두리, 정곡면 석곡리 → 오방리)
지맥이 오른쪽이 정곡면 석곡리에서 오방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며, 오른쪽으로 긴등산(231.6m)으로 가는 갈림봉이다.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무슨 소린가 했는데 군에서 인부들이 예초기로 임도를 정리하고 계시고, 차가 오길래 혹시 물을 구할 수 없냐니깐 얼음물 하나 주시네요. 배낭의 등받침대에 넣고 가는 두시간은 행복했습니다. 이분을 달재 직전에서 또 한번 만나 얼음물을 한병 더 얻었네요. 임도를 건너 올르던 차에 차소리가 나서 무조건 뛰어 내려 물좀 구할 수 없냐니깐 아까 그분 이었어요.^^ 물도 없이 산행을 하느냐고 꾸사리도 먹었습니다.ㅋ
♤ 307.1m봉/ 면계/ 삼리봉(정곡면 오방리, 유곡면 마두리 → 칠곡리)
지맥의 왼쪽이 유곡면 마두리에서 칠곡리로 바뀌는 삼리봉 지점이다. 임도로 내려서니 인적없는 창고가 나오고 다시 등로로 올라선다. 산패는 없고 선답자 띠지가 지키고 있다.
지맥은 옥녀봉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 오방삼거리(260m)
의령군 정곡면 오방리와 유곡면 마두리의 경계에 있는 곳인데 뒷측으로는 막실고개, 우측으로는 세간마을, 좌측으로는 옥녀봉으로 간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지명의 유래는 이 임도 우측 아래에 있는 오방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오방마을은 정곡면 소재지에서 신반쪽 오리길 남짓한데 쏙 들어앉은 마을로 유곡면과 경계를 긋는 달재 바로 밑에 위치해 있는 마을로 보통 정곡 오뱅이라 부르며 먼저 철성 이씨(고성 이씨) 집성고촌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된 동네다. 마을 어귀의 논두렁 밑에 자연석 표석이 있는데 오방(五榜)이라 새겨져 있다. 다섯 방문(榜文) 글(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써 붙이는 글, 벽보같은 것)이란 뜻이다. 큰 인물과 관련되는 지명이며 흔치 않은 지명의 유래인데, 지금 쓰는 오방(五方)은 일제 때 쉽고 편리한 글자로 바뀌면서 소리(음)는 같지만 뜻은 엉뚱하게 변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299.3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곧바로 우틀이다. 잘 보이는 길로 아무 생각없이 직진하면 알바~
♤ 303m봉/ 무인산불감시초소/ 철탑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고 산불감시용 CCTV와 경고방송 시설이 있다. 오름길에 준희선생님 '우봉지맥을 종주하시는 산님들 힘내세요' 격려 산패가 있다는데 보지 못했다. 돌문재에서 기강나루로 이어지는 지맥이 시야에 들어온다.
♤ 310.7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산벚꽃나무에 매어 있다.
잠시 임도로 내려선 지점입니다. 깜박 그냥 갈뻔 했다가 다시 돌아서 다녀왔네요.
♤ 옥녀봉갈림길/ 면계/ 삼리경계면(정곡면 오방리, 유곡면 칠곡리 → 세간리)
지맥의 왼쪽이 유곡면 칠곡리에서 세간리로 바뀌는 삼리경계면이다. 세간리는 유곡천이 마을 앞쪽으로 흐르고 함안과 의령 그리고 대구 방향으로 세갈림길이 나뉘는 곳이다. 310.7m봉을 지나서 옥녀봉삼거리에 배낭을 벗어두고 편도 약 0.5km의 옥녀봉(玉女峰, 340.9m)을 능선길로 다녀온다. 올 때는 등산 안내도 왼쪽으로 내려가 임도를 따라 오방마을 방향으로 돌아와도 된다. 묘지가 있는 무명봉(215m)에서 임도에 내려서서 컨테이너박스 옆으로 올라 잡목을 헤치며 내려가니 납골묘가 나오고 20번 도로 달재 절개지가 보인다. 절개지가 깊다. 오른쪽 배수로 가장자리를 따라 달재로 내려선다.
♤ 옥녀봉(玉女峰, 340.9m)/ 정상석, 육각정/ 유인산불감시초소
잘생긴 육각정과 삼각점 그리고 산세에 비해 상당히 큰 정상석이 있다. 옥녀봉은 유곡면 덕천리 앞산으로 옛날 옥녀가 놀았다 하여 옥녀봉이라 한다. 옥녀가 시집을 갈 때, 말을 타고 갔는데, 지금의 마두는 옥녀가 타고 간 말머리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마두라 하며 신촌은 말꼬리에 해당되는 곳으로 옛날은 말미인데 줄여서 매미(끝)라 한다. 옥녀는 얼굴도 아름다웠지만 길쌈도 잘하였는데 덕천 뒷산에 가락등, 물레등이 있다고 하며 옥녀가 시집갈 때 농을 가지고 갔는데, 지금 마두 근처에 농덤(농바위)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세간 뒷산을 옥녀가 놀았다고 하여 꽃밭등이라고 하며, 봉수면 서득리에서 유곡면으로 넘어가는 재가 직금재인데, 본래 옥녀가 직금 織錦)마을에서 비단(명주)을 짰는데,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서 옥녀와 같이 놀다가 하늘로 올라가곤 하였다고 하며, 옥녀가 직금 즉 비단을 짠 곳이라 하여 그곳을 직금마을이라 하고 마을 뒤에 있는 재를 직금재라 부른다. 너실 앞으로 흘러내려 오는 개울물이 굽이치는 곳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위에 강씨 문중의 장암정이 있다. 옛날 그 장암정 밑의 소에 옥녀가 와서 발을 씻고 놀았다고 한다. 본래 그 내는 지금 도로가 나 있는 옥녀봉 산밑으로 흘러서 세간 쪽으로 갔다고 하는데, 표씨 선조의 묘를 쓴 곳이 옥녀의 발등이라고 하며 그 묘를 쓴 이후부터는 내가 덕천마을 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다고 한다.
♤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1552~1617)/ 망우당(忘憂堂)
곽재우 장군은 명종 7년(1552년) 경상남도 의령 유곡면 세간리에서 출생했다. 16세 때부터 남명 조식 선생 문하에서 학문을 닦다가 자굴산에 있었던 보리사에 들어가 병서와 경서를 읽었다고 하며, 1585년(선조 18년) 별시 문과에 급제했으나 답안지의 내용이 왕의 뜻을 거스른다하여 파방되었다. 이 일로 과거를 포기하고 은거하다가 그 뒤 선조 25년,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의주로 피난하자 4월 22일 허언심(許彦深)과 의논, 재산를 모두 털어 전국에서 제일 먼저 의병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 곽재우 장군이 집 앞에 있었던 이 느티나무에 큰북을 매달아 놓고 둥둥둥 치면서 이곳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하는데 그러므로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의병 발상지이자 의병 훈련장이었던 셈이다. 이 520년이 넘은 느티나무의 이름이 현고수(懸鼓樹)로 불리워지게 된 것도 바로 그때부터 였단다. 지금도 세간마을 입구에는 현고수라는 커다란 나무가 서있다. 장군은 홍의에 백마를 타고 휘하에 17명의 장수와 수천의 의병을 거느리면서 정암진 , 기강, 현풍, 창녕 화왕산성, 진주성 등의 전투에서 실로 신출귀몰하는 전략·전술로 적을 크게 무찌르고 백전백승함으로써 왜병의 전라도 진격을 저지했다. 이때 붉은 옷을 입고 많은 왜적을 무찔렀으므로 홍의장군이라고도 불렸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진주목사를 지냈고 한성부 우윤,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어제 서울에서 의령터미널 갈때 직행버스를 타고 넘어가던 고갭니다. 비온 뒤라서 계곡으로 내려가니 흐르다 고이다, 약간 구정물이지만 알탕할 정도로 물이 있네요. 옷과 손수건, 토시를 빨고 2리터 담아 출발합니다.
♤ 달재(月峴, 105m)/ 20번도로/ 면계(유곡면 세간리 - 정곡면 오방리)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정곡면 오방리의 경계에 있는 20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 북쪽으로 옥녀봉, 남쪽으로 왕봉산과 이어진다. 지명은 달이 비친다는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하며 달재(다래재), 월현(月峴), 월나현(月羅峴) 등으로 불렀던 것의 한글 표기이다. 『대동지지』(의령)에 "월나현(月羅峴)은 오른쪽 길이다(東路)."라는 기사가 있다. 『조선지형도』(의령)에는 월현(月峴)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의령)에는 월치(月峙)·월령(月嶺)으로 한자를 달리해 표기되어 있다. 지명과 관련하여 남서쪽으로 월현지(月峴池)가 있는데 정곡면 오방리의 농업용수로 이용된다. 이 일대에서 월현천(月峴川)이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남강에 유입된다. 바로 밑에 오방마을이 위치해 있다. 보통 정곡 오뱅이라 부르는데 먼저 철성 이씨(고성 이씨) 집성고촌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된 동네라고 하며 이곳에서 10분이 채 안걸리는 거리에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있다. 옛 문헌에도 월라현하세간원유(月羅峴下世干院有)라는 기록으로 보아서 달재를 넘어서 세간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세간이란 지명은 오래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니차이(미찬이)」로 부르게 된 연유를 알 수 없다. 왼쪽 아래에 있는 세간마을은 의령을 의병의 고장이라 부르게 한 동기를 만든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지금도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망우당 장군이 이 나무에 북을 메달아 놓고 의병을 조련시켰던 현고수(縣鼓樹)인데 아직도 마을 사람들이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다. 달재에서 왼쪽 절개지를 기어올라 맥길을 이어간다.
♤ 257.7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굵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왕봉산 가는 길에 동산공원묘원이 보이고, 왕봉산에서 달재와 고송골 너머 세간리 들녁 방향으로 조망을 살펴봅니다.
♤ 왕봉산(262.8m)/ 면계/ 삼리봉(유곡면 세간리, 정곡면 오방리 → 상촌리)
왕봉산은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와 정곡면 상촌리, 오방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준희선생님 산패가 붙어 있긴 하지만 지명의 유래에 대한 자료는 찾을 길이 없다. 이곳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가면 노은봉이 있고, 정곡면 상촌리 마을이 나오는데 예전엔 정동(正洞)이라 불렀으며 삼성그룹의 창업주 호암 이병철회장의 생가와 가까운 마을이다. 급좌틀하여 10분 정도 내려서면 돌문재이다.
♤ 의령군 정곡면 상촌리(上村里)
의령군 정곡면에 있는 마을로서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촌지와 고랑못골이 있다. 본래 의령군 일정곡면의 지역으로 일정곡면에서 가장 위가 되므로 웃마을 또는 상촌이라 하였다. 정곡면 소재지에서는 동북방이고 깊은 산골짜기 마을인데 한때는 정동(正洞)이라 불렀던 곳이다. 남쪽으로 열리고 두루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마을 뒤로 왕봉산과 노은봉이 상당히 높다. 옛날에는 꽉막힌 지역이였으나 근래 와서는 지정이나 신반 쪽으로 통하는 도로가 잘 나 있어서 교통도 편리한 동네가 됐다. 이 마을은 성씨별 집성촌으로 안촌, 조촌, 전촌 모두 세 뜸인 셈이다. 그리고 골밖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보갈이란 동네가 있다. 지금은 복양(復陽)으로 적고 있다. 보갈이의 유래는 이 마을 뒤에 있는 산의 지형이 큰 소가 배불리 먹고 누어서 새김질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과 소로서 밭골을 타거나 논을 갈 때 소 코뚜레에 매고 방향을 잡는 긴 꼬삐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흔히 '이까리'라고도 하는데 이 줄을 당기면 오른쪽이 또 치면서 ‘자라(좌라)’라고 소리치면 왼쪽으로 가게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보가리는 보통 짚의 홰미와 삼으로 잘 꼬아서 아주 질기고 매끄럽게 만든다고 한다. 보통 소먹일 때 달고 있는 것은 꼬뼁이(고삐)라 부르고 쟁기질, 훌청이(극젱이)를 끌면서 일을 시킬 때는 이 보가리(보갈이)를 단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난지골짝, 복양동, 새터, 점터 등이 있다. 난지골짝은 새터 서쪽에 있는 골짜기인 난지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난지골짝이라 한다. 복양동은 새터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보가리라고도 한다. 새터는 상촌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새터 또는 신기라 하고, 점터는 전에 사기를 구운 흔적이 남아있는 점터에 있다 하여 점터라 한다.
날머리까지 약 10km 남겨둔 지점으로, 지정면 방향으로 조금 내려섰다가 왼쪽 절개지로 올라섭니다.
♤ 돌문재(石門峴, 155m)/ 고송골재/ 구 1041번도로/ 삼면경계면(유곡면 세간리, 정곡면 상촌리 → 지정면 태부리)
어서오십시오 수박의 고장 지정면입니다. 표지석이 있다. 낙석방지 울타리에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가 매어있다.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와 정곡면 오방리, 지정면 태부리의 삼면경계에 있는 고개로 『조선지지자료』(의령)의 일정동면(현재 정곡면)에 석문현(石門峴)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지금은 산고개 자체를 많이 낮추어서 큰길이 나 있지만 옛날에는 높고 험한 잿길이었다. 지명은 고개먼당에 큰 바위들이 서 있었는데 꼭 문기둥 같았다는 뜻에서 유래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돌문재라 부르지 않고 좌측 세간리에 있는 고송마을의 지명을 따서 고송골재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고개를 엄청나게 깍아 내려서 길이 평탄한 것처럼 보이지만 예전엔 이 길이 엄청나게 높기도 하거니와 비포장도로에다 험한 길이라 교통사고가 많이 났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풍전등화 같았던 조선을 지키는데 일조를 한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생가가 있는 유곡면 세간리이다.
♤ 의령군 지정면(芝正面)
의령군 군청소재지에서 동부쪽 26km 떨어지고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면으로 지리적으로 의령 낙서면과 맞닿는 곳에 있으면서도 낙동강변이 흐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갓등산(259.2m), 가목산(257.3m)과 같이 해발 250m 되는 산이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봉우리가 많아 고저차이가 심하다. 낙동강과 남강이 각각 북동·남동 면계를 흘러 면의 동쪽에서 합류한다. 따라서 비옥한 두 강을 끼고 창녕, 함안과 접하고 강변평야는 근래 수리시설 완비로 농사가 잘된다. 쌀 이외에 호박·오이·수박·멜론·토마토 등이 많이 생산된다. 아직도 산간 농촌이라 할 수 있다. 대구-마산을 잇는 국도와 연결되는 1041번지방도가 면내를 지난다. 1895년 조선 고종 32년에 의령군이 개설된 이래 ‘지산면’과 ‘이정동면’으로 구분되었다가, 1914년 3월 1일 일제강점기 양면이 병합하여 ‘지정면’으로 개칭하여 법정리 10개 마을로 구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공업화로 인한 청년층의 인구가 창원, 마산, 부산 등으로 전출하며 매년 인구 감소 추세에 있다. 또한 홍의장군 곽재우 생가, 백산 안희재 생가가 맞닿는 지역이 지정면이다.
♤ 250.6m봉
돌문재에서 미끄러운 절개지를 올라서면 예전의 1041번 비포장 지방도로가 나온다. 다시 옛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 묵묘를 지나고 성황당 흔적같은 돌무더기를 지나니 봉우리까지 약 15분 소요된다. 이후 200m대의 잔펀치를 오르내린다.
♤ 한이불재 갈림길/ 삼면경계면(지정면 태부리, 유곡면 세간리 → 부림면 경산리)
왼쪽으로 멀리 동산공원묘원이 다가오고, 평장으로 잘 정돈된 순흥안공 가족묘를 내려서면 임도가 나온다. 한이불재는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지정면 태부리를 잇는 고개로 원래 홑이불이란 말이 쉽게 발음하면서 한이불이 된 것이며, 재를 넘어가자면 여름에 홑이불을 둘러 쓴 것처럼 땀이 흐르고 숨이 막힌다는 것이다. 이 재를 넘으면 유곡 세간의 고송골로 빠지게 되는 산길이라 옛날에는 연락부절로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동네 건너 갓골 안으로도 산고개가 있는데 보가리재라고 한다.
♤ 의령군 부림면(富林面)
군청으로부터 동북방향으로 22km 지점에 위치한 의령군 북부의 소중심지로, 부림이라는 지명보다는 면소재지인 신반이라는 지명이 더 알려져 있다. 미타산(662.9m) 중턱에 무학대사가 창건했다는 조계종계 사찰 유학사(留鶴寺)가 있다. 권혜리와 묵방리는 1983년 합천군 적중면에서 편입됐다. 권혜리의 경우 미타산 자락에 막혀 있어, 다른 부림면 지역으로 가려면 봉수면을 거쳐야 하는 실질월경지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가 있다. 북쪽은 합천군 청덕면, 동쪽은 박진교를 건너 창녕군 남지읍과 접한다. 그리고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낙동강 자전거길도 적포리 구간과 그 악명높은 박진고개도 있어 여러모로 유명하다. 동북으로 합천군과 창녕군이 인접하고 서로 본군 봉수면, 남으로 지정면, 유곡면, 동으로 낙서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창녕-산청을 잇는 국도 20호선이 면의 중심부를 남북 방향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동부지역 중심지로 교통의 요충지이다. 천황산(687.6m)·미타산(662.9m) 줄기가 뻗어내린 북서부를 제외하면 전지역이 300m 내외의 산지를 이루고 있다. 유곡천이 신반천을 합류하여 낙동강에 흘러들며, 하천 양안에 비옥한 평야가 전개되었다. 쌀 이외에 팽이버섯·양상추·파프리카·양파·수박 등이 특산물로 생산된다. 신반리에는 농공단지가 입지해 있어 농외소득의 기틀이 마련되고 있다. 입산리에는 독립운동가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선생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또한 신반리에 있는 송암사와 인근의 병풍암을 중심으로 조성된 암벽공원은 레포츠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알려졌다.
♤ 236.7m봉
임도를 따르다가 왼쪽 능선으로 올라선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다시 임도로 내려서니 임도파들은 우회하여 임도를 따르기도 한다. 봉을 내려서면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고성이공 묘지를 만난다.
면경계는 왼쪽 백산고개로 가고, 지맥은 오른쪽으로 내려섭니다.
♤ 250.4m봉/ 면계/ 삼리봉(지정면 태부리, 부림면 경산리 → 지정면 유곡리)
한동안 널찍한 임도를 따르면 건너편으론 동산공원묘원이 보이고 임도를 버리고 왼쪽 능선으로 올라서면 지나온 한우산과 의령 자굴산이 멀리 보인다. 간벌지역으로 올라서면 준희선생님 산패가 굵은 참나무에 매어 있는 250.4m봉이다. 여기부터 왼쪽이 부림면과 헤어지고 좌우 온전히 지정면으로 들어선다. 250.4m봉에서 내려서며 지맥의 오른쪽이 지정면 태부리 → 두곡리로 바뀌어 지맥은 지정면 유곡리와 두곡리의 경계를 따른다.
두곡리는 6.25전쟁 박진지구 전투당시 북한군 지휘부가 머물렀던 마을입니다. 부림면 신반에는 북한군 4사단 사단사령부가 있었다네요.
♤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杜谷里)
두곡리는 낙동강 유역에 위치하여 충적평야가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천이 흐르고 북쪽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두곡저수지와 관동소류지가 있다. 두목산 밑이 되므로 두곡이라 하였고 자연마을로는 관동, 산성, 삼거리, 안촌, 손촌 등이 있다. 관동은 두곡 북쪽에 있는 마을이며 산성은 산성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산성이라 한다. 삼거리는 두곡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세 갈래 길이 있다 하여 삼거리라 하고, 안촌은 두곡 북쪽에 있는 마을로 아랫땀이라고도 하며 박씨가 많이 산다 하여 박촌이라고도 한다. 손촌은 아랫땀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웃땀이라고도 하며 손씨가 많이 산다하여 손촌이라고도 한다.
♤ 태부산(太夫山) 갈림길
날머리까지 대략 7~8km 남겨둔 지점부터는 맥길과 임도가 나란히 가는 구간이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지정면 태부리로 향하는 뚜렷한 임도가 보이나 지맥길은 왼쪽 내리막길이다. 지정면 태부마을 뒷산이 태부산(太夫山)이었기 때문에 지명의 정리하며 산 이름대로 정했다고 한다. 태부마을은 옛날 상태부(上太夫)라고 했던 지역인데 웃땀(상촌), 중땀, 아랫땀과 안골(안땀) 등 네뜸이다. 태부산으로 부르는 뒷산도 기록에는 나오지만 보통으로는 동네 뒷산이라고 부른다. 중땀 건너 산골짜기를 개장골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옛날 아기무덤(보통 깨장이라고 부르는 돌무더기 무덤을 말함)인 애장사리가 많아서 생겨난 지명이라고 한다.
약 0.2Km 구간 산초, 망개나무 가시+칡넝쿨+잡목지대를 지나 우곡저수지를 오른쪽에 두고 능선을 돌아 올라야 합니다. 여기서 우봉지맥을 접기로 하고 오른쪽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 232.1m봉
태부산갈림길에서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면 임도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의 양회임도는 양동소류지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은 비포장 임도이다. 이곳에서 임도의 유혹을 뿌리치고 등로로 올라선다. 무명봉 하나를 넘어 다시 임도로 내려섰다가 힘들게 올라서면 준희선생님 산패가 굵은 참나무에 매어 있는 232.1m봉이다.
지맥마다 졸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특징이 있는데 우봉지맥은 여름에 하는 지맥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결정하고 서둘러 출발하느라 준희선생님께 전화를 드리지 못해 지맥 특성을 알지 못했어요. 전화를 드렸더라면 여름엔 못간다고 말씀 주셨을텐데 말입니다.
♤ 바람재/ 양동고개/ 60번도로/ 이호섭로
칡넝쿨 지대에 놓여있는 양회임도를 가로질러 밭을 지나 잡목을 헤치고 급경사지를 내려서니 60번도로가 지나는 양동고개이다. 2023. 11. 21일 의령출신 작곡가 이호섭을 기려 고향 의령군 지정면 봉곡리에서 두곡리까지 8.7Km 구간을 명예도로명 이호섭로로 지정하였다. 시멘트 도로 아래로 내려서면 양동마을이다. 도로를 가로질러 급경사의 오르막을 또 치고 오른다.
6.25전쟁 낙동강전투의 격전지로, 창녕 남지와 양안을 두고 인민군 제4사단이 주둔하던 지역입니다.
♤ 의령군 지정면 유곡리 양동마을
의령 유곡리고분군(宜寧柳谷里古墳群)은 의령과 창녕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지정면 유곡리 백산마을 북서쪽 산139 일대 낙동강의 서쪽 구릉 정상부를 따라 자리하며 의령군 내 고분군 중에선 최대 크기의 가야 고분군이다. 유곡산성은 낙동강 동서안의 강안이 양호하게 조망되는 서안의 군사적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축성주체가 가야일 가능성이 높다. 가야와 신라의 국경선을 알 수 있는 국경성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유곡리에 속하며 옛날 양구란 지명을 쓰기도 했던 마을이다. 보통으로는 양굼, 양곰이라고 했던 동네인데 마을이 두 뜸을 이루고 있으며 굼턱이란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큰 방천따라 길이 나 있고 안땀과 웃땀 그리고 바깥땀 등 세 뜸으로 이루어진 동네지만 옛날에는 양쪽으로 마주보면서 뜸이 형성돼 있어서 양쪽굼티기 동네라서 양굼티라거나 양곰티란 지명을 썼던 것이다. 재막골이라는 곳에는 큰 신목이 있고 그 밑에는 서낭당(서낭집)당집이 있어서 금기구역으로 삼고 있으며 옛날에는 섣달그믐날이면 아주 성대한 동신제겸 서낭굿을 하였던 곳인데 이름난 무당이나 화랭이가 초청되었다고 한다. 안땀 입구에는 증중추원의관 통정대부 연안차공기적비(延安車公記蹟碑)가 서 있고 마을에는 운양재(雲陽齋) 재실 한채가 있다. 이 운양재는 차상중(車尙中)공을 추모하는 재실인데 한때 부자로 알려졌던 분이었으나 재물을 곤궁한 민초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자선을 베푼 분이라고 한다.
오른쪽으로는 큰 농장(의령농원)이 보이고, 왼쪽으로 낙동강과 박진나루가 보입니다.
♤ 177.5m봉
두곡지구 임도시설에서 왼쪽 능선으로 올라서니 준희선생님 산패가 굵은 소나무에 매어 있다. 177.5m봉에서 급우틀로 고개 안부로 내려서서 임도를 따르다가 294.3m 삼각점봉을 향해 빡시게 치고 오른다.
♤ 박진(朴津)나루/ 박지곡진(朴只谷津)/ 박진지구 전투
창녕군과 의령군에 걸쳐 있는 의령군 부림면 경산리 박진나루는 『신증동국여지승람』(창녕)에 "박지곡진(朴只谷津)은 박진(朴津)이라고도 한다. 서쪽으로 10리며 의령과 통한다."라는 기사에서 지명의 이칭과 의령과 창녕을 왕래하는 나루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지도서』(의령)에 "관아에서 동쪽 50리에 있다. 예전에는 강창(江倉)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하였으며, 『대동지지』(의령)에 "박진(朴津)은 동북5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의령)의 경산면(현재 부림면)에 박진포(朴津浦)로 표기되어 있다. 1832년에 만들어진 경상도읍지 창녕조에 박지곡진(朴只谷津)으로 표시되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창녕에 있는 나루 중에서 의령군과 연결되는 통로역할을 하여 왔다. "박진지구 전투"는 6.25 당시 최후의 방어선으로 경남 창녕군 남지읍 박진나루를 중심으로 강 양안에서 벌어졌던 치열했던 전투를 말하며, 북괴군이 낙동강을 도하하여 박진에서 남지읍과 장마면, 그리고 영산읍과 도천면 일대에 1950년 8월 6일부터 10월 4일까지 전개된 미 제2사단과 국군 제24사단이 북한군 제4사단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끝에 북한군을 물리치면서,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곳이다. 낙동강의 물굽이로 인해 서쪽인 의령군 낙서면, 지정면에 돌출되어 포위되는 듯한 형국이라 6.25 한국전쟁 戰史에는 ‘낙동강 돌출부 전투’로 명명되었다.
♤ 294.3m봉갈림길/ 3등삼각점(남지 310/ 2002 복구)
마루금에서 오른쪽으로 왕복 0.2km 벗어난 294.3m 삼각점봉을 다녀온다. 준희선생님 산패와 세종 홀산아선배님 코팅지가 나무에 매어 있다.
♤ 임도 삼거리/ 삼리경계면(지정면 두곡리, 유곡리 → 성산리)
294.3m봉에서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뚜렷한 등로를 따라 10분 정도 내려서면 임도삼거리가 나온다. 지맥의 왼쪽이 지정면 유곡리 → 성산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지정면소재지에서는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인데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되는 지역이다. 임란 때 의병이 왜적을 무찌른 전승지로 유명한 거름강나리(기강나루, 岐江津)가 있는 마을이라 성산이란 지명보다는 기강나루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동네 어귀의 나직한 산고개가 남재(南峴)고개이고 남재너머가 성산마을인데 마을의 지명유래는 간단하다. 산성산(山城山) 밑에 있다해서 앞의 산(山)자만을 빼고 성산으로 정했다고 한다. 어른들의 얘기로는 회정(槐亭 보통 발음은 해정으로 들림) 즉 아주 오래된 홰나무가 동신목이면서 동네 사랑방 구실을 하여 회정말(회정마을)로 불렀다고 한다. 또 화동(花洞)이라 불렀던 적도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괴화(槐花)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홰나무의 꽃(회화꽃이라고도 함) 때문에 그런 아름다운 지명을 쓴 것 같다. 성산마을은 남재를 넘어 왼편 산밑에 있는 듬이 안땀(안동네) 또는 본동이고 들가운데 있는 뜸이 하동(아랫동네, 들가운데)이며 꼬까실이란 뜸은 단 두집만 살고 있다. 옛날 강둑이 없던 시절에는 안땀 바로 앞으로 강물이 흘렀다고 하며 지금 넓직한 들판은 무듬이땅이라서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고 한다.
♤ 201m봉
임도를 따르다 왼쪽 능선으로 올라서서 201m봉을 찍고 다시 임도로 내려선다.
♤ 210m봉
임도 건너편으로 창녕땅 남지읍을 바라보며 걷다가 다시 성산지구 임도시설을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서 잡목이 엄청난 210m봉에 오른다.
♤ 구진산(九陣山, 307.9m)
창녕군 남지읍 고곡리에 위치한 구진산은 홍의장군 곽재우가 아홉번 진을 치셨다는 의미의 승전터로 정상의 구진산성은 공동묘지 지역으로 변해 있다. 6.25전쟁 박진지구 전투에서 개인호가 즐비했던 곳이다.
♤ 248.7m봉
잠시 잡목을 지나 다시 임도로 내려섰다가 또 왼쪽 능선으로 올라서서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는 248.7m봉에 오른다.
♤ 임도삼거리
임도로 내려서서 임도를 따라 걷다가 임도삼거리에서 직진 능선으로 올라서서 250m봉을 오른다.
♤ 255m봉
참나무 가지에 선답자 띠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서서히 우봉지맥의 합수점 기강나루가 보이기 시작한다. 임도로 내려섰다가 편안한 임도를 버리고 또 오른쪽 잡목숲으로 올라선다. 5분도 안되어 다시 임도로 내려서니 굳이 오를 일이 없는 봉우리이다. 낙동강 너머로 옹혼찬 비슬지맥이 지난다.
♤ 255.4m/ 산성재(山城峙)/ 사각정
산성터의 흔적을 지나 올라서니 준희선생님 255.4m 산패와 반바지운영자님 코팅지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와 성산리의 경계에 있는 재로서 지정면의 산하를 휘두르고 다니던 임도가 여기서 끝이나고 그 끄트머리에는 사각정자가 나오는데 이곳에 서면 낙동강과 가야할 기강나루, 그리고 그 너머로 창녕군 남지읍이 한 눈에 보인다. 왼쪽은 화왕지맥의 날머리, 남강 건너편은 화개지맥의 용화산이다.
♤ 182.3m봉
안부를 지나 준희선생님 산패가 제법 굵은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182.3m봉에 오른다.
♤ 성산마을 갈림길
이정표(←성산재 정상 1.1.km,↑성산리 0.5km, 등산로 입구 1km)가 서 있다.
♤ 167.1m봉/ 4등삼각점(남지 429/ )/ 알바 유의
깨진 삼각점이 있다. 준희선생님 167.1m봉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고 선답자 띠지가 주렁주렁하다. 직진하여 마을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아닌 왼쪽 재선충 벌목지로 내려서야 한다. 이곳 지정은 수박으로 유명한 곳이고 남강 건너 함안군 대산면도 수박으로 유명한 곳인데 들판에 보이는 비닐하우스는 전부 수박재배지로 보면 된다. 예전엔 이곳은 지대가 낮아서 여름철 비만오면 침수가 되는 바람에 이 동네 처녀들은 시집갈 때 까지 쌀밥을 한번 못 먹고 시집갔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제방둑을 막아서 옥토로 변했고, 특히 4대강 사업으로 정부에서 농토를 많이 돋구어 준 바람에 침수가 전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고개 전후로 망개, 산초나무 잡목과 칡넝쿨이 무성합니다.
♤ 남재(南峴, 25m)/ 간이화장실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와 성산리를 잇는 고개로, 고개 오른쪽에는 청주이공의 효성을 기리는 창효각이 있다. 청주 이씨로 자는 경언(景彦) 함자는 경일(景一)공인데 영조(1737년) 때 출생하셨고 평소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순조 때 왕명으로 정문을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남재먼당 소자각(효자각)이란 말이 지명과 함께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여행차가 이 남재를 넘으려 하면 난데없이 큰 뚜끼비(두꺼비)가 나와서는 길을 막았고 상두꾼들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래서 하마현(下馬峴)이니 두끼비고개란 별명도 있었다고 한다. 창효각 뒤쪽으로, 철조망 울타리가 있는 농장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가파르게 치고 오른다.
♤ 성황당/ 기도터
남재에서 10분 정도 올라서니 커다란 당산나무 아래 낮게 돌담을 쌓은 오래된 성황당이 있다. 한 시절에는 이곳에서 간절한 바람을 풀어 놓던 장소이다. 왼쪽으로 낙동강과 화왕지맥의 도초산이 바라다보인다.
♤ 85.1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밤나무에 매어 있다. 조금 더 진행하면 김녕김공 가족묘지가 나오고, 낙동강(좌)과 남강(우)이 만나는 우봉지맥 합수점이 훤히 바라다보인다. 왼쪽의 강 건너로 남지읍내가 보이는 곳이 화왕지맥이고, 오른쪽의 강 건너는 낙남정맥 광려산에서 분기되는 화개지맥이다. 3개군(의령, 함안, 창녕)과 3개지맥(우봉, 화왕, 화개)이 만나는 아주 특이한 지역이다.
♤ 59m봉
임도를 따르다 다시 등로로 들어서서 오른다.
♤ 48m봉/ 우봉지맥 마지막 봉우리
나무로 만든 의자가 부서져 있고 곳곳에 스텐레스판에 쓴 싯귀들이 보인다. 소규모 태양광발전단지가 점령한 마지막 봉우리를 거쳐 내려선다.
♤ 성산마을버스정류장
대밭 사이로 내려서니 성산마을 정류장이 있고, 왼쪽 합수점을 향하여 성산마을 표지석과 호국의병의숲으로 가서 기강나루에서 지맥을 종료하고 다시 쌍절각, 보덕각을 보기로 한다.
♤ 성산배수장
60번 군도를 따라서 기강나루로 향한다. 왼쪽으로 한국농어촌공사 성산배수장이 보이고 도로를 따라서 기강나루로 향하는데 강건너에 화왕지맥의 끝자락이 보인다.
♤ 기강나루/ 남강/낙동강합수점
한우산 아래 도굴산에서 출발하여 이곳까지 같이 걸어온 우봉지맥은 이곳에서 마무리한다. 인증샷을 남기려고 갈대밭에 발을 담그려는데 물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남강 건너편으로 화개지맥 날머리가 보인다.
♤ 기강(岐江)나루터/ 육각정/ 화장실
경남 의령군의 지정면 성산리 기강에 위치한 나루터로, 일명 거름강이라고 하여 낙동강 본류와 지류인 남강이 합류하는 곳이다. 낙동강을 경계로 창녕군 남지면 용산리와 마주한다. 지명은 성산리의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기강(岐江)이라 하는 데서 유래한다. 창녕으로 나룻배를 타고 이동하던 주요 나루터 역할을 했던 곳이다. 『조선지지자료』(의령)에 기강진(岐江津)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물길을 따라 내륙 깊숙이 적군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이며,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佑, 1552~1617)장군의 첫 전승지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곽재우는 강을 뛰어 넘을 정도로 비범했는데, 임진왜란 당시 왜군 주력부대가 조선 땅 깊숙히 진격하면서 낙동강 수류를 이용하여 낙동강 하류에서부터 남강과 낙동강 상류의 주력부대에 후방병력 수송과 그 밖의 군수 물자를 보급하였는데 기강은 낙동강과 남강의 합류 지역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임진년 5월 4일 우리고장에 왜군의 그림자가 처음 비친 곳이 바로 이곳 기강으로써 이날 망우당 곽재우 장군은 10여명의 잘 훈련된 부하를 거느리고 기강둑에 나가 있다가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는 왜선 3척을 발견하였다. 곽 망우당은 왜선이 화살의 사정거리 안에 들기를 기다리며 부하들과 매복하고 있다가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다. 왜선은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하여 조총을 쏘며 응전하였지만 적의 탄환은 강둑에도 미치지 못하였고 이쪽에서 쏘는 강력한 화살은 백발백중으로 왜군을 쏘아 맞히자 많은 사상자를 낸 채 낙동강 하류로 달아나 버렸다. 이후 곽 망우당은 기강뚝을 굳게 지켜서 이곳에 나타나는 왜선을 모조리 격퇴시키니 왜군의 병참선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로 인해 홍의장군 곽 망우당의 명성은 왜군들 사이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기강은 옛 기강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기강언덕에 곽재우 장군을 기려 세운 불망비(不忘碑)를 보호하는 비각(碑閣)인 보덕각(報德閣)과, 손인갑(孫仁甲, 1544~1592)과 그의 아들 손약해(孫若海, 1565~1592) 장군을 기리는 쌍절각(雙節閣)이 있다. 그리고 낙동강과 남강의 합류점을 바라보면서 곽 망우당의 호국정신이 살아 숨쉬는 전적지로써 의병의 전투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뜻깊은 곳이다.
합수점을 바라보고 다시 남강을 따라 돌아와 버스정류장을 지납니다.
♤ 쌍절각(雙節閣)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강변의 보덕각 옆에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절한 후지당 손인갑과 그의 아들 손약해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旌閭)이다. 당초 광해군 원년인 1609년에 지금의 봉수면 신현리에 세워졌던 것을 그 뒤 1943년 5월에 장군의 후손들이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 보덕각(報德閣)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강변을 따라 기강(岐江)언덕에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이끌고 왜적을 맞아 싸워서 빛나는 전공을 세운 홍의장군 곽재우의 전공을 기리는 비각이 있다. 1간(間) 팔작(八作) 기와 지붕으로 된 이것은 1739년(조선 영조 15년)에 건립한 것으로 망우당 곽재우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뜻에서 그날의 전첩지였던 이곳 기강에 세운 것이다. 비문(碑文)에는 「有名朝鮮國紅衣將軍忠翼公郭先生報德不忘碑」라 새겨 있다. 망우당 곽재우 장군은 선조 임진년의 왜란에 우리고장 의령땅에서 의병(義兵)을 모아 스스로 의병대장이 되었으니 의령을 거점으로 성주, 합천, 창녕 등지에서 닥치는 대로 왜적을 쳐부수고 구국의 선봉이 되었다. 당시 곽망우당의 전첩지 가운데 특히 이곳 기강싸움은 유명한 것으로 그는 기강언덕에 미리 의병을 매복 시켰다가 낙동강의 수로를 따라서 이동하는 왜적의 선단(船團)을 보이는 대로 모두 쳐 부셨던 것이다.

첫댓글 오롯이 들머리부터 날머리까지 의령땅을 벗어나지 않는
우봉지맥을 갔다 오셨군요...수고하셨습니다
제 고향은 이병철 회장 생가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의령군 부림면 신반이란 곳입니다
범여대선배님!
세상사는이야기 지맥 가기 전에 항상 즐겨찾는 곳입니다.
이번에도 부림농원에서 양동고개를 넘어 신반으로 나가서 16시 차로 상경했는데 선배님 생각을 했었습니다.^^ 종이공장이 있어서 알부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무지 더운날 긴 거리 가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고문님처럼 설렁설렁 가야되는데 융통성이 없어서 부러라도 지맥을 끊고, 접고 해얄랑가 봅니다.^^
퐁라라운영자님
폭염에 우봉지맥하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마무리 못한 부분은 담에 하셔도 되겠지요.
삼복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네요. ㅎ
방장님!
오늘 도동삼거리에서 홀대모 하계모임 있죠.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성황리에 잘 치르시기를 바랍니다.
우봉은 열악한 조건에서 그 정도면 충분히 진행했습니다. 운동도 충분히 되었고요. 더 강행했다간 오히려 탈이 날것 같았어요. 감사합니다.^^
일욜 월욜 경남 의령지방도 날씨가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예전 지맥 막 시작할때 5번째 18년12월에 마무리 했습니다
그때는 겨울이라 약간 쌀쌀한 날씨에 산행하기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힘든 계절에 하셨네요
이곳도 은근히 힘들고 녹음방초 계절 폭염에 고생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네요
다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고 누군가 이더위에 산에 죽으려 가는냐고 하네요
그래도 가끔 터져준 조망은 시원시원합니다
누구 속도 모르고 이야기 하지만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풍라라님이니까 연일 진행한것 같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여정 이네요
더위 잘 이겨 내시고 건강 잘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와룡산선배님!
저는 산행을 무리하게 하진 않습니다.
다만 더위는 좀 잘 참는 편인데 너무 과신하면 안되겠지요.^^
이날 의령 낮최고가 34정도 되었는데 햇볕이 무지 따가웠어요.
저는 산행의 주된 목적이 운동입니다. 관광여행도 덤으로 하고요.
정제염은 한알씩 먹었지만 이날은 넘 무리했다간 산에서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겠다싶어 중탈을 결정했어요.
쏘아대는 햇볕에 허리 높이의 칡넝쿨을 200m 헤쳐나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평범한 길이었다면 7Km정도 남았으니 충분히 졸업했겠지만 잘한 결정이라고 보고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박진나루 낙동강돌출부전적지를 같이함 살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리 강철체력을 가졌어도 요즘같은 극 폭염에는 장사없지요.
그 칡넝쿨은 서리가 내려야 가라앉을 겁니다.
무더위에 고생하셨구요.
냉겨둔 것은 화개지맥 하실때 끝내면 되겠네요.
소나무에 분기점산패를 설치했는데요.
안보이던가요.
네, 부뜰이운영자님!
몇번을 둘러봤는데 찾질 못했어요. 쇠목재에서 한우산으로 일반등산객도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라 손을 탄것 같았습니다.^^
말씀대로 화개지맥에서 택시 타고 올라가도록 계획을 짜야 겠네요. 감사합니다.^^
그랫을 겁니다.
고생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