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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전라남도 함평군 및 나주시의 태청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2년 03월 23일 (수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점심때까지 흐리고 박무가 있다가 오후부터 맑고 해가 떴으나 약간의 박무현상이 있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03도에서 영상 1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우치마을(우치경로당과 마을회관 및 우치버스정류장)-우치고개(대산로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임도(75.3봉 우회)-지독한 잡풀과 가시잡목들-마루금 복귀-광산김씨 묘지들-비포장임도
이정표(한수제까지 15.9 Km)-바위-232.1봉(이정판)-전망바위-병풍산(265.4봉, 이정판 2개, 나주436 삼각점, 무인산불감시카메라, 전망바위)-삼도봉학길 시멘트 포장도로-추선사-비포장
임도-밭경작지-산죽과 가시잡목등로-비포장임도-활공장(공군제1전투비행단장 경고판)-전망바위와 분재형소나무-284.8 깃대 무명봉-망산(288.5봉, 289미터 이정판)-길주의(신경수 띠지에서
우측)-가시잡목등로-비포장임도-절재(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 이정표(내산2제 0.9 Km, 불교사 3.2 Km, 나주임도)-능선진입(산객 띠지)-충치(잡목능선)-버래고개(시멘트 포장도로)-
편백나무 군락지-199.3 무명봉(무명묘지에서 좌측)-편백나무와 벌목지 가시잡목 경계등로-길주의(비실이부부 띠지에서 좌측)-편백나무 군락지-함평이공단비-함평이공 묘지들-비포장
임도(대나무)-문매동고개(801번 월암로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임도-밭경작지-편백나무 군락지-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길주의(묵언 띠지에서 우측 편백나무 군락지 방향)-편백나무 군락지-
무명안부(준희 띠지)-편백나무 군락지-무명묘지-무명묘지들-편백나무 군락지-가시잡목등로-구절봉(297봉, 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292.1 굵은 참나무 무명봉-전망바위-285 교통호 무명봉-
249.3봉(이정판)-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 안부-편백나무 군락지-길주의 234.4 무명봉(비실이부부 띠지에서 우측)-편백나무 군락지-비포장임도-길주의(비포장임도 우측 산객띠지 방향)-무명
묘지들-제주양공 묘지들과 묘비들-밭경작지-민가 마당-월산길 시멘트 포장도로-월산길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비포장임도(연안차씨세장산과 비닐하우스)-전주이공 제단과 묘지들-
능선진입-이동통신탑-널부러진 고사목과 잡목등로-211.6봉(금곡과 법광님 띠지)-무명묘지들-편백나무 군락지-268.2 무명바위와 밧나무봉-국사봉(281.6봉, 이정판 2개, 공터잡목봉)-바위
잡목등로-272.1봉(금곡과 법광님 띠지)-길주의(비실이부부 띠지에서 좌측)-편백나무 군락지-갈림사거리 무명안부-잡목등로-186.6봉(법광님 띠지)-통정대부 함평이공 묘지-잡목등로-시누대
군락지-한양조공 부부묘지-대나무터널-비포장임도-만년길 1차선 포장도로-만년고개(818번 문평로 2차선 포장도로, 만년마을 표지석과 이정판, 만년 버스정류장)-능선진입-말라있는 잡풀등로-
소나무 비포장임도-능선진입(걸어서하늘까지 띠지)-편백나무 군락지-무명묘지들과 편백나무 군락지-잡목등로-221.5봉(선답자들 띠지, 바위암봉)-문평5터널(무안광주고속도로, 71번 송전탑)-
잡목등로-246봉(선답자들 띠지, 공터봉)-잡목등로-비포장임도-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능선진입(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 국가지점번호판)-218.3봉(금곡님 띠지)-벌목지
가시잡목등로-245.3 무명봉(선답자 띠지들)-246.7 웅덩이봉-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비포장임도 무명안부-능선진입-63번 송전탑-잡목등로-236.8봉(법광님 띠지)-잡목등로-280
무명봉(비실이부부 띠지)-313.7봉(이정판, 팔각정자, 운동시설)-시누대터널-312.4 무명봉(산불조심 띠지)-시누대터널-로프등로-백룡산(347.2봉, 이정판, 나주315 삼각점, 산불감시초소, 헬기장)-
통나무계단-길주의 지점통과(산객 띠지)-통나무계단-길주의 지점(다류 띠지에서 우측)-비포장임도-시누대터널-나주정공 묘지들-길주의(초지에서 좌측)-논둑 통과-대고개(비포장임도)-나주정공
묘지들-묘지들-마루금 복귀-대나무터널-초지 밭경작지-무명묘지2-시누대터널-잡풀과 대나무 무명묘지2-묘지들-시누대터널-나주정공 묘지들-비포장임도(시누대)-학동봉학길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능선진입-묘지들-잡풀등로-무명묘지-대나무 군락지-동옥선로 2차선 포장도로(팜스코 희망축산)-갈림사거리-비포장임도-초지 밭경작지-대나무 군락지통과-배 과수원-과수원
창고건물-비포장임도-영롱길 1차선 포장도로-1번 영산로 4차선 포장도로(영산하우징과 신일산업)-나주문평산업.농공단지 이정판-밭경작지-월태월천길 시멘트 포장도로-월태월천길 갈림
삼거리(동양시멘트 공장)-월천경로당 마을회관-다시로 2차선 포장도로(현대의원 버스정류장)-문평산업.농공단지 이정판 갈림삼거리(월곡마을과 석관정 이정판)-갈림삼거리(동곡리5구 월성마을
표지석과 동촌마을 이정판)-송촌동곡로 2차선 포장도로-옥당(월성)버스정류장-나주나씨세장산과 배 과수원-39.1 삼각점봉 갈림삼거리-배 과수원과 초비 밭경작지-묘지들-39.1 삼각점봉(이정판,
나주467 삼각점)-갈림삼거리 복귀-과선교(호남선 철로통과)-갈림사거리(월성마을 표지석과 월성마을 및 동곡 버스정류장)-갈림삼거리(좌측 일등농장 방향)-송촌등곡길 시멘트 포장도로-
일등농장-선산김씨세장산-월성목장-갈림삼거리(우측)-갈림삼거리(좌측)-대곡길 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사거리(함평이씨세장산)-갈림삼거리(선산김씨세장비)-갈림사거리(흥성배씨세장산과
선산김씨세장산)-청학농장-밭경작지-능선진입-무명안부-무명묘지들-비포장임도-조망처-지독한 산죽과 가시잡목등로-144.8봉(이정판)-잡목등로-무명안부-잡목등로-청림산(189.1봉,
이정판 2개, 영암302 삼각점)-잡목등로-169봉(이정판)-길주의(기차산꾼 띠지에서 좌측)-비포장임도-숭조원-청림길 시멘트 포장도로-한우축사-청림길 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
콘크리트 수로-당동교차로(영산강로 4차선 포장도로)-석관로 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삼거리 이정표(석관정 0.5 Km, 동당리 1 Km, 죽산보 3.3 Km, 영산강하구언 53.5 Km)-
석관나루(주차장과 석관귀범 표지석)-석관정-이별바위-고막원천 합수점-석관나루터 복귀-산행종료
산행거리 : 33.26 Km (오치고개에서 고막원천 합수점인 석관정나루터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13시간 01분 (06시 05분부터 19시 07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4시 00분 나주시 하이텔 모텔에서 기상
04시 30분 모텔 근처의 편의점에서 미역국과 햇반 및 김치 구임해 모텔에서 아침식사 해결(9,020.-원)
06시 00분 오치마을 버스정류장 앞 신축건물 주차장에 애마 주차 후 오치고개로 이동
06시 05분 오치고개에 도착해 곧바라 산행 시작
올때 - 19시 07분 고막원천 합수점까지 왕복 후 석관정나루터에서 호출한 다시면 택시 승차(061-335-0808, 33,330.-원)
19시 50분 우치마을에서 애마 회수 후 정리하고 상의 옷만 갈아 입고 곧바로 귀가
22시 50분 막히지 않는 도로를 타고 곧바로 귀가 후 저녁식사
태청지맥이란 ???
태청지맥은 영산기맥 태청산(593.3봉)에서 분기해서 삼봉산(163봉, 0.5 Km), 태산(207봉), 제당산(158.8봉), 월악산(168봉), 병풍산(161봉), 외치재, 만중산(101봉), 가암산(151.3봉), 사랑산(186봉, 0.6 Km), 병풍산(265.4봉), 망산(289봉), 구절봉(297.0봉), 국사봉(281.6봉), 백룡산(347.0봉), 대박산(55봉), 청림산(187.2봉)을 지나고 고막원천과 영산강이 합수하는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석관정나루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50.6 Km에 달하는 산줄기로 고막원천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이틀 연속 장거리 산행으로 피로감이 밀려왔지만 진행하다 중단되었던 태청지맥 산행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기분 좋게 귀가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태청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전남 함평군 및 나주시 그리고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네이버의 지식백과,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어제 3주만에 다시 산상에 들어 30여 Km를 걸어 우치고개까지 무탈하게 진행해 기분 좋게 마무리를 하였지만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더욱 멀고 산의 높이도 높아 걱정이다.
그래도 진행하는 중간에 도로를 타고 걸어야 할 거리도 제법 길기 때문에 가능하면 오늘 하루 태청지맥 산행을 석관정에서 마무리하고 귀가하면 좋겠지만 중간에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다음에 다시 한번 더 내려오기로 하고 산행을 시작하니 마음만은 편안하게 진행된다.
초반부터 병풍산 오름길에 진을 빼고 다시 구절봉을 오르면서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혀 오늘 산행이나 가능할지 걱정과 고민이 깊어졌지만 그곳을 오르고 나니 그 이후부터 순조롭게 진행되어 석관정까지 갈 수 있었다.
다만 마지막 봉우리를 내려오며 새 소나무 잎에 눈을 찔려 일주일 동안 고생을 한 것으로 힘들게 마무리한 태청지맥에서의 추억을 하나 더 만들고 2년에 걸쳐 무탈하게 완주할 수 있음에 감사했던 시간들이었다.
가능하면 오늘 하루에 남아 있는 태청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어둠속 조금 이른 시간에 어제 마무리를 한 우치마을에 도착을 해 애마를 주차시키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75.3봉을 들리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초반부터 생각보다 힘들게 병풍산과 망산을 지난 후 헷깔리는 고갯마루들을 통과하며 쉽지 않은 산행을 이어간다.
다시 체력을 극한으로 빼앗아가는 구절봉을 어렵게 통과하니 산세가 낮아지며 조금은 편안하게 산행을 이어가고 국사봉 지나 비산비야의 잡목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218.3봉 넘으니 우측으로 드넓은 벌목 후 편백나무들이 식재된 조림지가 펼쳐지고 그곳을 타고 넘으며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힘들게 넘어 온 국사봉에서 구절봉 넘어 병풍산과 그 뒤로 어제 지나온 마루금까지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본다.
벌목 후 편백나무들을 식재한 조림지를 통과하며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을 확인하고 백룡산을 통과하니 한동안 도로를 따라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어 발바닥에 불이 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다만 오늘 산행거리가 길어 마무리가 가능할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산행 출발지인 광주광역시 대산동 우치마을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진행을 시작했는데 도로를 통과하며 오늘 중 완주가 가능할 것 같아 힘을 내 다시 청림산으로 오르니 하루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려하고 그 아래 태청지맥의 마지막 지점인 석관정이 있는 고막원천이 영산강과 합쳐지는 합수점이 너무나 아름답게 내려다 보여 시간가는 줄 모르게 조금 더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또 하나의 산행을 마무리하는 희열을 맛보는 시간은 그저 꿈결같은 시간으로 남았다.
어제 나주시로 들어 가 나주곰탕으로 저녁을 먹고 모텔로 귀가하면서 미역국과 햇반 및 김치를 구매 해 하룻밤 푹 쉬고 새벽 일찍 아침까지 든든하게 먹은 후 어제 산행을 마무리한 광산구 대산동 우치마을의 넓은 공터에 잘 주차시키고 어둠속에 우치고개에 도착을 하니 새벽 6시 5분이 넘어가고 오랫만에 다시 헤드렌턴 불빛을 밝히며 태청지맥 마지막 산행을 시작한다.
우치(대산로 2차선 포장도로, 좌측은 망월과 우측은 우치마을, 광주 광산구 대산동 우치마을)고개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인 우치마을에 있는 고개로서 예전에는 나주시 우치리였다가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으로 편입된 우치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3주 사이에 기온이 많이도 올라 기분 좋게 산행하기 좋은 날씨에 가시잡목으로 고생할 것이란 고민과 걱정도 날려버리고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진행하는 새벽 시간을 즐길 수 있음에 만족하며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어둡기 전 하루를 마감할 수 있기를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산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우치고개를 출발하며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다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방향으로 진입을 시도해 보지만 산죽과 잡목들에 막혀 진입이 쉽지 않아 그냥 편안하게 비포장임도를 타고 걸어가다 보니 족보가 있는 75.3봉은 들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한동안 더 편안하게 비포장임도를 타고 어둠속에 빠르게 걸어가니 드디어 비포장임도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의 묵은 비포장임도가 갈리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우측의 마루금 방향으로 오르니 지독하게 우거졌다 말라있는 잡풀지대가 펼쳐져 초반부터 쉽지 않은 산행을 알리고 있다.
힘들게 그 가시잡목과 잡풀지대를 힘들게 헤치고 오르니 광산김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뒤로 오르니 등로가 조금은 좋아지며 갑자기 드넓은 비포장임도가 가로질러 지나고 있어 잠시 배낭 정리하며 긴 한숨을 내쉬고 산행을 이어간다.
비포장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생각보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바위들도 등로 주변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바위를 지나 한동안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어렵게 전진하니 등줄기와 이마에선 벌써 굵은 땀방울이 샘물 솟듯 흘러내리고 그 땀방울들을 씻어 내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평이하고 뚜렷하게 변하면서 한숨을 돌리는 시간도 가져본다.
약간의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있는 무명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뚜렷한 소무무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곳 바로 옆의 굵은 소나무에 맨발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 232.1봉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232.1봉 지나 평이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와 조망처들이 나타나는데 좌측인 동쪽 방향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방향으로 보여야 할 조망들이 박무가 심해 흐릿하기만 해 아쉬움을 남긴다.
아쉬움을 남기고 평이하게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금새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서 있고 그 주위 철망에 두개의 이정판 및 삼각점이 박혀있는 265.4미터의 병풍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보는데 병풍산(265.4m, 나주436 삼각점)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솟아 있는 산으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이곳 병풍산에 관한 자료가 보이지 않아 안타까운 시간이다.
병풍산 정상부를 사진에 담고 그 바로 앞으로 전망바위가 있어 그곳으로 가 살펴보니 생각보다 박무가 심해 기대했던 풍경과 조망이 열리지 못하고 제한되어 있기에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희미하나마 보이는 곳들이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북동 방향으로 제일 좌측 뒤로 어제 어렵게 다녀 온 사랑산 일명 사한산 줄기가 보이고 중앙부로는 옥녀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앞으로 무명봉이 솟아 있으며 우측으로는 복룡산이 솟아 있는데 그 복룡산 좌측 뒤로는 병풍지맥의 어등산이 옛 추억을 들려주며 솟아 있는 풍경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눈을 남동방향으로 돌리니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태청지맥 마루금에서 벗어 나 있는 톱날같은 옥산과 그 좌측 뒤로 나주시의 진산인 금성산이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돌아 나주시 노안면 들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박무로 인해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노안면은 전라남도 나주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금성산 동사면에 있으며 동쪽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곡동과 남구 대촌동과 금천면 원곡리, 서쪽은 금성산 너머 문평면, 남쪽은 나주시내 성북동, 북쪽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과 접해 있다.
망산과 왕산이 서쪽을 둘러싸고 장성천이 북쪽에서 중심부를 따라 남쪽으로 흘러 영산강에 합류하며 광주와 무안 간 고속도로와 호남선 철도의 노안역이 있다.
조선 시대 나주목 이로(伊老)와 금안(金安) 및 복암(伏岩)면에 속했으며 1914년 개편 때 나주군 노안면이 되었다가 1995년 나주시 노안면이 되었다.
면 소재지인 금동리를 비롯하여 13개 법정리를 관할하며 노안은 이로와 금안이 합성된 지명이다.
학산리 용산 마을은 고려 태조 왕건이 3일간 진을 쳤다는 태매산(치마봉)이 있고 왕자대(王子臺)터로 추정되고 있으며 봉호(천동)가 포구였다.
금안동은 중국에서 한림학사를 지낸 정가신(鄭可臣, ?~1298년)이 금안장에 백마를 타고 금의환향한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으며 쌍계정과 대동계가 유명하다.
동쪽 방향 저 멀리로는 광주광역시 지나 무등산과 호남정맥 그리고 분적지맥 마루금이 보여야 하는데 오늘은 기회가 아니라는 듯 박무가 앞을 가로막으니 아쉽지만 이것으로 만족하고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그 전망바위가 있는 광산구 병풍산을 출발한다.
병풍산을 지나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사누대 군락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는 삼도봉학길로 표기된 도로로서 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제법 큰 절이 나타난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불교사라 되어 있지만 이제 이름이 변한 듯 추선사로 되어 있는데 생각보다 건물들이 많고 부지도 넓에 큰 절임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강아지 두마리의 열렬한 환영을 뒤로 하고 좌측으로 추선사를 끼고 우측 옆으로 나 있는 밭경작지 가장자리의 비포장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밭경작지에는 아직도 푸른빛을 띠고 있는 채소들이 자라고 있어 계절과 지역이 완전히 다른 세상임을 알려주고 그런 신기한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능선으로 오르니 그곳도 역시 지난 가을 고추를 수확하고 남아 있는 고추대가 보이는 밭경작지를 통과한다.
그 밭경작지를 지나니 갑자기 키 작은 산죽 군락지가 나타나는데 그 산죽 사이로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혼재되어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제 추선사를 완전히 벗어나 지독하게 우거진 산죽과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산죽은 사라지고 더욱 기승을 부리는 가시잡목들이 조금의 방심도 허락치 않고 온 몸을 난도질 하듯 긁는다.
지독한 가시잡목들을 헤치고 고통을 참으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갑자기 가시잡목들이 사라지고 좌측에서 올라 오는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이어간다.
약간의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있는 안개가 낀 운치있는 등로를 따르니 다시 관목의 소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공군제1전투비행단장의 경고판이 서 있는 활공장에 도착을 해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학동 들판이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조용한 활공장에서 아쉬운 사진 몇장 남기고 제한된 풍경과 조망으로 제대로 된 이름도 불러보지 못하고 곧바로 출발하니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다시 나타나는데 그 바위 사이로 분재형 소나무 한그루도 보여 잠시 살펴보니 이곳 역시 멋진 조망터이지만 오늘은 보이는 것이 없는 박무 낀 날씨라서 더욱 큰 아쉬움을 남긴다.
이제 광주광역시 광산구 방향으로 제한된 풍경을 몇장의 사진에 남기고 곧바로 분재형 소나무가 서 있는 전망바위를 출발하는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분재형 소나무가 서 있는 전망바위를 출발하니 우거진 잡목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잠시 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녹슨 깃대봉이 서 있는데 아마도 측량기점을 알렸던 철 구조물처럼 보이는데 이제는 사용을 하지 않는 듯 녹이 쓴 형태로 남아 있다.
그 깃대봉을 지나니 우거진 소나무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고 잠시 후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288.5미터의 망산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출발한다.
망산(289m, 국토지리원)은 광주광역시의 광산구 삼도동 관할 송학동과 내산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289m이며 노령산맥 장성 태청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 금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위치한다.
내산동과 나주시 문평면으로 넘는 버래고개(蟲峙)에서 북동쪽에 있는 산으로 망산은 솟아오른 뫼를 뜻하는데 북쪽 등성이가 평탄면을 이루고 있으며 산당골 당산나무 뒤편에 대한불교 원효종인 불교사와 스님이 가꾼 감나무 과수원이 있다.
본래 가을매미 형국으로 추선사(秋蟬寺)가 있었고 폐사된 뒤 불교사로 이름을 바꿨다가 한자를 달리해 추선사(推善寺)로 표기했다.
이곳은 아직 부뜰이님이 다녀가지 못했는지 고도 표시가 틀린 이정판이 그대로 남아 있어 조만간 교체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출발하니 평이하게 진행되던 등로가 내리막으로 바뀌면서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곳에 도착을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등로는 이곳에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크게 꺽어 방향을 바꿔야 할 길주의 지점이다.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니 뚜렷하던 등로가 서서히 사라지고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등로가 앞을 가로막기 시작하며 속도를 현저히 떨어뜨리는데 그래도 피할 수 없으니 그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내려가니 우측으로 비포장임도가 보여 끝까지 진행하지 못하고 조금 이른 지점에서 우측 비포장임도로 내려가 그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한쪽에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 도상 절재에 도착을 한다.
이곳 이정표에는 이름이 바뀌기 전 불교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진행 방향으로는 내산2제가 좌측 갈림방향으로는 나주임도가 표시된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인 절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에 있는 고개로서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고개이름으로 전남 나주시 문평면 학교리와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을 이어주는 고개를 말한다.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인 절재를 지나 계속 임도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는 좌측 능선으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그 진입로에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어 주의하면 헷깔리지 않을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한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곧이어 도상 충치를 지나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고갯마루 같은 느낌은 정혀 없는데 어느 자료를 보니 조금 더 진행한 후 만나는 버래고개를 충치로 함께 사용하고 있어 아마도 혼용해 사용하면 될 듯 싶기도 하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와 굵은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뚜렷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버래고개 일명 충치에 도착을 하는데 버래고개(충치, 蟲峙)는 광주 광산구 내산동에 있는 고갯마루로서 나주시 문평면 학교리와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을 이어주는 고개로서 충치라고도 한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버래고개 일명 충치를 통과한 후 다시 능선으로 진입하니 굵은 소나무와 편백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더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활엽수 낙엽들이 덮혀 있는 무명묘지 지나 등로가 북서 방향에서 서쪽 방향으로 바뀌고 등로 좌측으로는 굵은 편백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지만 우측으로는 벌목 후 시간이 지나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그 경계선을 따라 등로가 이어지는 듯 보인다.
그 경계 지점을 따라 온 몸에 약간의 생채기를 남기면서 힘들게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남쪽과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그 꺽이는 지점 한쪽의 굵은 편백나무 가지에 비실이부부의 띠지 한장이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어 목례를 하고 완만하게 내려간다.
비실이부부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좌측 편백나무 군락지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함평이공 묘지가 나타나고 다시 몇기의 묘지들이 더 보이더니 묘지를 이용하기 위해 개설된 듯한 뚜렷한 등로가 나타난다.
뚜렷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니 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 함평이공 묘지가 다시 나타나고 약간의 잡목들이 성가시게 자라고 있는 등로를 따르니 대나무 군락지 지나 801번 월암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분매동고개에 도착을 한다.
분매(불매, 801번 월암로 2차서 포장도로)마을은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송암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으로 분매동고개는 그 분매마을(또는 불매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송암리와 나주시 문평면 학교리 및 광주시 광산구 내산동을 이어주는 고개이다.
어제 조금 늦더라도 이곳까지 진행을 하였으면 오늘 산행이 조금은 손쉽게 마음 편히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을 우치고개에서 마무리하고 보니 우치에서 이곳까지 정확히 2시간이 걸려 오늘 태청지맥 산행을 마무리나 할 수 있을지 고민과 걱정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분매동고개의 801번 월암로 2차선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길게 돌아 건너 콘크리트 옹벽이 없는 곳에서 능선으로 오르니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곧이어 지난 가을 호박을 수확한 이후 관리되지 않는 밭경작지를 지나 우측 편백나무 군락지 방향으로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 경사지에 제법 굵은 편백나무들이 줄지어 자라고 있다.
한동안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편백나무 군락지 좌측으로 벌목 후 어린 편백나무들을 식재한 조림지가 드넓게 펼쳐지고 이제부터 편백나무 군락지와 조림지 사이의 경계를 따라 오르니 생각보다 등로가 좋아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잠시 더 걸어 올라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급하지 않아 보이는 구절봉과 그 뒤로 국사봉 그리고 우측 뒤 저 멀리 철성지맥의 철성산이 살짝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데 저 철성지맥과 마찬가지로 이곳 태청지맥도 가시잡목으로 인해 진행에 큰 어려움은 느끼지 못하고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다.
잠시 진행 방향으로 멋지게 솟아 있는 구절봉과 국사봉을 확인하고 우측 뒤로 철성산도 살짝 머리를 만난 후 조금 더 평이하게 전진하니 갑자기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그곳 우측으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살펴보니 등로는 약간 우측으로 이어지는 편백나무 군락지 방향으로 내려가며 이어진다.
조심하며 편백나무 군락지 방향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니 멋진 편백나무 군락지 지나 준희님이 걸어 둔 띠지 한장이 나풀거리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고 좌우측을 살펴보니 등로도 보이지 않는 사용되지 않는 안부처럼 보인다.
이곳 역시 좌측의 나주시 문평면 학교리와 우측의 나산면 송암리를 이어주는 무명안부로서 예전에는 그 역활을 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안부라는 사실 자체도 사라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무명안부 지나 편백나무 군락지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두번째 편백나무 군락지 지나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그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자마자 여러기의 무명묘지들이 줄지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무명묘지들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편백나무 군락지를 따라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오르니 오느 순간 편백나무들이 사라지고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와 연결되고 몇번인가 오르다 쉬기를 반복하며 힘들게 걸어 오르니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과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이정판 그리고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297미터의 구절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사진과 추억 몇장 남겨본다.
힘들게 올라 온 구절봉 정상에서 정상부의 사진을 담은 후 주위를 둘러 보지만 나무들에 막혀 풍경과 조망이 전혀 없기에 다시 잡목들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라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자마자 굵은 참나무가 서 있는 곳에서 우측 앞으로 조망이 열리고 잠시 발걸음 멈춰 이제부터 진행을 해야 할 마루금을 살펴보니 좌측 바로 옆으로 가까운 마루금이 보이고 우측 뒤 저 멀ㄹ 잠시 후 걸어 올라 만나야 할 국사봉과 그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태청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지는데 다만 박무가 짙게 드리워져 아쉬움을 남긴다.
이곳에서 국사봉 좌측 뒤 저 멀리 오늘 오후에 만나야 할 백룡산도 보이고 국사봉과 백룡산 바이로 철성지맥과 영산기맥도 중첩되어 보여야 하는데 오늘은 박무가 심해 가까운 국사봉이 전부이니 아쉬운 시간이다.
박무로 인해 풍경과 조망에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진행해야 할 국사봉을 확인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 전망바위를 출발하니 등로는 남쪽 방향으로 큰 고도차이 없이 진행되고 곧이어 교통호와 굵은 소나무에 노란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285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이어진다.
남동 방향으로 잠시 뚜렷하고 편안한 등로를 따르니 잡목 사이로 무명안부도 통과하고 곧이어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상 관목의 소나무에 준희님이 걸어 둔 이정판이 보이는 249.3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봉우리가 아닌 능선상 지점이었다.
준희님 이정판이 걸려있는 249.3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남동에서 남쪽과 남서 방향으로 바뀌고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좁은 등로를 따르니 어느 순간 좋아지더니 금새 다시 우거진 잡목 등로로 변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잡목 등로를 헤치며 힘들게 내려가니 갑자기 공사 흔적이 남아 있는 비포장임도가 지나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우측으로 넓은 비포장임도가 개설되어 있는 무명안부이다.
비포장임도를 지나자마자 편백나무 군락지가 짧게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잡목등로를 타고 오르니 비실이부부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그 지점에서 등로는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야 할 길주의 지점이다.
무명봉을 지나자마자 다시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 군락지를 통과하니 다시 잡목 등로가 이어지며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살펴보니 뚜렷한 등로는 좌측으로 내려가고 우측의 잡목등로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는데 잠시 후 확인해 보니 뚜렷한 등로가 좌측으로 돌아 휘어지기 때문에 직진으로 내려가는 등로를 따른다.
잠시 후 무명묘지들이 나타나고 대나무 군락지를 짧게 통과하니 가선대부 제주양공 묘지가 보이고 곧이어 몇기의 관직을 가졌던 제주양공 묘지들을 지나니 양파와 마늘 밭경작지와 민가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나주시 문평면 계로리 월계마을이고 그 마을 지나 건너편으로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마루금ㅇ 이어지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양파와 마늘밭을 지나 민가 마당으로 내려가니 마침 집에 주인이 없어 마찰 없이 조용히 그 민가를 통과하고 바로 이어지는 월신길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직진해 걸어 내려간다.
잠시 후 또 다른 월신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 가니 우측 비닐하우스 사이로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열리는데 그 우측 옆으로는 연안차씨세장산이 보이는 곳이다.
이곳 월계마을은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계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으로 월계(月桂) 마을은 마을형태가 반달형이며 뒷산이 구름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닐하우스를 통과해 능선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통과한 비닐하우스와 계로리 월계마을 뒤로 무명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뒤로 힘들게 올랐다 내려 온 구절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오르니 전주이공 제단이 나타나고 그 제단 좌우측으로 많은 묘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곳에서 잠시 배낭 내려 준비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시원한 식수 한모금으로 갈증까지 달래고 좌측 묘지 뒤 능선으로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나타나고 도중에 이동통신탑도 통과한다.
잠시 후 활엽수 등로 아래 많은 고사목들이 쓰러져 있는 마루금을 따르니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잡목들이 이어지고 곧이어 무명봉 넘어 도상 211.6봉에 도착을 하는데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에 매직으로 고도 표시가 되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흐릿해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아마도 주말에 비가 내려 부뜰이 홀대모 운영자님이 아직 제2구간을 다녀가지 못해 신상의 이정판을 달아 놓지 못한 듯 보인다.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고 그 211.6봉을 지나 이제 방향을 다시 남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굵은 편백나무들과 활엽수들이 보이고 무명묘지 2기가 나타난다.
다시 잠시 잡목들이 사라지고 굵은 편백나무와 활엽수들이 보이더니 그 나무들이 사라지고 잡목들이 우거지기 시작하더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올라가고 굵은 소나무 등로를 잠시 따르니 다시 바위 위에 굵은 벗나무가 보이는 곳을 지나 나즈막한 돌담 위로 넓은 공터 한가운데에 2개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281.6미터의 국사봉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국사봉(281.6m)은 전라남도 함평군의 동남단으로 나산면 수하리와 나주시 문평면 계노리 경계 지점에 위치한 산이으로 해발고도는 282m이고 나산의 옥녀봉과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으며 고막원천으로 합류하는 수하리 2개의 지천들이 발원한다.
1872년지방지도(함평)에 국사봉 대신 마흘산(馬屹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서편의 고막원천이 보이며 조선지형도(나주)에 국사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자를 달리해 국사봉(國寺峰) 또는 국사봉(國士峰)으로 표기된 곳도 있으나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 형국이라고 하여 이름 지어진 국사봉(國駟峰)이 옳다는 주장도 있다.
산 아래에 있는 마을 이름이 호구총수와 1872년지방지도(함평)에 마흘산(馬屹山)으로 나오는데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정월 보름에 꼭 산신령제를 지냈다고 하며 절골에서는 지금도 기왓장이 출토되고 있다.
제법 넓은 공터의 국사봉 정상이지만 박무도 껴 있고 주위 나무들에 막혀 풍경이나 조망하나 볼 수 없으니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전진하니 제법 굵은 참나무 사이로 바위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272.6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많은 바위들이 보이는 바위 무명봉이다.
그 바위무명봉 지나 굵은 참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무명묘지 지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금곡님이 띠지에 고도를 표기해 놓은 도상 272.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그 272.1봉 지나 등로는 다시 좌측인 남쪽과 남동 방향으로 바뀌고 진홍빛 진달래 몽우리들이 꽃을 피우기 위해 부풀어 올라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한동안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많은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260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다시 잡목 등로 지나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그곳에서 좌측인 북동 방향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있는 길주의 지점이다.
좌측으로 내려가니 굵은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깊은 무명안부 지나 잡목들이 우거진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몇개의 산행 띠지에는 고도 표시가 되어 있는 도상 186.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그 봉우리 지나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르니 통정대부 함평이공 묘지들을 지나 지독하게 우거져 있는 짧은 잡목등로를 통과하니 다시 굵은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그 소나무 사이로는 약간의 잡목들도 보이는 등로이다.
잠시 후 빼곡하게 우거진 시누대 군락지가 나타나고 어렵게 그 군락지를 통과하니 한양조공 부부묘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이제는 대나무 군락지가 보이는데 이곳은 그나마 진행할 수 있는 터널이 보여 조금은 편안하게 진행을 이어간다.
한동안 대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니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좌측으로는 만년마을이 내려다 보이며 곧이어 만년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만년길이란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걸어가니 함평이씨 세장산과 만년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 및 표지석과 만년 버스정류장이 있는 818번 문평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의 만년고개에 도착을 한다.
만년마을(계로리2구, 불로마을, 세실 또는 대족암마을)은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계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으로 입향조는 경주이씨가 먼저 들어와 살았다고 하나 관련자료는 찾아볼 수는 없고 이어 전주이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지명유래를 보면 부락 설기 당시 만년 산하에 터를 잡을 때 산의 명칭을 따서 만년부락이라 칭하고 산 천이 수려하여 사람들이 늙지 않을 것이라 해서 불로촌이라 하며 산과 산 사이에 있 는 마을로써 사이실이 변하여 세실이라 칭하였다 하며 이 만년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만년고개라 불려지게 되었다.
만년고개에서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좌측으로 돌아가니 높은 콘크리트 옹벽이 낮아진 지점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우거졌다 말라있는 잡풀지대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 그곳을 통해 조심스럽게 능선으로 오른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을 지나 그 뒤로 오르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렇게 잠시 더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우측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난다.
그 뚜렷한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를 통과하고 조금 더 그 비포장임도를 따라 오르니 등로 좌측 능선 방향으로 몇장의 서ㅏㄴ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살펴보니 그곳에서 비포장임도는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잡목 사이로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 산행을 이어간다.
편백나ㅣ무와 잣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무명묘지들과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다시 잡목 등로가 열리더니 금새 바위암봉이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221.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비위암봉인 221.5봉을 지나 이제 등로는 우측인 남쪽으로 크게 꺽어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등로 옆으로 71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곳이 바로 지하로 무안광주고속도로가 지나는 문평5터널로서 등로 좌측 송전탑 넘어 무안광주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으며 그 우측으로 336.2미터의 옥산과 그 우측으로 나주시의 진산인 금성산과 그 뒤로 몇년전 홀로 걸었던 분적지맥도 살짝 얼굴을 내미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무등산과 만인산 근처는 약간의 박무로 인해 보이지 않아 아쉬움도 남긴다.
문평5터널에서 무안광주고속도로와 나주시의 진산인 금성산과 옥산을 살펴보고 굵은 소나무 아래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보기와는 달리 얇은 덩굴식물들로 인해 발에 걸리면서 주의가 필요한 등로처럼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고사목이 쓰러져 있는 나즈막한 무명봉 넘어 잠시 평이하게 이어지던 등로가 다시 완만하게 오르고 그렇게 계속 유사한 굵은 나무들 사이로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길게 걸어가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몇장의 띠지에는 고도 표시가 되어 있는 도상 24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높지 않고 봉우리 같지 않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246봉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니 생각보다 급경사 내리막에 잡목들이 우거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넘어지지 않토록 주의하며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커다란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는 생각보다 높은 산줄기가 앞을 가로막듯 서 있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좌측의 저수지는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의 백룡제이고 그 백룡제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백룡산 줄기가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지금까지와는 달리 드높게 올려다 보여 벌써 체력적인 어려움을 느끼는 산객에게 위압적으로 다가 온다.
백룡제 우측으로는 태청지맥의 백룡산 줄기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371.1미터의 신걸산이 보이는데 처음에는 동쪽이라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니 거의 남쪽으로 보이는 백룡제이다.
진행 방향의 백룡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과 좌측으로 운봉리의 백룡제를 내려다 보며 잡목 등로를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가시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등로가 나타나더니 금새 넓은 비포장임도로 내려선다.
비포장임도가 마루금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제 짧은 거리이지만 편안하게 걸어가니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부터 등로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 갈림사거리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가 번갈아 나타나고 그렇게 조금 더 전진하니 또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 삼거리 가운데 능선 방향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이곳은 여전히 대도리로 되어 있다.
대도리는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에 있는 리로서 국토봉과 같은 낮은 산지로 이루어진 산골마을이며 마을에 대도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입석, 도장, 탄방마을 등이 있는데 입석(立石)마을은 세운 돌이 많아서 입석이라 이름지었고 도장(道長)마을의 지명은 산골짜기 마을이라는 뜻의돋+안+골>돋안골>도잔골>도장골의 변화를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라 하며 탄방마을은 숯을 구웠던 마을이란 뜻으로 숯 탄(炭)자를 써서 탄방(炭方)이 되었다 한다.
대도리의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에서 가운데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다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진행 방향으로 백룡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고 생각보다 높고 먼 거리감에 벌써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금곡님의 산행 띠지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218.3봉이란 고도 표시를 해 놨지만 이미 지워져 흐릿해 글씨 조차가 잘 확인되지 않고 그 옆으로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어 사진에 담고 곧바로 도상 218.3봉을 출발한다.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던 도상 218.3봉 지나 조금 더 평이하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가 펼쳐지고 그 벌목지 아래 저 멀리 대도리 마을과 대도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 대도지 위에는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양식장 모습이 눈에 들어 와 궁금하기만 하다.
대도지 좌우측으로 뻗어 있는 산줄기들을 확인하니 우측으로는 국사봉에서 내려 온 무명산줄기가 보이고 대도지 뒤 저 멀리 솟아 있는 봉우리들이 보여 지도를 펴 놓고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 뒤로 철성지맥의 주산인 철성산이 보이고 그 뒤로 영산기맥의 고산봉이 오래 전 추억을 들려주며 우뚝 솟아 있어 잠시 더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에 담으며 몇번이나 더 확인을 해 보지만 확실히 철성지맥과 영산기맥 마루금이 맞다.
갑자기 복권에 맞은 듯 희열에 미소를 머금으며 주위 풍경을 다시 한전 더 살펴보고 좌측의 잡목과 우측의 벌목지 경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의 벌목지 넘어 대도리의 대도지를 내려다 보며 앞 능선에 막혀 잘 보이지 않는 철성지맥과 영산기맥 마루금을 조금 더 사진에 담다 보니 잡목들이 우거진 무명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는데 키가 큰 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우측 벌목지 경계를 따라 오른다.
잠시 더 오르다 보니 노란 생강꽃이 피어있고 키 작은 분홍빛 진달래는 이제 꽃이 피려는듯 부풀어 오른 몽우리가 터질듯 아름답게 등로 주위를 수놓고 있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뒤돌아 보니 등로 우측으로 뱀처럼 꾸불거리며 이어지는 산판도로 뒤 좌측으로 오늘 걸어 넘어 온 국사봉과 우측의 구절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벌목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직전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다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넘어 온 218.3봉 뒤로 246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보이는데 국사봉은 좌측으로 사진 밖으로 나가 버렸다.
좌측 뒤 저 멀리로 구절봉이 살짝 보이고 중앙부 끝자락으로 망산과 병풍산으로 이어지는 오늘 새벽에 넘었던 태청지맥 마루금이 생각보다 멀어져 있어 오늘 하루도 참 많이 걸어 왔음을 뿌듯하게 생각하는 시간이다.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지나 온 방향의 마루금을 확인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 넘어 신선님의 띠지가 걸려있는 웅덩이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그 무명봉 넘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앞으로 용현사가 내려다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는 송전탑이 서 있는 마루금 상 236.8봉 지나 좌측 저 멀리 백룡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어 확인하다 보니 많이도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제 벌목지에는 키 작은 편백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조림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 당분간 마음 편히 진행을 이어간다.
진행 방향으로 236.8봉과 백룡산을 살펴보며 벌목 후 키 작은 편백나무들을 식재한 조림지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한가운데에 벌목된 나뭇가지들이 썩어가며 길을 막고 있어 우측으로 돌아 진행을 이어간다.
썩어가는 나무더미를 우측으로 휘돌아 내려가니 다시 정상 마루금과 만나고 편백나무 조림지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드디어 비포장임도가 지나는 안부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지나 온 방향을 뒤돌아 보니 246.7 웅덩이 무명봉까지 이어지는 편백나무 조림지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나주시 다시면 청정리와 문평면 대도리의 경계를 이루는 비포장임도가 지나는 무명안부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 등로가 이어지고 그렇게 잡목들을 헤치며 한동안 걸어 오르니 63번 송전탑이 나타난다.
그 송전탑을 지나니 더욱 우거진 잡목 등로가 이어지고 어렵게 그 잡목들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진행하니 몇개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법광님이 띠지에 고도 표시가 되어 있는 도상 236.8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선답자들이 걸어 둔 띠지 몇장들이 보이는 도상 236.8봉 넘어 조금 더 걸어가니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파란 잎이 아름다운 키 작은 동백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잡목 사이로 조금 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키 작은 잡목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한동안 더 걸어가니 법광님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넘어 다시 우거진 잡목등로가 이어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28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 옆으로 이끼가 낀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이고 한동안 더 뚜렷하게 나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어느 순간 갑자기 잡목들이 사라지고 등로는 더욱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가니 등로는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운동기구와 팔각정이 서 있는 도상 313.7봉에 도착을 하니 팔각정 내부에 준희님이 걸어 둔 이정판이 보이고 그 주위로는 몇장의 선답자들이 걸어 둔 산행 띠지들도 걸려있다.
팔각정으로 올라 이정판 앞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주위를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약간의 풍경과 조망들이 열려 잠시 많은 사진들을 담으며 그 이름들을 불러 본다.
제일 먼저 진행 방향인 남동과 동쪽을 살펴보니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347.2미터의 백룡산이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나즈시의 진산인 금성산이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금성산은 전라남도 나주시의 금남동 관할 경현동과 노안면 영평리와 다시면 신광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53m이고 노령산맥 태청산 자락이 남쪽으로 이어져 이 산을 연결하며 나주시의 진산으로 남쪽 기슭에 다보사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금성산(錦城山)은 나주 북쪽 5리에 있으며 진산이다 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소재동기(消災洞記)에는 금성산은 단중하고 기위하여 동북에 웅거하였으니 나주의 진산이다. (중략) 금성산 고성(古城)은 돌로 쌓았으며 둘레 2,946척, 높이 12척이며 삼면이 험하게 막혔다. 옛날 군창이 있었는데 지금은 퇴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성은 나주의 별호이고 벌판 가운데 성이란 뜻으로 삼도쪽에서는 병풍산이라고 부르며 풍수에서 금성산은 숫산으로 무등산은 암산으로 본다.
산에 있는 다보사(多寶寺)는 백제 때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1184년에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가 1594년에 청허선사(淸虛禪師, 1520~1604)가 각각 중창했다.
역사적으로 견훤과 왕건의 쟁패의 현장, 고려 때 몽고군의 항전터, 조선 시대 무등산 신과의 경쟁 현장이었으며 1996년부터 금성산 되찾기 운동이 전개되어 새해 첫날 해맞이 등반대회가 열린다.
진행 방향인 남동과 동쪽으로 백룡산과 금성산을 살펴보고 북서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사진 우측 앞으로 둥근 모습으로 철성지맥의 주산인 철성산이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철성지맥이 나즈막하게 펼쳐지고 그 뒤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고산봉 지나 좌측으로 흐르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옛 추억을 소환하며 잠시 상념에 젖어 보는 시간이다.
저 철성지맥 역시 이곳 태청지맥처럼 우거진 가시잡목으로 걱정과 고민속에 진행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등로가 좋아 무탈하게 일찍 마무리하고 태청지맥 첫구간을 짧게 진행을 해 놨기에 이번에 내려 와 이틀에 태청지맥 산행을 마무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방향도 약간의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져 있지만 웃자란 나뭇가지들로 인해 선명하지 못하기에 마음속으로만 알고 있는 이름들을 불러 준 후 그 313.7봉의 팔각정을 내려 와 남동 방향으로 완만하게 거어 내려가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잡목들과 시누대들이 보이지만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따라 힘들지 않게 진행한다.
한동안 편안하게 굵은 나무들 아래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키가 큰 시누대 군락지가 길게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산불감시라는 커다란 한전 띠지가 걸려있는 312.4 무명봉 넘어 다시 우거진 시누대 터널도 통과한다.
시누대 터널을 통과하니 굵은 로프가 설치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약간의 시누대를 살펴보며 조금 더 가파르게 변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넓은 헬기장에 삼각점이 박혀 있고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산불감시초소와 백룡산 설명판 그리고 이정표와 이정판이 걸려있는 347.2미터의 백룡산 정상에 도착을 해 몇장의 추억과 사진들을 남기고 주위를 살펴 본다.
백룡산(347.2m, 헬기장, 나주315 삼각점, 산불감시초소, 이정표와 이정판)은 전라남도 나주시의 다시면 운봉리와 청정리 및 문평면 오룡리와 학동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347.2m이고 노령산맥 태청산 자락이 남쪽으로 내려서 문평 학교리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충치를 거쳐 함평군 나산면과 경계를 이룬다.
문평 계로리와 북동리 경계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대도리에 이르러 남쪽으로 연결되어 이 산지를 이루며 봉우리는 과거 기우제를 올린 제단은 없어지고 헬기장이 만들어져 있다.
북동쪽으로 내려서면 용굴이 나오고 영정굴 앞까지 땅속으로 물길이 나 있다고 전하며 남쪽에는 치마와 줄바우 및 연소혈 명당이 남동쪽 기슭 백동 마을 어귀에 관바우가 서 있다.
대오개 안고랑에는 정도전이 유배 생활을 했던 소재사(消災寺)터가 있으며 소쿠리 명당이라 하고 1375년(고려 우왕 1) 회진현(會津縣) 거평부곡(居平部曲)으로 와 황연(黃延)의 집에 거처하며 1377년까지 지냈다.
동쪽에 다시면 수리조합에서 축조한 백룡저수지가 있고 저수지 안에 20여 기의 고인돌과 용문장터가 있었다.
백룡산 정상부를 사진에 담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나뭇가지에 막혀 풍경과 조망이 전혀 없기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우측인 남쪽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내리막 등로에는 길게 설치된 통나무계단이 나타나고 힘들게 계단을 통과하니 다시 조선 소나무 같은 굵은 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그렇게 잠시 더 가파르게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계속 등로 우측으로 걸려있어 살펴보니 이곳이 길주의 지점으로 등로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산객들 각자 다른 등로를 이용해 진행을 한 흔적들이 보인다.
첫번째 선답자의 산행 띠지를 만나 우측을 살펴보니 희미한 등로가 보여 조금 더 내려가니 다시 통나무 계단이 길게 펼쳐지고 그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계단이 끝나는 지점 우측으로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보여 살펴보니 뚜렷한 등로가 보여 이곳에서 뚜렷한 등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으로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며 주의하며 정상 등로를 찾아 산행을 이어간다.
우측으로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좁고 뚜렷한 등로가 계속 이어지는데 마치 사면치기를 하듯 이어지고 있어 미끄러지지 않토록 주의하며 진행하니 갑자기 드넓은 비포장임도가 끝나는 끝지점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등로는 다시 비포장 끝자락에서 좌측 잡목 능선으로 내려가며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시누대 터널이 나타나고 힘들게 그 시누대터널을 빠져 나가니 많은 묘지들이 줄지어 보이기 시작한다.
묘지 지나 소나무 등로를 짧게 내려가니 다시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나주정공 묘지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니 헷깔리는 등로가 나타나고 트랙을 확인해 보니 이곳 역시 선답자들 각자 알아서 진행을 한듯 트랙이 제각기 나 있어 좌측의 가장 지름 등로를 선택해 내려가니 우거졌던 억새들이 발라 변색된 등로와 만나는데 지도에는 대고개로 표시된 지점이다.
대고개에 관한 자료가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한데 혹시 큰고개란 의미가 아닐까 생각도 해보며 그 빛바랜 억새 등로를 통과한다.
빛바랜 억새들이 우거진 대고개를 통과하니 논둑이 나타나고 그 논둑을 타고 전진하니 넓은 비포장임도와 만나는데 마루금은 그 임도 우측으로 보이는 나즈막한 등로이지만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고 특별한 봉우리나 이름도 없는 나즈막한 잡목 등로이기에 그냥 마음 편히 이 비포장임도를 따라 조금 더 편안하게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그 비포장임도를 타고 걸어 내려가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 온 백룡산이 지척으로 올려다 보이고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갈림임도가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우측 비포장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나주정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우측에서 내려오는 정상 마루금을 만나 좌측으로 진행하니 무명묘지들 지나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이 나타나는데 신기하게도 묘지 주변으로는 굵은 대나무 군락지들이 보인다.
잘 관리되고 있는 듯 보이는 묘지들을 지나 보이는 대나무 군락지 앞으로 다가 보니 빠져 나갈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찾아 보다 무조건 대나무 군락지로 들어 가 비집고 어렵게 헤쳐 나가니 드넓은 초지지대가 나타나고 발목까지 빼곡하게 자란 초지지대를 건너 보이는 무명묘지 2기 뒤로 다시 보이는 대나무 군락지 앞으로 오르니 좁은 등로가 열리고 그곳으로 들어가 힘들게 빠져 나가니 빛바랜 억새들과 대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묘지 2기 지나 몇기의 묘지들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주위로는 대나무 군락지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곳으로 걸어 진행한다.
이 산객이 어릴적부터 알고 있는 상식은 대나무 근처에 절대로 묘지를 쓰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이곳은 주위가 모두 빼곡한 대나무 군락지인데 그 한가운데 묘지들이 보여 조금은 신기하게 살펴보고 그 묘지지대를 지나니 다시 빼곡한 시누대 군락지가 나타나고 보이지 않는 좁은 등로를 찾아 어렵게 그 시누대 군락지를 통과하니 다시 많은 묘지들이 길게 설치된 모습이 눈에 들어 오는데 그 묘지를 통과하며 묘비를 보니 나주정공 묘지들과 부인들이다.
그 나주정공 묘지들을 지나니 다시 시누대 군락지가 나타나는데 이번에는 그 한가운데로 넓은 터널이 나 있어 편안하게 시누대 군락지를 통과하니 전주이씨세장비 지나 밭경작지 사이로 나 있는 학동봉학길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학동봉학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도로 우측을 보니 이곳 역시 거대한 태양광 발전시설들이 보이고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눈 앞으로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 보니 시멘트 포장도로 뒤로 힘들게 빠져 내려 온 묘지와 대나무 군락지로 이어지는 마루금 뒤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 있는 백룡산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아쉬운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이곳부터 뒤돌아 보면 늘 저 뾰족한 백룡산이 솟아 있어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음을 느끼며 진행하는 시간이다.
몇발자국 더 걸어 진행하다 지도를 보니 이곳 근처에 삼봉정도전선생 유배지가 표기되어 있어 다녀오려다 시간이 없어 아쉬움만 남기고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삼봉정도전유배지는 조선을 디자인한 혁명가 삼봉 정도전의 유배지는 나주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나주시청을 지나 무안 가는 길로 10여 분 달리면 오른쪽에 삼봉 정도전 선생 유배지라는 간판이 보이고 오른쪽 길로 꺾어 곧장 가면 댐이 나오는데 그 댐 밑 마을이 백동마을이다.
백동마을 앞 정자 주변에 일렬로 늘어선 멋진 노송을 따라 왼쪽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오른쪽 산비탈에 꽤 깔끔하게 서 있는 초가가 나오고 정도전이 머문 초사를 복원한 초가다.
초가에 도착하기 전 농로에서 먼저 마주치는 글이 있는데 삼봉 정도전(1342∼1398)은 아버지 정운경과 어머니 영주우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유학에 정진해 예악제도, 음양, 병력, 의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진다.
소재동은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 백동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 나주정씨 문산자락에 위치한 한적한 산골로서 뒷산은 백룡산(白龍)이고 앞산은 칠두봉으로 칠봉산(七峯山)이며 서쪽에는 문평으로 넘어가는 대오개라는 고개가 있다.
삼봉 선생이 거처한 집터 위에는 현재 나주정씨 정자신의 묘가 있으며 선생의 집터는 500년 전 정자신의 아들인 정식장군이 부친의 묘 옆에다 묘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던 곳이다.
삼봉정도전선생 유배지가 있는 백동마을은 방금 전 만났던 학동봉학길 시멘트 포장도로 좌측인 북동 방향으로 가깝게 자리한 마을로서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조금 늦더라도 잠시 다녀 왔으면 좋았겠다 후회되는 시간이다.
다시 눈 앞으로 다가 온 갈림사거리 직전 좌측으로 비포장임도와 묘지들이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 진행하니 묘지들 지나 말라있는 잡풀지대 넘어 다시 무명묘지와 가시잡목 등로를 만나고 어렵게 그곳을 통과하니 대나무 군락지 지나 동옥선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는 희망축산과 팜스코라는 많은 사료통들이 보인다.
그 동옥선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니 갈림사거리를 통과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희망축산 정문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측으로는 학동리2구 주민들이 백룡산 태양광 발전소 건립을 결사 반대한다는 커다란 플랭카드를 걸어 놨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또 다른 태양광 설치 반대 플랭카드 지나 비포장임도가 갈리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동옥선로 2차선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 비포장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은 학동리 지나 월태리로서 월태리는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에 있는 리로서 백룡산을 뒤로 하고 문평천 옆 들판에 자리잡고 있다.
다시면의 중앙에 해당된 위치로 광목간 신작로와 철도가 있어 더불어 발전하다가 1970년대 국도 1호선이 확장되면서 정류장이 북쪽(현 위치)으로 이동한 뒤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대용, 월명, 원동마을 등이 있는데 대용(大用)마을은 백룡산 아래에 위치하고 다시면에 속했기 때문에 다룡촌(多龍村)이라 부른 뒤 1935년 마을이 크게 형성되면서 대용(大用)이라 하였고 월명(月明)마을은 조선시대에 나주목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마침 마을 뒤편에 떠오르는 달이 유난히 밝아 이곳을 월명이라 칭하였다 한다.
원동(元洞)마을은 삼국 통일시 신라에 원병 왔던 당나라 대군이 물러가면서 복암사를 불지르고 횡포하여 동리 앞에다 인마의 수급을 묻자 이에 분함을 참지 못한 백제의 백성들이 인마의 수급을 발굴하여 제를 지내고 원한을 달래어 줬다 하여 원동(怨洞)이라 불리어 오다 원동(元洞)으로 개칭하였다.
우측 비포장임도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좌측으로 밭경작지가 나타나고 그 끝자락에 하얀 염소 몇마리가 보이는데 이방인의 출현에 놀랐는지 어미 염소가 새끼를 보호하며 울부짖기 시작해 잠시 어릴적 시골에서의 추억을 상기시켜 본다.
그 밭경작지 지나 몇채의 민가들이 보이는데 그 사이로 하얀 매화꽃이 만개해 이곳은 이미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조금 더 전진하니 드넓은 밭경작지에 파란 초지들이 발목 이상 자라면서 세상의 빛이 갈색에서 초록으로 변화되어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 초지 끝자락에 다시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대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빠져 나가야 하는데 나갈 수 있는 등로가 사라져 이리저리 굵은 대나무들을 헤치며 어렵게 통과하니 과수원으로 이어지고 있어 괜시리 보이지 않는 주인장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힘들게 빼곡하게 자란 대나무 군락지를 빠져 나가니 간벌된 대나무들이 과수원 가장자리에 쌓여있어 더욱 빠져 나가기 어려워 어거지로 그 간벌된 대나무 위를 밟고 힘들게 과수원으로 내려가니 강아지 한마리가 득달같이 달려들며 이 산객을 당황시킨다.
과수원을 따라 바로 앞 창고 건물 방향으로 걸어가며 주인장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고민하며 전진하니 다행이 주인은 보이지 않고 그 창고를 통과하니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걸어 나가다 뒤돌아 보니 힘들게 지나 온 창고와 과수원 및 대나무 군락지 뒤 저 멀리 백룡산이 여전히 군계일학의 뾰족한 모습으로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비포장임도를 타고 전진하니 활짝 열려있는 철대문이 나타나고 그 대문을 지나니 영룡길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 영룡길을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이어간다.
도로 좌우측으로 거대한 공장건물들과 민가들을 살펴보며 걸어 내려가니 금새 1번 영산로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이제 그 영산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문평면 옥당리 지역이다.
옥당리는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에 있는 리로서 금성산 밑이 되며 고막천이 흐르는 평지에 위치한다.
자연마을로는 금옥, 금당, 동문마을 등이 있는데 금옥(金玉)마을은 마을 뒷산이 남도의 8대 명당의 하나이면서 이불을 덮은 산과 같다 하여 이름을 이불뫼라 불리던 한 마을과 구슬같이 맑다 하여 옥정이라 하던 두 마을을 합하여 금옥으로 불리고 있다.
금당(金塘)마을은 마을주변에 금이 있다 하여 금의집이라 하였다가 금을 체굴한다 하여 마을이름을 금당이라 부르고 있고 통문(通文)마을은예로부터 문필이 많이 나온 곳이라 하여 마을이름을 통문이라 칭한다.
영산로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걸어가니 좌측으로 신일산업이란 거대한 공장건물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도로를 건너 계속 남동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 옆으로는 나주문평산업과 농공단지라는 커다란 이정판도 보인다.
그 입간판을 지나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저 멀리 갈림사거리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우측 도롯가에 보이던 높은 콘크리트 옹벽이 낮아진 우측으로 밭경작지와 소로의 비포장임도가 보여 그곳 임도 방향으로 들어가 보니 월태리 월천마을이 바로 눈 앞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밭경작지 가장자리의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밭경작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민가 방향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월태월천로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고 민가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짧은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도로 지나 다시 월태월천길 1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걸어가니 동양콘크리트 공장 입구 지나 월천경로당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 월태리는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에 있는 리(里)로서 백룡산을 뒤로 하고 문평천 옆 들판에 자리잡고 있으며 다시면의 중앙에 해당된 위치로 광목간 신작로와 철도가 있어 더불어 발전하다가 1970년대 국도 1호선이 확장되면서 정류장이 북쪽(현 위치)으로 이동한 뒤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대용, 월명, 원동마을 등이 있는데 대용(大用)마을은 백룡산 아래에 위치하고 다시면에 속했기 때문에 다룡촌(多龍村)이라 부른 뒤 1935년 마을이 크게 형성되면서 대용(大用)이라 하였다.
월명(月明)마을은 조선시대에 나주목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마침 마을 뒤편에 떠오르는 달이 유난히 밝아 이곳을 월명이라 칭하였다 하고 원동(元洞)마을은 삼국 통일시 신라에 원병 왔던 당나라 대군이 물러가면서 복암사를 불지르고 횡포하여 동리 앞에다 인마의 수급을 묻자 이에 분함을 참지 못한 백제의 백성들이 인마의 수급을 발굴하여 제를 지내고 원한을 달래어 줬다 하여 원동(怨洞)이라 불리어 오다 원동(元洞)으로 개칭하였다.
월천경로당 건물이 있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월태월천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좌측으로 문평천이 흐르고 그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민가 사이로 빠져 나가니 다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건너편으로는 호남선 철로가 높게 지나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진행 방향인 우측으로는 현대의원이라는 버스정류장도 보이는 곳이다.
문평천은 전라남도 나주시의 문평면 북쪽의 버래고개 남쪽 산록 일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영산강에 유입하는 지방 하천으로 상류에 신방제가 축조되어 있으며 학교리 일대에 산전과 방동 및 평전 마을을 이룬다.
다시면으로 유입하여 백룡저수지를 이루며 운봉리와 영동리 일대에 발달된 평야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이후 다시 면 소재지를 지나 신석리 일대에서 영산강과 합류한다.
지명은 하천이 발원하는 문평면에서 유래되었고 대동여지도에 문평천이 서쪽의 고막원천과 함께 유로가 표시되어 있으며 정자천(亭子川) 지명이 표기 되어 있어 당시의 지명을 알 수 있게 한다.
여지고에서는 정자천(亭子川)은 서쪽 25리에 있고 그 근원이 금성(錦城)에서 나와서 서남쪽으로 흘러 금진(金津)에 들어간다 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
다시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현대의원 버스정류장을 통과하니 도로가 낡아 울퉁불퉁하고 파손된 부분도 많아 보수가 필요해 보이고 도로 건너 임도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서쪽 방향으로 걸어가며 우측을 보니 월태리마을 뒤 저 멀리 여전히 백룡산이 뾰족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도로가 분기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 방향으로는 나주샛골나이(노진남)과 석관정으로 갈 수 있는 도로 표지판이 서 있고 우측으로는 나주문평산업과 농공단지라는 큰 입간판이 서 있는 갈림삼거리이다.
그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다시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서쪽방향으로 걸어가며 도로 우측으로 나주문평산업과 농공단지 및 백룡산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동곡리5구 월성마을입구라는 표지석과 동촌마을 이정판이 서 있고 우측으로는 나주문평산업단지와 농공단지가 보이는 곳이다.
그곳에서 다시로 2차선 포장도로를 서쪽으로 보내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송촌동곡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서쪽 방향으로 들어가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지명은 옥당리이다.
옥당리는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에 있는 리(里)로서 금성산 밑이 되며 고막천이 흐르는 평지에 위치한다.
자연마을로는 금옥, 금당, 동문마을 등이 있는데 금옥(金玉)마을은 마을 뒷산이 남도의 8대 명당의 하나이면서 이불을 덮은 산과 같다 하여 이름을 이불 뫼라 불리던 한 마을과 구슬같이 맑다 하여 옥정이라 하던 두 마을을 합하여 금옥으로 불리고 있다.
금당(金塘)마을은 마을주변에 금이 있다 하여 금의집이라 하였다가 금을 체굴한다 하여 마을이름을 금당이라 부르고 있으며 통문(通文)마을은 예로부터 문필이 많이 나온 곳이라 하여 마을이름을 통문이라 칭한다.
송촌동곡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옥당(월성)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위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송촌동곡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 진행한다.
잠시 더 주위 풍경들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직진 방향의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송촌동곡길을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우측으로 밭경작지가 보이는 갈림삼거리가 다시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39.1 삼각점봉 표기가 보여 바쁘지만 잠시 들렸다 진행하기로 한다.
갈림삼거리 안쪽에 배낭을 벗어 놓고 편안하게 우측 방향으로 걸어가니 우측으로 그물망이 설치된 과수원과 좌측으로 밭경작지가 나타나고 그 밭경작지 가장자리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묘지지대를 지나 약간의 잡목들이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해 오르니 나주467이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맨발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39.1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몇장 남기고 뒤돌아 나오는데 올라간 등로에 잡목들이 심해 우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진행을 이어간다.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 묘지들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며 등로 좌측을 보니 과수원과 나주문평산업단지 넘어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넘어 온 백룡산이 뾰족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며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그렇게 주위 풍경과 조망들을 살펴보며 몇장의 사진들에 담은 후 갈림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벗어 둔 배낭에서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천천히 마지막 산줄기인 청림산을 향해 출발한다.
배낭 둘러메고 송촌동곡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남서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철로 위 육교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육교 이름은 보이지 않는데 아래로 지나는 철로는 호남선 철로로서 동쪽 방향으로는 나주역이 서쪽 방향으로는 고막원역과 이어지는 철로이다.
호남선은 경부선의 대전과 전남 목포를 잇는 총 길이 252.5 Km의 철도선으로 1911년 10월 착공하여 1914년 1월 11일 전 구간이 개통되었고 2003년 12월 8일 완전복선화되었다.
이 철도선은 논산 과 호남 및 나주 평야를 연결하여 목포항에 이르는 간선철도로서 농산물의 수송 및 연변 일대의 개발을 목적으로 부설한 것이다.
다만 잠시 머물고 있는 동안 철도는 단 한대도 지나지 않아 많은 열차들이 통행을 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 호남선 육교를 지나니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월성마을과 동곡이란 버스정류장과 월성마을이란 커다란 표지석이 도로 한쪽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곳에서 직진의 송촌동곡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하는 갈림삼거리가 다시 나타나고 이곳에서 2차선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일등농장 방향으로 걸어간다.
이곳 동곡리는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에 있는 리로서 해발 30∼50m쯤인 구릉지에 기대고 양지바른 남동향을 취하면서 동네가 자리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동촌, 대곡, 월곡, 시계마을 등이 있는데 동촌(東村)마을은 수다면의 본촌 마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동촌 마을이라 하였으며 대곡(大谷)마을은 원래 물한실이라 부르고 이는 큰마을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월곡(月谷)마을은 마을 뒷산이 달 모양 비슷하다 하여 월곡이라 칭했다고 하며 시계(市溪)마을은 마을 앞에 하천이 시냇물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갈림삼거리에서 2차선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일등농장 방향으로 나 있는 같은 송촌동곡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우측으로 과수원과 양파 파종지가 드넓게 나타나고 대평원의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여유있게 전진하니 등로 우측 앞인 남서 방향으로 이제부터 걸어 넘어야 할 마지막 청림산 줄기가 드넓은 밭경작지 넘어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태양광 발전시설과 일등농장을 지나 좌측에 선산김씨세장산을 통과하니 도로 옆 매화나무에선 하얀 매화꽃이 활짝 펴 힘에 겨운 이 산객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잠시 후 월성목장을 지나고 초지와 밭경작지를 통과하니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돌아 정면 방향으로 청림산을 바라보며 산행을 이어간다.
갈림사거리를 지나자마자 도로는 송촌동곡길에서 대곡길로 바뀌고 도로 좌우측으로 드넓은 밭경작지를 두고 그 대곡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서쪽 방향으로 전진하니 도로 우측인 북서방향과 북쪽으로 우측의 백룡산에서 좌측으로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흐르는데 자세히 보니 저 멀리 철성산 지나 오늘 이 산객이 마지막으로 만나야 할 고만원천 합수점 방향으로 달려가는 철성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는 풍경이다.
사진에 담으며 계속 이어지는 대곡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는 이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함평이씨세장산이 보이는 갈림사거리를 지나자마자 대곡길은 학정길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뀐다.
갈림사거리 지나 능선 가운데로 나 있는 학정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직진의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학정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걸어가니 진행 방향 저 멀리 청림산 줄기가 생각보다 드높게 펼쳐진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계속 이어지는 학정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진행 방향으로 청림산 줄기를 살펴보고 사진에 담다 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중앙부에는 선산김씨세장산이 서 있고 사진에 담은 후 우측 학정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도로 건너 우측으로는 흥성장씨세장산과 사당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선산김씨세장산이 다시 서 있다.
그 갈림사거리 지나 드넓은 쪽파 경작지를 통과하니 도로 우측 나뭇가지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진행 방향으로는 청학한우농장 뒤로 올라야 할 144.8봉이 마치 청림산처럼 뾰족하게 올려다 보이는데 정작 청림산은 앞 능선에 막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청학한우농장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시멘트 포장도로는 이제 비포장임도로 바뀌고 청학농장 바로 코 앞으로 다가가니 농장 방향으로는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한우축사 우측의 드넓은 양파 파종지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니 좌측 한우농장에서 사육되는 한우들이 물끄러미 이 산객을 바라본다.
잠시 후 양파밭이 끝이 나고 드디어 능선으로 드니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곧이어 뿌리가 뽑힌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있는 무명안부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많은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에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다시 능선으로 드니 여전히 드넓은 비포장임도가 이어진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빼곡한 시누대 군락지 지나 동백나무들이 보이고 어렵게 돌아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조망처가 열리고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북동쪽을 살펴보니 나주문평산업단지 넘어 좌측으로 백룡산과 태청지맥 마루금이 좌측으로 보이고 우측으로는 다시면 마을 넘어 신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양분되어 있는 듯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지나온 마루금 방향으로 백룡산과 그 우측의 신걸산을 살펴보고 키 작은 산죽과 가시잡목들이 우거진 마루금을 헤치며 서쪽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생각보다 산죽과 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그렇게 한동안 산죽들과 씨름하다 보니 전망바위에 도착을 해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송촌리의 150미터대 나즈막한 무명산줄기가 고막원천 방향으로 흘러 내려가고 그 우측으로 드넓은 평야지대 한가운데에 마치 섬처럼 떠 있는 105.8미터의 밤산이 인상적이고 사진 중앙 가장 뒷쪽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영산기맥의 고산봉이 오늘 산행 내내 길라잡이 노릇을 해 주는데 그 우측 앞으로는 철성지맥의 주산인 철성산과 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그 철성산 우측 뒤로는 둥그런 모습의 천주봉이 또한 인상적이다.
이제 진행 방향인 남쪽에서 남서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 144.8봉 지나 타고 걸어야 할 태청지맥 마지막 능선 마루금이 우측 뒤로 솟아 있는 청림산으로 아름답게 이어져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 와 잠시 몇장의 사진에 더 담은 후 물 한모금 마시며 즐겨보는 시간이다.
사진에 풍경들을 담으며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보니 사진 좌측 봉우리와 능선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줄기로서 마루금은 우측 보이지 않는 144.8봉에서 거의 직선 방향으로 청림산까지 이어지고 있어 144.8봉에 올라 다시 한전 더 태청지맥 마지막 산줄기를 확인해 보기로 하고 봉우리를 향해 다시 올라가 본다.
전망바위에서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많은 사진에 담으며 알고 있는 이름들까지 불러 준 후 남쪽에서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다시공설묘지와 동문제가 지척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드넓은 다시면 들판이 벌써 초록으로 변해 완전한 계절의 변화를 실감시키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진들을 남기고 다시 우거진 산죽과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오르니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고 주위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도상 144.8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본다.
지독하게 우거진 산죽과 가시잡목들로 인해 힘겹게 144.8봉에 올라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나뭇가지들에 막혀 선명하지 못한 풍경들과 조망들을 살펴보며 몇장의 사진에 담고 이제 서쪽을 살펴보니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서서히 그 빛을 잃으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고 바로 지척으로 고막원천이 내려다 보이면서 그 넘어 섬처럼 떠 있는 149.7미터의 월봉이 아름답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철성지맥의 속금산이 보이고 월봉 뒤 저 멀리로는 감방산 지나 나즈막하게 흐르는 영산기맥 마루금도 살짝 보이고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고 이름들을 불러본다.
주위 풍경들과 조망들을 살펴보고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조심해 내려가니 무명안부 지나 다시 관목의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청림산 직전 전망바위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지나온 북동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방금 전 타고 진행해 온 144.8봉 마루금 넘어 저 멀리 사진 중앙부분으로 나주문평산업단지가 보이고 그 좌측 뒤로 백룡산과 태청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으며 우측 다시면마을 뒷쪽으로는 마루금에서 떨어져 있는 신걸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나주시의 진산인 금성산은 앞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아 아쉬움도 남긴다.
조금 더 머물다 이제 하루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기에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전망바위 지나 청림산으로 향한다.
전망바위에서 지나 온 마루금을 확인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보이고 곧이어 영암302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이정판이 두개나 걸려있으며 주위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189.1미터의 청림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몇장 더 남겨 본다.
청림산(188.6m, 영암302 삼각점)은 전라남도 나주시의 다시면 동당리와 문동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89.1m이고 백룡산 자락이 이불뫼로 내려 1번 국도를 넘어 진등에서 서쪽 밤산 능선과 남쪽 대양뫼 줄기로 갈린다.
대양뫼 능선은 대곡 마을 북서쪽에 이르러 남서쪽 청림과 남동쪽 대박 줄기로 다시 분기하는데 민정골과 황새골 사이의 등성이 이어지면서 고막원천이 굽이도는 곳에 차오른다.
호구총수에 죽포면 청림촌(靑林村)이 기록되어 있고 서쪽에 탐진 최씨 집성촌인 청림 마을이 있으며 마을에는 일제강점기 때 황석어 젓배가 닿던 힌모랑지(백두평) 포구가 있었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6시 8분을 지나고 있어 하루해가 많이도 길어졌음을 실감하며 어둡기전 석관정에 도착하기 위해 서둘러 청림산을 출발한다.
청림산 정상부에서 고운 추억과 사진들을 남기고 옆으로 돌아가니 드디어 청림산에서 흘러 내리는 무명산줄기 뒤로 잠시 후 만나야 할 우측의 고막원천이 좌측의 영산강을 만나 뒷쪽의 영산강 주류가 되어 흘러가는 합수점과 석관정이 있는 작은 섬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 오고 합수점 우측 바로 뒤로 몇년 전 어렵게 마무리를 한 철성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별바우산이 추억을 소환하며 잠시 쉬어가라 발목을 붙잡는다.
그 별바우산 뒤 저 먼쪽으로는 무안의 승달산을 비롯하여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들이 다시 옛 추억에 젖게 만드는데 오래 전 걸었던 등로인데도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 어제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남서 방향으로 태청지맥과 철성지맥 마지막 합수점을 살펴보고 눈을 우측 위인 서쪽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눈 앞으로 고막원천이 드넓은 평야지대를 가르며 흐르고 그 뒤로 함평군 학교면의 푸르른 들판이 풍요를 노래하고 그 들판지대 뒤로 철성지맥의 속금산과 그 우측으로 철성지맥 마루금을 길게 이어주고 있다.
그 뒤로 무안과 함평의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끊어질듯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을 이어놓고 오늘 하루 세상을 훤하게 밝혔던 태양이 그 비산비야의 마루금 위로 서서히 기울어 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바쁜 시간이지만 조금 더 머물며 많은 사진들을 남겨 본다.
어둡기전 석관정을 둘러보기 위해선 빠르게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고 그 청림산을 지나 잡목등로를 타고 빠르게 내려가니 무명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 지나 다시 이어지는 잡목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오르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 온 청림산이 생각보다 뾰족한 바위암봉의 모습으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다시 물 한모금 마시고 곧바로 치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고막원천과 철성지맥 그리고 제일 먼쪽으로 나즈막한 영산기맥 마루금이 환상의 풍경들을 선사하며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잠시 후 관목의 소나무 아래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힘겹게 오르니 돌담 지나 공터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한쪽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169봉에 도착을 해 태청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에 오른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태청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169봉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하니 생각보다 뚜렷한 등로가 열리는데 진행 방향 우측으로는 서산으로 조금 더 기울어져 가는 태양이 길게 그림자를 키우며 하루를 마감하려 한다.
등로 우측 뒤로는 방금 전 지나 온 청림산이 여전히 뾰족한 모습으로 솟아 있어 사진에 담고 빠르게 내려가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는데 트랙을 보니 선답자들 산행 트랙이 모두 제각각이라 이곳 등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주의하며 내려가다 솔잎에 눈을 찔려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데 심하지 않아 가볍게 생각했다 눈동자에 상처가 생겨 그후 1주일동안 고생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뚜렷한 등로를 찾아 잘 내려가니 잡풀들과 키 작은 소나무들이 우거진 곳을 지나 매화꽃이 만개한 비포장임도를 만나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도로 우측으로 선조들을 모시는 숭조원이 보이는데 어느 가문인지는 확인을 하지 못하였다.
그 숭조원을 지나 나타나는 청림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남서 방향으로 걸어가니 드넓은 밭경작지 지나 거대한 한우축사들이 나타나고 그 축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청림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이제 도로 옆 논경작지에는 파종한 보리싹이 자라면서 파란 세상이 되어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내려 온 숭조원 뒤로 169봉과 청림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청림산 좌측으로는 청림저수지 위로 120미터대의 무명봉이 솟아 있는데 그 봉우리는 마루금에서 벗어 나 있어 들리지 않고 진행을 하였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효자동종중 탐진최씨진사공파 숭조원까지 400미터 거리라는 표지석이 서 있는 청림길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지나 온 방향으로 사진을 남기며 방금 전 통과한 숭조원이 탐진최씨 숭조원임을 알게 되었다.
ㅓㅇ림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되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우측으로는 논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그중 일부 논에는 보리를 파종하였는지 이미 파란 보리싹들이 크면서 온통 푸른색으로 칠해 놓은 듯 보인다.
잠시 후 콘크리트 수로를 통해 신설된 4차선 포장도로로 오르니 영산강로란 이름이 붙어 있는 도로로서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더 전진하니 동당교차로 앞에 도착을 해 이제 영산강로를 좌측으로 버리고 우측인 서쪽으로 분기하는 석관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마지막 관관정으로 향한다.
이곳 동당리는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에 있는 리로서 청림산의 남동쪽에 있는 무제봉 능선 이남쪽으로 뻗어내려 있으며 마을 앞으로 영산강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두만, 백촌, 청림마을 등이 있는데 두만(斗滿)마을은 마을 뒷산이 남쪽으로 내밀려 감싸 두머니라 칭했으나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두만이라고 하였고 백촌(栢村)마을은 마을에 동백나무가 무성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림마을은 영산강 유로가 굽이 돌기에 꽃쟁이(化丁)이라 했다가 마을 주위에 나무가 많고 숲속에 마을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많다하여 청림(靑林)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한동안 그 선관로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저 멀리 석관정 나루터 앞 주차장이 보이기 시작하고 주차장 좌측 한쪽에는 석관귀범이라는 커다란 표지석도 서 있다.
이곳에서 다시면 택시를 부르고 배낭을 석관정 가는 입구에 서 있는 바위뒤에 숨기고 석관정으로 올라간다.
석관정나루는 전라남도 나주시의 다시면 동당리 석관정(石串亭)에서 공산면 신곡리로 건너는 나루였다.
석관은 옛 이름 돌고지>돌곶으로 강쪽으로 바위가 툭 튀어나온 곳 즉 벼랑에 위치한다는 의미로서 석관정은 함평 이씨 정자이고 강 건너편에는 금강정이 있다.
석관정 주차장을 지나 나무데크를 타고 오르니 조형물이 반겨주고 그 조형물을 통과해 나무계단을 오르니 문화유씨 묘지 뒤로 석관정이 보이는데 이제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지 사진이 많이 어둡게 보이기 시작한다.
석관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동백마을에 있는 정자로 최초 건립연대는 1530년이다.
1530년(중종25) 경 함평이씨 함성군 이극해의 증손인 신녕현감 석관(石串) 이진충(李盡忠)이 정자를 창건하여 석관정(石串亭)이라 정제(亭題)하였다.
1755년(영조31) 8세손 이시창(李時昌)에 의하여 초가(草家) 두어간을 세웠고 1906년 14세손 춘헌의 출연으로 후손 돈학 목헌등이 협력 중건하였으며 1937년 중수하고 1998년 정면 2간과 측면 2간 석조8작 골기와 지붕으로 중건 석관정기(石串亭記)를 비롯한 기문과 시문을 적은 현판들이 걸려 있다.
석관정을 사진에 담고 계속 언덕으로 오르니 바위봉이 나타나고 그 바위무명봉 넘어 다시 내려가니 나뭇가지 사이로 우측의 고막원천이 좌측의 영산강과 만나 합쳐진 후 영산강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우측 옆으로 일부 설명판이 잘려져 나간 이별바위 안내판이 서 있어 읽어 보니 옛날 젊은 장정들이 전쟁으로 나가기 위해 이곳에서 배를 탔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가족들과 이별하는 가슴 아픈 사연이 남아 있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아름다운 풍경속에 숨겨진 가슴 아픈 사연이 마지막 태청지맥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가슴을 때린다.
이별바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드디어 우측의 고막원천이 좌측의 영산강과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나뭇가지 사이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고막원천은 장성군의 삼서면 태청산(593m) 남쪽 산록 일원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영산강으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지방 하천과 국가 하천으로 구분되어 있다.
상류의 학성리 일대에 유정저수지가 있고 대곡리 일대에서 유평천을 우치리에서 대도천을 계림리에서 삼서천을 합류한다.
함평군으로 유입하면서 월야면 정산리 일대에서 용암천이 합류하고 용월리 일대에서 넓은 평야를 이루며 이후 나산면으로 유입하면서 국가 하천이 되고 계속 남쪽으로 흐르다가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일대의 석관정 나루터에서 영산강과 합류한다.
하류의 좌안 유역에 학교면 고막리가 있는데 고막 지명은 고막대사(古幕大師)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하고 과거에는 부분칭으로 사호(沙湖)와 곡강(曲江) 및 왕릉천(王陵川)이라고도 불렀으며 하류지역은 고막천이라고도 하였다.
대동여지도에는 이 하천의 유로에 저천(猪川) 지명이 기재되어 있고 여지고(함평)에 저천(猪川)은 동쪽 30리에 있다 라는 관련 기사가 있어 또 다른 명칭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한편 학교면 고막리에 석교가 있고 1273년(고려 원종 14) 도승 고막대사(古幕大師)가 도술을 부려놓은 다리라는 전설이 있으며 예전에는 마을에서 떡을 만들어 다리 건너 나주시 영산포 등에 가서 팔았다 하여 떡다리라는 별명이 있다고 전한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합수점에서 마지막 추억 한장 남기며 힘들게 진행한 태청지맥 산행을 2구간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다.
영산강(영산강 3경 석관귀범)은 전남 담양군에서 남서쪽으로 흘러 황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는 115.5 km이고 담양군 용면 용추봉(560 m)에서 발원하여 담양과 광주, 나주, 영암 등지를 지나 영산강하구둑을 통하여 황해로 흘러든다.
남서류하면서 광주천(11.8 km)과 황룡강(45 km), 지석천(34.5 km), 고막원천(21.4 km), 함평천(15 km) 등의 지류와 합류한다.
조석의 영향이 나주 부근까지 미쳐 연안 농경지에 하천이 범람하고 농토가 침식되는 등의 피해를 주기도 하였으나 1981년 12월에 하굿둑이 축조됨으로써 감조구역(感潮區域)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제 택시가 거의 도착할 시간이기도 하고 어둠이 밀려오며 주위 사위가 어두워져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사진 몇장 더 남기고 곧바로 이별바위 지나 언덕 넘어 내려가니 드디어 택시기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잠시 기다리라 요청하고 빠르게 내려가니 어둠이 내려 앉은 시간에 무탈하게 석관정 주차장에 뒤돌아 나와 태청지맥 산행과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콜한 택시를 이용해 대산동 우치마을로 애마를 회수하러 출발한다.
2년 전 철성지맥 산행을 일찍 마무리하고 귀가길에 잠시 들려 유천고개에서 태청지맥 분기점이자 태청산 정상을 왕복으로 다녀 온 후 이번에 내려가 이틀만에 마무리를 할 수 있어 즐겁게 올라 올 수 있었다.
고민과 걱정과는 달리 등로도 좋고 약간의 가시잡목들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좋고 무난했던 등로로 인해 이틀간 길게 진행을 하면서도 잘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던 시간들이었다.
이제 다음주부터는 화원지맥과 한구간 남아 있는 진도지맥을 마무리하고 4월 이내에 봉대와 백룡 그리고 옥룡을 마무리하면 호남지방의 난해한 지맥 산행은 모두 마무리하고 좋은 시간 맞춰 선은지맥을 여유롭게 걷고 나면 호남지방의 지맥 산행은 완전히 마무리가 될 것이다.
남아 있는 산행도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즐거운 산행길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보며 가족들과 소맥 몇잔으로 어려운 태청지맥 완주를 자축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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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미 2년전에 시작한 태청지맥을 이제야 속시원하게 마무리 지으셨네요.
우리도 지난주에 태청지맥을 마무리 했는데요.
우리보다 3일 앞서 진행하셨습니다.
호남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몇개 안나았을 듯 싶습니다.
태청지맥 졸업 축하드림니다.
네 부뜰이님,
2년 전 철성지맥을 일찍 마무리를 하고 올라오는 길에 잠시 태청산 정상만 다녀 온 후 미루다 이제서야 마무리를 하였는데 이틀간 길게 꽉 채워 걸었네요
운영자님이 걸어 둔 신상의 이정판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월계고개 이후로 이정판이 사라 져 띠지만 확인하다 보니 아쉬움도 남았고요
그래도 아직 20개 정도가 남아 있으니 올 한해 열심히 올라야 마무리가 될 듯 싶기도 합니다.
부뜰이님과 천왕봉이님도 함께 늘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길 이어가시기 바람니다.
태청지맥 완주를 축하드립니다.우연히도 제가 묵었던 하이텔 모텔에서 주무셨네요~~~~~
기왕이면 나주에 사시는 동밖에님을 만나고 오셨으면 더 즐거우셨을텐데~~~~합니다.
앞으로 남은 지맥도 무탈하게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그러셨군요 덩달이님,
하이텔모텔에서 묵었던 시간이 있었던가 봅니다.
오래된 건물이라 만족하진 못했지만 가격대비 관리는 잘 되어 하룻밤 잘 묵고 나왔네요
특히 근처에 식당들이 있어 편안하게 식사하고 다음날 새벽 가까운 편의점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어 묵게 되었지요
동밖에님을 생각은 했었는데 스치며 지난 한번의 만남이었기에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그냥 올라 왔는데 사실 두구간으로 진행하다 보니 시간도 빡빡해 만나기 어려움도 있었네요
말씀처럼 남아 있는 산줄기 산행도 서두르지 않고 즐기면서 무탈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늘 성원해 주심에 감사 드림니다.
칠갑산님 태청지맥을 3구간으로 완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영산깅색때 태청산에서 중신에게 소주를 얻어서 한잔했던 추억이 아련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2년만에 이어진 태청지맥을 연이틀에 걸쳐 마무리하셨군요.
태청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고막원천과 영산강 합수점에 이른 감회도 느껴집니다.
자차를 이용하여 연이은 목표산행 마무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지맥도 늘 안전하게 진행하시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