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장의 특별한 케이스_ 금음체질과 약]
전에 한의원에 자주 오던 환자가 어제 2년여만에 다시 내원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가슴이 계속 두근두근 뛰고 몸이 무기력해져 힘이 하나도 없어요!”
“뭘 드셨죠?”
“‘ㅊ’병원 소화기 내과에서 준 위염 약을 먹고부터 그래요.”
“그래요? 무슨 약인데요?”
“판토록(Pantoloc tab.)이라는 알약요, 40 밀리그램 딱 한 알 먹었는데 이렇게 됐어요.”
자초지종을 들으니 내막은 이랬다.
나이가 들어 자꾸 기억력이 떨어지자 치매 예방에 좋다는 ‘ㅈ’제약회사의 뇌영양제 글리아티린(Gliatilin)을 올 2월 경부터 계속 복용하였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몇 달이 경과하자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증상이 발생했다.
이 약 때문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터라 그 때문인가 걱정했다.
그래서 ‘ㅅ’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입원해서 각종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다.
기뻐해야 하나?
사실 이런 경우 참 애매하다.
몸은 안 좋은데 검사는 이상 없단다.
이게 소위 현대의학의 진단의 커다란 맹점이다.
난 아파 죽겠는데 의사는 이상 없다고 하는 이 황당한 상황.
누구 말이 맞을까?
당연 환자 말이 맞지 않은가?
하지만 오히려 의사 말이 맞다고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픈 내가 아프다는데, 아프지도 않은 의사가, 내 몸을 느낄 수도 없으면서 내가 아픈 게 아니라고 한다.
무슨 근거로 내가 아프지 않다고 하는 걸까?
이처럼 기묘한 상황이 있을까?
그럼 의사 말대로 나는 아프지만 실제론 아프지 않은 게 아닐까?
그래서 내 자신에게 “너는 아프지 않으니 비록 아프다고 해도 아프지 않다고 생각해!”라고 혼내주고, 나는 아프지 않다고 결론을 내야 하는 것일까?
아마 의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 같다:
"환자 당신이 비록 아프다고 말하지만 그건 당신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있지도 않은 증상을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내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내 정신에 이상이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분도 처음엔 의사 말대로 “그래, 나는 아무 이상 없어, 아픈 게 아니야,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일상으로 돌아가자!”라고 다짐하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왜냐?
몸은 계속 아프니까.
그래서 ‘ㅅ’대학교 병원을 떠나 ‘ㅊ’병원에 갔다가 위염이라고 진단받아 덜컥 복용한 위염약 판토록에 심한 가슴답답증과 소화불량을 얻은 것이다.
환자는 ‘ㅊ’병원을 다시 찾아가 판토록을 먹고 생긴 증상-가슴답답증과 소화불량증-을 호소했다.
의사는 그 약은 3일 이상이 되면 대사되어 몸을 빠져 나가므로, 현재 증상은 그 약과 무관한 거라고 발뺌했다.
환자는 그 약 먹고 난 후에 이런 증상이 생긴 건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졌지만 의사는 막무가내로 자신의 주장만 계속 되풀이했다.
아무리 약이 대사되어 빠져나가도 그 약으로 인해 손상된 몸의 부위나 기능이 원상복구 되지 않으면 증상은 계속 존속할 수 있는 건데도, 그런 터무니 없는 말로 환자를 내친 것이다.
환자는 더 이상 얘기해 봤자 소용이 없을 것임을 알아차렸다.
‘ㅊ’병원에서 아무런 소득이 없자, 이 분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동네 병원 ‘ㅂ’내과에 갔다.
의사가 심전도를 해보자고 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니까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해서 그쪽으로 혐의를 들이댄 것이다.
그런데 심전도 검사도 이상무.
그러자 갑상선기능이 의심된다며 그 검사도 하자고 했다.
의사가 하자고 하면 대개는 따라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환자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별로 없다.
피를 뽑아 검사를 했는데 역시 이상무.
환자는 실망했다.
내가 아프다고 나와야 하는데, 아프지 않다고 하니 진퇴양난이다.
사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건강염려증(hypochondria)이라는 상당한 중증의 정신과적 질환으로 갈 수도 있다.
건강염려증이란 흔히 예측하듯 사람이 건강을 과하게 염려하는 그런 수준에서 끝나는 증후가 아니다.
병이 분명 자신에게 있는데 의사가 그것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병이 있다는 진단을 내릴 의사를 찾아 삼천리 방방곡곡, 병원이란 병원은 모조리 다 찾아다니는 심각한 정신병의 일종이다.
보기와는 달리 굉장히 중한 병인 것이다.
자칫하면 이 분도 사실 그런 상황까지 갈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병원 뺑뺑이'를 돌았다면.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문득 한동안 잊혔던 주원장한의원이 생각났다.
그동안 체질식 하면서 몸 관리 잘 하여 건강이 많이 좋아진 까닭에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근래 부쩍 기억력이 떨어지니까 남편이 좋다며 권한 그 제약회사의 뇌영양제라는 것을 무심코 먹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 모든 사달이 일어났다.
이 분은 금음체질이다.
금음체질은 금양체질과 더불어 약에 대한 부작용이 가장 많은 체질 중 하나이다.
양약은 가능하면 먹지 말고, 어쩔 수 없을 땐 최소로 먹고, 평소 체질식이나 적당한 운동 같은 방법으로 철저히 관리하면서 사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그래야 이런 예기치 않은 수난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분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평소 양약에 여러 번 고초를 당한 생생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겁도 없이 덜컥 약을 먹었을까?
가만 보니 그 약의 명칭 때문인 것 같다.
뇌영양제!
이 절묘한 이름이 진통제나 항생제, 스테로이드제와 똑 같은 화학적 약물이라는 생각을 잠깐 흐리게 한 게 아닐까?
영양제!
앞에서 언급한 진통제니 항생제니, 하는 명칭에 비하면 얼마나 편안하고 듣기 좋은 말인가!
이건 약이 아니라 영양제다, 이런 느낌을 팍 주니 말이다!
그래서 이것도 역시 화학적인 물질일 뿐이라는 생각은 까마득히 잊고 몇 달을 그렇게 계속 삼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분이 성분을 얼핏이라도 들여다 봤다면 사뭇 달리 행동했을 것이다.
유효성분으로 콜린아포세레이트가 들어 있고, 기타 첨가제로 농그리세린, 산화티탄, 에시톨 및 소르비탄류, 에틸바닐린, 정제수, 젤라틴, 황색산화철이 들어 있다.
그냥 일반 약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다양한 화학물질들의 조합인 것이다.
비타민과 같은 영양제와는 상당히 다른 성질의 것이다.
복기해 보면, 이 분은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은 글리아티린이라는 약으로 몇 달 동안 수백번의 잔 펀치를 맞아 몸에 균열이 상당히 많이 난 상태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 위에 위염 약 판토록이 결정타를 때린 것이다.
이 분은 사실 일반 금음체질인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약물에 대한 경각심이 느슨해지는 바람에 그런 위중한 사태를 맞은 것이다.
그로 인해 적지 않은 기간 동안 환자가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그래도 이제 원인이 밝혀진 이상,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오래지 않아 완쾌될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약물에 주의하시고 한의원에 나와 꾸준히 체질침 치료를 받아 보세요! 그리고 체질식도 잘 지키시고요.”
이 분, 한동안 열심히 한의원에 내원하면서 치료를 잘 받을 것이다.
그렇게 치료를 받으면 어느새 몸은 예전처럼 회복될 것이다.
그래서 나아지면 슬슬 꾀가 나 한의원에 나오는 것을 등한시 할 거고, 몸이 완전히 나았다 싶으면 더 이상 한의원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체질에 대한 생각이 느슨해지면 몸에 맞지 않은 뭔가를 다시 먹게 될 것이고, 그래서 어쩌면 심상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그러면 또 다시 내 한의원에 헐레벌떡 달려올 것이다.
나는 뭘 먹고 그렇게 됐냐고 물을 것이고, 그럼 또 환자는 뭘 먹고 그랬다고 이실직고 할 것이다.
약에 약한 체질이니 항상 조심하라고 할 것이고, 건강보조 식품이나 음식도 역시 조심하라고 할 것이다.
앞으론 체질식 잘 하라고 할 것이고, 체질침을 놔줄 것이고, 필요하면 체질약도 지어 줄 것이다.
한의사 노릇 오래 하다 보니, 이제 부처님 손바닥처럼 훤히 꿰뚫게 되었다.
뭐, 하루 이틀 일어나는 일도 아니니까.
시간은 돌고 돌고 돌고, 또 돈다.
첫댓글 체질의학은 건강을 위한 생활에서 최소한의 규율을 요구한다. 내가 무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