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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조문국(召文國)박물관을 찾아가다.
송하 전명수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깨끗한 물과 기암괴석 그리고 멋스러운 금강송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는 불영계곡의 막바지를 지나 고갯마루를 넘어 버스는 봉화군 소천을 거쳐 의성을 향하여 달린다. 고갯마루길 양옆에는 이제 개나리꽃이 노랗게 피어있고 목련화가 소담스럽다. 아침에 화창하던 날씨가 일기예보대로 소나기가 지나간다. 버스의 앞 유리창에는 연신 와이프가 좌우로 움직이고 있다. 우산을 챙기지 아니한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었지만 영주 시가지를 앞두고 날씨는 다시 쾌청하게 밝아져 왔다.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였고 5mm정도 비가 내릴 것이란 일기예보가 그대로 맞아 떨어진 것 같다. 불영사에서 출발한 버스는 약 3시간을 달려 의성군 금성면 초전리 223-7(초전1길 83)에 위치한 ‘의성조문국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이 박물관은 폐교된 조문초등학교 부지위에 3층 건물로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설을 갖추어 2013.4.26 즉 어제 개관을 하였다. 바로 옆에는 당초 학교의 2층 건물위에 기와지붕을 올려 민속유물전시관으로 꾸며놓았다. 그리고 남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 언덕바지에 조문국고분전시관도 개설, 운영 중에 있다.
조문국(召文國)이란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존재하였던 고대국가이다. 삼국사기 제2권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조에 의하면 ‘벌휴이사금 2년 정월에 왕이 친히 시조 사당에 제사지내고 죄수를 크게 사면하였으며 2월에는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로서 좌우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징벌하였는데 군주라는 이름이 이때 처음으로 시작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벌휴이사금은 신라 9대 임금으로 동왕 2년인 서기 185년에 조문국이 신라에 복속된 것이다. 지금의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는 조문국의 도읍지였으며 260여기의 고분군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 약 100여기는 규모가 매우 큰 고분이 조성되어 있어 이는 삼한의 초기부터 최소한 몇 세기에 걸쳐 존재하였던 부족국가라 추정할 수 있다. 1960.11월에는 조문국 고분 1기를 발굴하여 금관 등 다수의 유물을 발견하여 당시의 상황을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중국 삼국지(三國志)의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는 진한, 변한 24국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는데 그 중 12국에는 변진이라는 수식을 붙이고 그 나머지 12국은 표식이 없으므로 진한에 속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그 12국을 보면 이저국, 불사국, 근기국, 염해국, 낙노국, 군미국, 여담국, 호로국, 주선국, 난미리미동국, 사로국, 우유국 등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초기에 기록된 소국의 이름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즉 탈해왕 때 흡수된 우시산국, 거칠산국, 파사왕 때 흡수 된 실질국, 음즙벌국, 압독국, 다벌국, 초팔국과 그 이후에 등장하는 사량벌국, 조문국, 골벌국, 이서국 들이니 이름이 비슷한 국가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들은 3세기의 삼국지에 올린 소국들은 신라가 주변국 공략에 나섰을 때 주도권을 쥔 부락이 바뀌었다는 주장이 있고 다른 별읍의 소국이 주도권을 차지하면서 그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주장은 4세기경에 이주민이 많아지면서 소국의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진한의 소국을 명쾌하게 규명하기는 어려울 듯하고 그 동안 익히 들어오던 소국을 나열해 보면 상주의 사벌국, 의성의 조문국, 경산의 압독국, 영천의 골벌국, 청도의 이서국, 고령의 반로국, 경주의 사로국, 울릉의 우산국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렇듯 진한시대에 수많은 소국이 존재하였는데 그 중에 의성 조문국의 역사를 발굴하여 박물관을 건립한 점은 매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의성조문국박물관은 금성산 고분군 인근에 자리 잡고 있어 금성산의 수려한 경관과 조화를 이루면서 현대적인 감각에 부합한 외형을 갖추고 있으며 복합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할 듯하다. 이곳에는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인 조문국의 역사와 의성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라 하겠다. 또한 이 지방의 문화유산을 발굴, 보존, 전시하고 문화유산에 대한 교육의 장이자 역사, 문화도시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될 문화기반 시설이 될 것 같다.
먼저 3층에 위치한 기획전시실로 올라가 보았다. 이번에 조문국박물관 개관을 기념하여 처음으로 중국 한나라 유물 80여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 유물은 대전의 아주미술관 소장품을 대여 받아온 것으로 오는 7.25까지 전시할 것이라 하였다. 중국의 한나라는 BC 206년부터 AD 220년까지 존재하였던 중국의 고대국가로 이 때 성립하였던 율령과 불교의 수용, 한자, 실크로드의 개척 등 동서양의 문화교류와 동아시아 문화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나라이다. 중국 한(漢)나라는 의성의 조문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존재하였던 고대국가로 당시 우리나라의 문화는 중국의 영향을 받게 되었지만 구체적인 유물을 접해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한인(漢人)들의 생활상, 한나라의 사상과 놀이문화, 우주관 등의 문화를 살펴보게 하였고 제사의례와 관련한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물로는 토기로 제작한 인물상, 동물상, 건축물, 벽돌들을 볼 수 있었다. 흙으로 작은 돼지우리를 만들고 그 우리 안에 어미돼지와 새끼돼지 13마리의 모습은 앙증맞기도 하고 실제로 살아 꿈틀대는 생동감을 자아내고 있다. 성문과 미인상도 보이고 토인상도 전시되어 있고 디딜방아도 보인다. 눈에 띠는 작품은 우주나무라 이름부친 전한(前漢)대의 유물로 이것은 도교를 신봉하여 영원성을 지향한다는 작품인데 인간의 신성과 우주를 표현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4점 밖에 없다는 귀중한 작품인데 7조각으로 분리할 수 있으며 각 층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박물관 학예사가 직접 설명해 주었다. 청동으로 제작한 대정(鼎)도 보이고 말이 춤을 추는 작품은 이번 기획전의 대표작으로 눈에 띠었다.
2층에 마련된 상설전시실에는 인류가 진화하여 선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생활의 모습을 눈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돌화살촉, 뗀석기, 붉은간토기, 파수부호 등이 전시되어 있다. 조문국의 성립과 소멸이란 코너에서는 조문국 시대의 토기와 농기구가 전시되어 있으며 영상자료를 통하여 당시 생활상을 접해볼 수 있다. 은제환두대도, 등자, 운주, 우각파수부호가 눈에 띠고 의성인의 문화유산 코너에서는 이 지방의 독특한 무덤, 토기 양식, 조문국고분에서 출토된 문화유산을 접하게 되었다. 금동관, 목걸이, 귀걸이, 금동신발, 나비모양의 장식품, 고배, 대호 등을 만나보았다.
폐교된 학교 건물을 이용한 민속전시실에서는 의성지방에서 전승, 보존되어오고 있는 기마싸움, 연날리기, 의성씨름 등 의성의 민속놀이와 폐교된 조문초등학교의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야외에는 고인돌과 몽골인들이 가옥으로 사용하는 게르(Ger) 한 동을 설치해 두었다. 고분 전시관에서는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2호 고분의 내부모습을 재현해 놓았고 이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순장문화를 통하여 당시의 매장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하였다. 박물관 본관 마당에는 국보 제77호로 지정되어 있는 의성 탑리 5층 석탑을 실물 크기로 재현 놓았는데 그 탑신에는 본 박물관개관 기념식의 부대행사로 타임캡슐 수장식을 거행하였다고 한다. 타임캡슐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53*50*76cm의 크기로 제작하여 지역사회의 의생활 4점, 식생활 2점, 주거생활 20점, 행정 193점, 기타 63점 등 총 282점을 수장하였는데 500년이 지나서 후세 사람들이 열어보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소국이기는 하지만 역사 속에서 엄연히 존재하였던 나라인 조문국이 역사의 바깥으로 나타나는 게기가 될 뿐만 아니라 의성지방의 문화유산을 발굴, 보존,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의성조문국박물관을 개관하게 된 점은 매우 유익하고 뜻 깊은 일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직원들의 보수 등 인건비를 비롯하여 유지 관리비용이 만만치 아니할 것인데 입장료 수입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성군의 재정이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재원확보를 위하여 별도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짐작되어진다. 어찌 하였던 중국 한나라의 문화재와 더불어 새롭게 조문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살펴본 기회를 가지게 되어 매우 유익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2013.4.26, 금)
*삼국지 위지동이전 : 삼국지는 고대 중국 위(魏), 촉(蜀, 오(吳)의 삼국시대 부터 진(晉)나라까지 기록한 역사서인데 진나라 진수(陳壽,233-297)라는 학자가 편찬하였다. 위지 30권, 촉지 15권, 오지 20권으로 되어 있고 위지는 제기(帝紀) 4권, 열전(列傳)이 26권인데 동이전(東夷傳)은 마지막 30 권에 실려 있다. 동이란 고대 중국인들이 동쪽의 오랑캐란 뜻으로 그들의 동쪽인 일본, 만주, 한국의 족속들을 멸시하여 일컫던 말이다.
* 위(魏) : 220-265
촉(蜀) : 221-263
오(吳) : 222-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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