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판에 스타벅스… 120년 광장시장, 새판 짠다
"오래 머물고 볼거리 있는 곳으로"
신지인 기자
입력 2024.07.22. 00:30업데이트 2024.07.22. 05:26
120년 전통 서울 종로 광장시장이 새판을 짠다. ‘먹방 투어’의 성지로 손님을 끌어 모았지만, 특정 구역에만 몰리거나 시장 건물 2층과 3층에는 빈 점포가 많아 실속 없는 유명세라는 분석도 있었다. 게다가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음식값 바가지 논란까지 거세게 일기도 했다. 인근 상인들이 모여 1905년 설립한 광장주식회사는 현재까지 시장 건물의 관리와 운영을 도맡고 있는데, 이 광장주식회사가 최근 카페 스타벅스, 영화 스타워즈 팬덤 등과 손잡으며 대규모 혁신을 준비 중이다. 이곳 하면 떠오르는 ‘먹거리’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오래 머무르는 곳, 볼거리가 있는 장소로 탈바꿈하는 전략을 내세웠다.
◇시장 한복판 스타벅스 들어선다
광장시장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들어선다. 빈대떡 골목, 육회 거리와 같이 식당 위주로 들어선 시장의 한가운데 건물에 스타벅스가 입점하는 것이다. 예정 부지는 시장 만남의 광장과 인접한 한복 별관 건물 2층이다. 원래 이곳은 시장이 들어선 1900년대부터 영업을 이어오던 한복, 원단 가게들이 있었다. 점차 손님이 줄고 영업이 부진하자 가게들이 떠나고 공실로 남아 있었다. 광장주식회사와 서울시는 이곳의 활성화를 위해 ‘핫 플레이스’의 지표라고도 불리는 스타벅스를 입점시키기로 했다. 스타벅스에 건물 소유주인 ‘광장주식회사’가 임대하는 방식이다.
같은 건물 3층에는 오타쿠(마니아)들을 위한 ‘덕질 발효 창고’가 들어선다. 집에 두면 짐이 되는 오래된 피규어, 장난감을 한 데 모아 장난감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상인들이 쓰지 않던 낡은 장소가 ‘레트로 감성’을 입고 오타쿠들의 성지로 재탄생될 예정이다. 종로구가 기획하고, 덕질을 좋아하는 동호회 ‘뉴팬덤’이 소속 회원을 모아 전시를 꾸려나간다. 전시관은 ‘추억 보관 창고’ ‘창의력 보관 창고’ ‘애착 보관 창고’ 등 3개 콘셉트로 구성된다. 이달 초부터 시범 운영 중이며 주요 물품은 스타워즈, 마블 피규어와 같은 장난감 등이다.
그래픽=김하경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1호 기증자로 나섰다. 지난 1일 스타워즈 팬덤, 광장시장 관계자와의 업무 협약식 자리에서 정 구청장은 1호 보관 물품으로 자신의 아들에게 선물한 스타워즈 광선검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광장주식회사 관계자는 “시장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 같지만 1층과 식당 점포에만 몰리고 그 이외의 구역에는 공실이 많았다”며 “먹거리 시장이라는 특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전략적으로 다양한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꾸미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100년 가게와 ‘1개월 가게’가 공존
광장시장의 또 다른 전략은 오랜 전통이 있는 가게와 한 달마다 바뀌는 가게를 공존시키는 것이다. 청계천 마전교와 인접한 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365일장’이라는 소품숍이 나온다. 이곳은 평소에는 소품과 광장시장 먹거리를 재구성한 식품을 팔지만, 기업과 협업해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를 열기도 한다. 최근 2년간 주류회사 제주맥주, 홍수골 막걸리, 느린마을 막걸리, 요리주점 용용선생과 협업해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현재는 와인 유튜버 ‘와인킹’과 와인과 식품을 파는 팝업스토어를 운영 중이다.
365일장을 운영하는 추상미(46) 대표는 “부모님이 평생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을 해오셨는데, 나는 시장의 새로운 형태를 실험해보고 싶었다”며 “다양한 연령대와 국적, 성별의 손님이 오는 만큼, 같은 가게만 운영하지 않고 팝업스토어 형태로 여러 가게의 콘셉트를 실험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최근 시장 안에는 MZ 세대의 필수 코스라 불리는 놀거리들이 한데 모였다. 전생 테스트를 하고 왕·성균관 유생·황진이·주모·돌쇠 등 콘셉트로 네컷 스티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전생 사진관, 소쿠리에 담긴 수박 미니어쳐 등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소품숍, 아코디언 모양 가방으로 유명한 플리츠마마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대표적 사례다. 또 시장 바깥까지 줄이 이어지는 찹쌀 꽈배기 외에도 광장 라테로 유명한 커피 바(bar) ‘일호상회’, 튀르키예 간식 카이막을 파는 ‘미크플로’ 카페도 방문객들이 몰리고 있다.
◇가격 정찰제 등 자정 작용은 남은 과제
작년 말 바가지 논란으로 반성 대회까지 열었던 광장시장의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당시 ‘정량 표시제’를 시행하고 카드 결제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또 바가지를 씌우거나 강매를 할 경우 영업정지 조치를 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비싼 가격으로 바가지를 당한 것 같다”는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태준 종로광장전통시장상인총연합회 회장은 “겉모습만 바뀌는 게 아니라 상인들도 모두 바뀔 필요가 있다. 내부 자정 노력을 계속해서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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