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잡설 – 함지덕, 이름도 낯선 그곳에 남겨진 것들
얼마 전 누군가 내게 물었다.
“설악산 함지덕 위치를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설악산을 꽤 오래 다닌 사람들도 의외로 ‘함지덕’이라는 지명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분은 우연히 내가 쓴 산행기를 보고는 너무 궁금해져서 꼭 한번 가보고 싶다며 위치를 물어왔다.
설악산 고수들에게도 낯선 이름, 함지덕.
도대체 그곳은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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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가면 정상만 찍고 내려오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당시 지도교수님은 조금 달랐다.
명산을 찾아가면 그 산의 지형뿐 아니라 유래와 역사, 사람들의 삶과 흔적까지도 살펴보게 했다.
산을 오르는 방법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산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셈이었다.
돌 하나에도 이야기가 있고, 능선 하나에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등산이라기보다 산을 교과서 삼아 배우는 인문학 수업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도 많은 장소들이 떠오른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함지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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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덕은 대청봉에서 권금성 쪽으로 흘러내리는 화채능선의 칠성봉 동쪽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동쪽으로 좁은 골짜기가 흘러내리는데, 옛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함지덕골’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물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토왕성폭포의 발원지가 된다.
하지만 웬만한 지도에서는 ‘함지덕’이라는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내가 사용한 1985년도 발행 군용 지형도(1:50,000 속초)에서 그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정작 지명 위치는 실제 지형과 조금 어긋나 있었다.
유일하게 이름은 남아 있는데 위치는 달랐고, 지도에는 없는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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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를 따라가 보면
내가 태어나던 해인 1969년에 단장의 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설악제가 대대적으로(?) 개최되었는데 놀랍게도 그 당시 설악제의 공식 산행 코스가 설악동 → 안락암 → 칠성봉 → 함지덕 → 화채봉 → 외설악만경대→ 양폭 → 비선대 → 신흥사라고 한다.
이 기록은 이기섭 박사의 「나의 설악, 나의 인생」이라는 설악산 등산로 개척사에 나온다.
지금은 권금성에서 숙자바위를 지나 칠성봉과 화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가는 것이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칠성봉에서 함지덕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피골서릉을 따라 화채봉으로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그 옛길을 따라 답사를 했고, 함지덕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돌이켜보면 꽤 특별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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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덕이라는 이름처럼 그곳은 함지처럼 푹 파여 있다.
주변은 능선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람을 막아주고, 앞쪽으로는 함지덕골이 토왕성폭포를 향해 동쪽으로 열린다.
숲 사이로 고마운 햇살이 잠깐 스며 든다.
험준한 설악산 한가운데인데도 이상할 만큼 아늑하다.
아마 그래서 이곳에 화전민들이 스며들었던 모양이다.
돌로 쌓은 축대와 집터.
오랫동안 산을 다니다 보면 이런 흔적을 간혹 만난다. 하지만 함지덕의 그것은 유난히 마음에 남는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쌀 한 됫박, 소금 한 줌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이 험난한 산길을 오르내렸을 텐데.
우리가 지금은 가벼운 배낭 하나 메고도 힘들다고 투덜거리며 올라가는 길을, 누군가는 삶의 길로 오갔을 것이다.
그들에게 산은 우리가 주말에 찾아가는 100대 명산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혹독한 세상이었다.
같은 산을 바라보면서도 삶의 무게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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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조금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의 집터 흔적은 없고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새로운 구조물이 들어서 있었다.
도대체 누가?
왜?
무슨 용도로?
그리고 이 험준한 곳까지 대체 어떻게 자재를 날랐을까?
산에서 별별 것을 다 봤지만, 이건 진짜 궁금했다.
‘그냥 내가 마무리해서 비밀 아지트로 써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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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인터넷에 수많은 산행 정보가 넘쳐난다.
편리하다.
지도도 있고, GPS도 있고, 사진도 있고, 혈세로 쳐바른 인공적인 데크길도 많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조금 아쉽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름과 지명이 너무 가볍게 만들어지고, 또 너무 쉽게 퍼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지명처럼 굳어진다.
나는 그런 것이 조금 마뜩잖다.
도대체!
저항봉, 마등봉, 걸레봉 따위는 어디에서 튀어나온 지명들일까?
산에는 이름 없는 곳도 많다.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곳도 많다.
오히려 오래된 이름 하나를 제대로 찾아내고 그 이름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되짚어 보는 일 더 의미 있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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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덕도 그런 곳이다.
2026년 9월 단장의 허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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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AI보다 방대한 단장님의 지식이 후대에 오래 보존되도록 제가 돈 많이 벌어서 버티고 역사관을 건립하겠습니다 ㅋㅋㅋ 🫡
어쩌면
잊혀진 것들 보다
잊혀질 것들이 더 많을 즈음
예전 사실도
뜸하게 구전으로만 전해지면
마치 설화처럼 남겨질 듯~~
그나마 흔적이라도 있으면
누군가에겐 소중한 추억이 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