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에 엄마가 힘없이 쓰러져 목말라하는 안쓰러운 모습을 보았다. 한국의 가족들이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야 되는데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겨우 언니와 통화할 수 있었다. 잠깐 통화했는데 9.10유로였다. 독일은 진짜 전화비가 비싸다.
상수시궁전으로 가면서 독일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가이드한테 누군가가 질문을 했다. 독일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선호하는 학과는 의대와 법대란다. 김나지움 2, 3학년이 되면 우리나라 입시생과 같았다.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해야만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갈 수 있단다. 예전에는 아비토(대입자격증)만 통과해도 장인정신으로 자랑스러워했는데 요즘의 부모들은 가능한 자녀들을 대학에 진학시키려 하고 있단다. 그래서 대학가기도 힘들고 거의 무료이던 대학등록금도 차츰 비싸지고 있다고 했다. 아비토에 합격하지 못했을 경우 다음해에 한번 더 시험에 응시할 수 있지만 또 떨어지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없도록 돼 있단다. 실업계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한 1년 정도 직업훈련을 통해서 취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독일도 요즘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했다.
초등학교는 언제나 오전에 수업이 끝나는데 부모가 집에 없을 경우 오후에 자녀들이 학교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여러 제도들이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요즘 독일의 교사들은 많은 업무 스트레스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통일에 대해서 한국정부의 왕래가 많단다. 통일을 위해서 서독이 많은 원조를 했단다. 통일된 이후에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했는데, 통일 전에 서독과 동독이 사유재산에 대해서 서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협의를 했는데 행정부에서 개인의 사유재산을 유린하며 맺은 협의는 무효하다고 통일이 된 후에 분단 전에 동독에 재산권이 있었던 많은 서독인들이 헌법소원을 냈단다. 그때 최고헌법위원회에서 개인의 손을 들어주었단다. 그 뒤로 경제적인 문제가 많이 제기되었으며 사회통합에도 많은 힘이 들었다고 했다.
통일이 되려면 준비가 많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인적교류, 경제지원이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좀 더 발전이 되고 난 뒤에 통일이 되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이라고 했다.
통일 후 서독사람들의 불만은 동독을 재건하는데 쓰려고 거두는 ‘통일세’라는게 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가시적인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독의 재건은 느리고, 세금은 계속 더 내야 되고 서독사람들은 불만이 많단다.
상수시 궁전에 도착했다. 9시 30분부터 관람이라 궁전마당에 있는 프르드리히 1세 무덤과 11마리 개의 무덤을 볼 수 있었다. 프리드리히 1세는 왕비와의 사이는 별로 가깝지 않았고 개를 가까이 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상수시 궁전의 정원을 둘러보고 궁전 안으로 가기 위해 자세히 보니 궁전지붕아래로 장식돼있는 커다란 조각상들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궁전의 내부는 12개의 방으로 되어 있는데 아름다운 산드리에와 그림, 중국풍, 이탈리아 풍의 방과 볼테르 방이 기억에 남는다.
<상수시 궁전> < 체칠리안호프-포츠담회담이 열린곳>
1945년 한국의 해방과 일본의 항복과 관계가 많았던 포츠담회의가 열렸던 세실리언호프궁전으로 갔다. 마지막왕조의 왕자와 그의 왕비가 살았던 궁전이었는데 역사적 사건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4유로를 내고 역사적 인물들이 집무를 보던 곳, 회담이 열렸던 곳의 내부를 보기로 했다. 왕족들의 서재, 거실, 안방 등등이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집무실, 소련 스탈린의 집무실, 영국 처칠의 집무실로 사용된 안내가 되어 있었고, 세 나라 대표들이 회의를 했던 원탁에서 각나라의 조그만 국기가 세워져 있었다.
포츠담회의에서 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은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하고 점령한 나라에서 물러날 것을 결의했지만 일본은 회의결과에 따르지 않아 소련이 먼저 일본에 대해서 선전포고를 하게 되고, 결국은 히로시마와 니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단다.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나라는 36년 간의 일본 강점기를 끝내고 되고 해방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