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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6월 1일 토요일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유스티노 성인은 2세기 초 사마리아 지방 플라비아 네아폴리스(오늘날 팔레스타인의 나블루스)의 그리스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구도자의 자세로 그리스 철학에 몰두하다가, 마침내 그리스도교에서 참된 진리를 발견하고 입문하여 신앙의 설교자로 활동하였다. 성인은 에페소에서 유다인 트리폰과 벌인 종교 토론을 바탕으로 「트리폰과 나눈 대화」를 저술하였으며, 로마 황제와 원로들에게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책도 펴내고, 로마에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다. 성인은 165년 무렵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 다른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유다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온 것인지 대답해 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은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당신의 영광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나서도록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 유다서의 말씀입니다. 17.20ㄴ-25
17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고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20 여러분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십시오.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21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22 의심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23 어떤 이들은 불에서 끌어내어 구해 주십시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의 살에 닿아 더러워진 속옷까지 미워하더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십시오.
24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당신의 영광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기쁘게 나서도록 해 주실 수 있는 분,
25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 하느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과 위엄과 권능과 권세가 창조 이전부터,
그리고 이제와 앞으로 영원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7-33
그 무렵 예수님과 제자들은 27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을 거닐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28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
31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말할 터이니,
32 ‘사람에게서 왔다.’ 할까?”
그러나 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을 두려워하여, 33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1,18-25)와 복음(마태 5,13-19)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평생 구도자로서 진리를 탐구하던 유스티노 성인은 참된 진리를 그리스 철학에서 찾으려 하였습니다. 그리스 가정에서 태어나 그 문화 안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그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유스티노는 스토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피타고라스 철학, 플라톤 철학 등 당대에 유행하던 철학 사상들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만족할 수 없었고, 결국 그리스도 안에 참된 진리가 있음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입문하게 됩니다.
유스티노가 그리스도교로 마음이 움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순교자들이 보여 준 용기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에 직면해서도 용감한 그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악이나 탐욕 가운데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제2호교론」, 12장).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하게 신앙을 증언한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그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철학에서 진리를 찾았지만 순교자들의 모습을 보고 입교하게 되었다는 유스티노의 고백은, 과학이나 다른 세속 학문에서 진리를 찾는 현대인들에게 진리의 복음을 어떻게 선포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합니다. 바로 용기 있는 순교적 삶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피의 순교는 할 수 없지만, 삶 안에서 순교는 계속됩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것을 모두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가치를 실천하며 신앙을 증언하는 것이 바로 일상의 순교입니다. 이 시대의 세상 사람들은 세속적 가치를 거부하고 영원한 가치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용기에서 진리의 빛을 보고, 주님을 향하여 마음이 움직일 것입니다.(최정훈 바오로 신부)
질문이 진실해야 대답도 진실하게 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언젠가 나름 어깨 힘주는 분들 모인 한 단체에서 저를 강의에 초대하면서 엄청 꼬치꼬치 묻더군요. 신학교 외에 어느 대학, 어떤 분야를 전공했는지? 유학은 어떤 나라를 다녀왔고, 취득한 학위는 어느 정도 수준이고, 어디서 가르쳤는지?
그래서 저는 대답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워낙 좋지 않아 겨우겨우 학교를 다녔습니다. 몸도 좋지 않아 성적도 언제나 바닥이었으며, 유학이라고 몇 년 다녀왔지만, 배운 바가 거의 없는, 정말이지 내세울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즉시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언제든지 초대 계획을 취소하셔도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취득한 혜성처럼 등장하신 예수님, 그리고 그리로 몰려가는 군중, 당대 유다 세력가들을 너무나도 당연히 경계심을 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보내어 예수님의 뒤를 캐기 시작합니다.
예수라는 인물은 도대체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떤 가문 출신인가? 어디 율법학교를 졸업했는가? 그에게 가르침을 준 스승은 누구인가? 교수 자격증은 취득했는가?
알아봤더니, 웬걸, 예수란 인물은 깡촌 중의 깡촌 나자렛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무학력자였습니다. 당연히 예수는 율법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얼마나 다급했던지 직접 나서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그때 예수님은 기가 막힌 역질문을 하나 던지시는데, 그 질문 하나로 그들의 말문을 닫아버리셨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당시 세례자 요한에 대한 명망과 인기와 인지도는 전 국민적인 것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미 백성들 사이에 하늘로부터 온 하느님의 전령이자 구약시대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대예언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세례자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면 백성들의 불신과 공분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의 세례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면 세례자 요한이 준비하고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늘에게서 온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신 분,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권한을 받으신 분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절하십니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질문이 진실해야 대답도 진실하게 됩니다. 그들의 질문에는 진정성이 없었으며 다분히 계산적이었습니다. 질문다운 질문이 아니고 한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기 위한 정치적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답(無答)은 사실 정답이었습니다. 당시 영적으로 무지하지 않고 정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자라는 사실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강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하느님 아버지와 성령께서 예수님의 위격과 권한을 명백히 증언하셨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권한을 받으신 것이고, 백성들에게 가르칠 권한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온 권한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 권한을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늘로부터 온 권한은 사람들을 내리누르기 위한 권한, 코너로 몰아붙이기 위한 권한이 아니라 사람을 격려하는 권한입니다. 사람을 일으키고 살리는 권한입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권한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댈러스에 와서 뉴욕 면허증을 텍사스 면허증으로 바꾸었습니다. 타주로 이사 가면 운전면허증을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같은 나라이니까 그냥 바꿔주면 좋을 것 같은데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먼저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했습니다. 예약을 하는데 90일 정도 밀려있었습니다. 예약하면 이메일로 확인 서류를 보내줍니다. 서류에는 면허증 갱신 장소, 예약 번호, 준비물이 있습니다. 준비물에는 기존 면허증, 소셜 번호, 그린카드 혹은 비자, 살고 있는 곳이 표시된 페이퍼(은행 잔액 증명, 핸드폰 요금 고지서 등등), 차량 보험 서류 등이 있습니다.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서 바코드를 찍거나 예약 번호를 입력하면 대기 번호가 나옵니다. 기다리는 동안 양식을 기재합니다. 인적 사항을 적고, 건강 상태에 대한 물음에 예스나 노로 표기합니다.
기존 면허증에 대한 것도 기록합니다. 유효기간, 생년월일, 키, 몸무게, 눈 색깔, 머리 색깔 등을 적습니다. 적성검사를 위한 양식도 기재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대기 번호를 부릅니다. 창구에 가면 직원이 서류를 검토하고 잘못 기재 했거나 미진한 것이 있으면 친절하게 고칠 수 있도록 알려줍니다. 간단히 시력 검사를 한 후에 사진을 찍으면 임시 면허증을 발급해 줍니다. 30$ 정도의 수수료를 내면 운전면허증 발급 작업이 끝납니다. 쉬운 것 같지만 처음 하면 긴장됩니다. 그런데 전 ‘사제찬스’가 있었습니다. 저의 성직자 복장을 본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자기도 신자라고 인사하였습니다. 성당 이야기도 하고, 신앙 이야기도 하니 분위기는 편안했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최대한 가능한 방법을 찾아주었습니다. 제가 실수로 잘못 적은 곳도 친절하게 고쳐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니 30분 만에 운전면허증 발급 절차가 끝났습니다. 직원은 자신의 권한으로 최대한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많은 직원 중에서 가톨릭신자를 만나서 감사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하늘나라에 가면 어떻게 될까?”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 사도가 신앙에 충실했던 사람들은 기쁘게 맞이할 것 같습니다. 사제의 직무에 성실했던 사제들도 기쁘게 맞이할 것 같습니다. 신앙인들은 세례 때 ‘인호’를 받았으니,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곳에서도 친절하게 안내받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가톨릭신자를 만나서 친절하게 안내받았지만, 꼭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지 못했으면 새로운 운전면허증 발급은 어려웠을 겁니다. 절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운전면허증, 소셜 번호, 비자나 그린카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제가 댈러스에 살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서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신자이기 때문에 특별히 봐줄 수 있겠지만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서류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세상의 창고에 보물을 쌓지 말고, 영원히 좀 먹지 않는 하늘의 창고에 보물을 쌓아야 한다.”
우리가 하늘의 창고에 쌓아야 할 보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미 알려 주셨습니다. 자캐오처럼 회개하고, 가진 걸 기쁜 마음으로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지금 굶주리고, 지금 헐벗고, 지금 외로운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어도 섬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를 먼저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베드로 사도는 언제든지 천국 문을 활짝 열어줄 것입니다. 오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권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권한은 능력, 재력, 권력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조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재력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까?”
그분은 한없이 약하고, 순결하신 어린양이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되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겸손함과 정결함, 순수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분은 모든 고난과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었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에서 참된 신앙의 길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권한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한 구원자이시고, 그분이 걸어가신 길이 생명의 길이였으며, 그분의 권위는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주어지고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또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구원자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의 성인
성 유스티노(Justin)
신분 : 교부, 순교자, 호교론자
활동연도 : 100/110?-165년
같은이름 : 유스띠노, 유스띠누스, 유스티누스, 저스틴
성 유스티누스(Justinus, 또는 유스티노)는 100-110년 사이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사마리아 지방에 세워진 플라비아 네아폴리스(Flavia Neapolis)의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로 꾸준히 탐구하는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스토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피타고라스 철학 그리고 플라톤 철학에 연이어 몰두하였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에사레아(Caesarea)의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에 한 노인을 만나 인간의 모든 사상, 플라톤 사상에도 한계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심취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성 유스티누스가 에페수스(Ephesus)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은 130년경이다. 그는 이후 구도자로서가 아니라 진리의 설파자, 신앙의 설교가로 길을 바꾸어 한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는 평신도였으나 스승이며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다.
그는 132-135년 사이에 에페수스에서 유대인 트리폰과 종교에 관한 토론을 가졌으며, 이것을 토대로 155년에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 the Jew)를 저술하였다. 그는 순회교사로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가르치다가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us Pius) 황제가 있는 로마(Roma)에 도착해서 그곳에 머물며 자기 집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schola)를 세웠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항의하는 2편의 “호교론”(Prima Apologia, Secunda Apologia)을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호교론자이며 또 그리스도교에 대한 장문의 글을 남긴 최초의 평신도이다. 그는 크레센스라는 견유학파 사람과 논쟁을 벌이다가 그의 사주로 인하여 로마(Rome)의 집정관인 유니우스 루스티쿠스(Junius Rusticus)에게 고발되어 다른 6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이방 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한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2세기 호교론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였다.
성 그라시아노 (Gratian)
활동년도 : +250년
신분 : 군인, 순교자
지역
같은 이름 : 그라띨리아노, 그라띨리아누스, 그라시아누스, 그라씨아노, 그라씨아누스, 그라티아노, 그라티아누스, 그라틸리아노, 그라틸리아누스
황제군의 군인이었던 성 펠리누스(Felinus)와 성 그라티아누스(Gratianus, 또는 그라시아노)는 데키우스 황제 때에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976년에 밀라노(Milano) 부근 아로나(Arona)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성 그라티아누스는 그라틸리아누스(Gratilianus)로도 불린다.
성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챠 (Hannibal Mary di Francia)
활동년도 : 1851-1927년
신분 : 신부, 설립자
지역 : 메시나(Messina)
같은 이름 : 프란치아, 한니발
성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챠(Annibale Maria di Francia)는 1851년 7월 5일 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 섬의 메시나에서 태어났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마태 9,37-38; 루가 10,2)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가 젊었을 때부터 그의 영성과 사목의 샘이었다. 1878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부터 그리스도의 사제로서, 고아들과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안니발레 신부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 성심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힘없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하느님과 이웃’이라는 이상을 실현시키며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특히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버려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서 일할 일꾼들을 교회에 보내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는 기도(로가테, Rogate)의 확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안니발레 신부는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 ‘거룩한 열정의 여자 수도회’와 ‘로가치오니스티 남자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가 ‘전세계가 성소를 위해서 기도하는 날’(성소주일)을 제정함으로써 그 결실을 맺었다. 복음의 덕을 평생 동안 산 안니발레 신부는 1927년 6월 1일 메시나에서 선종하였다.
1990년 10월 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안니발레 신부는 ‘현대 성소 사목의 선구자’와 ‘고아들과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는 2004년 5월 1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