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ante, Myoung-Dong
안단테 명동
김재욱-KIM JAE WOOK
2011. 3. 12 토 ~ 4. 16 토
월 ~ 토 11 :00 ~ 19 : 00 (일, 공휴일 휴일)
-명동의 광음(光陰)을 낚아채다-
김재욱의 다섯 번째 개인전 『안단테, 명동』
“사진은 늘 나를 낯설게 만든다. 그런 낯선 자신을 깨닫고 대면하는 일, 그것이 내가 사진을 하는 이유다.” -작가의 말
설 연휴가 끝나고 첫 월요일, 불쑥 김재욱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간단한 안부를 서로 주고받은 뒤 냉큼 글 한 편 쓰라는 독촉이다. 내가 앞뒤 경황을 따질 겨를 없이 곧이어 이번 사진전 소식이 뒤따랐다. 그 언제 술자리에서 내가, 기회 되면 형의 전시회 발문을 써보겠다는 실언을 했었는가 보다. 몇 년이 지났어도 그 말을 잊지 않고 빚 최고장처럼 들이미는 형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하나 어쩌나. 그래서 부랴부랴 날짜를 잡고, 누구보다 먼저 이번 개인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출판 밥을 먹는다는 이유로, 이 졸필에게 선뜻 맡겨준 호의에 언감생심 없던 용기를 내어본다.
명동(明洞)-있거나 혹은 없거나
작가의 촬영 장소는 변함없다. 언제나 명동이다. 왜 굳이 명동일까? 그는 명동의 공간적 상징성에 주목한다. 그의 파인더는 늘 명동 안에서 명동을 본다. 명동의 그 적나라한 속살은 역설적으로 명동의 실체적 의미를 배제한다. 성당과 사채시장으로 유명한 곳. 성지의 성스러움과 세속의 잡스러움이 한데 뭉뚱그려져서 기묘하게 공존하는 곳, 그러나 각 작품에서 그 상징성의 내용을 채우는 건 상점 간판과 오가는 행인뿐이다. 어지간히 명동 골목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진을 보고서 이곳이 명동이라고 잘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여느 도심의 번화가 모습과 별반 다름없다. 차라리 명동에는 명동이 없음을 사진에 담고자 했을까. 명동에서 그 부재하는 명동의 알리바이는 누가, 어떻게 증언할 수 있을까. 사진 속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작가에 의해서 우연히 구속된다, 그리고 영원히 감금된다, 작가가 표제로써 던진 명동이란 말의 그물에. 그 그물은 작가가 던지는 일종의 수수께끼다. 명동, 있거나 혹은 없거나.
광음(光陰)-빛과 그늘의 시간
작가는 흑백사진만을 고집한다. 그가 사진에 입문한 지도 얼추 이십 년이 다 되어간다. 95년 도쿄 후지포토살롱에서 열린 단체전 『의식된 우연』을 시작으로 이번 개인전에 이르기까지 그는 여전히 라이카 M6와 함께했다. 이번 일로 작가와 마련한 자리에서 내가 왜 아직도 흑백사진을 고수하냐는 내 물음에 그는 색깔을 해체하는 흑백사진 고유의 힘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삼일 더 지나서, 내가 이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궁리하며 그의 흑백 작품들을 하나하나 떠올릴 때 퍼뜩, 지나가는 단어가 광음(光陰)이었다. 광음은 해와 달이란 뜻에서 의미 전성되어 시간, 세월을 가리킨다. 이 말이 생각난 것은 빛(光)과 그늘(陰)이 흑백사진을 규정하는 두 핵심 요소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말했던 ‘흑백사진의 힘’ 때문이었다. 사진에는 흐르는 시간을 정지된 순간에 영구히 고정하는 힘이 있다. 또 흑백사진에는 칼라사진의 생생한 색채를 희생하는 대신 그 정지된 순간마저도 관념적으로든 정서적으로 얼마큼 더 시간을 후퇴시키는 힘이 있다. 실제 촬영된 순간의 시간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건 사진이 기록적 가치를 지닐 때다. 그 가치를 배제할 때 흑백사진은 시간의 간극이 생긴다. 물리적 시간과 주관적 시간 사이의 빈틈을 관조하는 눈길이, 새로운 시간이 메운다. 거기엔 사진을 찍는 행위의 주체인 작가의 몫뿐만 아니라 하나의 결과물이자 객체인 사진 앞에 서 있는 감상자의 몫도 아울러 포함하고 있다.
안단테-의지의 속도
스냅 사진은 움직이는 피사체를 재빨리 찍는다. 그 사진의 특성상 속도가 중요함은 분명하다. 그런데 ‘걷는 속도로 천천히’, ‘느리게’라는 뜻으로 악곡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인 안단테를 표제로 쓴 것은 어딘가 생뚱맞아 보인다. 여기엔 이중의 함의가 있다. 앞서 언급한 공간적 상징성의 역설인 ‘명동의 알리바이’와 마찬가지로, 시간의 속도도 상대적이고 주관적임을 환기시킨다. 스냅 사진이 전문인 작가는 재빨리 셔터를 누른다. 현상된 하나의 작품 공간 안에서 시간은 영원한 정지 상태다. 그 사이에 작가가 던진 의문부호처럼 ‘안단테’가 있다. 또 하나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한 말로 나는 받아들인다. 곧, 사진을 대하는 그 자신의 태도와 자세, 그 호흡을 천, 천, 히 다시 가다듬는 의지의 다짐으로 말이다. 그는 나와 만난 자리에서 첫 단체전인『의식된 우연』에 대한 많은 이야기로 이번 사진전을 에둘러 말했었다. 그때 나는 이번 사진 전시회가『의식된 우연』과 그 맥이 닿아 있음을 직감했다.『안단테, 명동』은 『의식된 우연』의 서로 다른 이름을 지닌 쌍둥이일까,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변주곡일까, 또는 그저 재탕일까? 그 작품들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사진은 늘 나를 낯설게 만들어. 그런 낯선 자신을 깨닫고 대면하는 일, 그것이 내가 사진을 하는 이유야.” 이 말을 끝으로 헤어진 그에게 믿음이 갔다.
도서출판 문파랑 대표 김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