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14차(꽃조개고개-수덕고개 13.1km)□---충절의 고장에서 이슬방울을 떠올리다
△산행일시:2010년 11월 21일 일 연무로 흐림
△산행참가자:두메나산골 회원 8명
△산행구간
꽃조개(21번도로)-3.0km-하고개-2.7km-백월산-1.6km-까치고개-3.3km-홍동산-2.5km-
수덕고개(40번도로)
△산행기록
8:45 21번도로 꽃조개 도착. 마온아파트 건너 마온주유소에서 도로따라 걷다가 고가차도 밑을 통과하여
도로 옆 한우전문 소나무식당 쪽으로 올라 만해동상 충령사 입구방향으로 10여 m를 진행하니 좌측으로
틀어지는 들머리에 만해동상이 있다. 동상이 있는 곳 우측으로 충령사가 보인다. 마루금은 만해동상
뒤편을 오르게 된다.
이 고문님의 제의로 만해동상에서 묵념을 하며 고인의 뜻을 되새겨 본다. 기미독립선언서에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를 넣어 우리민족의 결연한 의지를 담도록 하셨던 분이었던 만해선사는 이
고장 홍성이 배출한 애국지사이다.
홍성은 많은 학자와 애국지가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다. 고려말의 충신 최영장군, 조선 단종 때
사육신 성삼문을 배출한 곳이고 근대사에서는 서예와 고고학의 대가 추사 김정희 선생, 청산리 대첩의
영웅 김좌진 장군, 가장 대가 세었던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만해 한용운 선사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열거
하기도 힘들 정도의 인물을 배출한 곳이니 이 지방 사람들이 긍지를 갖고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동상 뒤로 오르는 길 만남의 숲엔 돌탑이 여러개 있고 소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어서 만해 선사 동상에
걸맞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9:03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200여 m 비켜 있는 남산. 2층 팔각정 전망대와 체육시설이 있는 공간이다.
9:10 다시 남산 갈림길 삼거리에 돌아와서 우측 밋밋한 내리막으로 진행한다. 만해동상 들머리에서
진행한 방향으로 봐서는 직진방향이다.
9:17 갈림길. 산밭 위 오른 쪽 길로 진행한다. 잡목 구간. 오늘 산행 코스는 거의 잡목 야산의 모습이다.
9:20 전방의 도로를 바라보며 내려간다. 등산로를 참나무 낙엽이 덮고 있고 태풍 곤파스에 쓰러진
나무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주로 등산로에 누워있다.
9:25 우측에 왕복 4차선 도로가 보이는 수리고개. 왼쪽엔 시골 마을이 보인다. 고개넘어 산밭 위로
오른다.
9:27 산밭 위 칡덩굴 밭. 여름철엔 진행에 어려움을 많이 겪을 지점이다.
9:35 정맥은 파평윤씨들 무덤 위에서 송전철탑 쪽 약간 우측으로 휘어진다.
9:40 시멘트 포장 맞고개를 지나 공사중인 철탑을 보며 오른다.
9:50 전의 이씨들 묘역. 송전 철탑에서 전선에 10여명의 인부들이 매달려 있다. 바라보는데도 오금이
저린 높이에서 힘껏 줄을 당기며 거리낌없이 일하는 모습들이다. 떠들고 나서기 좋아하는 소란스런
자들이 아니라, 땀흘리며 묵묵히 일하는 이들이 진정한 애국자들이고 저들의 힘으로 대한민국이
오늘의 발전을 이룬 것이 아닐까?
10:00 송전철탑 건설을 위해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임도 옆 가시철조망 가에 심어진 탱자나무 울타리
밖에 떨어진 탱자를 몇 개씩 주웠다. 탱자가시를 보니 초임지의 추억이 떠오른다. 강가 초임지엔
물고기가 흔했고 맑은 물에 다슬기도 많이 잡혔었다. 냄비 가득 다슬기를 삶아놓고 탱자가시로
빼먹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고, 손을 쪽쪽 빨며 먹을 정도로 아욱을 넣어 끓인 국물맛도 일품
이었었다. 다슬기중에서도 물살이 센 여울에 붙어 사는 놈들이 더 맛이 좋았었다.
10:10 65번 송전철탑 좌측 임도를 따라 계속 진행.
10:15 임도를 버리고 우측 66번 송전철탑 아랫 쪽 산길로 들어선다. 이어서 파평윤씨들 무덤이
나타난다. 무덤 좌측으로 도로를 바라보며 내려간다. 차소리가 요란하다.
10:20 시멘트 포장길 옆에 승마연습장이 있고 시멘트 길 옆으로 왕복 4차선 29번 도로가 달린다.
‘서산, 홍성’방향으로 시멘트길을 따라 내려간다.
10:25 황곡마을 버스정류장, 마을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홍북교차로 아랫길을 지나 29번도로를 건넌다.
10:28 왕복2차선 포장길에서 ‘홍성민속박물관’, 골프연습장 쪽으로 도로를 따라 오른다.
10:33 국가보훈처지정 시설 ‘홍주병오의병주둔유지비’가 있는 하고개. 옛날에 홍주목사가 홍주읍내를
바라보기 위해 자주 올랐던 고개인데 홍주를 지나 서산으로 가는 행인들이 말과 소에게 풀을
먹이고 사람들은 한숨 돌리는 고개였다는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하우고개, 황우고개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좌측 산길을 오른다.
10:35 좌측으로 틀어 도로로 잘린 마루금 본길로 접어들어 오른다.
10:45 68번 송전철탑을 지남.
10:54 백월산 갈림길 임도 삼거리. 좌측으로 휘어진다.
10:55 공제선 벌목지역 안부. 마루금은 우로 휜다.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임도이다.
11:00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비포장 고개 살포쟁이고개를 넘어 오름길 진행. 옛날에 이 고개에서
죄인 또는 가축을 죽였다는데서 유래한 명칭으로 살포티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11:01 안동 장씨들 무덤을 지나 오른 쪽으로 틀어 오른다.
11:17 약 200여m 가파른 암봉길을 올라 백월산이 보이는 봉우리 도착. 정상에서 20여m를 내려서니
이정목 삼거리다. 벤취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지방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코스로 여겨진다.
‘백월산 정상 0.4km, 구황면사무소 2.2km’ 우측 백월산 정상 방향으로 진행.
11:20 억새가 하늘거리는 헬기장. 이정목 삼거리에서 약 50m 정도의 거리에 있다.
11:22 시멘트 포장길 이정목 지점. ‘백월산 정상 0.3km, 구황면사무소 2.3km’. 시멘트 포장길따라
좌측으로 오른다. 경기넘버를 단 스타렉스 승합차 옆에서 소풍을 온 것으로 보이는 한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다. 잠시 오르니 또 헬기장이다.
11:23 시멘트길을 30여m 오르다가 우측 나무계단으로 산길을 오른다.
11:30 돌을 넣어 콘크리트로 굳힌 돌탑 위에 무인 산불감시 설비가 있는 백월산(394.3m). 白月山
(日月山)이라고 오석에 새긴 정상석과 벤취도 있는 넓고 탁 트인 공터로 주변 조망이 좋은 곳이다.
연무가 낀 것이 아쉽다. 전방에 홍성시내가 내려다 보이는데 농촌도시인 이곳에도 고층 아파트
단지가 있다. 박순준님의 능금을 맛보며 잠시 숨을 돌린다. 좌측으로 산신각과 팔각정이 보인다.
11:45 휴식을 마치고 나무계단길을 내려간다.
11:48 청난사(淸難祠).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백월산(白月山)에 있는 사우(祠宇)로 1596년(선조 29)에
일어난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청난공신(淸難功臣) 5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청난공신은 3등으로 나눠지며, 1등 공신 홍가신(洪可臣), 2등 공신 박명현(朴明賢), 최호(崔湖), 3등
공신 신경행(辛景行), 임득의(林得義) 등 총 5인이며, 1604년에 영의정 이항복, 우의정 김명원의 제의에
의해 공신으로 책록(冊錄)되었다고 한다.
11:51 멋진 바위를 배경으로 세워진 팔각정. 팔각정 아래 ‘白月山告天祭壇’이 있고 철봉 등 운동 시설도
있다. 바위 아래엔 촛불을 켜고 기도한 흔적이 있다. 준비해온 떡, 과일, 김밥 등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정상부도 곁들이며 한담을 즐긴다.
12:22 점심식사를 마치고 출발. 바위 뒤편에 두갈래 길이 있는데 우측의 길이 마루금이다. 내리막은
급경사 바위 암릉 가는 로프길과 미끄러운 마사토 길이 이어진다. 마사에 떨어진 활엽수 낙엽이 무척
미끄럽다.
12:59 임도와 만나는 마을 위쪽 산길로 진행.
13:02 홍성군 홍북면 고개쉼터 앞 사거리 까치고개. 고개쉼터 건너 ‘생활 폐기물처리장’ 뒤편 도로를
따라 걷는다.
13:05 폐기물 처리장 입구에서 좌측 폐기물처리장 펜스 옆길로 진행한다.
13:11 폐기물 처리시설 펜스 끝지점 밋밋한 오름길.
13:15 소나무 조림지. 소나무를 제외한 나무들을 벌목하고 소나무도 간벌과 가지치기를 하여 관리하고
있으나 소나무의 상태는 썩 좋지 않다. 임도 구간이어서 걷기 편하다.
13:20 정맥은 우로 휜다.
13:30 갈림길. 정맥은 좌로 휜다. 바람이 세찬 지역이다.
13:46 나무꾼들이 이용했을 좁은 고갯길 넘어 오름.
13:51 산불이 발생했던 지역. 덩굴식물, 잡목 숲이 진행을 방해한다.
14:00 소나무 들은 산불에 넘어지고 타고 싸리나무 키작은 잡목이 무성한 구릉지역. 정맥은 우측으로
틀어 오른다. 아내가 빨갛게 익은 청미래 덩굴을 꺾어 들고 잡목숲을 힘들게 헤치고 왔기에 이 곳부터
내가 포터를 하기로 했다.
14:20 홍동산(309.8m). 대구산이좋아 모임이 나무에 붙인 코팅지는 거의 넝마가 되었고 빨간색으로
이름을 쓴 알미늄판 명찰의 글씨도 받침이 많이 지워졌다. 이곳 역시 조망이 좋은 곳이나 아직도
연무가 조망을 가리고 있다. 전방에 덕숭산-가야산 줄기가 보인다. 우측 내리막으로 진행한다.
14:47 정맥은 우로 틀어 내려간다.
15:05 잣나무 소나무 조림 숲을 내려서서 왕복 2차선 포장도로 가루실에 도착하여 정맥길 종료.
‘둔리 2리, 가루실길’ 이정표가 있다. 도로 좌측으로 가루실길을 오른다.
15:07 가루실길을 30여m 진행하여 수덕고개(육괴정) 도착. 멋진 보호수 느티나무 앞은 식당가다.
경기도 이천의 육괴정(六槐亭)은 기묘사화로 신진사류가 몰락한 후 낙향한 엄용순이 건립한 정자로,
정자 앞에 연못을 파고 6명의 선비가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데서 유래한 명칭인데, 이곳
육괴정은 6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었다는데서 이천의 육괴정의 명칭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산행후기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문턱인 날, 내일이 소설이건만 초가을처럼 포근하여 산행하기에 부담이 없는
날씨였다. 연무가 끼어 주변 조망이 좋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13km 정도로 짧은 거리이고 오늘의
최고봉이 394m의 백월산이다보니 시종일관 여유있게 진행하고 간식을 즐기는 시간도 넉넉하게 가졌다.
올곧고 기개높은 선비들을 배출한 충절의 고장에서 고압송전선에 매달린 인부들을 보면서 또 다른
애국의 모습을 느끼기도 했다.
일제시대 초기엔 결연하던 선각자들도 일제의 압력과 회유에 변절한 경우도 많았건만 백야장군과 만해
선사 같은 바위보다 단단한 충정이 배출될 수 있었던 것은 백월산의 정기였을까? 사방이 탁 트이고 주변
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백월산의 정기가 선각자들에게 예지를 불어넣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대간
정맥을 타다보면 숱한 고개와 멧부리를 지나게 되는데, 마루금에 얽힌 개인적인 사연 애환, 역사적인
사건 전설들, 개인과 국가의 운명을 가른 현장들을 되뇌어보면 어느 한 자락도 예사로운 구석이 없다.
저 산비탈 어딘가에서 이름도 알려지지않은 젊은이가 속절없이 스러졌는지, 또 어느 멧부리에서 건곤
일척의 결심이 굳어졌는지 지구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이슬방울처럼 짧디짧은 중생
들의 눈물과 땀방울이 무슨 의미였는지.... 그것도 시대와 인심의 격랑속에 해석과 평가가 뒤집어지기도
다반사이면서...
첫댓글 오롯이 되살아나는 역사의 한자락을 안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