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 인도 불교사
4. 무아無我냐? 비아非我냐?
1) 무아란?
무아無我란 ‘자기의 존재를 잊는다.’는 뜻이다. “망아忘我”나 “몰아沒我”의 의미로도 쓰이는데 무언가에 몰입할 때 자기 자신을 잊는 것을 말한다. “무아지경無我之境”에서 연상되듯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무아는 나의 부정을 의미한다.
불교에서의 무아(anattā, anātman)는 글자 그대로 ‘나[自我, attan, ātman]라는 존재는 없다’는 뜻이다. 변함없이 항상 존재하는 항상성의 자아(아트만ātman)를 믿는 브라만교(힌두교)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모든 개체 혹은 현상들은 생멸生滅하면서 변화하기 때문에, 나라고 할 만한 영원불멸의 본체나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개체를 이루는 요소들은 인연에 의해 일시적으로 모인 존재다.
예컨대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물질을 나타내는 색色, 감각의 작용의 수受, 인식 작용의 상想, 의지 작용의 행行, 마음 작용의 식識 등은 계속 변하므로[無常],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게 되는 것[無我]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사상으로부터 ‘제법무아諸法無我’가 유추되는 것이다. 붓다는 말한다.
비구들아, 색은 무상이다. 색을 생기게 하는 원인도, 연(조건)도 무상이다. 비구들아, 무상한 것에 의해 생긴 색이 어찌 항상 할 수 있겠는가.
비구들아, 수는 무상이다. 수를 생기게 하는 원인도 조건도 무상이다. 비구들아, 무상한 것에 의해 생긴 수가 어찌 항상 할 수 있겠는가.
비구들아, 상은 무상이다.… 행은 무상이다.… 식은 무상이다. 식을 생기게 하는 원인도 조건도 무상이다. 비구들아 무상한 것에 의해 생긴 식이 어찌 항상 할 수 있겠는가. (增谷文雄 지음, 홍사성 옮김,『근본불교 이해』 p. 104.)
붓다는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의 원인[因]과 조건[緣]이 모두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무상에 의해 생긴 색ㆍ수ㆍ상ㆍ행ㆍ식 또한 무상이라는 논리이다. 그리고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 무상이니, 그것으로 구성된 나 또한 무상한 존재가 되어, 무아無我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의 다섯 가지 요소, 오온(五蘊, pānca-kkhandhā)의 집합인 나는 과연 없는 것인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2) 무아의 원리原理
우선 ‘나’라는 존재는 연기에 의해서만 존재하므로, ‘나’라고 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없는 것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존재하기는 하는데, 연기에 의해 존재하므로, 어떤 조건에서만 일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독립적인 기능을 하는, 현상으로서의 실천 주체,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무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미린다 팡하 Milinda-pañh-a』 1 라는 책을 참고하자.『미린다 팡하』는 부처님 시대에 가까운 기원전 2세기 후반, 서북인도를 지배하던 미린다Milinda 왕과 인도의 유명한 불교 논사 나가세나Nāgasena가 만나 문답한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는 동서양이 만나 서로의 철학을 논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동東과 서西의 인생관과 종교관, 세계관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드문 자료이다. 그 뿐 아니라 붓다 사후 2~3세기 지난 시점에, 불교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책은 둘이 만나 통성명하는「이름에 관한 문답」으로부터 시작한다. (인용문에는 Nāgasena를 나아가세나로 표기되어 있다.)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를 향하여 질문을 시작했다.
『존자는 어떻게 하여 세상에 알려졌습니까.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대왕이여, 나는 나아가세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의 동료 수행자들은 나를 나아가세나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나에게 나아가세나(龍軍), 수우라세나(勇軍), 비이라세나(雄軍), 시잉하세나(獅子軍)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아가세나라는 이름은 명칭, 호칭, 가명, 통칭(通稱)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인격적 개체 - 즉 육체 속에 있는 영원불변한 것 - 는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徐景洙 譯, 現代佛敎新書 3,『미린다 팡하』 p. 41.)
존자는 ‘나아가세나’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아가세나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인격적 개체’는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인격적 개체란 ‘육체 속에 있는 영원불변한 것’이라 하고 있는데, 영구불변의 실체實體, 영원불멸의 본체이자 고정적 실체, 혹은 무상無常의 나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우파니샤드』와 베단타학파에서 말하는 생사를 넘어서 영원히 존재하는 실체, 아트만ātman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아트만은 영혼靈魂, 생기生氣를 의미하기도 하고, 아我, 개아個我, 진아眞我 등으로 번역된다. 인도의 정통적 철학의 여러 학파에 의해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영원불멸의 본체이다.『우파니샤드』철학자들은 아트만이 세상 전체에 펴져있는 우주적 영혼이자, 우주의 근본원리인 브라만과 궁극적으로 하나[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한다. 물론 불교에서는 불변의 실체인 아트만을 부정하고 무아론無我論을 제기하였고, 나아가세나 또한 이름을 통해 아트만을 부정하고 있다.
나아가세나는 불교의 무아론에 따라, 무상이므로 무아라는 등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그냥 이름을 물었을 뿐인데, 처음부터 거대 담론談論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미린다 왕은 좌중을 둘러보며 ‘나아가세나 존자가 이름 속에 내포된 인격적 개체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만일 인격적 개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대에게 의복과 음식과 침대와 질병에 쓰는 약물 등 필수품을 제공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또 그것을 받아서 사용하는 자는 누구 입니까. 계행(戒行)을 지키는 자, 수행(修行)에 힘쓰는 자, 수도(修道)한 결과 열반에 이르는 자, 살생(殺生)을 하는 자, 남의 것을 훔치는 자, 세속적인 욕망 때문에 바르지 못한 행위를 하는 자, 술을 마시는 자는 누구입니까. 또,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다섯 가지 역죄(逆罪 ․ 五無間業)를 짓는 자는 누구입니까. (徐景洙 譯, 現代佛敎新書 3,『미린다 팡하』 p. 42.)
만일 인격적 개체를 부정한다면, 밥 먹고 자고 수행하는, 그대는 누구인가라고 조목조목 따져 묻고 있다. 인격적 개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 앞에 있는 그대는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선종의 새벽, 달마를 향해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라고 묻는 양무제를 연상시킨다. 미린다 왕은 약간은 비하하는 어투로, 신경질적인 질문을 폭풍처럼 퍼붓기 시작한다.
그대는 말하기를「승단의 수행 비구들은 나를 나아가세나라 부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아가세나라고 불리우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존자여, 머리털이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대왕이여,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의 몸에 붙은 털이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손톱 ․ 살갗 ․ 살 ․ 힘줄 ․ 뼈 ․ 뼛골 ․ 콩팥 ․ 염통 ․ 간장 ․ 늑막 ․ 지라 ․ 폐 ․ 창자 ․ 창자막 ․ 위 ․ 똥 ․ 담즙 ․ 담 ․ 고름 ․ 피 ․ 땀 ․ 굳은 기름(脂肪) ․ 눈물 ․ 기름(膏),침 ․ 콧물 ․ 관절속의 액체(關節滑液) ․ 오줌 ․ 뇌들 중, 그 어느 것이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이들 전부가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나아가세나 존자는 그 어느 것도, 그것을 전부도 모두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존자여, 물질적인 형태(色)나, 느끼는 작용(受)이나, 표상의 작용(相)이나, 형성하는 작용(行)이나, 식별하는 작용(識)이 나아가세나입니까.』
존자는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들 색色 ․ 수受 ․ 상相 ․ 행行 ․ 식識을 모두 합친 것(五蘊)이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대왕.』
『그러면 오온五蘊을 제외한 어떤 것이 나아가세나입니까.』
나아가세나 존자는 여전히 아니라고 대답했다.
『존자여, 나는 그대에게 물을 수 있는 데까지 다 물어보았으나, 나아가세나를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나아가세나란 빈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있는 나아가세나는 어떤 자입니까. 존자여, 그대는「나아가세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씀하였습니다.』(徐景洙 譯, 現代佛敎新書 3,『미린다 팡하』 pp. 42~44.)
지금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지루하고 답답한 모습이지만, 초기 경전에서 자주 보이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것은 인도에서 유행하던 분석적分析的 토론 방식으로, 이때 뿐 아니라 싯다르타가 활동하던 시대 또한 분석적 방법이 성행하고 있었다. 싯다르타 역시 스스로 분석적 방법론자임을 자처하였는데, 본질을 파악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붓다의 사고 방법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분석적이다. 그 수제자인 사리푸타(舍利佛)도 ‘분별 설법’의 명수였다. 또 그 계보를 이어 받은 상좌부(Theravāda)는 “불교란 분별(분석)의 가르침이다(Sāsanaṁ vibhajjavādo).”라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연기(緣起)라 할 때, 그것은 존재의 양상을 관계성에서 포착하는 것이니까, 거기에 이르는 방법은 분석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는 무아(無我)가 주장되는 경우, 그것은 인간의 존재를 다섯 개의 요소 - 그것을 ‘오온(五蘊, skandha)’이라 한다 - 로 분석해 생각하도록 설명한다. (마쓰야 후미오 지음/이원섭 옮김, 알기쉬운 불교1『불교개론』 p. 161.)
초기 불교는 분별分別, 분석分析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지금도 남방불교는 분별의 가르침을 인정하고 유지하고 있다.) 아소카 왕 시대에도 분석적 방법론자만이 진정한 붓다의 제자로 인정받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대승불교에 오면 분위기가 바뀌어 분별의 가르침은 배척을 당한다. 직관적인 방법이 중시되면서 점차 무분별無分別의 가르침으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던 것이 중국 선종에 오면,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깨닫는 돈오頓悟가 강조되면서, 분별지가 아닌 직관의 “무분별지無分別智”가 당연시 된다.
초기불교에서는 분별지(分別智)를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전통을 계승한 세일론 상좌부는 불교를 ‘분별설(分別說, Vibhajjavāda)’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세일론 상좌부를 ‘분별설부(Vibhajjavādin)’라고도 한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분별지를 낮추어보는 측면이 강하다. 대승불교 중에서도 특히 중국에서 태동한 선불교에서는 분별지를 뛰어넘는 무분별지(無分別智)야말로 최고라고 주장한다. (李秀昌(摩聖),「상좌불교와 대승불교의 실천적 특성 비교」.)
근본불교는 무명을 타파하는 ‘지혜의 도’를 추구하면서 분석적 방법을 채택하였으나, 대승불교는 ‘신앙의 도’를 추구하면서 직관적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러던 것이 세월이 지나 후대로 내려오면 분석적인 방법은 “점수漸修”로 되었고, 직관적 방법은 “돈수頓修”로 정착하게 된다. 내용이 변한 것인가? 이름만 변한 것인가! 그냥 단순히 트렌드의 변화인가!
한편, 싯다르타는 분석론자였지만 인간의 사유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을 지킨다. 소위 “14무기(無記, avyākata)”라고 하는 것으로, 형이상학적 논의는 결론도 나지 않는 쓸데없는 논쟁이라고 보고, 제자들에게 그런 무의미한 논쟁보다는 실천을 강조하였다. 뚜렷하고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면 논의하지 않았으며, 제자들에게도 논의해서는 안 된다고 지도하였다.
다시 돌아와서, 미란다 왕은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존자를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나아가세나 역시 인격적 개체는 없다는 자신의 대답을 합리화하기 위해 분석적 방법을 동원 반격을 시도한다. 그 또한 이런 문답에는 달인의 경지에 올라 있던 사람으로, 기다렸다는 듯 똑같은 방법으로 추궁을 시작한다. 양무제가 달마를 향해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라고 물었을 때, 초조 달마達磨는 직관적으로 “모른다[不識]!”고 일축하고 자리를 뜬 것에 비하면 대단히 친절한 처사이다.
『대왕이여, 그대는 귀족 출신으로 호화롭게 자랐습니다. 만일 그대가 한낮 더위에 맨발로 뜨거운 땅이 나 모랫벌을 밟고 울퉁불퉁한 자갈 위를 걸어 왔다면 발을 상했을 것입니다. 몸은 피로하고 마음은 산란하여 온 몸에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도대체 그대는 걸어서 왔습니까. 아니면 탈 것으로 왔습니까.』
『존자여, 나는 걸어서 오지 않았습니다.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대왕이여, 그대가 수레를 타고 왔다면 무엇이 수레인가를 설명해주십시오. 수레의 채轅가 수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굴대(軸)가 수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퀴(輪)나, 차체(車體)나, 차틀(車棒)이나, 멍에(軛)나 밧줄이나 바퀴살(輻)이나 채찍(鞭)이 수레입니까.』
왕은 이들 모두를 아니라고 대답했다.
『대왕이여, 나는 그대에게 물을 수 있는 데까지 다 물어보았으나 수레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수레란 단지 빈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타고 왔다는 수레는 대체 무엇입니까. 그대는「수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씀한 셈이 됩니다. 그대는 전 인도에서 제일가는 임금님입니다. 무엇이 두려워서 거짓을 말씀했습니까.』
(중략)
미린다 왕은 존자에게 다시 말했다.
『존자여,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수레는 이들 모든 것, 즉 수레채 ․ 굴대 ․ 바퀴 ․ 차제 ․ 차틀 ․ 밧줄 ․ 멍에 ․ 바퀴살 ․ 채찍 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에 반연攀緣하여 <수레>라는 명칭이나 통칭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수레>라는 이름을 바로 파악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대가 나에게 질문한 모든 것, 즉 인체가 만들어 내는 서른세 가지 물질과 존재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五蘊를 반연하여 <나아가세나>라는 명칭이나 통칭이 생기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바지라 비구니는 세존 앞에서 이 같은 싯구를 읊은 일이 있습니다.』
마치 여러 부분이 모이므로
<수레>라는 말이 생기듯,
다섯 가지 구성 요소(五蘊)가 존재할 때
생명 있는 존재(有情)라는 이름도 생기노라.
『훌륭하십니다. 존자여, 정말 희귀합니다. 내가 그대에게 한 질문은 매우 어려웠습니다만 훌륭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만일, 부처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면 그대의 대답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잘 말씀하였습니다. 존자여, 정말 잘 말씀하였습니다.』(徐景洙 譯, 現代佛敎新書 3,『미린다 팡하』 pp. 44~47.)
나아가세나 존자도 같은 방식으로 문답을 이끌어 간다. 요약하면 수레가 모든 요소들이 모여 수레라고 불리듯이, 나 또한 모든 요소들이 모여 나아가세나라 불리므로, 나아가세나라는 이름으로 통칭하여 부를 뿐, 인격적 개체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나’라는 존재는 “총체적總體的으로 존재하는 가합假合의 존재”라는 것이다.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그리 중요한 논쟁거리로 보이지 않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충실하게 아트만을 부정하고 무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현대 과학에서 밝혀낸 원자의 세계에서 보면 낯설지 않은 개념일지 모르겠다. 무아의 개념은 이후 공空 사상으로 발전하는데,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현대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실로 탁견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신의 입자’ 힉스 입자2 의 발견으로 에너지(빛, 빅뱅)에서 질량이 생겨나는 과정 또한 실험적으로 밝혀졌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졌으며, 모든 존재는 같은 시작점으로부터 생겨나 생멸을 반복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해됐다고 해도 막상 실천 주체로서 자기의 존재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실재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때로 돌아가서, 실제로 존재하는 ‘나’를 붓다는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무아를 깨닫고 나서 싯다르타는,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였는가? 무아를 체득한 붓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역으로 무아의 개념에 접근해 보자.
3) 무아의 실체實體
원시경전인『법구경法句經, Dharmapāda』은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경으로, 실생활과 관계된 내용들을 주제별로 엮어 놓은 경이다. 빠알리어 Dharmapāda는 ‘진리dharma’의 ‘말씀pada’이란 뜻으로, 이 경의 제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1.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
2.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그림자가 그 주인을 따르듯이
3. ‘그는 나를 욕하고 상처 입혔다 나를 이기고 내 것을 빼앗았다’ 이러한 생각을 품고 있으면 미움이 가라앉지 않는다.
4. ‘그는 나를 욕하고 상처 입혔다 나를 이기고 내 것을 빼앗았다’ 이러한 생각을 품지 않으면 마침내 미움이 가라앉으리라.
5. 이 세상에서 원한은 원한에 위해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원한을 버릴 때에만 사라지나니 이것은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다.
6.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언젠가 죽어야 할 존재’임을 깨닫지 못하는 이가 있다 이것을 깨달으면 온갖 싸움이 사라질 것을
7.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보고 감각의 욕망을 억제하지 않으며 먹고 마시는 일에 절제가 없고 게을러서 정진하지 않는 사람은 악마가 그를 쉽게 정복한다.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넘어뜨리듯이
8. 더러운 것을 더럽게 보고 감각의 욕망을 잘 억제하며 먹고 마심에 절제가 있고 굳은 신념으로 정진하는 사람은 악마도 그를 정복할 수 없다. 바람이 바위산을 어찌할 수 없듯이
(법정스님 번역,『법구경』第1章.쌍서품(雙敍品) - 대구(對句)의 장 1. 첫 번째 가르침)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임을 전제前提하고 나서, 마음먹기에 따라서 괴로움과 즐거움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와 나’라는 공식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타인에 대해 원한을 갖지 말 것을 노래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는지를 말하고, 욕망을 억제하고 먹고 마시는 일에 절제하며, 열심히 수행 정진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럼『법구경』과 함께 붓다의 육성에 가장 가깝다는『숫타니 파타 Suttanipāta』를 보자. 이 경전은 수많은 경전 중에서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아소카 왕 이전에 성립된 경전이다.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불타 석가모니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빠알리어 suttanipāta의 sutta는 경經, nipāta는 집성集成, 즉 모음이라는 뜻이다.
1. 뱀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약으로 다스리듯, 치미는 화를 삭이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중략)
18.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습니다. 마히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내 움막 지붕에는 이엉을 덮어 놓았고, 집안에는 불을 지펴 놓았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19.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는 성내지 않고 마음의 끈질긴 미혹도 벗어버렸다.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쉬리라. 내 움막에는 아무 것도 걸쳐 놓지 않았고, 탐욕의 불은 남김없이 꺼 버렸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중략)
35.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고, 살아 있는 그 어느 것도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6. 만남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 사랑으로부터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중략)
69. 홀로 앉아 명상하고 모든 일에 항상 이치와 법도에 맞도록 행동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근심인지 똑똑히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중략)
71.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법정 옮김, 불교 최초의 경전『숫타니파타』 pp. 16~34.)
여기서도 붓다의 음성은 일관된다. 내면으로부터 올라오는 화를 삭이고, 모든 일에 게으르지 않게 준비하며, 폭력을 쓰지 말고,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모든 욕망을 버리라는 평범한 말들이다. 정신을 잘 가다듬어 방일放逸함을 억제하고, 오로지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면서, 사랑(여기서는 애愛보다는 갈애渴愛의 의미가 더 크다)을 멀리하고 명상의 생활로 마음의 평안을 얻으라는 가르침이다.
초기 경전에서 석가모니는 단순하고 소박한 형식으로 인간으로서 가야할 길을 간결하고 평범한 말로 그리고 무심하게 술회하고 있다. 이면에 깔려있는 사상은 오로지 좌선과 명상의 생활이며, ‘불타가 그의 제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결국 자제와 명상에 의한 내면적인 평안의 생활’일 뿐이다. 후기 경전에서 보이는 교학적인 교리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정리하자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하는 무아는 자기를 망각하거나 자기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다. 수행의 결과 얻어지는 황홀한 경지도 아니다. 자기의 근본을 얻기 위해 자기를 잘 조절하라는 것이며, 자기의 인간 형성을 위해 자기의 모든 노력을 집중시키라는 것이다.(增谷文雄 지음, 홍사성 옮김,『근본불교 이해』 p. 120.) 결코 신비적인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잘 조어調御해서 이상적인 인간성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무아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숭산 스님은 그것을 실체와 진리를 깨달아 순간순간 바른 상황, 바른 관계를 깨달아 바른 실천을 하는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스님이 말하는 ‘즉여卽如’의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본래 하나의 인간형성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범부인 인간이 자기의 인간을 잘 조어하고 형성해서 끝내 부처님이 가르친 이상적 인간성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것이 불교의 ‘전도정全道程’인 것이다. 이 길은 요즘말로 표현한다면 자기 확립의 길이다. 결코 자기망각의 길도 아니고 자기 압살의 길도 아니다. 그런 것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먼 것이다. (增谷文雄 지음, 홍사성 옮김,『근본불교 이해』 p. 120.)
자기를 잘 다스려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며 바르게 살라는 것[諸惡 莫作 衆善 奉行 是諸佛敎]이다. 윤리시간에 배운 내용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윤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로, 윤리학Ethics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 또한 ‘선한 삶’이기 때문이다.
무작정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고, 깊은 사색을 통해 그런 이치를 발견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게 하라도 끊임없이 설득하고 있다. 물론 그 구조를 터득했다면 의심 없이 무심히 그렇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선종 조사들이 말하는 ‘평상심시도의 삶’이 이와 같으리라.
4) 이타적인 무아
여기서 한 가지 더 언급할 것은『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말리末利」경에 나오는 파세나디 왕의 이야기다. 어느 날 왕은 왕비와 함께 눈 덮인 히말라야의 영봉靈峰들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자기에게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무엇일까?”라는 상념想念에 빠진다. 그리고 이러한 장관보다도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왕비도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확인하였지만, 왕은 문득 그러한 생각이 붓다의 평소에 가르침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불안을 느낀 왕은 말을 달려 붓다를 찾아가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묻는다. 그러자 붓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는다.
마음을 다 기울여 곳곳을 왔다 갔다 하여도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니,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면 안 되리.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3:8「말리末利」(향산 이병두 옮김,『The Udana自說經』「5. 소나 품(Sona vagga)」5-1. 말리카경(Mallikasutta)에서 인용).)
붓다는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만, 그러므로 해서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자기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대답이다.
무아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과 나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되고, 자연스레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게 된다. 이를테면 애욕과 증오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덕이는 나를 냉철하게 인식하게 되면, 나에게 내가 소중하듯이 그에게도 그가 소중할 것이라는 사실을 바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增谷文雄 著/李元燮 譯,『阿含經 이야기』 p. 298.)
불교는 무아(無我)를 가르친다. 그러나 자기에게 무관심하여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기만을 지나치게 크게 해석하여 다른 사람은 어떠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지 말라고 이르고 있는 것뿐이다. 자기를 소중히 하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의 자기도 소중히 하는 것이 되는 그런 자기는, 이미 서로 대립함으로써 아귀다툼하는 자기의 경지는 넘어서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쪽의 이익을 위해 다른 한 쪽이 희생되어야 하는 자기는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서로 도와 가는 것에 의해서 실현되는 자기가 되어야 한다. 이런 이타적(利他的) 실천 윤리의 규범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무아의 사상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이시카미 요시오 지음/이원섭 옮김, 알기 쉬운 불교5『미란타 왕문경』 p. 30.)
하늘이 무너져도 인간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탐욕과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생명의 DNA 자체가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무명의 삶이다. 그런 무명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연기적 존재임을 깨달아 무아를 생활화해야 한다. 자기의 생각이 옳으면 남의 생각도 옳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야 하고,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려면 남의 주장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모두가 같이 사는 사회이기에, 자기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들도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는데서 ‘불해不害(아힘사ahimsa)’의 덕목이 생겨나는 것이다.
5) 무아無我냐? 비아非我냐?
지금까지 불교를 대표하는 교리 중에 하나인 ‘무아無我’에 대해 살펴보았다. 무아란 무엇인가? 진정한 무아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아 속에 숨겨진 사상들을 알아 보기위해 초기경전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무아, 즉 ‘나[自我, ātman]라는 존재는 없다’하고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가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얻는가?’ 하는 방법과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기 부정否定을 통해 무아를 실현하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되고, 자기를 초월하여 새롭고 커다란 자아를 구현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아無我’는 붓다의 말이 아니라는 주장에 눈길이 간다.
19세기 빠알리어(팔리어) 불교 경전이 나타나면서 초기경전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는데, 연구 결과 붓다는 어디에서도 ‘내가 아니라고 했지[非我]’ ‘내가 없다[無我]’고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붓다는 무아 같이 자신을 부정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초기 경전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참고로, 인도에서 암송暗誦되던 부처님 말씀은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가는데, 그중 한쪽은 산을 넘어 중국으로 갔고[北傳], 한쪽은 바다를 건너 스리랑카로 간다[南傳]. 이들은 문자화가 이루어지면서 스리랑카에는 빠알리Pāli어로 된 니까야Nikāya로 남았고, 이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Sanskrit어 경전은 중국으로 전해져『아함경阿含經』이 되었다.『아함경』의 아함阿含은 아가마āgama의 음사로 ‘전승傳承’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불교경전의 번역은 기원 전후 시기 이루어진다. 후한後漢 명제明帝 영명永平 10년(A.D. 67년)에, 대월씨국大越氏國에서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낙양에 와서 42장경을 번역한 것이 처음이다. 이어 남북조 시대 불교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이 시기 범어와 중국어에 능통하였던 인도승 구마라습(鳩摩羅什, 344 ~ 413)이 행한 역경譯經사업 덕분이다. 그가 번역한 경론經論은 모두 74부 384권에 달하는데, 유려한 문체로 경전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그를 기점으로 이전 번역을 고역古譯으로 분류할 정도다. 이후 역경 사업은 더욱 본격화하여 유송(劉宋, 420-479)시대 인도승인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Guabhadra)는 여러 나라를 거쳐 중국으로 와 역경사업에 종사한다. 435년에서 443년 사이, 양도楊都의 와관사瓦官寺에서『잡아함경雜阿含經』을 번역하게 된다.
초기경전 중『잡아함경』은 빠알리어 경전으로는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nikāya, 相應部經典)에 해당된다. 아함4부阿含四部 중에서도 특히 짧은 경들을 모아 놓은 경전으로, 부처님과 여러 제자들의 소박하고 진솔한 인간적인 모습과 불교사상의 원초적인 모습 등을 조망해 볼 수 있는 경이다. 학자들은 이 경이 부파불교 시대 이전에 성립되었다고 보는데, 이후 성립된 다른 경전은 물론이거니와『아함경』중에서도 가장 원시적인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체계화體系化나 논리화論理化가 이루어지지 않은 곳으로 보아, 붓다의 친설親設에 가장 가깝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전에는 고, 공, 무상, 무아, 팔정도 등의 교리가 아주 간단한 형태로 들어 있는데, 그중 무상과 무아 부분을 보자.
1. 무상경(無常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色)은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正觀]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受)․상(想)․행(行)․식(識)도 또한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아, 마음이 해탈한 사람은 만일 스스로 증득하고자 하면 곧 스스로 증득할 수 있으니, 이른바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
이 경은 무상함을 바르게 보는 것이 옳은 수행이고, 수행의 목적은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오온의 무상함을 바르게 관찰하면[正觀],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生厭離], 이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는데[喜貪盡],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한다. 그리고 마음이 해탈한 사람[心解脫]은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我生已盡], 범행은 이미 섰으며[梵行已立], 할 일은 이미 마쳐[所作已作],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不受後有]는 것을 스스로 안다[自知]고 하고 있다.
이어 무상을 여실히 보는 것이[如觀無常], 괴로움과 공함, 그리고 내가 아님을 여실히 보는 것과 같다[苦, 空, 非我亦復如是時]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非我亦復如是時’, 즉 ‘비아非我’라고 했지, ‘무아無我’, 즉, 내가 없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無常한 것은 모두 我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我는 常한 것이라는 迂廻的(우회적)인 표현으로 看做(간주)할 수도 있다. 더불어 我는 情緖的(정서적)으로 樂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常=樂=我(상=낙=아)라고 하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는 언급하지 않고 단지 無常(무상)한 五蘊(오온)은 我(아)가 아니라고만 한다. (崔晶圭 (Choi, Jeong-kyu), 고려대 강사, 「無我에 대한 一考察, About Anatma - ‘非’의 論理」 .)
빠알리어 경전에도 ‘태어남은 이미 다했고[出生已盡], 범행[계행]은 이미 완성되었으며[梵行已完成], 해야 할 일을 이미 다했으니[應該作的已作], 다시는 이렇게 윤회하지 않는다[不再有這樣[輪迴]的狀態了]라고 분명히 안다[他了知]’라고 하고 있어 비슷한 내용이다. 참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온과 동일시될 수 없는 어떤 존재를 설정하고, 그것을 설명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윤회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다음을 보자.
9. 염리경(厭離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我]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我所]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상․행․식 또한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거룩한 제자들아, 이렇게 관찰하면 그는 곧 색을 싫어하고, 수․상․행․식을 싫어하게 되며, 싫어하기 때문에 즐거워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게 된다. 해탈하면 진실한 지혜가 생기나니, 이른바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
여기서도 색을 비롯한 수·상·행·식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고[無常即苦],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苦即非我],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非我者亦非我所]’라고 하고 있다. 이 경에서는 '내가 아니므로 내 것도 아니다'라고 소유所有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無常(무상)은 情緖的(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如實(여실)한 觀(관)이다. 반면에 苦는 情緖的(정서적)인 것이다. 無常한 것을 常한 我로 보고 所有 取著(취저)하는 속에서 苦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如實(여실)한 觀과 無常(무상)한 情緖(정서) 사이의 乖離(괴리)를 脫離(탈리)하고자 하는 것, 즉 乖離(괴리)라고 하는 束縛(속박)으로부터의 解脫(해탈)이 非我(비아)가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非我는 常한 我가 아닌 無常한 五蘊의 我를 常한 我로 보고 그것에 取著(취저)하는 世間의 마음을 矯正(교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常한 我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無常한 五蘊(오온)의 我는 분명히 克服(극복)의 對象(대상)이다. (崔晶圭 (Choi, Jeong-kyu), 고려대 강사, 「無我에 대한 一考察, About Anatma - ‘非’의 論理」 .)
복잡한 것 같지만 무상한 나를 항상恒常한 나로, 무상한 나의 것을 항상한 나의 것으로 착각하는 속에서 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 ‘오온의 나’와 ‘나의 소유물’이지 ‘나’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비아경」을 보자.
17. 비아경(非我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신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간략히 법을 말씀하여 주소서. 저는 그 법을 들은 뒤에 마땅히 홀로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하면서 방일하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선남자(善男子)들이 출가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서 믿음으로 집에서 집 아닌 데로 출가한 목적대로, 위없는 범행을 완전히 이루고 현세에서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겠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네가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법의 요점을 말씀하여 주소서. 저는 그 간략히 말씀하시는 법에서 그 뜻을 자세히 이해하고, 마땅히 홀로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하면서 방일하지 않겠습니다.……(내지)……(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겠습니다’라고, 네가 이렇게 말하였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잘 사유하고 기억하라. 내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비구야, 너에게 주어지지 않은 법[非汝所應之法]은 마땅히 빨리 끊어 버려야 한다. 그런 법을 끊어 버리면 바른 이치가 넉넉하여 오랜 세월 동안 안락하리라.”
이 때 그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미 알았습니다. 선서시여, 이미 알았습니다.”3
(중략)
그 때 그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꾸준히 힘써 닦고 익히면서 방일하지 않았고, 꾸준히 힘써 닦고 익히면서 방일하지 않은 뒤에 이렇게 사유하였다. ‘선남자들이 출가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서 믿음으로 집에서 집 아닌 데로 출가한 목적대로……(내지)……(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았다.’
이 때 그 비구는 아라한이 되어 마음이 해탈하였다.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
이 경에서는 한 사람의 비구를 등장시켜, 앞에서 말한 오온은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며, 괴로움은 곧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방일하지 않고 실천 수행하여, 해탈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도 결론은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으로 ‘마음은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었다[心得解脫]’고 설하고 있다. 이 생에서는 마음의 해탈을 얻었고, 내생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취지다.
부처님 재세 이전부터 인도사상계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無智(무명無明), 무명으로부터 기인하는 고苦, 고로 점철된 윤회輪廻, 그리고 윤회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붓다는 이 문제를 해결했고, 와아! 그 해결 방법을 반복적으로 계속 말하고 있다. 이 내용은 후대에도 이어져『화엄경華嚴經』등에서 말하는 대승불교의 수행단계인 신信, 해解, 행行, 증證의 체계, 즉 ‘신심을 내어 사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바르게 실천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과도 통한다. 다시 말해 무상-고-무아의 그 기조基調는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나를 부정하는 ‘무아’보다는 내가 아니라는 ‘비아’가 더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나[attā, attan, ātman]의 부정어인 anattā(빠알리어)와 anātman(산스크리트어)이 한역漢譯이 되면서, 때에 따라 곳에 따라 ‘무아無我’ 또는 ‘비아非我’로 각기 다르게 번역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함경』의 번역자인 구나발타라 또한 경 초반에는 ‘비아’만을 쓰다가 점점 ‘무아’와 ‘비아’를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무아’ 보다는 ‘비아’를 더 많이 사용하였다. 근래 들어 빠알리어의 한역본인 상응부경전은 거의 무아로 번역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무아’ 와 ‘비아’라는 용어는 다만 번역자의 견해이자 선택사항이었던 것인가? 어느 표현이 원어에 가까운가?
이 상황에 대해 알기위해서는 당시 인도의 상캬Sāṃkhya 학파에서의 아我의 개념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불교의 철학적 기초가 상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상캬 철학에서 아의 개념을 파악하므로 써 불교에서의 무아의 개념 또한 유추해 볼 수 있다.
‘무아’의 원어인 anātman 또는 anattan은 ‘非我’라고도 번역되는데, 상카설에서 무아의 관념이 발견된다고 주장할 경우엔 무아를 非我라고 이해한 입장임을 먼저 지적해 둔다. 사실 불교의 무아사상은 대승불교에서 空과 諸法實相으로 이어지는 사고의 推移가 있었고, 무아라는 말 자체의 본래의 의미는 ‘非我’임이 지적되어 있다. (鄭承碩 著, 민족사 학술총서 22『인도의 이원론과 불교, 인도 상캬철학의 전변설』 p. 87.)
그렇다. 불교의 무아사상은 대승불교에 와서 공空과 제법실상諸法實相으로 연결되므로 인해, 무아가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을 뿐 실재의 뜻은 비아라는 것이다. 이유는 있었다.
6) 비아非我, 나를 찾는 여정
인도사상사의 흐름에서 보면, 불교의 무아사상은 상캬 철학에서 왔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우파니샤드Upanishads의 중심철학은 아론(我論, atma-vada)이고, 불교는 무아론(無我論, anatma-vada)이기 때문에, 일견 서로 반대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파니샤드의 ‘아트만’과 불교의 ‘아’는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차이라면 초기불교에서는 아트만의 존재를 말하지 않고, 이를 수정한 실천적實踐的, 윤리적倫理的 아我, 이를테면 이론적 비아론非我論으로 아트만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우빠니샤드는 아뜨만을 대상화하여 직접 言明(언명)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하고 있지만, 불교는 ‘자기 자신’을 개념화하거나 대상화하여 摘示(적시)하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우빠니샤드는 아뜨만론으로, 불교는 無我論(무아론)으로 지칭되고 있지만, 불교는 我(아)의 有無(유무)에 대해서는 沈默(심묵)의 言語(언어)로 답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점은 우빠니샤드에서 解脫(해탈)이라고 할 수 있는 아뜨만의 성취와 佛敎의 解脫을 비교하기 곤란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非我(비아)를 주장하면서 ‘初期佛敎(초기불교)에서는 결코 ‘아뜨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빠니샤드 등의 사상과 상당히 밀접한 연관을 갖고서 독자적인 實踐的(실천적) · 倫理的(윤리적) 아뜨만론을 전개하고 있다. 단, 우빠니샤드 철학이 아뜨만을 형이상학적 실체로 보고 있는데 대하여 불교는 이와 같은 견해를 확실히 거부한다.’고 하는 中村元(중촌원)의 견해는 '非(비)'의 論理性(논리성)을 간과한 표현이다. 즉 우빠니샤드와의 관련성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實踐的 · 倫理的(윤리적) 아뜨만론'이라고 하는 표현은 '非'의 論理에 따라 '實踐的(실천적) · 倫理的(윤리적) · 理論的 非我論(이론적 비아론)'이라고 수정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崔晶圭 (Choi, Jeong-kyu), 고려대 강사, 「無我에 대한 一考察, About Anatma - ‘非’의 論理」 .)
다시 말해 불교는 아我의 유무有無에 대해서는 침묵沈默하면서, 실천적, 윤리적, 이론적 비아론의 입장에서 아트만론을 전개한다. 나를 규정하지 않으면서, 실천적인 나, 연기하는 나는 인정하고 있으면서 무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순 때문에 ‘무아’ 대신 ‘비아’를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 영국의 빠알리어 연구자 리스 데이비스 여사와 일본의 중촌원中村元의 견해를 참고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다.
불교는 我의 有無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無記(무기)의 입장을 고수하려 하고 있지만 우빠니샤드의 아뜨만과 불교의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말을 비교해 볼 때, 前者(전자)는 이해, 즉 知的(지적)인 측면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반면에 後者(후자)는 세간의 有無를 떠난 緣起觀(연기관)의 이해에 바탕을 둔 實踐(실천), 즉 體得(체득)에 초점을 맞추는 進一步(진일보)한 面貌(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我가 없다고 하는 ‘無’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世間(세간)의 五蘊(오온)은 我(아)가 ‘아니다’라고 하는 緣起觀(연기관)에 따른 ‘非’의 논리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불교를 無我論(무아론)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철학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빠니샤드의 아뜨만론과 불교의 非我論(비아론:無我論)의 깊이 있는 비교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해를 가져올 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崔晶圭 (Choi, Jeong-kyu), 고려대 강사, 「無我에 대한 一考察, About Anatma - ‘非’의 論理」 .)
무아가 내가 없다는 ‘무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온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의 ‘비非’, 연기에 의한 나는 내가 아니라는 ‘비非’라는 결론이다. 그러므로 불교를 무아론無我論이라고 하는 것은, 우빠니샤드의 아뜨만론과 불교의 비아론非我論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럼 왜 비아는 무아가 되었는가? 왜 무아라고 하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수용되었으며, 불교 기초 교리인 ‘삼법인三法印’에도 속하게 되었는가? ‘무無’와 ‘비非’는 “없다”와 “아니다”로 엄연히 다른데, 왜 구분되지 않고 같이 쓰이는가?
거기에 대해 논자는 ‘비非’의 논리論理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중국인의 이해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말한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될 당시 중국인이 ‘비非’를 바탕으로 한 불교의 ‘실천적實踐的 이론적理論的 공空’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붓다 사후 100년이 지나 제2차 결집으로, 교단은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로 분열한다. 또 약 100년 동안에 인원이 많은 대중부는 여러 갈래로 분열하였고, 이후 또 약 100년 동안 상좌부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18개 부파가 새로이 성립된다. 근본 2부인 상좌부와 대중부, 그리고 분파分派 18부 등, 소승 20부로 나누어져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자 각 부파는 각파의 권위를 세우고, 자기들이 정통임을 증명하기 위해 종래의 성전聖典을 다시 편찬 집대성하게 된다. 경전들을 각파의 시각으로 해석하여 주석을 달고 정리 분류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 노력의 결과가 아비달마(阿毘達磨/阿鼻達磨, Abhidharma)라는 논서論書다.
부파불교 시대의 각 부파는 아함의 교법(dharma)에 대해서 전문적인 연구를 행하였다. 석존의 교설은 사람들의 근기를 살펴 그에 알맞은 법을 설해 갔으므로 언뜻 보기에는 산만하고 단편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이제 그러한 교설을 분석하여 체계화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부파불교 시대의 그러한 연구를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 교학이라고 부른다. '교법(敎法, dharma)에 대한 (abhi-)' 연구라는 뜻에서 '대법(對法)'이라고도 번역된다. 뿐만 아니라, 각 부파는 자신의 아비달마 교학의 성과를 결집하여, 경(sutra)·율(vinya)과 함께 성전으로서 간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을 경(經)·율(律)·론(論)의 삼장(三藏, tri-pitaka)이라고 하여, 부파불교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고익진 지음,『불교의 체계적 이해』 p. 73. )
그런데 이는 한편으로는 불교학의 발전이기도 하였지만, 부처님의 참 뜻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계기도 된다. 석존의 교설을 아함에 한정시키고, 번쇄한 훈고학적 해석으로 그것을 더욱 난해하게 하였으며, 아함을 전승하는 과정에서 점차 독자적인 해석을 가해 어느 사이 부처님이 가르친 내용과는 상당한 간격이 생기게 되었다. 개념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용어들로 정의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붓다의 교설과 모순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무아설 또한 이때부터 하나의 진리명제로 정립되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교설을 숫자에 따라 삼법인, 사제, 육근, 육경, 팔정도, 12연기 식으로 숫자적인 개념으로 정리하다보니 구조적으로 무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파불교의 이러한 아비달마 교학은 아함의 교설을 체계화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지만, 반면에 석존의 교설을 아함에 한정시키고 번쇄한 훈고학적 해석으로 그것을 더욱 난해하고 무미건조한 불교로 만들어 갔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무위열반(無爲涅槃)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이상적인 인간상은 그러한 열반(涅槃)을 증득하는 아라한(arhat)으로 인식되었다. 전문적으로 교학을 연구하여 철저하게 수행하는 출가승이 아니고는 이제 불교를 제대로 행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고익진 지음,『불교의 체계적 이해』 p. 73.)
이는 소승불교를 배척하여 일어난 대승불교에 까지 이어진다. 대승은 그들 나름대로 부처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심화시킨 것이라고 하지만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아설이 부처님 교설이 아니라고 확정할 수도 없는 것이 아함에 기반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대승 또한 이론적 근거는 아함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무아론은 후대 논사들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개념으로, 앞에서 살펴본 대로 붓다의 말씀과는 거리가 있게 되었다. 무아론이 하나의 기본교리로 정의되면서, 불교는 윤회나 업의 주체인 자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자업자득의 주체를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윤회와 관련한 불교교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수행을 통해 완성해야 할 어떤 “의식의 존재”를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아의 입장에서는 내가 생각한다고도, 내가 깨달았다고도, 업이나 윤회를 말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불교는 과학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유일한 종교라는 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평을 들을 정도로 불교교리는 합리적이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론(無我論)은 깊은 깨침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척 곤혹스럽게 들리는 말이다. 불교가 업(業, Karma)과 윤회(輪廻)를 말하고 인과응보와 사람의 도덕적 책임을 말하면서 영원한 자아(自我)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에게는 이러한 주장이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받아드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금생에 선행을 하여 내생에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불교의 목표는 아니지만 육도 윤회(六道 輪廻)는 불교적 윤리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을 존재론적으로 보는 한 무아론은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익진 지음,『불교의 체계적 이해』 p. 73.)
나를 부정하지 않는 것은『아함경』뿐 아니라 여러 경전들에서도 보인다. 예컨대『열반경』에서 “진리를 등불삼고 자신을 등불 삼으라[法燈明 自燈明].”라고 하였다든지,『법구경』에서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이고, 자기야말로 자신의 의지할 곳이니,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하고 현명하게 다루라[我自爲我 計無有我 故當損我 調乃爲賢].”고 한 것을 보면, 분명히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아가 바로 모든 삶과 수행의 핵심 주체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 사이에도 모순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에둘러 마음[心]이라고 해도 모순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몸과 마음을 아우르는 오온을 부정해야 하므로 수 ․ 상 ․ 행 ․ 식에 해당하는 마음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 모순을 타파하기위해 공空이니, 唯識이니, 아뢰야식阿羅耶識이니, 여래장如來藏이니, 혹은 진여니 불성佛性이니 하는 개념들을 개발하였지만, 근본적인 해결에는 이를 수 없었다. 오히려 너무 의식에 집중하다보니 관념론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복잡한 이론들만 양산해 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선종에 이르러 모든 사고를 오픈하였을 뿐 아니라, 주인공主人公이니, 평상심平常心이니, 무위진인無位眞人이니 하며 공공연하게 실천적 주체인 인간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포장이 조금 현란했을 뿐, 부처님의 사상이나 부처님 교리의 원 뜻은 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청 돌아온 느낌이지만 무아는 자기가 “없는”이 아닌 “아닌”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것이 원래의 뜻에 가깝기도 하지만 나, 즉 자기에 대한 논란 또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선에서 말하는 본래의 자기, 즉 선종에서 말하는 “본래면목本來面目”에 부합할 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그런 과정이 자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자기에 대한 모호함도 걷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무아는 비아로부터 시작된 나에 대한 견해를 더욱 다양하고 풍성하게 한 측면이 있게 된 것이다. 조금 번거로운 면도 없지 않지만 무아론은 소승에서 대승을 모두 아우르는 “오묘奧妙”한 용어가 된 것이다.
불교의 현실 판단은 이 무아설(an-ātma-vāda)에 이르러 일단락을 이루는데, 이것은 인도 정통파 철학 사상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아트만 사상(ātma-vāda)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무아설은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입장으로서 인도 철학사 가운데 이채를 띤 사상이라고 평가됨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의 이 무아설에 대해 나의 절대적인 부정이나 참다운 나의 탐구를 배격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그러한 오해가 발생할 수가 있으니, 석가모니의 재세 시에 벌써 그런 예를 볼 수가 있다. “만일 일체법이 무아요 일체행이 공적空寂하다면 그 중에 어떤 나가 있어서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본다고 말하고 있는가?”(잡아함경 권10) 나가 없다는 것이 불가하다는 견해이다. (고익진 지음,『불교의 체계적 이해』 p. 35.)
불교의 무아설은 나를 찾게 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 아닌 것을 나로 착각하고 있다면, 참다운 나는 이러한 착각의 부정을 통해서만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무아설이 나에 대한 절대적인 부정이 아니라면 무아는 어디까지 나를 부정하는 것인가? 그런 나의 실체는 무엇인가? 내가 없다면 무엇이 있다는 것이냐? 붓다 재세 시에도 이런 질문은 있었고 여기에 대해 답변도 있었다. 붓다의 제자 게마差摩는 ‘나는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친구들이여, 내가 <나는 있다>라고 말한 것은 육체를 가리켜 나[我]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또 나의 각이나 의식을 가리켜 한 말고 아니다. 혹은 그런 것들을 떠나서 별도로 내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친구들이여, 예를 들면 그것은 파아돈마(鉢曇摩)나 푼다리케(分陀利葦) 꽃 향기와 같은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꽃잎에 향기가 있다고 말했다면 옳겠는가, 또 줄기에 향기가 있다고 말했다면 옳겠는가, 또 꽃술에 향기가 있다고 말했다면 옳겠는가, 결국 꽃에 향기가 있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육체가 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감각이나 의식을 나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혹은 그것들을 떠나서 별도로 나의 본질이 있다는 뜻도 아니다. 나는 그런 것들의 통일된 형태를 <나[我]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마쓰다니 후미오 / 장순용 옮김, 다르마 총서3『붓다의 가르침』 p. 123.)
1. 밀린다팡하(Milinda-paṅha)란 “밀린다왕의 물음”라는 뜻이다. 기원전 2세기경 서북 인도를 지배한 그리스의 메난드로스(Menandros, Milinda, 彌蘭陀)왕과 인도 고승 나가세나(Nagasena, 那先) 와의 대론서(對論書)이다. 밀린다(Milinda, 彌蘭陀)왕은 서기전 150년경 서북 인도를 지배한 희랍의 메난드로스(Menadros)왕을 가리킨다. 철학적인 소양을 가진 이 그리스왕이 당시의 불교 고승인 나가세나(Nagasena, 那先)에게 불교의 진리에 관해 대론(對論)한 내용이 이 경전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나가세나는 불교철학 전반에 걸친 밀린다왕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해 난해한 전문술어를 쓰지 않으면서 풍부한 비유를 활용하여 불교의 근본입장을 명쾌하게 대변하고 있다. 텍스트에서 다루어진 중심 주제는 크게 ① 인격적 개체의 구조와 영혼의 문제, 윤회의 주체와 인과응보의 원리, ② 불교의 독자적인 지식론, 심리현상, ③ 불타론을 중심으로 해탈과 열반을 향한 실천수행론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실제로 불교의 중심 주제를 거의 빠짐없이 다루고 있다. 대론서의 특성 때문이겠지만 소위 소승불교 일반의 번쇄한 교학 대신 불교의 실천 수행적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승불교의 흥기를 앞둔 시대적 특성을 보여주는 논서로 평가된다.[밀린다팡하 [Milinda-paṅha, Sūtra on the Questions of King Miliṇḍa, 那先比丘經]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미란타왕문경彌蘭陀王問經』으로 불리어왔는데, 이 한역본은『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이다.
2. 1960년대 이후 입자 물리학에서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와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이를 설명하는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 성립되었다. 모든 물질은 6개의 중입자(쿼크)와 6개의 경입자(렙톤), 그리고 이들의 반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들 입자 사이에는 네 가지 기본 힘(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이 존재한다. 표준 모형에 따르면 네 가지 힘에는 각각의 힘을 매개하는 입자가 있는데, 중력을 매개하는 중력자,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광자, 약력을 매개하는 W와 Z입자, 강력을 매개하는 글루온이 그것이다. 이들 입자들을 게이지 입자라고 하며, 대칭성을 만족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필요하며, 실험적으로 존재함이 밝혀졌다. 그러나 게이지이론에서 말하는 입자들은 질량이 없다. 따라서 현대 입자물리학에서는 힉스 메커니즘이라는 가설을 도입하여,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힉스 입자는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입자이다. 표준 모형에 의하면 힉스 입자는 스핀이 없고, 전기적 특성이나 색전하(color charge)를 갖지 않는 불안정 입자로서 빠른 속도로 붕괴한다. 힉스 입자는 이론물리학자 힉스(P.W. Higgs, 영국)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으며, 그 존재가 질량의 근원과 우주 생성의 비밀을 밝혀낼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신의 입자(god particle)’라고 불린다. 자연 속에서 관찰되지 않기 때문에 입자 가속기로 입자를 충돌시켜 힉스 입자의 존재를 밝히는 실험이 진행된 바 있는데,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의 ‘대형 강입자 충돌형 가속기(LHC)’가 대표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힉스입자 [Higgs boson] (두산백과)) 2013년 10월 CERN이 힉스입자 존재를 확인함에 따라 현대 물리학에서의 ‘표준모형’이 완성되었고, 1964년 힉스입자의 존재를 예측한 피터 힉스 교수와 빅뱅 당시 질량이 없던 기본입자에 질량이 부여되는 힉스 메커니즘의 존재를 처음 예측하였고 이후 게이지 대칭성이 깨지는 메커니즘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벨기에의 프랑수아 알글레르 교수가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3. ‘세존이시여, 이미 알았습니다. 선서시여, 이미 알았습니다.’는 ‘知已。世尊。知已。善逝佛告比丘。’를 번역한 것이다. “선서善逝”는 부처의 열 가지 호號 중 하나로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간 채 미망迷妄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善逝佛告比丘。’는 ‘善逝。佛告比丘。’로 해야 할 것 같다. 그대로라면 ‘선서이신 부처님이 비구에게 말씀하셨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참고로, 여래십호란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 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