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꽃과 반얀트리
진리대학 가는 길옆에 도열된 가로수의 빨간 꽃이 아름답다. 마침 나무 박사님께서 모감주나무에 대하여 한 마이크 하신다. 오른쪽 가로수가 모감주나무냐고 물었더니 자카란타꽃이라고 한다. 좌석이 오른쪽이라 왼편의 모감주나무를 못 보아 아쉽다. 모감주나무는 어감이 좋아서 언젠가 책 표제로 쓰고 싶었던 나무 이름이다. 모감주꽃은 노란색을 띤다고 한다. 열매는 꽈리모양이라고 하니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으로 만족할 뿐이다.
대신 곳곳에 반얀트리 나무가 서 있다. 앙코르왓트의 스펑나무를 닮은 것도 같고, 뉴턴에게 반기를 들고 물구나무를 서는 아기똥한 레지스탕스 같기도 하다. 아래로 아래로 흙을 찾아 내려가는 저 뿌리의 습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중력의 법칙에다 플러스 마이너스 알파를 대입하면 피타고라스 정의가 나올까. 시험 기간이면, 수학의 정석을 베고 꿀잠자던 이가 할 말은 아니다. 그냥 종의 기원을 따져 돌연변이라고나 해 두자.
진리대학
1882년에 지어져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등장한 진리대학이다. 맥케이 신부가 설립한 대만 최초의 서양식 대학인 진리대학은 현재까지도 실제 대학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일행을 놓쳐서 헐레벌떡 올라오니 등에 땀이 한 자밤이나 흘러서 흥건하다. 일행 한 분도 일행을 놓치고 두리번 거리다가 빨간 옷 보고 쫓아오셨다고 한다. 날씨가 우중충하고 비가 오락가락하니 방수기능이 있는 빨간 등산복 상의를 골라 입었더니 안성맞춤이다. 전선에서 낙오되었다가 아군을 만난 듯 반가워서 동지애가 뿜뿜 해진다. 역시 여행길에는 원색 옷을 입는 게 국룰이다. 초가을 날씨라고 해서 하늘하늘 쉬폰 브라우스와 꽃무늬 청바지도 갖고 왔건만,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니 무용지물이되어서 불만이었는데, 오늘은 아주 다행스럽다. "Where is a restroom?" "I want warm water!"밖에 통하지 않는 땅에서 미아가 된다면, 난감한 일이다. "你好(니 하오?)" "再見(짜이지엔!)"만 구사할 줄 아는 무식이 후회된다. 중국어를 좀 익히려다 성조가 어려워 포기했던 것도 후회다. 당장 귀국하면 중국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찰나 옥스퍼드에서 내려오는 일행과 조우한다. 풍경에 너무 취하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을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깊이 들이켠다. 다음에는 도깨비뿔이라도 장착하고 다닐꺼나?
광장에서 바로 되짚어 옥스퍼드 대학 건물로 올라간다. 아마 영국령일 때 지어진 건물인 것 같다. 아래 동상은 옥스퍼드 건물을 지은 맥케이 신부다.
왼편으로 단과대학별 건물이 늘어서 있다.
1629년에 스페인에 의해 건립된 요새와 영사관이다.
진리대학 광장 한쪽에도 자리 잡은 크나큰 반얀트리 나무다.
유럽 3개국 통치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흥마오청은 대만의 1급 고적이다. 1628년 스페인군에 의해 건립된 총독부 건물이다. 내부를 둘러본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기분으로 백퍼 위로하며 관람한다. 이 세상에서 전쟁이 없어질 수는 없을까. 인간의 야만이 어디까지인지 참으로 씁쓸한 현장이다.
스펀역 천등 날리기
우리는 스펀역에 천등 날리기 하러 간다. 대만 여행의 백미다. 소원을 담아 등을 하늘로 띄우는 놀이다. 사극 영화를 보면, 양반댁 서방님과 아씨들이 나와 풍등 날리던 광경이 오버랩된다. 그러다가 궁중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스토리가 뻔한 소설이 연상된다. 오래된 기차 간이역이었던 스펀역은 천등 날리기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천등에 소원을 담아 하늘로 날려 보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편 어딘가는 저 등이 떨어질 텐데, 환경오염이 심하겠다는 생각이다. 공급자나 수요자 다 같이 고민해 볼 문제다. 한국인 여행객이 주를 이루는지 진행자의 어설픈 한국어가 웃음을 유발한다. "잠까마안" "이로케에" "요로케에" "한손만 노오세요" "텁받치인""한 번 더어" 천등 날리랴 배꼽 간수하느라 분주하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재미있는 사진이 많지만, 초상권 관계로 두 점만 올린다. 개인의 입신양명보다 가족 건강이 우선이고, 나라의 안위를 넘어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선하디 선한 일행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