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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간화선看話禪 수행修行 체계體系
3. 간화선看話禪의 서막序幕
앞 ‘간화선과 호흡’장에서 살펴본 대로, 안반수의安般守意는 호흡을 통해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고 사념처四念處를 관찰하여 해탈(Nirvana)을 얻는 데 있다. 반면 간화선看話禪은 이러한 고요함을 바탕으로 의단疑團이 응축된 화두話頭(공안公案)를 참구하고, 타파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장에서는 인도 불교가 어떻게 중국에 와서 간화선 수행으로 진화하였으며, 또 어떻게 동양 3국에서 불교 수행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1) 안반수의安般守意에서 간화선看話禪으로
인도 불교의 수행법이 『안반수의경』등을 통해 중국에 전래되었을 때, 중국인들은 기존에 있던 도교道敎의 신선설神仙說 또는 신선사상神仙思想 등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 측면도 있었다. 인도불교의 호흡법이나 혹은 명상冥想(Meditation)법 등을 도교의 기氣 수련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을 관리하는 ‘양생법養生法’의 일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 어떤 수련법이 행해졌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현재 기 수련법을 보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예컨대 중국 기공氣功의 3요소를 삼조三調라고 하는데, 몸을 다스리는 조신調身, 숨을 다스리는 조식調息, 마음을 다스리는 조심調心이 그것이다. 조신調身은 몸의 자세를 바로잡아 기운을 막히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고, 조식調息은 호흡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조심調心은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 흐트러진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으로,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기는 맑아지고 막힘없이 운행된다고 한다.
인도의 안반수의安般守意는 중국 기공 수련의 3조인 조신調身과 조식調息, 조심調心의 과정과 비교된다. 조신과 조식의 과정은 고요히 앉아 숨을 세거나(數息), 숨의 흐름을 따라가며(隨息),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과 같고, 거칠고 가쁜 호흡을 가늘고 깊게 유지하며,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정밀하게 관찰하는 사념처四念處나 위빠사나(Vipassana) 수행은 번뇌를 잠재우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조심調心의 과정과 비슷하다.
크게 보면 호흡을 통해 산란하고 산만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사마타(止, Samatha)나 대상의 무상無常함과 무아無我를 꿰뚫는 관(觀, Vipassana)의 과정이 기존 중국의 수행법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어떤 수행이든 이름만 다를 뿐 호흡은 공통적인데다,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태도 또한 기존 수행법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활 속 수행을 통해 일상에서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유지하고 수명壽命를 온전히 하려는, 이른바 전통적인 도교道敎 신선 사상과 거부감 없이 연결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알아 가는 과정에 대한 실천의 내용과 방법을 흔히 명상(冥想, meditation)이라고 표현하지만, 명상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명상을 행하는 방법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지역과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으며, 각기 나름대로의 수행법을 제시 하고 있다. 이를테면 요가(yoga)도 명상법이며, 위빠사나(vipassana)도 명상법이다. 단학(丹學)이나 선(禪) 그리고 기독교의 묵상(黙想)이나 이슬람교의 수피즘(Sufism) 등과 같이 종교마다 지역마다 또 다른 이름으로 된 수행법들이 모두 명상에 속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이름으로 전해진다 해도,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데 있다. (김종의,『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선문답이 일러주는 깨달음의 의미, 지식과감성 (2022년 4월) p. 51.)
사마타(지止: Samatha)는 정지停止의 뜻으로 망념을 쉬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위빠사나(관觀: Vipassana)는 관달觀達의 뜻으로 지혜를 내어 관조觀照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선정과 지혜를 닦는 두 가지 방법으로서 한 짝이 되어 서로 의지하고 도와서 바른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 불교의 수행법이다.(김대현金大鉉 (지은이), 이영자李永子 (옮긴이) 초보자를 위한 선 p. 15.) 이를 정혜쌍수定慧雙修라고 하는데,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 제창한 개념이다.
사마타, 위빠사나 등 이러한 불교 수행법이 중국으로 전래되고, 중국 내 존재하던 기존의 수행법들과 결합하게 되면서 이들은 중국화의 과정을 겪게 된다. 중국 특유의 현학玄學 기풍과 실용주의實用主義와 만나면서 새로운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이 만들어진 것이다. 인도의 정교한 ‘분석分析’이나 정밀한 ‘사유思惟’ 등은 중국에서 ‘직관적直觀的 돌파突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돌변突變하게 된 것이다.
도를 닦는다 하지만, 도에는 닦을 것이 없고, (修道,道無可修.)
법을 묻는다 하지만, 법에는 물을 것이 없다. (問法,法無可問.)
미혹한 사람은 색(色)과 공(空)을 알지 못하지만, (迷人不了色空.)
깨달은 사람은 본래 거스르거나 좇을 것이 없다. (悟者本無逆順.)
팔만사천의 법문이 있지만, (八萬四千法門,)
지극한 이치는 한 치도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至理不離方寸.)
자기 집의 성곽을 알아차리되, (識取自家城郭,)
부질없이 남의 고을을 찾아 헤매지 말라. (莫謾尋他鄉郡.)
널리 배우고 많이 듣는 데 있는 것도 아니며, (不用廣學多聞,)
말재주가 뛰어나고 총명한 데 있는 것도 아니다. (不在辯才聰俊.)
(『景德傳燈錄』卷四 「洛京福先寺仁儉禪師」條 所載 「了元歌」.)
인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하게 되는데, 사념처四念處같은 충실하고 복잡한 분별分別 분석分析 법은 ‘도란 닦을 것도 없다’는 극단적 수행법으로 변모變貌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인도의 인위적인 분석(사념처의 세부 관찰)보다는 기존의 직관적 체득이 중국인의 체질에 더 맞았을 것이다. 중국의 노장老莊 사상과 실용주의를 만나면서 추상적 이론보다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나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상(평상심平常心)’이 곧 도라는 직관적, 실천적 태도가 강조되고 두드러지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남전南泉에게 조주趙州가 물었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평상심이 바로 도다.”
“어떻게 닦아 나가야 하겠습니까?”
“향해 나가려고 하면 그르친다.”
“향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도는 안다거나 모른다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다고 하면 망각妄覺이요, 모른다고 하면 무기無己다. 진실로 헤아리지 않는 도에 이르렀다면 허공처럼 텅 비고 툭 터져 있을 터인데 억지로 시비할 것이나 있겠느냐?”
조주는 이 말에 즉시 깨달았다.
(『무문관無門關』 제19칙 평상시도平常是道.)
그렇게 탄생한 간화선 수행은 정(定, Samatha)을 토대로 지혜(慧, Vipassana)를 밝히고, 거기에 선문답禪問答 등을 통해 구체화된 화두話頭라는 과제課題를 참구하고 타파한다. 말하자면 인도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의 목표 해탈(Nirvana)을 화두를 통해 성취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인도적 관조觀照가 중국적 직관直觀을 만나면서 선禪불교로 진화하는 과정은, 이른바 중국 불교의 역사적 여정이자 토착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승려가 물었다.
“부처를 알고자 합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백장이 말했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것과 같다.”
(僧問:學人欲求識佛,何者即是。百丈曰:大似騎牛覓牛。(『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9, 대안선사(大安禪師).
부연하자면 인도로부터 전래된 『안반수의경』이 토대土臺(Body)가 되었고, 중국의 도교적 사유가 수행의 풍양豊穰(Soil)이 되어, 맺은 결실結實(Fruit)이 간화선看話禪인 것이다. 그러니 간화선은 인도와 중국의 사상들이 모여 만들어진 동양사상의 결정체結晶體로, 단순히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응축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한 제자가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도道가 무엇입니까?”(問如何是道.)
운문선사가 답했다.
“가라!” (師曰去)
2) 간화선看話禪 화두話頭(공안公案)
간화선看話禪 수행에서도 화두를 들기 전 수식관 등 호흡을 통해 조신 조식 등 평온을 찾는 과정이 이루어진다. 마음이 들떠 있을 때 수식관을 통해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념처, 위빠사나 등으로 다져진 ‘깨어 있는 알아차림’은 화두를 놓치지 않고 챙기는 성성惺惺, 즉 ‘깨어있는 힘’과도 비교된다.
다만 사념처나 위빠사나가 대상을 분석하고 관찰한다면, 간화선은 <이것이 무엇인가? 이뭣고! (是甚麼)>와 같은 문구나 말, 즉 ‘화두(공안公案)’에 집중하여 참구參究한다. 화두에 대해 지극한 의심을 일으키고, 그 의심 덩어리(의단疑團)를 극대화시켜, 마침내 그것을 타파打破하는 것이 간화선 수행인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수행자는 화두, 공안公案에 대한 의심을 증폭시켜 막다른 골목(은산철벽銀山鐵壁)에 서서. 화두, 공안에 대한 의심, 의문, 의단을 하나로 응축한 다음 그 집중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객승이 또 질문했다.
“부처님과 조사들이 깨닫게 된 계기[機緣]를 사람들이 공안(公案)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공안(公案)이라고 한 것은 관청에 있는 문서에다 비유해서 말한 것입니다. 국가에는 법령이 있어야만 왕도정치가 제대로 실현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공(公)이란 훌륭한 도(道)를 깨달아 세상 사람들에게 그 길을 모두 함께 가도록 하는 지극한 가르침이며, 안(案)이란 성현들께서 그 도(道)를 수행하는 바른 방법을 기록한 것입니다.
무릇 천하를 다스리는 자라면 누구든지 관청을 설립하지 않을 수가 없고, 관청이 설치되면 자연히 그것을 운영하는 법령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른 이치를 받아 들여 법령을 만들고, 바르지 못한 것들을 박멸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이 시행되면 바른 법령이 통용되고, 바른 법령이 통용되면 천하의 기강이 바로잡히고, 기강이 바로잡히면 왕도정치가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조사들이 깨우치게 된 계기(機緣)를 공안(公案)이라 이름 붙인 이유도 역시 위와 같은 뜻에서 그랬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한 사람의 억지주장이 아니라 신령스런 근원에 딱 들어맞고, 묘지(妙旨)에 계합하여, 생사의 굴레를 타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안은 언어나 문자로 따지는 것을 초월하며, 이것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수많은 보살과 함께 똑같이 지니고 있는 아주 지극한 도리입니다. 그것은 생각이나 이치로 알 수도 없으며, 언어로 전할 수도 없으며, 문자로써 설명할 수도 없으며, 알음알이로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마치 독(毒)을 바른 북을 둥둥 울리게 되면 듣는 이는 모두 그 자리에서 죽는 것과도 같으며, 큰 불구덩이 속에 갓난아기가 들어가면 그대로 타 죽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영산(靈山)에서 말한 ‘별전(別傳)’이라는 것도 이를 전한 것이며, 달마스님이 말한 ‘바로 가리키는 선[直指之禪]’도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산방야화山房夜話』
(선림고경총서 2) 백련선서간행회 편, 장경각, pp. 45~46.)
이 글은 공안公案의 어원과 본질을 관청의 공문서公文書와 비유하여 설명한 것으로, 공안에 대한 핵심 법문이라고 정평定評이 난 글이다. 천목중봉(天目中峰, 中峰明本, 1243~1323)의 저서 『산방야화山房夜話』에 수록되어 있는데, 중봉은 객승과의 문답을 통해 공안의 본질을 명쾌하게 논증하고 있다. 공적公的인 문서란 ‘지공무사至公無私’, 사사로움을 배제한다는 뜻이다. 관청의 공문서로 지정하므로 써 그 중요성을 부각浮刻시키고 있는 것이다.
공(公)이란 뜻은 개개인의 주관적인 주장을 개입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며, 안(案)이란 뜻은 기필코 불조(佛祖)의 깨달음과 동일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안(公案)이 풀리면 번뇌의 알음알이[情識]가 사라지고, 번뇌의 알음알이가 사라지면 생사의 굴레가 공(空)해지고, 생사의 굴레가 공(空)해 지면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불조(佛祖)의 깨달음과 동일하게 만들겠다’라는 뜻은, 중생들이 생사의 번뇌 속에서 제 스스로 꽁꽁 묶여 풀려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과 조사들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상황을 두고 한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자리이지만 할 수 없이 중생들을 위하여 말로 표현한 것이며, 형상으로 드러낼 수 없는 이치이지만,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형상으로 드러내어서 미혹의 오랏줄이 풀려지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깨달음의 자리에 어찌 언어나 형상을 들먹거릴 수가 있겠습니까? (『산방야화山房夜話』 (선림고경총서 2) 백련선서간행회 편, 장경각, p. 48.)
공안이란 공무公務에 관한 문안文案이라는 뜻이다. 관청의 법령이 세워지면 부정부패가 박멸되고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선다. 마찬가지로 공안公案은 수행자의 번뇌煩惱를 박멸하고, 알음알이[지해知解, 지식적 이해]를 끊게 하며, 마음의 기강을 바로잡고, 목표를 뚜렷이 하여 깨달음에 도달하게 한다. 국가에 법령이 서야 기강이 바로잡히듯(왕도정치王道政治), 선가禪家에서도 공안이 통용되어야 수행자의 사사로운 지해知解가 사라지고 정법正法이라는 기강이 확립된다(구경각究竟覺, ultimate enlightenment).
천목중봉(天目中峰:1243~1323) 스님은 항주(杭州) 전당(錢塘) 사람으로 15세에 5계를 받고, 그로부터 『법화경』·『원각경』·『금강경』·『전등록』 등을 두루 열람했다. 후에 천목산(天目山) 사자원(師子院)의 고봉원묘(高峰原妙:1238~1295) 스님을 참례(參禮)하고, 그 이듬해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니 달마스님의 29세요, 임제스님의 15세 법손(法孫)이시다. 이로부터 천목산·환산(山)·금릉(金陵)·변산(弁山)·경산(徑山)·육안산(六安山)·중가산(中佳山)·단양(丹陽)·평강(平江)·오강(吳江)·진강(鎭江) 등에 머무르면서 수행에 전념하였다. (『산방야화山房夜話』(선림고경총서 2) 백련선서간행회 편, 장경각, 해제解題.
한편 공公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할 지극한 도道라는 말이고, 안案은 성현들이 수행한 그 도를 수록한 바른 기록이라는 뜻이다. 법령이라는 문자를 빌려 설명하고는 있지만, 결국 공안의 종착지는 ‘생각이나 이치로 알 수 없고, 언어와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격외선지格外禪旨’의 도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공안이 풀리면 번뇌의 알음알이[情識]는 사라지고, 번뇌의 알음알이가 사라지면 마침내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선(禪)은 잠들어 있는 불성(佛性)을 깨움(見性)으로써 완전한 자유(涅槃)에 도달하고자 하는 수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선(禪)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제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선(禪)을 이해하려는 방법은 다양하게 시도되어 왔지만, 대략적으로 는 두 갈래의 시각에서 핵심에 접근하려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하나는 일어났던 사건을 중심으로 선(禪)의 양상과 흐름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의미를 확장시켰던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특히 융성과 쇠퇴를 반복했던 선종사(禪宗史)를 근본적인 줄거리로 하면서, 극적인 장면에 대한 부연 설명을 통해 선(禪)의 독특성을 다른 종파와 차별화시키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종교일반의 의의와 기능의 범주를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선승(禪僧)들이 몸소 체험하여 이르게 된 경지에 대한 가르침이나 문답 속에 숨겨진 비밀한 뜻을 논의하고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는 『어록(語錄)』이나 『전등록(傳燈錄)』등과 같은 책으로 전해진 ‘선문답(禪問答)’ 혹은 ‘공안(公案)’이라는 독특한 대화법을 인용하여, 선(神)이란 문자를 떠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선(禪)의 세계로 안내하려는 것이다.
종교일반의 의의와 기능을 분석하는 접근법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보다는 선승들의 체험에서 우러난 가르침이나 문답의 내용들이 오히려 선(禪)의 핵심을 단도직입으로 제시하는 본질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거기에다 오고 가는 대화에서 나타나는 비논리적인 모호함은 오히려 선의 신비성을 한층 더 높여 준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선은 선문답이라는 독특한 대화법을 통하여 선이 지향하는 온 전함의 경지를 고스란히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종의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선문답이 일러주는 깨달음의 의미 pp. 104~105.)
그러나 천목중봉은 ‘우두선牛頭禪의 종조宗祖인 우두법융(牛頭法融, 594~658)이나 조사선의 개조開祖(시조始祖)인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안종사正眼宗師들이 제자들을 그리 쉽게 도와주지는 않았다’고 일갈一喝한다. 즉 수많은 정안종사들의 입에서 다양한 말들을 뱉어냈지만,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지는 않았다.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더군다나 귀를 기울여 따져볼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선문답이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오고 간 대화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내용은 상식적인 의미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함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선(禪)을 문제로 삼는 사람들조차도 논리를 뛰어넘는 발상과 비합리성을 강조하는데, 사실상 선문답에서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를 헤아리기 어려운 당혹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禪)을 모호함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이는 일상적인 인과관계로 볼 때 대화의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에 사용된 단어들은 그야말로 일상적인 말들이다. 심오한 표현이나 현학적인 어휘는 없다. 어쩌면 너무나 단순하고 일상적인 어투이기에 그것이 오히려 의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김종의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선문답이 일러주는 깨달음의 의미 p. 105.)
예를 들어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삼세근[麻三斤]’, ‘똥 막대기[乾屎橛]’와 같은 소위 공안이라고 하는 것들은 사량 분별로써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눈 밝은 납자만이 언어나 문자가 끊어진 자리에 이르러 그 뜻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격외선지格外禪旨의 경지境地는 말로 드러내 줄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직 눈 밝은 사람만이 언어나 문자가 끊어진 자리에서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한 곡조 부르고 거기에 한 곡조 화답하는 것이 마치 공중을 날아가는 새처럼 자취가 없고, 밝은 물에 비친 달그림자처럼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비록 천 갈래 만 갈래 길로 이리저리 방자하게 사량 분별한다 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멀리는 영취산에서 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인[拈華示衆]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또 그밖에 1,700공안(公案)만이 어찌 그러했겠습니까!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을 깨달은 사람이라 야지만 알 수 있는 도리입니다. 정말로 사람들에게 사량 분별이나 증진시키고 그저 이야깃거리의 밑천이나 삼으려고 공안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산방야화山房夜話』 (선림고경총서 2) 백련선서간행회 편, 장경각, p. 47.)
『산방야화山房夜話』는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에 뒤에 나온『동어서화東語西話』는 주로 설명체로 되어 있다. 그것은 『산방야화』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책에 대한 비난과 오해가 일자, 천목이 그것을 해명하려고 『동어서화』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에는 중봉이 스스로 밝혀 놓은 행장行狀이 있어 인물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중봉은 선풍禪風이 날로 쇠퇴해가고 신심은 옅어져가는 시절, 달마가 전한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직지지선直指之禪’을 종宗으로 삼아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을 세상에 널리 폈다. 또한 유생儒生들의 불교비난에 대해서도 근거 있고 설득력 있게 비판하고 있다. (『동어서화東語西話』출판사 책 소개 참조)
어쨌든 천목중봉은 『산방야화』나『동어서화』에서 ‘스승은 공안을 근거로 하여 의심을 풀어준다’라고 밝히고 있다. 스승은 제자가 화두의 의심 속에서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마주하게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 의심을 해소해 주는 조력자이자 확인자이다. 수행자로 하여금 의심 덩어리를 타파하고 본래 면목을 깨닫게 돕는 것이다.
스승은 화두를 근거로 제자를 곤경困境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적절한 방편으로 그 의단疑團을 해결하고 의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의단을 극대화하게도 하지만, 줄탁동시啐啄同時, 그 의심덩어리를 터뜨려 의단을 타파하고 돈오(頓悟, 단박의 깨달음)에 이르게도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다가 불공평한 사건이 생기면, 반드시 관청에서 공정하게 재판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이조(吏曹)에서는 공포된 법조문을 근거로 공평하게 재판해 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참선하는 자가 깨달은 부분이 있으니 스스로 확신을 못하겠으면 스승에게 질문합니다. 그러면 스승은 공안(公案)을 근거로 하여 의심을 풀어줍니다. 공안이란 바로 번뇌망상의 어둠을 밝혀주는 지혜의 횃불이며, 보고 듣는 것에 얽매인 결박을 끊어주는 날카로운 칼날입니다. 그런가하면 공안이란 번뇌의 뿌리를 끊어버리는 날카로운 도끼이며, 성인과 범부를 가려내는 신령스러운 거울입니다. 조사들의 본뜻이 공안 때문에 분명하게 밝아지고, 부처님의 마음이 공안 때문에 드러납니다. 번뇌를 말끔히 털어버리고 불조의 혜명을 드러내는 데에 이 공안보다 더 좋은 길잡이는 없습니다. 이른바 공안이란 법을 아는 자만이 두려워할 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근처에 어른거리지도 못합니다. (『산방야화山房夜話』(선림고경총서 2) 백련선서간행회 편, 장경각, pp. 48~49.
명대 운서주굉(雲棲株宏, 1535~1615)이 엮은 수행 지침서『선관책진禪關策進』에도, 선가禪家의 스승들이 어떻게 공안을 통해 제자의 의문을 풀어주는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공안은 성인의 법을 세운 표준(公)이며, 수행자가 나아가야 할 정당한 길(案)이다. 스승은 공적 표준인 공안을 활용하여 제자의 사사로운 견해(私見)를 쳐부수고, 근본적인 의구심을 풀어주어 깨달음으로 이끈다.
앞에서 중봉 스님은 “스승은 공안을 근거로 하여 의심을 풀어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공안을 근거로 하여 의심을 풀어주게 되었고, 제자들은 스승으로부터 받은 공안을 참구하는 것을 공부의 기본으로 삼게 되었을까? 성철 스님의 상좌 중 한 사람인 원융 스님은 그의 저서 『간화선』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조 법연(法演)은 특히 무(無)자 화두를 중점적으로 적용하여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원오 극근(園悟克勤)은 『벽암록(碧巖錄)』의 저자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아래에서 대혜 종고(大慧宗杲)가 나와서 간화선 특히 무(無)자 화두에 대한 이론을 확립시켰다.
무(無)자 공안이 처음으로 시행되었던 것은 황벽의 법문이 최초이며 그것이 다시 오조 법연에 와서 구체화되었고, 대혜종고의 『서장』에서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황벽의 법문에서 관련된 부분을 『선관책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대들에게 묻노니 홀연 죽음이 닥치면 너는 무엇으로 생사를 대적하겠느냐?
(중략)
모름지기 저 공안을 간(看)하되, 어떤 중이 조주(趙州)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물었을 때 조주가 답하기를 ‘무(無)’라 하였으니 이 무자를 참구하여 밤이고 낮이고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누우나 옷 입으나 밥 먹으나 변소에 가나 생각생각 끊이지 아니하고 맹렬히 정신을 차려 무자를 지켜갈 것이다.
이리하여 날이 가고 해가 가서 화두가 저절로 들리는 경지에 이르면 어느덧 홀연히 마음 빛이 활짝 밝아 불조의 기틀을 깨달아 문득 천하 노화상의 혀끝에 속지 않고 스스로 큰 소리를 치게 될 것이다.”
(중략)
『선관책진』의 저자인 운서 주굉(雲棲 株宏)은 황벽의 제자이다. 그는 스승의 법문을 책의 머리에 실으면서 부연하여 말하였다.
“이것이 후대에 화두를 가져 공부하게 된 시초가 된다. 그러나 반드시 무자만으로 한할 것은 아니니 혹은 ‘만법귀일(萬法歸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혹은 ‘수미산(한중이 운문에게 묻기를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 허물이 있습니까’ 하자 운문이 ‘수미산’ 하고 대답했다)’, 혹은 ‘야료소료(夜了燒了; 죽어서 태워져 한줌의 재가 되니 너의 주인공이 어디에 있는가)’, 혹은 ‘참구염불(參究念佛; 염불하면서 이 ‘염불하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의심을 지어가는 공부)’도 좋으니 한 개 의 화두만을 지켜서 오직 크게 깨치기만 기약하라. 비록 의심하는 바는 같지 않으나 깨침인 즉 둘이 없는 것이다.” (李淸 지음, 현대 한국불교 선의 세계탐험 『이뭣고』 pp. 112~113.)
결론적으로 스승은 공안公案을 방편으로 삼아 수행자의 알음알이(지해知解)를 끊어내고, 지극한 의단疑團이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그 것을 타파하게 하여 본래 면목을 깨닫게 한다. 이것이 선종의 전통적인 접인(接引, 이끌어줌) 방식이자 간화선 수행의 독특한 교육적 역동성이다.
인도 불교가 도교 사상과 실용實用 정신과 만나면서 복잡한 단계별 수행론은 단박에 깨치는 ‘돈오頓悟’ 사상으로 진화進化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중국 ‘선禪’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응축凝縮되어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선으로의 토착화과정은 인도 불교의 ‘분석적 치밀함’이 중국의 ‘직관적 실용성’을 만나 간화선看話禪을 낳았고, 그 강력하고 효율적인 수행 체계는 인류의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3) <무>에서 <척수지성隻手之聲>으로
선도회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은 <무>자 화두로부터 시작한다. <무>자 화두에 대해 종달 노사님은 그의 책『선과 과학』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공안을 보는 때 그것에 체당體當하여야 하는 것이지 이론으로서는 통치 못한다. 다시 말하면 공안의 줄거리의 중심점을 잡아서 그와 한 몸이 되어야 한다.
사실상 1,700 공안의 중심점은 <무>하나로 통한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1,700 공안을 내세웠을까. 그것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천 가지 만 가지 차별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희익,『선禪과 과학科學』 p. 62.)
『중국 선종의 성립사 연구』, 『선의 역사와 사상』, 『선종의 전등설 연구』 등을 책들을 쓰고, 역서로 『돈황본 육조단경』, 『금강경 강설』, 『벽암록』 『종용록』등을 펴낸 정성본(鄭性本, 1950~ ) 스님은 <무>자 화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간화선의 수행체계는 조주의 무자화두 참구와 공안 공부라는 두 가지 골격으로 이루어진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조주의 <무>자 공안을 참구하여 번뇌 망념의 중생심에서 각자의 근원적인 본래심을 깨닫는 <무>자 공안을 참구하는 방편과 대승불교 경전과 선승들의 어록 등에 전하는 불교사상과 수많은 법문, 선문답 등의 다양한 사례와 판례를 깊이 사유(看)하여 정법의 안목을 체득하고 많은 지혜를 구족하는 공안공부를 병행하는 수행인 것이다. (無門慧開, 鄭性本 譯註,『무문관無門關』「무문관에 대하여 」 p. 361.)
화두는 크게 <무>자 화두와 ‘공안 공부’라는 <무>자 아닌 화두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무>자 화두는 ‘체体’로 ‘번뇌 망념의 중생심에서 각자의 근원적인 본래심을 깨닫는’ 근본根本이 되는 화두이고, 그 외 다른 화두들은 ‘용用’으로 ‘다양한 사례와 판례를 깊이 사유(看)하여 정법의 안목을 체득하고 많은 지혜를 구족하는’ 활용活用의 화두라는 것이다.
법경 법사님도 그의 책에서 ‘무문관은 첫 번째 <조주무자>가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며 나머지 47칙은 모두 이 <조주무자>를 철저히 투과했는지를 다시 점검하기위해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그렇다! 그렇게 중요한 화두이지만 그 만큼 쉽게 들리지 않는, 쉽게 투과할 수 없는 화두이기도 하다.
전문 선원에서 아침저녁으로 입실하며 수행하는 출가자들에게 <무>자 화두는, 잡생각을 지우고 참선 수행에 집중하기 위한 좋은 도구다.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여 초보 수행자들을 단련시키기 위한 다분히 의도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1주일에 한 번씩 입실하는 재가자들에게 <무>자 화두는 그리 녹녹한 화두가 아니다. 오히려 단순하고 쉬워서 화두에 접근하기가 어렵고, “왜? <무>라고 했을까?”라는 의심, 의단疑端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은 화두다. 그래서 선도회 재가자들은 보통 1년 혹은 1년 넘게 참구하기도 한다.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과 『무문관』을 끝내고, 재독 과정에서 필자는 세 번째로 화두 <무>를 마주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 <무>를 투과하였을 때의 환희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요즘 말로 “포텐(Potential)”이 터졌다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무>자 화두를 완전히 알게 된 것은 그 후로 한참 뒤인『벽암록碧巖錄』을 마치고 나서다. 알게 되었다기 보다 무심해졌다고 해야 할까? <무>자 화두에 대한 털끝만큼의 의심도 사라지고, 그때까지 껄끄럽기만 했던 화두가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화두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처음 참구할 때는 껄끄럽기도 하고 잘 들리지도 않던, 참! 멋없는 화두라고 생각했었는데, 모든 화두들을 투과하고 나니 <무>만큼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화두가 없었다. 왜, <무>자 화두를 강조했는지, 왜, 종달 노사님이 ‘간신히 <조주무자>를 얻어 평생을 쓰고도 다 못 쓰고 가노라!’라고 하셨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박영재 지음, 생활선의 첫걸음『두 문을 동시에 투과한다』 p. 184.)
화두를 하나만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때였다. 돌아가실 때까지 “<무>라!” “<무>라!”를 염송하며 평생토록 <무無>자 화두를 들고 계셨다는 효봉(曉峰, 1888~1966)스님을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마시라. 효봉 스님은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한 번 앉았다 하면 일어날 줄을 몰랐고, 뜨거운 방바닥에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는지 피가 나와 굳어서 일어나면 방석이 엉덩이에 붙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재가자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필자는 수행하면서 <무>자 화두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회원들을 많이 보았다. 처음 당하는 철벽같은 화두에 간화선은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고, 건조함에 답답하기도 하여 자칫 흥미를 잃어버리게도 하는 화두이다. 초보자에게 <무>자는 집중하기 어려운 화두이면서, 또 풀고 나면 허탈하기만 한 화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무>자 화두는 초보자, 특히 재가 수행자에게 무리가 있는 화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영하산방 부법사인 청연 거사는 8개월 넘게 <무>자 화두와 씨름하다가 필자를 만났다. 몸도 아팠고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아 그만 둘 요량으로 참석한 여름 수련회에서다. 형편상 일주일 마다 입실하기도 어렵고, 자기 능력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하여, 이제는 그만 두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참석한 마지막 수련회였다.
필자는 사정을 다 듣고 전자입실을 권했고, 거사는 그것을 받아들여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다. 당시는 유일하게 제천에 있는 영하산방 모임에서만 전자입실을 하고 있었다. 매일 입실하는 전자입실의 효과도 있었겠지만, 이후 다시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무문관無門關』과정을 마치고 부법사가 되었다.
많은 경험은 아니지만 후학後學들을 지도하면서도 <무>자 화두를 투과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분들을 보았다. 또 어렵게 <무>자 화두를 투과하였다 하더라도, 그 경계를 신뢰하지 못해 선도회 공부에 의심을 품고 그만 두는 경우도 보았다. <무>자 화두에 대한 경계나 이론이 워낙 분분하여, 선도회 경계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투과한 경계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겨우 이거냐?”라며 보다 공신력 있는 기관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공부를 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선도회 간화선 공부에 의문을 품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굳이 실체가 없는, 그리고 참구하기도 어려운 <무>자 대신, 다른 화두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단순히 순서만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수행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외짝 손 소리[척수지성隻手之聲]!>을 첫 화두로 선택하게 되었다.
화두 <척수음성隻手音聲>은 <척수지성隻手之聲>, <隻手の声>, <척수성隻手聲> 등으로 불리는데, 선도회에서는 <척수성隻手聲> 즉 <외짝 손 소리>로 참구한다. 공안으로는 <隻手音聲>, <隻手之聲>이 보다 보편적이다. <한 손으로 박수소리를 내라[隻手音聲]!>로 바꿀 수도 있다. 일본 佛學辭典에는 <척수지성隻手之聲>으로 되어 있다. 원문 解釋: 又作隻手音聲。為日本臨濟宗白隱慧鶴禪師所創之公案。兩手相拍,自然發聲,為凡夫所耳聞,然僅揚隻手,無聲無響,若非心耳,不可得聞。白隱禪師以之引導參禪者,強調遠離見聞覺知,不涉思量分別,僅於行住坐臥之間不斷參究,必可於理窮詞盡之處,突然踏翻生死業海,劈破無明窟宅。〔白隱和尚全集卷四〕(出處: 佛光電子大辭典)
<척수지성>도 초심자에게는 그리 쉬운 화두는 아니다. 그러나 ‘한 손으로 내는 박수소리는 뭘까?’라는 당면한 질문에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화두이다. 그리고 간단하고 즉각적인 질문에 직접적으로 반응할 수 있고, 또한 뚜렷한 목적이 생겨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게 한다. 한 마디로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선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화두이다.
어떤 경우는 자기에 대해서 의심하고, 혹은 無字를 참구하게 하는 등, 이런 저런 방편을 구사해 왔지만…, 5, 6년 이후는 생각이 난 것이 있어서, ‘隻手의 聲(片手의 音)’을 들으세요라고 사람마다 지도해 왔습니다만, 이전 지도방법과는 전혀 다른 발군의 효과가 보여, 누구라도 의심이 일어나기 쉽게 되고, 좌선 공부도 나아가기 쉽게 된 것, 여기에서는 매우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까지마 시로 Shiron Nakajima 中島志郞, 하나조노대花園大學,「일본 공안선 백은선의 원리와 구조」(2011 제2회 간화선 국제학술대회 Day 2 <간화선, 그 원리와 구조>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종학연구소) p. 86.)
이후 선도회 영하산방 모임에서는 의심하기 쉬운 <척수지성>으로 첫 화두를 바꾸었고, 바꾸고 나니 고생하는 이가 줄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법경 법사님이 서강대에서 <참선>과목을 지도하고 계실 때, 거기서도 참구 시간이 긴 <무>자 화두 대신 간단한 <척수지성>을 도입하였더니 많은 효과가 있었다고 알려주셨다. 이 화두의 창시자인 백은 혜학(白銀慧鶴, 하쿠인 에카쿠, 1686~1769) 선사가 이 공안을 제창提唱하게 된 동기와도 부합符合된다.
백은 선사는 어려운 기연이 담긴 공안(公案)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들을 위하여 ‘척수음성(隻手音聲)’이라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공안을 창시하기도 한다. ‘척수음성’이란 ‘한 손바닥에서 나는 소리’라는 뜻이다. “두 손바닥이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데 한 손바닥에서 나는 소리는 무엇인가?”라는 공안이다. 이 공안은 사실 심오한 선의 도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의문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공안선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화두이다. (一指 지음,『100문100답 선불교 강좌편 下』 p. 475.)
서양에 선(Zen)을 소개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 ~ 1966)가 처음 참구한 화두도 <척수지성隻手之聲>이다. 그는 와세다대학 전신인 도쿄전문대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도쿄[東京]로 입성한다. 그리고 동경東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선 공부를 위한 선사禪師, 스승을 만나기 위해 가마쿠라[Kamakura, 鎌倉]로 향한다.
스즈키 다이세츠는 메이지 유신 무렵 가나자와(金澤) 현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데이타로(貞太郞)이며, 부친은 의사로서 당시 서양 의학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한문에 대한 깊은 소양을 쌓았고, 청년기에는 영어를 익혀 불교를 세계에 소개하겠다는 뜻을 품게 된다. 하지만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어 형편이 어려워진 탓에 중도에 수업을 포기하고 수년간 소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그 후 스물한 살이 된 1891년 도쿄로 상경, 도쿄 전문학교(현 와세다 대학의 전신)에 특별 학생으로 등록하여 영문학을 수강하다가 다음해에는 고등학교 동창인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의 권유로 도쿄 대학 철학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당시 그는 대학 공부보다는 가마쿠라(鎌倉)의 선사찰인 엔가쿠지(圓覺寺)에 자주 드나들며 선승 이마키타 고센(今北洪川, 1816-1892) 및 샤쿠 소엔(釋宗演, 1856-1919)의 지도 아래 참선 수행하기를 더 즐겼다. 당시 니시다 기타로와 나쓰메 소세키도 이 샤쿠 소엔 밑에서 참선을 배웠다고 한다. (윤상인 외 지음,『위대한 아시아』「동서양에 가교를 놓은 종교 사상가, 스즈키 다이세쓰」 pp. 460~461).
동경에서 가마쿠라까지는 서울에서 수원정도의 거리로 지하철로도 1시간쯤 걸리는 거리다. 그는 동경에서 저녁에 출발하여 밤새도록 걸어 아침에 가마쿠라에 도착한다. 그리고는 엔카쿠사[圓覺寺] 주지인 선승 이마키타 고센(今北洪川, 1816~1892) 노사를 만나 화두를 받는다. 그때 받은 화두가 바로 <척수지성>이다.
참선하러 갈 때 마다 그는 말없이 내게로 왼손을 내밀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척수’ 공안에 대한 그럴듯한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노력했지만 고센은 이 모두를 거부했는데 참선을 몇 번인가 하고 난 후 나는 마치 캄캄함 골목에 들어선 것 같았다. (鈴木大拙 저, 심재룡 역, 『아홉 마당으로 풀어 쓴 선』 p 212.)
그는 다음해 고센 노사가 입적 할 때까지 <척수지성>을 참구하였지만 진전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주지로부터 <무>자 화두를 받아 다시 참구를 계속하게 된다. 고센 노사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가 투과한 첫 번째 화두가 <척수지성>이 되었을 터였다.
<척수지성>을 시작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화두들>에서 <무>를 투과하고 나면, 『무문관』과정에서 다시 <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무문관』에 수록된 다른 화두들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재독에서 다시 <무>를 만나 그동안 공부한 선의 경계를 다시 점검받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