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호(號), 여물(與物)
모든 사물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름이 주어짐으로서 사물은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되고 의미가 있음으로 해서 존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짐승에게는 소, 개, 돼지 같은 이름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나 여타의 동식물에도 각각의 생김새나 습성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 있다. 이처럼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밤하늘에 빛을 발하는 수많은 별처럼 우주공간에 흩어져있는 모든 사물에게도 각각의 이름이 있다.
물론 사람도 하나의 포괄적인 사물의 이름이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사물과는 다르게 개개인에게 붙여진 고유한 이름이 따로 있는데, 이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하나하나가 특별한 개체이며 존재이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처럼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의 수단뿐만 아니라 생의 목적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사람에게 붙여지는 이름이 참 많았는데, 본명을 제외하고도 아명(兒名), 관명(冠名), 자(字), 호(號)와 같은 많은 종류의 이름이 사대부가를 중심으로 유행하였으나 시대가 바뀐 오늘날에는 거의 없어지고 호만 일부 남아있는 정도다.
나는 지금껏 본명 외에 다른 이름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어렸을 때 집안에서 불렸던 별명이 하나 있긴 했다.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수호지(水滸志)에 나오는 ‘노지심’으로,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삼촌과 당숙들이 불그스레한 얼굴에 귀가 크고 심술이 많게 생긴 내 모습이 노지심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나중에 수호지를 읽고 노지심이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욕심 덩어리 까까머리 파계승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나는 이 별명을 대단히 싫어했으나 내 뜻과는 상관없이 중학생 때까지는 줄기차게 불렸었다.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가끔씩 집안 어른들로부터 이 별명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몇 년 전 여행차 들렸던 중국 항저우에서 노지심이 입적했다는 육화탑 옆에 세워진 그의 동상을 보고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근년에 들어서는 내 본명을 듣는 경우가 별로 없다. 집안에서는 촌수에 따라 형이나 아저씨로 불리고 직장에서는 성에 직책을 붙여 불리게 되고 성당에서는 세례명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름 대용으로 쓸 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호는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으로 본명으로 부르는 것을 피하는 풍속에 그 뿌리를 둔다. 중국의 경우 호는 당나라 때부터 사용되었는데, 당대의 대표적 시인인 이태백(李太白)이나 송나라의 소동파(蘇東坡)는 그의 본이름인 이백(李白)이나 소식(蘇軾)보다도 호가 널리 알려진 경우이다.
호의 사용이 우리나라에 정착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이고 식자들 간에 학문적 교류와 편지 교환이 일반화 되며서 본명보다는 호를 사용하는 것이 예의를 차리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황의 퇴계(退溪), 이이의 율곡(栗谷) 등이 대표적이다. 호가 가장 많았던 사람은 추사(秋史) 김정희로, 알려진 것만 해도 5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근대에 와서도 시인 김정식의 소월(素月), 뱍영종의 목월(木月) 등이 우리에게 이름보다는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 경우다
호는 자신이 거처했던 곳이나 지향하는 뜻, 좋아하는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직접 지어서 쓰기도 하나 스승이나 친구 등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지어주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호를 보면 그것을 쓰는 사람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알 수가 있다.
내가 호를 갖고 싶어 했던 진짜 이유는 문학 카페나 동아리를 들락거릴 때 사용할 필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내가 새로 발을 들인 활터(국궁장)에서는 모두 연배가 높아서인지 서로 간의 호칭으로 호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해서 내 글 선생인 사촌 동생에게 적당한 호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여물(與物)」은 그가 지어준 나의 호다. 여(與)는 함께하다 라는 뜻이고 물(物)은 사물을 나타내므로 여물이란 자연과 함께, 나 아닌 다른 존재와 함께라는 것이니 이 아니 멋있는 말이 아니냐는 것이다. 더구나 여물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동네 이름이기도 하니 금상첨화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여물’ 하고 단음으로 부르면 소의 밥인 진짜 여물이 되므로 ‘여~물’ 하고 장음으로 부르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까지 해준다.
그야 부르는 사람 마음이겠지만, 사실 나는 이 호를 받고 처음엔 굉장히 불쾌했었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여물리에서 여물만 먹고 산다고 줄창 놀림을 받아왔고 그 영향이 커서까지 미쳐서 고향 동네의 이 이상한 이름이 나에게 많은 콤플렉스를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풀이가 그럴듯해 그냥 팽개쳐 버리기에는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예수님이 시골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은 양들의 먹이인 여물이 되기 위해서다.”
라는 작고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럼 내가 예수님과 동격?”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뛸 듯이 기뻤고 이렇게 하여 불경스럽게도 여물을 호로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여파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뜻을 설명하느라 곤욕을 치루기는 한다.
호는 나의 얼굴이다. 오랜 세월 세파에 찌들어 검버섯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쭈글쭈글한 모습이지만 앞으로 자연을 벗하며 고향을 그리며 이웃에게 여물이 되는 삶을 살다 보면 맑고 깨끗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까지 피어나는 즐거움을 맛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