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들이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가 아나운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 자리를 박차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가 4년 만에 돌아온 오영실 아나운서(41세). 오자마자 교육방송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활동의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자리를 잡기도 힘들지만 유지하기도 힘든 아나운서직을 내려놓고 떠날 때 그는 어떤 마음으로 용기를 냈을까?
한창 인기 있을 때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4년간의 공백이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살다 보면 일을 열심히 할 때가 있고, 가족을 돌봐야 할 때가 있죠. 저도 한 10년 동안 정신없이 일했어요. 휴가도 안 갈 정도였으니까요.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순간, 남편의 유학이 결정되었습니다. 방송국 선배들이 말리기도 했지만 스스로 '쉬어야 할 때', '가족과 함께해야 할 때'라고 결정하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고 그곳에서도 재밌게 지냈어요.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잃은 것, 얻은 것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방송인으로서 감각과 방송의 흐름을 읽는 안목을 잃어버리기는 했지요. 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는 넓고 깊은 안목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순발력과 애드리브는 제 노력 여하에 따라 회복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선진국의 사회 시스템을 한눈에 본 것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사회를 보는 시각, 문화적인 흐름을 몸으로 체득한 덕분에 여유와 깊이를 얻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가족입니다. 그동안 아이들이 맞벌이 부모 아래서 크다 보니 정서적으로 불안한 감이 있었는데 안정을 찾게 되서 기뻐요. 비록 직장인으로서 잠깐 손해를 봤을지 모르지만 자기 계발, 가족들과의 관계 면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전보다 훨씬 성숙한 느낌이 듭니다.
미국에서 3년 반 동안 지낸 날들이 저에게는 푹 익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아이들과 부대끼기도 했지요. 인간관계에서 오는 속병도 앓고, 평범한 주부로 사는 보람과 기쁨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저에게는 광야와 같은 곳이었죠. 덕분에 제 자신과 삶을 많이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여유가 생기고 넓게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기더라고요. 또 하나, 저희 집 뒤로 큰 숲이 있었는데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것도 무척 유익했습니다. 고사리 캐고 깻잎도 심어서 먹는 등,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죠.
여성 아나운서들의 수명이 짧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치열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조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조직이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 생각하기보다 내가 조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어요. 월급을 300만 원 받는다고 해서 그만큼만 일하기보다는 500만 원 어치의 가치를 창출하는 게 프로 아닐까요? 그래서 아주 작은 일부터 실천했는데 그게 바로 점심시간 때 재떨이를 치우는 일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때 사무실을 청결하게 하는 일도 중요하니까요. 《성자가 된 청소부》에서처럼 하찮은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빗자루를 휘두르려고만 하지 직접 비질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다른 아나운서들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일도 도맡았어요. 라디오 뉴스라든가 오지 방송도 자청했는데 그러다 보니 좋은 기회들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아이 낳고 나서 더 인기를 얻고 활동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제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그리고 저의 방법을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작은 일부터 소중히 하면 꼭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싶으신지요?
요즘은 젊은이들 위주의 프로그램이 많아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줌마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힘들지만 때를 기다리면서 나름대로의 계획을 갖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토크쇼에요. 진실하지 않으면 그 시간이 공허하게 느껴지지요. 잠깐이라도 진실된 만남이 중요합니다.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그도 좋고 나도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출연자나 저,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모두 감동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명예나 지위보다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잘나가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보다 고마웠던 사람을 챙기고,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싶어 한다. 본인의 성공보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뛰겠다는 그의 각오가 방송을 통해 따뜻하게 전해질 날을 기대해 본다.
< 출처 : 좋은생각(행복한 동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