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쌀 그리고 맛있는 밥
맛있는 밥을 먹으려면 1)쌀을 잘 고르고 2)밥을 잘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그래서 묻는다.
“‘어디 쌀’이 좋아요?” 이렇게 묻는 이는 쌀의 품질이 지역(땅)에 좌우된다고 믿는 분이다.
“‘무슨 쌀’이 좋아요?” 이렇게 묻는 이는 품종이 맛을 좌우한다고 믿거나 요즘 트렌드인 브랜드가 품질을 좌우한다고 믿는 분이다.
이 질문들에는 ‘밥은 내가 알아서 한다. 다만 좋은 쌀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맞다. 밥은 저마다 집집마다 취향이 조금씩 다르니 알아서 지을 일이다. 그런데 쌀은 다르다. 같은 솥, 같은 불, 같은 물을 사용해도 어떤 때는 차지고 어떤 때는 푸석거린다.
▶갓 도정한 햅쌀이 제일 맛있고 좋은 쌀
제아무리 식성이 바뀌었다 해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밥이다. 쌀농사의 역사가 1만 년을 헤아린다고 하니 우리는 구석기시대부터 이미 밥맛을 익혀온 셈이다. 식량 부족 시기에는 얼마나 쌀밥을 밝혔는가. 그러니 쌀에 대한 집착, 맛에 대한 감각이 유난할 수밖에 없다.
이 예민한 입맛을 맞추기 위해 공통적으로 적용할 ‘쌀 구매기준’은 무엇일까. 그 기준은 ‘도정일’이다. 그다음 순서로 보면 품종, 재배방식, 지역이다.
이를 좀 더 과학적으로 통일해 만든 상품들이 브랜드들이다. 요즘 인기 높은 임금님표 이천쌀, 철원 오대쌀, 해남 한눈에반한쌀, 평택 슈퍼오닝쌀, 안성마춤쌀 등의 브랜드 쌀은 지역을 중심으로 품종과 재배법을 통일한 것들이다.
이들의 차이를 일일이 논하려면 끝이 없고 무엇이 낫다고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두 가지 차이점은 아는 게 좋겠다. 브랜드로 통일된 쌀들이 지역명의 일반 쌀보다 재배 노력이 많이 들어갔다는 점이 하나.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정을 언제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밥을 차지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쌀의 수분량이기 때문이다.
도정한 지 오래될수록 수분량은 줄어든다. 그래서 과거에는 ‘햅쌀인가, 묵은쌀인가’로 단순하게 구분했다. 햅쌀이 맛있었던 이유는 갓 도정해 수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쌀가마로 유통되던 시기, 수확 직후 모든 벼가 정미소로 들어가 일괄 도정하던 시기, 우리에게는 ‘햅쌀’이 최고였다.
요즘은 저장기술이 발전하고 도정기법도 다양해졌으며 포장방식도 크게 발달했다. 이런 환경변화를 종합하면 1)현장에서 갓 도정했거나 도정한 지 1~2주일 내에 먹을 수 있는 쌀을 2)조금씩 자주 구매해 3)적당한 저온냉장으로 보관하며 먹는 것이 가장 좋다.
▶허기, 밥을 맛있게 먹는 것 자체가 평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맛은 밥을 먹는 자세에서 나온다. 밥은 맛이 튀지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으면서 식감을 예민하게 장악하기 때문에 수용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크게 영향을 준다. 허기가 최고의 맛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서양인들은 식탁 위에 빵을 놓고 신에게 감사하는 기도를 하는 게 관습이다. 눈앞의 일용할 양식을 하늘이 내려주었다고 굳게 믿으며 빵맛 자체를 극대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밥상 앞에서 (종교인들 빼고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대신 이 밥을 주신 농부들에게 감사하라는 교육을 받았다. 빵과 밥은 이 출발점에서부터 음미하는 기준이 달라진다. 신의 맛을 음미하는 빵은 노동의 가치를 새기는 밥. 우리는 밥의 맛을 배가시키기 위해 반찬을 늘어놓아야 했다.
그런 점에서 김승희 시인이 제시한 밥의 진짜 속성을 음미하면 밥맛이 꽤 달라질 수도 있다. 그녀는 ‘하늘의 별이 땅으로 내려와 쌀이 되고 그 쌀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는 게 밥’이라고 했다. 말이 안 되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먹는 밥의 진짜 영양소는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아니라 ‘하늘의 별’일 수도 있다. 쌀을 만들어내는 논은 답(沓)이라고 쓰는데 물과 해가 결합된 글자다. 왠지 모르게 통한다. 빵과 밥은 인류가 ‘가장 오래, 가장 싸게, 가장 많이’ 먹어온 식량이다. 지금도 지구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식량이 밀과 쌀이고 이것들이 부족하면 전쟁을 벌인다. 밥을 맛있게 먹는 것 자체가 평화라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임동준은…
식품유통전문지 ‘THE BUYER’ 편집국장이다. 한국식품오픈포럼, 한국푸드시스템연구회, 농협산지유통혁신운동 등을 추진하며 농수축산물의 품질 향상과 유통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FAO(유엔식량기구) 한국협회의 ‘식품과 농수산’, ‘늘푸른신문’ 등의 유통 칼럼을 통해 ‘먹을거리 문화’의 변화 양상을 유니크하게 제시, 식품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