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야기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 하나가 있습니다. 자연을 원통과 구와 원뿔로 다루라는 말입니다. 이 문장은 대개 세잔이 사물을 기하학 도형으로 단순화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소개되고, 그래서 입체파의 예고편처럼 읽힙니다.
그런데 이 말이 실제로 적힌 곳은 1904년 4월 15일에 그가 엑상프로방스에서 젊은 화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네 장짜리 자필 편지가 지금 런던의 코톨드 갤러리에 남아 있는 세잔·베르나르 서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문장 뒤에는 원근과 중심점을 설명하는 구절이 더 이어집니다. 그 대목을 함께 읽으면 뜻이 달라집니다.
왜 거의 20년을 거절당했는가
그의 화면이 당시 심사위원들이 완성으로 인정하던 상태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화가로 인정받는 통로는 국가가 주관하는 살롱이었습니다. 매끄럽게 다듬은 표면, 명확한 윤곽, 이야기가 분명한 주제가 기준이었습니다. 세잔의 그림은 어느 항목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붓 자국이 그대로 남았고 윤곽은 여러 겹으로 흔들렸으며 사과 몇 알을 놓은 정물에 역사화 같은 무게가 실려 있었습니다.
거절은 거의 해마다 반복되었습니다. 다만 전 기간 내내 떨어진 것은 아니어서, 1882년에는 화가 친구 앙토니 기유메의 도움으로 〈L'Événement지를 읽는 화가의 아버지〉가 살롱에 걸립니다. 생전에 살롱에 입선한 것은 이때 한 번뿐입니다. 이 상황에서 그가 계속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재능이나 의지만이 아니라 돈이었습니다. 아버지 루이 오귀스트는 모자 사업으로 재산을 모아 은행가가 된 사람이었고, 아들이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지만 결국 생활비를 댔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물려받은 재산은 그를 시장의 평가에서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