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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절기 자료모음
나팔절
법에는 성문법과 불문법이 있다. 성문법은 문자화되어 있는 법이다. 문자화된 법에도 몇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법제 과정에 있어서 문자로 된 근본 성문법이 있고, 다음에 법제 과정에 성문화 되어 있지 않고, 사용되어 내려오다가 후대에 성문화된 것이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예를 찾아 보면 십계명 같은 것은 근본적 성문법이었고, 신명기의 법은 후기 성문법이라 하겠다. 그러나 불문법은 문자화 되어있지 않는 법이다. 이 법은 원시시대만 아니라 그 후에 문명한 시대에도 있었다. 그것은 관습이나,규레나, 규칙뿐 아니라 국가의 제법 가운데도 이런 것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이상에서 성문법과 불문법을 거론한 것은 우리들이 논하고 있는 절기들이 위의 법중에 어느것에 속하는가 이다. 이는 틀림없이 성문법에 속하는 것 같다. 또 성문법 중에도 근본법에 속하는것 같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시고, 모세는 그것을 기록하여 성문화하고, 다시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서 광야 40년간에서만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서 가지는 생활의 표준과 법이 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1. 나팔절의 유래
나팔절은 성경에 기록한 대로 지켜 내려왔다. 그러나 어떤이는 "이 나팔절은 포로 이전 초기 이스라엘에서부터 가장 중요시하던 것으로 이 축제는 왕들이 주관하던 것이기 때문에 왕국이 멸망함에 따라 이것도 없어졌다"고 한다. 109) 그러나 이것은 잘못고찰하고 이해한 것 같다. 그 이유는 레위기에는 "왕"이나,"제사장"이란 인물에 제한하지 아니했고, 전 이스라엘에게 명한 것이다.또 이스라엘은 정교가 분리된 나라가 아니라 정교가 일치된 신정국가였음으로 왕이 이 절기를 주관했다고 볼 수 없고, 왕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종교의 지도자에 의하여 주관된 것 같다(느8:13).또 왕국이 망한 후에 이 절기가 없어졌다고 하나. 성경에는 왕국의 멸망 후에도 이 절기가 지켜진 것이 나타나 있다(느8:1-12). 즉 바벨론에 포로되어 가서 70년동안 지내다가 환국하여 성전 건축과 성채 건축을 마치고 나서 제사장 에스라와 정치적 지도자 느헤미아의 지도 아래에서 거행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나팔절은 이방의 지배밑에서 집회와 축제에 대한 금지등, 좋지 못한 여건 때문에 거행하지 못했을 뿐이요, 결코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것으로 볼 때 그들은 신.구약중간사인 마카비시대에 자유로운 그 환경에서 이 절기가 폐지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2. 나팔절의 어의
"쇼파르", 혹은 양각나팔, 곧 옛적 이스라엘의 나팔
나팔절은 이 절기에 나팔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모으고,절기일에 나팔을 불어 지켰다. 그렇다고 이 절기에 나팔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제사들도 드렸다. 그러면 "나팔절"이라 한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 이유는 다른 절기에서 볼 수 없는 특징으로 나팔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박윤선 목사님도 그의 주석에서 "그때에는 나팔을 부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기쁨을 선포하는 의미이다 110)고 했다. 레위기 23장 23-25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달 1일로 안식일을 삼을찌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성회라.아무 노동도 하지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라"고 했다. 성경에 의하면 나팔은 한가지만 아니다. 그것은 두가지이다. 그 모양도 모양이려니와 그 재료에 따라 분류하게 되었다. 즉,나팔(민10:2)과 양각 나팔(출19:1325:3)이다. 은나팔은 금속제이고,양각 나팔은 동물의 뿔로 만든 것이다. 위의 은 나팔은 국가의 행사에 사용한 것 같고, 일반 회중의 회집과 중대한 국가적 사건에 사용한 것 같다(민10:2-).그러나 후자인 양각 나팔은 종교행사와 하나님께서 병한 절기,즉 성회때에 사용한 것 같다(출19:1325:9-).
레위기 23장 24절에 "나팔을 불어"는 위의 구절과 민수기 29장 1절의 원어에는 없다. 즉 원어에 나팔에 관한 단어가 사용된 것이 없다.
원문에는 "기쁘게 소리 지른다"(투투ㅇ)라는 말이 있을 뿐이다.그러나 그 말에 나팔(쇼팔)이란 단어를 부가하면 "나팔을 불어"라는 의미가 있다.111)레위기 2장 9절에는 (쇼팔 투루ㅇ)로 되어있다. 그러면 왜 레위기 23장 24절에 (쇼팔)이란 단어가 없는가?영어 성경에 "A memorial of blowing of trumpets'(K.J.V,A.S.V.)와 "Amemorial proclaimed with blast of trumpets"(R.S.V.)로 되어 있다. 우리의 한글 성경에도 마찬가지 이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이들 성경이 "나팔"이라고 번역할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이다. (투루ㅇ)는 (루아)에서 나온 여성 명사 단수이다. 그런데 그(루아)는 Kal.V(칼)로써 "크게 소리낸다"는 뜻이 있다.즉 그것은 비상 경보시에나 전쟁시에 "외치는 소리도"된다. 그것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변질이 되어 여성 단수 명사인 (투루ㅇ)에서는 "즐거울 때만이 아니라 전쟁시에 외치는 외침"이 되고 또 한가지는 "나팔의 소리로 된 것 같다.112)
그러므로 위의 단어를 '나팔을 불어"라고 번역한 것은 그리 큰 잘못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한가지 주의 할 것은 원어에 "나팔"이란 의미가 없고,전쟁이나, 기쁜 절기에 즐거워 외친 소리가 후에 변형한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3. 나팔절을 지키는 방법
레위기 23장 24절에 의하면 나팔절은 유대교 일역(日曆)으로 7월1일로 되어 있다. 이 날은 안식일이다. 유대교 일역 7월 1일인 이 안식일은 민역으로 신년 정초였다고 한다.113) 이에 대하여 김응조 목사님도 그의 저서 "하나님의 장막"에서 같은 견해를 취했다.
그러나 이 견해에 반대하고 "다른 견해를 취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114) 이에 대하여 우리의 취할 입장은 유대교역인 7월 1일이 민역으로 정월 1일이였다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출애굽 이전에는 7월 1일이 민역으로 정월 1일이였다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출애굽 이전에는 7월이 민역으로나, 교역으로나 세수(歲首)이었다.115)고 한다. 그 견해가 근거있는 것은 출애굽기 12장 2절에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달이 되게 하라"고 한 것으로 보아 과거에 사용하던 모든 년,월,일을 창립하여 지키고, 새로운 년,월,일을 창립하여 쓴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전자의 주장도 어느정도 신빙성과 정당성이 있다고 보아진다.
그리고 그들이 모이는 장소는 제한이 없는 것 같다. 어느곳에서든지 성회로 모이고 화제를 드리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레23:24-25) 더욱 이해가 되는 것은 그들은 광야 생활을 거쳐 가나안에 들어와 정주 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경과했을 뿐만 아니라 통일국가가 세워지기까지는 막대한 시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의 성회를 한 곳에 계속하여 모일 수가 없었다. 더욱귀한 것은 하나님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기를 요구하는 분이시므로 장소의 제사닝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된다. 이 진리에 대한 증거는 (1) 예수님이 사라미라아 수가성 여자에게 하신 말씀이나 (요4:1-38), (2)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밑에서 한 일을 주님이 찬양한 것이나(요1:45-51),(3)고넬료가 자기 집에서 기도한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뵈었고,베드로를 청하여 성령을 받은 일이나(행10:1-끝),(4)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천국의 영광을 본 것이다(계1:1-).끝으로 베드로가 욥바 피장 시몬의 지붕에서 기도하는 중에 본 환상이다(행10:9-16).
이 절기를 지키는 방법은,
(1) 안식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안식일이기때문이다.
(2) 나팔을 붐: 이 절기의 특징은 나팔을 부는 것이다. 나팔을 부는 것은 이 날뿐 아니라 유대인 행사에 매우 귀중한 것이다.116)
(3) 화제를 드리는 것: 그 화제는 민수기 29장 2-6절에 나타나 있다. 화제의 내요은 향기로운 ㄱ)번제, ㄴ)소제,ㄷ) 속죄제 등이다. 민수기 27:2-6절과 28장3-8을 보면 번제는 상번제이고, 기타 두 제사인 소제와 속죄제는 그 규례에 따라 향기로운 화제를 드리게 되어 있다. 이들 제사에 대하여는 위의 기록한 7대 제사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위의 제사를 드릴 때 백성의 자세는 느헤미아 8장에 나타나 있는데 a) 광장에 모이고, b) 율법책을 낭독하고, c) 하나님께 경배하며, d) 식물을 나누어 먹으며, e) 크게 즐거워 한다(민29:1,대상 15:24,대하5:127:"6,29:26-28) f) 7일동안 절기를 지킨다. 이 때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은 나팔을 부는 것이다.
4. 나팔절의 영적 의미
위에서 나팔절의 시일은 유대교회역으로 7월1일이고, 민역으로는 정월 초하라고 하였다.이것은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보여 준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서간이나.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는 ㅅ로운 기원이 수립되는 때이다. 즉 과거는 지나가고, 새 역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인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은 하나님의 게획과 섭리 속에서는 계속이나, 지상의 인간의 역사는 끝나고 새역사, 곧 신천신지가 시작되는 그 정점이 이 나팔절의 영적의미이다. 그 절기가 그런 의미를 가지는 것은 나팔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와 전쟁에 나갈 때와 전쟁에서 승리하여 승전 귀국 할때에 사용했다. 그러므로 영적인 뜻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로 인하여구속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하여 여적 전쟁에서 마귀와 그의 종자들을 정복하고 완전 승리하고, 천국의 나팔을 불고, 천국 승전가를 부르며, 천국에 들어가는 통쾌한 역사의 전환점인 것 같다. 그 장소는 초지역적이다. 어느 한 곳에 제한되어 있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되어지는 승리의 절정인 것이다. 이 승리의 절정은 학자들에 의하여 두가지로 나누게 된다.
첫째는,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주는 것이므로 이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나타낸다117)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김응조 목사는 '나팔은 신령한 의미에서 복음의 나팔을 상징함이니, 신년 첫널부타 복음을 전하므로 그리스도의 피로소 구소5ㄱ함을 얻은 성도들이 마땅히 지킬 의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고 했다.118)
둘째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보는 것이다.이것은 성경에 근거한 이론이다. 성경에 나팔은 복음선포도 의미하지만 그 보다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같은 깊은 관계를 가진다. 즉 이것은 복음선포를 비유한 것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의재림 때에 있을 것을 나타낸 것이 더욱 많다. 그 성구는 구약에 나타난 것은 R.Young의 Concordacanc 페이지 1003-1004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신약에 나타난 성구는 마24:31,고전 14:815:52,살전 4:16,히12:19,계1:104:18:26139:14 등이다. 위의 성구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직접적인 기록이다. 그러므로 나팔절은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으로 보는 것이 온당한 것 같다.
셋째는 위에 기록한 두 이론의 절충을 취하는 것이다. 즉 복음선포와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의 "여호와의 날"과 같이 보며 이 "여호와의 날"은 "말세"이다. 신약은 이 말세를 구분하여 보여 준다. 즉 그리스도의 초림, 복음선포 사역, 그의 수난,그의 부활, 그의 승천, 그리고 그의 재림과 심판등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하나의 구속사이다. 박윤선 목사는 이것은 어떤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뜻이 아니고, 미래의 기쁜 일을 내다보며 기억한다는 뜻이다. 곧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서 그의 재림의 시대를 내다 봄이다(A.Bonar)"고 하였다. 이 견해는 복음적이고, 보수적인 학설이다. 끝으로 기타 학설이다.
a) 유대인 랍비들은 세계창조의 기념이라고 한다.
b) 필로와 기타 유대교와 기독교의 어떤 학자들은 율법 반포의 기념이라고 한다.
c) 유대인 공회는 이를 하나님에게 족장들의 공로와 그들과 하나님의 언약을 기념함이라고 한다.
d) 이스라엘 자신의 존재를 하나님께 기억시켜 신약에 의한 은혜의 시여를 간구 함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 학설들은 우리에게 참고가 될 것 뿐이다. 우리가 취할 입장은 위의 둘째와 셋째의 학설이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이나.또는 복음선포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시기까지로보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큰 비중이 둘째 학설에 둔다. 즉 이 나팔절은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하여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주를 중심한 생활을 하며, 주님의 맡기신 사명에 충성하며 헌신하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다가 그리스도가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과 함께 재림할 때에 그를 맞아 환희와 영광을 누리는 상태 즉 영적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와 개선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오순절
오순절은 레위기 23장 15-22절에 기록되어 있다. 또 출애굽기 34장 22절과 신명기 16장50에도 기록되어 있어서 서로 비교하여 보면 잘 알 수 있다. 오순절은 무교절이 지난 후에 50일만에 맞이하는 귀한 절기이다. 다시 말하면 오순절은 무교절 후 안식일이 지나서 일곱 안식일(7주간)이 지난 일이다. 이 절기는 유대인들에게 잘 알려진 절기로 신약 예수님 당시만 아니라 초대 교회시대와 현 우리시대에도 지키는 귀한 절기이다. 비록 시일과 의미는 다소 차이가 있을런지 모르나 오순절이란 절기와 명칭은 변하지 않고 있다.
1. 오순절의 어의
오순절은 출애굽기 34장 22절에서 7.7절 곧 맥추절의 초실절을 지키고"라고 했다. 우리는 이 성경 귀절로 그 오순절의 의미를 밝히 알 수 있다.
또한 신명기 16장9-11절에도 말씀하고 있다. 즉 "7수를 계수할지니,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7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7.7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로 되어 있다. 이 말씀을 풀이하면 무교절 때에 초실절 즉 처음 익은 이삭을 거두어 하나님께 요제로 드린 후에 7주를 계수하게 되었다. 다시말하면 1주간이 7일이므로 거기에 다시 7주간을 곱하니 49일이 된다. 그 49일이 지난 다음날이 50일이 된다. 이 50일이 되는 날,오순절에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축복에 따라서 예물을 드리게 되었다. 그 예물은 맥추감사 예물이다. 그래서 출애굽기 23장16절에 "맥추절"이라고 호칭하게 되었다. 그 절기는 유월절을 지나 50일만에 지키게 되었다. 그래서 오순절(순=10일)이 된다. 오순절은 신약에서만 사용된 명칭이다. 이 "오순절"은 헬라어로 인데 인 50 이란 말에서 변형된 말이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오순절이란 단어 대신에 "추수절" 히브리어로(칵 학카칠)이다. (칵)는 축제일이다. (하카칠)은 (하)라는 정관사 "그"(the)와 (카칠)이다.(카칠)은 에서 나왔는데 그 뜻은 '벤다''획득하다''수확하다'는 동사에서 나와서 "열매를 거둠""추수함"이라는 명사로 된 것이다. 이 단어는 곡식이 익어 거두고 수확하는 것을 이름이다. 특별히 첫 열매를 거두는 절기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 맥추절(추수절)은 첫 곡식을 거두는 절기이나,신약의 오순절은 절기로 보아서 첫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때이다. 영적으로는 신령한 첫 곡식을(거두어 즉 베어) 수확하여 들이는 때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역사로 천국의 곡식을 거두어 지상의 교회에 들이는 절기이다.
2. 오순절의 유래
오순절은 초실절 즉 맥추절의 신약적인 명칭이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 자손의 7대절기 중의 하나이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 자손이 형성되어 애굽에서 속박을 받아 멸망 직전에 자유와 구원을 받아 약속의 땅 가나안에 환향함으로 시작이 되었다. 이 절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모세에게 내렸는데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였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출23:16)고 했다. 즉 이는 이미 곡식을 파종하고, 그것을 거두어 들이게 되어서 명령한 것이아니라 미래에 가나안에 들어가서 파종 소득할 것을 예상하고 명한 것이다. 그 증거는 출애굽기 34장 27절에 "7.7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고 한 것으로 알 수 있다"(민28:26,신16:9-11 참고). 이 명령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 갔을 때에 그 가나안에서 실천되었다(사9:327,렘48:33).신약에 와서 오순절로 된 곳도 행2:120:16,고전16:8들ㅇ. 구약의 맥추절이 신약의 오순절로 개명되기까지는 1500년의 역사가 흘러 갔으나 그 기간 중 주전 400년 까지는 이 맥추절이 오순절로 된 증거가 없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는 개명된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시대는 성경의 역사를 벗어 난 "중간사"시대이다. 이 시대에 대하여 신약과 구약은 침묵을 지키는 암흑시대이다. 이 시대에 맥추절이 오순절로 개명이 된 것ㄱ이 아닌지 모르겠다. 위의 "중간사"시대에 마카비시대와 로마의 통치시기가 있었는데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절기를 "오순절"이라 개명한 것 같다. 그것이 신약시대의 전승이 되어 구약시대에 없던 용어들이 신약시대에 돌변적으로 나타난 것일 것이다. 비단 그 명칭만 아니라 여러 증거가 있다. 구약 고고학과 신약 고고학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특별히 한가지 예를 들면 사해사본과 그 수도원이다. 그것들이 신약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가?105)
그러므로 그 신약의 오순절은 구약의 맥추절에 근거한 것이다. 그것이 개칭되기는 중간사 시대인 것 같다. 그 오순절이 영적인 면에서 성취되기는 사도행전 2장1절이다. 즉 초대 교회에 성령강림으로 완성되었다. 그것이 후대 교회에 유명하여 지기는 그 성령 강림으로 초대 성도들이 변화되고 능력을 받아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결과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은 성령강림절이다.
3. 오순절을 지키는 방법
이 오순절은 맥추 추수를 했을때 지키게 되어 있다(출34:22) 그 추수는 여러 날이 걸리게 된다. 그 기간에 어느날을 택하여 이 절기를 지킬것인가에 대하여서 신명기에 말씀하고 있다. 신명기 16장 9절에 보면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7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라"고 했다.
이 말씀을 보면 추수를 완전히 마쳤을 때에 이 절기를 지키게 된 것 같다. 그 이유는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7주간을 계수하므로, 그 추수 시작에서 약 50일 후이면 이미 그때는 추수가 끝난 때가 아니겠는가? 그때는 오랜 기간임으로 추수만 아니라 타작과 저장 관리도 끝난 때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위하여 준비한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가지고 제단에 나아가 드린것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명기 16장1절에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했다."
그리고 이 때 절기를 지킬 수 있는 자의 신분에는 제한이 없다."너와 네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신16:11) 지킬 것으로 되있다. 본문이 보여주는 교훈은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이 지키게 된 것이다. 즉 이스라엘 자손만이 아니라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한 자들이다. 성경에 보면 "노비"라든가 "객"과 고아와 과부도 다 지키라고 했는데 이들 중에 이방인도 있을 수 있으나, 한 가지 공통된 것은 "이스라엘에게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속한 자는 다 지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자는 이날을 알 수도 없고, 지키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속한 자는이 절기를 어느곳에서 지킬 것인가? 그 장소는 택한 곳이다. 그 택한 곳은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신16:11)고 했다.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은 곧 성소이다. 이스라일에 가나안에 들어 갔을 때는 "성막"이었다. 왕정시대에는 그 "성막"이 "성전"이 되었다. 이 "성막"이나 이 "성전"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며, 성먼이 모여 교제하며 성업을 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그 예물을 가지고 가서 지키라는 것이다.
끝으로 이스라일에 그 택한 곳에서 제물을 드리는 규례는 어떠했는가?
(1)소제 : 레위기 23장15-
에 보면 이 날에 새 소제물을 여호와께 드리게 되었다. 그 소제물은 에바 십분지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어 드리되 그 떡 두개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다(레23:17).
(2) 번제:위에 기록한 떡과 함께1년되고, 흠 없는 어린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수양 둘을 드린 것은 전제이다. 이상 소재와 전제를 겸하여 드리는 제사는 번제이다. 그러므로 두번째는 번제를 드리는 것이다(레23:18).
(3) 속죄제:또 수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게 되어 있다(레23:19).이 속죄제는 레위기 4장 23절에 기록되어 있고 위에 기록한 "성막 제사"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4) 화목제:위에 기록한 소제 다음에 드릴 제사는 화목제이다. 이 화목제는 일년된 어린 수양을 드리게 되었다. 레위기 3장 1절 이하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위의 "성막에서 거행된 제사"를 참고 하기를 바란다(레23:18).
(5) 요제:이상의 네가지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드린 것이다. 이하의 것은 위의 네가지 제사를 드린 다음에 제사장이 드릴 제사이다. 그 제사는 바로 이 요제이다.이 요제는 첫 이삭의 떡(소제)과 두 어린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오제를 삼게 되었다. 그 후에 요제물은 제사장에게 돌려 제사장이 먹게 되었다(레23:20).
그러므로 오순절에는 소제,번제,속죄제,화목제 그리고 요제,즉 다섯가지 제사를 드렸다. 주의 할 것은 이 날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등도 하지 않게 되어 있다. 오직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은총만 사모하며, 받아 기리는 날이다(레23:21).
4.오순절의 영적 의미
출애굽기 19장을 보아 그 날은 애굽에서 나온지 50일째 되는 날이었으며, 그날에 율법을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완전히 조직하여 주신 것 같이 오순절에 성령을 주심으로 예수 안에서 교회를 조직하셨다"고 데오도ㄹ(Theodoret)는 말했다.106)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첫 열매를 드리는 날(민28:26) 이 이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속죄를 받고, 구원받고, 성령으로 중생한 영적인 열매를 주어 창고인, 교회에 끌어 들이는 첫 추수기였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시행된 5대 제사를 보면 첫 곡식을 소제로 드린 것은 주님으로 인하여 부름 받은 초대 성도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다가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연후에 한 곳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다락방에 모임). 그들이 모인 곳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속죄와 구원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속죄제). 그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그들에게 주시었다(화목제).성령을 받은 그들은 변화되었고 능력과 진리와 성령의 사람이 되어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선민이 되게 했고, 그리스도에게 이끌어 드렸다(요제). 이 모든 일은 우연하게 된 것이 아니라 떡 두덩이가 되는 구약과 신약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약속과 주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은 성령의 강림으로 초대 예루살렘 교인들이 변화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가 탄생한 탄생일이 되지만 더욱 귀한 것은 신약과 구약의 말씀 진리가 완성이 되고, 그 진리의 기둥이 세워진 입주절이라고 하겠다.이와 같이 귀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귀한 성일을 지켰다(행20:16,고전16:8).
교부시대 이후로 부활절로부터 오순절까지의 기간은 신자에게 세례주는 시기로 되었으니, 곡식을 추수함 같이 교회중에 산 영혼을 추수함이 된 것이다. 오늘도 이 의미로 오순절, 즉 성령 강림절을 지키는 것이다.107) 우리는 주의할 것이 있다. 이 오순절을 너무나 지나치게 억지로 해석하고, 인위로 뜯어 맞추는 일을 피하여야할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이런 과오를 많이 범하는 것 같다.108)
그러면 우리는 성령에 나타난 오순절,즉 성령 강림절을 살펴보자! 구약에는 요엘서 2장 28-32절에 잘 기록되어 있다. 위의 그 예언은 신약시대에 와서 성취되었다. 사도행전 2장 1-4절을 보면 성령 강림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낳았다. 그러기 때문에 그 성령 강림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산모요,요소였다(행2:37-47).
위의 성령 강림은 예루살렘 교회에 제한되지 않고, 가이사라의 고넬료의 집에 임했고, 또 에베소에 임했다(행10:).또 갑자기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 닥친 핍박의 바람은 복음의 씨를 간직한 성도들을 사방으로 흩어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그 영적 알곡을 영혼의 창고인 교회를 세워 그 영혼들을 거두어 드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오순절은 영적 초실절이라 하겠다. 이 절기는 또 영적 감사절을 예표하여 준다. 즉 앞으로 닥쳐올 가을에 걷어들이는 마지막 추수, 즉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되는 심판도 교훈하고 있다.
무교절
이 무교절은 유월절의 계속이라고 할 수 있다.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날 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성경에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합하여 한 이름, 즉 무교절로 호칭한 곳이 있다(출 23:12-1934:18).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실천한 역사적인 시간을 기록한 곳이다. 즉 모세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함께 지켰기 때문이다. 그 이스라엘은 모세의 지도를 받아 유월절과 무교절을 혼동하지 않고 순차대로 잘 지켰다.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간을 지내는 동안에 이 절기를 지키고, 애굽에서 그 절기에 직접 참가했던 모세를 비롯한 기성세대가 세상을 떠난 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세대들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바로 분간하고 잘 지킬 수 있겠는가? 그렇지 못할 염려가 많다. 그래서 후세대에게 주는 바른 교훈과 제사와 절기로 맡아 집행하는 지도자들에게 바로 가르치기 위하여 위의 절기를 분별하여 기록한 것 같다.
그러므로 레위기 23장을 보면 위의 두 절기가 각각 상세하게 분별되어 기록한 것이다. 또 영적으로도 유월절과 무교절이 준느 의미와 기독론적 사건이 다르다. 실로 유월절과 무교절은 하루 또는 몇 시간의 차이가 있으나 영적인 의미는 크며, 기독론적 입장도 크게 다른 진리를 보여 준다.
1. 무교절의 어의
무교절은 히브리어로 칵 함마촐로 되어 있다. 이 무교절은 유월절과 달리 두 단어로 있다. 위에서 생각했지만 유월절은 페사크라는 단어였으나,무교절은 칵라는 단어와 함마ㅊ라는 단어가 결합한 합성 명사이다. 칵은 위에 기록했지만 축제일(Feast)또는 경축일(Feastival)이다. 이것은 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므로 칵은 종교적인 기념일이다. 함마ㅊ는 하라는 정관사 즉 "그"라는 단어이고 마ㅊ는 마차츠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이다. 이 마차츠는 "빨다"(to Suck),"얻다","흡수하다"는 뜻이 있다. 이러한 동사에서 여성명사 마ㅊ가 되어 "누룩없는 떡"또는 "누룩없는 과자"가 되었다. 이런 뜻이 있게 된 동기는 "억지로 부치거나, 사용한 것이든지 또는 그 어근에 들어있는 의미에서 추측하여 부드럽게 표현한 것"같다는 견해이다.
여하튼 칵 함마ㅊ은 "그 누룩없는 떡의 축제일"을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주식이 분식이다. 그들의 분식에는 누룩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무교절만은 누룩을 넣지 않고 또 뜨지 않은 떡을 만들어 먹는 제사일이다.
또 성경에 보면 이 절기의 기간은 7일간인데 그 기간에 누룩을 제하고, 누룩 없는 음식을 먹으며 첫날에(1월15일) 성회로 모이고, 제 7일 끝날에 다시 성회로 모인다. 또 이 일주일 간에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화제를 드리었다(레 23:1-8).
그러므로 그 절기의 기간은 일주간이다. 그 기간은 누룩 없는 생활과(출13:7) 하나님께 성회로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출 13:9-10)매일 화제를 드리는 날이다.
2. 무교절의 유래
무교절이란 말은 출애굽 이후(출 13장)에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출애굽기 12장은 애굽에서 출발 장이고, 출애굽기 13장은 애굽에서 떠나온 장이다. 이 "무교절"이 애굽에서 장인 출애굽기 13장에 나타나 있다. 그 이유는 출애굽기 12장에서 행한 무교 일(日)을 기념하여 절기화하여 절기로 지킬 것을 명한 때문이다. 이전에는 무교절이 없었으나 그 무교절의 요소가 되는 무교병을 사용한 때가 몇 곳에 기록되어 있다. 그 첫째가 창세기 19장 3절이다.이곳에서 무교병이 사용된 경우는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으로 망하기 전날밤 롯의 집에 찾아간 하나님의 사자들과 롯이 나눈 떡이다. 그 예식 후에 천사들에 의하여 롯의 식구들이 구원이 되여 죽음과 멸망을 면하고 생명을 얻었다. 둘째는, 출애굽기 12장 8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기 전날 밤에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어 먹는 그 밤에 무교병을 먹었다. 즉 애굽인에게는 하나님의 재앙인 죽음이 임했으나, 이스라엘에게는 재앙이 면하여 지고, 대적에게서 생명과 자유를 얻는 고귀한 시간적,공간적인 절정에 사용된 떡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한 가정과 한 민족의 차이, 그리고 장소와 시기의 차이 뿐이고, 그 근본 원리에 있어서는 같다. 그 내용은 양자가 다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천사가 죄인들을 죽이는 가운데서 그 선택한 자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고 그 자리에서 구원과 자유를 얻는 절정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것을 대대로 기념하기 위하여 정한 것이 무교절이다. 이 절기는 (1) 하나님이 명하신 바이다(출13:623:15...).99) 또 (2) 모세가 공포한 것이다(출12:ㅣ8,15,17,18,20,29....).100) 이스라엘이 철저히 지킨 것이다(수5:15,삿6:1920:21,삼상 28:24,왕하 23:9,대상 23:29,대하8:1330:13- 35:17,스6:22,겔45:21). (4) 예수님과 그 당시에 지켰다(마26:17,막14:114:12,눅22:17). (5) 사도를 당시에 지켰다(행12:320:6).
그러므로 이 무교절은 출애굽 이후에 공포되어 계속 지켜 내려 오되 이상에 기록한 바와 같이 예수님 이후 사도시대까지 계속 수행되었다. 그런 어떤 학자들은 "가나안인의 절기로서 농업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으며, 보리 추수의 시작을 축하라는 것이 이 무교절의 목적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절기를 받아 드렸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신들에게가 아니라 여호와께 추수의 감사 제사를 드렸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이 절기를 받아 드렸다"고 한다.101)
그러나 위 학설은 믿을 수 없고, 또 사실 무근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양자의 관계는 도저히 불연하므로 그 이야기는 무지이며 언어도단이다. 그 이유는 양자의 목적을 살펴보든지, 그 방법과 의미를 살펴보든지 그 대상등이 전혀 무관할 뿐 아니라 이하에서 생각하겠지만 영적인 의미로 보아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무교절을 지키는 방법
이 무교절은 1월 15일부터 시작이 된다. 그 절기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유월절의 계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유월절은 정월 14일 저녁으로 끝이 나나, 그 다음 정월 15일부터는 무교절이 시작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의하면 유월절은 무교절에 포함되어 "무교절"로 총칭되고 있는 예가 여러 곳에 있다(출23:12-1934:18).분명히 양자는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볼 때 계속됨을 보고 하나로 여긴것 같다. 이 무교절은 1주간 계속된다(레23:6,출12:19). 무교절을 지키는 이스라엘 이 기간에 없게할 것과 있게할 것이 있다.
(1) 없게할 것,첫째로 누룩을 자기 집에 없게하는 것(출12:1912:5).그러므로 이 기간내에 이스라엘은 누룩을 넣지않는 음식인 무교병을 먹게한 것이다. 첫날에 누룩을 제하되 전적으로 집에서 누룩을 제하는 것이다(출12:1520,레23:6).그 때에 이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고 했다(출12:1519).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타국인도 마찬가지로 유교병은 금지 되었고, 또 그것을 먹는 날에는 끊어진다. 이 "끊어 진다"는 단어는 "그가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이 이상 큰 법은 없는 것이다.102)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서 끊어 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이 되고, 형벌과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불결하고 거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변화와 죄에서 떠난 생활이 없음으로).
둘째는, 노동을 하지 말것이다. 그 노동이 없는 날은 제한이 되어 있는데 무교절 첫날과 제7일이다(출12:16,레23:78,민28:1825). 그 이유는 거룩한 날의 처음과 끝이 되고,또 거룩한 성회가 있기 때문이다.이 거룩한 성회에서 전심 전력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교제케 하기 위함이다. 만일 이 날에 노동을 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분산되고, 또 참된 성회를 가지거나,전심 전력할 수 없지 않는가?
(2) 이 무교절 기간에 있게 할 것은 다음 몇가지이다.
첫째는, 성회로 모이는 것이다(레23:78,출12:16). 그 기간은 일주간이다. 그 일주간이 다 무교절에 속한다. 그러나 그 7일중에 첫날과 제7일에 성회로 모이게 되었다.민수기 28장 19-23절을 보면"성회로 모일 때에 "수송아지 두로가 수양 하나와 일년된 수양 일곱을 다 흠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려 번제가 되게할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를 드리고, 어린양 일곱에는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수염소 하나로 속죄를 드리되 아침의 번제, 곧 상번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고 했다.
이것으로 알수 있는 것은 성회 때에 3대 제사를, 즉 번제, 소제 그리고 속죄제를 드릴 것을 말씀하신다. 이 제사들은 위의 "7대 제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둘째는 무교병만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절기에 이스라엘은 무교병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 즉 순수한 곡식을 가지고 정결한 음식물을 만들어 먹고, 성회를 지키며, 그 외의 날은 일할 것이다 (출12:1520,레23:6,출13:623:1534:18,민28:18,신16:38).
이 무교병은 곧 고통의 떡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양을 희생함으로 재앙을 면하고, 또 그 애굽에서 구원을 받아 급히 나온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신16:3).그러므로 이것은 애굽의 속박에서 자유과 구원을 기념하는 기념물이라 하겠다.
셋째는,일하는 날이다. 즉 첫째 날과 제7일의 성회를 제하고는 다 일을 하게 되어 있다. 즉 일하는 날은 둘째 날에서 제6일까지이다(출12:16,레23:78). 이 날의 일은 애굽의 고통스러운 사역도 의미하지만, 보다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할 때의 그 일을 기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양을 잡는 일도 일이려니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일을 더욱 잘 기억하며, 하나님의 일에 동참함도 뜻하는 것이다(출12:17).
위에서 생각한 것과 같이 이 절기에 주된 것은 누룩 없는 떡, 즉 무교병이다. 그러므로 무교병을 먹고 하나님께 나가서 성회에 참여하고 힘써 일할 것이다.
4. 무교절의 영적 의의
유월절의 영적인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으로 인하여 죄인들이 그 공로로 속죄와 구원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유월절의 계속인 무교절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계가 없을 수 없다.
이 절기는, 예수그리스도의 사역 중에서 특별히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 나신 부활의 절기를 의미한다. 그 이유는 이하의 영적 뜻에 기인한 것이다. 즉 먼저 누룩없는 떡이다. 성경에 보면 이 "누룩"은 죄와 악을 의미한다(고전5:6-8)그리고 누룩은 죽음을 의미한 때도 있다. 그 이유는 죽음은 모든 것을 썩이고, 냄새를 풍기고 이용이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같이 누룩도 같은 작용을 한다. 그리고 죽음은 죄의 댓가요, 악의 열매이다(롬5:216:23)."떡"은 주님이시다. 요한복음 6장 22-29절에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누룩없는 떡은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악이 없을 뿐 아니라 죽음이 그를 주장하지를 못하고 다스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생명과 부활의 능력만이 작용한다. 그러기 때문에 죽음에서 부활하셨다.즉, 주님은 의롭고 거룩하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근본이심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떡을 먹는 이스라엘 자신들에게 의롭고 거록함만이 아니라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거룩한 떡에 접촉된자는 거룩하여 진다"는 레위기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신약시대에 제2이스라엘 되는 성도가 생명의 떡이 되시는 주님과 영적인 관계를 가질 때,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을 때, 의롭고 거ㄹ함만이 아니라 영생을 얻게 됨을 의미한다.그러므로 천하 다른 이름으로 구원이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그 구원에는 칭의,거룩함, 생명이 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그 구원에는 칭의,거룩함,생명이 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 안에 주어지는 것이다 (요6:39-54,롬8:10-23,고전15:12-57).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 22-29절에 주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 되심을 말씀했다. 우리가 주의할 것은 이 무교절은 1주간 계속됨이다. 그 첫날과 마지막 날에 성회로 모이고, 다음 둘째 날에서 여섯째 날까지 5일간은 일을 했다. 이 날에 무슨 일을 했을까? 이 날에 한 일은 레위기 23장 9-14에 의하면 초실절을 지켰다. 즉 이스라엘이 처음 익은 보리단을 거두어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은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는 날이다. 위 성경에서 하나님께 드림이 된 처음 익은 곡식단은 무엇인가?이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고 했다.103)
이런 첫 열매 되시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그 부활의 생명과 소망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5장 23절 이하에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자"이라고 했다. "이것은 일반 신자들의 부활을 보장하는 것이기도 하다.104)
그 부활은 전체 성도에게와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도 다 미친다(행 26;23). 물론 부활 때에 제1차 부활과 제 2차 부활이 있다. 그러나 부활의 역사는 하나이다.
우리들이 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살펴보면 시간적으로 전주간과 차주간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그와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관계도 역시 시간적인 차이가 있다. 즉 주님께서 전주간에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는가 하면 차주간인 안식일 후 첫날에 부활하셨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도 주안에서 죽으나 사나 주안에서 사는 부활의 영광이 있다. 우리는 이 소망중에 살고 있다(고전 15:12-57,딤전 4:14-16).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무교절에서 배운 진리가 크다. 주님의 행하신 일들은 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섭리에 따라서 기록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림만 아니라 그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도 다 그렇다. 앞으로 생각할 성령의 강림과 주님의 재림과 심판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되어진 것이다. 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의 확증이요, 의롭게 함과 거룩함과 생명의 유대를 증거하는 증서이다.
유월절
그림 : 유월절 잔: 유월절 식사 정경을 조각한 17-18세기의 잔으로 모양은 교회의 성찬식에서 사용하는 성찬배의 유사하다. 이것은 유대인의 유월절 축제시에 사용되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모세가 애굽에 들어가 바로 앞에서 속박과 고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서 그 기원을 가진다. 만약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한 죄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일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언이며,그 그림자이다. 또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약의 유월절의 실체요, 완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유월절의 실체요,완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유월절의 역사는 안식일보다 짧으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가진 절기이다.
1. 유월절의 어의와 의의
유월절은 출애굽기 12장 1-57절에 그 기원과 방법과 그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근거하는 레위기 23장 4-5에는 유월절 절기를 지킬 것을 명하고 있다. 이 유월절의 뜻은 출애굽기 12장 13절에 나타나 있느데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으나 이는 해석이요, 유월절의 근본 어의는 아니다.
이 유월절은 페사크이다. 그것은 파사크에서 파생한 남성 명사이다. 파사크는 동사로 "넘어 간다"(to passover),"뛰어 넘는다"(to leap)로 되어 있다. 그 명사인 페사크는 "유월절"도 되지만 "유월절에 먹는 어린양"도 되며, "유월절 축제일"도 된다. 그러므로 이 유월절은 재앙과 죽음의 넘어 감으로 그것을 면케 되고, 결박과 멸망의 자리에서 '유월절의 어린양'을 잡아 먹음으로 자유와 구원을 받은 날을 기념하고 지키는 명절도 된다.
2. 유월절의 유래
유월절은 위의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애굽에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의 400년간의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떠나오기 전날밤에서 기원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기 12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애굽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출애굽하는 그 해를 이스라엘의 기원년으로 삼고 그 달이 정월이 되게 하였다.
그 유월절이 언제 거행이 되었을까? 출애굽기 12장 6절에 보면 유월절에 쓸 어린양은 흠없고, 일년된 숫컷으로 행하게 되었다. 그 숫컷을 취하여 두었다가 그달, 즉 1월 14일이 될 때까지 간직 하였다가 그 날 해가 질때 그 양을 잡게 되었다. 본문을 보면 월 14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잡게 되었으니, 바로 그 날이 된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하루의 시간 계산을 해질 때부터 그 다음날 해질 때까지를 하루로 잡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그 절기의 절정이 1월 14일 저녁이다. 물론 유월절은 14일만이 아니다. 흠 없고, 일년된 수양을 택하는 그 때부터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를 구어 먹고, 애굽에서 나오는 그때까지인 것이다. 그 기간은 양을 택하는 1월 10일 부터(출1:3) 14일까지인 것이다. 이 절기는 (1) 하나님께서 애굽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는 시간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을 숭배할 뿐 아니라 가증한 죄를 범한 형벌을 재앙으로 받았다. 그 재앙을 맏 아들과 맏 것이 죽은 것이다. 그래서 애굽인들의 간담이 녹고, 마음이 변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그 속박에서 자유를 허락하게 되었다.
(2)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재앙에서 면하여지고,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 때이다. 즉 자유와 해방의 기간이다.
(3) 그 방법은 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각각 자기들을 위하여 양을 택하고, 양을 잡아 그것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것이 고기를 구워 먹음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시행하는 재앙과 형벌을 면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유월절은 애굽에서 나오기 전에 재앙을 면하고, 애굽에서 자유를 얻기 위하여 양을 잡는 것으로 부터 유래되고 진행된 것이다.
이 유월절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계속하여 지킴으로 그들의 대절기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기 34장 25절에 보면 첫 달에 유월절이 있었다. 민수기 9장 2절에는 그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너희 하나님께 유월절을 지키되 희생을 드리며 지키라고 했다(신16:12).
그 이후에 그 유월절은 계속하여 지켜 졌다. 즉 여호수아도 지켰고(수5:10),역대하 왕들도 지켰다(왕하 23:212223,대하 35:1-19).에스라와 에스겔서에도 기록했다(겔6:19-20,겔45:21).
신약에 보면 예수님도 이 유월절을 지킨 흔적이 나타나 있다(마26:2-9,막14:1-16,눅2:4122:1-15,요2:136:411:5512:113:118:28-39,19:14).97)이상과 같이 유월절이 계속 지켜지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의의를 완성시켰다. 그러므로 신약시대 이후에는 그 유월절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수난주간"으로 변경하게 된 것이다.
3. 유월절을 지키는 방법(제도)
그림 : 유월절 식사:유월절 식사를 하고 있는 유대인들.
유월절을 지키는 방법에 관한 성경 귀절은 많다(출12:3-49,레23:4-8,민9:2528:16-25,신16:1-816,시81:35,말1:812).
이상의 성경 귀절을 종합하여 보면 유월절 방법은
(1) 1월 10일에 매인이 어린양을 취하되 각각 가족들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택하고, 그것을 잡게 되어 있다 (출12:3412:12).
(2) 그 어린 양은 흠 없는 것이라야 한다(출12:5,레22:19-25,신17:1).여기의 흠 없는 것은 병들거나, 눈멀거나,또는 다리가 절거나, 아니면 신낭이 상하거나 하지 않은 온전한 것이요, 또 살지고,좋은 것을 뜻한다. 즉 극상품을 의미한다.
(3) 그것은 1년된 것이다(출12:5).일년된 것은 성숙한 것이요, 또 아직 무슨 일에도 사용되지 않은 순결한 것이요, 가장 살이 잘찌고, 그 고기 맛이 연하고 좋은 것이다. 이것은 극상픔에 정성과 심혈을 드려서 하나님께 우선적으로 드림이다.
(4) 숫컷으로 하라고 하였다(출12:5)양과 염소를 사용하되 오직 숫컷이다. 이 수컷은 종자이다. 양떼나 소떼에 암컷은 많으나 수컷은 많지 않다. 그러므로 이 수컷은 귀중하고, 종자가 되는,즉 소득의 근원이 되는 것을 드리게 되어 있다.
(5) 14일 될때까지 간직하여 두게되어 있다.
이것은 제물을 택하여 별거시킨 것이다. 다른 양과 같이 어울려 더럽히지 않을 뿐 아니라 홀로 두어 고통과 괴로움을 더하여 주는 것이다(레 23:5,민9:328:16,수5:10).
이것은 사람에게는 나실인의 규례도 된다.
(6) 14일 저녁에 그 양을 잡는다(출12:6).
출애굽기 16장 12절에 의하면 피와 고기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고기는 고기대로 사용하고, 피는 피대로 사용될 수 있게 한다. 또 양의 죽는 모습을 통하여 고통과 죽음의 댓가를 크게 느끼고, 생각케하는 것인데 그 양의 죽음은 대속의 죽음이다.
(7) 피는 양을 먹는 집 문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되었다. 이 피를 바름으로 양을 잡은 집을 표시하고, 양의 피의 냄새를 풍기어 양의 희생을 느끼게 한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민으로 풍기어 양의 희생을 느끼게 한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사자의 형벌을 면케하는 것이다.
(8) 그 양의 고기는 그날 밤에 불에 구어 먹되 무교병과 쓴 나물과 같이 먹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몇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그 양의 고기를 먹되
(1) 날로 먹으면 안된다.
(2) 물에 삶아 먹어도 안된다.
(3) 아침까지 남기면 안된다. 오직 그날 밤으로 처치하여야 한다.
(단 남은 것은 불에 태운다)
(4) 뼈를 꺾어서는 안된다.
(5) 머리 뿐 아니라 정강이와 내장도 남김없이 다 구어 먹게 되어 있다(출 12:8-10).
(6) 그것을 먹을 때 자세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했다(출12:11).단, 주의 할 것은 그 밤에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출12:22). 그 이유는 하나님이 애굽에 재앙을 내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다.
이상의 제도는 애굽에서만 아니라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가 유월절을 지킬 때에도 그대로 행한 것 같다.
4. 영적 의미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속됨을 보여준다. 즉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유월절의 희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며, 또 유월절의 양의 피와 고기로 인하여 구속과 자유를 얻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속죄와 구속과 영생을 얻음을 의미하고 있다.
a) 어린양
그림 : 유월절의 어린 양: 희생제물인 어린양의 몸을 베어가르는 사람을 표현한 파 리 생에티엔느 드 몽 수도원의 스테인드글라스 17세기.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면 세례요한은 모여든 군중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이것은 분명히 세례요한이 예수님은 출애굽기 12장 3절에 나오는 양과같이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희생제물이 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임을 가르치는 말이다. 또 이사야 53장 7절 이하에 나오는 대신 고난을 당하실 그리스도를 의미한 것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행전 8장 32절에도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씀하고 있다. 이상의 성경귀절들을 종합하여 보면 그는 유월절 어린양과 같이 그는 흠도 ,티도,아무 죄도 없는 그리스도요(벧전 1:19), 또 1년된 수양과 같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내어 30대의 청년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뜻과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자신을 희생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셨다(고전5:7).
b) 이스라엘백성
여기의 이스라엘은 육적인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육적 이스라엘보다 영적인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이 영적 이스라엘은 육적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대적함으로 버림이 되고, 반면에 선에 버림이 되었던 이방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선택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가운데 들어감을 얻어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의 비유를 들러서 이방인의 선택과 구원을 이야기 했고(롬11:13-24),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롬9:6)고 했고,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찌 아니하니라"(롬2:28)고 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니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치는 구원이다(롬3:22-23). 즉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고, 성령의 감화로 중생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성도이다.
c) 유월절에 잡은 양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어 먹고 그 뼈를 꺽지 않고 다음날 아침 전에 남은 것은 전부 소화했다 양을 잡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것이다(막 26:2,막 14:1-2,요18:28).
그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십자가를 적신 것이다.또 그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들의 구속의 요소임도 보여 준다(벧전 1:19-22).고기를 구어 먹은 것은 그의 살이 우리의 영적인 참양식이 됨이다(요6:32-59,마26:26-28,눅22:7-20).또 쓴 나물인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가 십자가 상에서 마시움을 받은 우슬초인 것 같다.(출12;15-20,막 14;12,눅22:7,행12:3,고전5:8).
양의 뼈가 꺽이지 아니한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 뼈가 상하지 아니함인 것이다(요19:33). 양의 고기를 아침까지 두지 말라 함은 그리스도의 장사를 의미하는 것 같고, 허리에 띠를 띠고,신들메를 매고, 지팡이를 잡고 서서 먹는 것은 신앙생활을 지체하거나, 망서려서는 안됨을 의미하고, 결단과 용기로 전진하고,잔리 안에서 순종하고 과감히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했고, 히브리 11장 28절에 "미음은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셨으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예를 정하였으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기념하는 고난과 구속의 날이다.
속죄일
그림 : 비둘기는 성서에서 나타난 모든 새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새이 다. 양들이나 염소를 속죄물로 바칠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은 두마리 비둘기 를 여호와께 바쳤다. 또한 비둘기의 부드러운 소리와 온화한 모습은 아가서 에서 사랑스러움의 대명사로 등장한다.
속죄일에 대하여 주의할것이 있다. 그것은 이 속죄일과 전에 생각한 속죄제와의 관계이다. 이 속죄일과 속죄제가 같은 것으로 생각하거나,아니면 하나로 보아서는 안된다.그 이유는 속죄일은 속죄의 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죄를 속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는 시간이요,하나님께서 죄인을 의인으로 여기시는 때를 의미한다. 그러나 속죄제를 죄를 속하는 방법과 그 죄를 속하는 요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하나도 없는데 그들이 어떻게 속죄함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교제할 수 있는가? 그것은 속죄제사이다. 구약의 속죄제하는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그를 믿는 가운데 양을 드렸고, 신약시대는 그가 오시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속죄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 공로를 힘입어 속함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고,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서는 날이다. 그러므로 위의 양자는 "속죄"라는 말은 같으나,그다음 어미에 나오는 "일"이라는 말과 "제사"라는 말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나는 시간 문제이고, 하나는 방법과 내용이 문제이다. 그러므로 위의 양자는 엄연히 구별이 되어야 한다
1.속죄일의 어의
속죄일은 히브리어로 (욤 하ㅋ페림)으로 되어 있다(레23:2725:9),(욤)은 "날"이라는 뜻도 있으나, "시간"(Time),"시기"(Period)로도 사용이 되었다. 120) 그러나 여기서는 그 의미들 중에 "날"이라는 의미로 이는 (욤)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이다.
다음에 (하 ㅋ페림)은 몇 가지의 합성어 인데 (하)와 (카팔)과 (임)이다. 여기의 는 정관사이다. "그"(the)라는 뜻이다. 정관사 "그"는 앞에 나온 것을 지적하거나 주지시키는 의미가 있다(카팔)은 "덮는다"(to cover)는 의미로 "죄를 덮는다"또는 "용서한다"는 의미가 있다. 어떤 때는 "보상한다"(to expiate)라는 의미로써 "속죄한다"는 "의미와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끝으로 "달랜다"(to appease), "평화한다"라는 의미도 있다. 이 "평화한다"(Pecify)는 의미는 화해와 화목을 의미하는 것이다.121) 우리는 (카팔)이 위의 세가지 의미와 다 관계됨을 인정한다. 그 이유는 어떤 인격적 대상에게 죄를 범했을 때 그 죄를 덮고 용서하는 것이 속죄일 뿐 아니라 그 용서와 속죄에는 방법이 있는데 그 죄의 값을 보상하여야 한다. 구약에서는 양,염소, 소로 죄인을 대신히셔 죽여 제사를 드림으로 행했고 그 죄인은 불완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을 얻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시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을 위하여 단번에 속죄케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의 제단 위에 죽이심으로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와 구원을 주셨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화목케하셨다.그러므로 속죄는 죄값을 치루어 보상하고 기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결케하여 하나님과 화목케 함이다.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끝으로 히브리어 (임)은 복수를 의미한다."....들"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속죄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의 이름에 (엘로힘)이라고 하여 "하나님들"이 아니고, 반면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미하며 "절대적인 신을 나타낸다. (임),"절대"를 의미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의 (임)을 복수로 볼 것이 아니라 '절대'로 보아서 "절대적인 속죄','완전한 구원'으로 보는 것이 옳다.
즉 최종적이고,완전한 속죄와 구원을 의미한다.레위기 16장 29-34절에 보면 대 속죄일이 나온다.1년에 한번씩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전국민의 죄를 속하는 날이다.122) 그러므로 위의 속죄일은 최대 최종의 속죄와 구원을 주는 날로 장차 세상 끝에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그 날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2. 속죄일의 유래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찌니라"(레16:29-34)고 했다.이것은 속죄일의 시작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다. 또 여기의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어다"는 말씀은 속죄일 외에 다른 절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이 제사절일은 가장 중요하고 귀할 뿐 아니라 영원히 지켜 행할 아름답고 보배로운 날 중요하고 귀할 뿐 아니라 영원히 지켜 행할 아름답고 보배로운 날이기 때문이다. 이 제사일은 지상에서만 아니라 천상에서도 기념하고 지킬 날인 것 같다. 레위기 23장 26절과 민수기 29장 7절 이하에 보면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이것은 레위기 16장에 나타난 근거를 기준하고 실천하여 진행하는 과정 같다. 그 속죄일의 진행이 언제까지인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성경 몇 곳을 찾아 보면 역대기하 7장 7-9절에 솔로몬의 성전에 회중을 모았다. 그것은 속죄일의 행사인 것같으며, 에스겔 45장 18절에도 같은 사건인 것 같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에서 귀환했을 때에 이 날을 지킨 것 같다(에스라3:1-6,느8:1). 그 증거는 느헤미야 8장 2절에서 9장 1절에 절기를 보면 7월 1일부터 7월 22일까지 지켰다. 그들은 회막에서 지켰다. 이것은 7월 10일에 거행 하던 속죄일을 겸해서 다른 절기들을 지킨 것 같이 생각된다. 더욱 우리에게 주의를 끌게 하는 것은 군중들을 7월 10일인 신년절기를 신성한 특성을 가진 절기로 생각하여 많이 모았다(레23:23,민29:1).그것은 신.구약 중간사 시대에 대제사장이었던 예수 시ㄹ(Jesus Sirach)에게 와서 기록이 되었고, 권장이 되었다.123) 그러나 다시 이 절기는 침묵이 되어 오다가 신약시대에 와서 히브리서에 기록이 되었다. (히6:199:71310:111:2).특별히 사도행전 27장 9절에 나타난 기사는 속죄일을 의미하는 것 같다. 124) 더우기 주의하여야 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오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이 명령한 가장 귀한 법으로 알고 지켰고, 그대로 준행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실천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
성경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 명령대로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요,상례이기 때문이다. 또 기록된 부분은 특별한 사건을 기록하고, 그 사건에 따라서 부수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시하여 영원히 지키라고 한 그대로 지킨 것으로 생각이 된다.
3.속죄일을 지키는 방법
레위기 16장 27절 이하에 보면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 지니라"고 하면서 속죄일에 방법을 지시하고 있다. 그 방법에 의하면 (1) 시일은 7월 10일에 지키게 되어 있다. 이 날은 안식일인데 이날은 성회로 모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다(레16:31).(2) 속죄일의 대상자는 몇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이들은 본토인으로 너희 동족이라고 했다(레18:2619:34,출12:39).이스라엘은 선민이요,아브라함의 자손인 고로 그들은 의무적으로 지키게 되었다(레16:29). 둘째는 너희중에 우거하는 객이라고 했다. 이 객은 본국인이 아니고 타국인이다(레17:15).레위기 18장 26절에는 더 분명히 기록하기를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고 했다. 19장 34절에는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의미했다.이 ㅗ든 말씀을 종합하면 여기에 나타난 객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고 마침내 이스라엘에게 준그 땅에 정주하여 사는 이방인을 의미한다. 우리는 잘못 알아서 여기의 객을 타국에 정주하는 타국인으로 이스라엘에 방문한 손님이 아닌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일에는 이스라엘 백성과 제한된 이방인이 참석했다.
이들을 위한 속죄의 목적은 이들을 속죄하여 정결케하는 것이다. 즉 여호와 앞에서 모든 죄에서 정결함을 받는 것이다(레16:30).
이 속지일의 집행자는 아론이다. 아론은 대제사장으로(레16:34).1년에 1차씩,즉 신년 정초에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 때에 그는 피를 가지고, 들어갔다.(출3:10). 그 피는 수송아지와 수양의 피인 것이다(민29:7-8).
아론은 몸을 깨끗이 씻고,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고, 세마포 겉옷과 에봇을 입고,띠를 띠고, 흉패를 붙이고, 관을 쓰고, 지성소에 들어가게 된다. 그가 성막에 들어가서 행하는 것은 전"성막"의 "대제사장"편을 참고 하기를 바란다.
4. 속죄일의 영적 의의
속죄일은 모든 죄를 청산하고 주 앞에 서는 그 날이다. 우리는 전에 성막에서 거행된 제사들을 논할 때에 속죄지에서 대하여 생각했다. 그 속죄 사역이 이 속죄일에 중복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단번 속죄이기 때문이다. 그 속죄는 지상에서의 속죄이다. 그러나 그 속죄가 완전하게 완성되는 날이 있는데 성도들이 영화롭게 되는 날이다. 그날은 소위 성도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국에 들어가는 날이다. 즉 성도들이 부활해서 천국에 입성하는 날이다.
그러나 이 속죄일에 관한 영적 해석이 적지 않다. 어떤이는 "속죄일은 그리스도의 하늘에 있어서 속죄함을 나타낸다"125) 고 했다. 그것은 속죄제사와 여기의 속죄일을 혼동하여 양자를 동일시 한 오류인 것 같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구약에서 속죄제에 예언되었고, 성도의 속죄도 거기에 함축되어 있따. 그러나 여기의 속죄일은 그것과 구별된 특별한 속죄일이다. 그러므로 이 날은 속죄을 완전케 하고, 성취시키는 날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속죄와 구원이 성도에게 완전하게 완성되는 날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날에 여러제사들(번제,소제,그리고 속죄제)이 거행된 것은 완성과 성취를 의미하며, 모든 것을 끝내는 의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이 완성되고 그치는 날이 있는 줄을 아는데 그 날은 세상이 끝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는 날이다. 그러므로 이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다126) 그 이유는 여기의 속죄일은 대 속죄일이기 때문이다.127) 또 1년에 1차 있는 속죄일이기 때문이다. 영적으로는 세상 끝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택함을 받은 모든 성도가 영화를 얻는 날이다.
어떤이는 이 날을 만민 속죄로서의 부흥회와 같은 큰 집회로 인한 속죄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이들도 있다.128) 그러나 그것은 전에 논한 속죄제사에 다 포함되어 있다. 또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된 구속사업은 성령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적용되었음을 전에 논한 "오순절"에서 기록했다. 그런데 그런 사역이 다시 이 속죄일에 적용이 될 것인가?그것은 너무 지나친 억측과 주관인 것 같다.
한편 속죄일에 대하여 잘 말하여 주는 학자들이 있다. 먼저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제1권에서 Wil Helm Molleh씨는 이 절기는 "장래일의 좋은 그림자로서(히10:1)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성소, 곧 하늘에 올라가 속죄 제물로 속죄 구원자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실 뿐 아니라(히9:22) 그는 닻과 같은 우리의 소망으로 하늘에 올라가 누릴 가장 높은 광경 가운데 있는 휘장 안을 보여 준다"고 했다. 129) 그뿐 아니라 J.D.Douglas가 편집한 "The New Bible dictionary에서도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이루신 구속 사역을 구약의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 가심과 같이 그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내기 위하여 하늘에 들어가서(히9:1112)그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이다(히9:12).그뿐 아니라 그의 백성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타나 영광을 누리게 하심도 의미한다(히9:713:1112)130)고 했다. 마치 구약 성도들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11:16)하심과 같다(마25:34,요14:2).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가셨다가 다시 재림하시여 그 나라로 이끌 것을 기록한 것이다(히9:23-28,딛2:13,행1:11).또 마태복음 24장에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가 그를 맞아 그의 나라에 들어 갈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속죄일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 영화로운 몸으로 그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초막절
조복만목사
마지막으로 남은 절기는 초막절이다. 초막절은 유월절과 같이 구약에서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명문화된 절기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잘 지켜 내려온 것이 틀림없다. 초막절에 대한 성구 몇 곳을 찾아 보면 아래와 같다.
구약:레23:33-44,민29:12-40,신16:13-17,스3:4-6,느8:14-18,겔45:25,호12:9,슥14;16. 신약:요한복음 7:2
1.초막절의 어의와 명칭
레위기 23장 34에 의하면 "초막절을 지키라"고 했다. 그 구절이 영어 성경에는 "The Feast of tabernacle"로 되어 있다. 히브리 원어로는 (칵핫 숙코-트)로 되어 있으며 신명기 16장13-17절에서는 레위기와 같은 어근이나,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즉(칵 핫 숙코트)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히브러(와어 홀렘) 대신에 히브리어 모음인 (홀렘-Helem)으로 되어있다. 그 근본 뜻이나,명칭이 달라진 것이 아니며 같은 뜻의 명칭이다. 또 에스라3장 4절에는 (하숙코-트)로 되어 있어 절기라는 단어(칵)가 생략되어 있으며, 느헤미야 8장 14절에는 (빠숙코-르)로 되어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빠)라는 전치사"....에","....안에"와 (하)라는 정관사(2=the)를 합한 것이며,(숙코트)는 "초막","장막","거처"라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스가랴 14장 16절에도 같은 단어가 기록되어 있으며, 오직 호세아 12장 9절에만 다른 단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구약에 기록된 초막절은 (칵 하숙코-트)로 통일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샤카드) (샤카드)라는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그 어근의 뜻은 "덮는다"(to cover),"보호한다"(to protect),"덮는 것을 둔다"(to place as a coverings)는 뜻이다. 이런 뜻을 가진 단어(샤카드)에서 (숙코-드)가 파생되었다. 그 뜻은 "오두막","토막"(booth)이다.131)
그러므로 원어에는 "초막절"이나 또는 "초막"이란 의미가 없다 한글 성경에도 "초막"이나,"초막절"로 번역한 것은 의역인 것이다. 이때에는 장막을 지어 그 장막에 거하게 되었다. 즉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실과와 종료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7일 동안 즐거워 할 것이라(레23:29-44)고 했다. 느헤미야 8장 15-17절에 보면 이스라엘로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돌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 나무 가지와 종료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기록된 바를 따라 장막 또는 오두막을 지으라"고 했는데, 그 나무 가지들을 가지고, 지붕 위에, 하나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에브라임 광장에 장막을 지었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초막을 짓고 초막절을 지켰으나,원어의 뜻은 장막(회막,오두막)을 짓고 장막절을 지킨 것으로 되어 있다.
2.초막절의 유래
초막절 또는 장막절은 그 역사적 기점을 광야생활에 둔다고 하겠다.132)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생활 40년간 이 장막에서 살았다. 그들은 그 장막 생활을 하는 중에 나무가지를 사용하게 된 목적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나 광야 즉 사막의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는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덜고 피하는데 장막 지붕에 나무가지로 가리우는 것과, 둘째는, 광야에 거주하는 원수들에게 그들의 거처를 은폐하는 위장의 목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셋째는 그들은 그들의 예식대로 감람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또 그것이 없을때 각종 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흔들며,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와서 승리를 가리기 위하여 그 가지들을 장막에 장식하기도 하였다(레23:40). 그러나 위의 학자들의 학설은 이론뿐이요, 확증이 없다. 그 이유는 광야 생활이 무덥고 추운 생활이었을 것이다. 또 은폐나,적에게서 승리한 기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레23:33).그리고 그들은 그 명령에 따라서 행했다. 즉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지시에 순응한 것 뿐이다(레23:33). 그들은 그 명에 따라서 계속적으로 지켰다(스3;4)
그때에 그들은 누구의 명령에 의하여 소집된 것이나, 지킨 것이 아니라 전례에 따라서 지킨 것이 나타나 있다(스3:1-2). 그러므로 이것으로 보아 (1) 포로시대 이전에 지켜왔다. 그 증거가 겔45:25,호12:9,슥14:14등이다.
(2) 포로후 시대에도 지켰다. 우리는 포로시대에 이 절기를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포로에서 귀환하여 그들은 이 초막절을 지킨 것이다.(3) 그후에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다시 지켰다(느8:14). (4)그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 초막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도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초막절이란 용어를 사용했고, 초막절의 실행을 암시했다(요7:2).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보아 초막절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하여 지켜온 것이다. 이 절기는 전통적인 절기이다.
3. 초막절을 지키는 방법
초막절은 7월 15일부터 지켰다. 그때는 추수를 다마친 때이다(레23:39). 그 추수를 마친 후에 8일동안 지키게 되어 있다. 첫날부터 7일동안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매일 화제를 드리라고 하였다.
(1) 화제의 방법
매일 드리는 화제는 레위기 23:37절 이하에 보면 나타나 있는데, 번제,소제,희생과 전제를 드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민수기 29장12-40절에 보면 일주간 매일의 행사법이 잘 기록되어 있다.즉
첫째날에는 a)번제로:수송아지 13 수양 2,1년된 수양 14.
b)소제로: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수송아지 13에 각기 에바 십분지3,수양 2에 각기 에바 십분지 2,어린양 14에 에바 십분지일을(그리스도의 속죄 희생과 영,육의 은혜 와 축복에 감사하는 감사제).
c)속죄제로:수염소1.이상은 번제와 소제와 전제외에 드리 는 것이다(민29:13-16).
둘째날에 a)번제로:수송아지 12,수양2,어린 양 14.
b)소제와 전제는:수송아지와 수양관 어린양의 수효를 따 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고.
c)속제제로:수염소 1.그 이상은 첫날과 같다(민29:17-19).
셋째날 a)번제:수송아지 11,수양2,어린양 14.
b)소제와 전제는 위 짐승들의 수효에 따라서 규례대로 드 리는 것이다.
c)속제제로:수염소 1,이상의 네 번제, 소제와 전제 외에니 라 (민29:20-22).
네째날도 번제와 쓰는 수송아지는 10일 뿐이요,다른 짐승은 다른 날과 같고, 그 짐승에 따라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되었고, 속제 제로 수염소 하나를 드리는 것도 같다(민29:23-25).
다섯째날도 :번제와 쓰는 수송아지가 9이고, 다른 것은 네째날의 규례 와 같다(민29:26-28).
여섯째날에 번제의 수송아지는 7이고,다른 규례는 전날과 같다(민 29;31)
일곱째날에 번제의 수송아지 7이고,다른 규례는 위와 같다(민29:32-34 ).
그리고 제 8일은 "거룩한 대회"로 모이는데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화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되었다(레23:3639). 이때의 화제는 민수기 39장 35절 이하에 의하면 아래와 같다.
그림 : 욥의 행사 : 9세기 그리스 성서사본 삽화로 욥이 아들과 딸의 명수대로 가 축을 번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
a) 번제:수송아지 1, 수양 1, 1년된 어린 흠없는 수양 7,
b)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수양의 수효에 따라서 규레대로 드리게 되었다.
c) 속죄제는 수염소 1이다.
이상의 것을 보면 8일간에 번제에 쓰는 수송아지의 수효가 매일 다른 것이다. 또 그 수송아지의 수효에 따라 소제와 전제가 다른 것이며, 속제죄는 같은 것이다.
(2) 초막적의 실행 대상자
초막절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신명기 13장 16절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성구에 의하면 이하의 사람은 절대로 공수로 여호와께 나와서는 안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데 따라 힘써 물건을 드리게 되어 있다.
a)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
b) 이스라엘 백성의 자녀.
c) 이스라엘의 백성의 노비.
d) 이스라엘의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
e) 이스라엘의 손님(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
f)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며 잔치하면서 지키는 것이다.
(3) 초막을 세우는 방법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을 지키는 첫날에 아름다운 나무의 과실을 초막에 두고,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의 가지와 시내버들의 가지를 취하여 지붕 위에와 주위에 장식하게 되어 있다(레23:40).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명령에 따라 1천여분 동안 실천하여 내려 왔는데, 주전 450년경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포로에서 돌아온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킨 초막절은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돌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지붕 위에,뜰 안에, 하나님의 전 뜰에,수문 광장에, 에브라임문 광장에 초막을 짓고 그 안에 살면서 애굽에서 나온 것과 광야의 생활을 기념하면서 크게 즐거워하였다. 즉 과거 하나님의 구원과 그의 인도와 그의 축복과 아울러 조상들의 고난과 그 누린 덕을 기리면서 자기들의 받은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면서 즐겼던 것이다.
4. 초막절의 영적 의미
초막절은 7월 15일에 지켰다. 이때는 농산물의 최종 수확기이다.133) 이때에 절기를 지켰다는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 레위기 23장 40절 이하를 보아도 이스라엘은 "아름다운 과실"을 가지고 가서 초막절을 지킨 것이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추수기와 관계를 가지고 있고, 또 아름다운 열매와도 관계를 가진다.
신약성경을 찾아 보면 예수님은 추수의 열매와 성도의 관계를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다.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소서"하라고 했다(마9:37,눅 10:2).이것은 복음선포와 교회 형성을 말씀하신 것 같다. 또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요4:25)라고 했다. 이것은 복음선포와 영혼을 수확하여 주의 창고인 교회에 저장하는 것과 같다.
전에 논한 제사들은 교회에서 실행하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 구원만이 아니라 천국 시민으로 거룩한 예배를 드리며 즐거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대적 마귀와 죄악의 세력을 주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하고 개선가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것만이 아니다. 성경은 그것보다 더 영적이고, 신령한 추수를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 보면 교회와 천국을 씨뿌리는 것과 추수로 비유하였다. 즉 좋은 씨를 밭에 뿌렸는데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는데 추수때에 추수군들에게 명하여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했다. 이것은 현재에 교회에 참 신자와 사탄의 종자가 같이 자라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는 혼란이 있다. 그러나 주님은 주의 재림때에 천사들을 보내어 그것들을 심판케 하신다. 그들에게 상벌이 있게 된다. 즉 천국과 지옥이 있다(마4:29도 같다).더우기 요한계시록 14장 14-20절을 보면 심판을 추수로 비유했고, 천사가 땅 위의 인간 즉 곡식을 수확하는 기록이 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주님이 재림하심만 아니라 그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택한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겠고" 천국에 들어갈 것을 말씀했다. 또 요한계시록 6장 12절 이하에 보면 불신자들은 주의 재림 때에 주의 진노를 받을 것을 말씀했다.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와 둘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그 둘째 부활에 참여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는 자들이다. 또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자들과 "행위록"에 기록된자의 심판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심판을 거쳐 천국가 지옥의 형벌을 말씀하고 있다.
재림하는 주를 맞아 천국에 입성자는 초막절에 여러가지 제사가 거행된 것같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속과 그 공로를 힘입어 그 은혜와 축복 가운데서 살면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이다.
그들은 저 천국에서 영생과 복락을 누리며, 주님과 더불어 영화를 누릴 것이다(히11:6,벧전 1:24,히10:1910:20).
박윤선 목사도 그의 주에서 "이와같은 행사들은 신약시대의 교회가 누릴 즐거움을 비유한다(요7:37-39)"고 했다. 또 "이것은 여원한 내세에 들어갈 성도들의 하나님 중심한 즐거움을 상징한다(계7:9-17)"134)고 했다.
그러므로 위에 말씀한 초막절은 지상의 교회에 영적 곡식이 수장되는 것 뿐 아니라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받고 성령안에서 중생하고 주의 일에 충성하던 성도들이 예비했다가 영원한 집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이다.
그때에 우리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기쁘고 행복할 것이다. 마치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 가실 때 주님 앞에 옷을 펴고 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리로다"(마21:1-9)고 했다. 이것은 장차 주님과 성도들의 천국 입성의 예언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초막절을 지킬 때에 즐거워 하며 열매를 초막절에 놓고, 여러나무 가지들을 꺾어 마당과 지붕과 장막 옆에 세우고 즐긴 것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천국에서 누릴 환희와 영화이다.
"저 뵈는 천국에 날마다 가까와 내,갈길 멀지 않으니 전보다 가까와 내 주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그 보좌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갑니다...."
안식일
안식일은 첫째, 그 근원이 하나님이시다. 즉 하나님이 이 날을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6일간에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쉬셨다(창2:1). 둘째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날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만물에게 복 주시는 날이다. 즉 육신은 육적인 일에서 해방되고, 영혼이 영적인 일을 하므로 하나님께로 부터 준비한 축복을 받는 날이다. 이날에 육적인 노동을 하고 영적인 노동을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주어지지 않는다. 세째로, 거룩한 날이다. 그 이유는 택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감사하며,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신령한 양식과 영력을 받는 날이다. 끝으로 하나님은 안식일에 쉬심으로 인간에게 모범을 보여 주셨다. 또 쉴 것을 명령하셨다. 그 이유는 인간의 신체와 마음과 사업을 그 조건에 맞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이날은 하나님께로부터 유래되어 만물에게 복주고 그 영장인 인간에게 영과 육신에 축복하시는 날이다. 이날은 성수하는 여부에 따라 신앙도수를 측정하는 계기가 된다.
1.어의
안식일에 관한 말씀은 성경에 매우 많다. 그런데 주의 할 것은 창세기에 "안식일"에 관한 단어가 없다. 그러나 "안식일"이란 단어만이 없는 것이지 "안식일에 관한 기사이다. 그 "안식일은 귀한 날인데 위에 언급함과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모범을 보여 주실 뿐 아니라 가장 귀한 날이므로 성수하실 것을 명령하셨다.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신약의 예수님도 지킨 것이다. 이 날은 신앙의 조상들에게 잘 지키어 진 것 같다. 창세기에 신앙의 조상들이 이 날을 지켰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신앙의 조상들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제사드린 날들이 어느 날이겠는가? 이 날이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에 성수 안식일에 관한 기사가 없는 것이다. 또 그 후대에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이 타락하여 이날을 지키지 않음으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고, 가르칠 뿐 아니라 그 후대인들에게 교훈고 율법으로 주신 것이다.하나님은 위의 법을 모세에게 주실 때에 그를 시내산에 불러 40여일만에 주셨다. 그것은 두 돌비 중에 하나에 속했는데 10계명중에 네째 계명이었다. 그 네째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히 지키라"였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이요, 또 약정서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를 섬길 때 이 계명을 지키고, 그대로 시행케 되기 때문이다.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고귀한 축복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 법을 지켜 행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따른다. 그러므로 그것은 언약서이다. 만약 어떤 하나님의 백성이 그것을 파괴하든지 아니면 그것을 멸시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과 바른 신앙관계인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한 그들에게 보상이 주어질 수 있겠는가 아니다. 보다 그들에게 진노와 형벌이 따르게 된다(느13:15-18). 이 안식일에 관한 교훈과 경고는 성경에 매우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성경 귀절들은 출애굽기 16:2325262920:8101131:13.14,15, 16, 35:23,레위기 16:3119:33023:3111516323824:825:246826:
2,34,43,민수기 15:3228:910,신명기 5:121415,열왕기하 4:2311:579, 18, 16:18,역대기상 9:32,23:31,역대기하 2:4,8,13,23:4,8,31:3,36:21,느헤미야 9:1410:313313:15161718192122,시편92:이사야 1:1356:24, 58:13, 66:23,예레미야 17:21,22,24,27,애가2:6,에스겔 20:1213162021, 24, 22:8, 26, 23:38, 44:24,45:17,46:1,3,4,12,호세아 2:11,아모스 8:5등이다. 신약에도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12:1510111228:1,마가복음 1:212:23243:24,누가복음 4:16356:2913:10,사도행전 13:1416:1317:2 골로새 2:16등이다. 그 외에도 이에 관한 성경 귀절은 콘콜단스를 참고 하기를 바란다.92)
이 안식을은 히브리어로 샵밭이다. 이 샵밭은 명사인데 동사 샤밭에서 나온 것이다. 샤밭는 "노동으로부터 쉰다""끝인다"는 뜻도 있지만 또한 "옮긴다"는 뜻도 있다. 이것은 명사로 되어 샵밭이 되었다. 그것은 "안식일"또는 "쉬는 날"로 되었다. 그 의미를 보면 "우리의 심신이 육신적이고,세상적인 노동에서 그치든지 아니면 쉬고, 그 마음과 몸과 영혼은 거기에서 옮겨 하나님께로 나가서 신령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의미는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육신에서 영혼에게로,인간에게서 하나님께로 물질의 세게에서 영적인 세계로, 세상의 일에서 주님의 신령한 일로 전환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깊은 뜻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여 일방적인 면과 그릇된 면으로 나아가서 범죄하며 범법하게 되었다. 즉 습관적이고 형식적이 되어 버렸다. 이때에 주님께서 바르고 참된 진리의 면에 서서 나아갈 때는 그들과 충돌이 있게 되었고, 투쟁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무섭고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에 빠지게 될 것이다.
위의 히브리어 샵밭는 헬라어로 십바톤이다. 이것은 헬라어 역인 70인경(LXX)에 의하여 헬라어화 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안식일에 관한 고찰에 있어서 그릇된 이론을 제기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소위 고등비평가라고 하는데, 그들 중에 일파는 "안식일"이 바벨론(Babylon)의 신화에서 왔다고 한다. 즉 바벨론 설형문자로 된 문서(Babylon Cuneiform)에 의한 신화에 "Sabattu",또는 "Sabattum"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히브리어 Sabbatton과 같은 형과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성경과 그 신화의 차이를 비교하여 보면 신화는
첫째로, 쉬는 날이 아니고 속죄일이다. 즉 신의 노함에서 면하고 사유함을 받기 위한 것이다.
둘째로, 바벨론 비문에 의하면 반드시 5째 또는 6째로 나타났는데 그 둘중에 어떤 하나가 제7일과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째로, 그 해의 어떤 달에 7째,14째,19째,21째,28째 날들은 왕, 제사장 그리고 의사들이 신의 진노를 주의하지 않아도 되는 날로 유명하며 불을 주의하는 유명한 날로 정했다. 이 날에 왕은 불에 굽지 않은 음식을 먹고 조복을 입지 않고, 그의 병거를 타지 않아야 했다.93)
이런 신화의 안식일이 성경의 안식일과 어떻게 같고, 그 영향을 관계가 있고, 둘째로, 창조와 관계를 가지고, 세째로, 거룩하고 복된 날이고,네째로,인간에게 주어진 고귀한 날,즉 영혼의 복받는 날이다.그러므로 성경의 안식을은 바벨신화의 Sabattum(사발툼)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2. 안식절의 유래
안식의 유래는 위에서 잠간 언급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상세히 기록하면 아래와 같다. 안식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한다. 즉 안식일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친히 이 날을 제정하시고, 하나님께 친히 쉬셨고, 하나님께서 그 날을 엄수케 하므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한다. 그 깊은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 이 날을 지키지 않을 때 하나님과 유리되고,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고, 반역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거절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저주와 멸망을 취하게 된다.(창2:1-3)
또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준 이 귀한 날을 인류가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 그를 대적하고 자행자지 하므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다시 언약을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에 불러 올리시고, 그에게 안식일의 언약을 하신 것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이다. 그 이유는 그는 이스라엘의 대표자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또 모세가 그들에게 이 언약을 공포할 때에 "아멘"으로 재확인했고, 굳게 인증한 것이다(출16:20,레23:신5:참고).
성경을 상고하여 보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는 이 날을 엄수함으로 그 언약을 고수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자는 제일 첫 단계로 이 날을 버리고, 범하게 되는 것이다(느13:15). 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외형적인 형식이고, 행실이나, 그것을 지키는 행실과 형식의 배후에는 신앙과 순종의 내형적인 마음과 신앙이 깃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행실만이 아니라 그 근거가 되는 마음과 신앙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마음을 보시고 신앙을 보신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이 날을 마음을 드려 신앙으로 지키고 실행하기를 원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첫째는 하나님이 안식하신 날이다. 즉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하나님이 모범으로 보여 주시고, 또 인간을 위한 축복으로 장식하신 날이다. 법은 제정자와 받은 자가 다 지키는 것이 근본 원리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키셨다. 그리고 인간이 이 날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인간이 이 날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그를 겨오이하고, 그의 뜻과 섭리를 순종하고 그의 일에 참여하여 충성함이 된다. 그러므로 성수 안식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을 실천하는 증거이다. 그 실천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신앙의 척도이다.
둘째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교제의 날이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인격자이시고, 그의 창조물인 인간도 인격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날을 주시어 지키게 하신 것은 인격의 하나님이 인격자인 인간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신 까닭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 8절에 "교제의 날" 즉 영교의 날을 정하신 것이다. 그 말씀을 우리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에는 "날이 서늘 할때"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어에 보면 도저히 이런 번역이 나올 수 없다. 즉 레루카 하욤이다. 여기의 (레-루)는 부사이고, 루카는 "바람"이라는 뜻도 있으나 "영"이란 뜻도 있다. 하욤은 "그날"이란 뜻이다. 하욤에서 앞에 관사가 붙은 것으로 버아 그 날은 전에 기록한 그날을 지시하는 것이고, 한번만 있은 날이 아니고 두번이상 계속하여 지켜 내려 온 날이다. 즉 하나님과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약속하고 상호 지켜 교제하던 그 날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가 범죄하고 하나님이 오실 것을 알고 그 날에 숨은 것이다. "그 날"은 "영교의 날",즉 "영의 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안식일에 인간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신다.
세째는, 거룩하고 복된 날이다. 하나님께서 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신 날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그 하나님이 날이니 거룩하다 .구약에 보면 거룩한 제물에 접촉된 것이 거룩하다고 했다.그렇다고 하면 그보다 더 거룩한 거룩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가진 그 날이야 더욱 거룩하지 않겠는가! 또 하나님께서 쉬신 날이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정하여 준 날이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약속된 날 즉 성별된 날이니 거룩하다. 일주일에 많은 날이 있으나 각각 자기를 위하여 일하다가 이 날만은 하나님과 약속하고 만나서 교제하는 교제의 날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피차 교제하는 날인 거룩한 날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축복을 주시는 날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한 뜻을 받는 날일 뿐 아니라 축복과 은혜를 주어서 인간,즉 하나님의 자녀요 선민인 그들에게 땅위에서 영육으로 생명과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하는 날이다. 인간은 이 날에 축복을 공급받는 것이다. 이 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날을 범하고, 어기는 것은 불신과 반역하는 것이다. 탕자의 소행이다.
네째, 장래 일의 그림자이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중에 택한 선민에게 주신 장래의 계시요 예언이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시고,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만나는 귀중한 시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히4:9) 함은 영원한 안식의 예표이다. 그 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지상의 인간의 안식도 된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성결케 하고 주님이 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주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94)
3.안식일을지키는방법 안식일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또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그 이유는 안식일은 위에 언급한 바와같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날이요,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영교하는 날이요, 은혜와 축복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날에는 자유인이나, 종이나 손님까지라도 쉬라고 했다. 출애굽기 20장 8-11절을 보면 "네 문안에 유하는 것"은 다 쉬라고 했다."네 문 안에"란 뜻은 "네 집안"이 아니고 네 땅에 있는 도성이나, 부락(신5:1414:21)등을 모두 의미한다. 또 "문(사ㅇ)은 마음을 들어가는 곳,큰 마당과 궁전에 둘러 막은 곳을 출입하는 문이다. 이 "문"은 집아나, 창고, 천막의 출입구에 적용된 것이 아니다. 그 예가 느헤미야 13장15-22절에 나타나 있다. 위의 성경 귀절에 의하면 안식일 전에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까지 열지 않았다. 성경에 안식일에 쉴 것이며 (마23:2831). 다른 날에 일 할 것이다. 노동이나, 작업이나,상업은 다른 날에 할 것이다. 이 안식일에 경작과 추수(출34:21), 술틀을 밟고, 물건을 나르는 것(느13:15), 무역 하는 것(암8:5).식물을 파는 것(느13:15)을 금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안식일에는 만나도 주시지 않으시고(출16:26),나무를 하고(민15:32)불을 피우는 것(출35:3)도 금했다.95)
또 여행과 오락과 사사로운 말도 금하고, 여호와 안에서 즐기라고 했다(사58:13-14).
그러므로 (1)구약은 안식일을 성수할 것만 아니라. (2) 안식일 성수하는데 거리끼고, 방해되는 것도 제하여 버리고,(3) 인간적이고,육신적이고, 그리고 세상적인 모든 것을 제거하기끔 하였다. 신약도 마찬가지이다.예수님은 안식을을 철저히 지켰다. 누가복음 6장 6절에 회당에 들어 가서 성경을 가르쳤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드린 것이다. 마가복음에도 같은 기사가 있다. 이 말씀은 육신적인 일은 쉬시고, 반면에 신령한 사업에 충성하신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눅 6:6-11). 예수님은 대적하는 자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것이 옳으냐?"고 하셨다(눅 6:914:3).그러면서 주님은 안식일을 정의하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막 2:28)고 하시면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마12:8,눅6:5,막2:28)고 하였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는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했다. 이것은 안식일은 성도가 (1)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념하고,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영교할 뿐 아니라, (3)신령한 가정 식구들이 모여 단락한 생활을 하여야 하며 (4) 주님의 거룩하고, 선한 사업을 실시하는 날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도시대는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이 되었다. 그 이유는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요20:1, 마28:1,막16:1)의 날이요, 성령의 강림의 날(행2:1-)이요,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은 날이요(계1:)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안식일에 육신의 일만 쉬는 것을 말씀했으나 신약은 안식일에 신령한 일을 할 것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하면 안식일에 육신의 일은 쉬고 영적인 일은 힘써 할 것이다.
4. 영적의미
안식일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영적인 안위와 평화이다. 그것은 신약에 말씀하신 이 한 말씀으로 알 수 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막 2:27-28)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거룩하고 복되게 하여 인간에게 주시고 하나님과 인간이 영교하게 하신 것은 인간을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안식일의 종이 되거나, 또는 그날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시고, 인간은 하나님께 나가서 영적으로 교제하고, 거룩함을 누리고, 축복을 받게 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죄인인 인간에게 거룩함을 주고, 저주와 진노의 자식인 인간에게 거룩함을 주시고 축복을 받게 함에 있다. 그러면 안식일을 지키면 거룩하여지고, 또 안식일을 지킴으로 복을 받게 되는 것인가?아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수단과 방편이다. 안식일은 지키는 내용은 하나님과 영적 교제이요, 하나님과 사귀여 영적 가정식구가 됨에 있다. 그 영적 가정 식구가 되고, 영적 교제를 하는 것은 죄인이 불가능하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먼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그 죄와 악을 청산하고, 진노와 형벌에서 면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죄인들로 죄악을 사유함을 받고, 진노와 형벌에서 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면 안식일이 그것을 하며, 하나님께서 안식일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하였는가?아니다. 안식일은 영적인 사건의 그림자이다. 그 안식일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 실체는 인격적 존재이다. 즉 인자이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 인자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자로 신성으로는 하나님편에,인성으로는 인간편에 서서 양편을 중재하신 중재자이시다. 그 중재자는 누구인가? 마가복음 2장 28절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되어 있다. 헬라 원어에 보면 ()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American Standard Version(미국 표준역)은 "So that the Son of Man is Lord even of the Sabbath"로 되어 있다. 즉 "그러기 때문에(그래서)인자는 안식일까지라도 주인이다"는 것이다. 본문을 위의 성경 귀절과 함께 생각하면 그 안식일이 인간을 위한 것이다. 또 안식일의 주인은 인자이다. 안식일의 주인인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된 인간을 위해서 사죄와 구원(거룩함)과 평안과 영생(축복)을 주신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한 날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인을 거룩하고, 복되게 하는 날이다. 그래서 안식일은 하나님인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오시고(임마누엘 마1:23-),인간이 그를 맞이하는 귀한 날이다(마2:1-12).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눅2:14)가 있는 때이다. 즉 그리스도의 초림의 날을 에언하고,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성탄절이 아닌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31:12-13)고 증거 하였다.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표징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한 것이다. 성령으로 (사8:8)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한 것이다.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는 사죄와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마1: 20 -21).예수는 "자기의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하면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즉 초림에 관한 예언이다. 레위기 24장 8절에 매 안식일에 새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하는 것은 감사의 예물도 되지만 하나님의 신령한 양식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희생에 대한 감사제사이다("성막"참조).
또 민수기 28:9-10절을 보면 1년되고 흠없는 수양을 번제로 드리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속의 죽음을 예언한 것이다. 즉 임마누엘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하나님 앞에서 속죄 구원을 예표한다. 신명기 5장 12-15절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다. 이 구원은 애굽에서의 구원이나, 영적으로는 죄악에서의 구원을 의미한다.(시92:1-15, 사56:24-758:14). 이상은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안식일과의 관계를 생각했다.
이하에서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와 안식일과의 관계를 생각하여 보자! 마태복음 12장 1-8절을 보면 안식일과 주님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다.즉 안식일과 진설병의 관계를 말씀하시고, 성전과 주님의 관계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다. 누가복음 13장 10-17절에 안식일에 주님은 병자를 고치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구원사역을 말씀하여 주며, 요한복음 5장 17절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일한 것을 반대할 때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선언했다. 이 모든 말씀으로 볼때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죄인들에게 속죄 구원만 아니라 내세의 영생 복락과 영원한 천국의 축복과 영생도 허락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이날이 주일로 되었다. 그날은 주의 죽으심을 포함한 부활의 날이요, 초대 교회의 성령 강림절이다. 또 주님이 부활하여 나타나 보이셨고,초대 교회가 예배를 드린 날이다. 이것은 에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도 의미한다. 그의 신성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인성으로는 인간과 관계를 가지고 교제케 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계시어 화목케 하셨다.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죄인을 변호하시고, 인간의 죄를 속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속죄함을 받은 인간으로 한 영적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교제하고,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오시어 영적으로 교제하며, 예배를 받으시는 거룩한 날이요 복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