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토요일 여전히 맑음
오늘 목적지는 월출산 경포대까지 18km라 여유를 부리기로 했다. 더구나 강진에 와서 다산 선생을 만나고 가지 않을 수 없어 오전은 ‘다산 초당-백련사’를 들르고 늦은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내가 다산초당을 왔던게 언제였던가? 10년 전에 남도 여행 중에 고즈넉한 밭길을 지나 선생이 머물던 난간에 앉아 30대 중반의 고단함에 선생을 올곧이 만나지 못하고 허겁지겁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역사책에 적혀있는 실학자 정약용이 아닌 시대를 일꺠운 큰 산으로,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로 , 두 아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엄격한 스승으로, 정이 많은 한 인간으로 '다산'을 만나면서 나는 40대를 맞이했다.
40대 중반에 다시 찾은 다산은 가을 하늘의 청명함과 얼굴을 쓰다듬는 솔바람이 어우러져 나를 한없이 끌어안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0A474352722C0C0E)
![](https://t1.daumcdn.net/cfile/cafe/225C614652722C7020)
11시 쯤 늦은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여기도 기사식당이다. 맛있게 먹고 짐 꾸리고 다시 출발이다.
어제 국도에 데여서 길잡이 책인 희선님의 일정과는 조금 다르게 걸어본다. 왠만하면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을 택한다. 2번 구도로로 걷는다. 국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하다. 한 시간 걷고 10분 쉬기를 반복한다. 송정- 송현마을- 송학리를 지나 다시 국도로 접어들었다가 희선님의 일정대로 다시 경포대로 가는 농로로 접어든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287E4352722DF50B)
![](https://t1.daumcdn.net/cfile/cafe/2274684452722E2526)
농로에 접어들어 늦은 점심을 먹는다. 세끼 주의고 빵을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쩌랴. 농로를 따라 한참을 걷는다. 드디어 4시쯤 되니 경포대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표지판도 나침반이지만 지리에 익숙한 사람 입에서 나오는 길이 더 정확하다. 지나가는 트럭 아줌마를 만나지 못했다면 더 먼거리로 돌아갈 뻔 했다. 드디어 국립공원 월출산 경포대 입구가 우리를 맞이한다. 유명한 강릉 경포대가 아닌 월출산 경포대가 뭔가 했더니 월출산 앞에 흐르는 계곡을 가리킨다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26983D5272309D0C)
![](https://t1.daumcdn.net/cfile/cafe/271EF242527230F607)
일단 경포대에 들어서기는 했는데 잠잘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 싶다. 눈에 보이는 펜션 몇 군데를 전화했지만 방이 없단다. 첫 입구에서 만난 ‘게으른 농부 민박’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어스름해지긴 하지만 세명이라 일단 동네 구경하면서 알아보자 한다.
‘월남사지 삼층 석탑’ 유적지가 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한적한 공간에서 바라보는 탑은 남달라 보였다.
붉게 물드는 월출산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하기엔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나그네의 마음이 스산하다. 일단 ‘게으른 농부 민박’집에 가서 주인장을 기다려 보기로 한다. 게으른 농부가 아니었다. 요즘 농사일이 너무 바빠서 ‘민박집’을 신경 쓰지 못해서 빌려드리기가 미안하다는 주인장 말에 잠만 재워 달라 부탁하고 짐을 풀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070A3E5272326324)
![](https://t1.daumcdn.net/cfile/cafe/2223D3465272329122)
웬걸? 이층 독채, 깨끗하고, 멋 드러진 실내 풍경에 입이 떡 벌어진다. 거기에다 주인장이 저녁을 먹지 못한 우리 행상이 불쌍했는지 부추전, 계란후라이, 배추김치, 묵은지, 물김치에 밥을 갖다 주신다. 숙박료 5만원에 이런 횡재라니..... 잠만 재워달라고 사정할 때는 언제고 밥을 갖다 주니 슬쩍 ‘소주’가 고프다. 염치불구하고 부탁을 드렸더니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소주를 갖다 주신다.
아침에 만난 다산의 마음과 '월남사지 삼층석탑'에 얽힌 부부의 한 마음과 '게으른 농부'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에 몸과 마음이 무장해제되면서 아주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은 어떤 길과 인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첫댓글 인간의 발로 가지 못할 곳은 어뒤? 걷는 건 느리지만 지속하면 끝간 데 없다. 와~~ 이건 어쩜 행복이거나 불행임이 틀림없다.
ㅎ 경포대...나도 강릉인가 했네요~ 월출산 경포대...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