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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복 ] 보들레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점지를 받고
시인(詩人)이 권태로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질겁한 어머니는 신(神)을 모독할 마음 가득하여
주먹을 떤다. 가여워하는 신을 향하여
--아! 이 조롱 거리를 기르기 보단 차라리
독사 한 뭉치를 몽땅 낳고 말 것을!
내 뱃속에 속죄를 잉태한
덧없는 쾌락의 그 밤이 증오스럽구나!
한심스런 내 남편의 혐오 거리가 되도록
그 많은 여자 중에 그대 나를 택했기에
오그라든 이 괴물을 연애 편지처럼
튀는 불꽃 속에 던져 버릴 수도 없구나.
그대의 증오로 저주받은 연장 위로
나를 짓누르는 그 증오를 튀어오르게 하여
독기 품은 새싹이 돋아나지 못하도록
이 가련한 나무를 비틀어 놓으리라!
이리하여 그녀는 원한의 거품 삼키고
영원한 섭리도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지옥의 깊은 곳에다
어미의 죄값인, 화형의 장작더미를 준비한다.
그러나 천사의 보이지 않는 보호 아래
폐적당한 그 아이는 태양에 도취하고
그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 속에서
신들의 양식과 주홍빛 신주(神酒)를 발견한다.
그는 바람과 놀고 구름과 같이 얘기하며
십자가를 지고서 노래하며 도취한다.
그의 순례를 뒤따르는 성령은
숲속의 새처럼 쾌활한 그를 보며 눈물흘린다.
그가 사랑하고 싶은 이들은 모두 두려워 그를 주시하고
아니면 그가 얌전함에 용기를 얻어
서로 다투어 그에게서 탄식을 끌어내려
악랄한 짓들을 그에게 시험해 본다.
그가 입속에 넣을 빵과 포도주에
그들은 더러운 가래침과 재를 섞고
그의 손이 닿은 것은 허풍을 떨고 내동댕이치며
그의 발자국을 밟았다고 자신을 꾸짖는다.
그의 아내는 광장에 나와 외친다.
그이는 나를 미녀라 우러러보니
나는 고대 우상들 노릇을 하려오.
그들처럼 나도 몸에 자주 금칠을 하려오.
그리고 감송향(甘松香)과 향유, 미르라
추종과 고기와 술에 취하리라.
나를 칭송하는 마음에서 신의 경배를
웃으면서 가로챌 수 있을지 알아 보려오!
그리하여 이런 불경한 연극에 싫증이 날 때면
그에게 내 가냘픈 끈질긴 손을 얹고
독수리 손톱 같은 내 손톱으로
그이의 심장까지 길을 뚫어 놓으리라.
마치 갓난 새새끼처럼 떨며 팔딱이는
시뻘건 그의 심장을 가슴에서 끌어내어
내 사랑스런 짐승을 배불리기 위하여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주리라!
찬란한 옥좌 보이는 천국을 향하여
정숙한 시인은 그의 경건한 두 팔을 쳐들자.
명철한 그의 정신은 섬광처럼 확산되어
성난 군중의 모습을 그에게 은닉한다.
--축복받으소서 하나님, 당신이 주시는 고뇌란
우리의 부정(不淨)에 효력 있는 성약(聖藥)이니
성스런 쾌락을 강자에게 갖다주는
지고지순의 정수(精髓)로소이다!
저는 압니다, 거룩한 성군(聖軍)의 축복받은 서열 속에
당신께서 시인을 위하여 한 자리 남겨 두시고
옥좌, 힘의 천사, 주천사들의
영원한 축제에 시인도 초대하신 것을.
저는 압니다, 오직 고통만이 고귀한 것임을
세상도 지옥도 결코 물어뜯지 못하며
나의 신비로운 왕관을 엮기 위해서는
모든 시간과 우주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 옛날 팔미라가 잃어 버린 보석도
미지의 금속들, 바다의 진주도
어쩌다 당신의 손으로 세공 되어진다 해도 미치지 못하리,
눈부시고 빛나는 이 아름다운 왕관엔.
왜냐하면 그것은 원시 광선의 원천에서 길러 낸
오로지 순수한 빛으로 만들어질 것이기에
그래서 인간의 눈은, 제아무리 찬란하게 빛난다 해도
흐리고 애처로운 거울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 신천옹(信天翁) ]
흔히 재미삼아 뱃사람들은
커다란 바닷새, 신천옹을 잡는다.
태평스런 여행의 이 동반자는
깊은 바다 위로 미끄러지는 배를 따른다.
일단 갑판 위에 내려놓으면
이 창공의 왕들은 어색하고 수줍어
가련하게도 크고 흰 그 날개를
노처럼 그들 옆구리에 끌리게 둔다.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어설퍼 기가 죽었는가!
전엔 그처럼 아름답던 그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추한가!
어떤 친구는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을 올리고
다른 친구들은, 창공을 날던 이 병신을 절름대며 흉내낸다.
시인도 구름의 왕자와 같아서
폭풍우를 다스리고 사수(射手)를 비웃지만
야유 소리 들끓는 지상으로 추방되니
거대한 그 날개는
오히려 걷기에 거추장스러울 뿐.
* 신천옹 - 시 속에 '어린애 장난' 같은 것밖에 보지 못하고, 실리만을 추구하는 속세에 있어서의 시인의 상징.
상승
연못 위로, 계곡 위로,
산과 숲, 구름과 바다를 너머
태양 지나, 창공 지나,
별이 총총한 천구(天球) 끝 너머로,
내 영(靈)아, 넌 민첩하게 움직여
물 속에서 도취한 능숙한 헤엄꾼처럼
오묘한 무한을 즐거웁게 누비누나.
표현할 수 없는 힘찬 쾌락에 취하여
이 역한 독기 떠나 멀리 날아가
드높은 대기 속에 네 몸 깨끗이 씻어라.
또한 순수하고 신성한 술처럼
맑은 공간에 가득한
밝은 불을 마셔라.
안개 자욱한 인생을
무겁게 짓누르는
권태와 끝없는 비애를 뒤로 돌리고
힘찬 날개로 햇살 가득한 평온한 들판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자는 행복하여라.
상념들이, 종달새처럼 하늘을 향해
아침마다 자유로이 날아 오르고
삶 위를 날면서
꽃들과 말없는 사물의 언어를
쉬이 알아 듣는 자여!
[ 교감(交感) ]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에 살아있는 기둥들은
때때로 어렴풋한 얘기들을 들려주고
인간이 상징의 숲을 통해 그곳을 지나가면
그 숲은 다정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광막한
어둡고 그윽한 조화 속에서
저 멀리 어울리는 긴 메아리처럼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화합한다.
어린 아이 살결처럼 신선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럽고, 목장처럼 푸른 향기가 있고
---또 썩고, 짙은 향기들도 있어
호박,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들로 퍼져 나가
정신과 감각의 환희를 노래한다.
* 해석[김인환 역의 악의 꽃에서]
이 시는 상징주의의 한 오의(奧義)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비평가 사이에 의론이 많다. 이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그 개요를 설명하겠다. 이 시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하나의 살아 있는 세계로서, 생명이 없어 보이는 사물들은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눈에 보이는 형상들은 눈에 안 보이는 어떠한 실재의 상징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시인이 전개하려는 주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진리 속에 시인이 흥미를 느끼는 것은, '향기와 빛깔과 소리' 사이에 포함되는 밀접한 '조응(照應)' 또는 상통이다. 사실, 우주는 살아 있는 하나의 통합체이므로, 필연적으로 봄에 다양한, 감각할 수 있는 형상들은 사실 유일한 실재의 메아리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관념은 결론으로 이끌어 가는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최후적인 주된 관념은, 만물 조응 중에서 어떠한 조응은 우리들을 순수와 순결의 세계로 이끌어 가고, 또 어떠한 것들은 죄악과 부패의 세계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을 무한으로 일종의 정신과 관능의 도취로 끌어가는 향기들, 이 향기들을 퍼뜨리는 것이 '악의 꽃'이라 하겠다
[ 저 벌거숭이 시대의 추억을 나는 좋아하노라 ]
저 벌거숭이 시대의 추억을 나는 좋아하노라.
페뷔스가 상(像)들을 금칠하기 좋아하던
그때엔 남녀가 거뜬한 마음으로
거짓이나 걱정없이 생을 즐겼고
또, 하늘은 깊은 애정으로 등을 어루만져 주며
그들의 귀중한 기관을 건강하게 단련시켜 주었다.
시벨 여신은 그때 풍요한 산물로 부러울 것 없었기에
많은 자식들에 조금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골고루 애정을 쏟는 어미 이리처럼
불그죽죽한 젖꼭지로 만물을 적셨다.
사내는 멋있고, 튼튼하고 건장하니
자기를 군주로 모시는 미녀들에게 오만할 수 있었고
티없이 깨끗하고 흠이 없이 순결한 그 과일들의
매끈하고 탄탄한 살점을 물어뜯고 싶었다!
오늘날 남녀의 나체를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예전의 그 자연스런 위대한 모습을
시인이 마음속에 그려 보고 싶을 때면 흉측한 모습으로
침울한 그림 앞에 음침한 오한이 그득한 영혼을 감싸옴을
그는 느낀다.
오, 벗은 옷을 한탄하는 괴상망측한 짓들이여!
오, 꼴불견 몸뚱이들! 가면을 씌어 놓아야 마땅한 몸통들이여!
오, 비틀리고 말라빠지고, 튀어나온 배와 축 처진 육신들,
매정하고 가차 없는 실용의 신이
그의 청동 기저귀 속에 감아 키운 아이들이여!
그리고 여인들은 양초처럼 창백하고
음탕에 젖어 있고 방탕이 길러 주는 그대들이여,
그리고 그대, 어미 적부터 내려오는 죄악과 다산성의 추악함을
질질 끌고 다니는 처녀들이여!
진정 우리 타락한 민족들은
옛 종족들이 알지 못했던 미를 지니고 있다.
심장의 궤양에 좀먹힌 얼굴들
우울의 미라고나 할 그 모습들을
하지만 뒤늦게 찾아온 우리 뮤즈의 발명도
병든 겨레가 청춘에게 바치는
심오한 경의를 막지는 못하리라.
---성스런 청춘, 순박한 모습, 다정한 이마
흐르는 물인 양, 맑고 깨끗한 눈동자
하늘의 푸름처럼, 새처럼, 꽃처럼
그 향기, 그 노래, 그 감미로운 열정을
아무런 걱정 없이 만물 위에 퍼뜨려 주는 청춘이여!
* 페뷔스 -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 시벨 여신 - 대지와 동물의 여신. 하늘의 딸로 자연의 힘을 뜻한다.
[ 등대들 ]
루벤스, 망각의 강, 나태의 정원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싱싱한 살베개
하지만 거기엔 생명이 흘러나와 계속 용솟음친다.
마치 하늘의 바람과 바다의 조수처럼
레오나르도 다 빈치, 깊숙하고 침울한 거울
거기엔 사랑스런 천사들이, 신비로 싸인
다정한 미소지으며, 그들 나라 감싸는
빙하와 소나무 그늘에서 나타난다.
렘브란트, 신음 소리 가득한 음침한 병원
커다란 십자가 하나가 유일한 장식
눈물짓는 기도가 오물에서 발산하고
한가닥 겨울 햇살이 불쑥 스쳐 지나간다.
미켈란젤로, 망막한 장소, 거기에 보인다.
헤라클레스들이 그리스도와 어울리고
힘센 망령들이 꼿꼿이 일어나, 어스름 석양에
손가락을 펴면서 수의를 찢어대는 모습이
권투 선수의 분노, 목신의 뻔뻔스러움
상놈들의 미를 그러모을 줄 알았던 그대
자존심에 부푼 가슴, 허약하고 누렇게 뜬 사나이
퓌제 고역수들의 울적한 황제
또, 수많은 고관들이 나비처럼
화려하게 노니는 카니발
샹들리에가 밝히는 경쾌하고 산뜻한 배경은
이 소용돌이치는 무도회에 광란을 퍼붓는다.
고야, 미지의 것들로 가득한 악몽
마녀들의 잔치에서 삶고 있는 태아들.
거울 들여다보는 노파들, 마귀를 유혹하려고
긴 양말 걷어올리는 발가벗은 아가씨들.
들라크로아, 악의 천사 드나드는 피의 호수
늘 푸른 전나무 숲으로 그늘지고
우울한 하늘 아래, 야릇한 군악 소리가
베버의 가쁜 한숨처럼 지나간다.
이 저주, 이 모독, 이 탄식들,
이 황홀함, 고함 소리, 눈물, 찬가들,
수천의 미궁에서 반향하는 메아리 소리
숙명적인 마음에는 성스러운 아편!
그것은 수천 명 보초들이 반복하는 외침이요,
수천의 메가폰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의 명령,
그것은 수천의 성채 위에 밝혀진 등대,
깊은 숲에서 방황하는 사냥꾼들의 호성!
왜냐하면, 주여, 세월 따라 흘러서
당신의 영원의 강가에 와서 사라질 이 뜨거운 흐느낌은
진정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인간 존엄성의 최상의 표징이기에.
* 퓌제(1824~94) - 조각가. 당시 징역장이 있던 프랑스 루롱 항에서 강제 노동을 했음.
[ 병든 뮤즈 ]
아! 가엾은 뮤즈, 이 아침엔 왜 그러오?
움푹 패인 두 눈은 방의 환영들로 우글거리고
그대 얼굴빛에 번갈아 비치는 차갑고 말없는 광란과 공포
푸르스름한 음몽(淫夢) 마녀와 분홍빛 작은 요정
그들의 항아리 속에 담긴 공포와 사랑을 당신에게 퍼부었는가?
악몽이 사납고 짓궂은 주먹질로
전설 속의 늪 깊숙이 그대를 빠뜨렸는가?
원컨대, 건강의 향내 풍기는
그대의 가슴속엔 늘 견고한 사상이 찾아들고
기독교도로서의 그대 피가 힘차게 흐르기를
샹송의 어버이, 페뷔스와 추수의 영주인
그 위대한 목신 '빵'이 번걸아 다스리는
고대식 음절들의 헤아릴 수 없는 음향처럼.
* 강력하고 건전한 원시시대와, 타락한 인간이 광란과 공포 속에 잠겨 있는 현대의 대립에 의거한 시, 현대의 시신은 병든 시신이다. 음몽 마녀란 여자 형상을 하고 잠든 남자에게 나타나 정교한다는 악마, 작은 요정은 우아하게 생겼지만 꾀 바르고 장난 좋아한다는 정령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자다운 어조(기독교로서의 그대 피가....)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즉, 보들레르는 기독교도의 피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한심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기독교도의 피는 빈약하고, 이교도의 피가 갖는 저 율동적인 힘을 가지고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 돈에 팔리는 뮤즈 ]
오, 내 마음의 뮤즈, 궁궐의 연인이여,
정월이 북풍을 풀어 놓을 때
눈 내리는 밤의 울적한 권태에 빠져 있는 동안
그대 보랏빛 두발을 녹여 줄 깜부깃불이라도 가질 것인지?
그리하여, 대리석 같은 그대 어깨를
덧문으로 스며드는 달빛으로 되살리려나?
그대의 궁전처럼 텅 빈 그대의 돈지갑을 생각하고
창공의 금별이라도 따올 것인가?
그대, 날마다 저녁밥을 먹기 위해
찬양대 소녀처럼 향로를 만들고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테 데움을 불러야 하며
아니면 속된 인간들처럼 웃기기 위해
허기진 어릿광대처럼 마구 아양을 떨며
남 모를 눈물에 젖은 그대의 웃음을 팔아야 하는가.
[ 무능한 중 ]
옛날 승원은 그 방대한 벽들을
성스런 진리의 그림으로 꾸몄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신념을 북돋우고
엄숙한 신앙의 냉기도 누그러뜨렸다.
예수가 뿌린 씨가 꽃피던 시절에는
지금은 잊혀진 숱한 명승이
장례의 뜰 안을 아틀리에 삼고
순박하게 죽음을 찬양하였다.
---내 영혼, 또한 하나의 무덤
이 무능한 중은
그 속을 끝없이 헤매며 살고 있건만
아무것도 이 추악한 승원의 벽을 치장하지 않는다.
오, 나태한 중이여!
그러니 언제 내가
내 비참한 곤궁함의 생생한 광경을 그려 내기 위해
내 손에 일을 주고, 내 눈에 사랑을 줄 수 있으리까?
[ 적수 ]
내 청춘은 오직 어두운 폭풍우
여기저기 밝은 햇살이 비치었어도
천둥과 비바람이 사정없이 휩쓸어
내 정원에 남은 건 빨간 열매 몇 개
이제 나 사상의 가을에 다가섰으니
삽과 쇠갈고리를 쥐어야겠다.
무덤처럼 커다란 물구멍이
홍수난 대지를 새로 갈기 위하여
하지만 그 누가 알랴,
내가 꿈꾸는 새 꽃들이
갯벌처럼 씻겨진 이 흙 속에서
생기 줄 신비한 양식 찾아낼는지를?
---오, 이 고뇌여!
시간은 생명을 좀먹고
우리의 심장을 갉아먹고 이 엉큼한 적수는
인간이 잃어 가는 피로써 자라며 살쪄 간다.
[ 불운 ]
이처럼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려면
시지프스, 그대의 용기가 필요하리라!
아무리 일에만 전심한다 해도
예술은 길고 시간은 짧으니
유명한 무덤에서 멀리
외따로 떨어진 묘지를 향해
내 마음을 가린 북인 양
장송곡치면서 나아가누나.
---수많은 보석이
잠자고 있다.
어둠과 망각 속에 파묻혀
곡괭이도 측심기도
닿지 않는 곳에
수많은 꽃들이
마지 못해 풍기누나.
마지 못해 풍기누나.
비밀처럼 감미로운 꽃향기를
심오한 고독 속에서.
[ 전생(前生) ]
나는 오랜 세월 살았네, 널따란 주랑(柱廊) 아래서
바다의 태양이 수천의 불빛으로 그곳을 물들이고
그 곧고 우람한 기둥들은
저녁이면 그곳을 현무암 동굴처럼 만들어 주었다.
파도는 하늘의 영상들을 바다에 굴리며
그 풍부한 음악의 전능한 화음을
나의 눈에 비치는 저녁놀에
엄숙하고 신비롭게 뒤섞어 놓았다.
바로 그곳이 내가 산 곳, 안일 속에서
창공과 물결과 찬란한 빛 가운데에서
온통 향기로 밴 발가숭이 노예들에 둘러싸여서
그들은 내 이마를 종려잎으로 식혀 주었고
그들이 신경을 쓴 유일한 일은
나를 번민케 하던 괴로운 비밀을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었다.
[ 길 떠난 보헤미안 ]
정열적인 눈동자의 점장이 종족들이
어제 길을 떠났네, 새끼들을 등에 업고
혹은 그 굶주린 아가리에다
상비의 보물, 축 처진 젖꼭지를 내맡긴 채
사내들은 번뜩이는 무기를 메고 걸어서 갔네.
식구들은 웅크리고 마차를 따라
잃어버린 환영 좇는 서글픔으로
무거워진 눈들을 하늘 위로 굴리면서
모래의 성안에선 귀뚜라미가
지나가는 그들 바라보며 목청껏 노래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시벨 여신은 녹음을 펼쳐 주니
바위에 물이 솟고, 사막에 꽃이 피네.
이 방랑객들 가는 길 앞에
열린 것은 어두운 미래의 친근한 왕국.
[ 인간과 바다 ]
자유로운 인간이여, 항상 바다를 사랑하라!
바다는 그대의 거울, 그대는 그대의 넋을
한없이 출렁이는 물결 속에 비추어 본다.
그대의 정신 또한 바다처럼 깊숙한 쓰라린 심연.
그대는 즐겨 그대의 모습 속에 잠겨든다.
그대는 그것을 눈과 팔로 껴안고
그대 마음은 사납고 격한 바다의 탄식에
문득 그대의 갈등도 사그러진다.
그대들은 둘 다 음흉하고 조심성이 많아
인간이여, 그대의 심연 바닥을 헤아릴 길 없고
오, 바다여, 네 은밀한 보화를 아는 이 아무도 없기에
그토록 조심스레 그대들은 비밀을 지키는구나!
하지만 그대들은 태고 적부터
인정도 회한도 없이 서로 싸워 왔으니
그토록 살육과 죽음을 좋아하는가.
오, 영원한 투사들! 오, 냉혹한 형제들이여!
[ 동 쥐앙은 지옥으로 ]
동 쥐앙이 삼도천으로 내려가서
샤롱에게 뱃값을 치르자
한 침울한 거지가, 앙티스테느처럼 거만한 눈초리를 하고
억센 복수의 팔로 노를 잡았다.
늘어진 젖통과 헤벌어진 옷자락을 내보인 채
여자들은 어두운 하늘 아래 몸부림치며
제물로 바쳐진 한떼의 짐승들처럼
그의 뒤에서 긴 신음 소리 내고 있었다.
스가나렐은 껄껄대며 판돈 내라 보채고
한편에선 동 뤼이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강가에서 헤매는 모든 사자(死者)들에게
백발로 덮인 제 이마 비웃던 그 뻔뻔스런 아들을 가리킨다.
정숙하고 야윈 엘비르는 상복을 입고 떨면서
지난날의 애인인, 불성실한 남편 곁에서
처음 맹세의 다정스러움이 다시 솟아날
마지막 미소를 그에게 구하려 하나
갑옷을 입은 강건한 석상의 사나이가
키를 잡고 서서 검은 물결 헤쳐 간다.
그러나 천연스런 그 영웅은, 제 장검에 몸을 굽히고
물고랑을 바라볼 뿐, 아무것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 샤롱 - 신화에 나오는 삼도천의 나무지기.
* 앙티스테느 - 견유학파의 시조인 고대 그리스 철학자.
* 스가나엘 - 동 쥐앙의 몸종.
* 동 뤼이 - 동 쥐앙의 아버지.
* 엘비르 - 동 쥐앙의 아내.
* 갑옷을 입은 강건한 석상의 사나이 - 자기 딸이 동 쥐앙에게 농락당했음을 알고 그와 결투를 벌였지만 패배하고 만 기사의 입장을 말함. 마침내 신의 도움을 받아 동 쥐앙을 지옥에까지 끌고 내려갔다.
[ 교만의 벌 ]
신학이 비길 데 없는 정기와 기력으로
꽃피던 희한한 시대에 있었다는 이야기,
어느날 아주 위대한 어느 박사님의
---믿음 없는 사람들을 억지로 믿게 하고
캄캄한 마음 밑바닥에서 그들을 뒤흔들고
아마도 순결한 성령만이 다닐 수 있는
박사님 자신도 알지 못하는 괴상한 길을
천상의 영광을 향하여 넘어갔는데---
분에 넘치게 올라간 사람처럼 혼란에 빠져
악마 같은 교만에 사로잡혀 소리를 질렀다.
주여, 아기 예수여! 나 그대를 너무 높이 치켜 세웠다.
하나, 갑옷으로 막지 않고 그대를 공격하고 싶은 생각이
내게 있었다면
그대의 수치, 또한 그대의 영광에 비길지어다.
그러면 그대는 한낱 보잘 것 없는 태아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그 순간, 그의 이성은 사라졌다.
그 태양의 반짝임은 베일에 가리어졌다.
온갖 혼돈이 그 지성 속을 휘저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질서와 풍요가 넘치던 산 신전.
그 천장 아래선 헤아릴 수 없는 화려함이 극을 이루었건만
마치 열쇠 잃은 지하실처럼
침묵과 어둠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그는 길에 방황하는 짐승처럼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여름인지 겨울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들판을 쏘다니게 되자
폐품처럼 더럽고 보잘 것 없는 무용지물
어린 아이들의 놀림감과 웃음거리일 뿐.
* 13세기의 한 일화가 이 시의 원천인데, 그 이야기를 보들레르는 미슐레의 프랑스 역사에서 읽었거나, 그 출전인 카지미르 우댕의 저서(1722년) 속에서 읽은 것 같다 한다.
[ 아름다움 ]
나는 아름답도다. 오, 인간들이여!
돌의 꿈처럼 아무나 번갈아 상처 입은 내 젖가슴은
물질처럼 영원하고 말없는 사랑은
시인에게 영감을 불어 넣기 위해 생겨난 것
나는 수수께끼의 스핑크스처럼 창공에 군림하고
눈과 같은 마음은 백조의 흰빛에 연결한다.
나는 선(線)들을 옮겨 놓는 움직임을 싫어하고
나는 결코 우는 법도 없고 또 웃지도 않는다.
아주 우람한 기념상에서 빌려 온 듯한
장엄한 나의 자세 앞에서 시인들은
엄격한 탐구에 일생을 보내리라.
왜냐하면 나는 이 온순한 연인들을 홀리기 위해
만물을 한결 미화하는 정결한 거울을 가졌기에
그것은 나의 눈, 영원한 빛을 지닌 커다란 두 눈!
[ 이상 ]
나같은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건
비천한 시대의 썩어 빠진 사물인
가두리 장식 달린 미인도도 아니요,
반장화 신은 발도, 캐스타네츠 낀 손가락도 아니라오.
위황병에 걸린 시인 가르바니에게나 맡기려오.
병원에서 재잘대는 그 미녀들의 무리들은
나의 붉은 이상을 닮은 꽃송이를
창백한 장미들 속에서 찾을 길 없으리니
심연처럼 깊은 내 마음에 필요한 건
바로 그때, 맥베드 부인, 죄악에 맞서는 꿋꿋한 넋
질풍의 풍토에도 꽃이 핀 에쉴르의 꿈
아니면 너, 거대한 밤 미켈란젤로의 딸
거인들의 입술이 스쳐간 네 젖가슴을
야릇한 자세로 태연하게 비트는 너로구나!
* 가르바니 - 풍속 묘사에 뛰어난 보들레르와 같은 시대의 풍자 화가.
* 에쉴르 - 에스퀼러스, 그리스의 비극 시인.
* 거대한 밤 - 그리스 신화에서 '밤'은 거인들의 어머니이다.
[ 거녀(巨女) ]
자연이 당당한 기백에 넘쳐
날마다 괴물 같은 아이들을 배던 시절에
나는 젊은 거녀 곁에서 살고 싶었다.
여왕의 발치에서 주색에 빠진 고양이처럼
그녀의 육체가 영혼과 더불어 피어나고
끔찍한 노름판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며
그녀의 가슴이 음침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지
그녀의 눈에 서린 젖은 안개로 즐겨 점쳤으리라.
그녀의 멋진 형체 위로 한가로이 노닐고
그녀의 거대한 무릎 비탈 위로 기어오르며
때로는 여름날, 몸에 해로운 햇볕에
지친 그녀가 들판에 가로질러 몸을 누이면
나는 그 젖가슴 그늘 아래서 한가로이 잠을 자고 싶었으리라.
마치 평화로운 마을이 산기슭에 잠들 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