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고 있다. 튀긴 음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입 속에서 경쾌하게 부스러지는 감자칩, 노릇하게 튀겨진 폭신한 프렌치 프라이, 바삭한 튀김옷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에 입술이 번들거리는 닭튀김 등은 지나치게 맛있다. 바삭한 식감과 기름의 고소함이이루는 앙상블은 뜨거운 기름 바다 속에서 튀기지 않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맛의 걸작이다. 그렇게 튀긴 음식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식습관의 결과는, 높은 체지방률과 콜레스테롤 수치(특히 건강에 나쁜 LDL(저밀도콜레스테롤), 뇌졸중과 급성심근경색 등을 유발한다), 그리고 고지혈증 경고라는 건강검진 결과였다.
그렇지만 기름기 많은 음식을 즐기는 식습관이 이 모든 것의 절대적인 원인은 아닐 수도 있다고 믿고 싶었다. 현대인들은 이 외에도 수많은 안 좋은 생활습관으로 무장하고 있으니까.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오승원 교수는 이런 안일함에 쐐기를 박았다. “고지혈증은 혈액 성분 중 콜레스테롤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고지방 식이가 대표적인 원인입니다. 동맥경화 등 혈관 질환의 경우 흡연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기름 많은 음식을 즐기는 것도 비만이나 고지혈증을 통해 동맥경화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예방과 치료를 위해서는 지방 섭취를 제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추천하는 <하버드 의대가 당신의 식탁을 책임진다>에서도 포화지방이 심장병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그 다음으로는 ‘어떤 지방을 섭취하느냐’가 심장병 예방에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라고 지목했다.
중요한 포인트는 무조건 지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나쁜 지방을 좋은 지방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 과도한 식이지방이 대부분 선진국의 첫 번째 사망 원인으로 꼽히면서 전세계적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방으로부터 얻는 열량의 비율을 줄여왔다. 미국의 경우 오늘날 평균 식사에 들어 있는 유지류는 열량의 33% 정도. 이는 1960년대 40%, 1980년대 38%에 비해 감소한 것이다. 그런데도 심장병 발병률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원인은 감소한 지방의 대부분이 불포화지방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빈자리를 정제된 탄수화물이 채웠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는 총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출 수 있을지 몰라도 HDL(고밀도콜레스테롤, 혈관을 청소해 동맥경화의 위험을 낮춰준다) 수치까지 낮춰버렸다. 이에 관해 네덜란드의 두 과학자가 실험으로 명확하게 밝혀줬다. 48명의 지원자들은 처음 17일 동안 열량의 40%가 지방인 전형적인 서양식 식사를 했다. 그 후 36일 동안 지원자 중 반은 저지방 고탄수화물 식사를, 나머지 반은 불포화지방(올리브유)이 풍부하고 포화지방이 적은 식사를 했다. 결과적으로 두 집단 모두가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나 전자는 HDL 수치도 함께 떨어진 반면 중성지방은 증가했다. 이는 심장발작, 혹은 다른 형태의 심장병을 일으킬 확률이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반면 올리브유가 풍부한 식사를 한 후자는 HDL 수치가 높아지고 중성지방은 감소했다.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오수현 영양사도 이에 동의했다. “탄수화물은 체내로 들어오면 지방으로 바뀌어 저장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탄수화물 식단은 체내 중성지방을 높일 수 있죠.” 즉, 기름진 음식을 무조건 피하는 것이 상책이 아니다. 포화지방을 불포화지방으로 대체하고 트랜스지방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지방이 좋은 지방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방과 동고동락하기 위한 첫 번째 비결이다. 그래야 반 컵의 아이스크림 대신 28g 견과류를 먹고, 대용량 감자튀김 대신 트랜스지방이 없는 여섯 조각의 크래커를 선택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좋은 기름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다는 올리브유로 튀긴 음식은 괜찮지 않을까? 여기에 해당되는 것 중 하나가 요즘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는 건강 칩. 2,000원을 넘지 않는 국내 감자칩에 비해 9배까지 비싼 이들은, 유기농 감자를 100% 엑스트라 올리브유에 튀기고, 고가의 소금을 사용해 비타민 E를 함유하는 등 건강에 좋은 것처럼 보인다. 감자 대신 마의 한 종류인 카사바를 재료로 해 고소영이 다이어트 식품으로 애용했다는 루머와 함께 지금 각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빠지지 않고 선보이는 카사바칩도 빠뜨릴 수 없다. “몸에 좋은 오일로 만들고 기름기까지 쏙 뺀 감자칩이라면 시중 제품보다는 당연히 건강에 유익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성분표를 챙겨 보면 이런 고가의 감자칩들도 칼로리가 상당하고 어떤 제품은 ‘포카칩’보다 칼로리와 소금 함유량도 높았습니다. 섬유질이나 비타민 E를 함유해 건강에 신경을 쓴 것 같긴 하지만, 비타민을 섭취하려고 감자칩을 먹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카사바는 감자보다 칼로리가 더 높은 식물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려고 감자 대신 카사바라니, 말이 안 되죠.” 오수현 영양사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렇지만 어차피 같은 칼로리라면 100% 엑스트라 올리브유로 튀긴 감자칩이나 닭튀김은 건강에 좋지 않을까? “신선한 올리브유는 정말 훌륭한 불포화지방산이죠. 그렇지만 유럽에서는 올리브유로 튀김을 하진 않습니다. 샐러드에 넣거나 빵을 찍어 먹거나 볶는 정도죠. 그리고 엑스트라 올리브유를 사용한다는 모 치킨 브랜드의 올리브유를 알아봤더니 등급이 아주 낮은 제품이더군요. 어쨌든 아무리 좋은 기름도 튀김이란 조리법을 선택하면 식용유와 별 차이가 없어요. ‘유탕’, 즉 펄펄 끓는 기름에 넣어 조리했다는 건데, 기름이 뜨거워지면 불포화지방도 모두 포화지방으로 바뀌고, 160℃ 이상 고온이 되면 트랜스지방은 계속 증가하거든요.” 물론 산패되거나 트랜스지방이 많은 불량 오일과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과자, 대형 패스트푸드점들의 높은 트랜스지방 함량이 문제가 된 후, 2007년 12월 지방 성분 표시가 의무화됐고, 현재 과자, 대형 패스트푸드점의 트랜스지방은 대부분 0g에 가깝다. 2012년 식약청에서 발표한 ‘국내 유통 과자류 중 트랜스지방 함량’ 조사결과에서도 1회 제공기준량(30g)당 트랜스지방 평균 함유량은 2005년 0.7g에 비해 93% 감소된 0.05g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으며, 국내 과자의 경우 트랜스지방이 0.2g 미만인 제품이 99%였다. 감자튀김의 경우도 100g을 기준으로 2005년 2.7g이던 것을 0.1g까지 낮췄다.
“그렇지만 트랜스지방 0g이란 성분표시를 완전히 믿어선 안 됩니다. 1회 제공량당 트랜스지방이 0.2g 미만인 경우 0g으로 표시가 가능하거든요. 미국은 0.5g 미만을 0g으로 표시합니다. 적은 듯하지만 여러 종류의 음식을 먹다 보면(특히 식사 외에도 빵, 케이크, 유제품, 크림이 올라간 커피류 등) 어느새 수치가 금방 올라갈 수 있어요.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와 한국인 영양섭취 기준에 따라 트랜스지방 섭취량을 하루 섭취 열량의 1%를 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성인 남성의 경우 하루 2,500Kcal 중 트랜스지방 2.8g 이하, 성인 여성의 경우 2,000Kcal 중 2.2g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이는 트랜스지방이나 포화지방을 이 정도까지 먹어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안 먹을 수 있다면 아예 먹지 않는 것이 좋지만 어쩔 수 없다면 1%를 넘지 말라는 뜻입니다. 식물성 기름으로 조리했다고 트랜스지방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 설령 트랜스지방이 0g이라 하더라도 포화지방이 많을 수도 있고요. 한 대형 영화관에서 ‘0 콜레스테롤’이란 간판을 내걸고 팝콘을 팔고 있더군요. 이 또한 트랜스지방, 포화지방이 0g란 의미는 아닙니다. 광고에서 내세우는 것만 보고 선택하지 마세요. 직접 성분표를 참고하고,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면 트랜스지방을 피하고 포화지방의 섭취를 제한하세요.”
기사 이미지 컷을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감자튀김, 닭튀김 등을 사서 종이에 싸뒀다. 몇시간 후 종이는 식용유라도 들이부은 것처럼 번들거렸고, 배어 나오는 기름을 주체하지 못해 바닥까지 기름이 흥건했다. ‘튀김이 기름을 머금어봐야 얼마나 된다고’란 생각이 얼마나 안일했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나니, 감자튀김 두세 조각을 마음껏 입 속에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기름 대신 뜨거운 공기로 튀겨준다는 가전제품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기름에 튀기는 것에 비해 기름량이 50~90% 적으니까요. 열량과 기름 섭취를 크게 줄일 수 있어 고지혈증과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전 출시 하자마자 장만했죠.” 그 말을 듣자마자 기름 없는 튀김기의 원조, 필립스 ‘에어 프라이어’를 즐겨 사용한다는 후배의 신혼집으로 쳐들어가 시연을 해봤다. 우유에 재워둔 닭에 녹말가루를 묻히고, 물기를 뺀 감자에 올리브유를 발라 예열해둔 에어 프라이어에 15~20분 돌렸다. 담백한 걸 좋아해서인지 감자튀김과 닭튀김은 꽤 만족스러웠다. “얇게 썰어서 물기를 뺄수록 바삭거려요. 고구마 스틱, 단호박 스틱, 오징어 튀김도 무척 맛있어요. 폐유가 나오지 않아 뒤처리도 깔끔하고요.” 물론 식감, 색깔, 풍미를 100% 따라잡을 순 없었다. 튀긴 것보다는 구운 느낌이 들기도 하고, 기름기가 듬뿍 밴 촉촉한 느낌도 없다. 그렇지만 신선하고 적은 기름으로(고온에 기름이 타는 일도 없다) 튀김의 느낌을 내는 것치곤 기대 이상이었다.
전문가들은 ‘지질’은 영양소 중에서 가장 질병과 관련이 깊은 영양소라 입을 모은다. 현재까지 진행된 여러 연구들을 보면 지질의 양이나 종류가 심혈관계 질환&만성퇴행성 질환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고 밝혀져 있다. 또 지방은 탄수화물이나 단백질보다 2배 이상 높은 열량을 낸다. 이런 고열량 식사는 비만을 유발해 여러 가지 질환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 국내 비만의 유병률은 1998년 26%에서 2011년 31%로 증가했으며, 비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최근 5년간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심혈관 질환이나 고지방 식이와 관련이 있는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등의 암 발생률도 높아지고 있으며, 이 모두 서구화된 식이습관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튀김을 포기할 수 없다면? “튀김 없이 못 살겠다면 내 몸무게와 체지방률, 그리고 건강검진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가끔 먹을 순 있겠죠. 그렇지만 가능한 한 섭취량과 빈도를 줄여보세요. 20대의 50kg과 60대의 50kg은 체지방 성분이 달라요. 나이가 들수록 효율이 떨어져 체지방이 쌓이기 쉬운 몸 상태가 되죠. 그렇기 때문에 젊을 때부터 건강한 식습관을 기르는 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점심으로 중국 요리를 먹었다면 저녁으로는 볶음이나 튀김, 부침의 조리법이 들어간 음식보다는 굽기, 삶기, 찌기 등의 방법으로 조리한 음식을 섭취하도록 하세요. 또 식이섬유를 충분히 곁들여 섭취하도록 합니다. 식이섬유소는 혈중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고 포만감을 증가시켜 체중 조절에도 도움이 됩니다.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에는 반드시 샐러드를 곁들이거나 기름진 고기는 싱싱한 채소쌈이나 파절이 등 채소와 함께 섭취합니다. 단, 드레싱을 듬뿍 뿌려 먹지 않도록 주의하며, 김치, 장아찌 등 소금에 절인 채소는 소량만 섭취하도록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름은 올리브유, 포도씨유, 유채유 등 여러 가지를 번갈아가며 먹는 것이 좋습니다. 들어 있는 영양 성분이 조금씩 다르니까요.”
어떤 기름이 몸에 좋다고 떠들어대고, 에어 프라이어를 구입하고, 고가의 감자칩을 물색하는 것도 모두 튀기거나 볶은 음식을 안 먹고는 못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조금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스스로 나쁜 지방 대신 좋은 지방을 먹고, 오수현 영양사의 조언에 따라 식단에 신경을 쓰는 수밖에 없다. 다른 무엇도 아닌, 나의 건강을 위한 일이니까.
GOOD
단일불포화지방(LDL 감소, HDL 증가)
올리브유, 카놀라유, 땅콩유, 캐슈너트, 아몬드, 땅콩, 그 외 견과류
다중불포화지방(LDL 감소, HDL 증가)
옥수수유, 콩기름, 잇꽃유, 면실유, 생선류
BAD
포화지방(LDL, HDL 증가)
전유, 버터, 치즈, 아이스크림, 붉은 육류, 초콜릿, 코코넛, 코코넛즙, 코코넛유
트랜스지방(LDL 증가)
마가린, 식물성 쇼트닝, 부분경화유, 튀김 스낵, 대부분의 패스트푸드, 대부분의 제과&제빵
* 더 자세한 내용은 <VOGUE> 2013년 9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