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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강원도 작고문인 재조명 세미나'좌로부터 배정순 아동문학가,남진원 아동문학가,김진광 시인,박미현 박사,이홍섭 시인,정연휘 시인,신효순 강사 강릉 김동명문학관 2015,7.25. 13:30
아동과 청소년 교육용 시조 창작을 통한 향토문화 사랑
-박재문 유고시집『신비의 환선굴』을 중심으로
김진광 시인
1. 들어가기
청봉靑峰 박재문朴載文은 1930년 4월 27일 삼척시 우지동 158번지에서 3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여, 삼척초등학교를 졸업 후, 삼척공업중학교(6년제)기계과를 졸업하고, 1950년 연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6.25사변으로 학도병에 참전, 당시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삼척여고 강사를 하는 등 7년 만에 대학을 졸업을 하였다.
그 후 국어교사로 후배를 양성하였는데, 춘천 성수중학교(1964~1966)를 제외하면 모두 고향인 삼척에서 삼척공업고등학교 교사,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 국어과 교수, 삼일중학교 교감․교장을 거쳐, 강원도 교육위원회 제 7대 교육위원(1988~1991)을 역임하고, 그 외 삼척군지 일부 집필(1985), 죽서문화제위원장(1986~1987), 삼척산업대강사를 맡아 후진을 기르다가 1997년 2월 25일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여러 문학잡지가 많아서 등단이 비교적 쉬운 시대에 살던 그는 후배들에게 등단하겠다는 얘기를 꺼내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다 박재문은 유고 시조집으로 등단을 하게 되었다.
박재문은 말년에 왜 문학에 입문하게 되었는가? 그런 말을 글로 남긴 것은 아직 찾지 못하였다. 여러 상황을 미루어 보면, 첫째는 그가 국문학과 출신이라는 점과 지역의 후배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문학 창작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그가 삼척지역에 초대향토문화연구회회장(1988~1990)과 제3대 회장(1993~
1994)을 맡았는데, 삼척향토문화연구회 조직의 필요성과 구성원 조직과 책 편집 등에 앞장섰던 사무국장을 맡은 정연휘 시인과 그리고 두타문학회 최홍걸과 박종화 시인 등과의 만남의 영향이 컸다.
박재문이 회장으로 있던 향토문화연구회는 첫해(1989년)에 삼척문화와 관계되는 논문을 한데 모아 엮은 『실직문화논총』을 발행하였다. 3년째에는 우리 역사의 고문서인 ‘척주지’(허목), ‘척주선생안’, 김종언의 ‘척주지’, ‘척주절의록’의 4권의 고문서를 모아『척주집』을 영인본으로 발행하였다. 또 1993년도에는 삼척을 노래한 약 500여수의 옛날 漢詩들을 찾아 ‘척주한시집’을 발행한 공적이 있다. 그 기간인 1992년부터 전통과 역사가 깊은 삼척의 문학동인지 두타문학(2015년 7월 현재 310회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수한 시낭송회)에 발을 들여놓으며 본격작인 창작활동이 시작되었다.
박재문의 유고 시집에 실린 글은 산문 3편을 제외하면 모두 시조 형식을 빌린 연시조들이다. 그런데,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가장 먼저 책에 발표한 작품은 유고 시조집에도 게재가 되지 않은 시조時調가 아닌 그의 유일한 시詩 작품「고도 삼척 古都三陟」이다.
실직곡국 옛 도읍지/ 진주 척추 바뀌면서/
오십천 돌아 흘러/ 관동팔경 죽서루/
대보름 기줄 당겨/ 오랜 전통 이어가네/
뭉치자 노래하자 손에 손잡고/
빛내자 자랑하자 내 고향 삼척//
봉황산 우뚝 솟아/ 갈야산 건너보니/
남산절단 물결 돌려/ 새 도시를 만들었고/
육향산 동해비는/ 이 고장을 지켜주네/
뭉치자 노래하자 손에 손잡고/
빛내자 자랑하자 내 고향 삼척//
석회산 깎아 내려/ 공도 삼척 이룩하고/
정라항 만선 깃발/ 뒷나루 해수욕장/
갈매기떼 웅비하며/ 번영을 축하하네/
뭉치자 노래하자 손에 손잡고/
빛내자 자랑하자 내 고향 삼척//
위의 시 「고도 삼척 古都三陟」은 그가 남긴 유일한 시작품으로, 삼척의 찬가인 노랫말임을 알 수 있다. 옛 삼척군은 지금의 동해시와 태백시가 포함된 큰 땅이었는데, 1980년 초 앞의 두 시를 떼어내 시로 승격시키고, 1986년 1월 1일 삼척시는 뒤늦게 시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삼척시 노랫말’을 공모하였는데, 3절로 된 후렴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때 응모하려고 쓴 시가 아닌가 짐작된다. 이 시도 후렴을 제외하면 시조형식을 닮았다. 다만, 노랫말을 만드느라 시조의 종장 3․5․4․3의 자수를 따르지 않았고 후렴을 의도적으로 붙인 것 같다. 박종화 시인의 말에 의하면, 삼척향토문화연구회 일을 함께하면서 1990년 『悉直文化』제1집에 발표한 작품을 얘기하며 두타문학회에 가입하도록 하였다고 하니, 「고도 삼척 古都三陟」가 그의 창작활동 시작의 도화선이 된 셈이다.
문학의 기능을 쾌락적인 것과 교시적 기능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쾌락적인 기능은 독자가 문학 작품을 통하여 재미 즉 쾌락을 느끼는 것이다. 이때 쾌락은 비극에서는 카탈시스catharsis를 통해 정화작용을, 그 외 작품들은 정신적 즐거움과 미적 쾌락이 되는 것이 좋다. 교시적 기능敎示的 機能은 문학이 독자에게 윤리적 교훈을 주고 인간에게 유익한 지식을 가르치는 기능을 갖는다는 입장에서 교훈설 공리설 등으로 불리어지는 이 주장은 이미 플라톤의 「공화국」에서 시작되고 있다.
박재문의 유고 시조집 『신비의 환선굴』에는 시조가 아닌 산문이 5편이 책 뒤편에 실렸는데, 박 시인이 발표한 신변잡기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쓴 「나와 삼척」, 「졸업사정회에 얽힌 이야기」, 「게다짝과 조리」3편이 있고, 며느리가 시아버지인 박 시인을 회고하며 쓴 「며느리의 글」, 박 시인의 아내가 남편을 추모하며 쓴 「아내의 글」이 있다. 아내의 글에서 나타난 바에 의하면 그가 살아생전에 한 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소재는 ‘삼척의 문화유적’이며, 글을 읽을 대상은 ‘아동(청소년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어른)’이며, 창작 목적은 ‘삼척문화 교육’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예술적이고 쾌락적인 쪽보다는 인간에게 유익한 지식을 가르치는 기능을 갖는다는 입장의 교시적 기능敎示的 機能 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 장소성과 관련된 소재 혹은 내용별 작품 살피기
고故 박재문 일주년 기일忌日을 맞아 두타문학회와 유족이 함께 마련한『신비의 환선굴』유고시집 출판기념회가 1998년 2월 18일 삼척유림회관에서 있었다. 시집은 정연휘 시인이 편집, 교정은 김소정(김화옥)시인, 각 작품마다 관련사진을 넣은 사진은 시청에서 행사사진을 담당하고 있는 심영진이 맡아 수고해주었다. 책에 실린 작품 수는 산문 5편을 제외한 시조가 총89편이다. 정연휘 시인이 임의로 소제목을 정한 1.민속의 희디흰 속살(7편), 2.민족정기(4편), 3.역사의 향기(9편), 4.아, 태고의 신비여(5편 ), 5.사찰에 이는 바람(5편), 6.아, 풍유(11편), 7.산은 산으로 가부좌 하고(12편), 8. 강은 강으로 흐르고(9편), 9.그리고 삼척에는(19편), 10.천년기념물이 된 나무들(8편, 소제목이 중복 인쇄되어 필자가 임의로‘천년기념물이 된 소나무들’로 바꿈)을 보면 글의 소재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작품집에 실린 총 89편의 작품 중에 지역성・장소성(로컬리티 locality)과 관련이 없는 작품은 8편(석별, 축 회혼례 송, 축 금혼례 송, 축 정년퇴임 송, 축 팔순잔치 송, 노후경계엄, 고별, 가정의 행복)이다. 나머지 작품은 장소성과 관련이 있으며, 향토사鄕土史(local history)와 관련된 작품이 그 누구보다도 많은 향토 시조시인이라 할 수 있겠다. 본 시집에 게재된 작품들이 대부분이 지역의 문화재를 소개한 사실적인 내용의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용 시조이기에 주제별이나 작품 경향이나 표현방법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정연휘 시인이 소재나 내용별로 나눈 10개의 소주제를 다시 비슷한 소재나 내용끼리 4개로 묶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가. 로컬히스토리, 민속과 관련된 시조를 통한 지역 사랑
신남리 앞 바다의 외로운 바위섬아/ 한 많은 사연 안고 도련님 원망하듯/ 못 맺은 사랑의 열매 저승에서 맺었나// 꽃피고 새가 우는 따뜻한 봄 날씨에/ 풍성한 바다나물 두둑히 따가지고/ 다가올 가을철에 식 올리고 살랬지// 험궂은 봄 날씨는 심술장이 질투인양/ 잔잔한 바다물결 풍랑으로 돌변하니/ 산 같은 높은 파도 바위섬을 쓸었네// 그토록 애원하며 살려고 애썼건만/ 나약한 처녀 몸이 노도를 이길소냐/ 애쓰고 또 애를 쓰다 애바위가 되었나// 처녀의 깊은 한은 오뉴월 서리되어/ 고기가 안 잡히니 굶주리던 어민들은/ 드디어 낭자의 한 알아차려 섬겼지// 마을 뒤 벼랑 끝에 해신당 서있으니/ 어여쁜 낭자님의 초상화 걸려있고/ 그 앞엔 나무로 깎은 남근만을 모셨네 -「애바위」전문
위의 작품 「애바위」는 형식상 6수로 된 민속을 제재로 한 연시조이며, 삼척 신남리 해신당공원의 전설에 시적자아의 느낌을 많이 가미한 작품의 하나이다. 1수의 ‘한 많은 사연 안고 도련님 원망하듯/ 못 맺은 사랑의 열매 저승에서 맺었나’, 2수 전체 ‘꽃피고 새가 우는 따뜻한 봄 날씨에/ 풍성한 바다나물 두둑히 따가지고/ 다가올 가을철에 식 올리고 살랬지’, 4수에서 ‘ 그토록 애원하며 살려고 애썼건만/ 나약한 처녀 몸이 노도를 이길소냐’ 에서 시적자아의 느낌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 해신당공원은 성性민속 관광지와 어촌민속전시관이 함께 있다.
이러한 민속을 소재와 주제로 한 작품은 ‘너와 집, 살대세우기, 너와집과 굴피집, 대이리 통방아, 죽서문화제, 봉황산 세 미륵’등이 더 있는데, 이러한 작품 모두가 장소성(로컬리티 locality)와 관련이 있다.
知者는 樂水하니 動하고 樂하였네/ 動安도 知者이라 動하면 편안한가/ 그래서 불후의 대작 제왕운기 펴냈네// 중략(2~5수) // 頭陀의 명산 밑에 龍溪別業 얻었으니/ 李承休 動安居士 대 걸작을 창작했네/ 아깝게 7십 7세에 이 세상을 하직해
-「동안 제왕운기」일부
사랏재 진달래는 올봄에도 붉게 피고/ 두견새 울음소리 애간장을 태우누나/ 공양왕 삼부자 원혼 아는 듯도 하구나// 중략(2수) // 고돌재 언덕 위에 세 무덤만 나란히/ 동해의 푸른 파도 갈매기만 오락가락/ 화려한 부귀영화도 한 점 구름 되었네
-「공양왕릉」일부
「동안 제왕운기」는 고려 말 몽고가 침입한 시기에 외가 삼척의 미로 천은사에 거주하며 삼국유사와 더불어 단군을 떠올려 민족정신을 불러일으킨 제왕운기를 지은 동안 이승휴의 일대기를 떠올린 6수로 된 시조이다. 2~6수는 동안의 일생을 노사실적으로 노래했으나 1수는 고전을 끌어와 비유적 인유로 표현하였다. 필자도 동안 이승휴의 일생을 노래한 10페이지 분량의 서사시敍事詩 「민족의 나침반 이승휴」를 발표한 바 있다. 위의 작품 외에도 ‘민족의 정기’를 노래한 작품으로는 ‘홍서대, 용산서원, 박걸남 장군, 충혼탑’ 등이 있는데, 이러한 작품 또한 모두 장소성과 관련이 있는 작품들이다.
위의 시「공양왕릉」은 삼척 근덕면 궁촌리에 있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릉의 이야기를 3수의 연시조로 쓴 작품으로, 그의 작품 중에 시적표현이 잘 된 작품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4~6수로 된 연시조의 형태이며, 그 중에 6수로 된 연시조의 그릇에 삼척의 문화재를 담아 노래한 작품이 가장 많다. 위의 작품 외에 3수로 된 것은 민족의 정기를 노래한「충혼탑」이 있다.
이밖에도 향토사鄕土史(local history)와 관련된 작품으로는 ‘요전산성, 활기릉, 소공대비, 삼척향교, 찰방과 역원, 삼척의 봉수대, 실직군왕릉, 척추동해비 등이 있다. 향토사鄕土史(local history)와 관련된 「공양왕릉」과 「활기릉」은 두타문학회 가입한 첫해 1992년도 『두타문학』15집에 발표한 작품이다. 독자들에게 지식을 전해주는 교시적 기능敎示的 機能에 도움이 되는 작품으로, < 옛날의 교통통신 역마와 봉화대라/ 삼십리 간격으로 역원을 설치하고/ 역졸과 역마를 두고 공문 전달하였네// 영동의 강릉 삼척 울진 평해 사개 군에/ 십육 개 역을 두고 한 곳에서 관장하던/ 동해시 평릉 찰방도 교가역에 옮겼네// 삼척의 역원 위치 여섯 군데 있었으니/ 지금의 동해시의 평릉역 신흥역과/ 삼척시 사직과 교가 용화역과 옥원역( ‘찰방과 역원’ 1, 3, 4수) >와 < 이 고장 봉수대는 다섯 곳에 있었으니/ 가곡산 임원산과 초곡산 봉수대와 / 근덕의 조야산봉수 삼척광진 봉수대// 야간엔 불을 켜고 주간엔 연기 피워/ 평시엔 일거 횃불 위급시 이거 사거/ 일로써 완급을 알려 통신수단 되었네( ‘삼척 봉수대’ 2~3수 ) >도 향토사鄕土史(local history)와 장소성과 역할이 각각 4수의 연시조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작품 창작을 통하여 박 시인은 아동과 후진들에게 지역 문화재를 바르게 알고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나. 시조의 로컬리티, 자연 사랑
신기면 대이리는 석회동굴 집합소로/ 그중에 환선굴은 가장 큰 평굴이라/ 동굴의 입구부터가 기차터널 같구나// 동굴의 주위 경치 속세와는 전혀 달라/ 신선의 세계란게 바로 이곳 아닐런지/ 촛대봉 뽀죽히 솟아 이 산천을 밝히듯// 석순과 종류석이 천태만상 만들어져/ 조물주 조화 솜씨 입 벌려 탄복한다/ 굴속의 넓은 광장은 궁전 건물 방불해 -「환선굴」1, 2 , 4수
환선굴은 나중에 개발된 이웃의 대금굴과 함께 국가지정 천년기념물 제178호로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웅장하고 신비로운 동굴이며, 동굴 입구까지 모노레일이 설치된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위의 작품은 5수로 된 연시조로, 그의 작품 중에서 시적자아의 느낌을 가장 많이 표현된 시조 중의 하나이다. ‘동굴의 입구부터가 기차터널 같구나’, ‘동굴의 주위 경치 속세와는 전혀 달라/ 신선의 세계란 바로 이곳 아닐런지/ 촛대봉 뽀죽히 솟아 이 산천을 밝히듯’, ‘석순과 종류석이 천태만상 만들어져/ 조물주 조화 솜씨 입 벌려 탄복한다/ 굴속의 넓은 광장은 궁전 건물 방불해’ 등에서 확인 된다. 읽으면서 시각적 이미지(1~5수), 청각적․촉각적 이미지(5수)를 통하여 실제 환선굴에 들어가 보는 듯한 분위기를 느낀다. 이 외에도 동굴을 소재로 한 시는 ‘관음굴, 초당동굴’이 있는데, 공감각적 이미지가 돋보여 실제 동굴을 관람하는 듯하며 시를 통하여 자연인 동굴 사랑을 배우게 된다.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동굴과 비슷한 부류인 지금은 동해시에 편입된 「무릉계곡」은 4수로 된 연시조로, 비교적 각 수의 종장에 ‘금란정 큰 정자는 망국한을 읊은 자리’ 등의 시적자아의 느낌이 표현되어 있으며, 원덕읍에 소재하는「덕품계곡」에서는 ‘의상대사의 세 마리 목안전설’을 떠올리는 등 회화적 이미지가 돋보인다.
백두산 뻗어내려 태백준령 이루었고/ 설악은 명산인데 태백산은 영산이라/ 한배검 단군왕검이 하강한 곳 여길세// 북쪽엔 함백산이 지호지간 마주보고/ 동쪽엔 문수봉이 그 옛날을 말해주네/ 아득한 동해 수평선 하늘 위에 걸린 듯// 천오백 높은 고지 만경사 자리하고/ 이곳도 많은 양의 샘물이 솟아나네/ 천수룰 다한 주목들 미륵처럼 서있네 -「태백산」1, 4, 5수
용추라 삼단폭포 큰 항아리 만들었네/ 조물주 조화솜씨 그렇게도 위대한가/ 암벽엔 명필의 글씨 별유천지 새겼네// 청옥의 맑은 물이 이 곳에서 부서져서/ 그 소리 우뢰같이 십리밖에 퍼져가네/ 하단의 깊이 모를 소 정말 용이 살은 듯// 두타의 맑은 물은 이곳에서 합류하니/ 그 이름 쌍폭이라 그야말로 장관이네/ 우렁찬 자연의 기상 이곳에서 배우리 -「용추폭포」1, 2 , 3수
위의 시 2편은 옛 삼척지역의 산과 강을 노래한 연시조이다. 「태백산」은 현재 태백시에 소재하지만 옛 삼척군의 땅이며, 우리나라의 뿌리 단군왕검의 신화가 살아 숨쉬는 영산을 노래하였다. ‘가엾은 단종대왕 비각만이 외로워’(3수 종장), ‘ 아득한 동해 수평선 하늘 위에 걸린 듯’, ‘천수를 다한 주목들 미륵처럼 서있네’ 등에서 시적자아의 느낌이 잘 나타나 있다. 태백산은 단군왕검의 신화가 있기에 삼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영산이며, 다음으로 삼척과 동해의 지붕이기도 하며 조선을 건국의 전설이 전하는 두타산, 그 다음으로는 삼척군왕릉이 있는 삼척의 진산鎭山인 갈야산이 될 것이다.
이외에도 산이나 고개를 노래한 작품으로는 ‘두타산, 덕봉산, 해망산, 갈야산, 근산, 봉황산, 청옥산, 육백산, 백봉령, 갈령재, 고사리재’ 등이 더 있다. 시「백봉령」은 정선아리랑에도 ‘우리집의 서방님은 (중략) 강릉 삼척으로 소금 사러 갔는데 백봉령 굽이굽이 부디 잘 다녀오세요’ 하고 나오는 정선의 임계에서 강릉의 옥계와 옛 삼척으로 오가는 고개를 소재로 노래했는데, 마지막 연 4수에서 ‘이어온 태백산맥 대관령 남쪽줄기/ 자병산 깎아내는 허울 좋은 자원개발/ 줄기찬 백두대간이 절단돼도 좋은가’하고 가까이 보이는 강릉 옥계의 시멘트 광산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시조이다.
위의 시「용추폭포」는 1993년 『두타문학』 16집에 실린 작품으로 폭포 아래 파인 돌을 ‘물항아리’로, 시청각적 이미지를 통한 폭포의 광경과 물소리를 실제 보는 듯이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3수의 종장 ‘우렁찬 자연의 기상 이곳에서 배우리’라는 시인의 교훈적(교시적)문학의 기능이 겉으로 드러나 있다.
이외에도 강이나 폭포를 노래한 작품으로는 ‘오십천, 미인폭포, 구룡폭포, 황지潢池, 천천과 구무소, 가곡천, 마읍천’ 등의 지역의 문화재를 통한 자연보호 사랑이 담겨있는 시조들이 있다.
계곡이 길이라고 도계라 불렀던가/ 철마가 달리면서 큰 길이 뚫어졌지/ 매장된 무연탄 덕에 도계읍이 되었네// 수령을 이천오백 수고는 십육미터 고목 중에 거목일세/ 너만은 이 고장 역사 자세히도 알겟지// 잎이긴 느티나무 이 고장 수호의 신/ 광산촌 되고나서 시끄러워 못살겠지/ 아이들 불장난으로 화상까지 입었네// 헌연의 기념물로 지정받은 느티나무/ 말없이 한자리에 오래도 견뎌왔네/ 우리도 인내와 끈기 너에게서 배우리 - 「도계 느티나무」전문
시 「도계 느티나무」그의 시조 중에 비교적 시적 자아의 느낌이 많은 작품에 해당 된다. 1수에서는 ‘도계’라는 지명의 유래, 큰길이 뚫어진 유래, ‘도계읍’이 된 유래를 노래하였다. 3수에서는 ‘아이들 불장난으로 화상까지 입은 느티나무의 아픔’을, 마지막 4수에서는 ‘우리도 인내와 끈기 너에게서 배우리’라는 교훈적(교시적)문학의 기능이 겉으로 드러나 있다.
이외에도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를 소재로 한 시조에는 ‘교가리 느티나무, 하장 느릅나무, 궁촌리 엄나무, 죽기동 은행나무, 갈천의 모가나무, 동활리 금소나무’ 등이 있다. 박재문 시인은 지역성과 장소성과 관련 있는 자기가 몸담고 살고 있는 고장의 강과 산과 고개와 계곡과 동굴과 천년기념물이 된 나무들을 공부하며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게 하고 있다.
다. 시조의 로컬리티, 사찰과 정자각 풍경
삼화사 뒤로하고 학소대 향하다가/ 바른 쪽 안내판에 관음사 입구표시/ 눈앞에 전개될 선계 피곤함을 모르네// 날아서 떨어지는 절 옆의 폭포에는/ 맑은 물 부셔져서 옥구슬이 되는구나/ 공기도 맑고 좋지만 산채 향기 살찌네// 명에도 재물욕도 오로지 내던지고/ 공수래공수거의 참진리 깨우쳐서/ 죄 없이 나머지 여생 시름없이 살고파 - 「관음사」1, 4, 6수
위의 시 「관음사」는 현재 동해시 무릉계에 소재하는 작은 사찰이다. 두타산과 백봉령 기슭에서 시작하는 동해의 살천(전천)의 입구에는 병풍을 두른 듯한 ‘취병산’이 있고, 현재의 삼화사 앞의 ‘무릉계’는 옛 삼척 팔경에 속하는데, 거기서 용추폭포를 향해 조금 걸어가다 보면 중간에 학소대가 나타나고 학소대 위쪽 길로 오르면 관음사가 있다. 이곳의 산수계곡은 옛 삼척팔경을 둘이나 안고 있는 절경이다. 그래서 시인은 ‘눈앞에 전개될 선계 피곤함을 모르네’하고 읊기도 하고, 떨어지는 폭포를 보며 ‘날아서 떨어지는 절 옆의 폭포에는/ 맑은 물 부셔져서 옥구슬이 되는구나’하고 감탄하며, 절에서 얻어먹는 공량을 ‘공기도 맑고 좋지만 산채 향기 살찌네’하고 넉넉한 절의 인심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연인 6수 에서는 ‘명에도 재물욕도 오로지 내던지고/ 공수래 공수거의 참진리 깨우쳐서/ 죄 없이 나머지 여생 시름없이 살고파’하고 박재문 시인의 이상향이며 속세에 사는 인간의 마음이기도 한 불심을 서경 속에서 서정을 담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에서 사실의 설명과 서경의 묘사 쪽보다는 시청각적 이미지와 서정 표현이 비교적 잘 나타난 좋은 시의 하나이다.
그 외에도 고장의 사찰을 노래한 시로는 ‘천은사, 영은사, 선흥사, 삼화사’ 가 있다. 삼척문학통사 의 ‘작고문인편’에 그의 작품이 산문 3편과 시조 5편 이 실렸다. 통사에는 사찰에 관한 시조로는 「천은사」가 게재되었는데, 신라 때는 백련대, 고려말은 간장사, 선조 때는 흑악사, 조선의 고종 때 천은사라는 절의 개칭과 민족의 주체의식을 일깨워준 이승휴의 제왕운기의 이야기 삽입과 문일봉 선사의 현존 실제 인물을 거론하는 등 시조의 로컬리티와 거주했거나 거주하는 실존 인물을 통해 지역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해시 구미동에 자리잡은 만경대는/ 광해군 5년 계축 김훈이 세운 정자/ 지조를 지키기 위해 벼슬까지 버렸네// 전천강 맑은 물에 낚싯대 드리우고/ 세상사 모두 잊고 강가에 앉았으니/ 갈매기 벗인 줄 알고 춤을 추며 반겼네// 허미수 이곳 경치 만경이라 찬양하고/ 판서인 이남석은 해상명구 현판 썼네/ 이 전망 이 좋은 경관 어디가서 찾으리 - 「만경대」1, 2 , 4수
관동의 팔경중에 죽서로가 제일루라/ 칠경은 모두같이 동해를 향했는데/ 유독히 이 누각만은 산을 보고 서 있네// 천상의 죽죽선녀 무슨 계명 어겼기에/ 지상에 추방되어 이 곳에 살았던고/ 하물며 사시사철에 가무음곡 그치리/ 큰 액자 현판들이 누각에 즐비한데/ 신선은 어디가고 글귀만 남았느냐/ 정송강 가사의 탑이 관광객을 반기네 - 「죽서루」1, 4, 5수
「만경대」는 그의 유고 시조집에 실린 누각이나 정자각을 대상으로 쓴 시조 중에 가장 시적자아의 느낌이나 표현이 잘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자각을 세운 ‘김훈’, 만경萬頃이라 찬양한 ‘허미수’, 海上名區라고 간판을 붙인 ‘이남석’의 실명이 시 속에 있으며, 높은 산 위에서 전천강과 바다를 낀 만 이랑이나 되는 넓은 들을 한 눈에 바라보는 듯한 회화성과 그 속에 유유자적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난 장소성이나 향토성과 관련이 있는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항구의 개발로 옛 삼척의 팔경인 만경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많이 바뀌어 아쉽다.
「죽서루」관동팔경의 제1루이며, 보물 213호인 죽서루는 우리나라 대표적 누각이다. 죽서루에서는 정조의 어제시를 비롯하여 29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 걸로 보아 수많은 시인묵객이 찾아와 글을 썼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응벽헌, 연근당, 진주관, 죽장사 등 실제 있었던 건물 이름과 천상에서 내려와 살았다는 기생 죽죽선녀의 전설을 떠올려 회상하며 작품을 형상화 하였다. 마지막 5수의 종장 ‘정송강 가사의 탑이 관광객을 반기네’로 활유법을 사용하여 작품을 맺는다. 정송강의 가사 관동팔경 중에 삼척의 죽서루를 노래한 ‘진쥬관 죽서루 오십천 린 믈이 태백산 그림재 동해로 담아가니……’의 내용과 리듬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위의 두 작품 외에도 유고 시조집에 실린 누각이나 정자각을 대상으로 쓴 시조는 ‘능파대, 회강정, 산양정, 해운정, 양덕정, 관덕정, 육향정, 죽서정, 봉황정’ 등이 있다.
이미 없어진 정자각은 추암 촛대 바위 뒤편 언덕의 ‘능파대’, 삼척 오십천이 북쪽으로 흐르다가 도경에 와서 바위섬에 부딪쳐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 ‘회강정’ 등이다. 회강정을 비롯한 옛 ‘삼척 8경’ 중 없어진 것 4개의 복원이 필요하다.
라. 축하와 행복과 노후경계와 고별 송
자기는 잘 알면서 남의 사정 모르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 제 고집만 부리누나/ 그러나 역지사지로 서로 이해하여라// 인간은 불안전해 누구든지 죄를 짓네/ 때로는 부족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일세/ 그러니 서로 용서해 서로 참고 지내세// 따뜻한 상호 존중 포근한 상호 이해/ 양보로 상호 용서 인내로 살아가면/ 진정한 가화만사성 그게 바로 참 행복 - 「가정의 행복」3, 4, 5수
人命은 在天이요 會者는 定離인데/ 이웃을 사랑하며 능력껏 돕고 사세/ 마침내 숨끊어지면 후회한 들 어쩌리// 六十에 耳順이니 고집일랑 버려야지/ 仁者는 樂山하니 靜하고 長壽하네/ 寬則壽 寬則得이라 좋은 친구 모이지// 來世를 모르지만 만약을 생각해서 仁愛와 慈悲布施 정성껏 살다가세/ 이 세상 내가 지은 罪 누굴 주고 갈건가 - 「노후 경계엄」1, 3, 4수
「가정의 행복」은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과 가족과 제자들과 혹은 결혼주례자리에서 행복론을 얘기하듯 문학적인 표현보다는 설명 중심으로 작품을 썼다. 자기 고집만 주장하지 말고, 역지사지로 이해와 용서와 상호 존중과 양보와 인내로 가화만사성하라는 내용이다. 1수에서는 행복의 기준은 없지만 두마음을 합하는 것이 최고라고 하며, 마지막 5수에서 앞의 얘기를 총정리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노후 경계엄」역시 문학적인 표현보다는 설명 중심으로 작품을 썼다. 자신의 노후의 삶을 살아갈 경계警戒의 말을 쓰고 실행하고자 하였다. 김진숙의 ‘아내의 글’에서도 ‘당신은 항상 인명은 재천이라 하셨지만’ 하고 말하는 것을 보면 행복론이나 노후 경계엄을 이따금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한 것 같다. 그는 노후에 늦게나마 가정의 행복, 노후 경계엄과 지역 문화재 사랑의 글을 쓰면서 글과 행동의 일체를 실행하려고 노력했던 시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작품은 문학의 실용적 교시적 기능으로 후진들에게 남겨서 지역문화 사랑을 실행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동해시 용정에서 29년에 출생하여/ 북평국 삼척공고 서울사대 출신인데/ 산업대 국사교수로 정년퇴임 맞았네// 국가의 백년대계 교육에 달렸으니/ 한평생 정성 쏟아 많은 제자 양성했네/ 맹자의 군자삼락 중 교육락을 체험해/ 강직한 그 성격과 온화한 그 성품은/ 수많은 제자들의 본이 되고 거울 되어/ 이 나라 장내의 일꾼 훌륭하게 키웠네// 향토의 사학자로 지방문화 발굴하고/ 샅샅이 연구하여 전통문화 계승하니/ 이 고장 문화창달의 선구자로 활동해// 일평생 교단에서 떳떳이 생활하고/ 정년을 맞이하여 이 영광 차지하니/ 여생을 건강에 유의 만수무강하소서
- 「축 정연퇴임 송(김일기 교수님)」
박재문이 삼척의 향토문화 연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삼척공고와 삼척공업전문대학에서 함께 강의를 한 김일기 교수(전, 삼척문화원장)의 영향이 있었다고 본다. 예전에 삼척에는 전문적으로 향토문화나 민속연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서울대 역사과 출신인 김일기 교수가 삼척지역의 조사를 하러오는 대학 친구들의 권고로 삼척의 문화연구를 하게 되었다. 한 살 차이의 비슷한 나이와 같은 지역출신으로 같은 직장에 오래도록 근무했던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가 박재문을 자연스럽게 향토문화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이다. 박재문이 초대향토문화연구회회장을 맡았을 때도 김일기 삼척공전교수(이후 삼척산업대, 강원대삼척캠프스로 개칭)는 맨 앞자리의 자문위원이었다. 박 시인은 앞의 시에서도 ‘仁者는 樂山하니’ 하며 겨울 눈 쌓인 태백산 꼭대기 천제단에서 가진 두타시낭송에 참석하여 좋아하는 술도 많이 마시고, 과로하여 몸이 좋지 않은 상태인데도 친구인 김일기 교수가 삼척문화원장으로 삼척대보름제를 주관하는 죽서문화제에 빠지지 않고 나가시다가 갑자기 이승을 떠났다. 위의 시는 함께 직장에서 근무한 동료이며, 문화재연구를 함께 하였던 오랜 친구의 정년퇴임을 축하한 목적시인 축시이다. 이러한 축시로는 ‘축 회혼례 송, 축 금혼례 송, 축 팔순잔치 송’이 있다.
동국대 강당에서 정년을 마친 뒤에/ 오로지 고향 위해 여생을 바친다고/ 그토록 뜨거운 열정 많은 활동 하셨지// 병석에 누웠어도 마음은 고향산천/ 노래를 지어보며 그리움을 달랬건만/ 이제는 영영 못 만날 불귀의 객 되었네// 고향에 남은 후배 슬픔을 거두고서/ 못 다한 선배님의 소원을 이루고자/ 오늘도 실직의 뿌리 찾아내어 가꾸네 - 「석별(고 진인탁 선생님 서거)」1, 3, 4수
진인탁은 동국대학 영문과 시절 문학지 『學生과 文學』에 김기림의 추천과 함께 시평을 받았으나, 외무고시 합격 후 아시아 쪽에 대외 근무와 대학 강단에 서느라 문학 활동을 전혀 하지 못 하였다. 그는 동국대 교수직 퇴임 후 고향에 와서 삼척산업대 강당에 서며 박재문에 이어 제2대 향토문화연구회 회장을 맡으면서 두타문학 초대시인과 두타문학 고문을 맡으면서 다시 문학 활동을 재개한다. 박재문과 진인탁은 삼척출신이고, 향토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 강단에 함께 섰고, 뒤늦게 문학 활동을 한 공통점이 많았다. 위의 시조는 진인탁의 생애업적을 기리며 선배와 함께 연구하던 삼척(부족국가 ‘실직국’)의 문화연구를 하겠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이 글의 형태와 내용이 비슷한 것이 또 한 편 있는데, <生者는 必滅이요 會者는 定離지만/ 回甲을 겨우 넘어 이렇게도 빨리가니/ 하늘도 無心하구나 야속하고 덧없어// (중략) // 人命은 在天이니 인력으로 막을 손가/ 한平生 獨身으로 쓸쓸히 살다간네/ 명복을 비옵나이다 부디 영면 하소서「고별(김영준 문화원장)」1, 5수>는 함께 동인지 두타문학을 통하여 글을 썼던 삼척 문화원장님이며 후배인 김영준 시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하며 쓴 목적시기도 한 조시형태이다 보니 이런 작품은 문학성과는 거리가 있다. 박재문은 말년에 위의 축시와 조시에 나오는 세 사람과 잘 어울렸는데, 이제는 모두 하늘나라로 가서 만나 삼척의 문화 얘기를 나누며 지내리라.
5. 나가기
청봉 박재문은 엄밀히 말하면 시인으로 등단을 하지 않고 두타문학 동인으로 늦깎이로 문학 활동을 하다가 사후에 유고 시조집으로 등단을 한 셈이다. 그는 말년에 삼척향토문화연구회를 조직하여 중심에서 활동을 하면서 향토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면서, 아동들과 청소년에게 문화재를 교육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글의 내용의 담는 그릇이 자유시보다는 시조가 좋은 것을 깨닫고 일찌감치 시조만으로 작품을 쓰게 된다. 필자가 알기로는 그는 시조 외에 자유시는 「고도 삼척 古都三陟」한 편이 전한다.
청봉 박재문의 시조 형태는 정형시조인 3장 6구 45자 내외의 3(4)․4․3(4)․4의 음보율과 음수율의 형태를 충실히 따랐으며, 종장의 첫 어절 3자도 어김없이 지켰다. 옛 삼척지역( 현재의 삼척시, 동해시, 태백시)의 문화재와 유적지와 기념물을 소재로 하여 교육적인 목적으로 시조를 창작하다보니, 많은 내용을 단시조에 담기가 어려워서 대부분 4수에서 6수로 된 연시조의 형태를 많이 선택하였다. 3수로 된 연시조는「공양왕릉」과 「충혼탑」이 있으며, 2수로 된 연시조는 「댓재 개통」1작품뿐이다.
원명이 장생리니 불로장생한다는 곳/ 동해의 맑은 일출 제일 먼저 비춰주네/ 댓재의 찻길 트이니 더욱 발전 하리라// 두타산 감돌아서 영서에 펼쳐진 곳/ 자연이 수려하니 인심도 순박하네/ 하물며 고냉지 소채 소득증대 하리라 - 「댓재 개통」
동해안 영동남주지역에서 영서지역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4개 있다. 대관령, 백봉령, 도계에서 통리재를 넘는 태백길, 그리고 삼척 미로에서 하장을 거쳐 정선으로 가는 길이다. 이 시조는 댓재 너머 하장(예전에는 지금의 태백시를 상장생리, 지금의 하장면은 하장생리로 부름)을 소개하며 노래한 그의 시조 중에서 가장 길이가 짧은 작품이기에 소개한다.
청봉의 유고 시조집의 내용면에서는, ‘민속’을 노래한 시가 8편 ‘민족정기’관련 시가 4편, ‘역사’를 노래한 시가 9편, ‘동굴과 계곡’을 노래한 시가 5편, ‘사찰’을 노래한 시가 6편, ‘정자나 누각’을 노래한 시가 11편, 산과 고개를 노래한 시가 13편, 강과 폭포를 노래한 시가 9편, 천년기념물이 된 나무들을 소재로 한 시가 8편, 축하의 송(노래)이 4편, 함께 삼척 향토문화 연구를 하거나 작품을 쓰던 사람들의 죽음에 조시 형태의 시 2편, 노후에 가정과 자신의 행복과 노후에 경계엄을 노래한 시 2편, 삼척의 찬가 2편 그 외 6편이 있다.
청봉은 말년에 글을 시작하여 작품의 예술성이나 현실참여 등에 치열하게 다가서지는 못하고, 작품성에서도 다른 사람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 작품들의 소재가 다양하지 못하고 거의가 삼척의 문화재나 자연을 찬양하거나 노래하고 있다. 뛰어난 시적표현보다는 사실설명이나 느낌 정도 수준을 유지 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이미지image 처리는 비교적 잘 되어 있으며, 시의 교시적 기능敎示的 機能인 문학이 독자에게 유익한 지식을 가르치는 교훈성과 공리성 면에서 그 가치가 크다 하겠다.
청봉 박재문은 문학 외에,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 국어과 교수, 삼일중학교 교감․교장을 거쳐, 강원도 교육위원회 제 7대 교육위원(1988~1991)을 역임하고, 그 외 삼척군지 일부 집필(1985), 죽서문화제위원장(1986~1987), 삼척산업대강사, 회장으로 있던 향토문화연구회는 첫해(1989년)에 삼척문화와 관계되는 논문을 한데 모아 엮은 『실직문화논총』을 발행하였다. 3년째에는 우리 역사의 고문서인 ‘척주지’(허목), ‘척주선생안’, 김종언의 ‘척주지’, ‘척주절의록’의 4권의 고문서를 모아『척주집』을 영인본으로 발행하였다. 또 1993년도에는 삼척을 노래한 약 500여수의 옛날 漢詩들을 찾아 ‘척주한시집’을 발행한 공적 등도 교육과 문화면에서 문학과 함께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은 각주로 대신합니다.
약정토론
金振光 시인 <작고문인 박재문 연구>
약정토론:정연휘 시인
▦ 질문:정연휘 시인 고맙습니다.고매한 학자이자 시인인 박재문 선생님을 연구하여 조명하심에 거듭 감사를드립니다.박재문선생님 시조도 중요하지만 三陟鄕土文化硏究會의 업적이 더 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詩人精神으로 鄕土文化를 선구적으로 일깨운 점에 대해 좀더 말씀에 주시기 바랍니다?
▦ 대답:김진광 시인 그 내용, 삼척향토문화연구회는 질문하시는 정연휘 시인님의 구상으로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발표자보다 질문하시는 정연휘 시인께 도로 부탁드립니다. 사적으로 있었던 얘기도 함께 말씀해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대답:정연휘 시인 아,예,질문에 도로 부탁을 받았습니다. 박재문 선생님은 고인이되셨만 지금도 존경합니다.고매한 학자 성품에 삼척의 역사와 문화를 일깨우신 업적은 존경을 받고 후진들이 그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연구회를 하면서 지근거리에서 막걸리도 마시고,태백산 등산도 함께 다녔습니다.앞선 시인정신으로 삼척의 옛 역사를 김일기 교수님과 함께 현대로 끌어내어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은 상찬을 드려야 합니다.
1988년에 三陟鄕土文化硏究會가 창립 됐습니다.역사학자 김일기 교수,그리고 박재문 교수, 진인탁 교수, 기업인 김명하 삼왕 회장, 한학자 홍태의,김규영,시인 정연휘,박종화, 서예가 김명숙이 주축이 되여 학계와 기업과 젊은 기획자들이 3박자로 0상태에서 鄕土愛라는 정신 하나로 삼척의 역사와 문화를 이르킨 그룹이 三陟鄕土文化硏究會 입니다. 후에는 三陟文化院으로, 三陟市立博物館으로 계승이 됩니다.
향문연 발간사업: 사업비 0상태 열악한 환경에서,지자체나,정부지원금 한푼 없이 향토기업인들의 지원을 요청하거나 호주머니를 털거나 하여, 힘들게 학자나 전문가들만 알던 삼척의 역사를 대중 시민들에게 역사속에서 건저 보여 주었습니다.그때 그러니 1988년 27년전에는 시청에서 발간비 전무 상태였습니다. 받을 생각도 줄 생각도 안하던 시절이였지요,요즘 같으면 시에서 시비로 발간할 책들을 민간 동호회인 三陟鄕土文化硏究會에서 그렇게 힘들게 행한 일들이 지금은 그 열정이 부렵습니다.
박재문 선생님과 연구회를 해가면서, 한시집 발간 작업 하나만 놓고 봐도 5년이란 세월을 동행 했습니다.500여수의 삼척에 관한 한시 채록,한시 시집 발간, 그 500여수의 한시번역 작업 3년,국역시집 발간 도합 5년이 소요됐습니다.
무엇보다 1662년 간행된 허목 부사의『陟州志』는 삼척역사 원전 입니다. 그 원전을 개인이 소장한 것을 찾았습니다.그것을 영인본으로 책을 만들고,발간비를 만들 자원을 구하고...이러한 작업을 박재문 선생님과 함께 학자의 학풍과 향토사랑을 젊은 정신이 그러한 작업을 일찍 펼첬습니다.지금 같으면 지자체에서 모두 할 일을 그 시절에는 뜻이 맞는 사람들이 견딜수 없는 향토사랑해가 발산되어 함께 주머니를 풀고 열정을 발산했습니다.
박재문 선생님이 향문연 초대와 3대회장을 하면서 삼척의 옛 역사와 문화를 오늘에 펼친 것은 다음과 갔습니다.①1989,10,22,393쪽『悉直文化論叢』발간,이책은 꿈속에 있던 '이승휴 제왕운기' 등을 잠깨우고 삼척에 관련 논문을 일찍히 집대성하여 학계에 큰 방향을 일깨웠습니다. ②1990,10,1.연간종합향토지『悉直文化』창간,향토종합지를 처음으로 창간 삼척문화원으로 오늘까지 연결 발간되고 있습니다. ③1991,10,22,영인판 400쪽『陟州集』간행입니다. 김일기교수 큰댁에서 자료를 찾았습니다.(삼척의 사료인 허묵의『陟州志』김구혁의『陟州先生案』『陟州節義錄』김종언의『陟州誌』네권을 한데 모아 간행한 획기적인 삼척의 뿌리작업입니다.6년후,1997,5,1.삼척시에서『완역 陟州集』이 발간되였습니다.) ④1993,10,23,신국판 『陟州漢詩集』⑤199710,15,338쪽『국역陟州漢詩集』발간.이들 대부부분을 박재문 선생님이 했습니다.
그런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은 아닙니다.문인들의 선구적인 일깨움 정신이 있기때문입니다. 10년 이상 앞을 내다보는 선구자 정신이지요,박재문 선생님은 삼척향토문화연구회 초대회장으로, 삼척향토사에 큰 획 전기를 만든분이라는 점을 다시 말씀드림니다.
<참고용/『문화예술』誌, 한국문화예술위원회,1991.06.22>
정연휘 / 시인
척주陟州의 뿌리를 찾아서
- 三陟鄕土文化硏究會
삼척은 옛 강원도의 3대 문화권-강릉의 '예국', 춘천의 '맥국', 삼척의 '실직국'-으로 유구한 역사의 고장이다. 실직국悉直國은 2천년의 오랜 나라로, 신라와 맞겨뤄 패망한 억센 부족국가였다. 그 유구함을 잠 깨워 일으켜 세우는, 오늘에 긍지를 되살리는 역사의 강에서 자존심을 건져 올리는 작업을 하는 자생단체가 향토문화연구회(이하 '향문연鄕文硏')이다.
목적은, 역사를 고찰하여 정신운동에 선도적 역할을 하면서 향토문화예술을 진흥 발전시킴에 있다. 특히 향토지鄕土紙와 자료 등의 편간에 관한 사업을 하고 있다.
삼척 향문연은 88년 10월에 창립, 이듬해 10월에 전국에서는 드물게 한 지방시군 단위에서, 한 지방의 학술논문을 집대성하여 지방의 자생 연구단체에서 발간하였다는 사실이다. 『실직문화논총悉直文化論叢』지가 그것이다. 「삼척지방의 항일투쟁사」,「이승휴의 생애와 유적」,「태조 이성계는 강원인의 핏줄」,「삼척지방의 지명고」,「삼척 기줄다리기」 등의 김일기 교수의 논문과 차장섭 교수의 「제왕운기에 나타난 이승휴의 역사관」,「고려시대 초기 불상연구」 그리고 최영희 교수의 「공양왕릉」과 김용철 교수의 「삼척 죽서루에 관한 연구」 등 22편의 논문을 게재한 신국판 392쪽 2천부를 발행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역사의 깊은 강에 잠겨있는 향토사, 향토의 정신, 향토의 자존심을 건져 올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둘째 올해로 3년째 접어드는『삼척의 시가三陟詩歌』 한시번역 작업이다. 1662년 허목 선생이 쓴 삼척 최초의 향토사지인 『척주지陟州誌』와 그후에 나온 『진주지眞珠誌』등에 실려있는 한시 543수, 그 중에 '죽서루제'가 323수, 모두를 직역과 공동 독회 추고를 마치고, 현대 시어에 맞게 의역작업에 접어들고 있는 어려운 일을 치러 가고 있다. 소중히 생각되는 것은 한시연구위원(김일기, 진인탁 교수, 박재문 선생, 김규영, 홍태의 한학자, 정연휘, 박종화 시인, 김명숙 서예가)들이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서 매월 2일씩을 3년간이나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업이 연말 아니면 명년 초에 끝나면 상, 하권 6백 쪽 신국판 1천부 발행을 예정하고 있다. 향토뿌리 찾기의 일환이다.
셋째가 연간종합향토지 『실직문화悉直文化』를 90년에 창간, 올 10월에 2집이 발간된다. 만드는 쪽이나 읽는 쪽이나 어렵지 않은, 부담 없이 읽히는 향토의 어제와 오늘을 조화롭게 편집한 책이다. 어렴풋한 향토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선명히 쉽게 보여 주고 있다. 향문연이 기획, 편집, 인쇄를 맡고 발간비와 발행인은 문화원이 맡아하는, 문화의 고리작업은 이 시대 보기 드문 정신화합의 작업이다.
넷째로 삼척사료집 영인판『척주집陟州集』 발간은 올 하반기에 4백 쪽 1천부가 발간된다. 내용은 「척주지」「척주속지」「척주선생안」「척주절의록」인데, 척주는 고려 때 삼척의 옛 이름으로 발행비는 고문인 김명하金明河 주식회사삼왕 회장의 희사로 책이 빛을 본다.
그 외 중장기 기획사업으로, ① 이승휴 기념비 제작 ② 이승휴 동상건립 ③ 삼척지방 의병 기념탑 건립 ④ 삼척상징물 사자상 건립 등이 있다. 임원은 회장에 진인탁, 자문위원에 김일기, 김영기, 문일봉, 박재문, 김영준이고, 연구위원은 역사·문학·한시·출판·언론·서예·미술·음악·사진·지리 등 18명이고 회원수는 연구위원 임원진 포함 120명이다.
<첨언>죽서루는 고려시대부터 오랜 역사가 묻어 있어,삼척하면 죽서루,죽서루하면 삼척이 실과 바늘 같다.삼척은 옛 강원도의 3대 문화권-강릉의 '예국' 춘천의 '맥국' 삼척의 '실직국'으로 유구한 역사의 고장이다. 실직국悉直國은 2천년의 오랜 나라로, 신라와 맞겨뤄 패망한 억센 부족국가였다.역사의 깊은 강에 잠겨있는 향토사, 향토의 정신, 향토의 자존심을 건져 올리는 작업을 '향문연鄕文硏'에서 펼첬다.
三陟鄕文硏은「三陟의 詩歌」를 1662년 최초의 삼척향토사지인 『陟州志』와 그후에 나온 『眞珠誌』등에 실려 있는 한시 543수, 그 중에 '죽서루제'가 323수를 찾아 내어 1993년10월23일『陟州漢詩集』을 발간했다. 다시 직역과 현대 시어에 맞게 의역을 3년 작업끝에 1997년10월15일 『국역陟州漢詩集』338쪽 신국판 1천부를 발행, 향토뿌리 찾기를 했다..1989년10월22일에는 신국판 393쪽『悉直文化論叢』을 기 발간했다.
삼척향문연은 연간종합향토지『실직문화悉直文化』를 1990년에 창간을 하고,1991년10월22일에는 『陟州集』을 간행했다. 이는 간포刊布된 적이 없는 삼척의 사료인 허묵의『陟州志』김구혁의『陟州先生案』『陟州節義錄』김종언의『陟州誌』네권을 한데 모아 간행한 획기적인 삼척의 뿌리작업이다. 이는 김명하 사장과 정연휘 시인,홍태의 한학자,박종화 시인,김명숙 서예가,고 김일기 교수,고 진인탁 교수,고 박재문 교수, 기업과 기획추진과 학문이 함께한 향토뿌리를 건저올린 三陟鄕文硏의 삼척사랑정신이다.
▒『문화예술』한국문화예술위원회1991.06.22
첫댓글 정연휘 형님 여러가지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