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사Rosa* 이야기
-최동문
벽에 걸린 십자고상十字苦像이 피 흘리는
외과 F동을 빠져나온
3교대 나이트에 발등이 부었네요
기적은 잠을 잤어요
내 벨벳 치마를 수놓은 흑장미는
출근하는 저녁마다 한 잎씩 묽어졌어요
기적은 첫 허물을 벗었어요
나는 나이팅게일이 아니에요
피었다 지는 간호조무사지요
나는 장미랍니다
수술등 위로 날아간
옷에 붙은 털실 한 올이
내가 디딘 복도에 떨어진 장미꽃잎을 물고 돌아와
졸음을 품에 안겨
기적의 잠을 깨웠어요
일용할 붕어빵이 들어간 위장에서
금붕어 떼가 입술을 열고 나와
열려라 눈!
형광등 곁에서 원무를 그렸어요
기적은 눈을 떴어요
나는 6인실 병동의 창문을 열고
매일
안 아픈 애인들이 시들어가는 애인에게 보낸
장미 꽃송이를 배달하였어요
기적은 일어났어요
제 5시각에 닿기 전에 나는 로사Rosa로 살았고
지금
나는 금붕어를 몰며 일곱 아이를 키우는
발바닥이 마를 날 없는 홀로이스트** 혹은 수녀에요
아니, 나는 나랍니다
* 라틴어 로사rosa는 ‘장미’라는 뜻을 품고 있지요 .
** 홀로이스트Holloist는 가족. 사랑. 신념. 일을 지나 제5의 시각을 만들며
자기애 속에서 이타를 발견한 사람이죠. 시계를 멈추는 능력이 있어요.

커피포트 스댕, 1990~2007
물 끓는 소리가
옹기종기 기포로 일어나더니
정 붙일수록
불량제품으로 변하더니
오늘 고장 난 당신은
앉을 자리를 잃었네
최후에는
물방울 하나도 끓이지 못했네
열선만 달구다가 불이네
분신焚身이네
묻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폐기처분할 수 없는 유산
하나.
마지막 겨울에
식탁가에서 낮은 찬장으로
다시 창고 구석으로 밀려
보글거리던 안식을 닫았네
당신을 들여다보면
구겨졌던 길들이 같이 한
찻잔 밑 실금처럼 맑게 번지네
스댕, 스댕 속으로 까맣게 웃으며
잠들지 않는 시간을 남기고
가야지, 가야지 종일
거짓말 같은 참말을 하는 당신은
내 병든 밤을 지킨 폐경기 엄마